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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남염부주지/ 3계,지하세계 · 지표세계 · 천상세계& 6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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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오신화 5작품 중 유일하게 한시를 사용하지 않은 사상소설이다.

남염부주지

-김시습

 

成化初, 慶州有朴生者, 以儒業自勉.

성화(成化) 초년에 경주에 박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常補大學館, 不得登一試, 常怏怏有憾,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 에서 공부하였지만, 한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而意氣高邁, 見勢不屈, 人以爲驕俠.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然對人接話, 淳愿慤厚, 一鄕稱之.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生嘗疑浮屠巫覡鬼神之說, 猶豫未決,

박생을 일찍부터 부도(浮圖:불교).무격.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旣而質之中庸, 參之易辭, 自負不疑.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이상의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而以淳厚, 故與浮屠交, 如韓之顚, 柳之巽者, 不過二三人.

그러나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도 온후하였으므로 스님들과도 잘 사귀었는데,

한유와 태전의 사이나 유종원과 손상인의 사이처럼 가까운 이들도 두세 사람 있었다.

 

 

浮屠亦以文士交, 如遠之宗雷, 遁之王謝, 爲莫逆友.

스님들도 또한 그를 문사로서 사귀었다.

혜원이 종병.뇌차종과 사귀었던 것처럼, 지둔이 왕탄지.사안과 사귀었던 것처럼

막역한 벗이 많았다.

 

 

一日, 因浮屠, 問天堂地獄之說, 復疑云:

박생이 어느 날 한 스님에게 천당과 지옥의 설에 대하여 묻다가,

다시 의심이 생겨서 말하였다.

 

 

“天地一陰陽耳. 那有天地之外, 更有天地? 必詖辭也.”

"하늘과 땅에는 하나의 음(陰)과 양(陽)이 있을 뿐인데,

어찌 이 하늘과 땅 밖에 또 다른 하늘과 땅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問之浮屠, 浮屠亦不能決答, 而以罪福響應之說答之, 生亦不能心服也.

그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도 또한 결정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였다.

'죄와 복은 지은 데 따라서 응보가 있다.' 는 설로써 대답하였다.

박생은 역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常著一理論, 以自警, 蓋不爲他岐所惑. 其略曰:

박생은 일찍이「일리론(一理論)」이란 논문을 지어서 자신을 깨우쳤는데,

이는 이단(불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대략은 이렇다.

 

 

“常聞天下之理, 一而已矣.

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들으니,

'천하의 이치는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一者何? 無二致也. 理者何? 性而已矣.

'한 가지'란 무엇인가? 두 가지 이치가 없음을 말한다.

이치란 무엇인가? '천성'을 말한다.

 

 

性者何? 天之所命也.

'천성'이란 무엇인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 理亦賦焉.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써 만물을 만들 때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었는데, 이치도 또한 타고나게 되었다.

 

 

所謂理者, 於日用事物上, 各有條理,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일용 사물에 있어서

각각 조리를 가지는 것이다.

 

 

語父子則極其親, 語君臣則極其義,

예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사랑을 다하여야 하고,

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리를 다하여야 하며,

 

 

以至夫婦長幼, 莫不各有當行之路,

남편과 아내 .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각기 당연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하였다.

 

 

是則所謂道而 理之具於吾心者也.

이것이 바로 '도(道)'이다.

우리 마음속에 이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循其理, 則無適而不安, 逆其理而拂性, 則菑逮.

이 이치를 따르면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하지 않지만,

이 이치를 거슬러서 천성을 어긴다면 재앙이 미치게 될 것이다.

 

 

窮理盡性, 究此者也. 格物致知, 格此者也.

'궁리진성(窮理盡性)'은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고,

'격물치지(格物致知)'도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다.

 

 

蓋人之生, 莫不有是心, 亦莫不具是性,

사람은 날 때부터 모두 이 마음을 가졌으며,

또한 이 천성을 갖추었다.

 

而天下之物, 亦莫不有是理.

천하의 사물에도 또한 이 이치가 모두 있다.

 

 

以心之虛靈, 循性之固然, 卽物而窮理, 因事而推源, 以求至乎其極,

허령(虛靈)한 마음으로써 천성의 자연을 따라 만물에 나아가 이치를 연구하고,

일마다 근원을 추구하여 그 극치에 이르게 된다면,

 

 

則天下之理, 無不著現明顯, 而理之至極者, 莫不森於方寸之內矣.

천하의 이치가 모두 나타나 분명해질 것이며,

이치의 지극함이 마음속에 모두 벌여질 것이다.

 

 

以是而推之, 天下國家, 無不包括, 無不該合, 參諸天地而不悖,

이러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본다면 천하와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괄되고 해당될 것이니,

천지 사이에 참여하더라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質諸鬼神而不惑, 歷之古今而不墜, 儒者之事, 止於此而已矣.

또 귀신에게 질문하더라도 미혹되지 않을 것이며,

오랜 세월을 지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유학자가 할 일은 오직 이에서 그칠 뿐이다.

 

 

天下豈有二理哉? 彼異端之說, 吾不足信也.”

천하에 어찌 두 가지의 이치가 있겠는가?

저 이단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一日, 於所居室中, 夜挑燈讀易, 支枕假寐,

하루는 박생이 자기 거실에서 등불을 돋우고

『주역』을 읽다가 베개를 괴고 언뜻 잠이 들었는데,

 

忽到一國, 乃洋海中一島嶼也.

홀연히 한 나라에 이르고 보니

바로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

 

 

其地無草木沙礫, 所履非銅則鐵也.

그 땅에는 본래 풀이나 나무가 없었고, 모래나 자갈도 없었다.

발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구리가 아니면 쇠였다.

 

 

晝則烈焰亘天, 大地融冶, 夜則凄風自西, 砭人肌骨, 吒波不勝. 낮에는 사나운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 땅덩이가 녹아 내리는 듯하였고, 밤에는 싸늘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사람의 살과 뼈를 에는 듯하였다. 타파(婆)를 견딜 수가 없었다.

 

 

又有鐵崖如城, 緣于海濱, 只有一鐵門, 宏壯, 關鍵甚固.

바닷가에는 쇠 벼랑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었는데,

굳게 잠긴 성문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守門者, 喙牙獰惡, 執戈鎚以防外物.

수문장은 물어뜯을 것 같은 영악한 자세로 창과 쇠몽둥이를 쥐고

외물(外物)을 막고 서 있었다.

 

 

其中居民, 以鐵爲室, 晝則焦爛, 夜則凍烈,

그 가운데 거주하는 백성들은 쇠로 지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서 문드러지고 밤에는 얼어 터졌다.

 

唯朝暮蠢蠢, 似有笑語之狀, 而亦不甚苦也.

오직 아침과 저녁에만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별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生驚愕逡巡, 守門者喚之. 生遑遽不能違命, 踧踖而進.

박생이 깜짝 놀라서 머뭇거리자, 수문장이 그를 불렀다.

박생은 당황하였지만 명을 어길 수 없어, 공손하게 다가갔다.

 

 

守門者, 竪戈而問曰: “子何如人也?”

수문장이 창을 세우고 박생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生慄且答曰: “某國某土某, 一介迂儒,

박생이 두려워 떨면서 대답하였다.

"저는 아무 나라에 사는 아무개인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선비입니다.

 

干冒靈官, 罪當寬宥, 法當矜恕!”

감히 영관(靈官)을 모독하였으니 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십시오."

 

 

拜伏再三, 且謝搪突([扌+突]). 守門者曰:

박생이 엎드려 두세 번 절하며 당돌하게 찾아온 것을 사죄하자,

수문장이 말하였다.

 

 

“爲儒者, 當逢威不屈, 何磬折之如是?

"선비는 위협을 당하여도 굽히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대는 어찌 이처럼 지나치게 굽히시오?

 

 

吾儕欲見識理君子久矣.

우리들이 이치를 잘 아는 군자를 만나려 한 지가 오래 되었소.

 

 

我王亦欲見如君者, 以一語傳白于東方. 少坐! 吾將告子于王.”

우리 임금께서 그대와 같은 군자를 한번 만나서

동방 사람들에게 한 말씀을 전하려 하신다오.

잠깐만 앉아 계시면, 내가 곧 우리 임금께 아뢰겠소."

 

 

言訖, 趨蹌而入, 俄然出語曰:

말을 마치자 수문장은 빠른 걸음으로 성안에 들어갔다.

얼마 뒤에 그가 나와서 말하였다.

 

 

“王欲延子於便殿! 子當以訏言對,

"임금께서 그대를 편전(便殿)에서 만나시겠다니,

아무쪼록 정직한 말로 대답하시오.

 

 

不可以威厲諱, 使我國人民, 得聞大道之要!”

위엄이 두렵다고 숨기면 안 되오.

우리 나라 백성들이 올바른 길(大道)의 요지를 알게 하여 주시오."

 

 

有黑衣白衣二童, 手把文卷而出, 一黑質靑字, 一白質朱字,

(말이 끝나자)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동자가 손에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하나는 검은 문서에 푸른 글자로 썼고,

다른 하나는 흰 문서에 붉은 글자로 쓴 것이었다.

 

 

張于生之左右以示之. 生見朱字, 有名姓, 曰:

동자가 그 문서를 박생의 좌우에서 펴 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박생의 이름이 붉은 글자로 씌어져 있었다.

 

 

“現住某國朴某, 今生無罪, 當不爲此國民.”

"현재 아무 나라 박아무개는 이승에서 지은 죄가 없으므로,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生問曰: “示不肖以文卷, 何也?”

박생이 (이 글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나에게 이 문서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童曰: “黑質者, 惡簿也. 白質者, 善簿也.

동자가 말하였다.

"검은 종이의 것은 악인의 명부이고,

흰 종이의 것은 선인의 명부입니다.

 

 

在善簿者, 王當以聘士禮迎之,

선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은 임금께서

선비를 초빙하는 예로써 맞이하십니다.

 

 

在惡簿者, 雖不加罪, 以民隸例勑之.

악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도 처벌하지는 않지만,

노예로 대우하십니다.

 

 

王若見生, 禮當詳悉.”

임금께서 만약 선비를 보시면

예를 극진히 하실 것입니다."

 

 

言訖, 持簿而入.

동자가 말을 마치더니,

그 명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須臾飆輪寶車, 上施蓮座,

얼마 뒤에 바람을 타고 수레가 달려왔는데,

그 위에는 연좌(蓮座)가 설치되어 있었다.

 

 

嬌童彩女, 執拂擎盖, 武隸邏卒, 揮戈喝道.

예쁜 동자와 동녀가 불자(拂子)를 잡고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무사와 나졸들이 창을 휘두르며 '물럿거라'고 외쳤다.

 

 

生擧首望之, 前有鐵城三重, 宮闕嶔峩, 在金山之下,

박생이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그 앞에 세 겹으로 된 철성(鐵城)이 있고,

높다란 궁궐이 금으로 된 산아래 있었는데,

 

 

火炎漲天, 融融勃勃.

뜨거운 불꽃이 하늘까지 닿도록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顧視道傍人物於火燄中, 履洋銅融鐵, 如蹋濘泥,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더니,

불꽃 속에서 녹아내린 구리와 쇠를 마치 진흙이라도 밟듯이

밟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生之前路可數十步許, 如砥而無流金烈火, 蓋神力所變爾.

그러나 박생의 앞에 뻗은 길은 수십 걸음쯤 되어 보였는데,

숫돌같이 평탄하였으며 흘러내리는 쇳물이나 뜨거운 불도 없었다.

아마도 신통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至王城, 四門豁開, 池臺樓觀, 一如人間.

왕성(王城)에 이르니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연못가에 있는 누각 모습이 하나같이 인간 세상의 것과 같았다.

 

 

有二美姝, 出拜扶携而入.

아름다운 두 여인이 마중 나와서 절하더니,

모시고 들어갔다.

 

 

王戴通天之冠, 束文玉之帶, 秉珪下階而迎.

임금은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허리에는 문옥대(文玉帶)를 띠였으며,

손에는 규(珪)를 잡고 뜰 아래까지 내려와서 맞이하였다.

 

 

生俯伏在地, 不能仰視. 王曰:

 

박생이 땅에 엎드려 쳐다보지도 못하자, 임금이 말하였다.

 

 

“土地殊異, 不相統攝, 而識理君子, 豈可以威勢屈其躬也?”

"서로 사는 곳이 달라서 통제할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이치에 통달한 선비를 어찌 위세로 굽히게 할 수가 있겠소?"

 

 

挽袖而登殿上, 別施一床, 卽玉欄金床也.

임금이 박생의 소매를 잡고 전각 위로 올라와

특별히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옥난간에 놓인 금으로 만든 자리였다.

 

 

坐定, 王呼侍者進茶.

자리를 잡자, 임금이 시자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生側目視之, 茶則融銅, 果則鐵丸也.

박생이 곁눈질하여 보았더니,

차는 구리를 녹인 물이었고 과일은 쇠로 만든 알맹이였다.

 

 

生且驚且懼, 而不能避, 以觀其所爲.

박생이 놀랍고도 두려웠지만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었다.

 

 

進於前, 則香茗佳果, 馨香芬郁, 薰于一殿.

시자가 다과를 앞에 올려 놓자,

향그런 차와 맛있는 과일의 아름다운 향내가 온 전각에 퍼졌다.

 

 

茶罷, 王語生曰:

차를 다 마시자 임금이 박생에게 말하였다.

 

 

“士不識此地乎? 所謂炎浮洲也.

"선비께선 이 땅이 어디인지 모르시겠지요.

속세에서 염부주(炎浮洲)라고 하는 곳입니다.

 

 

宮之北山, 卽沃焦山也.

왕궁의 북쪽 산이 바로 옥초산(沃焦山)입니다.

 

 

此洲在天之南, 故曰南炎浮洲,

이 섬은 하늘과 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주라고 부릅니다.

 

 

炎浮者, 炎火赫赫, 常浮大虛, 故稱之云耳.

'염부'라는 말은 불꽃이 활활 타서

언제나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지요.

 

 

我名燄摩, 言爲燄所摩也. 爲此土君師, 已萬餘載矣.

내 이름은 염마입니다.

불꽃이 내 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요.

내가 이 땅의 임금이 된 지가 벌써 만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壽久而靈, 心之所之, 無不神通, 志之所欲, 無不適意.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영통해져,

마음가는 대로 하여도 신통하지 않음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 적시 없었습니다.

 

 

蒼頡作字, 送吾民以哭之, 瞿曇成佛, 遣吾徒以護之.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에는 우리 백성을 보내어 울어주었고,

석가가 부처가 될 때에는 우리 무리를 보내어 지켜 주었소,

 

 

至於三五周孔, 則以道自衛, 吾不能側足於其間也.”

그러나 삼황(三皇) . 오제(五帝)와 주공.공자는 자기의 도를 지켰으므로,

나는 그 사이에 바로 설 수가 없었소."

 

 

生問曰: “周孔瞿曇, 何如人也?”

박생이 물었다.

"주공과 공자와 석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王曰: “周孔, 中華文物中之聖也. 瞿曇, 西域姦兇中之聖也.

임금이 말하였다.

"주공과 공자는 중화(中華) 문물(文物)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이요,

석가는 서역(西域)의 간흉한 민족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입니다.

 

 

文物雖明, 人性駁粹, 周孔率之.

문물이 비록 개명하였다 하더라도

성품이 박잡(駁雜)한 사람도 있고 순수한 사람도 있으므로,

주공과 공자가 이들을 통솔하였습니다.

 

 

姦兇雖昧, 氣有利鈍, 瞿曇警之.

간흉한 민족이 비록 몽매하다고 하더라도

기질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노둔한 사람도 있으므로,

석가가 이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周孔之敎, 以正去邪, 瞿曇之法, 設邪去邪.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정도(正道)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일이었고,

석가의 법은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以正去邪, 故其言正直, 以邪去邪, 故其言荒誕.

그러므로 정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고,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습니다.

 

 

正直故君子易從, 荒誕故小人易信,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으므로 군자들이 따르기가 쉬웠고,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으므로 소인들이 믿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其極致, 則皆使君子小人, 終歸於正理,

그러나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모두 군자와 소인들로 하여금 마침내 바른 도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未嘗惑世誣民, 以異道誤之也.”세상을 의혹시키고 백성을 속여서 이도(異道)로써 그릇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生又問曰: “鬼神之說, 乃何?”

박생이 또 물었다.

"귀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王曰: “鬼者, 陰之靈, 神者, 陽之靈,

임금이 말하였다.

" '귀(鬼)'는 음(陰)의 영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입니다.

 

 

蓋造化之迹, 而二氣之良能也.

귀신은 대개 조화(造化)의 자취이고,

이기[陰陽]의 양능(良能)입니다.

 

 

生則曰人物, 死則曰鬼神, 而其理則未嘗異也.”

