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열전 03
太子及賓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태자와 빈객들은 그 일을 알고 있는 자들이어서 모두 흰 의관을 하고 그를 보냈다.至易水之上,既祖,取道,[一]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二]士皆垂淚涕泣。역수가에 이르러 이미 조상신께 제사하고 여로에 올랐다.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변치음을 내니 인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注[一]正義易州在幽州歸義縣界。注[二]正義徵,知雉反。又前而為歌曰:앞으로 나아가며 노래했다.「風蕭蕭兮 易水寒,壯士一去兮 不復還!」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물 차가와라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復為羽聲慨,士皆瞋目,髮盡上指冠。또 우성으로 소리하니 인사들이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은 모두 갓을 향해 곤두섰다. 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이에 형경은 수레에 올라 떠났는데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遂至秦,持千金之資幣物,厚遺秦王寵臣中庶子蒙嘉。嘉為先言於秦王曰:드디어 진에 이르렀다. 천금을 내건 폐물을 갖고 진왕의 총신인 중서자 몽가에게 후히 주니 몽가는 진왕에게 먼저 아뢰었다.「燕王誠振怖大王之威,不敢舉兵以逆軍吏,願舉國為內臣,比諸侯之列,給貢職如郡縣,而得奉守先王之宗廟。“연왕이 대왕의 위엄을 참으로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 군대에 항거하지 못하고 온 나라가 내신이 되고 제후의 반열에 서서 공물 바치기를 군현과 같이하고 선왕의 종묘를 봉수하기를 원합니다.恐懼不敢自陳,謹斬樊於期之頭,及獻燕督亢之地圖,函封,燕王拜送于庭,使使以聞大王,唯大王命之。」두려워서 스스로 그 뜻을 개진하지 못하고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어 연나라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어 봉함하고 연왕이 궁정에서 배송하여 사자로 하여금 대왕게 주문케 하였사옵니다. 대왕께서는 명을 내리소서.”秦王聞之,大喜,乃朝服,設九賓,[一]見燕使者咸陽宮。[二]진왕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여 조복을 입고 구빈의 예를 마련하여 연나라 사자를 함양궁에서 접견했다.
注[一]正義劉云:「設文物大備,即謂九賓,不得以周禮九賓義為釋。」注[二]正義三輔黃圖云:「秦始兼天下,都咸陽,因北陵營宮殿,則紫宮象帝宮,渭水貫都以象天漢,橫橋南度以法牽牛也。」荊軻奉樊於期頭函,而秦舞陽奉地圖柙,[三]以次進。형가는 번오기의 두함을 받들고 진무양은 지도함을 받들고 차례로 나아갔다.
注[三]索隱戶甲反。柙亦函也。至陛,秦舞陽色變振恐,羣臣怪之。계단에 이르자 진무양은 얼굴빛이 변하며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여러 신하들이 이를 괴이히 여겼다.荊軻顧笑舞陽,前謝曰:형가는 무양을 돌아보고 웃으면서 앞으로 나아가 사과했다.「北蕃蠻夷之鄙人,未嘗見天子,故振慴。願大王少假借之,使得畢使於前。」“북번 만이의 비루한 사람이 일찍이 천자를 뵈온 적이 없으므로 떨며 두려워합니다.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작은 잘못을 용서하시어 어전에서 사자의 임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秦王謂軻曰:「取舞陽所持地圖。」진왕이 형가에게 말했다.“무양이 가진 지도를 받아오라.”軻既取圖奏之,秦王發圖,圖窮而匕首見。형가는 이미 지도를 취해 바치었다. 진왕이 지도를 펼쳤는데 지도가 끝나자비수가 보였다.
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인하여 형가는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고 진왕을 찔렀다.未至身,秦王驚,自引而起,袖絕。비수가 몸에 닿기 전에 진왕은 놀라서 스스로를 이끌어 일어나느라 소매가 떨어져나갔다. 拔劍,劍長,操其室。[四]時惶急,劍堅,故不可立拔。검을 뽑고자 했으나 검이 길고 칼집을 잡고 있는데다 시간이 황급한데 검은 견고하게 꽂혀 있어 뽑을 수 없었다.
