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말하였네
강은교·

나무가 말하였네
나의 이 껍질은 빗방울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햇빛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구름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안개의 휘젓는 팔에
어쩌다 닿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
(강은교·시인, 1945-)

 

http://www.joungul.co.kr/poem/poem1/%EC%9D%B8%EC%83%9D_61070.asp

 

<나무 시 모음> 강은교의 ´나무가 말하였네´ 외 -[좋은글]좋은시-인생시,사랑시,가족시,연인시,

<평가하기>  이 글을 좋은글로 추천합니다.      이 글은 추방시켜주세요.  제목     <나무 시 모음> 강은교의 ´나무가 말하였네´ 외 날짜 11-02-27 등록자     도토리 조회수 14072 작가 및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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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철학

조병화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조병화·시인, 1921-2003)



+ 나무

김종상

목불木佛이 되어
연화좌에 모셔진 것도

장승이 되어
동구 밖을 지켜선 것도

나무입니다
죽어서 다시 사는 나무.

책상이 되어
공부를 도와주는 것도

기둥이 되어
추녀를 떠받치는 것도

나무입니다
죽어서 큰일을 하는 나무
(김종상·시인, 1937-)


+ 소식
이성선
나무는 맑고 깨끗이 살아갑니다

그의 귀에 새벽 네 시의
달이 내려가 조용히
기댑니다

아무 다른 소식이 없어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나무들은
난 그대로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정현종·시인, 1939-)


+ 하늘을 만지는 나무
이기철

가지는 하늘 일이 궁금해
자꾸만 구름으로 올라가고
뿌리는 땅 일이 궁금해
자꾸만 흙 속으로 내려가고
잎들은 마을일이 궁금해
자꾸만 뒤란으로 떨어지고
꽃들은 옆집 일이 궁금해
자꾸만 담 너머로 내다보네
(이기철·시인, 1943-)


+ 의식의 나무
김규동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부러지지 않고 서서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서서
우리가 죽은 뒤에도
말없이 서서
하늘로 뻗어오르며
구름이 되고 빛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생각하는 나무여
아 부드러운 나무의 뼈.
(김규동·시인, 1925-)


+ 따뜻한 나무
홍일표

벚꽃나무 속
수만 와트의 빛을 만드는
발전소

겨우 내내 비축한
빛의 양식
튀밥처럼 튀겨내어
식은 가슴마다 뿌려주는
하늘거리는 봄의 손길

성자처럼
밥 퍼주는 공양주 보살처럼
(홍일표·시인, 1958-)


+ 지옥에
김지하
지옥에 청정한
나무 한 그루만
잎새 하나만 있다면
그것은 하늘
생명의 기억,
나무처럼 잎새처럼
팔을 벌리고
창세기를
창세기를
다시 시작하리라.
(김지하·시인, 1941-)


+ 나무의 정신
강경호

죽은 나무일지라도
천년을 사는 고사목처럼
나무는 눕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내 서재의 책들은
나무였을 적의 기억으로
제각기 이름 하나씩 갖고
책꽂이에 서 있다.

누렇게 변한 책 속에
압축된 누군가의 일생을
나는 좀처럼 갉아먹는다.
나무는 죽어서도
이처럼 사색을 한다.

숲이 무성한 내 서재에서는
오래 전의 바람소리, 새소리 들린다.
(강경호·시인)


+ 나무의 귀
정재필

우수, 경칩 지나면
나무가 귀를 연다
겨우내 빠알갛게 얼어붙었던 귀
쫑긋이 세워 열고 있다

온천천 둑길
늘어선 벚나무들
온천천 향해 가지 길게 뻗어
일제히 귀 기울이는 모습 볼 수 있다

산책길 노부부의 다정한 속삭임
자전거 타는 소년들의 해맑은 웃음
봄소식 재잘대는 냇물 소리
활짝 귀 열어 듣고 있는 모습 볼 수 있다

아직도 눈바람 들이치는 삼월 초순
작은 소리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다
당나귀 귀가 된 임금님의 귀처럼
점점 크게 열리는 나무의 귀 볼 수 있다
(정재필·시인, 1938-)


+ 나무에게
반기룡

호올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은가 보다

찬바람이 따귀를 후려갈겨도
너끈히 견딜만한가 보다

남 탓하지 않고 직립한 채
세상의 이모저모 관찰하며
자신의 면적과 넓이를
한 뼘 두 뼘 측량하고 있구나

봄이면
새순과 잎 돋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으로 치장하고

가을이면
붉디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며

겨울이면
훌러덩 벗은 채 동안거에 들어

세상을
하나 둘 셋 넷......

무량대수*만큼 세고 있구나
(반기룡·시인)
* 무량대수: 100을 80번 곱한 수


+ 조용한 이웃
황인숙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딱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늘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황인숙·시인, 1958-)


+ 나무를 심으며
도한호

나무는 평생을 한자리에서
철을 따라 옷을 갈아입고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준다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주며
짐승과 사람을 위해
과일과 열매를 맺고
피곤한 길손에게는 쉼터를 준다

나 또한 나무처럼 평생을
한 자리에 서 있었으나
내게 깃들인 것들에게
베푼 것이 없다

다만, 교훈 삼아 뜰에
나무를 가득 심었을 뿐
(도한호·시인, 1939-)


+ 나무 생각
안도현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 위에 점점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에 기를 쓰고 붙어 있는, 허리 뒤틀린
조선소나무를 보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멀리 보내는 밤나무 아래에서는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나도 관계를 맞고 싶다

나 외로운 날은 외변산 호랑가시나무 숲에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달라고,
엎드려 상처받고 싶다
(안도현·시인, 1961-)


+ 나무 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푸른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시인, 1947-)


