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A%B8%B0#/media/%ED%8C%8C%EC%9D%BC:Wu_Qi.jpg

 

오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기(吳起, ?, 산동성 하택시 차오현 ~ 기원전 381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며,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본래 위나라 출신으로, 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그와 의절한 후

ko.wikipedia.org

오자병법

오기와 관련된 병법서로 《오자병법》이 전해지며, 대체로 오기가 위 문후나 그 아들인 위 무후와 나누었던 문답을 수록한 것이다.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본래 48편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도국(圖國) · 요적(料敵) · 치병(治兵) · 논장(論將) · 응변(應變) · 여사(勵士) 등의 6편 정도만이 전해진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세속(世俗)에서 사려(師旅, 군사)를 논하는 자들은 모두가 손자(孫子)의 13편과 오기(呉起)의 병법을 따른다."라 하였을 정도로 《손자병법》과 더불어 대표적인 병법서로 여겨져 왔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第五

5-2. 吳起列傳(오기열전)

 

吳起者,衛人也,好用兵。

오기라는 사람은 위나라 사람으로용병에 능했다.

 

嘗學於曾子,事魯君。

일찍이 증자에게 배워 노나라 임금을 섬긴 일이 있다.

 

齊人攻魯,魯欲將吳起,吳起取齊女為妻,而魯疑之。

그때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왔다.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대장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오기가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의심을 품고 주저하였다.

 

吳起於是欲就名,遂殺其妻,以明不與齊也。

그러자 오기는 이에 공명심에 불타마침내 자기 아내를 죽여 자기와 제나라와의 관계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혔다.

 

魯卒以為將。將而攻齊,大破之。

노나라는 마침내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고 오기는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魯人或惡吳起曰:「起之為人,猜忍人也。其少時,家累千金,游仕不遂,遂破其家,

그러나 노나라 어떤 사람들은 오기를 악평하여 이르기를 “오기의 사람됨이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하다. 젊었을 때도 천 금이나 되는 가산을 벼슬을 구해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그 집을 탕진했습니다.

 

鄉黨笑之,吳起殺其謗己者三十餘人,而東出衛郭門。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조소하였다 하여 오기는 자기를 비방한 사람을 죽인 것이 30이 넘어 동으로 위나라에서 도망쳤었다.

 

與其母訣,齧臂而盟曰:『起不為卿相,不復入衛。』遂事曾子。

그때 오기는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자기 팔을 물어뜯으며 맹세하였다.‘저 오기는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다시 고향 위나라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더니마침내 증자를 섬기었다.

 

居頃之,其母死,起終不歸。

증자를 모시던 중에 그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오기는 끝내 귀국하지 않았다.

 

曾子薄之,而與起絕。起乃之魯,學兵法以事魯君。

증자는 그를 박정하게 여겨 오기와 관계를 끊었다. 오기는 이 때문에 노나라에 왔다. 노나라에서 병법을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다.

 

魯君疑之,起殺妻以求將。夫魯小國,而有戰勝之名,則諸侯圖魯矣。

노라나 임금이 그를 의심하니 제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 자리를 구하였다. 무릇 노나라는 작은 나라라 조그만 싸움에 이겼다는 공명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제후들의 표적이 되었다.

 

且魯衛兄弟之國也,而君用起,則是弃衛。」

더군나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의 나라다. 그래서 임금이 그 위나라에서 도망쳐 온 오기를 계속 중용한다는 것은 위나라와의 친교를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魯君疑之,謝吳起。

노나라 임금 역시 심중에 의혹이 생겨 오기를 해임했다.

 

吳起於是聞魏文侯賢,欲事之。文侯問李克曰:「吳起何如人哉?」

오기는 찾아갈 곳을 궁리하다가 당시에 현군이라고 칭송받던 위문후를 섬기려 했다. 문후는 중신인 이극에게 오기의 사람됨을 묻기를 “오기는 어떤 사람입니까?”하니

 

李克曰:「起貪而好色,[一]然用兵司馬穰苴不能過也。」

이극이 이르기를, “오기는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좋아하기는 하나 용병에 있어서는 사마양저와 겨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하였다.

 

於是魏文候以為將,擊秦,拔五城。

그리하여 문후는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다. 과연 오기는 진나라를 쳐서 5개 성을 함락시켰다.

 

起之為將,與士卒最下者同衣食。臥不設席,行不騎乘,

오기는 장군이 되어 언제나 하급 병졸들과 의식을 같이 했고 누울 때도 자리를 까는 법이 없었으며 행군할 때도 수레에 타지 않았다.

