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u0RPZ62kH38&t=479s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imcj0070&logNo=60212083349 

 

징심록(澄心錄)에 관하여,,

징심록(澄心錄)은 신라 18대 실성왕(재위402~417) 때 박제상(朴堤上, 363년~418년 추정) 선생이 저술한 고...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ilvino111&logNo=221336533280

 

351.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 원문과 해설 (1 - 3 )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8.6.3 교정과 정서: 운영자 저작권 문제가 있어 원본 파...

blog.naver.com

제1장(第一章)

[원문]

澄心錄者 雲窩朴公家世傳之書

징심록자 운와박공가세전지서

其鼻祖觀雪堂堤上公之所述也

기비조관설당제상공지소술야

後代宗嗣諸人 復寫相傳千有餘年 其珍重如何哉

후대종사제인 복사상전천유여년 기진중여하재

噫 吾家先世卜好公 曾受大恩於公而千載之下

희 오가선세복호공 증수대은어공이천재지하

又作隣於公裔之家 來往如一家 接遇如同族

우작린어공예지가 래왕여일가 접우여동족

余又受業于高門而當 此世路之末由

여우수업우고문이당 차세로지말유

與公之裔更結歲寒之盟 浪跡於千里之外 此天耶命耶

여공지예갱결세한지맹 랑적어천리지외차천야명야

想緬古今 展懷惻惻

상면고금 전회측측

今讀此書 忽然在於千載之上

금독차서 홀연재어천재지상

如謁於公而尤不勝感慕於吾 家先世之羅代也.

여알어공이우不승감모어오 가선세지라대야.

 

제2장(第二章)

[원문]

第二章

錄中記事 遠涉于太古

록중기사 원섭우태고

廣于於宇宙 其浩汗固不可言

광우어우주 기호한고불가언

而我東方創都之史 夏土變異之記 誠使人肅然也

이아동방창도지사 하토변이지기 성사인숙연야

通篇奧義 似仙道佛法而非

통편오의 사선도불법이비

當時新羅 姑無仙儒佛之浸來則 此根據於古史者明也

당시신라 고무선유불지침래칙 차근거어고사자명야

其神市來往之說 有戶氏傳敎之事

기신시내왕지설 유호씨전교지사

眞則古今天下之諸法 皆出於斯而轉訛變異者矣

진칙고금천하지제법 개출어사이전와변이자의

然則是書之不同 不能容於儒佛之世

연칙시서지불동 불능용어유불지세

又受斥於帝王之境者 固當然也

우수척어제왕지경자 고당연야

錄中有曰此書自有廣明之時云 其時何時耶.

록중유왈차서자유광명지시운 기시하시야.

 

第三章

謹案諸史 會通詳考則當時之堤上公

근안제사 회통상고칙당시지제상공

世稱之爲硏理之家 其於申自天公之言尤明也

세칭지위연리지가 기어신자천공지언우명야

赫居世王曾孫 始有兄弟 時人曰 第一不及於第二之神聖云

혁거세왕증손 시유형제 시인왈 제일불급어제이지신성운

則其第二者卽婆娑王而公之五代祖也

칙기제이자즉파사왕이공지오대조야

其所謂神聖者 非但氣品之謂而亦指其理道之如何矣

기소위신성자 비단기품지위이역지기리도지여하의

公之祖阿道公 享年百二十四歲

공지조아도공 향년백이십사세

考勿品公 享年百十七歲

고물품공 향년백십칠세

後代亦多百歲之人則公家傳統 必若有特理

후대역다백세지인칙공가전통 필약유특리

此或非昔世天雄道之傳守者也

차혹비석세천웅도지전수자야

 

公之澄心軒詩曰

공지징심헌시왈

 

煙景超超望欲流

연경초초망욕류

客心搖落却如秋

객심요락각여추

世間堅白悠悠事

세간견백유유사

坐對澄江莫說愁

좌대징강막설수

於斯 確然知公之抱道之一端也

어사 확연지공지포도지일단야

 

https://m.blog.naver.com/silvino111/221336537154

 

352.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 원문과 해설 (2 - 3)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8.6.3 교정과 정서: 운영자 저작권 문제가 있어 원본 파...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silvino111/221336538630

 

353.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 원문과 해설 (3 - 3)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8.6.3 교정과 정서: 운영자 저작권 문제가 있어 원본 파...

blog.naver.com

 

https://sinabrodym.tistory.com/1905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1장(第一章) 김시습이 징심록을 접하다

징심록 추기는 영해박씨 문중에 내려오던 징싱록 15지를 조선초 대학자 김시습이 영해박씨 집안 박효손으로 부터 전해 받고, 이를 읽은 소감을 기록한 글이다. 김시습(金時習)은 조선 초기의 학

sinabrodym.tistory.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709909

 

환국기 桓國紀

        최초의 고대광역국가 환국(桓國)   한민족(韓民族)이 선진민족으로 일찍...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728375

 

환단고기 桓檀古記 - 삼성기 三聖紀

          桓檀古記 삼성기 , 단군세기 , 북부여기 , 태백일사    &nb...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754583

 

환단고기 桓檀古記 - 북부여기 北夫餘紀

    북부여기 (휴애거사 범장 지음)           시조 단군 해모수 재위...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816021

 

환단고기 桓檀古記 -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한국본기)

태백일사 (일십당 이맥) 삼신오제본기 <<표훈천사>>에서 말하기를. 태시(태초)에 위 아래 사방...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860303

 

환단고기 桓檀古記 -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고 구 려 국 본기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오나니 해모수의 어머니의 고향 역시 그곳이다. <<...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860347

 

환단고기 桓檀古記 -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대 진 국 본기 <<조대기>>에서 말한다. 개화 27년 9월 21일 평양성 함락 때 진국장군 대중상은...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2860396

 

환단고기 桓檀古記 - 태백일사 (고려국 본기)

                 고 려 국 본기   태...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3506643

 

檀奇古史 - 단기고사 - 1편 前 檀君朝鮮(전 단군조선)

제1편 전 단군조선(前 檀君朝鮮) 大野勃 저 / 高東永 역     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3510311

 

檀奇古史 - 단기고사 - 2편 後 檀君朝鮮(후 단군조선)

제1세 솔나(率那) ―50년간 재위― 후단조(後檀朝) 제1세 단제(第一世檀帝) 솔나(率那)는 전단조 제23세 단...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3511083

 

檀奇古史 - 단기고사 - 3편 奇子朝鮮(기자조선)

    제3편 기자조선(奇子朝鮮) 제1세 서여(西余) ―61년간 재위― 기자(奇子)의 성(姓)은 혼(桓)...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3557838

 

신 채 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 이만열 1. 신채호는 누구인가?   최근 백여년의 역사를 돌이켜 볼때, 우리...

blog.naver.com

 

https://m.blog.naver.com/kimcj0070/60213684790

 

조선상고사 -신 채호

  제 1 편 총론  제1장. 역사의 정의(正義)와 조선사의 범위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

blog.naver.com

 

 

 

https://kydong77.tistory.com/17985

 

묘족의 춤과 노래 1

귀양[貴陽, 현지음으로는 구이양)*⑴의 여행코스에 묘족마을을 찾는다는 유혹에 빠져 귀양 현지 사흘간의 패키지 여행에 나섰다.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서로 사맞지 아니하므로 훈민정음 창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18003

 

묘족의 춤과 노래 2

귀양관광의 첫꼭지에서 아래 포스트를 탑재한 바 있다. 묘족의 춤과 노래 2018.09.25 오늘은 귀양관광의 기념으로 같은 제목의 미탑재분 포스트를 올리고자 한다. 운영자는 불행히도 천사를 만나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vt46ORt4oQ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1101142123045#c2b

 

“중국 먀오족 뿌리는 고구려 유민”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로 끌려갔던 고구려 유민이 중국 소수민족 먀오(苗)족의 뿌리라는 주장...

m.khan.co.kr

 

https://kydong77.tistory.com/17995

 

귀주의 묘족들

양연 - 토가족 신민요 https://www.youtube.com/watch?v=PBOrD9UIo6Q 阿幼朵 (AYouDuo) - 苗岭迎客歌 https://www.youtube.com/watch?v=SmxetAHrEZY 雷艳 Lei Yan - 《天下苗家》 https://www.youtube.com/watch?v=MfFDy128rEA&list=RDSmxetAHrEZY

kydong77.tistory.com

 

중국 소수민족 묘족 노래 "해가 질 때 까지 함께 노래를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smVuTxl_D_8 

무예와 춤과 노래동이족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이다. 방탄소년단도 조상덕임을 기억할까? 

