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열전 04
其後李信追丹,丹匿衍水中,[一]燕王乃使使斬太子丹,欲獻之秦。
注[一]索隱水名,在遼東。
그후 이신은 단을 추격하여 단은 연수에 숨었다. 연왕은 사자를 보내 태자 단을 참수케 하여 진에 바치고자 그를 하였다.
秦復進兵攻之。後五年,秦卒滅燕,虜燕王喜。
진은 다시 진격하여 공격했다. 오년이지나 진은 연을 멸하고 연왕 희를 포로로 삼았다.
其明年,秦并天下,立號為皇帝。於是秦逐太子丹﹑荊軻之客,皆亡。
이듬해 진나라는 천하를 병탄하여 왕호를 세워 황제라 하였다.
이에 태자 단과 형가의 식객들을 쫓으니 모두 도망하였다.
高漸離變名姓為人庸保,[一]匿作於宋子。[二]
久之,作苦,聞其家堂上客擊筑,傍偟不能去。
고점리는 성명 바꾸고 남의 용보가 되어 송자에서 숨어 노동하였다.
오랜 동안 괴롭게 노동했다. 자기집 마루 위에서 객이 축치는 소리를 듣고방황하며 떠날 수 없었다.
注[一]索隱欒布傳曰「賣庸於齊,為酒家人」,漢書作「酒家保」。案:謂庸作於酒家,言可保信,故云「庸保」。鶡冠子曰「伊尹保酒」。
注[二]集解徐廣曰:「縣名也,今屬鉅鹿。」索隱徐注云「縣名,屬鉅鹿」者,據地理志而知也。正義宋子故城在趙州平棘縣北三十里。
每出言曰:「彼有善有不善。」
번번히 비평했다.“저건 잘 치는데, 저건 아닌데.
”從者[三]以告其主,
曰:「彼庸乃知音,竊言是非。」
시종드는 이가 주인에게 말했다.
“저 시종이 음을 알아 몰래 시비를 말합니다.”
家丈人召使前擊筑,[四]一坐稱善,賜酒。
집안 주인이 불러 앞으로 나와 축을 치게 하니 모인 사람들이 잘 친다고 하여 술을 내렸다.
注[三]索隱謂主人家之左右也。
注[四]索隱劉氏云:「謂主人翁也。」又韋昭云:「古者名男子為丈夫,尊婦嫗為丈人。故漢書宣元六王傳所云丈人,謂淮陽憲王外王母,即張博母也。故古詩曰『三日斷五疋,丈人故言遲』是也。」
而高漸離念久隱畏約無窮時,[五]乃退,出其裝匣中筑與其善衣,更容貌而前。舉坐客皆驚,
고점리는 오래도록 숨어서 두려워하고 위축할지라도 끝날 날이 없다고 여기고 물러나와 그의 행장 속의 축과 좋은 옷을 꺼내어 용모를 고치고 나아가니모든 좌객들이 모두 놀랐다.
注[五]索隱約謂貧賤儉約。既為庸保,常畏人,故云「畏約」。所以論語云「不可以久處約」。
下與抗禮,以為上客。使擊筑而歌,客無不流涕而去者。
몸을 낮추고 상객으로 하였다. 축을 치고 노래하게 하니좌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지 않는 자가 없었다.
宋子傳客之,[六]聞於秦始皇。
송자 고을에서 돌려가며 그를 객으로 삼았다.진시황에게 알려졌다.
注[六]集解徐廣曰:「互以為客。」秦始皇召見,人有識者,乃曰:「高漸離也。」
진시황이 불러보고 사람들 중에 아는 이가 있어“고점리다.” 라고 하였다.
秦皇帝惜其善擊筑,重赦之,乃矐其目。[七]使擊筑,未嘗不稱善。
진시황제는 가가 축을 잘 치는 것을 아껴 거듭 사면하여 그의 눈을 멀게 하고축을 치게 하고는 잘한다고 그를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注[七]集解矐音海各反。索隱海各反,一音角。說者云以馬屎燻令失明。
稍益近之,高漸離乃以鉛置筑中,[八]復進得近,舉筑朴[九]秦皇帝,不中。
조금씩 더욱 친근해지자 고점리는 납덩이를 축(筑) 속에 넣었다가 다시 나아가 가까이 하게 되자 축을 들어 진시황제를 쳤으나 적중하지 않았다.
注[八]索隱案:劉氏云「鉛為挺著筑中,令重,以擊人」。注[九]索隱普十反。朴,擊也。
於是遂誅高漸離,終身不復近諸侯之人。
이에 고점리를 베어 죽이고몸을 마칠 때까지 다시는 제후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魯句踐已聞荊軻之刺秦王,私曰:
노구천은 이미 형가가 진왕을 찌르려고 했음을 듣고 혼자 말했다.
「嗟乎,惜哉其不講於刺劍之術也![一]甚矣, 吾不知人也!曩者吾叱之,彼乃以我為非人也!」
“아, 아깝도다. 그가 칼 잘 쓰는 법을 익히지 않았음이. 심하도다, 내가 사람 볼 줄 모름이. 지난 번에 내가 그를 꾸짖었을 때 그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注[一]索隱案:不講謂不論習之。
太史公曰:世言荊軻,其稱太子丹之命,「天雨粟,馬生角」也,[一]太過。
태사공은 말한다. 형가가 태자 단의 목숨을 말하니, “하늘에서 곡식비가 내리고 말에 불이 난다.” 고 하는 말은 큰 잘못이다.
注[一]索隱燕丹子曰:「丹求歸,秦王曰『烏頭白,馬生角,乃許耳』。丹乃仰
又言荊軻傷秦王,皆非也。始公孫季功﹑董生與夏無且游,具知其事,為余道之如是。
또 형가가 진왕을 상하게 했다는 말도 모두 잘못이다.처음 공손계공이 하무저와 놀 때에 모두 그 일을 알았다. 나를 위해 이 같이 말해 주었다.
自曹沫至荊軻五人,此其義或成或不成,
조말로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사람은 그들의 의협이 이루어지기도 하고이뤄지지 못하기도 했다.
然其立意較然,[二]不欺其志,名垂後世,豈妄也哉!
그러나 뜻을 세움이 명확하고 그 뜻을 숨기지 않았다.그 이름이 후세에 전하는 것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는가.
注[二]索隱較,明也。
天歎,烏頭即白,馬亦生角。」風俗通及論衡皆有此說,仍云「門木烏生肉足」。
【索隱述贊】曹沫盟柯,返魯侵地。專諸進炙,定吳篡位。彰弟哭市,報主塗
廁。刎頸申冤,操袖行事。暴秦奪魄,懦夫增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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