살아있을 때에는 '인물'이라 하고 죽은 뒤에는 '귀신'이라 하지만,

그 이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生曰: “世有祭祀鬼神之禮, 且祭祀之鬼神, 與造化之鬼神, 異乎?”

박생이 말하였다.

"속세에서는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예법이 있는데,

제사를 받는 귀신과 조화의 귀신은 다릅니까?"

 

 

曰: “不異也. 士豈不見乎?

"다르지 않습니다. 선비는 어찌 그것도 알지 못합니까?

 

 

先儒云: ‘鬼神無形無聲,

옛 선비가 이르기를,

'귀신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然物之終始, 無非陰陽合散之所爲.’

그러나 물질이 끝나고 시작되는[시종(始終)] 것은

음양이 어울리고 흩어지는 데[합산(合散)] 따르는 것이고,

 

 

且祭天地, 所以謹陰陽之造化也. 祀山川, 所以報氣化之升降也.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것은 음양의 조화(造化)를 존경하는 것이며,

산천에 제사지내는 것은 기화(氣化)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享祖考, 所以報本, 祀六神, 所以免禍,

조상께 제사지내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고,

육신(六神)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皆使人致其敬也, 非有形質以妄加禍福於人間,

(이러한 제사들은) 모두 사람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지냅니다.

(이 귀신들이) 형체가 있어서 인간에게 화와 복을 함부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特人焄蒿悽愴, 洋洋如在耳.

그렇지만 사람들은 향불을 사르고 슬퍼하면서

마치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냅니다.

 

 

孔子所謂, 敬鬼神而遠之, 正謂此也.”

공자가 '귀신은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일러주신 것입니다."

 

 

生曰: “世有厲氣妖魅, 害人惑物, 此亦當言鬼神乎?”

박생이 말하였다.

"인간 세상에 여기(氣)와 요매(妖魅)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고 미혹시키는 일이 있는데,

이것도 또한 귀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王曰: “鬼者, 屈也. 神者, 伸也.

임금이 말하였다.

"귀(鬼)는 굽힌다[굴(屈)]는 뜻이고,

신(神)은 편다[신(伸)]는 뜻입니다.

 

 

屈而伸者, 造化之神也. 屈而不伸者, 乃鬱結之妖也.

굽히되 펼 줄 아는 것은 조화의 신이며,

굽히되 펼 줄 모르는 것은 울결(鬱結)된 요매(妖魅)들입니다.

 

 

合造化, 故與陰陽終始而無跡,

조화의 신은 조화와 어울렸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음양과 더불어 하며 자취가 없습니다.

 

 

 

滯鬱結, 故混人物寃懟而有形.

그러나 요매들은 울결되었으므로 인물과 혼동되고

사람을 원망하며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山之妖曰魈, 水之怪曰魊, 水石之怪曰龍罔象, 木石之怪曰夔魍魎,

산에 있는 요물을 초라 하고, 물에 있는 요물을 역이라 하며,

수석에 있는 요괴는 용망상(龍罔象)이라 하고,

목석에 있는 요괴는 기망량이라 합니다.

 

 

害物曰厲, 惱物曰魔, 依物曰妖, 惑物曰魅, 皆鬼也.

만물을 해치며 여라 하고, 만물을 괴롭히면 마(魔)라 하며,

만물에 붙어 있으면 요(妖)라 하고 만물을 미혹시키면 매(魅)라 합니다.

이들이 모두 귀(鬼)들입니다.

 

 

陰陽不測之謂神, 卽神也.

음양 불측(不測)을 신(神)이라고 하니,

이게 바로 신입니다.

 

 

神者, 妙用之謂也, 鬼者, 歸根之謂也.

신이란 묘용(妙用)을 말하는 것이고

귀(鬼)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天人一理, 顯微無間, 歸根曰靜, 復命曰常,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이고,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에 간격이 없으니,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천명을 회복하는 것을 상(常)이라 합니다.

 

 

終始造化, 而有不可知其造化之跡, 是卽所謂道也.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와 함께 하면서도

그 조화의 자취를 알 수 없는 것이 있느니,

이것을 바로 도(道)라고 합니다.

 

 

故曰: ‘鬼神之德, 其盛矣乎!’”

그래서『중용』에서도 '귀신의 덕이 크다'고 한 것입니다."

 

 

生又問曰: “僕嘗聞於爲佛者之徒, 有曰: ‘天上有天堂快樂處, 地下有地獄苦楚處,

박생이 또 물었다.

"제가 일찍이 불자들에게서 '하늘 위에는 천당이라는 쾌락한 곳이 있고,

땅 아래에는 지옥이라는 고통스러운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列冥([名])府十王, 鞠十八獄囚.’ 有諸?

그리고 '명부(冥府)에 십왕(十王)을 배치하여

십팔옥(十八獄)의 죄인들을 다스린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且人死七日之後, 供佛設齋以薦其魂, 祀王燒錢以贖其罪,

또 '사람이 죽은 지 칠 일 뒤에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재를 베풀어

그 영혼을 추천하고, 대왕께 정성 드리면 지전(紙錢)을 사르면

지은 죄가 벗겨진다'고 합니다.

 

 

姦暴之人, 王可寬宥否?”

간사하고 포악한 사람들도 임금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시겠습니까?"

 

 

王驚愕曰: “是非吾所聞.

임금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古人曰: ‘一陰一陽之謂道, 一闢一闔之謂變.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번 음(陰)이 되고

한번 양(陽)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는 것을 변(變)이라고 한다.

 

 

生生之謂易, 無妄之謂誠.’

낳고 또 낳음[생생(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망령됨이 없음을 성(性)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夫如是, 則豈有乾坤之外, 復有乾坤, 天地之外, 更有天地乎?

사리가 이와 같은데 어찌 건곤(乾坤) 밖에 다시금 건곤(乾坤)이 있으며,

천지밖에 다시금 천지가 있겠습니까?

 

 

如王者, 萬民所歸之名也. 三代以上, 億兆之主, 皆曰王, 而無稱異名.

임금이라 함은 만백성이 추대한 자를 말합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모든 백성의 군주를 다 임금이라 불렀고,

다른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如夫子修春秋, 立百王不易之大法, 尊周室曰天王,

공자께서『춘추』를 엮으실 때에 백세에 바꿀 수 없는 커다란 법을 세워,

주(周) 나라 왕실을 높여 천왕(天王)이라 하였습니다.

 

則王者之名, 不可加也.

그러니 임금이라는 이름보다 더 높일 수는 없습니다.

 

 

至秦滅六國一四海, 自以爲德兼三皇, 功高五帝, 乃改王號曰皇帝.

그런데도 진(秦)나라 임금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나의 덕은 삼황(三皇)을 겸하고 공훈은 오제(五帝)보다도 높다'고 하여,

임금이라는 칭호를 고쳐 황제(皇帝)라고 하였습니다.

 

 

當是時, 僭竊稱之者頗多, 如魏梁荊楚之君, 是已.

당시에도 참람(僭濫)하게 임금이라고 일컬은 자들이 아주 많았으니,

위(魏)나라와 초(楚)나라 군주가 그러하였습니다.

 

 

自是以後, 王者之名分紛如也, 文武成康之尊號, 已墜地矣.

그런 뒤부터 임금이라는 명분이 어지러워져서,

문왕 . 무왕 . 성왕 . 강왕의 존호(尊號)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且流俗無知, 以人情相濫, 不足道.

 

게다가 인간세상의 사람들은 아는 게 없어서 인정으로 서로 외람된 짓을 하니,

이런 것들은 말할 게 못 됩니다.

 

 

至於神道則尙嚴, 安有一域之內, 王者如是其多哉?

그러나 신의 세계에서는 존엄함을 숭상하니,

어찌 한 지역 안에 임금이 그와 같이 많겠습니까?

 

 

士豈不聞天無二日國無二王乎?

선비께선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其語不足信也. 至於設齋薦魂, 祀王燒錢, 吾不覺其所爲也.

그러니 그런 말은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므로 재(齋)를 베풀어 영혼을 추천하고 대왕에게 제사지낸 뒤에

지전(紙錢)을 사르는 짓을 왜 하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士試詳其世俗之矯妄!”

선비께서 인간 세상의 거짓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生退席敷袵而陳曰:

박생이 자리에서 물러나 옷자락을 여미고 말하였다.

 

 

“世俗當父母死亡七七之日, 若尊若卑, 不顧喪葬之禮, 專以追薦爲務.

"인간세상에서는 어버이가 돌아가신 지 사십구 일이 되면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가리지 않고 상장(喪葬)의 예를 돌보지 않으며,

오로지 (절에 가서) 추천하는 것만 일삼습니다.

 

 

富者, 糜費過度, 炫燿人聽,

부자는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면서 남이 듣고 보는 데에서 자랑하고,

貧者(빈자) : 가난한 사람도

 

至於賣田貿宅(지어매전무택) : 논밭과 집을 팔고

 

貸錢賖穀(대전사곡) : 돈과 곡식을 빌려서

 

鏤紙爲旛(루지위번) : 종이를 아로새겨 깃발을 만들고

 

剪綵爲花(전채위화) : 비단을 오려 꽃을 만들며,

 

招衆Ꝛ爲福田(초중범위복전) : 여러 스님들을 불러다 복전(福田)을 닦고

 

立瓌像爲導師(입괴상위도사) : 불상을 세우며 도사(導師)로 삼아

 

唱唄諷誦(창패풍송) : 범패(梵唄)를 합니다.

 

鳥鳴鼠喞(조명서즐) : 그렇지만 새가 울고 쥐가 찍찍대는 것 같아서

 

曾無意謂(증무의위) :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爲喪者(위상자) : 상주(喪主)는

 

携妻率兒(휴처솔아) :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援類呼朋(원류호붕) : 친척과 벗들까지 불러들이므로

 

男女混雜(남녀혼잡) : 남녀가 뒤섞여서

 

矢溺狼籍(시익랑적) : 똥오줌이 널려지게 되니,

 

使淨土變爲穢溷(사정토변위예혼) : 정토(淨土)는 더러운 뒷간으로 바뀌고,

 

寂場變爲鬧市(적장변위료시) : 적량(寂場)은 시끄러운 시장바닥으로 바뀌게 됩니다.

 

 

而又招所謂十王者(이우초소위십왕자) : 또 십왕상(十王像)을 모셔 놓고

 

備饌以祭之(비찬이제지) : 음식을 갖추어 그들에게 제사지내고,

 

燒錢以贖之(소전이속지) : 지전(紙錢)을 불살라 죄를 속하게 합니다.

 

爲十王者(위십왕자) : 시왕이 되어

 

當不顧禮義(당불고예의) : 예의를 돌보지 않고

 

縱貪而濫受之乎(종탐이람수지호) : 탐욕스럽게 이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當考其法度(당고기법도) : 아니면 그 법도를 살펴서

 

循憲而重罰之乎(순헌이중벌지호) : 법에 따라 이들을 중하게 처벌해야 하겠습니까?

 

此不肖所以憤悱(차불초소이분비) : 이것이 제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而不敢忍言也(이불감인언야) : 차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請爲不肖辨之(청위불초변지) : 대왕께서는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사후에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이는 땅으로 내려와 근본으로 돌아간다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噫哉(희재) : "아아.

 

至於此極也(지어차극야) : 그렇게까지 되었구려.

 

且人之生也(차인지생야) :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天命之以性(천명지이성) : 하늘은 어진 성품을 주셨으며,

 

地養之以生(지양지이생) : 땅은 곡식으로 길러 주었습니다.

 

君治之以法(군치지이법) : 임금은 법으로 다스리고,

 

師敎之以道(사교지이도) : 스승은 도의를 가르쳤으며,

 

親育之以恩(친육지이은) : 어버이는 은혜로 길러 주었습니다.

 

由是(유시) : 이로 말미암아

 

五典有序(오전유서) : 오전(五典)이 차례가 있고

 

三綱不紊(삼강불문) : 삼강(三綱)이 문란하지 않게 되었으니,

 

順之則祥(순지칙상) : 이를 잘 따르면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逆之則殃(역지칙앙) : 이를 거스르면 재앙이 옵니다.

 

祥與殃在人生受之耳(상여앙재인생수지이) : 상서와 재앙은 사람이 받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至於死(지어사) : 사람이 죽으면

 

則精氣已散(칙정기이산) : 정신과 기운은 이미 흩어져,

 

升降還源(승강환원) :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이는 땅으로 내려와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那有復留於幽冥之內哉(나유부유어유명지내재) : 어찌 다시 어두운 저승 속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且寃懟之魂(차원대지혼) : 또 원한의 귀신과

 

橫夭之鬼(횡요지귀) : 횡요의 귀신을

 

不得其死(부득기사) : 죽지 못하여

 

莫宣其氣(막선기기) : 그 기운을 펴지 못해,

 

嗸嗸於戰場黃沙之域(오오어전장황사지역) : 싸움터였던 모래밭에서 시끄럽게 울기도 하고,

 

啾啾於負命啣寃之家者(추추어부명함원지가자) : 목숨을 잃어 원한 맺힌 집에서 처량하게 우는 일이

 

間或有之(간혹유지) : 간혹 있기도 합니다.

 

或托巫以致款(혹탁무이치관) : 그들은 무당에게 부탁해서 사정을 통해 보기도 하고,

 

或依人以辨懟(혹의인이변대) : 어떤 사람에게 의지하여 원망해 보기도 하는데,

 

雖精神未散於當時(수정신미산어당시) : 비록 정신이 그 당시에는 흩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畢竟當歸於無朕(필경당귀어무짐) : 결국에는 다 없어지고 말게 됩니다.

 

豈有假形於冥地(기유가형어명지) : 그들이라도 해서 어찌 명부에 잠깐 형체를 나타내서

 

以受犴獄乎(이수안옥호) : 지옥의 벌을 받겠습니까?

 

此格物君子(차격물군자) : 이런 일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군자가

 

所當斟酌也(소당짐작야) : 마땅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시왕에게 제사지내는 일은 허탄하다

 

 

 

至於齋佛祀王之事(지어재불사왕지사) : 그러나 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시왕에게 제사지내는 일은

 

則尤誕矣(칙우탄의) : 더욱 허탄합니다.

 

且齋者(차재자) : 또 '재(齋)'란

 

潔淨之義(결정지의) : 정결하게 한다는 뜻인데,

 

所以齋不齋而致其齋也(소이재불재이치기재야) : 그렇게 되면 부정한 일을 정결하게 해서 정결됨을 이루는 셈입니다.

 

佛者淸淨之稱(불자청정지칭) : 부처님을 청정(淸淨)하다는 뜻이고,

 

王者尊嚴之號(왕자존엄지호) : 임금은 존엄하다는 칭호입니다.

 

求車求金(구차구금) : 임금이 수레를 요구하고 금을 요구한 일은

貶於春秋(폄어춘추) :『 춘추』에서 비판받았고,

 

用金用綃(용금용초) : 불공드릴 때에 돈을 사용하고 명주를 사용한 일은

 

始於漢魏(시어한위) : 한나라나 위나라 때에 와서 시작되었습니다.

 

那有以淸淨之神而享世人供養(나유이청정지신이향세인공양) : 어찌 청정한 신이 인간 세상의 공양을 받고,

 

以王者之尊而受罪人賄賂(이왕자지존이수죄인회뇌) : 존엄한 임금이 죄인의 뇌물을 받으며,

 

以幽冥之鬼而縱世間刑罰乎(이유명지귀이종세간형벌호) : 저승의 귀신이 인간 세상의 형벌을 용서하겠습니까?

 

此亦窮理之士(차역궁리지사) : 이것도 또한 이치를 연구하는 선비가

 

所當商略也(소당상략야) : 마땅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ꡓ

 

 

 

5)불교의 윤회설(輪廻說) 비판

 

 

 

生又問曰(생우문왈) : 박생이 또 물었다.

 

輪回不已(륜회불이) : "사람이 윤회(輪廻)를그치지 않고,

 

死此生彼之義(사차생피지의) : 이승에서 죽으면 저승에서 산다는 뜻을

 

可問否(가문부) :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曰精靈未散(왈정령미산) : 임금이 말하기를, "정령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則似有輪回(칙사유륜회) : 윤회가 있을 듯하지만,

 

然久則散而消耗矣(연구칙산이소모의) : 오래 되면 흩어져 소멸되지요."

 

 

4]박생, 염왕의 후계자로 선위(禪位)받다

 

1)염왕은 정직하고 사심 없는 박생을 후계자로 제안하다

 

 

 

生曰(생왈) : 박생이 말하였다.

 

王何故居此異域而爲王者乎(왕하고거차이역이위왕자호) : "임금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 이역(異域)에서 임금이 되셨습니까?"

 

 

 

曰我在世(왈아재세) :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인간 세상에 있을 때에

 

盡忠於王(진충어왕) :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發憤討賊(발분토적) : 힘내어 도적을 토벌하였습니다.