 

親裹贏糧,與士卒分勞苦。卒有病疽者,起為吮之。[一]

또한 자기가 먹을 양식은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노고를 나누었다. 언젠가 병졸들 가운데 종기를 앓는 사람이 생기자 오기는 그를 위하여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었다.

 

卒母聞而哭之。人曰:「子卒也,而將,軍自吮其疽,何哭為?」

병졸의 어머니는 그 소문을 듣고 소리 내어 우니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 아들은 병졸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친절하게도 종기를 발아 주기까지 하지 않았소. 어찌 우는 것입니까?”

 

母曰:「非然也。往年吳公吮其父,其父戰不旋踵,遂死於敵。

그 어머니는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오기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주었습니다. 그 아비는 감격한 나머지 끝가지 도망하지 않고 싸우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吳公今又吮其子,妾不知其死所矣。是以哭之。」

오공께서 지금 또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셨으니 첩은 그 자식도 싸우다가 죽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하였다.

 

文侯以吳起善用兵,廉平,盡能得士心,乃以為西河守,以拒秦、韓。

문후는 오기가 용병술에 뛰어날 뿐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하여 사졸의 인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를 서하 태수로 임명하여 진나라와 한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魏文侯既卒,起事其子武侯。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而謂吳起曰

:위 문후가 죽자 오기는 계속해서 문후의 아들 무후를 섬겼다. 무후는 어젠가 배를 서하에 띄우고 물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 지점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말하기를,

 

「美哉乎山河之固,此魏國之寶也!」

“참으로 아름답구려, 산하의 견고함이여 이것들이 우리 위나라의 보배입니다.”하니

 

起對曰:「在德不在險。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德義不修,禹滅之。

이에 오기가 답하기를 “임금의 덕일 뿐 험난한 지형은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는 동정호를 왼쪽에 끼고 팽려호를 오른 쪽에 두었으나 덕의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의 우왕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夏桀之居,左河濟,右泰華,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一]修政不仁,湯放之。

하나라의 걸왕이 도읍한 곳은 하수와 제수를 왼쪽에 끼고 태산과 화산을 오른쪽에 두었으며 이궐이 그 남쪽에 있고 양양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가 어질지 못한 나머지 상나라 탕왕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殷紂之國,左孟門,[二]右太行,常山在其北,大河經其南,修政不德,武王殺之。

은나라 주왕은 맹문산을 왼쪽으로 하고 태행산을 오른쪽으로 하고 상산이 그 북쪽에 있고 하수가 그 남쪽에 둘렀으나 주왕이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나라 무왕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由此觀之,在德不在險。若君不修德,舟中之人盡為敵國也。」[三]武侯曰:「善。」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문제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난함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임금님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무후는 이르기를 ‘과연 옳은 말이로다.“ 했다.

 

*(即封)*吳起為西河守,甚有聲名。魏置相,相田文。[一]

오기에게 계속 서하 태수를 맡겼다. 이로부터 오기의 명성은 더욱 높아갔다. 위나라에서는 새로 재상의 직을 설치해 전문을 임영했다.

 

吳起不悅,謂田文曰:「請與子論功,可乎?」

오기는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전문에게 말을 걸기를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소?”하니

 

田文曰:「可。」

전문이 이르기를 “좋소.”하였다.

 

起曰:「將三軍,使士卒樂死,敵國不敢謀,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3군의 장군이 되어 사졸들로 하여금 기꺼이 나라를 위해 죽도록 하며 또 적국이 감히 우리 위나라를 넘볼 수 없게 하는 점에서 당신과 나와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오.”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에 어찌 미칠 수 있겠소.” 라고 했다.

 

起曰:「治百官,親萬民,實府庫,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백관을 다스리고 백성들의 신뢰를 받으며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점에서 누가 낫겠소?”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을 따를 수 없소.”했다.

 

起曰:「守西河而秦兵不敢東鄉,韓趙賓從,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가 감히 동쪽을 향해 우리 위나라를 칠 생각을 못하게 하고 한·조 두 나라를 함께 복종하게 만든 점에서 누가 낫겠소.”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을 따를 수 없소.”했다.