+ 나무도 눈이 있다
황라현

나무에도 눈이 있는지
저마다 상대를 찌르지 않으려고
비켜가면서 가지를 뻗어나간다

쿵쿵거리며 내 땅이라고
내 자리라고 호통치고 찌르면
내 입에서도 비명 터져 나올 것이라는 것을
어찌 터득을 했는지

빈 공간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팔을 뻗는
다른 나무를 위한
배려와 질서가 눈부시도록 푸르다

하물며 나무도 그러하거늘
사람도 서로를 가시 돋친 말로 찌르고
행동으로 들이받는 무례함보다는

마음을 먼저 만져주고
더 많은 배려와 이해를 하면서
상대를 위해 온전히 마음을 쓴다면

눈부신 당신에게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 것이며
넘치고도 남을 만큼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황라현·시인)


+ 자라는 나무
김광규

실뿌리가 자라서
굵은 뿌리 되고
나무 밑동에서 조금씩
조금씩 줄기가 생겨 갈라지고
줄기에서 나뭇가지 퍼져나가
가지마다 수많은 이파리 돋아나고
마침내 하늘을 가리는
커다란 나무가 된다 보아라
땅으로부터 하늘을 향하여 나무는 위로
위로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위로
아래로 힘껏 온몸을 뻗으며
실처럼 가늘어지는 나뭇가지들
그 무수한 가지 끝마다
햇볕이 쌓이고
빗방울이 머물고
바람이 걸려 조금씩
조금씩 줄기를 기르고
밑동을 굵게 살찌우고
마침내 땅속으로 들어가
엄청나게 많은 뿌리로 갈라지며
넓고 깊게 퍼져나간다 보아라
하늘로부터 땅을 향하여 나무는 아래로
아래로 자라는 것이다
(김광규·시인, 1941-)


+ 나무의 신년사
정연복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한평생을 지내는 듯한
나의 태평스런 모습

그래요, 나는 뭔가를 이루려고
안달하지는 않습니다.

햇살과 별빛과 달빛
비와 이슬과 서리
바람과 새와 벌레들....

나의 몸에 와 닿는 어느 것이라도
묵묵히 받아들일 따름이지요.

무심(無心)!

이 보이지 않는 힘 하나에 기대어
나는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살아갑니다.

마치 죽은 듯이
속살 깊이

세월의 주름살 같은
나이테 하나씩 지으며

나는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정연복·시인, 1957-))


+ 聖 느티나무
나희덕

속이 검게 타버린 고목이지만
창녕 덕산리 느티나무는 올봄도 잎을 내었다

잔가지 끝으로 하늘을 밀어올리며 그는
한 그루 榕樹*처럼
제 아궁이에서 자꾸만 잎사귀를 꺼낸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
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내다니,
시커먼 아궁이 하나 들여놓고
그는 오래오래 제 살을 달여 내놓는다
낮의 새와 밤의 새가 다녀가고
다람쥐 일가가 세들어 사는,
구름 몇 점 별 몇 개 뛰어들기도 하는,
바람도 가만히 숨을 모으는 그 검은 아궁이에는
모든 빛이 모여 불타고 모든 빛이 나온다
까마귀 깃들었다 날아간 자리에
검은 울음 몇 가지가 뻗어 있기도 하다

발이 묶인 채 날아오르는 새처럼
덕산리 느티나무는 푸른 날개를 마악 펴들고 있다
(나희덕·시인, 1966-)

榕樹*(용수) - 가쥬말의 근연종을 포함한 총칭. 「녹는 나무」라고 하는 의미이지만, 다른 나무나 장애물의 사이를 꿰매고 성장해, 유연한 기근을 많이 늘리는 등해 유체와 같은 형상이 되는 일이 있기 때문. 중국 반얀, 말레이 반얀, 인도 월계수, 커튼 무화과 또는 가주마루로도 알려진, 무화과나무속  Ficus microcarpa는 무화과과 뽕나무과의 나무입니다. 원산지는 중국에서 열대 아시아, 캐롤라인 제도, 호주까지입니다.


+ 쓰러진 나무
나희덕

저 아카시아 나무는 쓰러진 채로 십 년을 견뎠다

몇 번은 쓰러지면서
잡목 숲에 돌아온 나는 이제
쓰러진 나무의 향기와
살아있는 나무의 향기를 함께 맡는다

쓰러진 아카시아를
제 몸으로 받아낸 떡갈나무,
사람이 사람을
그처럼 오래 껴안을 수 있으랴

잡목 숲이 아름다운 건
두 나무가 기대어 선 각도 때문이다
아카시아에게로 굽어져 간 곡선 때문이다

아카시아의 죽음과
떡갈나무의 삶이 함께 피워낸
저 연초록빛 소름,
십 년 전처럼 내 팔에도 소름이 돋는다
(나희덕·시인, 1966-)


+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이재무·시인, 1958-)


+ 나무처럼
법정

새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가 때가 오면 훨훨 벗어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

새들이 날아와 팔이나 품에 안겨도
그저 무심할 수 있고,
폭풍우가 휘몰아쳐 가지 하나쯤 꺾여도
끄떡없는 요지부동.
곁에서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어
나비와 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볼지라도
시샘할 줄 모르는 의연하고 담담한 나무.

한여름이면 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 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덕을 지닌 나무......
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복잡한 분별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법정·스님, 1932-201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추가분]

미시령 노을

ㅡ이성선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https://www.facebook.com/book.postit/photos/a.2340974079252462/2404061146277088/?type=3 

 

Post it note - 별 / 강은교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별 / 강은교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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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리 / 
- 바리떼기, 가장 일찍 버려진 자이며 가장 깊이 잊혀진 자의 노래
강은교

그리움을 놓치고 집으로 돌아오네
열려 있는 창은
지나가는 늙은 바람에게 시간을 묻고 있는데
오, 그림자 없는 가슴이여, 기억의 창고여
누구인가 지난 밤 꿈의 사슬을 풀어
저기 창밖에 걸고 있구나
꿈속에서 만난 이와
꿈속에서 만난 거리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얼굴과
그 얼굴의 미세한 떨림과
크고 깊던 언덕들과
깊고 넓던 어둠의 바다를,
어디선가 몰려오는 먹구름 사이로.