 

乃誓曰(내서왈) : 그리고는 스스로 맹세하기를

 

死當爲厲鬼(사당위려귀) : '죽은 뒤에도 마땅히 여귀가 되어

 

以殺賊(이살적) : 도적을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餘願未殄而忠誠不滅(여원미진이충성불멸) : 그런데 죽은 뒤에도 그 소원이 남아 있었고 충성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故托此惡鄕爲君長(고탁차악향위군장) : 이 흉악한 곳에 와서 임금이 된 것이지요.

 

今居此地而仰我者(금거차지이앙아자) : 지금 이 땅에 살면서 나를 우러러보는 자들은

 

皆前世弑逆姦兇之徒(개전세시역간흉지도) : 모두 전세에 부모나 임금을 죽인 시역(弑逆)이거나 간흉(姦凶)들입니다.

 

托生於此(탁생어차) : 이들은 이곳에 의지해 살면서

 

而爲我所制(이위아소제) : 내게 통제를 받아

 

將格其非心者也(장격기비심자야) : 그릇된 마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然非正直無私(연비정직무사) : 그러나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不能一日爲君長於此地也(불능일일위군장어차지야) : 하루도 이곳에서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寡人聞子正直抗志(과인문자정직항지) : 내가 들으니 그대는 정직하고도 뜻이 굳어서

 

在世不屈(재세불굴) :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고 하니,

 

眞達人也(진달인야) : 참으로 달인(達人)입니다.

 

而不得一奮其志於當世(이불득일분기지어당세) : 그런데도 그 뜻을 세상에 한번도 펴보지 못하였으니,

 

使荊璞棄於塵野(사형박기어진야) : 마치 현산의 옥덩이가 티끌 덮인 벌판에 내버려지고

 

明月沉于重淵(명월침우중연) :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것과도 같습니다.

 

不遇良匠(불우량장) : 뛰어난 장인을 만나지 못하면

 

誰知至寶(수지지보) : 누가 지극한 보물을 알아보겠습니까?

 

豈不惜哉(기불석재) : 이 어찌 안타깝지 않습니까?

 

 

 

余亦時運已盡(여역시운이진) : 나는 시운이 이미 다하여

 

將捐弓劒(장연궁검) : 장차 활과 칼을 버리고아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子亦命數已窮(자역명수이궁) : 그대도 또한 명수(命數)가 이미 다하였으므로,

 

當瘞蓬蒿(당예봉호) : 곧 인간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司牧此邦(사목차방) : 그러니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분이

 

非子而誰(비자이수) :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乃開宴極歡(내개연극환) : 그리고는 잔치를 열어 극진히 즐겁게 하여 주었다.

 

 

 

2)염왕의 가르침 1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령은 하늘의 명령이다

 

 

 

問生以三韓興亡之跡(문생이삼한흥망지적) : 임금이 박생에게 삼한(三韓)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물었더니,

 

生一一陳之(생일일진지) : 박생이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至高麗創業之由(지고려창업지유) : 고려가 창업한 이야기에 이르자,

 

王歎傷再三曰(왕탄상재삼왈) : 임금이 두세 번이나 탄식하며 서글퍼하더니 말하였다.

 

有國者(유국자) :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不可以暴劫民(불가이폭겁민) :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하여서는 안 됩니다.

 

民雖若瞿瞿以從(민수약구구이종) : 백성들이 두려워 따르는 것 같지만,

 

內懷悖逆(내회패역) :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습니다.

 

積日至月(적일지월) : 날이 가고 달이 가면

 

則堅冰之禍起矣(칙견빙지화기의) :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有德者(유덕자) : 덕이 있는 사람은

 

不可以力進位(불가이역진위) : 힘을 가지고 임금자리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天雖不諄諄以語(천수불순순이어) : 하늘이 비록 임금이 되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示以行事(시이행사) : 그가 올바르게 일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自始至終(자시지종) : 백성들의 뜻에 의하여 임금이 되게 합니다.

 

 

 

而上帝之命嚴矣(이상제지명엄의) : 상제(上帝)의 명은 엄합니다.

 

蓋國者民之國(개국자민지국) :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命者天之命也(명자천지명야) : 명령은 하늘의 명령입니다.

 

天命已去(천명이거) : 그런데 천명이 떠나가고

 

民心已離(민심이리) : 민심이 떠나가면,

 

則雖欲保身(칙수욕보신) : 임금이 비록 제 몸을 보전하려고 하더라도

 

將何爲哉(장하위재) : 어찌 되겠습니까?"

 

 

 

3)염왕의 가르침 2

 

-나라의 재앙은 하늘의 경고

 

 

 

又復敍歷代帝王崇異道致妖祥之事(우복서역대제왕숭이도치요상지사) : 박생이 또 역대의 제왕들이 이도(異道)를 숭상하다가 재앙 입은 이야기를 하자,

 

王便蹙額曰(왕편축액왈) : 임금이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民謳謌而水旱至者(민구가이수한지자) : "백성들이 임금의 덕을 노래하는데도 큰물과 가뭄이 닥치는 것은

 

是天使人主重以戒謹也(시천사인주중이계근야) : 하늘이 임금으로 하여금 일을 삼가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民怨咨而祥瑞現者(민원자이상서현자) : 백성들이 임금을 원망하는데도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것은

 

是妖媚人主益以驕縱也(시요미인주익이교종야) : 요괴가 임금에게 아첨하여 더욱 교만 방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且歷代帝王致瑞之日(차력대제왕치서지일) : 제왕들에게 상서로운 날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民其按堵乎(민기안도호) : 백성들이 편안해질 수 있겠습니까?

 

呼寃乎(호원호) : 원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曰姦臣蜂起(왈간신봉기) : 박생이 말하기를, "간신이 벌떼처럼 일어나

 

大亂屢作(대난루작) : 큰 난리가 자주 생기는 데도

 

而上之人(이상지인) : 임금이

 

脅威爲善以釣名(협위위선이조명) : 백성들을 위협하며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명예를 구하려 한다면,

 

其能安乎(기능안호) : 그 나라가 어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王良久(왕량구) : 임금이 한참 있다가

 

歎曰(탄왈) : 탄식하며 말하였다.

 

子之言(자지언) : "그대의 말씀이

 

是也(시야) : 옳습니다."

 

 

 

4)염왕이 선위문(禪位文)을 작성하여 박생에게 주다

 

 

 

宴畢(연필) : 잔치가 끝나자

 

王欲禪位于生(왕욕선위우생) : 임금이 박생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乃手制曰(내수제왈) : 손수 선위문(禪位文)을 지었다.

 

炎洲之域(염주지역) : 염주의 땅은

 

實是瘴厲之鄕(실시장려지향) : 실로 풍토병이 생기는 곳이므로,

 

禹跡之所不至(우적지소부지) : 우(禹)임금의 발자취도 이르지 못하였고,

 

穆駿之所未窮(목준지소미궁) : 목왕(穆王)의 준마도 오지 못하였다.

 

彤雲蔽日(동운폐일) :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毒霧障天(독무장천) : 독한 안개가 하늘을 막고 있으며,

 

渴飮赫赫之洋銅(갈음혁혁지양동) : 목이 마르면 뜨거운 구릿물을 마셔야 하고

 

飢餐烘烘之融鐵(기찬홍홍지융철) : 배가 고프면 불에 쪼인 뜨거운 쇳덩이를 먹어야 한다.

 

非夜叉羅刹(비야차나찰) : 야차(夜叉)나 나찰(羅刹)이 아니면

 

無以措其足(무이조기족) : 발붙일 곳이 없고,

 

魑魅魍魎(리매망량) : 도깨비가 아니면

 

莫能肆其氣(막능사기기) : 그 기운을 펼 수가 없는 곳이다.

 

火城千里(화성천리) : 화성이 천리나 뻗어 있고

 

鐵嶽萬重(철악만중) : 철산이 만겹이나 둘린 데다,

 

民俗强悍(민속강한) : 민속이 강하고 사나워서,

 

非正直無以辨其姦(비정직무이변기간) : 정직하지 않으면 그 간사함을 판단할 수가 없다.

 

地勢凹隆(지세요융) : 지세도 굴곡이 심해 험준하니,

 

非神威不可施其化(비신위불가시기화) : 신통한 위엄이 아니면 이들을 교화시킬 수가 없다.

 

咨爾東國某(자이동국모) : 아아. 동쪽 나라에서 온 그대 박아무개는

 

正直無私(정직무사) : 정직하고 사심(私心)이 없으며,

 

剛毅有斷(강의유단) :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다.

 

著含章之質(저함장지질) : 남을 포용하는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有發蒙之才(유발몽지재) : 어리석은 자를 계발하는 재주도 지니고 있다.

 

顯榮雖蔑於身前(현영수멸어신전) : 인간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는 비록 현달하지 못하였지만,

 

綱紀實在於身後(강기실재어신후) : 죽은 뒤에는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兆民永賴(조민영뢰) : 모든 백성이 길게 믿고 의지할 자가

 

非子而誰(비자이수) :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宜導德齊禮(의도덕제예) : 마땅히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법으로 정체하여,

 

冀納民於至善(기납민어지선) : 백성들을 지극히 착하게 만들라.

 

躬行心得(궁행심득) :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庶躋世於雍熙(서제세어옹희) :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라.

 

體天立極(체천입극) : 하늘을 본받아 뜻을 세우고,

 

法堯禪舜(법요선순) :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었던 일을 본받아

 

予其作賓(여기작빈) : 나도 이 자리를 그대에게 물려주겠다.

 

嗚呼欽哉(오호흠재) : 아아. 그대는 삼가 받을 지어다.

 

生奉詔(생봉조) : 박생이 이 글을 받아들고

 

周旋再拜而出(주선재배이출) : 응낙한 뒤에, 두 번 절하고 물러 나왔다.

 

 

 

5)염왕, 태자의 예로 박생을 전송하다

 

 

 

王復勑臣民致賀(왕복래신민치하) : 임금은 다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축하드리게 하고,

 

以儲君禮送之(이저군예송지) : 태자의 예절로써 그를 전송하게 하였다.

 

又勑生曰(우래생왈) : 그리고는 박생에게 말하였다.

 

不久當還(불구당환) : "머지 않아 다시 돌아오셔야 하오.

 

勞此一行(노차일행) : 이번에 가거든 수고롭지만

 

所陳之語(소진지어) : 내가 한 말들을

 

傳播人間(전파인간) : 전하여 인간 세상에 널리 퍼뜨리시오.

 

一掃荒唐(일소황당) : 황당한 일을 다 없애 주시오."

 

生又再拜致謝曰(생우재배치사왈) : 박생이 또 두 번 절하여 감사드리고 말하였다.

 

敢不對揚休命之萬一(감부대양휴명지만일) : "만 분의 하나라도 그 뜻을 널리 전하지 않겠습니까?"

 

 

 

5]박생, 꿈에서 깨어나 병들어 죽다

 

 

 

旣出門(기출문) : 박생이 문을 나서자,

 

挽車者(만차자) : 수레를 끄는 자가

 

蹉跌覆轍(차질복철) : 발을 헛디뎌 수레바퀴가 넘어졌다.

 

生仆地驚起而覺(생부지경기이각) : 그 바람에 박생도 땅에 쓰러졌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깨어 보니

 

乃一夢也(내일몽야) : 한바탕 꿈이었다.

 

 

 

開目視之(개목시지) : 눈을 떠보니

 

書冊抛床(서책포상) : 책은 책상 위에 내던져 있었고,

 

燈花明滅(등화명멸) : 등잔불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生感訝良久(생감아양구) : 박생은 한참 의아하게 여기다가,

 

自念將死(자념장사) : 장차 죽을 것을 알게 되었다.

 

日以處置家事爲懷(일이처치가사위회) : 그래서 날마다 집안 일을 정리하기에 전념하였다.

 

數月有疾(수월유질) : 박생이 몇 달 뒤에 병에 걸렸는데,

 

料必不起(료필불기) :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았다.

 

却毉巫而逝(각의무이서) : 그래서 의원과 무당을 사절하고 세상을 떠났다.

 

其將化之夕(기장화지석) : 그가 세상을 떠나려던 날 저녁에

 

夢神人告於四鄰曰(몽신인고어사린왈) : 이웃집 사람의 꿈에 어떤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길,

 

汝鄰家某公(여린가모공) : "네 이웃집 아무개가

 

將爲閻羅王者云(장위염라왕자운) : 장차 염라대왕이 될 것이다."고 했다.

 

 

 

 

[주] 이 작품은 부벽루에서 시를 창수할 짝을 만난 홍생과 선녀 기씨녀의 회고시의 향연이다. 고양된 회고의 정서를 응축한 홍생의 칠률 6수, 기씨녀의 칠률 6수, 五言 40운 80구의 기씨녀의 오언고시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 등이 이 작품의 근간을 형성한다.

서사구조는 이 회고시를 말하기 위한 간단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매월당이 자기 시재(詩才)를 뽐내기 위해 지은 것인가? 취했다니 할 말이 없지만 서사성은 위의 두 작품에 비해 현저히 뒤진다. 아래의 <용궁부연록>도 갈등의 서사구조는 없으니 이 작품과 동궤의 작품으로 보면 된다.

다만 신선세계라는 픽션, 기씨녀를 기자조선의 후예로 설정하여 신선이 된 내력과 기자조선에 대한 회고의 서술, 그녀와 의 만남 등의 허구는 매월당의 꿈의 표백이라 보아 상상력의 측면에서 그의 수월성이 인정된다.

전에 올린 것이나 시에 독음을 첨가하였다.

 

 

醉遊浮碧亭記

취유부벽정기, 취하여 부벽정에서 노닐다

-김시습(金時習)

 

1]개성 상인 홍생이 부벽정에 올라 시를 짓다

 

平壤, 古朝鮮國也.

평양, 고조선국야.

 평양은 고조선의 서울이었다.

 

周武王克商, 訪箕子, 陣洪範九疇之法,

주무왕극상,  방기자 진홍범구주지법,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방문하자,

기자가「홍범(洪範)」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다.

 

武王封于此地, 而不臣也.

무왕봉우차지, 이불신야.

무왕이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지만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

 

其勝地, 則錦繡山, 鳳凰臺, 綾羅島, 麒麟窟, 朝天石, 楸南墟, 皆古跡,

기승지칙금수산,   봉황대,   릉라도,   기린굴,   조천석추남허개고적,

 이곳의 명승지로는 금수산․ 봉황대․ 능라도․ 기린굴․ 조천석․ 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고적이다.

而永明寺浮碧亭, 其一也.

이영명사부벽정, 기일야.

영명사의 부벽정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永明寺, 卽東明王九梯宮也.

영명사, 즉동명왕구제궁야.

영명사 자리는 바로 고구려 동명왕의 구제궁터이다.

 

在郭外東北卄里,

재곽외동북입리,

이 절은 성밖에서 동북쪽으로 이십 리 되는 곳이 있다.

 

俯瞰長江, 遠矚平原,

부감장강, 원촉평원,

긴 강을 내려다보고 평원을 멀리 바라보며

 

一望無際, 眞勝境也.

일망무제, 진승경야.

아득하기 그지없으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畵舸商舶, 晩泊于大同門外之柳磯,

화가상박,   만박우대동문외지류기,

그림 그린 놀잇배와 장삿배들이 날 저물 무렵 대동문 밖에 있는 유기에 닿아

 

留則必泝流而上, 縱觀于此, 極歡而旋.

류칙필소류이상,   종관우차극환이선.

머물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강물을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며 실컷 즐기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亭之南, 有鍊石層梯,

정지남, 유련석층제, 부벽정 남쪽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사닥다리가 있다.

 

左曰靑雲梯, 右曰白雲梯, 刻之于石,

좌왈청운제우왈백운제,   각지우석,

왼편에는 청운제, 오른편에는 백운제라고 돌에다 글자를 새겨

 

立華柱, 以爲好事者玩.

립화주이위호사자완.

화주(華柱)를 세워 놓았으므로, 호사자(好事者)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天順初, 松京有富室洪生,

천순초송경유부실홍생,

천순(天順) 초년에 개성에 홍생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年少美姿容, 有風度, 又善屬文.

년소미자용, 유풍도, 우선속문.

그는 나이도 젊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풍도가 있었으며, 또한 글을 잘 지었다.

 

値中秋望, 與同伴, 抱布貿絲于箕城,

치중추망,   여동반포포무사우기성,

그가 한가윗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평양에 베를 안고 와서 실을 바꾸었다.

 

泊舟艤岸. 城中名娼, 皆出闉闍, 而目成焉.

박주의안.   성중명창,   개출인도이목성언.

그런 뒤에 배를 강가에 대자, 성안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서 홍생에게 추파를 던졌다.

 

城中有故友李生, 設宴以慰生,

성중유고우리생설연이위생,

성안에 이생이라는 옛 친구가 살았는데, 잔치를 베풀어 홍생을 환영하였다.