 

起曰:「此三者,子皆出吾下,而位加吾上,何也?」

오기가 이르기를,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만 못한데 지위는 나보다 높으니 무슨 까닭이오?” 하니

 

文曰:「主少國疑,大臣未附,百姓不信,方是之時,屬之於子乎?屬之於我乎?」

전문이 이르기를, “지금은 임금님께서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온 나라가 불안에 싸였소. 대신들은 아직 왕에게 심복하지 않으며 백성들도 왕을 신뢰하지 못하오. 이런 시기에 당신에게 맡길까요? 나에게 맡길까요?”하니

 

起默然良久,曰:「屬之子矣。」

오기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이르기를, “당신에게 맡기겠지요.”하였다.

 

文曰:「此乃吾所以居子之上也。」吳起乃自知弗如田文。

전문이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앉게 된 까닭이오.”하였다. 그제야 오기는 자신이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자인했다.

 

注[一]索隱按:呂氏春秋作「商文」。

田文既死,公叔為相,[一]尚魏公主,而害吳起。公叔之僕曰:「起易去也。」

그 뒤 전문이 죽자 공숙이 재상이 되었다. 공숙은 또한 위나라의 부마로 위세를 떨쳤다. 그는 오기를 해치려 했는데 때마침 부하 하나가 진언하기를 “오기를 내쫓기란 쉽습니다.” 하니

 

公叔曰:「柰何?」

공숙이 이르기를 “어떻게 말이냐?”하니

 

其僕曰:「吳起為人節廉 而自喜名也。君因先與武侯言曰

:부하가 이르기를 “오기란 사람은 절조가 굳세고 청렴하지만 이름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상공께서 먼저 임금과 말씀하실 기회를 만들어 말씀하기를,

 

『夫吳起賢人也,而侯之國小,又與彊秦壤界,臣竊恐起之無留心也。』

‘오기는 현인입니다. 임금께선 나라도 작은데 강한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신은 오기가 우리 나라에 머무를 생각이 없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武侯卽曰:『柰何?』

무후께서는 곧 이르기를 ‘어떻게 하면 머무르게 할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君因謂武侯曰:『試延以公主,起有留心 則必受之。無留心則必辭矣。以此卜之。』

그러면 상공께서는 무후님께 이르기를 ‘시험삼아 공주를 시집보내도록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오기가 머무를 생각이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고 머무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사양할 것이니 이것으로 점쳐 보십시오.’ 하였다.

 

君因召吳起而與歸,令公主怒而輕君。吳起見公主之賤君也,則必辭。」

임금은 오기를 초대하여 함께 댁으로 가신 뒤에 공주로 하여금 성난 얼굴로 상공을 푸대접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하십시오. 오기는 공주가 상공를 푸대접하는 태를 보면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하였다.

 

於是吳起見公主之賤魏相,果辭魏武侯。

이리하여 오기는 공주가 위상을 천대하는 것을 보고 과연 무후에게 부마되기를 사양하고 말았다.

 

武侯疑之而弗信也。吳起懼得罪,遂去,卽之楚。

이를 계기로 무후는 오기를 의심하여 그를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오기는 죄를 입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떠나 바로 초나라로 건너갔다.

 

楚悼王素聞起賢,至則相楚。

초도왕은 일직부터 오기가 현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오기가 이르자 곧 초나라 재상에 임명했다.

 

明法審令,捐不急之官,廢公族疏遠者,以撫養戰鬪之士。

오기는 법을 밝히고 영을 살펴 필요하지 않은 벼슬을 없애며 또 왕족들 중에서도 이미 멀어진 사람들의 봉록을 폐지시켜 그 비용을 싸음에 종사하는 군인들에게 돌렸다.

 

要在彊兵,破馳說之言從橫者。

그는 강병책을 적극 추진해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는 유세객의 논리를 무시해 버렸다.

 

於是南平百越;北并陳蔡,卻三晉;西伐秦。

이리하여 남쪽으로 백월을 평정하고 북으로는 진·채를 병합하고 삼진을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쳤다.

 

諸侯患楚之彊。故楚之貴戚盡欲害吳起。及悼王死,宗室大臣作亂而攻吳起,

한편 제후들은 초나라가 강성해짐을 우환으로 여겼고 그래서 초나라 귀족들은 모두 오기를 미워하여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도왕이 죽자 종실의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일제히 오기를 공격하였다.

 

吳起走之王尸而伏之。擊起之徒因射刺吳起,并中悼王。[一]

오기는 마침내 쫓기다가 도왕의 영구를 둔 방으로 가서 시신 위에 엎드렸다. 그러나 오기를 쫓던 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기에게 화살을 소아 붙였다. 화살은 도왕의 시신까지 꿰뚫었다.