 

阿幼朵 (AYouDuo) - 苗岭迎客歌

https://www.youtube.com/watch?v=SmxetAHrEZY

 

雷艳 Lei Yan - 《天下苗家》

https://www.youtube.com/watch?v=MfFDy128rEA&list=RDSmxetAHrEZY

 

마오족의 은관장식

https://www.youtube.com/watch?v=TTNu2LYShN0

https://www.youtube.com/watch?v=9BMPVRsKo6Y&index=20&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강상원 - 묘족(苗族)의 역사적 해석

https://www.youtube.com/watch?v=sJRGsr_VkFE&index=35&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강상원 -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 산스크리트어(1부)

https://www.youtube.com/watch?v=o6E_7tXljGA

 

강상원 -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 산스크리트어(2부)

https://www.youtube.com/watch?v=v6qtxdgVebs&t=64s

 

강상원 -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 산스크리트어(3부)

https://www.youtube.com/watch?v=PXMww69KNAE&t=429s

 

강상원 -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 산스크리트어(4부)

https://www.youtube.com/watch?v=z_V7kwAoMdI

강상원 -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 산스크리트어(14부)

https://www.youtube.com/watch?v=JywJu-EsMmo

[에고} 강상원님의 반야심경 새로운 해석은 뒷꼭지에서 총정리하겠습니다.

 

1부 먀오족의 땅, 구이저우_#001

https://www.youtube.com/watch?v=_CE-XkhuGP4&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1부 먀오족의 땅, 구이저우_#002

https://www.youtube.com/watch?

v=NtqhTe1YrQQ&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index=2

 

1부 먀오족의 땅, 구이저우_#003

https://www.youtube.com/watch?v=tktvwuX8VBs&index=4&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중국소수민족기행 2부 자연의 노래, 둥족과 창쟈오먀오족_#001

1부 윈난의 봄, 먀오족의 새해맞이

https://www.youtube.com/watch?v=3H7tIRsSSyE&index=5&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윈난소수민족기행1부-윈난의봄,먀오족의새해맞이_#001

https://www.youtube.com/watch?v=5ai3jMq1HpA&index=9&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1부-윈난의봄,먀오족의새해맞이_#002

https://www.youtube.com/watch?v=NsbZ1GHbneM&index=11&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중국소수민족기행 2부 자연의 노래,

둥족과 창쟈오먀오족_#001

https://www.youtube.com/watch?v=iY5LTFyqYww&index=7&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2부 자연의 노래, 둥족과 창쟈오먀오족_#001

https://www.youtube.com/watch?v=iY5LTFyqYww&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index=7

 

2부 자연의 노래, 둥족과 창쟈오먀오족_#002

https://www.youtube.com/watch?v=ZKK4vwAkqQs&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index=8

 

2부 자연의 노래, 둥족과 창쟈오먀오족_#003

https://www.youtube.com/watch?v=KVEW4TYPX_s&index=14&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미지의 땅, 중국 구이저우, 4부_#001

https://www.youtube.com/watch?v=KK8ewlAy-Dc&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index=16

 

미지의 땅, 중국 구이저우, 4부_#003

https://www.youtube.com/watch?v=HhYD6bSOp6c&index=17&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미지의 땅, 중국 구이저우, 4부_#004

https://www.youtube.com/watch?v=iH3iCNDPOFA&index=18&list=PLl_35AfI8rTVEfuPJ08GRaWDT4_5ttWkI

 

 

https://kydong77.tistory.com/17986

 

만봉림(萬峯林)

만봉림(萬峯林)은 만 개의 산봉우리가 숲처럼 널려 있다는 뜻으로 풍경구의 그 풍치가 장관을 이루었다. 서툴고 짧은 동영상이지만 운영자가 찍은 것을 올려 본다. 마을 우물 옆에서는 흐름한

kydong77.tistory.com

만복림 아래 마을은 장수촌으로 유명한데, 정부 지원금을 받는 곳이어서 그곳 주민이 아니면 거주권이 없단다. 우리 일행이 들렀을 땐, 마침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였다.

 

https://kydong77.tistory.com/17987

 

만봉호 선상 유람

만봉호/ 선상유람 https://www.youtube.com/watch?v=q1pnlzcedcU 어제 탑재한 만복림은 서부지역이고, 동쪽 지역의 만복림 가운데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하여 수심이 100m에 달하여 하루 종일 낚시줄울 담궈도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17996

 

묘족의 은관 장식 - 예술혼의 독장성

이번 추석 무렵 귀양여행 때는 묘족과 부이족이 사는 만봉림 아래 장수마을은 나락이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이거나 이미 벼를 수확한 자리만 남았었지만 아래 첫 번째 동영상 묘족 노래에 나오

kydong77.tistory.com

 

한강 주교 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국역 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難報經:국역문)

https://www.youtube.com/watch?v=3Br_ha0Sbyw&t=1456s 

 

 

http://kydong77.tistory.com/17968

 

부모은중난보경 현대역/한문본 원문

<부모은중경>의 내용과 해석 <부모은중경> 제 1장 이 경을 설한 인연 제 2장 마른뼈의 가르침 제 3장 잉태했을 때의 고통 제 4장 낳으시고 기르신 은혜 / 열가지 부모의 은혜 제 5장 부모님 은혜를 잊어버..

kydong77.tistory.com

 

양주동님의 시 제목은 <어머니 마음>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LwK3bMcK0 

 

[정조의 지극한 효심] 화성 융릉

https://www.youtube.com/watch?v=7EPJRHhwP00 

 

 

https://www.youtube.com/watch?v=jGiUGfQBw5U 

 

 

 

화성능행도 이야기(8)

 

 

 

過舟橋 (과주교)

배다리1)를 건너며

ㅡ 정약용(1762-1836)

歲歲靑陽月, 
세세청양월, 해마다 이렇게 봄이 오면

鑾輿幸華城。
난여행화성. 군주께서 화성2)으로 거둥하시매,

船從秋後集, 
(선종추후집, 가을 지난 뒤에 배를 모아

橋向雪前成。
교향설전성. 눈 내리기 전에 다리를 만드나니,

鳥翼紅欄夾, 
조익홍란협, 새 날개처럼 붉은 난간 양쪽에 세우고

魚鱗白板橫
어린백판횡. 고기비늘처럼 널판자 가로로 까누나.

艙磯石不轉, 
창기석부전, 선창가 바위는 구르지 않아3)

千載識宸情。
천재지신정. 천년토록 우리 임금 마음 기억하리라.

[註] 배다리1)  화성2)  3)

1792년(정조 16) 1월 24일, 정조가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한강 배다리를 건널 때 수행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배다리의 제작 과정과 구조를 간단히 서술하고, 정조가 매년 봄 화성의 현륭원으로 참배하러 가는 효성을 예찬하였다. 정조는 1월 25일 현륭원에 참배하고, 1월 26일 환궁하였다.