 

酣醉回舟, 夜凉無寐,

감취회주야량무매,

홍생은 술이 취하자 배로 돌아갔지만 밤이 서늘하고 잠도 오지 않아서,

 

忽憶張繼楓橋夜泊之詩,

홀억장계풍교야박지시,

문득 장계가 지은 「풍교야박」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不勝淸興, 乘小艇, 載月打槳而上,

불승청흥승소정,   재월타장이상,

그래서 맑은 흥취를 견디지 못해 작은 배를 타고는, 달빛을 싣고 노를 저어서 올라갔다.

 

期興盡而返, 至則浮碧亭下也.

기흥진이반,   지칙부벽정하야.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올라가다가, 이르고 보니 부벽정 아래였다.

 

繫纜蘆叢, 躡梯而登,

계람로총, 섭제이등,

홍생을 뱃줄을 갈대 숲에 매어 두고,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憑軒一望, 朗吟淸嘯,

빙헌일망, 랑음청소,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며, 맑은 소리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時月色如海, 波光如練,

시월색여해,   파광여련,

그때 달빛은 바다처럼 넓게 비치고 물결을 흰 비단처럼 고운데,

 

雁呌汀沙, 鶴驚松露,

안규정사학경송로,

기러기는 모래밭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에 놀라서 푸드덕거렸다.

 

凜然如登淸虛紫府也.

름연여등청허자부야.

마치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계신 곳에라도 오른 것처럼 기상이 서늘해졌다.

 

顧視故都, 烟籠粉堞, 浪打孤城,

고시고도,   연롱분첩랑타고성,

한편 옛 서울을 돌아보니 하얀 성가퀴에는 안개가 끼어 있고, 외로운 성 밑에는 물결만 부딪칠 뿐이었다.

 

有麥秀殷墟之歎, 乃作詩六首曰:

유맥수은허지탄, 내작시륙수왈:

「맥수은허」의 탄식이 저절로 나와, 이내 시 여섯 수를 지어 읊었다.

 

不堪吟上浿江亭,

불감음상패강정, 부벽정에 올라 감개를 읊조리니

嗚咽江流腸斷聲.

오연강류장단성.흐느끼는 강물 소리 애끊는 듯하여라.

故國已銷龍虎氣,

고국이소룡호기, 용 같고 호랑이 같던 고국의 기상은 이미 없어졌건만

荒城猶帶鳳凰形.

황성유대봉황형. 황폐한 옛성은 지금까지도 봉황 모습 그대로일세.

汀沙月白迷歸雁,

정사월백미귀안, 모래밭에 달빛이 희니 기러기는 갈 길을 잃고

庭草烟收點露螢.

정초연수점로형. 풀밭에는 연기가 걷혀 반딧불만 날고 있네.

風景蕭條人事換,

풍경소조인사환, 사람 세상에 바뀌고 보니 풍경마저 쓸쓸해져

寒山寺裏聽鐘鳴.

한산사리청종명. 한산사 깊은 곳에서 종소리만 들려 오네.

 

帝宮秋草冷凄凄,

제궁추초냉처처, 임금 계시던 궁궐에는 가을 풀만 쓸쓸하고

回磴雲遮徑轉迷.

회등운차경전미. 구름 낀 돌층계는 길마저 아득해라.

妓館故基荒薺合,

기관고기황제합, 청루 옛터에는 냉이풀만 우거졌는데

女墻殘月夜烏啼.

녀장잔월야오제. 담 넘어 희미한 달 보며 까마귀만 우짖네.

風流勝事成塵土,

풍류승사성진토, 풍류롭던 옛일은 티끌이 되었고

寂寞空城蔓蒺藜.

적막공성만질려. 적막한 빈 궁성엔 찔레만 덮였구나.

唯有江波依舊咽,

유유강파의구연, 오직 강물만이 옛날 그대로 울며 울며

滔滔流向海門西.

도도류향해문서. 도도히 흘러서 바다로 향하누나.

 

浿江之水碧於藍,

패강지수벽어람, 대동강 저 물결은 쪽보다도 더 푸르네.

千古興亡恨不堪.

천고흥망한불감. 천고 흥망을 한탄한들 어이하랴.

金井水枯垂薜荔,

금정수고수벽려, 우물에는 물이 말라 담쟁이만 드리웠고

石壇苔蝕擁檉楠.

석단태식옹정남. 돌 단에는 이끼가 끼어 능수버들만 늘어졌네.

異鄕風月詩千首,

리향풍월시천수, 타향의 풍월을 천수나 읊고 보니

故國情懷酒半酣.

고국정회주반감. 고국의 정희에 술이 더욱 취하여라.

月白依軒眠不得,

월백의헌면불득, 달빛이 난간에 밝아 졸음조차 오지 않는데

夜深香桂落毿毿.

야심향계락삼삼. 밤 깊어지며 계화 향기가 살며시 떨어지네.

 

中秋月色正嬋娟,

중추월색정선연, 오늘이 한가위라 달빛은 곱기만 한데

一望孤城一悵然.

일망고성일창연. 외로운 옛성은 볼수록 서글퍼라.

箕子廟庭喬木老,

자묘정교목로,기자묘(箕子廟) 뜨락에는 교목이 늙어 있고

檀君祠壁女蘿緣.

단군사벽녀라연 단군사(檀君祠) 벽 위에는 담쟁이가 얽히었네.

英雄寂寞今何在,

영웅적막금하재, 영웅은 적막하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草樹依稀問幾年.

초수의희문기년. 풀과 나무만 희미하니 몇 해나 되었던가?

唯有昔時端正月,

유유석시단정월, 오직 그 옛날의 둥근 달만 남아 있어

淸光流彩照衣邊.

청광류채조의변. 맑은 빛이 흘러나와 이 내 옷깃을 비추네.

 

月出東山烏鵲飛,

월출동산오작비, 동산에 달이 뜨자 까막까치 흩어져 날고

夜深寒露襲人衣.

야심한로습인의. 밤 깊어지자 찬이슬이 나의 옷을 적시네.

千年文物衣冠盡,

천년문물의관진, 문물은 천년이라 옛 모습 간 데 없건만

萬古山河城郭非.

만고산하성곽비. 만고의 강산에 성곽은 허물어졌네.

聖帝朝天今不返,

성제조천금불반, 하늘에 오른 성제(聖帝)께선 돌아오지 않으시니

閑談落世竟誰依.

한담락세경수의. 인간에 남긴 이야기를 무엇으로 증거하랴.

金轝麟馬無行迹,

금여린마무행적, 황금수레에 기린 말도 이제는 자취 없어

輦路草荒僧獨歸.

련로초황승독귀. 연로(輦路)에는 풀 우거지고 스님만이 홀로 가네.

 

庭草秋寒玉露凋,

정초추한옥로조, 찬이슬이 내리자 뜰의 풀이 다 시드는데

靑雲橋對白雲橋.

청운교대백운교. 청운교와 백운교는 마주보고 서 있구나.

隋家士卒隨鳴瀨,

수가사졸수명뢰, 수나라 대군의 넋이 여울에서 울어예니

帝子精靈化怨蜩.

제자정령화원조. 임금의 정령(精靈)이 가을 매미 되었던가.

馳道烟埋香輦絶,

치도연매향련절, 한길에는 연기만 낀 채 수레 소리도 끊어졌는데

行宮松偃暮鐘搖.

행궁송언모종요. 소나무 우거진 행궁(行宮)에는 저녁 종소리만 들리네.

登高作賦誰同賞,

등고작부수동상, 누각에 올라 시를 읊어도 그 누가 함께 즐길 건가

月白風淸興未消.

월백풍청흥미소. 달 밝고 바람도 맑아 시흥이 시들지 않네.

 

 

2]기씨의 딸과 조우하다

1)선녀 기씨의 딸이 찾아와 시를 지어 전하다

 

生吟罷, 撫掌起舞踟躕.

생음파, 무장기무지주. 홍생은 읊기를 마친 뒤에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그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每吟一句, 歔欷數聲,

매음일구, 허희수성한 구절을 읊을 떄마다 흐느껴 울었다.

雖無扣舷吹簫, 唱和之樂, 中情感慨,

수무구현취소, 창화지락, 중정감개,

바로 뱃전을 두드리고 퉁소를 불며 서로 화답하는 즐거움은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 느꺼워하였다.

足以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也.

족이무유학지잠교, 읍고주지리부야.

그래서 깊은 구렁에 잠긴 용도 따라서 춤추게 할 만하였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하였다.

 

吟盡欲返, 夜已三更矣.

음진욕반, 야이삼갱의.   

시 읊기를 마치고 돌아오려 하자 밤은 벌써 삼경이나 되었다.

 

忽有跫音, 自西而至者.

홀유공음, 자서이지자.

이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 왔다.

 

生意謂寺僧聞聲, 驚訝而來.

생의위사승문성, 경아이래.

홍생은 마음 속으로 "절의 스님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찾아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坐以待之, 見則一美娥也.

좌이대지, 견칙일미아야.

앉아서 기다렸는데 나타나고 보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丫鬟隨侍左右,

아환수시좌우, 두 시녀가 좌우에서 따르며 모셨는데,

一執玉柄拂, 一執輕羅扇,

일집옥병불,   일집경라선,

한 여인은 옥자루가 달린 불자(拂子)를 잡았고, 다른 한 시녀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威儀整齊, 狀如貴家處子.

위의정제, 상여귀가처자.

여인은 위엄이 있고도 단정하여, 마치 귀족집 처녀 같았다.

 

生下階, 而避之于墻隙, 以觀其所爲.

생하계이피지우장극,   이관기소위.

홍생은 뜰 아래로 내려가 담 틈으로 비켜서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娥倚于南軒, 看月微吟,

아의우남헌, 간월미음,

여인은 남쪽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달빛을 보며 작은 소리로 시를 읊었는데,

風流態度, 儼然有序.

풍류태도엄연유서.

풍류와 몸가짐이 엄연하여 범절이 있었다.

侍兒捧雲錦茵席以進,

시아봉운금인석이진,시녀가 비단방석을 펴자,

改容就坐, 琅然言曰:

개용취좌랑연언왈:

여인이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소리로 말하였다.

“此間有哦詩者, 今在何處?

  “차간유아시자금재하처?

"여기서 방금 시를 읊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소? 

我非花月之妖, 步蓮之姝,

아비화월지요, 보련지주,

나는 꽃이나 달의 요물도 아니고, 연꽃 위를 거니는 주희도 아니라오.

幸値今夕, 長空萬里, 天闊雲收,

행치금석장공만리,   천활운수,

다행히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밤을 맞고 보니, 만리장공 넓은 하늘에는 구름도 걷히었소.

冰輪飛而銀河淡, 桂子落而瓊樓寒,

빙륜비이은하담, 계자락이경루한,

달이 높이 뜨고 은하수는 맑은데다,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지고 백옥루는 차갑기에,

一觴一脉, 暢敍幽情,

일상일맥창서유정,

한잔 술에 시 한 수로 그윽한 심정을 유쾌히 풀어 볼까 하였소.

如此良夜何?”

여차량야하?”이렇게 좋은 밤을 어찌 그대로 보내겠소?"

 

生一恐一喜,

생일공일희홍생이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

踟躕不已, 作小謦咳聲.

지주불이, 작소경해성. 그래서 어찌할까 머뭇거리다가 가늘게 기침소리를 내었다.

侍兒尋聲而來, 請曰:

시아심성이래, 청왈:

시녀가 기침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와서 청하였다.

“主母奉邀.”

주모봉요.” "저희 아가씨께서 모시고 오라 하였습니다."

生踧踖而進, 且拜且跪.

생축적이진, 차배차궤. 홍생이 조심스럽게 나아가서 절하고 꿇어앉았다.

娥亦不之甚敬, 但曰:

아역불지심경, 단왈: 여인도 또한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子亦登此.”

자역등차.”"그대로 이리 올라오시오."

侍兒以短屛乍掩, 只半面相看,

시아이단병사엄, 지반면상간,

시녀가 낮은 병풍으로 잠깐 앞을 가리었으므로, 그들은 얼굴을 서로 반만 보았다.

從容言曰:

종용언왈: 여인이 조용히 말하였다.

“子之所吟者, 何語也? 爲我陳之.”

자지소음자, 하어야? 위아진지.”

"그대가 조금 전에 읊은 시는 무슨 뜻이오? 나에게 외어 주시오."

生一一以誦. 娥笑曰:

생일일이송. 아소왈: 홍생이 그 시를 하나하나 외어 주자, 여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子亦可與言詩者也.”

자역가여언시자야.”

"그대는 나와 함께 시에 대하여 이야기할 만하오."

卽命侍兒, 進酒一行,

즉명시아, 진주일행,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여 술을 한차례 권하였는데,

殽饌不似人間,

효찬불사인간, 차려 놓은 음식이 인간세상의 것과 같지 않았다.

試啖堅硬莫吃, 酒又苦不能啜.

시담견경막흘주우고불능철.

먹으려 해도 굳고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술맛도 또한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娥莞爾曰:

아완이왈: 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俗士, 那知白玉醴紅虯脯乎?”

   “속사, 나지백옥례홍규포호?”

"속세의 선비가 어찌 백옥례(白玉醴)와 홍규포(紅虯脯)를 알겠소."

命侍兒曰:

명시아왈: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였다.

“汝速去神護寺, 乞僧飯小許來.”

 “여속거신호사, 걸승반소허래.”

"너 빨리 신호사에 가서 절밥을 조금만 얻어 오너라."

兒承命而往, 須臾得來,

아승명이왕수유득래,

시녀가 시키는 대로 가서 곧 절밥을 얻어 왔다.

卽飯也. 又無下飯,

즉반야우무하반,

그러나 밥뿐이었고, 반찬이 또한 없었다.

又命侍兒曰:

우명시아왈: 그래서 다시 시녀에게 명하였다.

“汝去酒巖, 乞饌來.”

여거주암, 걸찬래.”

"얘야. 주암(酒巖)에 가서 반찬도 얻어 오너라."

須臾, 得鯉炙而來. 生啗之.

수유,   득리자이래생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녀가 잉어구이를 얻어 가지고 왔다. 홍생이 그 음식들을 먹었다.

啗訖, 娥已依生詩, 以和其意,

담흘아이의생시이화기의,

그가 음식을 먹고 나자, 여인이 이미 홍생은 시에 따라 그 뜻에 화답하였다.

寫於桂箋, 使侍兒, 投于生前.

사어계전사시아,   투우생전.

향기로운 종이에 시를 써서 시녀로 하여금 홍생에게 주도록 하였다.

 

其詩曰

기시왈: 그 시에 읊었다.

 

東亭今夜月明多,

동정금야월명다, 부벽정 오늘밤에 달빛 더욱 밝은데

淸話其如感慨何.

청화기여감개하. 맑은 이야기에 감회가 어떻던가?

樹色依稀靑蓋展,

수색의희청개전, 어렴풋한 나무 빛은 일산처럼 펼쳐졌고

江流瀲瀲練裙拖.

강류렴렴련군타. 넘치는 저 강물은 비단치마를 둘렀네.

光陰忽盡若飛鳥,

광음홀진약비조, 세월은 나는 새처럼 어느새 지나갔고

世事屢驚如逝波.

세사루경여서파. 세상일도 자주 변해 흘러가 버린 물 같아라.

此夕情懷誰了得,

차석정회수료득, 오늘밤의 정회를 그 누가 알아주랴

數聲鐘磬出烟蘿.

수성종경출연라. 깊은 숲에서 종소리만 이따금 들려 오네.

 

故城南望浿江分,

고성남망패강분, 옛성에 올라 보니 대동강이 어디런가

水碧沙明呌雁群.

수벽사명규안군. 푸른 물결 밝은 모래밭에 기러기 떼가 울며 가네.

麟駕不來龍已去,

린가불래룡이거, 기린 수레는 오지 않고 님도 벌써 가셨으니

鳳吹曾斷土爲墳.

봉취증단토위분. 봉피리 소리 끊어졌고 흙무덤만 남았어라.

睛嵐欲雨詩圓就,

정람욕우시원취, 갠 산에 비가 오려나, 내 시를 벌써 이뤄졌는데

野寺無人酒半醺.

야사무인주반훈. 들판 절에는 사람도 없어 나 혼자 술에 취하였네.

忍看銅駝沒荊棘,

인간동타몰형극, 숲 속에 자빠진 동타(銅駝)를 내 차마 보지 못하니

千年蹤跡化浮雲.

천년종적화부운. 천년의 옛 자취가 뜬구름 되었어라.

 

草根咽咽泣寒螿,

초근열열읍한장, 풀뿌리 차갑다고 쓰르라미 울어대네.

一上高亭思渺茫.

일상고정사묘망. 높은 정자에 올라 보니 생각조차 아득해라.