 

悼王既葬,太子立,[二]乃使令尹盡誅射吳起 而并中王尸者。坐射起 而夷宗死者七十餘家。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고 태자가 임금으로 앉자 영윤에게 명해서 오기를 쏘기 위해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쏘아 댄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는데 이로 인해 멸족의 화를 입은 집은 70여 세대나 되었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世俗所稱師旅,皆道孫子十三篇,吳起兵法,世多有,

“세상에서 군사를 논하는 사람은 모두 손자 13편에 대해서 말하고 오기의 병법도 세상에 많이 유포되어 있다.

 

故弗論,論其行事所施設者。

그러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사적과 시책에 대해서만 논했다.

 

語曰:「能行之者 未必能言, 能言之者 未必能行。」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능히 말하는 것은 아니며 능히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능히 행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

 

孫子籌策龐涓明矣,然不能蚤救患於被刑。

손빈은 방연을 치는 데에는 그렇게 밝았지만 그에 앞서 그에게 형벌을 당하는 화를 방지하지 못했다.

 

吳起說武侯以形勢不如德,然行之於楚,以刻暴少恩亡其軀。悲夫!

오기는 무후에게는 형세가 덕만 못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초나라에서 행한 것은 각박하고 몰인정하여 자신의 몸을 망쳤으니 슬픈 일인저 ! 

 

임헌영의 문학과 인문학. 25. 손자병법

https://www.youtube.com/watch?v=vtRON-TJ0sg 

 

 

임헌영의 문학과 인문학. 26. 오자병법

https://www.youtube.com/watch?v=TqRGI2At6HA 

 

 

임헌영의 문학과 인문학. 27. 육도삼략과손빈

https://www.youtube.com/watch?v=_jEM7NDj-1o
 
https://ko.wikipedia.org/wiki/%EC%9C%A1%EB%8F%84_(%EB%B3%91%EB%B2%95)
https://ko.wikipedia.org/wiki/%EC%9C%A1%EB%8F%84_(%EB%B3%91%EB%B2%95)

육도》(六韜)는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서로, 무경칠서 중의 하나이다. 《삼략》과 같이 병칭된다. ‘도’(韜)는 검이나 활 등을 넣는 봉투의 의미이다.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 등 6권 60편으로 완성되어, 모든 편목이 태공망 강상(太公望姜尙)이 주 문왕, 무왕에 병법을 전수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요

선진(先秦)의 고서(古書) 《육도》는 송나라 시대에 간행된 송간행본이 통용으로 보급되었지만,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 〈병서략〉(兵書略)에 육도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수서경적지》(隋書經籍志) 〈병가〉(兵家)에 그 《육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요제항(姚際恒)은 고금위서고(古今偽書攷)에서 진한 이후의 위작이라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1972년 발굴된 은작산 한나라 무덤에 출토된 죽간에 〈문도〉, 〈무도〉, 〈호도〉 등 일부가 남아 있는 편목이 발견되어 전한 전반기 기원전 2세기에는 이미 유포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육도는 전국시대에 저작되었다는 설이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 건국 공신인 참모 장량이 황석공에게 양도했다고 하는 서적이기도 하다.


무경칠서 (武經七書) & 무경십서(武經十書)무경칠서무경십서(무경칠서 + 3)
 
 
삼략》(三略)은 중국의 병법서이다. 무경칠서 중의 하나이다. 《황석공기》(黄石公記), 《황석공삼략》(黄石公三略)이라고 칭해진다.

〈상략〉(上略), 〈중략〉(中略), 〈하략〉(下略)의 3개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그 때문에 삼략이라고 한다. 강태공이 지었다고 하고, 황석공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의 전투양상은 전차전인데 책 본문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마전의 언급과 그 시대에 사용되지 않는 장군이라는 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인물이 태공망, 황석공이라는 이름으로 쓴 위서라는 의심도 받는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C%8B%AD%EC%9C%A1%EA%B3%84

 

삼십육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삼십육계》(三十六計, 영어: Thirty-Six Stratagems)는 중국의 병법서이다. 병법에 있어서의 전술 36개를 여섯 항목으로 나누어 모은 것이다. 36계는 승전계, 적전계, 공전계, 혼전계, 병전계, 패전계

ko.wikipedia.org

 

https://kydong77.tistory.com/21110

 