1792년(정조 16) 1월 24일, 정약용 31세 때 지음.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467101 

 

정조대왕 능행차 사진으로 한 번 더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의 여섯 번째 정기사진전인 ‘왕의 행차 - 정조대왕 원행을 보다’ 展은 능행차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재조명하고자 지난 3월부터 정조의 능행차길인 서울

www.kgnews.co.kr

 

https://namu.wiki/w/%ED%99%94%EC%84%B1%ED%96%89%ED%96%89%EB%8F%84%20%EB%B3%91%ED%92%8D

1. 개요

華城行幸圖 屛風.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8첩 병풍.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430호이다.

2. 내용

수원능행도(水原陵行圖),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라고도 부른다.

정조가 돌아가신 부친인 사도세자의 회갑 잔치를 위하여 1795년(정조 19년) 윤 2월 9일부터 동월 17일까지 총 8일간 모친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수원화성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하며 그 과정에 있었던 주요 행사들을 원행을묘정리의궤와 그림을 통해 남기게 한 것이다.

그림을 그린 인물들은 최득현(崔得賢), 김득신(金得臣, 1754년 ~ 1822년), 이명규(李命奎), 장한종(張漢宗, 1768년 ~ 1815년), 윤석근(尹碩根), 허식(許寔, 1762년 ~ ?), 이인문(李寅文, 1745년 ~ 1821년) 등이다.

이 병풍은 1796년에 최종 완성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등의 여러 문적들과 함께 조선 정조의 화성 행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3. 구성

3.1.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3.2.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3.3.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3.4.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3.5.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3.6.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3.7.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3.8.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https://kydong77.tistory.com/21534

 

정약용, 過舟橋(배다리를 건너며)/ 용주사와 융건릉

https://kydong77.tistory.com/21494 단원 김홍도, 조선의 르네상스를 그리다/ 화성 룡주사 후불탱화 수원 룡주사 후불탱화 - 원근법, 명암법 https://www.youtube.com/watch?v=QSqVmXMtaDc https://www.youtube.com/watch?v=kR62AIG

kydong77.tistory.com

 

過舟橋 (과주교)

배다리1)를 건너며

ㅡ 정약용(1762-1836)

歲歲靑陽月, 
세세청양월, 해마다 이렇게 봄이 오면

鑾輿幸華城。
난여행화성. 군주께서 화성2)으로 거둥하시매,

船從秋後集, 
(선종추후집, 가을 지난 뒤에 배를 모아

橋向雪前成。
교향설전성. 눈 내리기 전에 다리를 만드나니,

鳥翼紅欄夾, 
조익홍란협, 새 날개처럼 붉은 난간 양쪽에 세우고

魚鱗白板橫
어린백판횡. 고기비늘처럼 널판자 가로로 까누나.

艙磯石不轉, 
창기석부전, 선창가 바위는 구르지 않아3)

千載識宸情。
천재지신정. 천년토록 우리 임금 마음 기억하리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3187

 

주교(舟橋)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https://m.cafe.daum.net/hanganghistorycommun/1z3K/93?listURI=%2Fhanganghistorycommun%2F1z3K

 

정조와 정약용 그리고 노량진 배다리

조선왕조실록에는 1795년 음력 2월9일 첫날 새벽 6시45분, 1779명의 일행을 거느리고 창덕궁을 떠난 정조가 노량진에 가설된 배다리를 건너 노량행궁에서 점심을 먹고 11시30분 출발, 장승배기를 거

m.cafe.daum.net

 

 

https://www.youtube.com/watch?v=Z5fK9DLdJH8 

 

 

https://www.youtube.com/watch?v=LlO7MqHofYA 

 

 

https://www.youtube.com/watch?v=QFep5-fgTLE 

 

 

https://www.youtube.com/watch?v=GIm2_8mcTkA 

 

 

https://www.youtube.com/watch?v=29QfJN9VBdA 

 

 

https://www.youtube.com/watch?v=WqcFrI5QkE4&t=121s 

시각바 41:40 화성에서 혜경궁홍씨 회갑연. 세자나이 15세가 되면 양위하고 화성에 와 모친을 모시고 살겠다고 약속했으나 세자 나이10살 때 귀밑머리 아래의 종기로 사망함.

 

[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BJ_H0297_T_001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 御製花山龍珠寺 奉佛祈福偈 ABC_BJ_H0297_T_001 URL복사 통합뷰어 012_0231_c_01L[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012_0231_c_02L1)御製花山龍珠寺 012_0231

kabc.dongguk.edu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 御製花山龍珠寺 奉佛祈福偈

ABC_BJ_H0297_T_001 URL복사
통합뷰어
[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1)御製花山龍珠寺
奉佛祈福偈
2)正祖撰
3)目次
初序分 二正宗分七 三結偈分二

寺爲顯隆園齋宮而建也 小子竊取大
海量墨 須彌聚筆 書寫此八萬四千普
眼法門之經義乘敎 謹述偈語 以效三
業供養一業謂身 至誠敬禮 二業謂口發言稱美 三業謂意 正意想念 用修
報恩福田謂父母有養育之恩 若能供養恭敬 是名報恩福田
初序分一
普吿人天
慧日大聖尊 威德叵思議 椎鐘吿四洲
牖衆登十地慧日大聖尊 法華經偈句也 叵思議 猶言不可量 四洲 一曰南閻
浮提 華言勝金洲 二曰西瞿耶尼 華言牛貨 三曰東弗婆提 華言勝身 四曰北鬱單越 華言勝處也 十
地 一歡喜地 寄人乘 謂初地菩薩 明修布施之行而復示現生於世間 以作人王也 二離垢地 寄欲
界天乘 謂二地菩薩 明修十善之行 而復示現生於欲界天上 以作天王也 三發光地 寄色界無色界
天乘 謂三地菩薩 明修八禪定行 同於色界四禪無色界四空處也 四熖慧地 寄須陀洹乘 謂四地
{底}正祖二十年筆寫本(奎藏閣所藏)撰者
名 編者補入
目次 編者作成補入
통합뷰어

菩薩 初斷俱生身見 觀於道品 同於初果須陀洹故也 五難勝地 寄阿羅漢乘 梵語阿羅漢 華言無
學 亦云無生 謂五地菩薩 觀於四諦之行 旣終同於四果阿羅漢也 六現前地 寄緣覺乘 謂六地菩
薩 觀於十二因緣生滅之行 同於緣覺也 七遠行地 寄菩薩乘 謂七地菩薩 明修菩提分法之行 方
便涉有不捨度生 同於菩薩也 八不動地 寄顯一乘 謂八地菩薩 具證阿含德及不住道 而捨所修
之行 契合實理 離相離言 超於世出世間也 九善慧地 寄顯一乘 謂九地菩薩 以無量知 觀察無邊
境界 說法敎化衆生 超於世出世間也 十法雲地 寄顯一乘 謂十地菩薩 以法身爲雲 普覆衆生 受
勝職位 意業自在 超於世出世間也
二正宗分七
一大地宿因
寶花飛曼陀 員樹生忉利 東土宿吉慶
喬山開新寺曼陀 卽曼陀羅華 華言適意 又云白華 忉利 華言三十三 卽帝
釋等三十三天所居之處 忉利天有圓樹 其花開敷 諸天爲之遊樂而宿 吉慶 積德之稱也
二供養七寶
九秋瞻博節 工祝奏蕆事 金銀及玻璃
瑪瑙與硨磲寺建於九月 按禮記 月令是月也 菊有黃華 梵語瞻博是也 金銀玻
璃瑪瑙硨磲 諸經所謂七寶也 訓義不同 一曰金 梵語蘇伐羅 二曰銀 梵語阿路巴 三曰琉璃 梵語
如字 華言或稱靑色寶 四曰水精 梵語頗黎 華言或稱水玉 五曰硨磲 梵語牟婆洛揭拉婆 六曰碼
碯 梵語摩羅伽隷 七曰赤眞珠 梵語鉢摩羅伽 又有七寶釋名 一曰珊瑚 梵語鉢攞娑 二曰琥珀 梵
語阿濕摩揭婆 三曰珠寶 梵語摩尼 或稱末尼 華言或稱離垢 四曰赤色寶 梵語甄叔迦 西域傳云
甄叔伽 樹名 其花色赤 形大如手 此寶色如此花故名 五曰能勝 謂能勝衆寶也 梵語釋迦毗陵伽
통합뷰어