斷雨殘雲傷往事,

단우잔운상왕사, 비 그치고 구름 끼니 지나간 일이 가슴아픈데

落花流水感時光.

락화류수감시광떨어진 꽃 흐르는 물에 세월이 느껴지네.

波添秋氣潮聲壯,

파첨추기조성장, 가을이라 밀물소리 더더욱 비장한데다

樓蘸江心月色凉.

루잠강심월색량. 물에 잠긴 저 누각엔 달빛마저 처량해라.

此是昔年文物地,

차시석년문물지, 이곳이 그 옛날엔 문물이 번성했었지

荒城疎樹惱人腸.

황성소수뇌인장. 황폐한 성 늙은 나무가 남의 애를 끊는구나.

 

錦繡山前錦繡堆,

금수산전금수퇴, 금수산 언덕 앞에 금수가 쌓여 있어

江楓掩映古城隈.

강풍엄영고성외. 강가의 단풍들이 옛성을 비쳐 주네.

丁東何處秋砧苦,

정동하처추침고, 어디서 또닥또닥 다듬이소리가 들려 오나?

欸乃一聲漁艇回.

애내일성어정회. 뱃노래 한 가락에 고깃배가 돌아오네.

老樹倚巖緣薜荔,

로수의암연벽려, 바위에 기댄 고목에는 담쟁이가 얽혀 있고

斷碑橫草惹莓苔.

단비횡초야매태. 풀 속에 쓰러진 비석에는 이끼가 끼었구나.

凭欄無語傷前事,

빙란무어상전사, 말없이 난간에 기대어 지난 일을 생각하니

月色波聲摠是哀.

월색파성총시애.  달빛과 파도소리까지 모두가 슬프기만 해라.

幾介疎星點玉京,

기개소성점옥경, 별들이 드문드문 하늘에 널렸는데

銀河淸淺月分明.

은하청천월분명. 은하수 맑고 옅어 달빛 더욱 밝았구나.

方知好事皆虛事,

방지호사개허사, 이제야 알겠으니 모두가 허사로다

難卜他生遇此生.

난복타생우차생.저승을 기약키 어려우니 이승에서 만나 보세.

醽醁一樽宜取醉,

령록일준의취취, 술 한잔 가득 부어 취해 본들 어떠랴

風塵三尺莫嬰情.

풍진삼척막영정. 풍진 세상에 삼척검을 마음에다 둘 텐가?

英雄萬古成塵土,

영웅만고성진토, 만고의 영웅들도 티끌이 되었으니

世上空餘身後名.

세상공여신후명. 세상에 남는 것은 죽은 뒤의 이름뿐일세.

 

夜何知其夜向闌,

야하지기야향란, 이 밤이 어찌 되었나, 밤은 이미 깊어졌네.

女墻殘月正團團.

녀장잔월정단단. 담 위에 걸린 달이 이제는 둥글어졌네.

君今自是兩塵隔,

군금자시량진격, 그대와 지금부터 세속 인연을 벗었으니

遇我却賭千日歡.

우아각도천일환. 한없는 즐거움을 나와 함께 누려 보세.

江上瓊樓人欲散,

강상경루인욕산, 강가의 누각에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階前玉樹露初溥.

계전옥수로초부. 뜰 앞의 나무에는 찬이슬이 내리네.

欲知此後相逢處,

욕지차후상봉처, 이 뒤에 다시 한 번 만날 때를 알고 싶다니

桃熟蓬丘碧海乾.

도숙봉구벽해건. 봉래산에 복숭아 익고 푸른 바다도 말라야 한다네.

 

生得詩且喜,

생득시차희, 홍생은 시를 받아 보고 기뻐하였다.

 

 

2)기씨녀가 기자조선의 후예로신선이 된 내력, 기자조선에 대한 회고를 서술하다

 

猶恐其返也, 欲以談話留之.

유공기반야, 욕이담화류지.

그러나 그가 돌아갈까 봐 염려되어,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다.

問曰:

문왈: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不敢聞姓氏族譜.”

  “불감문성씨족보.”

"송구스럽지만 당신의 성씨와 족보를 듣고 싶습니다."

娥噫而答曰:

아희이답왈: 여인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하였다.

“弱質, 殷王之裔, 箕氏之女.

   “약질은왕지예기씨지녀.

"나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이라오.

我先祖, 實封于此,

아선조, 실봉우차, 나의 선조(기자)께서 실로 이 땅에 봉해지자

禮樂典刑, 悉遵湯訓, 以八條敎民,

례락전형실준탕훈,   이팔조교민,

예법과 정치제도를 모두 탕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였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으로써 백성을 가르쳤으므로,

文物鮮華, 千有餘年.

문물선화천유여년.

문물이 천년이나 빛나게 되었었소.

 

一旦天步艱難, 灾患奄至,

일단천보간난재환엄지,

갑자기 나라의 운수가 곤경에 빠지고 환난이 문득 닥쳐와,

 

先考敗績匹夫之手, 遂失宗社.

선고패적필부지수, 수실종사.

나의 선친(준왕)께서 필부(匹夫)의 손에 실패하여 드디어 종묘 사직을 잃으셨소.

 

衛瞞乘時, 竊其寶位, 而朝鮮之業墜矣.

위만승시절기보위,   이조선지업추의.

위만(衛滿)이 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훔쳤으므로, 우리 조선의 왕업은 끊어지고 말았소.

 

弱質顚蹶狼藉, 欲守貞節, 待死而已.

약질전궐랑자욕수정절대사이이.

나는 이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절개를 굳게 지키기로 다짐하고 죽기만 기다렸을 뿐인데,

 

忽有神人撫我曰:

홀유신인무아왈:

홀연히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나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소.

 

‘我亦此國之鼻祖也.

아역차국지비조야.

'나는 본래 이 나라의 시조인데,

 

享國之後, 入于海島,

향국지후, 입우해도,

나라를 잘 다스린 뒤에 바다 섬에 들어가

 

爲仙不死者, 已數千年,

위선불사자이수천년,

죽지 않는 선인(仙人)이 된 지가 벌써 수천 년이나 되었다.

 

汝能隨我紫府玄都, 逍遙娛樂乎?’

여능수아자부현도, 소요오락호?’

너도 나를 따라 하늘나라 궁궐에 올라가 즐겁게 노니는 것이 어떻겠느냐?'

 

余曰:諾.’

여왈:   ‘.’  내가 응낙하자

 

遂提携引我, 至于所居,

수제휴인아지우소거,

그 분이 마침내 나를 이끌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作別館以待之, 餌我以玄洲不死之藥.

작별관이대지이아이현주불사지약.

별당을 지어 나를 머물게 하고, 나에게 현주(玄洲)의 불사약을 주셨소.

服之累月, 忽覺身輕氣健,

복지루월, 홀각신경기건,

그 약을 먹고 몇 달이 지나자 홀연히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건장해지더니,

磔磔然, 如有換骨焉.

책책연, 여유환골언.

날개가 달려 신선이 된 것 같았소,

 

自是以後, 逍遙九垓,

자시이후, 소요구해,

그때부터 하늘에 높이 떠서

儻佯六合, 洞天福地,

당양륙합, 동천복지,

천지 사방을 오가며 동천복지(洞天福地)를 찾아

十洲三島, 無不遊覽.

십주삼도무불유람.

십주(十洲)와 삼도(三島)를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었소.

 

一日, 秋天晃朗, 玉宇澄明, 月色如水,

일일추천황랑,   옥우징명,   월색여수,

하루는 가을 하늘이 활짝 개고 하늘나라가 밝은데다 달빛이 물처럼 맑았소.

 

仰視蟾桂, 飄然有遐擧之志.

앙시섬계, 표연유하거지지.

달을 쳐다보니 갑자기 먼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소.

 

遂登月窟, 入廣寒淸虛之府,

수등월굴,   입광한청허지부,

그래서 달나라에 올라가서 광한청허지부(廣寒淸虛之府)에 들어가

 

拜嫦娥於水晶宮裏. 嫦娥以我貞靜能文, 誘我曰:

배항아어수정궁리항아이아정정능문유아왈:

수정궁으로 항아를 방문하였더니, 항아가 나더러 절개가 곧고 글을 잘 짓는다고 칭찬하면서 이렇게 달래었소.

 

‘下土仙境, 雖云福地, 皆是風塵,

하토선경, 수운복지, 개시풍진,

'인간세상의 선경(仙境)을 비록 복지(福地)라고는 하지만, 모두 풍진(風塵)의 땅이다.

 

豈如履靑冥驂白鸞, 挹淸香於丹桂,

개여리청명참백란, 읍청향어란계,

하늘나라에 올라와서 흰 난새를 타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맑은 향내를 맡으며,

 

服寒光於碧落, 遨遊玉京,

복한광어벽락, 오유옥경,

푸른 하늘에서 달빛을 띠고 옥경(玉京)에서 즐겁게 놀거나

 

遊泳銀河之勝也?’

유영은하지승야?’

은하수에서 목욕하는 것보다야 낫겠느냐?'

 

卽命爲香案侍兒, 周旋左右, 其樂不勝可言.

즉명위향안시아주선좌우기락불승가언.

그리고는 나를 향안(香案) 받드는 시녀로 삼아 자기 곁에 있도록 하여 주었는데, 그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소.

 

忽於今宵, 作鄕井念,

홀어금소, 작향정념,

그러다가 오늘 저녁에 갑자기 고국 생각이 나서,

 

下顧蜉蝣, 臨睨故鄕,

하고부유, 림예고향,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향땅을 굽어보았소.

 

物是人非, 皓月掩烟塵之色,

물시인비호월엄연진지색,

산천은 옛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달라졌고, 밝은 달빛이 연기와 티끌들을 가려 주었으며,

 

白露洗塊蘇之累, 辭下淸宵, 冉冉一降,

백로세괴소지루사하청소,   염염일강,

맑은 이슬이 대지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씻어 놓았기에, 옥경을 잠시 하직하고 살며시 내려와 보았소.

 

拜于祖墓, 又欲一玩江亭, 以暢情懷.

배우조묘우욕일완강정,   이창정회.

조상님의 산소에 절하고는, 부벽정이나 구경하면서 회포를 풀어 볼까 해서 이리로 왔었소.

 

適逢文士, 一喜一赧,

적봉문사일희일난,

마침 글 잘 하는 선비를 만나고 보니, 한편 기쁘고도 한편 부끄럽소.

 

輒依瓊琚之章, 敢展駑鈍之筆,

첩의경거지장감전노둔지필,

더군다나 그대의 뛰어난 시에다 노둔한 붓을 펼쳐 화답하였으니,

 

非敢能言, 聊以敍情耳.”

비감능언료이서정이.”

감히 시라고 한 게 아니라 회포를 대강 펼쳤을 뿐이오."

 

3]홍생은 기씨의 딸에게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시를 청해 받다

 

生再拜稽首曰:

생재배계수왈:

홍생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下土愚昧, 甘與草木同腐,

  “하토우매감여초목동부,

"아래 세상의 우매한 사람이야 초목과 함께 썩는 것이 마땅합니다.

 

豈意與王孫天女, 敢望唱和乎?”

개의여왕손천녀, 감망창화호?”

(이 나라의) 왕손이신 선녀를 모시고 시를 주고받게 될 줄이야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生卽於席前, 一覽而記. 又俯伏曰:

생즉어석전일람이기우부복왈:

홍생은 그 자리에서 한 번 읽어 본 시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엎드려서 말하였다.

 

“愚昧宿障深厚, 不能大嚼仙羞,

우매숙장심후, 불능대작선수,

"우매한 이 사람은 전세에 지은 죄가 많아서 신선의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만,

 

何幸粗知字畵,

하행조지자화,

다행히도 글자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稍解雲謠, 眞一奇也.

초해운요, 진일기야.

그래서 선녀께서 지으신 시도 조금은 이해하였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四美難具, 請復以江亭秋夜玩月爲題,

사미난구청복이강정추야완월위제,  

사미(四美)를 갖추기가 어려운데 (이제 이 네 가지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번에는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로 제목을 삼아서

 

押四十韻, 敎我.”

압사십운교아.”

사십 운(韻)의 시를 지어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佳人頷之, 濡筆一揮,

가인함지, 유필일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붓을 적셔 한번에 죽 내리썼다.

 

雲煙相軋, 走書卽賦曰:

운연상알, 주서즉부왈: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붓을 달려서 곧바로 지었다.

그 시에 읊었다.

 

[은자주]읽기 편하도록 연(聯)을 만들었으나 실제는 고시(古詩)여서

80구가 이어져 있다.

 

月白江亭夜,

월백강정야, 부벽정 달 밝은 밤에

長空玉露流.

장공옥로류. 먼 하늘에서 맑은 이슬이 내렸네

淸光蘸河漢,

청광잠하한, 맑은 빛은 은하수에 빛나고

灝氣被梧楸.

호기피오추. 서늘한 기운은 오동잎에 서려 있네.

皎潔三千界,

교결삼천계, 눈부시게 깨끗한 삼천리에

嬋娟十二樓.

선연십이루. 십이루(十二樓)가 아름다워라.

纖雲無半點,

섬운무반점, 가녀린 구름에는 반 점 티끌도 없는데

輕颯拭雙眸.

경삽식쌍모. 가벼운 바람이 눈앞을 스치네.

 

 

瀲灩隨流水,

렴염수류수, 넘실넘실 넘치며 흐르는 물에

依稀送去舟.

의희송거주. 아물아물 떠나는 배를 보내네.

能窺蓬戶隙,

능규봉호극, 배 안에서 창 틈으로 엿보니

偏映荻花洲.

편영적화주. 갈대꽃이 물가를 비추는구나.

似聽霓裳奏,

사청예상주, 「예상곡」이 들리는 건가

如看玉斧修.

여간옥부수. 옥도끼로 다듬은 건가.

蚌珠胚貝闕,

방주배패궐, 진주조개로 집을 지어

犀暈倒閻浮.

서운도염부염부주(炎浮洲)에 비치는구나.

 

願與知微翫,

원여지미완, 지미(知微)와 달구경하고

常從公遠遊.

상종공원유. 공원(公遠)을 따르며 놀아 보세나.

芒寒驚魏鵲,

망한경위작, 달빛이 차갑자 위나라 까치가 놀라고

影射喘吳牛.

영사천오우. 오나라 소는 그림자보고 헐떡이네.

隱隱靑山郭,

은은청산곽, 은은한 달빛이 푸른 산을 두르고

團團碧海陬.

단단벽해추. 둥근 달이 푸른 바다에 떴는데,

共君開鑰匙,

공군개약시, 그대와 함께 창을 열어 젖히고

乘興上簾鉤.

승흥상렴구.흥겨워 주렴을 걷어올리네.

   

李子停盃日,

리자정배일, 이자(李子)는 술잔을 멈추었고

吳生斫桂秋.

오생작계추. 오생(吳生)은 계수나무를 찍었지.

素屛光粲爛,

소병광찬란, 흰 병풍이 빛도 찬란한데

紈幄細雕鎪.

환악세조수. 아로새긴 채색 휘장이 쳐져 있네.

寶鏡磨初掛,

보경마초괘, 보배로운 거울을 닦아 내어 처음 걸고

永輪駕不留.

영륜가불류. 얼음 바퀴 구르던 것도 멈추지 아니하네.

 

 

金波何穆穆,

금파하목목, 금물결은 어이 그리도 아름다우며

銀漏正悠悠.

은루정유유. 은하수는 어이 그리도 유장한지,

拔劍妖蟆斫,

발검요마작 요사스런 두꺼비는 칼을 뽑아 없애고

張羅㕙兎罦.

장라준토부.교활한 옥토끼는 그물을 펼쳐 잡아 보세.

天衢新雨霽,

천구신우제, 먼 하늘에는 비가 처음 개고

石逕淡煙收.

석경담연수. 돌길에는 맑은 연기가 걷혔는데,

檻壓千章木,

함압천장목, 난간은 숲 사이에 솟았고

階臨萬丈湫.

계림만장추. 섬돌에선 만 길 못을 굽어보네.

 

 

關河誰失路,

관하수실로, 머나먼 곳에서 그 누가 길을 잃었나?

鄕國幸逢儔.

향국행봉주. 고향 나라 옛 친구를 다행히도 만났네.

桃李相投報,

도리상투보, 복사꽃과 오얏꽃을 서로 주고받으며

罍觴可獻酬.

뢰상가헌수. 잔에 가득 부어 술도 주고받았네.

好詩爭刻燭,

호시쟁각촉,초에다 금을 그어 다투어 시를 짓고

美酒剩添籌.

미주잉첨주.가지를 더해 가며 취토록 마셔 보세.

爐爆烏銀片,

로폭오은편, 화로 속에선 까만 숯불이 튀고

鐺翻蟹眼漚.

당번해안구. 노구솥에선 보글보글 거품이 이네.

 

 

龍涎飛睡鴨,

룡연비수압, 오리 향로에선 용연향(龍涎香)이 풍겨 오고

瓊液滿癭甌.