너무 멀리 왔는가.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움이 저 길 밖에 서 있는 한.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cocoje2016&logNo=221623707800 

 

(詩) 강은교...시 모음...

장용길 作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blog.naver.com

 

상처
ㅡ강은교

<모든 형식은 실험되었으며
모든 내용은 질타되었으며
모든 혁명은 후회하였네>

아름다운 시 하나 찾아
테그레톨을 먹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살색의 알약 둘
테그레톨은 나의 피로 가는 문입니다.
피의 문이 열립니다.
피톨들이 아우성치며 달려나와
테크레톨을 받아먹습니다.
피들은 이윽고 잠잠해져
파도칠 줄도 모르며
나의 뇌에 샛강처럼 흘러듭니다.

상처 하나가
샛강 옆 갈대밭에
동그마니 앉아 있습니다.

--모든 형식은 실험되었으며
--모든 내용은 질타되었으며
--모든 혁명은 후회하였네

의사 선생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테그레톨을 잊지 말라고.

 

[참고] 테그레톨, 뇌전증 신경통 등에 처방하는 의약품.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A11ABBBBB1615 

 

약학정보원

발열, 발진, 혈관염, 임파절 장애, 가림프종, 관절통, 백혈구감소증, 호산구증가증, 간성 비장비대, 간기능 검사치 이상 및 담관소멸증후군(간내 담관의 파괴 및 소실)이 다양한 조합으로 나타나

www.health.kr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1061

 

허무집(虛無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1971년 강은교의 ‘자전’ 연작시 및 초기 작품을 수록하여 간행한 시집.

 

[뉴스] 도로인가, 강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JbtGgSBLUpA 

 

https://www.youtube.com/watch?v=ubGXVqD45CY 

 

 

https://www.youtube.com/watch?v=O-a-IdQ1aqo 

 

 

 

나무만 남았네

ㅡ 박영춘



먹고 놀 줄만 알았지

일하다 쉬러 가는 줄은 모르는 나뭇잎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햇살과 즐거이 지내다 숨겼던 본색 드러내

이 색깔이 좋을까 저 색깔이 좋을까

울긋불긋 설레발치다

나비가 날아가듯 나무 곁을 떠나가네

꽃잎 이지러지고

이파리 날아가고

열매 저 살 곳 찾아가고

하나 없이 다 떠나가고

동그마니 나무만 남았네

일곱 남매 사방팔방으로

꿈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덩그러니 나무처럼 서 있는 어머니 아버지

마당 앞 텃밭 머리맡에 남매 허수아비처럼

나란히 서서

이제나저제나 오려나

마을 어귀로 눈길 내보내

일곱 남매 깔깔거림 시끌벅적 기다리네

 

 

시집간 할미꽃

ㅡ 박영춘



무덤 옆에 쪼그려 앉은 할민데

날 보고 예쁘다 하네

속만 볼그스름하지

겉은 흰 머리칼투성인데

날 보고 꽃이라 하네

겉은 젊어 보이지만

속은 썩어문드러졌는데

날 보고 아리땁다 하네

허리 고부라진 고달픔

땅에 닿도록 서러워도

울지 못하는 사연 많은 꽃

금방이라도 울음보 터질 것 같은

슬픈 추억 부둥켜안고

어렵사리 체머리만 흔드는 할미꽃

어느 날 야생화를 애호하는 노신사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더니만

저희 집에 가서 살자 덥석 보쌈 싸네

[운영자 생각]

사실에 바탕하면 시 제목은 <보쌈당한 할미꽃>이 맞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h55AH79ic0 

 

 

http://www.bzer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7503 

 

박영춘 시인, 『이파리가 말하다』 출간

배롱나무가 선홍빛 꽃망울을 막 터트리기 시작할 무렵, 박영춘 시인의 시집 『이파리가 말하다』이 도서출판 ‘이든북’에서 출간됐다.‘모든 것이 작아지기만 하고, 좁아지기만 하고,무능력

www.bzeronews.com

 

·시집

『지푸라기를 잡고서』

『들소의 노래』

패랭이꽃』

『아스팔트 위에 핀 꽃』

『아지랑이 고개 너머 저만치』

『들꽃 향기』

『석류의 진실 붉은 절규』



·산문집

『 마음 나들이 생각 나들이』



·편저

『 서산시 새마을 운동사』 『 서산간척지 A. B지구 어제와 오늘』 등



·공저

『 한강의 시심』 『제주도 서정시』 『시인의 정원』 『시인연대사화집』 등

출처 : 불교공뉴스(http://www.bzeronews.com)

 

 

 꽃밭의 독백 -- 사소단장(娑蘇斷章) 

서정주(1915~2000)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출처 : 자유일보(https://www.jayupress.com)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1359

 

