번쾌열전 02

項羽在戲下,欲攻沛公。

沛公從百餘騎 因項伯 面見項羽,

謝無有閉關事。

항우가 희하(戱河)에 주둔하면서 패공을 공격하려고 하자

패공은 백여 명의 호위기병만을 데리고

항백(項伯)의 주선으로 항우를 면담하고

함곡관의 관문을 닫은 일에 대해 사죄했다.

項羽既饗軍士,中酒,〔一〕

亞父謀欲殺沛公,令項莊拔劍舞坐中,欲擊沛公,

項伯常(肩)〔屏〕蔽之。

항우가 군사들을 위해 잔치를 벌려

이윽고 주흥이 도도해졌을 때

범증이 패공을 살해하려는 계획에 따라

항장에게 주흥을 돋우게 한다는 핑계로 검무를 추도록 한 다음

기회를 보아 패공을 찔러 죽이도록 명했다.

이에 항백이 여러 자기의 몸으로 패공을 엄호했다.

  〔一〕集解張晏曰:「酒酣也。」

時獨沛公與張良得入坐,

樊噲在營外,聞事急,

乃持鐵盾入到營。

그때 패공의 곁에는 오로지 장량만이 장막 안으로 따라 들어가고

영채 밖에 머물고 있던 번쾌가 일이 급하게 된 것을 알고

쇠방패를 들고 영채로 달려갔다.

營衛止噲,

噲直撞入,〔二〕立帳下。〔三〕

영채를 지키는 군사가 번쾌를 막아섰으나

번쾌는 위병을 제치고 들어가 장하에 섰다.

  〔二〕集解漢書音義曰:「揰音撞鍾。」正義撞,直江反。

  〔三〕集解徐廣曰:「一本作「立帷下,瞋目而視,眥皆血出」。」

項羽目之,問為誰。張良曰:

「沛公參乘樊噲。」

항우가 보고 번쾌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장량이 대답했다.

" 패공의 참승(驂乘) 번쾌입니다."

項羽曰:「壯士。」

항우가 듣고 말했다.

" 참으로 장사로다!"

賜之卮酒彘肩。

噲既飲酒,拔劍切肉食,盡之。

항우가 이어서 번쾌에게 술동이와 돼지다리를 주도록 명했다.

번쾌가 술을 단 번에 마시고

칼을 뽑아 돼지다리 고기를 잘라 모두 먹었다.

項羽曰:「能復飲乎?」

항우가 말했다.

" 다시 술을 더 마실 수 있는가? "

噲曰:

「臣死且不辭,豈特卮酒乎!

번쾌가 대답했다.

" 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데

어찌 한 동이의 술인들 더 마시지 못하겠습니까?

且沛公先入定咸陽,

暴師霸上,以待大王。〔四〕

더욱이 패공께서 먼저 함양에 진입하여 평정한 다음

군사들을 패상에 로숙시키며 대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四〕正義時羽未為王,史追書。

大王今日至,聽小人之言,

與沛公有隙,臣恐天下解,〔五〕

心疑大王也。」

그런데 지금 당도하신 대왕께서는 소인들의 참언을 믿으시고

패공을 적대하고 계시니 천하가 흩어지고

대왕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

  〔五〕正義紀買反。至此為絕句。

項羽默然。

沛公如廁,麾樊噲去。既出,

항우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패공이 변소에 간다고 하면서

번쾌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沛公留車騎,獨騎一馬,

與樊噲等四人步從,

從閒道山下歸走霸上軍,

거마와 기병들을 그대로 항우의 영채 안에 두고

자신은 말 한 마리를 내어 탄 패공은

번쾌 등의 네 사람만을 도보로 뒤따르게 하고

산속으로 난 지름길을 이용하여 패상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而使張良謝項羽。

項羽亦因遂已,無誅沛公之心矣。

장량으로 하여금 항우에게 사과를 표하게 했다.

항우도 끝난 일이라 패공을 주살할 마음이 없어졌다.

是日微樊噲奔入營 譙讓項羽,〔六〕

沛公事幾殆〔七〕。

이날 번쾌가 군영으로 달려들어가

항우를 나무라는 일이 없었더라면

패공의 사건은 거의 위태로웠다.

  〔六〕索隱譙音誚,責也。或才笑反,或亦作「誚」。

  〔七〕正義幾音祈。

明日,項羽入屠咸陽,

立沛公為漢王。

漢王賜噲爵為列侯,號臨武侯。〔一〕

이튿날 항우는 함양에 입성하여 모조리 파괴하였고

패공을 세워 한왕으로 봉했다.

한왕은 번쾌를 열후에 봉하고

호를 임무후(臨武侯)라고 했다.

  〔一〕正義桂陽臨武縣。

遷為郎中,從入漢中。

후에 랑중(郞中)으로 승진한 번쾌는

한왕을 따라 한중으로 들어갔다.

還定三秦,別擊西丞白水北,〔一〕

한중에서 돌아와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번쾌는 별도로 서현(西縣)의 현승(縣丞)이 이끄는 군사를

백수(白水)의 북쪽에서 공격했다.

〔一〕集解徐廣曰:「隴西有西縣。白水在武都。」駰案:如淳曰「皆地名也」。晉灼曰「白水,今廣平魏縣也。地理志無「西丞」,似秦將名」。索隱案:西謂隴西之西縣。白水,水名,出武都,經西縣東南流。言噲擊西縣之丞在白水之北耳,徐廣等說皆非也。正義括地志云:「白馬水源出文州曲水縣西南,會經孫山下。」

雍輕車騎於雍南,破之〔二〕。

옹현(雍縣)의 남쪽에서

옹왕(雍王) 장한(章邯)의 경기병과 경전차 부대를 격파했다.