경액만영구. 커다란 잔 속에는 술이 가득해라.

鳴鶴孤松驚,

명학고송경, 외로운 소나무에선 학이 울고

啼螿四壁愁.

제장사벽수. 네 벽에선 귀뚜라미가 우는구나.

胡床殷瘦話,

호상은수화, 호상에서 은호와 유량이 이야기하고

晉渚謝遠遊.

진저사원유. 진저(晉渚)에서 사령운이 혜원과 노닐었었지.

 

 

彷彿荒城在,

방불황성재, 어렴풋이 거친 성터에

簫森草樹稠.

소삼초수조. 쓸쓸하게 초목만 우거져,

靑楓搖湛湛,

청풍요담담, 단풍잎은 하늘하늘 떨어지고

黃葦冷颼颼

황위랭수수 누런 갈대는 차갑게 사각거리네..

仙鏡乾坤闊,

선경건곤활, 선경이라 하늘과 땅이 넓기만 한데

塵閒甲子遒.

진한갑자주. 티끌 세상엔 세월도 빠르구나.

 

 

故宮禾黍穗,

고궁화서수, 옛 궁궐엔 벼와 기장이 여물었고

野廟梓桑樛.

야묘재상규. 사당에는 가래나무와 뽕나무가 늘어졌네.

芳臭遺殘碣,

방취유잔갈, 남은 자취는 빗돌 뿐이던가

興亡問泛鷗.

흥망문범구. 흥망을 갈매기에게나 물어 보리라.

纖阿常仄滿,

섬아상측만, 달님은 기울었다가 다시 차니

累塊幾蜉蝣.

루괴기부유. 인생이란 하루살이 같아라.

行殿爲僧舍,

행전위승사, 궁궐은 절간이 되고

前王葬虎丘.

전왕장호구. 옛날의 임금들은 세상 떠났네.

 

 

螢燐隔幔小,

형린격만소, 반딧불이 휘장에 가려 사라지자

鬼火傍林幽.

귀화방림유. 도깨비불이 깊은 숲에서 나타나네.

弔古多垂淚,

조고다수루, 옛날일 생각하면 눈물만 떨어지고

傷今自買憂.

상금자매우. 지금 세상 생각하면 저절로 시름겨우니,

檀君餘木覓,

단군여목멱, 단군의 옛터는 목멱산만 남았고

箕邑只溝婁.

기읍지구루. 기자의 서울도 실개천뿐일세.

 

窟有麒麟跡,

굴유기린적, 굴속에는 기린의 자취가 있고

原逢肅愼鍭.

원봉숙신후. 들판에는 숙신(肅愼)의 화살만 남았는데,

蘭香還紫府,

란향환자부, 난향(蘭香)이 자부(紫府)로 돌아가자

織女駕蒼虯.

직녀가창규. 직녀도 용을 타고 떠나가네.

文士停花筆,

문사정화필, 글 짓는 선비는 붓을 놓고

仙娥罷坎堠.

선아파감후. 선녀도 공후를 멈추었네.

曲終人欲散,

곡종인욕산, 노래를 마치고 사람들 흩어지려니

風靜櫓聲柔.

풍정노성유. 고요한 바람에 노 젓는 소리만 들려 오네.

 

寫訖, 擲筆凌空而逝, 莫測所之.

사흘, 척필릉공이서, 막측소지.

여인은 쓰기를 마친 뒤에 공중에 높이 솟아 가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將歸, 使侍兒傳命曰:

장귀, 사시아전명왈:

여인이 돌아가면서 시녀를 시켜 홍색에게 말을 전하였다.

 

“帝命有嚴, 將驂白鸞,

   “제명유엄장참백란,

"옥황상제의 명이 엄하셔서 나는 이제 흰 난새를 타고 돌아가겠소.

 

淸話未盡, 愴我中情.”

청화미진창아중정.”

맑은 이야기를 다하지 못했기에 내 속마음이 아주 섭섭하오."

 

 

4]홍생은 견우성 종사관에 임명되는 꿈을 꾸고 이승을 하직하다

 

俄而, 回飇捲地, 吹倒生座,

아이회표권지,   취도생좌,

얼마 뒤에 회오리바람에 불어와 땅을 휘감더니 홍생이 앉았던 자리도 걷고

掠詩而去, 亦不知所之.

략시이거 , 역불지소지.

여인의 시도 앗아가 버렸는데, 이 시도 또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蓋不使異話, 傳播人間也.

개불사리화,   전파인간야.

이상한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하여 퍼뜨리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生惺然而立, 藐爾而思, 似夢非夢, 似眞非眞.

생성연이립,  막이이사,   사몽비몽,   사진비진.

홍생은 조용히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었다.

 

倚闌注想, 盡記其語,

의란주상, 진기기어,

난간에 기대서서 정신을 모으고는 여인이 하였던 말들을 모두 기록하였다.

 

因念奇遇, 而未盡情款. 乃追懷以吟曰:

인념기우이미진정관.   내추회이음왈:

그는 기이하게 만났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것이 서운하여, 조금 전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시를 읊었다.

 

雲雨陽臺一夢間,

운우양대일몽간, 양대(陽臺)에서 꿈결에 님을 만났었네.

何年重見玉簫還.

하년중견옥소환. 어느 해에야 옥피리 불며 다시 돌아오시려나.

江波縱是無情物,

강파종시무정물, 대동강 푸른 물결이야 비록 무정하지만

嗚咽哀鳴下別灣.

오열애명하별만. 님 떠난 저 곳으로 슬피 울며 가는구나.

 

吟訖四盻,

음흘사혜,

시 읊기를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山寺鐘鳴, 水村鷄唱,

산사종명, 수촌계창,

산 속의 절에서는 종이 울고 물가 마을에서는 닭이 우는데,

 

月隱城西, 明星暳暳,

월은성서명성혜혜,

달은 성 서쪽으로 기울고 샛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但聽鼠啾于庭, 蟲鳴于座,

단청서추우정충명우좌,

다만 뜰에서 쥐소리가 들리고 자리 옆에서는 벌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悄然而悲, 肅然而恐,

초연이비, 숙연이공,

홍생은 쓸쓸하고도 슬펐으며 숙연하고도 두려워졌다.

 

愴乎其不可留也.

창호기불가류야.

마음이 서글퍼져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返而登舟, 怏怏鬱鬱,

반이등주앙앙울울,

돌아와 배에 올라탔는데도 우울하고 답답하였다.

 

抵于故岸, 同伴競問曰:

저우고안,   동반경문왈:

어제 놀던 강언덕으로 갔더니 친구들이 다투어 물었다.

 

“昨宵, 托宿甚處?”

  “작소탁숙심처?”

"어제 저녁에는 어디서 자고 왔는가?"

 

生紿曰:

생태왈: 홍생은 속여서 말하였다.

 

“昨夜, 把竿乘月,

“작야, 파간승월,

"어제 밤에는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따라

 

至長慶門外朝天石畔, 欲釣錦鱗.

지장경문외조천석반, 욕조금린.

장경문 밖 조천석 기슭까지 가서 좋은 고기를 낚으려고 하였었지.

 

會夜凉水寒, 不得一鮒,

회야량수한,  불득일부,

그런데 마침 밤 날씨가 서늘해서 물이 차가워져, 붕어 한 마리도 낚지 못하였다네.

 

何恨如之?”

하한여지?”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同伴亦不之疑也.

동반역불지의야.

친구들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其後, 生念娥, 得勞瘵尫羸之疾, 先抵于家,

기후,  생념아,   득로채왕리지질,   선저우가,

그 뒤에 홍생은 그 여인을 연모하다가 병을 얻어 쇠약해진 몸으로 자기 집에 돌아왔지만,

 

精神恍惚, 言語無常,

정신황홀 언어무상,

정신이 황홀하고 헛소리가 많아졌다.

 

展輾在床, 久而不愈.

전전재상 구이불유.

병상에 누운 지가 오래 되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生一日, 夢見淡妝美人, 來告曰:

생일일,  몽견담장미인,   래고왈:

홍생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엷게 단장한 미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主母奏于上皇,

“주모주우상황,

"우리 아가씨께서 선비님의 이야기를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上皇惜其才, 使隸河鼓幕下爲從事.

상황석기재,  사례하고막하위종사.

상제께서 선비님의 재주를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幕下)에 붙여 종사관으로 삼으셨습니다.

 

上帝勅勅汝, 其可避乎?”

상제칙칙여,  기가피호?”

옥황상제께서 선비님께 명하셨으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生驚覺,

생경각,

홍생은 놀라서 꿈을 깨었다.

 

命家人, 沐浴更衣,

명가인,  목욕경의,

집안사람을 시켜서 자기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게 하였다.

 

焚香掃地, 鋪席于庭,

분향소지,  포석우정,

향을 태우고 땅을 쓴 뒤에 뜰에 자리를 펴게 하였다.

 

支頤暫臥, 奄然而逝, 卽九月望日也.

지이잠와,  엄연이서,   즉구월망일야.

그는 턱을 괴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구월 보름날이었다.

 

殯之數日, 顔色不變,

빈지수일, 안색불변,

그의 시체를 빈소에 모셨는데,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人以爲遇仙屍解云.

인이위우선시해운.

사람들은 '홍생이 신선을 만나서 죽음에서 해탈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8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자화상 찬(自寫眞贊)

自寫眞贊

(자화상 찬)

ㅡ 김시습

俯視李賀

(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

(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譽

(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

(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眇

(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

(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

(의이치지) 네 몸을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

(구학지중) 금오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023002&wlog_tag3=naver#csidx5cb1eef2c190ffca8ad78f9df6ab14d

*[운영자 주]

번역에 '금오산'은 경주 남산.

산골짝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

그래서 '自寫眞贊' 을 기존 번역의 제목인 '나의 초상에 쓰다'를 바꾸어 '자화상 찬'이라 했다.

작품집 이름에 '금오'를 얹은 것은 금오산에서 유래함.

新話란 구우의 전등신화에서 아이디어를 모방한 人鬼交歡설화를 말함,

김시습은 34세 때 경주 남산 삼릉계곡 용장사 거소에서 <금오신화> 5편을 창작함.

*이하 李賀, Li He (791-817)

26세에 요절한 당대 천재시인.

 

[주]세조의 왕위찬탈로 파탄난 인생, 그는 장부의 표상이라며 수염을 기른 중으로 일생을 방랑했다.

47세때 환속하여 조부신께 사죄문도 올렸지만 충신불사이군의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태생의

역마살을 자극하여 집을 나서 걷고 또 걷게 만들었다.

년보와 함께 사후 89년 뒤 선조의 명에 의하여 율곡 이이(李珥) 선생이 지으신

<김시습전>도 읽어본다.

 

 

 

https://kydong77.tistory.com/21173

 

김시습, 금오신화 5편 총정리/ 同安常察,十玄談/ 김시습,십현담요해 & 한룡운, 십현담주해

[상단은 젊은 날의 초상화, 하단은 "자사진찬"까지 쓴 주름진 늙으막의 초상화] 자화상 찬(自寫眞贊) -위 사진. 俯視李賀 (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 (우어해동) 조선에서

kydong77.tistory.com

 

 

김시습 년보

http://www.maewd.com/

1435년(세종 17년)

시울 반중 북쪽에 있는 충순위(忠純衛) 일성(日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江陵)이요, 자는 열경(悅卿), 휘는 시습(時習),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법호는 설잠(雪岑)이다.

대대 무인의 집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문장이 뛰어나 귀여움을 받았다.

 

고려조 (高麗朝) 시중 김태현(金太鉉)의 십삼세 손이다.

그이 외조가 맡아서 글을 가르쳤는데 말은 가르치지 않고 천자만 가르치어

어려서부터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빨랐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논어(論語)에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設)乎)]에서 시습(時習)을 따서 휘(이름)로 하고 경(卿)자를 넣어서 열경(悅卿)이라고 자를 지었다고 한다.

세살 때 한시를 능히 지었다.

 

유모가 맷돌에 보리 가는 것을 보고 ,

 

[無 雨 黃 雲]

[비도 없이 천둥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이 각 사방에 흩어지네]

 

하고 소리 높이 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신기하게 여겼다.

 

1439년(세종 21년)

5세 때에 수찬(修撰) 이계전(李季甸)의 문하에서 중용과 대학을 배워 능통하였다.

정승 허 조 (許稠)가 그를 찾아가서 불러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늙을 로(老)자로 운을 달아 지어라]라고 하니

[늙은 나무가 꽃 피는 것은 마음이 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니

허 조는 문득 무릎을 치면서, [정말 신동이구나!]하고 탄복하였다 한다.

 

세종께서 이 소문을 듣고 시습을 불러 지신사(知申事) 박이창(朴以昌)에게 그의 재주를 시험하게 하여

[동자의 학문하는 태도가 흰 학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추는 것 같구나( 子之學 白鶴 靑空之末)]싯귀를 주어 댓귀를 지으라 하니

 

聖主之德 黃龍 海之中

[성스러운 임금님의 덕은 누런 용이 푸른 바다속에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라

답하여, 세종께서는 크게 칭찬하시고 비단 50필을 상으로 내렸다.

이로부터 이름은 온 나라에 떨쳐 사람들에게서 5세 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5세부터 13세까지

이웃에 사는 대사성(大司成) 김 반(金泮)의 문하에서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時經).춘추(春秋)를 배웠으며, 이웃에 사는 사성(司成) 윤상(尹祥)에게 나아가 역경(易經).예기(禮記)와 여러 사서(史書)에서 제자백가(諸自百家)에 이르기까지 배웠다.

 

1449년(세종 31년)

1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양육을 받았다.

 

1454년(단종 2년) 20세 때,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1455년(세조 1년) 21세에,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서 글을 읽다가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겼다는 변보를 듣고

문을 닫고 3일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읽던 서적을 다 불에 태우고 거짓 미친 채 변소에 빠졌다가

도망하여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1458년(세조 4년) 24세 때,

관서지방을 여행하였다.

가을에 <탕유관서록후지>를 저술하였다 .

 

1463년(세조 9년) 28세 때

방랑 여행으로 호남지방을 여행하였고 그해 가을에 <탕유호남록후지(宕遊湖南錄後志)>를

저술하였다. 가을에 서적 구입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고를 받아 열흘 동안 법화경(法華經)을 교정하였다.

 

1465년(세조 11년) 31세 때,

경주(慶州)에 정착하였고, 봄에 남산의 주봉인 금오산 용장사 아래 계곡에 금오산실을 지어 살았다.

3월말에 효령대군의 초청을 받아 서울로 나와 원각사(圓覺寺)의 낙성식에 참석하였다.

 

1468년(세조 14년) 34세 때,

겨울에 금오산에 거처하고 <산거백영(山居百詠)>을 저술하였다.

이즈음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다. 경주 남산의 주봉이 금오산이다.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인귀교환설화를 수용하여 ‘신화’라 붙이다.

 

1471년(성종 2년) 37세 되던 해

봄에 금오산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와 도성 동쪽 수락산 기슭에 폭천정사를 짓고 은거하였다.

 

1476년(성종 7년) 42세 때,

<산거백영후지(山居百詠後志)>를 저술하다.

 

1481년(성종 12년) 47세 때,

다시 속인이 되었다. 고기를 먹고 머리를 기르며 안씨(安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다.

 

1482년(성종 13년) 48세 때,

이 해 이후부터 세상이 쇠진해짐을 보고는 세상일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1483년(성종 14년) 49세 때,

육경(六經).자사 등의 많은 서적을 싣고 관동유람의 길을 떠났다.

 

1485년(성종 16년) 51세 때,

봄에 <독산원기(禿山院記)>를 지었다.

 

1493년(성종 24년) 59세 때,

3월에 충청도 홍산현(鴻山縣, 현재는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

1511년 (중종 6년)

세상을 떠난지 18년만에 왕명으로 유집(遺集)을 찾아 모아서 간행케 하였다.

1582년 (선조 15년)

세상을 떠난 지 89년만에 선조께서 이 이(李珥)에게 영을 내리어 김시습전(金時習傳)을 지어 바치게 하였다.

1703년 (숙종 29년)

세상을 떠난지 210년만에 유생 곽억령 등이 김시습 등 6인의 절의를 추모하여 사우를 세울 것을 상소하여

대왕께서 윤허하였다.

1782년 (정조 6년)

세상을 떠난 지 289년만에 이조판서(吏曺判書)에 추증하였다.

1784년 (정조 8년)

세상을 떠난 지 291년만에 청간(淸簡)이란 시호를 내렸다.

 

[참고]

무량사 (無量寺)에 선생의 부도(浮屠)가 있고 또 영정이 있다.

경주시 기림사 일주문 안에도

사찰 경내에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사당이 중수되어 있다.

이 영정은 선생이 자신의 초상을 자필로 그리셨다는 설이 전해 온다 .