박혁거세신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이때에 모두 높은 데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417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거기를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 또는 푸른 빛 큰 알이라고도 한다.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고도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東泉) 동천사(東泉寺)는 사뇌벌(詞腦野) 북쪽에 있다.에서 목욕을 시키매 몸에는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조리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빛났다.
따라서 이름을 혁거세왕 아마도 향언(鄕言)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광명으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설명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는 서술성모(西述聖母) 418가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의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찬미하는 글에 ‘어진 인물을 배어 나라를 창건하라.’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는 계룡(鷄龍)이 상서(祥瑞)를 나타내어 알영(閼英)을 낳았으니, 또한 서술성모의 현신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왕위의 칭호는 거슬한(居瑟邯) 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처음 입을 열 때에 자신을 일컬어 말하기를 알지거서간(閼智居西干)이 크게 일어난다 하였으므로, 그의 말에 따라 이렇게 불렀으니 이로부터 임금(王者)의 존칭으로 되었다.
이라 하니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하여 말하기를,
“이제 천자가 이미 이 땅에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여군(女君)을 찾아서 배필을 정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註 417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신화와 관련된 우물로,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비정된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시조혁거세거서간조와 ≪삼국유사≫ 권1 기이1 신라시조혁거세왕조에 나정과 관련된 탄생신화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註 418서술성모에 관한 설화는 ≪삼국유사≫ 감통(感通) 선도성모수희불사조(仙桃聖母隨喜佛事條)를 참조할 수 있다

(≪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743

 

사소(娑蘇)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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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선도산신모, 선도성모라고 불리는 전설 속의 주인공.

이칭 :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선도성모(仙桃聖母)

삼국시대 신라의 선도산신모, 선도성모라고 불리는 전설 속의 주인공.
내용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선도성모(仙桃聖母)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 황실의 딸로,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머물렀는데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솔개의 발에 편지를 부쳐 보내 이르기를,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였다.

이에 솔개를 놓아 보내자 선도산으로 날아가 멈추므로 그 곳에 집을 짓고 살아 지선(地仙)이 되었다. 오랫동안 이 산에 웅거하면서 나라를 지켰는데 이상하고 신령스러운 일이 많았다. 그녀가 처음 진한(辰韓)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으니 반드시 혁거세(赫居世)와 알영(閼英)을 낳았을 것이다.

또 일찍이 제천(諸天) 선녀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붉은 빛으로 물들여 조복(朝服)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니 나라 사람들은 이 때문에 비로소 신비스러운 영검을 알게 되었다. 진평왕 때는 안흥사(安興寺)의 지혜(智惠)라는 비구니가 새로 불전(佛殿)을 수리하려 했으나 힘이 모자랐는데, 어느 날 꿈에 사소가 나타나 도와주었다.

또, 매 사냥을 좋아하는 경명왕이 선도산에 올라가서 매를 잃어 버렸다가 사소의 덕으로 찾게 되자 그녀를 대왕(大王)으로 봉작하였다. 한편,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이 일찍이 사신으로 중국 송나라에 가서 우신관(佑神館)에 나갔더니 한 당에 사소의 상이 모셔져 있음을 보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치 가야 수로왕의 비 허왕후(許王后)가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라고 한 것과 비슷한데, 이는 아마도 고대 우리 민족이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 온 것과 관련된 듯하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661

 

선도산성모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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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서산 선도산성모가 불사(佛事)를 도와준 감응(感應)의 이적에 관한 설화.

신이담(神異譚)에 속한다. 『삼국유사』 권5 감통편(感通篇)에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진평왕 때 안흥사(安興寺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었던 절)의 여승 지혜(智惠)가 불전(佛殿)을 수리하려 하였으나 힘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선도산의 성모가 나타나 불전 수리를 기특한 일이라고 하면서 “내 자리 밑에서 금 열 근을 꺼내 쓰라.”고 하였다. 다음날 지혜가 무리를 데리고 신사(神祠)의 자리 밑을 파 보니 황금 160냥이 나왔다. 이로써 불전 수리는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선도산성모는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로 이름을 사소(娑蘇)라 하였는데 일찍이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신라에 와 머물렀다. 아버지인 황제(皇帝)가 솔개(독수리) 발에 편지를 매어 딸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이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삼으라.”고 하였다.

사소가 그대로 하였더니 솔개가 선도산에 앉았으므로 사소는 그곳의 지선(地仙)이 되었다. 이로써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 하였다. 그 뒤 선도산성모는 오랫동안 이 산에 살면서 나라를 지켰는데 그 동안 신령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나 삼사(三祠)의 하나로 삼고 차례를 망제(望帝)의 위에 두었다.

신령스러운 일 중에는 신라 54대 경명왕이 매 사냥을 즐기다가 매를 잃고 선도산성모에게 기원하여 되찾은 일이 있으며, 또 다른 일로는 선도산성모가 처음 진한(辰韓)에 와서 아들을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신라 박혁거세왕과 알영(閼英)의 두 성인을 말함일 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계룡(鷄龍)이나 계림(鷄林) 등의 지명도 닭은 원래 서방(西方)에 속하므로 서악(西岳), 즉 선도산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김부식(金富軾)이 일찍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를 접대한 왕보(王黼)는 김부식에게 우신관(佑神館)에 모셔 놓은 여신상을 가리키며 “이 상은 귀국의 신인데 누구인지 알겠는가?”고 물었다. 김부식이 대답하기를 “옛날 중국 황실의 딸이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 아들을 낳아 해동(海東)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여인은 지선(地仙)이 되어 선도산에 있는데 이는 그녀의 상이다.”고 대답하였다.

한편, 『삼국유사』에서 일연(一然)은 다음과 같은 찬시를 지었다.

來宅西鳶幾十霜

래택서연기십상, 서연산에 머문 지 몇 십 년이 지났는고, 

招呼帝子織霓裳

초호제자직예상, 천제녀(天帝女)를 불러 신선의 옷을 짰도다,

長生未必無生異

장생미필무생이, 장생술(長生術)도 영이함이 없지 않았는데,

故謁金仙作玉皇

고알금선작옥황, 부처를 뵙고 옥황(玉皇)이 되었도다

 

"來宅西鳶幾十霜 招呼帝子織霓裳 長生未必無生異 故謁金仙作玉皇.”

