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容歌

처용랑과 망해사

處容郞 望海寺

[은자주] 처용가는 벽사진경의 주제로 인하여 고려시대에는 樂學軌範 권5에 <鶴․蓮花臺․處容舞 合設> 조에 려요<처용가>가 나온다. 그 가운데 향가의 구절도 수용하였다. 다음 꼭지에서 확인하기 바란다.처용은 이방인이다. 위의 책에는 눈이 우멍하고 턱이 주걱턱인 아랍상인의 가면도 실렸는데[이 블로그의 이 꼭지 아래에사진 수록]경주 불국사 가는 길의 영지 반대편에 있는 괘릉의 수호무인상에도 그 얼굴이 조각되어 있어 지금껏 처용 얼굴의 확인이 가능하다

아래창에 괘릉석상 있음. 복사도 스크랩도 불가여서 주소창만 소개함.

http://blog.paran.com/ulgun/27055226

맨 아래 사진에서 처용과 유사한 얼굴형임을 확인할 수 있음. 결코 한국인 얼굴은 아님.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於海內 比屋連墻無一草屋

제49대 헌강대왕 때는 서울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으며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풍악과 노래소리가 길거리에서 끊어지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웠다.

於是 大王遊開雲浦(在鶴城西南 今蔚州).

때마침 대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주-에 놀러왔다가

王將還駕 晝歇於汀邊

돌아가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忽雲霧冥曀 迷失道路.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게 되었다.

怪問左右 日官奏云

왕이 괴이하게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뢰었다.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이것은 동해 용왕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於是 勅有司爲龍創佛寺斤境.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리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도록 했다.

施令已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왕이 명령을 내리자 구름과 안개는 걷혔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을 개운포라 이름했다.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於駕前 讚德獻舞奏樂.

동해 용왕은 기뻐하며 아들 일곱을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그 중에서 일곱째 아들이 왕을 따라 서라벌로 들어가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의 이름을 처용이라 했다.

王以美女妻之 欲留其意. 又賜級干職.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그의 아내로 삼게하여 그를 치하했으며, 또한 급간이란 관직을 주었다.

其妻甚美 疫神欽慕之 變爲人

그런데,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으므로 역신이 그녀를 흠모하여

夜至其家 竊與之宿.

변하여 사람이 되어 밤이면 그 집에 가서 몰래 그녀와 동침했다.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처용이 밖에서 자기집에 돌아와 잠자리 보니 두 사람이 있었다.

乃唱歌 作舞而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歌曰,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 -烏-伊-四 -是-良-羅

二-肹-隱-吾-下-於-叱-古

二-肹-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새벌 발긔 다래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드러사 자리 보곤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리리 네히어라 다리가 넷이러라.

둘흔 내해엇고 둘은 내 것인데

둘흔 뉘해언고 둘은 뉘 것인고

본대 내해다마란 본디 내 것이었다마는

아사늘 엇디하릿고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時神現本形 跪於前曰

이 때 역신은 본디의 모습을 나타내며 처용 앞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吾羨公之妻 今犯之矣.

“제가 공의 아내를 선망하여 지금 그녀를 범했습니다.

公不見怒 感而美之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시니, 감동하여 찬미합니다.

誓今已後 見畵公之形容 不入其門矣.”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因此國人門帖處容之形 而僻邪進慶.

이 일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로운 일을 맞아들였다.


王旣還 乃卜靈鷲山東麓勝地置寺 曰 望海寺.

서울로 돌아오자 왕은 이내 영취산 동쪽 기슭에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절을 세우고 망해사라 이름했다.

亦名新房寺. 乃爲龍而置也.

혹은 이 절을 신방사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용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又幸鮑石亭 南山神現舞於御前.

왕이 또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 왕 앞에서 춤을 추었다.

左右不見 王獨見之.

좌우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고 왕만 홀로 그것을 보았다.

有人現舞於前. 王自作舞 以像示之.

사람(신)이 나타나 춤을 추므로 왕 자신도 이를 따라 춤을 추면서 그 형상을 나타내었다.

神之名 或曰祥審.

그 신의 이름은 혹 심상이라고 했으며,

故至今國人傳此舞 曰御舞祥審. 或曰御舞山神.

지금까지 신라 사람들은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이라고 한다.

或云 旣神出舞 審象其貌. 命工摹刻 以示後代. 故云象審.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신이 이미 나와서 춤을 추엇으므로 그 모습을 살펴 공인에게 명하여 새기게 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게 했기 때문에 상심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或云霜髥舞. 此乃以其形稱之.

혹은 상염무(霜髥舞-상염은 흰수염이다.)라고도 하니 그것은 그 형상에 따라 일컬은 것이다.

又幸於金剛嶺時 北岳神呈舞. 名玉刀鈴.

또 왕이 금강령에 갔을 때 북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를 옥도령이라 했으며,

又同禮殿宴時 地神出舞 名地伯級干.

또 동례전에서 잔치를 할 때에는 지신이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이 신의 이름을 지백급간이라 했다.

『語法集』云

어법집(語法集)에는 이렇게 말했다.

“于時 山神獻舞 唱歌云.

‘그 때 산신이 춤도 추고 노래부르기를,

『地理多都波』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 했는데,

都波等者 盖言以智理國者 知而多逃

도파 등이라고 한 것은 대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미리 사태를 알고 도망하는 이들이 많아

都邑將破云謂也.”

도읍이 장차 파괴됨을 말한다.’

乃地神山神知國將亡 故作舞以警之.

곧, 지신과 산신은 장차 나라가 멸망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춤을 추어 이를 경계한 것이나,

國人不悟 謂爲現瑞

신라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 하여

耽樂滋甚. 故國終亡.

술과 여색을 즐김이 더욱 심했으므로 나라가 마침내 망했다.


◇ 處容歌 해설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대

󰋬처용은 수호신의 성격을 상실한 神格으로서 특이한 존재. 疫神(질병을 일으키는 신)과의 대결에서 역신을 매몰차게 내몰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로 설정되는 방향으로 성격이 바뀜. 처용과 역신은 가면 사용하여 표출함.

처용가면은 『악학쉐범(樂學軌範)』권5. <鶴․蓮花臺․處容舞> 合設에 나옴.

󰋬辟邪進慶.

󰋬고려속요 <처용가> 45행중 34-36행에 향가 <처용가> 1-6구 삽입.

󰋬고려속요 <처용가> 37-38행에서는

“[大葉] 이런저긔 處容아비옷 보시면

熱病神이사 膾ㅅ가시로다”

라 하여 처용의 수호신적 성격이 강화됨.

[주]바로 아래 그림이 악학궤범의 처용 탈임











'고전문학 > 향가 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득오실(得烏失) 作  (0) 2008.08.27
려요 처용가  (0) 2008.08.24
혜성가 -융천사  (0) 2008.08.23
永才遇賊(영재우적), 삼국유사 피은(避隱)  (0) 2008.08.23
원가 -신충  (0) 2008.08.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