六曰綠色珠 梵語摩羅伽陀 七曰金剛 梵語跋折羅 謂出於金中 色如紫英 百鍊不消 至堅至利 可
以切玉 世所稀有故爲寶
三莊嚴萬偈
淸淨廣嚴餙 重重壯佛居 我有優曇鉢
萬四千大書淸淨有三種焉 心淸淨也 身淸淨也 相淸淨也 優曇鉢 卽靈瑞大
寶 非時不現 現時定有金輪聖王出世 國土莊嚴 臣民壽命 皆得增長八萬四千歲
四應運發祥
果然金輪聖 應期來作求叶 檀風噓七
燈 蓮雨沃三車承上句而言金輪者 輪取持載之義 華嚴經云 三千世界
依於水輪風輪空輪 不言金輪者 省文也 大地之下 有金輪起世 因水上有風吹 轉成金 如熟酥生
膏 是名金輪 金輪爲首 水輪以下居次 又按長阿含經 曰金輪王 生在王家 受持齋戒 升高臺殿 臣
僚輔翼 東方忽有金輪寶 現舒妙光明 來應王所 欲徃卽轉隨輪所 至於四天下 普勸人民 修十善
道 是名金輪 金輪者 其輪千輻 徑一丈四尺 具足轂輞 雕文刻縷 衆寶間錯 光明洞達 天匠所成
非世所有 卽輪王七寶 金輪寶居一 作求 出詩大雅 文王之什下武篇有曰 三后在天王 配于京王
配于京世德 作求 盖言其武王之有天下 上以承在天三后之緖 下以啓有周八百之基也 檀 善木
字從亶也 道場十種香 旃檀爲上首 風藏識七大之風 琉璃光法王子所證法門也 七燈 七寶燈也 蓮
雨 佛雨 佛說第一義諦 三界諸天 雨以靑蓮寶花也 三車 佛車 三車之義 詳載於法華經 曰羊車
曰鹿車 曰牛車 三車之求出三界也 但欲自度 則喩逸羊之不顧羣 略有爲他 則如走鹿之能顧後
欲人之出 而不求自出 如牛之荷負 安耐一切報恩也
통합뷰어
五福德無量
乳海無量福 敷錫自初生 如稻麻竹葦
十乘刹土盈乳海 海之數有七 乳海居其一謂世有一海 其味如乳也 敷錫 見尙
書洪範篇初生取詩生民章 稻麻竹葦 謂佛世界福祿之多 而十乘者 觀法也 一觀不思議境 心是一
切法 一切法是心 非一非異 不前不後 玄妙寂絕 非識所識 非言所言也 二發眞正菩薩心 觀上
妙境不悟 須再加發心於靜心中思惟也 三善巧安心 善以法性 自安其心也 四破法徧 以三觀能破
之法 徧破諸惑也 五識通塞 其性虛通 而能顯發實相之理也 六道品調適 謂三十七道品 調停適
當也 七對治助開 如世醫藥 必對病而用也 八知位次 謂所歷之位 高下淺深 不相混雜也 九安
忍 謂安然不動 復須忍耐也 十離法愛 謂於中道之法 遠離愛著之心也 刹 梵語 具云刹摩 華言土
田 卽國土也 謂一佛所化之境 以大千世界 而爲一刹也 大千世界者 一日一月 繞一須彌山 照四
天下 爲一世界也
六諸佛護佑
毗盧遮那光 迦陵頻伽聲 齊發愛戴願
弘誓保佑明毗盧遮那 無量壽佛法號也 光光明也 六十四種梵音 迦陵頻迦
之聲 爲三十七 華言妙聲鳥 謂如來法音美妙 如彼禽之聲也 弘 廣也 誓 制也 謂諸佛廣發慈悲
誓願 要制其心 志求滿足也 按陀羅尼雜集 曰一心如大地 謂願我心如大地 長養衆生道芽善種 皆
成聖果 二心如橋船 謂願我心如橋船 運度衆生 不滯中流 達於彼岸 三心如大海 謂願我心如大
海 㴠育衆生 同得眞源 霑於法味 四身如虛空 謂願我身如虛空 包含萬物與諸衆生 平等無二 同證
法性
七菩薩願力
통합뷰어
復次諸世雄 一一皆佛情 我知眞如是
法力照無邊復次 更端語 世雄 諸菩薩羅漢 無邊 指無邊刹海也
三結偈分二
一淨土極樂
甘露遍淨界 秋月滿長天 一曲阿蘭若
王城上由旬甘露 秋月淨界 長天 皆賛美之辭 阿蘭若 華言閒靜處 由旬 華
言限量 有三等不同 上八十里 中六十里 下四十里 如須彌山高八萬四千由旬 雙持山高四萬二千
由旬之謂也 龍珠寺距王城八十里
二恆沙寶籙
於焉現菩提 導之躋梵春 作偈頌佛恩
報果占溱溱菩提 華言道 菩提有三 其一眞名不僞 性名不改 以此眞性爲道
故名眞性菩提 其二能照眞性之智 以此實智爲道 故名實智菩提 其三方便菩提 善巧隨機 化用自
在 以此方便爲道 故名方便菩提 又有三菩提 一曰聲聞菩提 謂聲聞之人 發菩提心也 二曰緣覺
菩提 謂緣覺之人 發菩提心也 三曰諸佛菩提 謂諸佛於因中 發菩提心也 溱溱 取詩旐維旟矣 室
家溱溱之義 箋曰溱溱 子孫衆多也 疏曰 王令 以大人占夢之法占之 夢見旐維旟矣者 是男女
衆多之象

予卽阼二十年乙卯仲夏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용주사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板)목판 42판, 동철판 7판, 석판 24판의 세 종류가 있다. 모두 73판으로 1796~1799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목판은 변상도, 과판(科判), 한문본, 국문본 등이 양면으로 양각되어 있으며, 동철판은 변상도 7판이 단면에 양각되어 있다. 특히 목판의 도각(刀刻)형태까지 동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석판은 과판과 한문본 등으로 단면에 음각되어 있다.

이 경판들은 정조의 명으로 조성되어 주자소에 내입(內入)되었다가 화성 용주사에 보내진 기록이『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에 수록되어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은 매우 정교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변상도에는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의 화풍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으며 본문은 당대의 명필이던 오수(寤修) 황운조(黃運祚, 1730~1800) 서풍(書風)의 명품 경판(經版)이다.

오늘날 용주사 간행의『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전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것은 정조의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혼심을 쏟아 조성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종류의 경판들은 당대 최고 장인들의 예술성까지 곁들여져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더욱이 보존상태가 온전하다는 점, 18세기 말의 국어사 자료가 된다는 점, 이전의 판화와는 달리 경판의 변상도는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충분하다.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8A%A5%EC%B9%A8%EC%82%AC(%E9%99%B5%E5%AF%A2%E5%AF%BA) 

 

능침사(陵寢寺) - sillokwiki

죽은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능역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사찰. 개설 능침사(陵寢寺)는 왕릉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된 사찰이다. 능침사에는 선왕의 어영(御影)이나 위패를 모신 어실(御室)이

dh.aks.ac.kr

 

 

영빈이씨. 손자 정조를 위해 사도세자의 비행을 왕에게 고함>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아사케 함.

https://www.youtube.com/watch?v=28Utrpyx9kg 

 

https://www.youtube.com/watch?v=IQFhdT8TLGY 

 

https://www.youtube.com/watch?v=pSzlFZ05FKs 

 

 

 

https://namu.wiki/w/%EC%A0%84%EC%88%A0%ED%95%B5%20%EC%9E%AC%EB%B0%B0%EC%B9%98

 

전술핵 재배치 - 나무위키

완전한 전술핵 재배치가 어렵다면 '전술핵 재배치를 할 수 있다' 내지는 '유사시 전술핵 탑재 무기가 확실히 전개된다'는 시그널이라도 보내자는 입장도 있다. 2023년 1월 23일 발표된 미국 싱크탱

namu.wiki

 

요순시절부터 제왕의 덕목은 부국강병이었다.