5-1. 孫武列傳(손무열전)/史記卷六十五 孫子吳起列傳/손자병법13편

https://ko.wikipedia.org/wiki/%EC%86%90%EC%9E%90%EB%B3%91%EB%B2%95 손자병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민국의 드라마에 대해서는 TV 손자병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손자병법》(중국어: 孫子兵法

kydong77.tistory.com

1.시계편(始計篇) On assessment : 전쟁에 앞서 승산을 파악하고 기본 계획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전략(또는 전력)의 다섯가지 요소(오사)와 서로의 전략 요소를 비교하는 일곱 가지 기준(칠계), 그리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적을 속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작전편(作戰篇) On waging battle :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서의 경제성에 대해 논한다. 전쟁의 속전속결을 강조하며,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 적의 것을 빼앗아 사용하는 등의 방식을 언급한다.

3.모공편(謀攻篇) Planning the attack : 손실이 없는 승리를 쟁취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그리고 지피지기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4군형편(軍形篇) Strategic positions : 군의 형세를 보고 승패를 논함.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놓고 전쟁을 추구하는 만전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5.병세편(兵勢篇) Strategic Advantages : 공격과 방어, 세의 활용을 논함. 용벙에서 정병과 기병의 원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6.허실편(虛實篇) The weak points and the strong points : 주도권과 집중을 논함. 적의 강점을 피하고 허점을 강조하고 있다.

7.군쟁편(軍爭篇) Armed contest : 실제 전투의 방법을 서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문제(군쟁)와 이를 위한 우회기동(우직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8.구변편(九變篇) Adapting to the Nine Contingencies : 변칙에 대한 임기응변(구변),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오리), 장수가 경계해야 할 위험(오위) 및 만전의 대비태세를 강조하고 있다.

9.행군편(行軍篇) Deploying the army : 행군과 주둔시 유의해야 할 사항, 정보 수집을 위한 각종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0.지형편(地形篇) The terrain : 지형의 이해 득실과 장수의 책임을 논하고 있다.

11.구지편(九地篇) The nine terrains : 지형의 이용, 적의 취약점 조성과 주도권 쟁취, 기동의 신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12.화공편(火攻篇) Attack by Fire : 화공의 원칙과 방법을 설명하고 전쟁과 전투를 신중히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3.용간편(用間篇) Use of espionage : 정보의 중요성과 그를 위해 간첩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초고 1891년 완성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C%A0%EA%B2%AC%EB%AC%B8

 

서유견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유견문》(西遊見聞)은 1895년에 유길준이 미국 유학 중에 보고 배운 것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책이다.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구 문화 전 영역을 포괄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백과사전적

ko.wikipedia.org

 

《서유견문》(西遊見聞)은 1895년 유길준 미국 유학 중에 보고 배운 것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이다.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구 문화 전 영역을 포괄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백과사전적 저술이다.[1]

목차

  • 서문
  • 제1편
    • 지구 세계의 개론
    • 6대주의 구역
    • 나라의 구별
    • 세계의 산
  • 제2편
    • 세계의 바다
    • 세계의 강
    • 세계의 호수
    • 세계의 인종
    • 세계의 물산
  • 제3편
    • 나라의 권리
    • 국민의 교육
  • 제4편
    • 국민의 권리
    • 인간 세상의 경쟁
  • 제5편
    • 정부의 시초
    • 정부의 종류
    • 정부의 정치 제도
  • 제6편
    • 정부의 직분
  • 제7편
    • 세금 거두는 법규
    • 납세의 의무
  • 제8편
    • 세금이 쓰는 일들
    • 정부에서 국채를 모집하여 사용하는 까닭
  • 제9편
    • 교육하는 제도
    • 군대를 양성하는 제도
  • 제10편
    • 화폐의 근본
    • 법률의 공도
    • 경찰 제도
  • 제11편
    • 당파를 만드는 버릇
    • 생계를 구하는 방법
    • 건강을 돌보는 방법
  • 제12편
    • 애국하는 충성
    • 어린이를 양육하는 방법
  • 제13편
    • 서양 학문의 내력
    • 서양 군제의 내력
    • 유럽 종교의 내력
    • 학문의 갈래
  • 제14편
    • 상인의 대도
    • 개화의 등급
  • 제15편
    • 결혼하는 절차
    • 장사 지내는 예절
    • 친구를 사귀는 법
    • 여자를 대접하는 예절
  • 제16편
    • 옷.음식.집의 제도
    • 농작과 목축의 현황
    • 놀고 즐기는 모습
  • 제17편
    • 빈민 수용소
    • 병원
    • 정신박약아 학교
    • 정신 병원
    • 맹아원
    • 농아원
    • 교도소
    • 박람회
    • 박물관과 동.식물원
    • 도서관
    • 강연회
    • 신문
  • 제18편
    • 증기기관
    • 와트의 약전
    • 기차
    • 기선
    • 전신기
    • 전화기
    • 회사
    • 도시의 배치
  • 제19편
    • 각국 대도시의 모습
    • 미국의 여러 대도시
    • 영국의 여러 대도시
  • 제20편
    • 프랑스의 여러 대도시
    • 독일의 여러 대도시
    • 네덜란드의 여러 대도시
    • 포르투갈의 여러 대도시
    • 스페인의 여러 대도시
    • 벨기에의 여러 대도시