이 설화를 통해 고대의 산신 신앙(山神信仰)에 불교 사상과 신선 사상이 모순 없이 융합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85064 

 

신라 娑蘇(仙桃聖母) 神話의 변화와 國家祭祀

신라 상고기 始祖廟 제사 시기에는 여러 계통의 시조신화들이 발생하였는데, 특히 6촌장 天降 신화에 혁거세, 알영 신화가 연결된 모습의 건국신화가 중심이 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시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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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상고기 始祖廟 제사 시기에는 여러 계통의 시조신화들이 발생하였는데, 특히 6촌장 天降 신화에 혁거세, 알영 신화가 연결된 모습의 건국신화가 중심이 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시기 신라는 辰韓의 6개 집단이 결집하여 왕을 共立하여 건국되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娑蘇는 여러 시조신화들 중의 한 주인공이면서 織羅와 관련된 신성성을 지닌 존재로, 牟梁 지역에 위치한 西述(仙桃山)을 그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그 신화의 내용은 儒理王代 6部 王女들이 麻布를 짜던 행위, 阿達羅王代 迎日縣 지방의 都祈野에서 細烏女가 짠 細綃를 天祭의 제물로 사용한 점으로 보아, 이와 비슷한 여성신화로 존재했을 것이다.

신라 상고기 말에는 始祖母 娑蘇가 初生했다는 혁거세 신화의 현장인 奈乙에 神宮이 설치되어, 이를 중심으로 지방 제사권을 통합하였다. 이에 따라 이전에 6촌장 天降 신화에 혁거세, 알영 신화가 연결되었던 모습의 건국신화가 娑蘇(仙桃聖母) 신화를 매개로 하여 始祖母가 始祖를 낳았다는 건국신화로 재편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신라가 6부 연합 체제에 의한 국가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이행된 면모가 반영된 것이다.

三祀(大·中·小祀)의 위에 있는 최고의 국가제사로 天地神을 모신 신궁 제사에서 사소는 혁거세, 알영과 함께 配位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사소의 거처인 仙桃山의 위상도 中祀 五岳 중 西岳의 위상을 가졌다.

하지만 중고기 말 眞平王代 이후로는 불교의 융성으로 인해 娑蘇(仙桃聖母)가 불교와 융화되어 佛殿을 만드는데 財力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위상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한다.

신라 중대에는 중국식 宗廟制인 五廟制가 시행되면서 그 太祖로 少昊金天氏에서 연원한 金姓 始祖인 星漢이 설정되어, 박혁거세 중심 건국신화의 위상이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사소(선도성모)의 출자도 중국 帝室의 딸로 변형되었으며, 그 제사에서의 위상도 小祀에 속한 山神으로 약화되었다.

도교와 융화되는 모습도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文武王을 낳은 文明皇后 文姬의 오줌 설화가 일어난 배경으로 仙桃山이 등장하고, 경명왕 때에는 선도산 神母가 西岳大王에 책봉되며, 고려 왕실의 신화에도 오줌 설화 요소가 차용되는 등 그 신화적인 신성성은 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문무왕이 왕위에 오르다 ( 661년 (음) )

문무왕(文武王)註 001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註 002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註 003로,
 
문명왕후(文明王后): 각간 서현(舒玄)의 딸이며, 김유신(金庾信)의 여동생이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태종춘추공조)에는 문명황후(文明皇后)로 표기하였고, 이름은 문희(文姬)라 하였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김유신조)에 따르면 어릴 때 이름[小名]은 아지(阿之)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王曆))에서는 이름이 훈제부인(訓帝夫人)이고, 어릴 때 이름[小名]이 문희(文熙)이며, 시호가 문명왕후라고 하였다. 태종무열왕과의 사이에서 문무왕이 되는 법민(法敏)을 비롯하여 인문(仁問), 문왕(文王), 노차(老且), 지경(智鏡), 개원(愷元) 등 다섯 아들을 낳았다. 첫째인 법민이 태자로 책봉될 때, 문명왕후 소생의 나머지 네 명에게도 이찬·각간 등 최고위 관등이 부여되었다고 전하나 그대로 믿기 어렵다.
 
소판(蘇判)註 004 김서현(金舒玄)註 005의 막내딸이며,
김유신(金庾信)註 006의 여동생이다.
그 언니註 007가 꿈 속에서 서형산(西兄山)註 008 정상에 올라 앉아서 오줌을 누니 온 나라에 두루 흘러넘쳤다.
 
 
깨어나 동생에게 꿈을 이야기하자, 동생이 장난으로 말하기를,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비단 치마를 주어 꿈 값을 치렀다.註 009 며칠 뒤,註 010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함께 축국(蹴鞠)註 011을 하다가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우니, 가서 옷고름을 꿰매도록 합시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함께 집으로 갔다. 〔김유신이〕 술상을 차리고 조용히 보희(寶姬)註 012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꿰매게 하였다.
언니가 일이 있어 나아가지 못하자,註 013 동생이 앞으로 나아가 바느질하여 꿰맸다. 옅은 화장에 가벼운 옷을 입었는데, 빛나는 아름다움이 환하게 비추었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바로 혼인을 청하고 혼례를 지냈다.註 014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이다. 왕비는 자의왕후(慈儀王后)註 015로서,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註 016의 딸이다. 법민은 외모가 뛰어났으며, 총명하여 지략이 많았다.
영휘(永徽) 초에 당나라에 갔을 때註 017 고종(高宗)註 018이 태부경(太府卿)註 019의 벼슬을 주었다. 태종(太宗) 원년(654)에 파진찬으로써 병부령(兵部令)註 020이 되었고, 얼마 뒤 태자(太子)에 봉해졌다. 현경(顯慶)註 021 5년(660)에 태종이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註 022과 함께 백제를 평정할 때, 법민이 종군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https://kydong77.tistory.com/21649

 