국가지도자라면 마땅히 국민들을 더욱 잘살게 하고

국가를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는 군사력을 확보하여 안정된 생활을 영위케 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관우를 관왕으로 추존하여 관왕묘(關王廟, 관우 사당)를 세워 위기 극복과 국가의 안정을 기원했다.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고집하여 나토식 핵공유의 제안은 물건너 갔으니 약자가 어떡하나?

 'American Pie' 라도 흉내내어 동맹으로서 절실함을 호소할 수밖에.

가창자는아래 가사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https://www.youtube.com/watch?v=yiZ9l3kZ74Y 

 

 

https://www.youtube.com/watch?v=tkxCSb233Rw

 

 

Don McLean, American Pie. 1970/  가사 국역

 
아주 오래전, 아직도 기억나
Long long time ago, I can still remember


그 음악이 나를 어떻게 웃게 했는지
How that music used to make me smile


그리고 기회가 있는지 알았어
And I knew if I had my chance


그 사람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걸
That I could make those people dance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잠시 동안 행복할 것입니다.
And maybe they'd be happy for a while
 
하지만 2월은 날 떨리게 만들었어
But February made me shiver


내가 전달하는 모든 서류와 함께
With every paper I'd deliver


문앞에 나쁜 소식
Bad news on the doorstep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어
I couldn't take one more step
 
울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I can't remember if I cried


그의 미망인 신부에 대해 읽을 때
When I read about his widowed bride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건드렸다
But something touched me deep inside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그럼 안녕, 미스 아메리칸 파이
So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아
Drove my Chevy to the levee


하지만 제방은 말랐다.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사랑의 책을 쓰셨습니까?
Did you write the Book of Love?


그리고 위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And do you have faith in God above?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If the Bible tells you so


당신은 로큰롤을 믿습니까?
Do you believe in rock 'n' roll?


음악이 당신의 필멸의 영혼을 구할 수 있습니까?
Can music save your mortal soul?


그리고 정말 천천히 춤추는 법을 가르쳐 주시겠어요?
And can you teach me how to dance real slow?
 
당신이 그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아요
Well I know that you're in love with him


네가 체육관에서 춤추는 걸 봤거든
'Cause I saw you dancing in the gym


둘 다 신발을 벗었습니다.
You both kicked off your shoes


그런 다음 리듬과 블루스를 파헤칩니다.
Then I dig those rhythm and blues
 
난 외로운 10대 야생마였어
I was a lonely teenage broncin' buck


분홍 카네이션과 픽업트럭으로
With a pink carnation and a pickup truck


하지만 난 내가 운이 없다는 걸 알았어
But I knew I was out of luck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난 안녕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미스 아메리칸 파이
I started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아
Drove my Chevy to the levee


하지만 제방은 말랐다.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이제 10년 동안 우리는 혼자였습니다.
Now for ten years we've been on our own


그리고 이끼는 구르는 돌 위에서 살이 찐다
And moss grows fat on a rolling stone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
But that's not how it used to be


광대가 왕과 왕비를 위해 노래할 때
When the jester sang for the King and Queen


제임스 딘에게서 빌린 코트를 입고
In a coat he borrowed from James Dean


그리고 너와 나에게서 온 목소리
And a voice that came from you and me
 
아 그리고 왕이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Oh and while the King was looking down


광대는 그의 가시 왕관을 훔쳤다
The jester stole his thorny crown


법정은 연기됐다
The courtroom was adjourned


평결이 반환되지 않았습니다.
No verdict was returned
 
그리고 레닌이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동안
And while Lenin read a book of Marx


공원에서 연습하는 사중주
The Quartet practiced in the park


그리고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비가를 불렀다
And we sang dirges in the dark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우리는 노래하고 있었어, 안녕 미스 아메리칸 파이
We were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아
Drove my Chevy to the levee


하지만 제방은 말랐다.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여름 무더위에 헬터 스켈터
Helter skelter in the summer swelter


새들은 낙진 대피소로 날아갔습니다.
The birds flew off with a fallout shelter


8마일 높이에서 빠르게 낙하
Eight miles high and falling fast


그것은 잔디에 파울을 쳤고, 선수들은 포워드 패스를 시도했습니다.
It landed foul on the grass, the players tried for a forward pass


캐스트의 부업에있는 광대와 함께
With the jester on the sidelines in a cast
 
이제 반나절의 공기는 달콤한 향수
Now the halftime air was sweet perfume


상사가 행진 곡을 연주하는 동안
While the sergeants played a marching tune


우리는 모두 춤을 추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We all got up to dance


오, 하지만 우린 기회가 없었어
Oh, but we never got the chance
 
선수들이 경기장을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Cause the players tried to take the field


마칭 밴드는 양보를 거부했다
The marching band refused to yield


공개된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Do you recall what was revealed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미스 아메리칸 파이
We started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았지만 제방은 말라 있었어
Drove my Chevy to the levee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그리고 "This'll be the day that I die"라고 노래합니다.
And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아,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곳에 있었습니다.
Oh, and there we were all in one place


우주에서 잃어버린 세대
A generation lost in space


다시 시작할 시간이 남지 않은 채
With no time left to start again


그러니 어서, Jack은 날렵해, Jack은 빨라
So come on, Jack be nimble, Jack be quick


잭 플래시는 촛대에 앉았다
Jack Flash sat on a candlestick


불은 악마의 유일한 친구니까
'Cause fire is the devil's only friend
 
아, 무대에서 그를 지켜보던 중
Oh, and as I watched him on the stage


내 손은 분노의 주먹으로 꽉 쥐어졌다
My hands were clenched in fists of rage


지옥에서 태어난 천사는 없다
No angel born in Hell


그 사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Could break that Satan's spell
 
그리고 불꽃이 밤까지 높이 올라갔을 때
And as the flames climbed high into the night


제사를 밝히기 위해
To light the sacrificial rite


나는 사탄이 기쁨으로 웃는 것을 보았다
I saw Satan laughing with delight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그는 안녕, 미스 아메리칸 파이를 노래하고 있었어
He was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았지만 제방은 말라 있었어
Drove my Chevy to the levee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그리고 "This'll be the day that I die"라고 노래합니다.
And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블루스를 부르는 소녀를 만났어
I met a girl who sang the blues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행복한 소식을 물었습니다.
And I asked her for some happy news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But she just smiled and turned away


성스러운 가게로 내려갔어
I went down to the sacred store


몇 년 전에 내가 음악을 들었던 곳
Where I'd heard the music years before


하지만 그 남자는 음악이 재생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ut the man there said the music wouldn't play
 
그리고 거리에서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And in the streets, the children screamed


연인들은 울었고 시인들은 꿈을 꾸었다
The lovers cried and the poets dreamed


그러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But not a word was spoken


교회의 종은 모두 부서졌다
The church bells all were broken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 남자
And the three men I admire most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
The Father, Son, and the Holy Ghost


그들은 해안가로 가는 막차를 탔다
They caught the last train for the coast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그리고 그들은 작별을 부르고 있었어, 미스 아메리칸 파이
And they were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았지만 제방은 말라 있었어
Drove my Chevy to the levee but the levee was dry


그 좋은 늙은이들은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지
And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그들은 안녕을 노래하고 있었어, 미스 아메리칸 파이
They were singing bye-bye, Miss American Pie


내 Chevy를 제방으로 몰았지만 제방은 말라 있었어
Drove my Chevy to the levee but the levee was dry


좋은 늙은이들이 위스키와 호밀을 마시고 있었어
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This'll be the day I die"를 노래하며
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소스: Musixmatch
작사: Don Mclean
 
 
 
 
 
 

Don McLean(돈맥클린) - American Pie(아메리칸파이)...[팝송영어,영한가사번역자막]

Don McLean(돈맥클린) American Pie(아메리칸파이) A long long time ago 아주 아주 오래 전을 I ca...

blog.naver.com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941&bigcateidx=5&subcateidx=6&view_tp= 

 

Neo Music Communication IZM

Tapestry (Don McLean) 돈 맥클린 IZM 1970

www.izm.co.kr

1950년대 버디 할리(Buddy Holly)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우던 돈 맥클린(Don McLean)은 비범한 작곡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 34곳의 레이블에서 앨범 제의를 거절당한 후에야 데뷔작을 발표하는 무명의 설움을 겪은 아티스트였다. 1945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스물 여섯이 되던 해인 1971년 빅히트 앨범 <American Pie>를 발표한다.