注[四]索隱室謂鞘也。正義燕丹子云:「左手揕其胸。秦王曰:『今日之事,從子計耳。乞聽瑟而死。』召姬人鼓琴,琴聲曰『羅縠單衣,可裂而絕;八尺屏風,可超而越;鹿盧之劍,可負而拔』。王於是奮袖超屏風走之。」荊軻逐秦王,秦王環柱而走。형가가 진왕을 쫓아가니 진왕은 기둥을 돌아 달아났다.羣臣皆愕,卒起不意,盡失其度。여러 신하들은 모두 경악했고 갑자기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 할 바를 몰랐다.而秦法,羣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諸郎中[五]執兵皆陳殿下,非有詔召不得上。진나라 법에 여러 신하로서 전각 위에서 모시는 자들은 한 자 한 치의 무기도 갖지 못했었다. 여러 낭중으로 병기를 잡은 자들은 모두 전가 아래 진열하고왕명으로 부름이 없으면 전각에 오를 수 없었다.
注[五]索隱若今宿%之官。方急時,不及召下兵,以故荊軻乃逐秦王。而卒惶急,無以擊軻,而以手共搏之。지금 황급한 때에 아래의 병사들을 불러올릴 겨를이 없었으므로 형가가 진왕을 쫓았으나 창졸간에 황급한 일이라 형가를 칠 것이 없어 맨손으로 함께 형가를 쳤다.是時侍醫夏無且[六]以其所奉藥囊提荊軻也。[七]이때 시의 하무저가 받들고 있던 약낭을 형가에게 던졌다.
注[六]索隱且音即餘反。注[七]正義提,姪帝反。秦王方環柱走,卒惶急,不知所為,진왕은 방금 기둥을 돌아 달아나다가 창졸간에 황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左右乃曰:「王負劍!」[八]좌우에서 외쳤다.“대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
注[八]索隱王劭曰:「古者帶劍上長,拔之不出室,欲王推之於背,令前短易拔,負劍,遂拔以擊荊軻,斷其左股。荊軻廢,乃引其匕首以擿秦王,[九]不中,中桐柱。[一0]칼을 등지자 드디어 칼을 뽑아 형가를 공격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형가는 쓰러지자 비수를 당겨 진왕에게 던졌다. 비수는 진왕을 맞히지 못하고 구리기둥에 맞았다.
注[九]索隱擿與「擲」同,古字耳,音持益反。注[一0]正義燕丹子云:「荊軻拔匕首擲秦王,決耳入銅柱,火出。」故云『王負劍』。」又燕丹子稱琴聲曰「鹿盧之劍,可負而拔」是也。秦王復擊軻,軻被八創。軻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踞以罵曰:진왕은 다시 형가를 공격하여 여덟 군데 상처를 입혔다.형가는 스스로 일이 성취하지 못할 줄 알고 기둥에 의지하여 다리를 뻗고 앉아 진왕을 꾸짖었다.「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一一]“일이 성취하지 못한 것은 산 채로 겁을 주어 사로잡아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계약 때문이었다.注[一一]集解漢鹽鐵論曰:「荊軻懷數年之謀而事不就者,尺八匕首不足恃也。秦王操於不意,列斷賁﹑育者,介七尺之利也。」於是左右既前殺軻,秦王不怡者良久。이에 좌우에서 신하들이 이미 앞으로 나아와 형가를 죽였다.진왕은 꽤 오랜 동안 기분이 언짢았다.已而論功,賞羣臣及當坐者各有差,而賜夏無且黃金二百溢,曰:「無且愛我,乃以藥囊提荊軻也。」이미 공을 논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상을 주고 마땅히 죄에 연좌된 자들에게 차등을 두었다. 하무저에게는 황금 이백 일을 하사했다.“하무저는 나를 사랑하여 약낭을 형가에게 던진 것이다.”於是秦王大怒,益發兵詣趙,詔王翦軍以伐燕。이에 진왕은 대로하여 군대 동원을 늘여 조나라로 나아가게 하고왕전의 군대에 조서를 내려 연나라를 치게 했다.十月而拔薊城。燕王喜﹑太子丹等盡率其精兵東保於遼東。열 달만에 계성을 함락하였다. 연왕 희와 태자 단 등은 정예병을 모두 이끌고동쪽으로 가 요동을 지켰다.秦將李信追擊燕王急,代王嘉乃遺燕王喜書曰:진 장군 이신이 추격하여 연왕이 급해지니 대왕 가가 영완 희에게 서신을 보냈다.「秦所以尤追燕急者,以太子丹故也。今王誠殺丹獻之秦王,秦王必解,而社稷幸得血食。」“진나라가 더욱 추격하여 연나라가 급해진 것은 태자 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실제로 단을 죽여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공격을 풀게 되어 연나라의 사직은 제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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