주희(朱熹),朱子十悔 & 武夷九曲歌/ 도연명, 桃花源記 & 歸去來辭

주희(朱熹), 朱子十悔 or 朱子十訓 不孝父母死後悔 (불효부모사후회)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 不親宗族疎後悔 (부친종족소후회) 종친들에게 친밀하밀 않으면 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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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istorylibrary.net/entry/%EC%A3%BC%ED%9D%AC%E6%9C%B1%E7%86%B9%E3%80%88%EB%AC%B4%EC%9D%B4%EA%B5%AC%EA%B3%A1%EA%B0%80%E6%AD%A6%E5%A4%B7%E4%B9%9D%E6%9B%B2%E6%AD%8C%E3%80%89

 

주희(朱熹)〈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주자대전(朱子大全)》 권9에 수록되었는데, 그 제목은 〈순희 갑진년 2월에 정사에서 한가로이 거처하다가 장난삼아 무이도가 10수를 지어 함께 놀러온 동지들에게 주고 한번 웃노라[淳熙甲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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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대전(朱子大全)》 권9에 수록되었는데, 그 제목은 〈순희 갑진년 2월에 정사에서 한가로이 거처하다가 장난삼아 무이도가 10수를 지어 함께 놀러온 동지들에게 주고 한번 웃노라[淳熙甲辰仲春 精舍閒居 戱作武夷櫂歌十首 呈諸同遊相與一笑]〉이다.

〈무이구곡가〉 로 줄여 일컫는다. 무이구곡은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에 일대인데, 주희는 1183년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고, 이듬해 이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무이구곡가〉 서(序) 1수1곡부터 9곡까지 각각 1수씩 모두 10 수로 되어 있다.

 

[1]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령, 무이산 산속에 신선이 살고 있고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류곡곡청, 산 아래 찬 냇물 굽이굽이 맑아라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그 속의 멋진 경치 아시고 싶거들랑       

棹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량삼성, 뱃노래 두어 가락 조용히 들어 보소       

 

[2]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첫째 구비 냇가에서 낚싯배에 올라타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가 맑은 시내에 잠겼어라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가 한번 끊어진 뒤로 소식이 없더니  

萬壑千巖鎖翠烟

만학천암쇄취연, 만학천봉을 푸른 안개가 잡아 가두었네   

 

[3]

二曲亭亭玉女峯

이곡정정옥녀봉, 둘째 굽이에 우뚝 서 있는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

삽화림수위수용, 꽃 꽂고 물 굽어보며 뉘 보라 화장했나   

道人不復荒臺夢

도인불부황대몽, 도인은 황대몽을 다시는 꾸지 아니하니  

興入前山翠幾重

흥입전산취기중, 흥겨운 것은 앞산의 첩첩한 푸르름이네  

 

해설)

3행 ‘道人不復荒臺夢’을 ‘道人不復陽臺夢(도인불부양대몽)’으로 쓰기도 한다.

황대몽(荒臺夢)은 꿈속에 무산(巫山)에서 신녀(神女)와 만나는 것을 말한다.

 

[4]

三曲君看架壑船

삼곡군간가학선, 셋째 굽이에서 그대 보았던 가학선은   

不知停棹幾何年

부지정도기하년, 노 젖지 않은 지 몇 해인지 모르겠소      

桑田海水今如許

상전해수금여허, 바다가 지금 이처럼 뽕밭이 되었으니     

泡沫風燈敢自憐

포말풍등감자련, 포말과 풍등 같은 인생 가련타 하리라    

 

해설)

1행 ‘架壑船(가학선)’은 架壑船棺(가학선관)으로 무이산 일대에서 행하던 시신을 배에 담아 바위 벼랑에 매달아 장사지내던 풍습을 이른다.

 

[5]

四曲東西兩石巖

사곡동서량석암, 넷째 굽이 동서로 마주선 두 바위산에    

巖花垂露碧㲯毿

암화수노벽모삼, 꽃은 이슬 맺혀 바위는 푸른 모포로다    

金鷄叫罷無人見

금계규파무인견, 새벽닭 울었건만 인적은 보이지 않고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빈 산에 뜬 둥근달이 못에도 그득하오     

 

[6]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 다섯째 굽이 산 높고 운무 두터워     

長時烟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언제나 안개비가 평림에 자욱하네   

林間有客無人識     

림간유객무인식, 숲속의 나그네 알아보는 사람 없고       

欸乃聲中萬古心 

애내성중만고심, 뱃노래 소리에 만고의 마음 담겼네        

 

[7]

六曲蒼屛繞碧灣

륙곡창병요벽만, 여섯째 푸른 물굽이 푸른 병풍 둘러쳤고  

茅茨終日掩柴關

모자종일엄시관, 초가집은 하루 종일 사립문이 닫혔도다   

客來倚棹巖花落

객래의도암화락, 객이 와 배를 띄우니 산꽃만 떨어질 뿐    

猿鳥不驚春意閑

원조불경춘의한, 원숭이 새 놀라지 않고 봄기운 고요하네  

 

[8]

七曲移船上碧灘

칠곡이선상벽탄, 일곱째 굽이에서 배 몰아 벽탄에 가서    

隱屛仙掌更回看

은병선장갱회간, 대은병이며 선장봉을 다시금 돌아보네    

却憐昨夜峯頭雨

각련작야봉두우, 어여뻐라 지난밤 산꼭대기에 뿌린 비여   

添得飛泉幾度寒

첨득비천기도한, 불어난 비천의 물 그 얼마나 차가울까     

 

해설)

대은병(大隱屛)은 오곡에 있는 봉우리로 무이정사(武夷精舍)가 그 아래에 있었고,

선장봉(仙掌峯)은 육곡에 있는 봉우리이다.