선생은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저명한 학자이시다.

 

http://blog.naver.com/kwank99?Redirect=Log&logNo=30029487601

 

김시습전(金時習傳)

-이이(李珥)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이고 관은 강릉(江陵)이다. 신라 알지왕(閼智王)의 후손에 주원(周元)이라는 왕자가 있어 강릉을 식읍(食邑: 공신에게 내리어 조세(租稅)를 받아쓰게 한 고을)으로 하였는데, 자손들이 그대로 눌러 살아 관향으로 하였다.

 

그 후에 연(淵)이 있고 태현(台鉉)이 있었는데 모두 고려의 시중(侍中)이 되었다. 태현의 후손 구주(久住)는 벼슬이 안주목사(安州牧使)에 그쳤는데, 겸간(謙侃)을 낳았으니 그의 벼슬은 오위부장(五衛部將)에 그쳤다. 겸간이 일성(日省)을 낳으니 음보(蔭補: 벼슬을 조상의 음덕으로 얻는 것)로 충순위(忠順衛)가 되었다.

 

일성이 선사 장씨(仙사 張氏)에게 장가들어 선덕 10년(宣德十年: 世宗 17년, 1435) 시습을 한사(漢師: 지금의 서울)에서 낳았다.

특이한 기질을 타고나 생후 겨우 여덟 달에 스스로 글을 알아보았다. 최 치운(崔致雲: 본관 강릉(江陵). 세종 때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 최윤덕(崔潤德)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이 보고서 기이하게 여기어 이름을 시습이라고 지었다.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영민하여 문장을 대하면 입으로는 잘 읽지 못하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

3세에 시를 지을 줄 알았고 5세에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통달하니 사람들은 신동이라 불렀다. 명공(名公) 허조(許稠) 등이 많이 보러갔다.

 

장헌대왕(莊憲大王: 세종대왕의 시호)께서 들으시고 승정원으로 불러들여 시로써 시험하니 과연 빨리 지으면서도 아름다웠다. 하교(下敎)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친히 보고 싶으나 세속의 이목(耳目)을 놀라게 할까 두려우니, 마땅히 그 집에서 면려(勉勵)하게 하며 들어내지 말고 교양을 할 것이며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쓰리라" 하시고 비단을 하사하시어 집에 돌아가게 하였다.

 

이에 명성이 온나라에 떨쳐 오세(五歲)라고 호칭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시습이 이미 임금의 장려하여 주심을 받음에 더욱 원대한 안목으로 학업을 힘썼다.

 

그런데 경태(景泰: 명 태종의 연호 1450-1467)의 연간에 영릉(英陵: 세종대왕)ㆍ현릉(顯陵: 문종대왕을 이름.)이 연이어 돌아가시었고, 노산(魯山: 단종)은 3년 되는 해에 왕위를 손위(遜位)하였다.

이 때에 시습의 나이 21세로 마침 삼각산(三角山)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서울로부터 온 사람이 있었다.

시습은 즉시 문을 닫아걸고 3일 동안 나오지 않다가 이에 크게 통곡하고 서적을 몽땅 불살라 버렸으며,

광증을 발하여 변소에 빠졌다가 도망하여 자취를 불문(佛門)에 의탁하고 승명(僧名)을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어 청한자(淸寒子)ㆍ동봉(東峯)ㆍ벽산청은(碧山淸隱)ㆍ췌세옹(贅世翁)ㆍ매월당(梅月堂)이라 하였다.

 

그의 생김생김은 못생기고 키는 작았다.

뛰어나게 호걸스럽고 재질이 영특하였으나 대범하고 솔직하여 위의(威儀)가 없고 너무 강직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했다.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분개한 나머지 심기(心氣)가 답답하고 평화롭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세상을 따라 어울려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육신에 구애 받지 않고 세속 밖을 노닐었다.

국중(國中) 산천은 발자취가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고 좋은 곳을 만나면 머물러 살았으며, 고도(故都)에 올라 바라볼 때면 반드시 발을 동동 구르며 슬피 노래하기를 여러 날이 되어도 마지 않았다.

 

총명하고 영오(穎悟)함이 남달리 뛰어나서 사서(四書)와 육경(六經: 시ㆍ서ㆍ역ㆍ예기ㆍ주례ㆍ춘추)은 어렸을 때 스승에게서 배웠고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전수(傳受)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섭렵(涉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번 기억하면 끝내 잊지 아니하므로, 평일에는 독서하지 않고 또한 서책을 싸가지고 다니지도 않지만 고금의 문적(文籍)을 빠짐없이 관통하여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즉시 응대하였다.

 

돌무더기가 뭉쳐 있는 듯 답답하고 의분과 개탄으로 차있는 심흉(心胸)을 스스로 시원하게 풀어볼 도리가 없었기에 무릇 세상의 풍ㆍ월ㆍ운ㆍ우(風月雲雨), 산림천석(山林泉石), 궁실의식(宮室衣食), 화과조수(花果鳥獸)와 인사(人事)의 시비득실(是非得失), 부귀빈천, 사생질병, 희노애락(喜怒哀樂)이며, 나아가 성명이기(性命理氣)ㆍ음양유현(陰陽幽顯: 음은 유하고 양은 현하다)에 이르기까지 유형무형(有形無形)을 통틀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문장으로 나타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문장은 물이 솟구치고 바람이 부는 듯하며 산이 감추고 바다가 머금은 듯 신(神)이 메기고 귀신이 받는 듯 특출한 표현이 거듭거듭 나와 사람으로 하여금 실마리를 잡을 수 없게 하였다.

 

성률(聲律)과 격조(格調)에 대하여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빼어난 것은 사치(思致: 생각의 운치)가 높고 멀어 일상의 생각에서 뛰어났으므로 문장이나 자질구레하게 다듬어 수식하는 자로서는 따라 갈 수 없는 터이었다.

 

도리(道理)에 대해서는 비록 완미하여 탐색하고 존양(存養: 존심 양성)하는 공부가 적었지만 탁월한 재능과 지혜로써 이해하여, 횡담(橫談)ㆍ수론(竪論)하는 것이 대부분 유가(儒家)의 본지를 잃지 않았다.

 

선가(禪道)와 도가(道家)에 대해서도 또한 대의를 알았고 깊이 그 병통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선어(禪語: 禪門의 말) 짓기를 좋아하여 현모하고 은미한 뜻을 발휘 천명하되, 날카로워 훤해서 막히는 것이 없었으므로 비록 이름 높은 중으로서 선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도 감히 그 칼날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그의 타고난 자질이 빼어났음을 이것을 가지고도 징험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명성이 일찍부터 높았는데 하루아침에 세상을 도피하여 마음으로는 유교를 숭상하고 행동은 불교를 따라 한 시대에 괴이하게 여김을 당하였다고 여겼으므로 그래서 짐짓 미쳐서 이성을 잃은 모양을 하여 진실을 가렸다. 글을 배우고자하는 선비가 있으면 나무나 돌을 가지고 치거나 혹은 활을 당기어 쏘려는 듯이 하여 그 성의를 시험하였으므로 문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적었다.

 

또 산전(山田)을 개간하기 좋아하여 비록 부귀한 집안의 자제라도 반드시 김을 매고 거두어들이는 일을 시키는 등 매우 괴롭혔으므로 끝까지 학업을 전수받는 자는 더욱 적었다.

 

산에 가면 나무껍질을 벗겨 하얗게 하여 시 쓰기를 좋아 하였으며 외워 읊조리기를 얼마동안 하고 나서는 번번이 통곡하고 깎아버리곤 하였다. 시를 혹 종이에 쓰기도 하였으나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대부분 물이나 불 속에 던져벼렸다. 혹은 나무를 조각하여 농부가 밭갈고 김매는 모양을 만들어 책상 옆에 벌려놓고 하루 종일 골똘히 바라보다가는 통곡하고 불태워 버리기도 하였다.

때로는 심은 벼[禾]가 아주 무성하여 잘 여믄 모습이 완상(玩賞) 할만하면 술에 취해 낫을 휘둘러 온 이랑을 다 베어 땅에 내어 버리고서는 큰 소리로 목놓아 통곡하기도 하였다.

행동거지가 종잡을 수 없었으므로 크게 세속사람들의 비웃어 손가락질하는 바 되었다.

 

산에 살고 있을 때 찾아오는 손을 보고서 서울 소식을 물어, '마구 비웃고 꾸짖는 사람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으례 기쁜 빛을 하고 만일, '거짓으로 미쳤으며 속에 포부가 있다고 하더라'하면 문득 눈살을 찌푸리면서 기뻐하지 않았다.

사령을 받은 고관이 혹 인망이 없는 사람이면 반드시 통곡하여 이르기를,

"백성이 무슨 죄 있길래 이 사람이 이 자리를 맡는가" 하였다.

그 당시에 명경(名卿: 이름있는 공경) 김 수온(金守溫)과 서 거정(徐居正)은 국사(國士: 나라의 모범되는 선비)로 상찬(賞讚)되었다. 거정이 바야흐로 행인을 물리치고 바삐 조회에 들어가는데,

시습이 남루(藍縷)한 옷차림에 새끼줄로 허리띠를 두르고 폐양자(蔽陽子: 천한 사람이 쓰는 백죽립(白竹笠)를 쓰고서 저자에서 만났다. 시습은 앞에서 인도하는 무리를 무시하고 머리를 쳐들고 불러 말하기를

"강중(剛中: 거정의 자)이 편안한가"하였다.

 

거정은 웃으면서 이에 응답하고 초헌(초軒: 대부가 타는 수레)을 멈추어 서로 대화를 나누니, 온 저자 사람들이 놀라는 눈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조정의 선비로서 시습의 모욕을 당한 사람이 참지 못하여 거정을 보고서 상주하여 그 죄를 다스려야겠다고 하니, 거정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만두시오, 미친 사람과 무얼 따질 것이 있겠소.

지금 이 사람을 죄주면 백대(百代)후에 반드시 공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이오."

 

하였다.

 

김 수온이 지관사(知館事)로서 "맹자 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이라는 논제를 가지고 태학(太學: 성균관)의 유생들을 시험하였다.

어떤 상사생(上舍生: 진사나 생원)이 삼각산에 가서 시습을 보고 말하기를,

"괴애(乖崖: 수온의 별호)가 장난을 좋아합니다. '맹자 견양혜왕'이 어찌 논제에 합당하겠습니까." 하였다.

 

시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 노인이 아니면 이 논제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고 이에 붓을 들어 재빨리 한편의 글을 만들어 주며 말하기를,

"생원이 스스로 지은 것처럼 해서 이 노인을 한번 속여 보시오."

하였다.

 

상사생이 그 말대로 따라하였더니 수온이 끝까지 읽지도 않고 급히 묻기를.

"열경이 지금 서울의 어느 절에 머물고 있는가." 하였다.

상사생은 숨길 도리가 없었으니 그 알려짐이 이와 같았다.

그의 이론은 대략 '양혜왕은 왕을 참칭(僭稱)한 자이니, 맹자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인데 지금은 그 글이 없어져서 수집하지 못한다.

수온이 죽은 뒤 그가 좌화(坐化: 앉아서 죽음)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시습은 말하기를,

"괴애는 욕심이 많은데 어찌 그런 일이 있었겠는가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좌화는 예가 아니다. 나는 다만 증자(曾子)의 역책(易책)과 자로(子路)의 결영(結纓)을 들었을 따름이오.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하였다.

 

아마 수온이 부처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리라.

성종(成宗) 12년(1481) 시습의 나이 47세였다. 갑자기 머리를 기르고 제문을 만들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문은 대략 이러하였다.

 

"제(帝: 순임금)께서 오교(五敎: 오륜)를 베푸심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맨 앞에 위하고 죄가 3천 가지로 나열되지만 불효의 죄가 가장 크옵니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이 누구인들 부모의 길러주시고 교육하여 주신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고 미련한 소자는 본지(本支)를 사승(嗣承)하여 이어나가야 하온데 이단(異端: 불교와 노장)에 침체(沈滯)하여 말년에서야 겨우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에 예전(禮典)을 상고하고 성경(聖經)을 탐색하여 추원(追遠)하는 큰 의례를 강구하여 정하고, 청빈한 생활을 참작하여 간략하지만, 정결하기를 힘쓰며 성의가 담긴 제수를 차리려 애썼습니다.

한무제(漢武帝)는 70세에야 비로소 전 승상(田丞相)의 ‘선술(仙術)을 멀리하라’는 말을 깨달았고, 원덕공(元德公)은 100세에야 허 노재(許魯齋)의 ‘인의강상(仁義綱常)’의 권고에 감화하였습니다."

 

드디어 안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이 벼슬하라고 권하였으나 시습은 끝내 지조를 굽히지 않고 방광(放曠)하기를 예와 같이 하였다.

달 밝은 밤을 만나면 이소경(離騷經) 외우기를 좋아하였고, 외우고 나면 반드시 통곡하였다.

혹 송사하는 곳에 들어가 사곡(邪曲)한 것을 정직한 것으로 만들어 궤변(詭辯)을 부려서 반드시 이겼으며, 판결 문안이 이루어지면 크게 웃고 파기하기도 하였다. 뛰노는 시동(市童)들과 어울려 놀며 취하여 길가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하루는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이 저자를 지나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저놈을 멈추게 하라" 고 하였다.

 

창손은 듣지 못한 체 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위험한 일로 여기어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절교하였는데

다만 종실(宗室: 왕족)인 수천부정(秀川副正) 정은(貞恩)과 남 효온(南孝溫)ㆍ안응세(安應世)ㆍ홍유손(洪裕孫) 등의 무리 몇 사람만이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효온이 시습에게 묻기를,

"나의 소견은 어떠한가."

하니, 시습은 대답하였다.

"창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는 거지."

효온이,

"동봉 그대의 소견은 어떠한가."

하니 시습은 말하였다.

"넓은 뜰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거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아내가 죽자,

다시 산으로 돌아가 두타(頭陀)(중이 머리를 깎아 눈썹과 같게 한 것)의 모습을 하였다.

강릉과 양양 지방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였고 설악(雪嶽)ㆍ한계(寒溪)ㆍ청평(淸平) 등지의 산에 많이 있었다.

 

유자한(柳自漢)이 양양의 원으로 있으면서 예로써 대접하며 가업을 회복하여 세상에 나가기를 권하자 시습은 이를 서신으로 사절했는데, 거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차 장참(長鑱: 긴 자루가 달린 가래. 농기구의 한 가지)을 만들어 영출(笭朮: 茯笭과 蒼朮)이나 캐겠소. 온 나무가 서리에 얼어붙거든 중유(仲由)의 온포(縕袍)를 손질하고, 온산에 백설이 쌓이거든 왕공(王恭)의 학창을 매만지려 합니다. 낙백(落魄)하여 세상에 사는 것보다는 소요(逍遙)하며 한 평생을 보내는 편이 나을 것이요,

천년 후에 나의 속뜻(素志)을 알아주기 바라는 바이요."

 

성종 24년(1493)에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병들어 누워 서거하니 향년 59세였다.

우연을 하여 화장하지 말고 절 옆에 임시로 빈소차림을 하여 놓아두라고 일렀다.

3년 후에 장사지내려고 빈소를 열어보니 안색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중들은 놀라 탄식하며 모두 부처라고 하였다. 마침내 불교식에 의하여 다비(茶毗: 불교의 화장)하고 그 뼈를 취하여 부도(浮圖: 작은 탑)를 만들었다.

생존시에 손수 늙었을 때와 죽었을 때의 두 개의 화상을 그리고,

또 스스로 찬(贊)을 지어 절에 남겨 두었다.

[찬의 완역을 아래 포스트에서 보완함]

 

 

자화상 찬(自寫眞贊) 

 

俯視李賀

(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

(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

(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

(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眇

(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

(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

(의이치지) 네 몸을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

(구학지중) 금오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023002&wlog_tag3=naver#csidx5cb1eef2c190ffca8ad78f9df6ab14d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8008?category=484903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지은 시문은 산실(散失)되어 십분의 일도 보존되지 못하였는데

이자(李자)ㆍ박상(朴祥)ㆍ윤춘년(尹春年) 등이 선후 수집해서 세상에 인쇄하여 내놓았다고 한다.