영향

이 책이 나옴에 따라 이 당시의 책과 잡지가,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갑오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9LXA4qO1d3E 

초고 1891년 완성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607100069 

 

인물로 본 한국 외교사 (22) 유길준(兪吉濬)

근대화 개혁의 이론적 토대 마련

monthly.chosun.com

 

동도서기론을 정립한 ‘유학파 사대부’
 

  유길준은 메이지 유신으로 성공한 일본을 발전모델로 삼았지만, 전통적 유교사상을 배격하고 서구적 근대화를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과는 생각을 달리했다. 유길준의 근대화는 자기정체성은 지키면서 서구문명의 장점을 수용해 개혁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유학(留學)을 통해 동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학을 조화시킨 동도서기의 근대화론을 설계한 것이다.
 
  그는 시의적절한 개혁을 위해서 전통적 유교 윤리 체계를 보수해야 하지만 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수구당은 ‘개화의 원수’로, 남의 겉모습만 따르는 자는 ‘개화의 병신’이라고 공히 비판했다. 전통적 실학과 근대적 사회진화론을 접목시킨 그의 이러한 노선을 ‘조화와 균형’으로 함축해 본다. 그는 문체에서도 동서고금의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국한문 혼용체로도 표출되었다. 이러한 그의 조화와 균형은 국제정치와 외교의 영역에서도 두드러지게 돋보인다. 구한말 만국공법이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사대질서와 근대적인 주권평등질서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이미 아시아와 서구 양측에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adno6fFq7UMD4d1GpUglm1uUXQscUn4ykmcnICldV3lIEbPpJX3a1j1lm1Fjx0oo.cha-was01_servlet_engine1?nttId=78674&bbsId=BBSMSTR_1008&pageUnit=0&search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searchUseYn=&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

 

문화재청 > 월간문화재사랑 상세 > 『서유견문』, ‘서양’을 번역해 ‘근대’와 소통하다.

 

www.cha.go.kr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기록한 ‘서양’의 모든 것

『서유견문』은 근대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집대성한 저작으로서 ‘개화(開化)’와 ‘반개(半開)’ 및 ‘미개(未開)’로 위계화된 문명의 피라미드 속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대의 서양을 71개 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정치체제의 구분과 정당의 조직, 조세와 화폐제도, 군대와 경찰, 교육과 학문, 종교와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서유견문』이 기록해 놓은 ‘서양’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서양’을 소개한 동시대의 저작 가운데 정치와 경제, 천문과 지리, 역사와 과학을 망라한 텍스트는 『서유견문』이 유일하다. 『서유견문』에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뿐만 아니라 블루멘바흐(Johann Blumenbach)의 인종론과 지진에 관한 지질학자 다나(James Dana)의 학설, 그리고 ‘천하의 명장(名將)’ 몰트케(Helmuth Moltke)의 일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교차되어 있다.

 

https://kydong77.tistory.com/19510

 

한글 창제의 독창성/ 신숙주, 동국정운/ 신미대사 창제설, 불경譯의 범어

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한글의 독창성과 그 우수성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에 따라 아설순치후를, 중성인 모음은 천지인을 형상화 한 점이다. 아설순치후 오음의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kydong77.tistory.com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adno6fFq7UMD4d1GpUglm1uUXQscUn4ykmcnICldV3lIEbPpJX3a1j1lm1Fjx0oo.cha-was01_servlet_engine1?nttId=78674&bbsId=BBSMSTR_1008&pageUnit=0&search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searchUseYn=&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 

 

『서유견문』, ‘서양’을 번역해 ‘근대’와 소통하다. | 월간문화재사랑 상세 - 문화재청

 

www.cha.go.kr

북학파 박규수와의 인연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제자로 중국에 들어온 천체망원경 등 선진 서양 문물에 감동하여 서양의 과학적 사고에 빠짐.