동명 타이틀곡인 'American pie'는 1972년 신년벽두를 강타, 빌보드 차트 정상을 4주간이나 점령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3분 언저리의 곡들이 라디오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 8분27초 짜리 대곡이 전파를 정복한 것부터가 이변이었다. 이 곡은 1999년 여걸 마돈나(Madonna)가 테크노 감성으로 손질하여 다시 익숙해졌다(가사를 많이 생략하긴 했지만).

그 친숙한 멜로디의 'American pie'는 실은 초기 로큰롤의 거장 버디 할리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비틀스를 포함한 1960년대 대부분의 뮤지션들에게 그 모범이자 모델로 자리했던 버디 할리는 록음악과 록 밴드의 기초적인 형태를 완성시키며 록 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36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13살의 나이에 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벤조, 만돌린을 연주했고, 독학으로 부기우기(Boogie woogie) 음악을 터득했던 신동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곡으로 직접 노래한 백인 최초의 인기 뮤지션이었고, 최초로 펜더 기타를 사용했으며, 크리케츠(The Crickets)라는 밴드를 이끌며 4인 체제 록 밴드의 형식을 완성했다. 또한 그는 컨트리, 블루스, 로커빌리, 흑인 영가를 조합하여 록의 정체를 확립하는데 기여했고 록음악에 있어서 흑백의 개념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가치를 부여받지만 그의 활동기간은 단 3년에 불과했다. 1959년 영화 <라밤바>로 잘 알려진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 빅 바퍼(The Big Bopper) 등과 함께 투어에 들어간 그는 1959년 2월3일 위스컨신(Wisconsin) 주의 그린 베이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지로 이동하던 중 탑승한 경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하고 만다. 이 때 나이 22세였다. 버디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아쉬움은 10년이 더 흐른 1970년까지 돈 맥클린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1970년대의 시작과 함께 그는 1959년 2월로 돌아가 지난 10년의 음악을 8분여의 서사곡으로 담아내게 됐고 그리하여 'American pie'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가 회상하는 1960년대는 그리 달갑지 않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4B93xIM-2F4 

상단 죄측에 제목이 표시되지 않은 동영상은  YouTube에서 보기를 클릭하면 동영상이 열립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4%80%EC%9A%B0

 

관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관운장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제목 '관운장'으로 불리는 영화에 대해서는 삼국지: 명장 관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관우(중국어 정체자: 關羽, 간체자: 关羽, 병

ko.wikipedia.org

관우(關羽,간체: 关羽,: Guān Yǔ 관위, ? ~219년)는 중국 훈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운장( 雲長, 간체 云长,Yúnzhǎng 윈장)이다. 의제 장비(張飛)와 더불어 유비(劉備)를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로 손꼽히며, 한대 이후로 남송의 악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각 중국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후세사람들은 '용맹한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관우, 장비의 경우를 들어 말하였다고 한다. [1]

의리의 화신(化身)으로 중국의 민담이나 민간전승과 전설에서 널리 이야기되었고 나중에는신격화되어 관제묘(關帝廟)가 세워졌다.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명나라 시기 협천호국충의대제(協天護國忠義大帝)[2] 로써 황제에 추존되었고, 청나라 시기 신(神)의 시호인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추존되었다. 최종적으론 황제의 시호인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수정익찬선덕관성대제(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護國保民精誠綏靖翊讚宣德關聖大帝)로 추존되었으며[3][4] , 한국에서는 대하네국 고종이 황제의 시호인 현령소덕의열무안관제(顯靈昭德義烈武安關帝)로 추존하였다,[5]

생애

생애 초반

사례 하동군 해현(解縣) 사람이다. 관우가 고향을 떠나 탁군으로 이주하고 있을 때, 유비가 도당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장비와 함께 찾아가, 그의 호위를 맡았다. 유비는 관우가 현상수배당하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우를 보호하기로 결심하고 끝까지 책임지여 언제나 관우와 장비와 함께 한 방에서 같이 지냈으며, 그 정이 형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공적인 장소에서 관우는 장비와 같이 하루 종일 유비 곁에서 호위를 맡고, 유비를 따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로 관우 자전에서는 그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 간결하다. 유비가 공손찬 밑에서 평원의 상(相)이 되었을 때, 장비와 함께 별부사마로 임명되어 부대를 지휘하도록 했다는 기록뿐, 그 후 이야기는 200년까지 건너뛰고 만다. 유비가 서주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하비 태수의 직무를 대행하기도 하였다.

백마 전투

200년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어,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자 관우는 하비성을 수비했다. 그러나 유비는 조조에게 패해 하북의 원소 밑으로 도주하고, 관우는 조조에게 사로잡혀 항복했다. 조조는 관우를 후하게 대접하고 편장군에 임명하지만, 관우는 조조 밑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조조가 장료를 파견해 그의 의중을 떠보았을 때도, 관우는 “조조의 뜻은 알겠지만 나는 유비에게서 많은 은혜를 입어 함께 죽기로 맹세한 사이로 절대 배반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터이지만 반드시 수훈을 세워 조조에게 은혜를 갚고 나서 떠날 생각이다” 라고 대답한다.

원소는 “안량(顔良)은 편협해서 폭넓은 지휘권과 재량권을 줘서는 안된다.” 라는 저수(沮授)의 만류를 무시하고, 안량에게 곽도(郭圖)와 순우경(淳于瓊)를 딸려, 조조 휘하의 동군 태수 유연이 지키는 백마진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조조는 장료와 관우에게 공격을 명했다. 관우가 멀리서 안량의 군기와 덮개를 보고는 말을 채찍질해 나아가 수만의 군졸 속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돌아오니, 원소의 여러 장수들 중에서 능히 당해낼 자가 없었다[6].

삼국지에 따르면 조조는 천자의 이름으로 관우에게 편장군이라는 관직을 내렸고, 이는 관우가 천자(황제)에게서 받은 첫 관직이었다. 그러나 관우의 마음에는 언제나 유비가 있었다. 원소가 진군하여 양무(陽武)를 지키자, 관우는 원소군에 있는 유비를 찾아 떠났다(삼국지 위서 무제기). 떠날 때 하사품에 봉인을 하고 편지를 보내 이별을 고한 다음 조조의 곁을 떠나 유비에게로 향했고, 조조의 측근이 추적하려고 했지만, 조조는 “사람에게는 각기 주인이 있으니 뒤쫓지 말거라” 라고 타이르며 관우를 조용히 보내주었다[6].

