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윤동주 시인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 청록파 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28세에 홍익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1984년부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내며, 한국 문학의 지나친 교훈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풍자하였다. 1991년 출판한 《즐거운 사라》의 외설 논란으로 1992년 강의 도중 구속되고,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직됐다가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2년 복직하여 2007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전공 정교수가 됐고, 2016년 정년퇴임했다. 2017년 등단 40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냈으나, 자택에서 홀로 별세하였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는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성윤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마광수 전 교수는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나왔다. 성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담긴 소설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학 인생의 출발은 시였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28세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로도 불렸다. 마광수 전 교수는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내고 이듬해 10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즐거운 사라’는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성 문제를 음지의 영역에서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위선적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게 마광수 전 교수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즐거운 사라’가 변태적 성행위와 스승.제자의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란물’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예술과 외설의 구분,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논쟁이 번졌다. 고인이 구속되자 문학계뿐 아니라 미술·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구명운동을 벌였다. 대다수 문화예술인은 마광수 전 교수의 구속수감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시대착오적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마광수 전 교수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해직됐다가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복권 이후 다시 연세대 강단에 섰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약식기소되고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집에 실었다가 사과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계속 휘말렸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한 그는 해직 경력 탓에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했고 필화 사건의 상처와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광마일기’(1990)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등 필화 이전의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그보다 10년 전 쓴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부분)
고인은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다. 재작년 모친을 여읜 뒤로는 서울 용산의 자택에서 혼자 살았다. 빈소는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차려졌다.
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 수석으로 입학·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윤동주시인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청록파시인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28세에홍익대학교국어교육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되었고, 1984년부터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내며, 한국 문학의 지나친 교훈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풍자하였다. 1991년 출판한 《즐거운 사라》의 외설 논란으로 1992년 강의 도중 구속되고,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연세대학교교수직에서 해직됐다가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2년 복직하여 2007년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전공 정교수가 됐고, 2016년 정년퇴임했다. 2017년 등단 40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냈으나, 자택에서 홀로 별세하였다.
“나도 그랬다. 그분 정말 철저한 퓨리턴이잖아? 술·담배는 물론 커피도 안 마시는. 그런 분이 내 시가 유니크하다고 뽑아줬어. ‘배꼽이 섹시해’ 뭐 그런 시였는데.”
ㅡ마광수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를 했다는 건 더욱 의외였다.
“윤동주로 박사 한 게 내가 처음이다. 그의 쉽고 어린애 같은 시세계가 좋았어. 나는 이상이 제일 싫어. 천재라고 떠받드는 사람은 더욱 싫고. 그냥 똥폼이야. 윤동주에겐 그런 똥폼이 없어. 쉽고 순수하고 똥폼 안 잡는 점에서 나와 윤동주는 같아.”
ㅡ유미주의를 문학적 모토로 삼고 있는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마광수에게 아름다움은 인공미다. 자연미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잘 꾸미는 인공미의 시대이고, 대표적인 것이 페티시이다. 누구는 나더러 외모지상주의자라고 하는데 내 주장은 타고난 외모 비관하지 말고 페티시를 통한 인공미로 자연미를 뛰어넘자야. 얼마 전 내가 가수 산다라 박을 위한 시를 썼어. 긴 가발을 쓴 걸 보니 무지막지하게 섹시하다, 그런 내용인데 누가 포털에 실어날라 유명해졌지. 연대 애들한테 물어보니 9만5000원짜리 가발이래. 그거 투자해 대박났잖아?”
sexual fetishism 성도착증의 일종으로서 무정물[1], 생식활동과 무관한 신체 일부(특히 발 등. 발 페티시 문서로.), 신체에서 사출된 분비물 등에서 성적 흥분을 얻는 것을 말한다.[2][3] 때문에 우리말 정신의학 용어로는 절편음란증, 물품음란증 같은 학문적인 명칭이 붙어있다. 물론 절편음란증에서 절편은 잘라낸 부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아닌 신체 일부 부위(발 등)만을 성적 대상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물품음란증의 의미는 자명할 것이고.
간혹 신체 부위가 아닌 무정물에 대한 성애만 페티시즘이라고 한다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해다. 정신과적 입장에선 생식활동과 무관한 신체 부위(예를 들어 발, 머리카락 등)에 대한 성적 흥분을 파셜리즘(Partialism)이라고 하여 무생물에 대한 성적흥분과 묶어 성적 페티시즘이라고 부른다.[4]
절편음란증, 물품음란증이라는 명칭을 보면 알겠지만, 정신의학에서는 신체 일부나 무정물에 흥분할 때만 성적 페티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특정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에 대한 성애, 동물이나 어린이 등 유정물에 대한 성애, 노출증 같은 성적 행위의 방법에 대한 성애는 정신의학에선 페티시즘으로 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XX 페티시즘'이란 표현이 흔히 남용되기에 혼동하는 것이다.[5]
DSM-5에서는 이상성벽(Paraphilic Disorder) 분류에서 아래의 여러가지 성벽들을 기타 이상성벽(Paraphilic Disorders Not Elsewhere Classified)으로 몰아 넣었다. 실제로 각각의 개별 성벽의 문헌 보고가 극히 소수만이 존재할 정도로 마이너한 성벽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