  유길준은 조선의 명문가 출신으로 서울 북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 이경직에게서 한문을 배우면서 양반 자제들과 어울렸다. 그가 당대의 실세 가문 자제인 민영익과 함께 공부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이 그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1873년 17세에 당시 근대화 개혁사상의 선구자로서 젊은이들을 교육 중이던 박규수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조선의 근대화에 눈을 뜨게 된다.
 
  두 사람의 인연에 얽힌 이야기가 《과정록(過庭錄)》에 전해오고 있다.

  유길준이 미국 유학을 시작할 당시에는 아직 공사관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일본에서부터 면식이 있던 사회진화론자 모스(Edward Morse) 박사를 찾아갔다. 유길준은 그의 집에서 개인지도를 받으며 그의 사회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8개월 후, 유길준은 더머 아카데미(Governor Dummer Academy)에 입학했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영어를 배운 지 7개월 만에 영문 편지를 쓸 정도로 어학 능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한창 공부에 매진하고 있던 그에게 1884년 12월, 충격적인 갑신정변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는 유학생들의 귀국을 지시했다. 유길준도 연락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로에 유럽을 경유하면서 서양 정세를 살피고 견문을 넓혔다(유길준이 유학했던 미국 더머 아카데미는 120여 년이 지난 2003년, 유길준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박수량(1491∼1554)

 

 

▲ 조선 중기 중종·인종·명종 때 문신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 앞에 놓인 호패형 빗돌 비석으로, 글이 써 있지 않은 백비(白碑)이다.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박수량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장례도 치르지 못할 만큼 빈곤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때 그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 찬양한다는 것이 누가 될 수 있다 하여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귀감이 되는 청백리의 상징적 유물로서 그 의미가 깊다.

[출처] 장성에서 배운다 .박수량의 백비는 무엇을 남겼나?
출처 : 프리존경제tv(http://www.freezonetv.co.kr)

 

조선중기 청백리 표상…현장학습 인기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503165.html

 

장성 박수량 선생 ‘백비’ 공무원들 찾는 까닭은…

조선중기 청백리 표상…현장학습 인기

www.hani.co.kr

 

 

https://www.youtube.com/watch?v=SGAg-88HVts 

 

 

https://www.youtube.com/watch?v=x0gQtQLNyls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88%98%EB%9F%89

 

박수량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박수량(朴守良, 1491년 ~ 155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전라도 장성현 소곡 출신으로, 본관은 태인(泰仁)이고, 자는 군수(君遂)이다.[1] 품계 자헌대부(資憲大夫)와 청백리(淸白吏)에

ko.wikipedia.org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11208/42475413/1

 

碑文없는 비석앞 공무원들 머리숙이는 이유는

7일 오후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자리한 아곡 박수량 선생(1491∼1554)의 묘. 비문이 없는 하얀 비석 앞에 공무원 100명이 머리를 숙였다. 이들은 ‘청념 교육’을 받기 위…

www.donga.com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자리한 아곡 박수량 선생(1491∼1554)의 묘. 비문이 없는 하얀 비석 앞에 공무원 100명이 머리를 숙였다. 이들은 ‘청념 교육’을 받기 위해 장성을 찾은 중앙공무원교육원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 장성군 문화해설사로부터 ‘백비(白碑)’가 세워진 사연을 들은 교육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비를 만졌다. 

(~중략~)

‘청백리(淸白吏)의 혼’이 살아 숨쉬는 장성군에 옛 선현의 청렴사상과 강직함을 배우려는 공직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공무원교육원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들은 이날 9월, 11월에 이어 세 번째로 장성을 찾았다. 교육원은 1박 2일간 장성에서 청렴교육과 현장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육생들은 아곡의 16대손인 한학자 박래호 씨(69)에게 ‘아곡 박수량의 생애와 공직관’을 주제로 특강을 들은 뒤 백비를 참배했다. 이튿날에는 조선 중종 때 명신(名臣)인 지지당 송흠 선생(1459∼1547)이 지은 관수정(觀水亭)을 둘러봤다. 51년간 관직생활을 한 지지당은 중종 때 5차례나 청백리로 뽑힌 명신이었다. 이들은 옛 선비들이 들었던 ‘청백리 밥상’도 맛봤다. 김치와 전, 두부조림, 나물 등으로 차려진 1식 5찬을 들며 청렴사상을 되새겼다.