관우가 조조를 떠나면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조공께서 저를 후하게 대해 주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비 장군에게 깊은 은혜를 받았기에 그를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6]

원소와의 전투에서는 안량을 토벌하고 유비의 편지를 받자, 조조 밑을 떠나 유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적벽 대전 이후

적벽 대전에서의 승리 후 유비가 강남의 여러 군을 지배하자, 관우는 양양태수와 탕구장군에 임명되어 양자강 북쪽에 주둔, 마침내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러 나서자 관우는 제갈량과 함께 형주의 수비를 맡았다. 그러나 도중에 유비의 군사 방통이 전사하고, 익주에서 유비가 궁지에 빠지자 제갈량도 익주로 구원하러 나가 관우 혼자 형주에 남게 된다. 익주 평정 후 관우는 형주 군사총독에 임명되고, 3만의 군사로만 형주를 지키겠다고 하였다.

215년 손권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것을 이유로 형주 반환을 요구하며, 남쪽 3개 군(장사, 영릉, 계양)에 관리를 파견하는데, 관우가 이들을 쫓아냈다. 그래서 손권은 여몽에게 명령해 3군을 공략하고, 익양에서 관우와 대치한다. 이 때 감녕은 단지 300여명의 병력만 가지고 있었는데 노숙이 추가로 증원해준 천여명의 병력을 더하여 강을 사이로 관우와 대치하였다. 이에 관우는 함부로 강을 건너지 못하였고,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관우뢰(關羽瀨)라 한다.[7]

얼마 지나지 않아 관우와 노숙에 의한 담판이 이루어지고, 결국 유비는 조조의 공격에 대비해 3군을 반환했다.

서량의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했을 때는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마초의 재능을 물어보았다. 제갈량은 관우의 성품을 잘 알고 답신하길 “마초는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걸물이나 미염공(美髯公)인 당신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관우는 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빈객들에게 보여줬다.

또한 삼국지에는 이 시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관우는 왼쪽 팔꿈치에 화살을 맞은 적이 있어, 상처가 치료된 후에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욱신욱신 뼈가 쑤셨다.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독이 스며들고 있으므로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판명되어 절개 수술을 행한다. 관우는 수술 중에도 연회를 즐기며 마량과 바둑을 두는 중 피가 가득 쏟아져 나와도, 태연하게 담소했다고 한다.

말년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을 때 관우는 전장군에 임명되었다. 관우는 번성을 공격하여 우금(于禁)을 생포하고 방덕을 참수했다. 이 사건으로 우금이 조조에게 비난을 듣는다. ("그대는 누구시오? 40년 동안 날 따른 사람은 아니겠지? 난 방덕은 아오만 그대는 모른다네, 어찌 목숨이 아까워 주인을 버린단 말이냐?")그 사이 손권은 형주를 손에 넣을 기회로 보고 조조에게 관우를 치겠다는 사자를 보내고[8] 여몽이 병에 걸렸다며 형주로부터 소환하는 척하면서 은밀히 전쟁 준비를 하였다. 이때 관우는 참으로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는데 우금을 생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금과 그 부하들이 먹는 식량 때문에 골치를 썩었다. 우금의 부하들이 먹어치우는 군량 때문에 관우의 군량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관우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군을 번성으로 동원하고 손권의 영토인 상관(湘關)의 군량을 털었다. 마침내 손권이 여몽을 선봉으로 삼아 관우의 배후를 쳤다.[9]

손권은 당시 관우의 수하로 강릉을 지키고 있던 미방 등을 회유하고 관우를 기습하여 남군을 점령하였다. 이 때 관우는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하고 있으나 조인을 지원하기 위해 온 서황에게 패배하고 번성의 포위를 풀었다. 이때 남군이 손권의 손에 넘어갔다는 말을 들은 관우는 양양의 포위도 풀고 손권과 싸웠으나, 여몽의 계략으로 병사들이 전의를 잃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맥성으로 달아났다. 포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손권에게 거짓 항복도 시도해 보았으나 간파당했고, 몰래 달아나려 했으나 주연 · 반장 등의 포위에 걸려 그의 아들 관평, 사마 조루와 함께 반장의 부장 마총에게 사로잡혀서 거의 즉시 참수당했다. 관우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이릉전투를 야기시켰으며, 유비와 장비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유비는 관우를 장목후(壯繆侯)로 봉하고, 그 아들인 관흥이 관우의 작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이 이후 촉한의 황제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하자마자, 관이 등 관흥의 후손들은 이때 방덕의 아들로서 종회(鍾會)의 부장으로 참전한 방회(龐會)에게 전원 잡혀가서 한 명도 남김없이 멸문되었다. 이 때문에 관우의 후손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관우의 67대손인 관충진(關忠金, 관충금)을 찾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관중진은 한국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었다. 사실 관평의 후손들이 관우와 관평이 포로로 잡힌 후 참수된 이후에도 형주지역에서 계속 살아있었고 그들의 후손이 관중진이였던 것이다.[10]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A%B4%80%EC%99%95%EB%AC%98

 

동관왕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왕릉과

ko.wikipedia.org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 종로구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왕릉과 함께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된 동묘(오른쪽)와 남묘(왼쪽 아래) (《대동여지도》 제1첩 8면)

임진왜란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였다.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9,315m²로 되어 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남관왕묘는 조정에서 관리하며 왕실에서도 제사를 지냈으나 1908년(융희 2년) 향사이정령 등으로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괄했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더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 서관왕묘를 지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다.

인근에 수도권전철 1호선 6호선 동묘앞역이 있다. 2011년 10월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이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운룡도는 조사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로 가려졌다.[1] 

관련 문화재

 

 

관왕묘(關王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를 신앙하기 위한 묘당을 지칭하는 용어.

관성묘(關聖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정유의 왜란 때에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1. 남관왕묘

1598년(선조 31) 처음으로 서울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가 건립되었다. 『선조실록』 31년 4월 기묘조에 명나라의 장수 진유격(陳遊擊)의 접반관(接伴官) 이흘(李忔)의 서계(書啓)에 남관왕묘의 건립에 따른 경위가 기술되어 있다.

진유격은 그가 거처하는 뒤뜰에 있는 낡은 집을 이용하여 관왕묘를 건립하고 소상(塑像)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시설이 완비되지는 못하였는데, 그 때 이흘을 불러서 말하기를 “어제 양노야(楊老爺:명나라의 장수 楊鎬)를 찾아서 관왕묘의 건립에 관한 것을 물어보니 찬성하면서 더 넓은 곳에 크게 건립할 뜻을 비추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흘에게 조선의 도움을 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른 것은 반드시 우리 군사를 쓰겠지만 목수·미장이 등은 조선의 공인을 써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우리를 위한 일만은 아니고 조선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니 국왕에게도 알려야 할 것이다.”

이렇듯 관왕묘의 건립은 명나라의 장수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조선의 왕실에서도 그 건축비용을 보조하였으며, 따로이 관왕묘의 건립을 맡아보는 도감관(都監官)을 정하여 돕게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권61 예고(禮考)에 따르면, 임진·정유의 난에 전투가 있을 때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 신병(神兵)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묘를 건립하는 데 힘쓴 것은 아마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왕묘가 건립되자 양호 등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의 생일이 5월 13일이므로 이날 제례를 올리자고 하였으며, 선조의 참례를 강요하였다. 결국은 선조가 직접 묘에 나가 분향하고 잇달아 삼작(三爵)을 올렸다.