 

[9]

八曲風烟勢欲開

팔곡풍연세욕개, 팔곡에 바람 불어 연무가 걷히려하고      

鼓樓巖下水縈迴

고루암하수영회, 고루암 아래로는 물이 소용돌이치네       

莫言此處無佳景

막언차처무가경, 이곳에 멋진 경치 없다고 하지 마오       

自是遊人不上來

자시유인不상래, 단지 유람객이 올라오지 않아서라오       

 

[10]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이 끝나려하니 눈앞이 탁 트이고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비이슬 젖은 뽕밭 삼밭 평천에 보인다     

漁郎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젊은 어부 다시 무릉도원 길을 찾지만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 말고 인간 세상에 별천지* 있을까     

* 위의 '별천지'는 '이상적 세계'의 의미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뜻한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46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70907.010220742500001 

 

[九曲기행 .3] 주자의 무이구곡가...산수 풍광 읊었나, 도학사상 담았나…무이구곡가 해석 분분

조선에 찬란한 구곡문화를 낳게 한 무이도가(武夷櫂歌), 즉 무이구곡가는 어떤 내용일까. 주자가 1184년 무이산 계곡에 구곡을 정하고 지은 무이도가는 무이산의 개황을 읊은 서시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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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찬란한 구곡문화를 낳게 한 무이도가(武夷櫂歌), 즉 무이구곡가는 어떤 내용일까.

주자가 1184년 무이산 계곡에 구곡을 정하고 지은 무이도가는 무이산의 개황을 읊은 서시로부터 시작된다.

무이산 위에는 신선의 정령이 어려 있고

산 아래 찬 물결은 굽이굽이 맑도다

그 가운데 기막힌 절경을 알고자 하는가

뱃노래(櫂歌) 두세 가락 한가로이 들어보게’.

무이산 천유봉에는 도교의 천유각(天游閣)이 있고, 천유각에는 800여세를 살았다는 신선 팽조와 두 아들 팽무·팽이를 모시고 있다. 신선의 정령이 어려 있다는 것은 이를 말한다.

무이산 개황 담은 序詩로 시작
일곡∼구곡 절경 노래 총 10수
성리학 탐구·토론 조선 선비들
朱子 뜻 이해 열쇠로 받아들여


무이구곡을 노래한 무이도가

‘1곡 시냇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만정봉 그림자 맑은 물에 잠겨 있네

무지개 다리 한번 끊어진 뒤 소식이 없고

골짜기와 바위 봉우리마다 푸르스름한 안개 자욱하네’

1곡 시다. 일곡 북쪽에는 대왕봉(527m)이 솟아있고 그 왼쪽에 만정봉(512m)이 있다. 만정봉은 도가(道家)의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2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아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한 단장인가

도인은 더 이상 양대(陽臺)의 운우(雲雨)를 꿈꾸지 않으리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2곡에는 유명한 옥녀봉(玉女峯)이 있다.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봉우리다. 정상에는 나무가 자라고 절벽은 마치 옥석을 잘라 조각한 모습이다.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고 우연히 대왕(大王)과 만나 좋아하게 되어 돌아오지 않자,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옥녀와 대왕이 돌로 변해 계곡의 양쪽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삼곡에서 그대는 가학선을 보았는가

노 젓기 그친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뽕밭이 바다로 바뀐 것이 언제인가

물거품 같고 바람 앞의 등불같이 가련한 인생이여’

3곡에는 높고 험준한 암벽의 소장봉(小藏峯)이 있다. 소장봉에는 아득한 절벽 위 틈 사이에 배모양의 목제 관이 있다. 홍교판(虹橋板)과 가학선관(架壑船棺)이다. 가학선관은 골짜기에 설치한 배라는 뜻으로 배 모양의 관(棺)을 말하고, 홍교판은 무지개 다리판이니 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목판이다. 풍장(風葬)을 하던 고대 남방의 소수민족 관인 가학선관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있다.

‘4곡의 동서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산

바위 틈 꽃은 이슬 머금고 푸르게 드리웠네

금계(金鷄) 울어 새벽을 알려도 보이는 이 없고

공산엔 달빛 가득하고 와룡담엔 물결만 넘실대네’

4곡으로 돌아들면 거대한 바위산인 대장봉(407m)과 선조대(仙釣臺)가 마주하고 있다. 대장봉(大藏峯)은 도가(道家)의 대장경을 숨겨둔 곳이라고 한다.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臥龍潭)은 구곡 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선조대는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라 한다. 강태공도 이곳에 와서 낚시를 했다고 한다. 대장봉에는 금닭이 있었다는 동굴 금계동(金鷄洞)이 있는데, 이곳에도 홍교판과 선관이 있다.

‘5곡은 산 높고 구름이 깊어

언제나 안개비에 평림(平林)은 어둑하네

숲 속의 나그네 알아보는 이 없고

사공의 노랫가락에 만고의 수심 깊어지네’

5곡은 주자가 무이정사를 세워 살던 곳이다. 무이구곡의 중심으로 계곡 북쪽에는 은병봉(隱屛峯)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높은 산은 은병봉을 가리키고,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을 말한다.

‘6곡의 바위 병풍 푸른 물굽이 휘감아 돌아가고

초가집 사립문은 온종일 닫혀 있네

나그네 와서 배를 띄워 바위 꽃이 떨어져도

원숭이와 새들 놀라지 않고 봄 정취 한가롭네’

9곡은 6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쇄포암을 바라보며 휘감아 돈다. 쇄포암은 수백개의 물줄기 자국이 파여 있어 장관을 이루는데, 마치 큰 천을 햇볕에 말리는 듯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신선의 손바닥 같다고 해서 선장암(仙掌巖)이라고도 한다.

‘7곡이라 배를 저어 푸른 여울 거스르며

은병봉과 선장봉을 다시금 돌아본다

어여쁘다 어젯밤 봉우리에 비가 내려

폭포수에 더해지니 얼마나 차가울까’

7곡에는 달공탄(獺控灘)이라는 여울이 있다. 달공탄에서 아래쪽으로 돌아보면 거대한 선장암과 은병봉이 보인다.