 

www.youtube.com/watch?v=eWdDSpaZmhU  

 

https://kydong77.tistory.com/20744

 

김소월,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명시 100선

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1490&categoryId=60538&cid=60538 김소월 2000년대 초, 한 시(詩)전문 계간지에서 시인과 평론가 백 명에게 지난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시인 열 명을 선정해달라는 설문을..

kydong77.tistory.com

 

 

진달내꽃
ㅡ 김소월

* (1922년 원문 표기)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藥山
진달내ᄭᅩᆺ
아름ᄯᅡ다 가실길에 ᄲᅮ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ᄭᅩᆺ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현대 표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1925), 《진달내꽃》, 매문사, 190-191.

 

* '즈려 밟다'에 대하여

1. '짓밟다'는  '사뿐히'와 의미 연결이 상통할 수 없음.

2. 평안도 사투리설.  '짓밟다'의 뜻.

3.서울말의 '지레'로 봄이 타당함. '미리'의 뜻. (내 안 볼 때 미리 먼저....)

*감정과 논리적 관점에서 3.이 타당성을 지님.

 

 

정책개발은 뒷전이고, 지역 정서에 의존하는 대선판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1/10/999638/

 

"윤석열 든든하겠네" 잇단 실언에도 5060 지지 결집

與野 대선주자 적합도 분석 尹 33.6% vs 洪 29.6% 고발사주 의혹 논란으로 洪에게 1위 자리 내줬던 尹 보수층 표심 결집하며 반등 60대 이상 지지 12%P 올라 洪에 쏠린 2030 표심이 변수

www.mk.co.kr

與野 대선주자 적합도 분석

尹 33.6% vs 洪 29.6%

 

 

 

https://www.youtube.com/watch?v=YMKyQcMxK9g 

 

 

https://www.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110221327001

 

‘전두환 비석’ 두 번 밟은 이재명, 윤석열 향해 “존경하는 분이면 밟기 어려웠을 텐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전두환 기념비석’을 두 ...

www.khan.co.kr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2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며, 묘역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서 있다.

*22일 오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옛 망월묘역) 입구 땅에 박혀 있는 '전두환 기념비'.   '전두환 기념비'는 1982년 전두환씨의 전남 담양군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던 비석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비석의 일부를 떼어내 가져와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설치했다.

 

 

[군말] 집권자가 비석은 왜 세워? 집권 합리화를 위해 기념비를 세운 잘못을 뉘게 탓하랴.

기념비 운운, 하면 비석은 후세인들이 세우는 것이라고 어른답게 꾸짖었어야 할 일이었을 텐데.

 

[참고] 전두환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B%91%90%ED%99%98

 

전두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이다. 1979년 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였다. 1년후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 간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본관은 완산이며 경상남도 합천 출생이다. 위키백과

출생: 1931년 3월 6일 (90세), 합천군

배우자이순자 (1958년–)

재임 기간: 1980년 8월 27일–1988년 2월 24일

 

https://kydong77.tistory.com/19825

 

맹자, 공손추 하 - 14.無官守無言責(무관수무언책)

m.blog.naver.com/sohoja/220307562179 맹자 56 - 공손추 하 13, 14 맹자 56 - 공손추 하 13 孟子去齊。充虞路問曰 夫子若有不豫色然。 前日虞聞諸夫子曰 ‘君子不怨天,不尤人... blog.naver.com jij37.com/index..

kydong77.tistory.com

지켜야 할 벼슬도 없고 간언할 책임도 없으니 사직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zV-D_yLkBY 

 

 

https://www.youtube.com/watch?v=dX8L5pPfx5k 

 

https://kydong77.tistory.com/18252?category=486096 

 

고려산 진달래꽃밭

https://www.youtube.com/watch?v=eWdDSpaZmhU&t=113s https://www.youtube.com/watch?v=KhLexw_eGTk https://www.youtube.com/watch?v=CkuuAlORAKE https://www.youtube.com/watch?v=YZZQT-Vf1jM https://www.y..

kydong77.tistory.com

 

 

한성열교수, 한국인의 마음의 병, 화병(火病)/ 火> 炎> 談(말로 풀라)> 相談

https://www.youtube.com/watch?v=1QRUG1uY96M 

 

 

https://www.youtube.com/watch?v=72ClP2gH13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