이 일로 말미암아 조정의 대신들은 관왕묘의 제례를 비판하게 되었다. 중국의 일개 장수인 관우에게 조선의 국왕이 배례함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으며, 이 같은 논쟁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1. 동관왕묘

남관왕묘가 건립된 이듬해인 1599년에 또 하나의 관왕묘인 동관왕묘를 세울 계획이 수립되었다. 건립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헌부의 장계에 의하면 “동관왕묘의 건립은 중국의 건의에 의한 부득이한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동관왕묘의 건립도 사실상 명나라의 종용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관왕묘 건립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뒤따랐다. 『선조실록』 32년 4월 무인조에 관왕묘의 위치 선정에 관한 기사가 있다. 선조는 정원(政院)에 보낸 비밀전교에서 새로운 관왕묘의 위치에 대해서 “전일에는 흥인문 밖에 건립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또 남대문에 설치한다고 하니 무슨 까닭이냐, 전일의 계획은 어찌된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남대문에는 이미 관왕묘가 있으니 동대문에 설치하도록 명나라의 섭정국(葉政國)에게 말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서울의 동쪽이 지리적으로 허(虛)하다는 도참사상에 의한 것이었다. 선조는 끝내 동대문 밖이 안 된다면, 차라리 훈련원에 건립하여 무사들이 관왕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일 끝에 관왕묘는 동대문 밖에 건립하도록 하였다.

동관왕묘의 건립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공사의 규모가 너무 커서 백성과 군사를 부역시켜야 하는 문제였다. 동관왕묘는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마침내 1602년 봄에 준공되었다. 이 동관왕묘는 중국의 관왕묘를 그대로 본떠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 지방의 관왕묘

서울에 있는 남·동관왕묘 외에 지방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1598년을 전후하여 지방에서는 강진·안동·성주·남원 등 네 곳에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이 지방의 관왕묘 건립시기에 관해서는 『연려실기술』 별집 권4와 『해동성적지(海東聖蹟志)』의 묘사조(廟祠條), 『증보문헌비고』,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다만, 건립연도는 문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건립자에 대해서는 일정하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전라도의 강진현 고금도(古今島)에 명나라의 장수 진린(陳璘)이 건립하였으며, 1684년에 개수하면서 이순신(李舜臣)과 진인을 별사(別祠)에 배향하였다.

안동의 관왕묘는 명나라의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인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하였다. 묘 안에는 석상(石像)을 봉안하였으며, 처음에는 안동 성내에 있었으나 1606년 서악(西岳)의 동대(東臺)로 이안(移安)하였다.

성주의 관왕묘 또한 명나라의 장수 모국기(茅國器)가 건립하였다. 소상(塑像)을 봉안하였는데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주성 동문 밖에 있다가 1727년(영조 3)에 남정(南亭) 아래로 옮겼다.

남원의 관왕묘는 서문 밖에 있었다. 명나라의 도독 유정(劉綎)이 건립하였다. 1698년에 신상(神像)을 개건하였는데 모두 중국의 관왕묘를 모방하였으며, 명나라의 장수인 총부중군(摠府中軍) 이신방(李新芳)·장표(蔣表)·모승선(毛承先) 등을 배향하였다.

그리고 고종 때에 와서 다시 서울에 북묘·서묘, 지방에는 전주·하동 등에 관왕묘를 건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종 당시의 위태로운 정세에서 관왕묘를 통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신을 일깨운 것으로 보인다.

1901년 조서에서 “관왕묘를 숭상한 것이 지금까지 3백여 년이다. 관왕의 충의는 천추에 길이 빛난다.”고 하고, 관왕의 호를 현령소덕의열무안관제(顯靈昭德義烈武安關帝)라고 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과 용산구 후암동에 동묘와 남묘가 남아 있다.

 

  1. 관왕묘의 참례와 음악

선조 이래로 관왕묘에 특히 관심을 보인 왕은 숙종이다. 숙종은 무안왕(武安王)의 충의는 진실로 가탄할 만하며 관왕묘를 지나면 감회가 일어난다고 하여, 관왕묘에 역림(歷臨)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우의정과 좌의정에게 관왕묘 참례에 관한 절목을 작성하라고 하였다. 그때 배례와 수읍(手揖)의 의견이 나왔는데, 숙종은 수읍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 같은 관왕묘 참례에 관한 문제는 자주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1709년(숙종 35)에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선조조에 관왕묘에서 행하던 행례의절(行禮儀節)을 실록에서 찾아내라고 하였다.

사관이 “선조 때에는 관왕묘에서 재배의 예를 행하였다.”고 하자, 숙종은 자신도 이에 따르겠노라고 하였다 한다. 『숙종실록』 36년 3월 정묘조에 의하면, 숙종은 당시의 좌의정 서종태(徐宗泰)와 판부사(判府事) 이순명(李順命)에게 “선조는 배례하였는데 나도 배례를 해야 하는가.”하고 물었다.

서종태는 선조 당시에는 명나라의 장수들의 압력에 못이겨서 한 것인 만큼 이제는 읍례가 적당하다고 하였다. 그 이유 또한 관우는 일개 장수였으므로 국왕이 배례를 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숙종은 관우의 호가 무안왕이며 축문에도 ‘감소고우무안왕(敢昭告于武安王)’이라고 하였으니 배례가 좋다고 주장하였다. 숙종은 개인적으로 관우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 보인다.

1701년에 숙종은 모든 지방의 관왕묘의 제식을 선무사(宣武祠)의 예에 따라 거행하라고 하였으며, 매년 경칩과 상강일에 향축하도록 하였다. 제수는 변두(籩豆)이고 헌관(獻官)은 고을의 영장(營將) 또는 당상무수령(堂上武守令) 등이 하도록 하였다.

정조도 관왕묘에 관심을 기울여, 1786년에 친히 「관묘악장(關廟樂章)」을 지어 처음으로 관왕묘의 행례(行禮)에 쓰게 하였다. 1832년에는 순조가 남관왕묘에서 전작례(奠酌禮)를 행하였다.

 

  1. 남관왕묘

1598년(선조 31) 처음으로 서울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가 건립되었다. 『선조실록』 31년 4월 기묘조에 명나라의 장수 진유격(陳遊擊)의 접반관(接伴官) 이흘(李忔)의 서계(書啓)에 남관왕묘의 건립에 따른 경위가 기술되어 있다.

진유격은 그가 거처하는 뒤뜰에 있는 낡은 집을 이용하여 관왕묘를 건립하고 소상(塑像)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시설이 완비되지는 못하였는데, 그 때 이흘을 불러서 말하기를 “어제 양노야(楊老爺:명나라의 장수 楊鎬)를 찾아서 관왕묘의 건립에 관한 것을 물어보니 찬성하면서 더 넓은 곳에 크게 건립할 뜻을 비추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흘에게 조선의 도움을 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른 것은 반드시 우리 군사를 쓰겠지만 목수·미장이 등은 조선의 공인을 써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우리를 위한 일만은 아니고 조선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니 국왕에게도 알려야 할 것이다.”

이렇듯 관왕묘의 건립은 명나라의 장수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조선의 왕실에서도 그 건축비용을 보조하였으며, 따로이 관왕묘의 건립을 맡아보는 도감관(都監官)을 정하여 돕게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권61 예고(禮考)에 따르면, 임진·정유의 난에 전투가 있을 때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 신병(神兵)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묘를 건립하는 데 힘쓴 것은 아마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왕묘가 건립되자 양호 등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의 생일이 5월 13일이므로 이날 제례를 올리자고 하였으며, 선조의 참례를 강요하였다. 결국은 선조가 직접 묘에 나가 분향하고 잇달아 삼작(三爵)을 올렸다.

이 일로 말미암아 조정의 대신들은 관왕묘의 제례를 비판하게 되었다. 중국의 일개 장수인 관우에게 조선의 국왕이 배례함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으며, 이 같은 논쟁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roaltlf&logNo=44618396

 

(동작구)남묘(南廟)

  (동작구)남묘(南廟)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180-1번지    남묘(南廟)는 동묘(...

blog.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3V-Ll18LLvw 

 

 

https://www.youtube.com/watch?v=kQBApS7N1zo 

 

 

https://www.youtube.com/watch?v=VfVWTKdobH0 

 

 

이계호, 태초먹거리/ 가공식품 주의보

https://www.youtube.com/watch?v=cr-XinMufdE 

 

 

https://www.youtube.com/watch?v=L_rMElTdQrk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