  〔二〕正義上「雍」於拱反。

從攻雍、斄〔三〕城,

先登擊章平軍好畤,〔四〕攻城,先登陷陣,

옹(雍)과 태(斄)성을 공격할 때는

선등하여 장한(章邯)의 아들 장평(章平)의 군대를 호치에서 공격하고

성을 공격하는 데 선등하여 적진을 함락시켰다.

  〔三〕集解音胎。

  〔四〕索隱案:雍即扶風雍縣。斄音台,即后稷所封,今之武功故斄城是。章平即章邯子也。

斬縣令丞各一人,首十一級,虜二十人,遷郎中騎將。

현령과 현승 2명을 참하고

적군의 수급 11개와 포로 20명을 얻어 가

랑중의 기마(騎馬) 대장으로 승진하였다.

從擊秦車騎壤東,〔五〕

卻敵,遷為將軍。

진나라의 전차부대와 기마부대를 양(壤)의 동쪽을 치는 데 종군하여

적을 격파하고 승진하여 장군이 되었다.

  〔五〕索隱小顏亦以為地名。正義壤鄉在武功縣東南二十里。

攻趙賁,下郿、〔六〕槐里、柳中、〔七〕咸陽;

灌廢丘,最。〔八〕

다시 조나라의 조분(趙賁)), 하미(下郿), 괴리(槐里),

유중(柳中), 함양(咸陽) 등의 공략전에 종군했다.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폐구(廢丘)를 물에 잠기게 했다.

계속된 일련의 전투에서 번쾌의 공이 가장 높았다.

  〔六〕正義岐州縣。

  〔七〕索隱按:柳中即細柳,地在長安西也。

  〔八〕集解李奇曰:「以水灌廢丘也。」張晏曰:「最,功第一也。」晉灼曰:「京輔治華陰,灌北也。」索隱灌謂以水灌廢丘,城陷,其功最上也。李奇曰「廢丘即槐里也。上有槐里,此又言者,疑此是小槐里」,非也。按:文云「攻趙賁,下郿、槐里、柳中、咸陽」,總言所攻陷之邑。別言以水灌廢丘,其功特最也。何者?初云槐里,稱其新名,後言功最,是重舉,不欲再見其文,故因舊稱廢丘也。

至櫟陽,〔九〕賜食邑杜之樊鄉。〔一0〕

이윽고 한군이 삼진을 평정하고 역양(櫟陽)에 이르자

한왕은 두릉(杜陵)의 번향(樊鄕)을 번쾌에게 식읍으로 주었다.

  〔九〕正義雍州縣。

  〔一0〕索隱案:杜陵有樊鄉。三秦記曰「長安正南,山名秦嶺,谷名子午,一名樊川,一名御宿」。樊鄉即樊川也。

從攻項籍,屠煮棗。〔一一〕

擊破王武、程處軍於外黃。

항우(項羽)와의 싸움에 종군하여 자조(煮棗)를 파괴하고

외황(外黃)에서 왕무(王武)와 정처(程處)의 군사들을 격파했다.

  〔一一〕索隱檢地理志無「煮棗」,晉說是。功臣表有煮棗侯,云清河有煮棗城。小顏以為「攻項籍,屠煮棗,合在河南,非清河之城明矣」。今案續漢書郡國志,在濟陰宛朐也。正義案:其時項羽未渡河北,冀州信都縣東北五十里煮棗非矣。

攻鄒、魯、瑕丘、薛。〔一二〕

계속 진군하여 노(魯), 하구(瑕丘), 설(薛) 등의 성을 공략했다.

  〔一二〕正義鄒,兗州縣,在州東南六十二里。魯,兗州曲阜縣。瑕丘,兗州縣。薛在徐州滕縣界。

項羽敗漢王於彭城,盡復取魯、梁地。

항우는 팽성(彭城)에서 한왕을 패주시키고

번쾌가 점령했던 노(魯)와 양(梁) 땅의 성읍들을 모두 수복해갔다.

噲還至滎陽,益食平陰二千戶,〔一三〕以將軍守廣武。

번쾌가 돌아와 형양(滎陽)양에 이르자

평음(平陰)의 2천 호를 식읍에 더해주고

장군으로 삼아 광무(廣武)를 지키게 했다.

  〔一三〕正義平陰故城在濟陽東北五里。

一歲,項羽引而東。

그리고 1년 후에 항우는 홍구(鴻溝)를 경계로 한왕과 협정을 맺고

동쪽의 팽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從高祖擊項籍,下陽夏,〔一四〕

虜楚周將軍卒四千人。

한왕이 팽성으로 돌아가는 항우의 뒤를 추격할 때

번쾌는 양하(陽夏)를 함락하고,

초나라의 장수 주장군(周將軍)과 그 군사 4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

  〔一四〕正義夏音假。陳州太康縣。

圍項籍於陳,〔一五〕大破之。屠胡陵。〔一六〕   

항우를 진(陳)에서 포위하여 크게 무찌르고

호릉(胡陵)을 파괴하고 평지로 만들었다.

  〔一五〕正義陳州。

  〔一六〕正義在兗州南。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굴원열전 01  (0) 2012.03.17
번쾌열전 03  (0) 2012.03.16
번쾌열전 01  (0) 2012.03.16
형가(荊軻)열전 04  (1)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3  (0) 2012.03.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