‘8곡에 바람 불어 안개 개려 하고

고루암 아래에는 물결이 굽이쳐 돌아가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여기부터 유람객들이 올라오지 않는구나’

8곡을 돌아 구곡을 향하면 높이 솟은 고루암이 막아선다.

‘9곡에 다다르니 눈앞이 탁 트이고

비와 이슬 내리는 쌍마(桑麻) 밭 평천이 보이네

뱃사공은 다시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 말고 인간 세상에 별천지가 있으랴’

구곡을 지나면 평천(平川)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지나온 구곡까지와는 달리 하천은 평평하게 흐르고, 주위에는 뽕나무, 대마 등이 자라는 들판이 있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무이도가 해석

조선의 구곡문화는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이 무이도가(무이구곡가)를 접하면서 시작된다. 주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9곡을 설정하고 무이도가를 읊었을지 모르나,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이후 본격적으로 학문적 탐구와 토론의 대상이 된 16세기에 이르면 퇴계 이황과 같은 이들에 의해 무이도가는 주자의 문학과 사유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의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인들과는 달리 무이도가를 특별한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이해인가를 따지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9곡문화의 핵심인 무이도가 해석은 도학적으로 인식하여 입도차제(入道次第: 유교 도학의 경지로 진입하는 차례)를 읊은 재도시(載道詩) 또는 조도시(造道詩)라고 보는 관점(하서 김인후), 서정적으로 인식하여 인물기흥(因物起興: 일정한 사물을 통하여 시인이 흥취를 일으키는 것)을 읊은 서경시(敍景詩) 또는 서정시라고 보는 관점(고봉 기대승)으로 나뉘었다.

한편 퇴계 이황은 재도시로 해석하면서도 서경시로 해석하는 절충적 입장을 취했다. 퇴계는 주자가 ‘경치를 묘사하면서 그 속에 탁흥우의(托興寓意)했다’는 절충적인 결론을 내렸다. 산수의 흥취에 의탁하여 무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는 말이 ‘탁흥우의’이다.

이처럼 무이도가의 수용에서 드러나는 사림파 지식인들의 의식 차이는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면서 구곡문화는 더욱 다양화하고 심화되게 되었다.

‘무이도가는 도에 들어가는 순서를 읊은 시’라는 인식은 조선 후기에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인식을 더욱 확산시킨 것은 ‘도가시주(櫂歌詩註)’였다. 지금 전하는 책이 아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여러 문헌에 부분적으로 전하는 내용을 보면 무이도가 10수를 입도차제에 맞게 정밀하게 해석하며 비평한 책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 후기 많은 선비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이도가를 인식하고 감상했다.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조도시라는 도학적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다.

무이도가 인식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구곡이다. 구곡을 도의 극처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무이도가 인식을 결정해 준다. 구곡은 경치가 빼어나지 않고 일상의 경관이 전개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평상의 공간을 극처로 인식하는 것은 유람적 접근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더욱 빼어난 경치를 찾아 나아가는 것이 당연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이곳이 바로 극처가 되는 것이다. 유자(儒者), 즉 선비의 도는 일상의 인륜에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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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주희(朱熹, 1130년 10월 18일 ~ 1200년 4월 23일)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 주문공(朱文公)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이라는 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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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이기론(理氣論)

이기론은 우주 만물의 구조를 (理)와 (氣)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이기론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이와 기가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서 이는 만물을 낳는 근본 원리를 말하며, 기는 만물을 생성하는 재료를 말한다. 주자는 모든 사물이 이와 기의 결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理氣不相離], 동시에 원리로서의 이와 재료로서의 기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이와 기는 서로 뒤섞일 수 없다[理氣不相雜]고 보았다. 주자는 모든 사물은 이(理)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의 측면에서는 똑같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은 기(氣)의 맑고 흐림 또는 바르고 치우침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1]

심성론(心性論)[편집]

심성론은 이기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적 구조와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심성론에 따르면 심(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괄한다[心統性情]. 성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이치(理)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눌 수 있다. 본연지성은 기질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순선한 것이고,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이 기질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사람의 본연지성은 동일하지만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기질지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정은 성이 외부의 사물에 감응(感應)하여 나타난 감정으로 사단과 칠정을 말한다.[2]

거경궁리론(居敬窮理論)

거경궁리론은 도덕을 실천하여 인격적으로 완성된 군자 성인이 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다. 주자에 따르면 순선한 본연지성이 온전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본연지성이 기질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수양이 필요하다. 그는 이를 위해 먼저 인간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참모습을 밝게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格物致知]. 그래서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먼저 알아야 그에 맞는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강조하였다. 주자는 이와 더불어 선한 본성을 보존하고 함양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살펴 경계해야 한다[存養省察]고 주장하였다. 주자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간은 천리를 보존하고 이기적 욕망을 제거하여[存天理去人欲]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다.[3]

경세론(經世論)

경세론은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이론이다. 주자는 자신을 먼저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원리에 근거하여, 수양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닦는데 그치지 않고 제도·법률·생산 등과 같은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까지도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강조하였다.[4]

이기이원론과 태극도설

우주만물을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의 기(氣)로서 구성되어있다고 보고, 인간의 본성은 선한 이가 발하여 나타나는 것이나 불순한 기로 인하여 악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와 기로 이뤄진 우주와 만물이 생성되고 움직이는 운동법칙, 원리로서 태극(太極)을 제시한다.

이상의 개념들을 통해 주자는 주염계 태극도설, 정이의 성즉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주자는 동시에 젊은 시절 탐독했던 불교 도교의 사상에서 받았던 영향에서 착안하여 유학의 사상적 이학적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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