 

신 삼가 생각컨대, 사람이 천지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는데, 청하고 탁하며 후하고 박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면서 아는 생지(生知)와 배워서 아는 학지(學知)의 구별이 있으니, 이것은 의리(義理)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습과 같은 사람은 문(文)에 대하여 나면서부터 터득했으니 이는 문장에도 생지가 있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미친 짓을 하여 세상을 도피한 은미한 뜻은 가상하나 그렇다고 굳이 윤리의 유교를 포기하고 방탕하게 스스로 마음내키는 대로 한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빛을 감추고 그림자마저 숨기어 후세로 하여금 김시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 한들 도대체 무엇이 답답할 것 있겠습니까. 그 인품을 상상해 보건대 재주가 타고난 기량(器量)의 밖으로 넘쳐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였던 것이니, 어찌 경청(輕淸)한 기(氣)를 받기는 풍족한데 후중(厚重)한 기를 받기는 부족하였던 이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절의(節義)를 표방(標榜)하고 윤리를 심어 그 심지를 구극(究極)하여 보면 일월(日月)로 더불어 광채를 다툴 만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풍(氣風)을 접하면 나약(懦弱)한 사람도 감흥하여 일어서게 될 것이니 비록 백세(百世)의 스승이라 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시습의 영특한 자질을 가지고 학문과 실천을 갈고 닦으며 힘썼던들 그 이룩한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아! 바른말과 준엄한 논의로 기피(忌避)해야 할 것도 저촉하며, 공(公)ㆍ경(卿)을 매도(罵倒)해 조금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 당시에 그의 잘못을 들어 말한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선왕의 성대하신 덕과 높은 재상들의 넓은 도량은, 말세에 선비로 하여금 말을 공손하게 하도록 하는 것과 견주어 볼 때, 그 득실이 어떠하겠습니까. 아! 거룩합니다.』

 

【해설】

이이(李珥)가 지은 전(傳). 김시습에 대하여 지은 전이다.

작자의 문집인 <율곡집> 권14∼16 ‘잡저’에 실려 있는 그의 유일한 ‘전(傳)’이다.

율곡의 나이 47세 7월에 지은 것으로,

대부분 김시습에 대해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술하였으며,

다만 끝에 저자의 의견을 덧붙여 절의와 윤기를 내세워 백세지사(百世之師)로 찬양하여 그의 억울한 울분의 넋을 달래주고자 하였다.

 

<김시습전>의 내용은 김시습의 선세가계(先世家系)에서 시작하여, 어린 시절 학문을 처음 익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와 단종의 손양(遜讓)과 세조의 즉위에서 비롯된 김시습의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특히, 불문(佛門)에 의탁하여 방외(方外)에 놀았으나 그의 중심은 언제나 유자(儒者)의 위치에 머물렀음을 지적하였다. <김시습전> 중에서 학문과 문학적 재능에 대하여 세밀히 기록하는 과정에서 더러 세상에 전해지는 이야기 등도 수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 김수온(金守溫)ㆍ서거정(徐居正)ㆍ남효온(南孝溫)ㆍ정창손(鄭昌孫)ㆍ유자한(柳自漢)과의 일화는 대체로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말년에 그가 안씨(安氏)를 취하여 가정을 이루었던 사실과 오늘날 이자(李秕)ㆍ박상(朴祥)ㆍ윤춘년(尹春年)에 의하여 그의 시문집이 전하게 된 내력을 밝혔다.

말미에는 이이 자신의 김시습에 대한 평을 기록하고 있다.

 

<김시습전>은 전통적인 전의 양식에 충실하여 사실을 기록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일화로 남는 김시습의 행적 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설화로 유전하는 그의 일생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위하여 엄격한 비평적 안목에 의하여 그를,

 

“재주가 그릇(器) 밖으로 넘쳐흘러서 스스로 수습할 수 없으리만큼 되었으니,

그가 받은 기운이 경청(輕淸: 곡조 따위가 맑고 가벼움)은 지나치고 후중(厚重)은 모자라게 마련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의 의(義)를 세우고 윤기(倫紀: 윤리와 기강)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風聲)을 듣는 사람들은 겁장이도 용동하는 것을 보면 가히 백세의 스승되기에 남음이 있다.”고 한 말은 그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한 평가일 것이다.

 

또한, 이이는 김시습이 영특하고 예리한 자질로써 학문에 전념하여 공과 실천을 쌓았다면 그 업적은 한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애석해하였다. 불우한 삶을 영위하였던 한 인물에 대한 올바른 기록을 전이라는 양식을 빌려 쓴 하나의 전형이다.

 

김시습 영정[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 무량사]

 

 

[주]담장은 빈부의 세계, 서민과 귀족,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경계다.

담장 안은 이생이 경험하지 못한 이상세계였다.

담장을 넘어 최랑과 시를 창수하니 신선세계에서 선녀를 만난 기분이었다.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애[풋사랑]ㅡ울산 농장ㅡ결혼ㅡ홍건적의 난에 최씨 피살ㅡ인귀교환ㅡ冥數(명수) 다해 영별.

이 작품의 구성은 세 차례에 걸친 만남과 이별의 변주곡이다.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이생이 담장 안을 엿본 이야기) 

김시습(金時習)

 

1]이생, 최랑집 담장 안에서 최랑을 만나다

1)이생, 담장 너머 최랑과 시를 수작하다

 

松都有李生者

(송도유이생자) : 송도에 이생이라는 자가 있는데

居駱駝橋之側

(거낙타교지측) : 낙타교 옆에 살고 있었다.

[주] 駱駝橋:[동국여지승람]橐駝橋 古稱萬夫橋 今稱夜橋. 걸안 화친하려 낙타 50필 보내옴.

고려 태조 사신 30인 행도에 유배. 낙타 다리에 메어 餓死.

[열하일기]鵠汀筆談. 만부교→낙타교(조선 세조)→(성종이후)若大多利, 夜橋, 野多利로 변모함.

年十八

(년십팔) : 나이는 열 여덟이었다.

風韻淸邁

(풍운청매) : 풍운이 맑고

天資英秀

(천자영수) : 재주가 뛰어나

常詣國學

(상예국학) : 일찍부터 국학(國學)에 다녔는데,

讀詩路傍

(독시로방) : 길가에서도 시를 읽었다.

 

善竹里'

(선죽리) : 선죽리

有巨室處崔氏

(유거실처최씨) : 귀족집에서는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年可十五六

(년가십오륙) : 나이는 열대 여섯쯤 되었다.

態度艶麗

(태도염려) : 태도가 아리땁고

工於刺繡

(공어자수) : 수도 잘 놓았으며,

而長於詩賦

(이장어시부) : 시와 문장도 잘 지었다.

世稱

(세칭) :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風流李氏子

(풍류이씨자) : 풍류로워라 이씨 집안 총각

窈窕崔家娘

(요조최가낭) : 아리따워라 최씨 집안 처녀여

才色若可餐

(재색약가찬) : 그 재주와 그 얼굴 [한 번 보면]

可以療飢腸

(가이료기장) : 주린 창자 채운 둣하지.

 

李生嘗挾冊詣學

(이생상협책예학) : 이생은 일찍부터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다닐 때에

常過崔氏之家北牆外

(상과최씨지가북장외) : 언제나 최씨네 집 북쪽 담 밖으로 지나다녔다.

垂楊裊裊

(수양뇨뇨) : 간들거리는 수양버들

數十株環列

(수십주환열) : 수십 그루가 그 담을 둘러싸고 있었다.

李生憩於其下

(이생게어기하) : 이생이 그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一日窺牆內

(일일규장내) : 어느 날 담 안을 엿보았더니,

名花盛開

(명화성개) :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고

蜂鳥爭喧

(봉조쟁훤) : 벌과 새들이 다투어 재잘거리고 있었다.

 

傍有小樓

(방유소루) : 그 곁에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隱映於花叢之間

(은영어화총지간) : 꽃떨기 사이로 은은히 보였다.

株簾半掩

(주렴반엄) : 구슬발이 반쯤 가려 있고

羅幃低垂

(라위저수) :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有一美人

(유일미인) :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倦繡停針

(권수정침) : 수를 놓다가 지쳐 잠시 바늘을 멈추며

支頤而吟曰

(지이이음왈) : 턱을 괴고 시를 읊었다.

 

獨倚紗窓刺繡遲

(독의사창자수지) : 사창(紗窓)에 홀로 기대앉아 수놓기도 귀찮구나.

百花叢裏囀黃鸝

(백화총리전황리) : 온갖 꽃 떨기 속에 꾀꼬리 소리 다정도 해라.

無端暗結東風怨

(무단암결동풍원) : 부질없이 마음속으로 봄바람을 원망하며

不語停針有所思

(불어정침유소사) : 말없이 바늘 멈추고는 생각에 잠겼어라.

 

路上誰家白面郞

(로상수가백면랑) : 저 길 위의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일까.

靑衿大帶映垂楊

(청금대대영수양) : 푸른 옷깃 넓은 띠가 늘어진 버들 사이로 비쳐 오네.

何方可化堂中燕

(하방가화당중연) : 이 몸이 죽어 가서 대청 위의 제비 되면

低掠珠簾斜度墻

(저략주렴사도장) : 주렴 위를 가볍게 스쳐 담장 위를 날아 넘으리.

 

生聞之

(생문지) : 이생은 그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

不勝技癢

(불승기양) :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然其門戶高峻

(연기문호고준) : 그러나 그 집의 담이 높고도 가파르며

庭闈深邃

(정위심수) :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但怏怏而去

(단앙앙이거) : 어쩔 수 없이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還時以白紙一幅

(환시이백지일폭) :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흰 종이 한 장에다

作詩三首

(작시삼수) : 시 세 수를 써서

繫瓦礫投之曰

(계와력투지왈) :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넣었다.

 

巫山六六霧重回

(무산육육무중회) : 무산 열두 봉우리 첩첩이 쌓인 안개 굽어도는데

半露尖峰紫翠堆

(반로첨봉자취퇴) : 반쯤 드러난 뽀죽한 봉우리가 붉고도 푸르구나.

惱却襄王孤枕夢

(뇌각양왕고침몽) : 양왕의 외로운 꿈을 수고롭게 하지 마오.

肯爲雲雨下陽臺

(긍위운우하양대) :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양대에서 만나 보세.

 

相如欲挑卓文君

(상여욕도탁문군)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되어 탁문군(卓文君)을 꾀어내려니

多少情懷已十分

(다소정회이십분) :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은 이미 다 이루어졌네.

紅粉墻頭桃李艶

(홍분장두도리염) : 붉은 담머리의 복사꽃과 오얏꽃은

隨風何處落繽紛

(수풍하처락빈분) : 바람에 날려서 어디로 떨어지나.

 

好因緣邪惡因緣

(호인연사악인연) : 좋은 인연되려는지 나쁜 인연 되려는지

空把愁腸日抵年

(공파수장일저년) : 부질없는 이 내 시름 하루가 일 년 같아라.

二十八字媒已就

(이십팔자매이취) : 스물 여덟 자로 황혼의 기약을 맺었으니

藍橋何日遇神仙

(남교하일우신선) : 남교에서 어느 날 신선을 만나려나.

 

崔氏

(최씨) : 최씨가

命侍婢香兒

(명시비향아) : 몸종 향아(香兒)를 시켜서

往取見之

(왕취견지) : 그 편지를 주워다 보니,

卽李生詩也

(즉이생시야) : 바로 이생이 지은 시였다.

 

披讀再三

(피독재삼) : 최랑이 그 시를 펼쳐서 두세 번 읽고는

心自喜之

(심자희지) :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였다.

以片簡

(이편간) : 종이 쪽지에

又書八字

(우서팔자) : 여덟 자를 써서

投之曰

(투지왈) : 담 밖으로 던져 주었다.

 

將子無疑

(장자무의) : "그대여. 의심 마오.

昏以爲期

(혼이위기) : 황혼에 만나요."

 

 

2)이생 황혼에 최랑집 담장을 넘어 시를 창수하다

-신선세계에서 선녀를 만난 기분이었다

 

生如其言

(생여기언) : 이생이 그 말대로

乘昏而往

(승혼이왕) : 황혼이 되자 최랑의 집을 찾아갔다.

忽見桃花一枝

(홀견도화일지) : 갑자기 복사꽃 한 가지가

過墻而有搖裊之影

(과장이유요뇨지영) : 담 위로 넘어오면서 하늘거리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往視之則以鞦韆絨索

(왕시지칙이추천융삭) : 이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네줄이

繫竹兜下垂(계죽두하수) : 대바구니를 매어서 아래로 늘어뜨려 놓았다.

生攀緣而踰

(생반연이유) : 이생을 그 줄을 잡고 담을 넘었다.

 

會月上東山

(회월상동산) : 마침 달이 동산에 떠오르고

花影在地(화영재지) : 꽃 그림자가 땅에 비껴

淸香可愛(청향가애) : 맑은 향내가 사랑스러웠다.

生意謂已入仙境

(생의위이입선경) : 이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여

心雖竊喜

(심수절희) : 마음은 비록 기뻤지만,

而情密事秘

(이정밀사비) : 자기의 마음이나 지금 하려는 일이 비밀스러워서

毛髮盡竪

(모발진수) : 머리칼이 모두 곤두섰다.

 

回眄左右

(회면좌우) : 이생이 좌우를 둘러보았더니,

女已在花叢裏

(여이재화총리) : 최랑은 꽃떨기 속에서

與香兒(여향아) : 향아와 같이

折花相戴

(절화상대) :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鋪罽僻地

(포계벽지) : 외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見生微笑

(견생미소) : 최랑이 이생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

口占二句

(구점이구) : 시 두 구절을

先唱曰

(선창왈) : 먼저 읊었다.

 

桃李枝間花富貴

(도리지간화부귀) : 복사와 오얏 가지 사이로 꽃송이 탐스럽고

鴛鴦枕上月嬋娟

(원앙침상월선연) :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고와라.

 

生續吟曰

(생속음왈) : 이생이 뒤를 이어 시를 읊었다.

 

他時漏洩春消息

(타시루설춘소식) : 다음날 어쩌다가 봄소식이 새나간다면

風雨無情亦可憐

(풍우무정역가련) : 비바람 무정하니 더욱 가련하리라.

 

女變色而言曰

(여변색이언왈) : 최랑이 얼굴빛이 변하면서 말하였다.

本欲與君

(본욕여군) : "저는 본디 당신과 함께

終奉箕帚

(종봉기추) : 부부가 되어 끝까지 남편으로 모시고

永結歡娛

(영결환오) :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어요.

郞何言之若是遽也

(랑하언지약시거야) : 그런데 당신은 어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妾雖女類

(첩수여류) :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心意泰然

(심의태연) : 마음이 태연한데,

丈夫意氣

(장부의기) : 장부의 의기를 가지고도

肯作此語乎

(긍작차어호) :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他日閨中事洩

(타일규중사설) : 다음날 규중의 일이 누설되어

親庭譴責

(친정견책) : 친정에서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妾以身當之

(첩이신당지) : 제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香兒可於房中

(향아가어방중) : "향아야. 방 안에서

賫酒果以進

(재주과이진) : 술과 안주를 가져오너라."

兒如命而往

(아여명이왕) : 향아가 시키는 대로 가버리자,

四座寂寥

(사좌적요) : 사방이 고요하여

闃無人聲

(격무인성) :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生問曰

(생문왈) : 이생이 최랑에게 물었다.

此是何處

(차시하처) : "이곳은 어디입니까?"

女曰

(여왈) : 최랑이 말하였다.

此是北園中小樓下也

(차시북원중소루하야) : "이곳은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아래이지요.

父母以我一女

(부모이아일녀) :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외동딸이기 때문에

情鍾甚篤

(정종심독) : 여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別構此樓于芙蓉池畔

(별구차누우부용지반) : 그래서 연못가에다 이 누각을 따로 지어 주셨지요.

 

方春時

(방춘시) : 봄이 되어

名花盛開

(명화성개) :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면

欲使從侍兒遨遊耳

(욕사종시아오유이) : 몸종 향아와 함께 즐겁게 놀라고 하신 거지요.

親闈之居

(친위지거) : 부모님이 계신 곳은

閨閤深邃

(규합심수) : 여기서 멀기 때문에

雖笑語啞咿

(수소어아이) : 아무리 웃으며 크게 이야기해도

亦不能卒爾相聞也

(역불능졸이상문야) : 쉽게 들리지는 않는답니다."

 

女酌綠蟻一巵

(여작녹의일치) : 최랑이 술 한 잔을 따라

口占古風一篇曰

(구점고풍일편왈) : 이생에게 권하면서 고풍(古風)으로 한 편을 읊었다.

 

曲欄下壓芙蓉池

(곡란하압부용지) : 부용못 푸른 물을 난간에서 굽어보다

池上花叢人共語

(지상화총인공어) : 꽃떨기 속에서 님들이 속삭이네.

香霧霏霏春融融

(향무비비춘융융) : 향그런 안개 깔린 속에 봄빛이 화창해서

製出新詞歌白紵

(제출신사가백저) : 새 가사를 지어내어「백저사(白紵詞)」를 부르는구나.

月轉花陰入氍毹

(월전화음입구유) : 꽃그늘에 달빛이 비껴 털방석에 스며들고

共挽長條落紅雨

(공만장조락홍우) : 긴 가지 함께 잡으니 붉은 꽃비가 떨어지네.

風攪淸香香襲衣

(풍교청향향습의) : 바람이 향내를 끌어와 옷 속에 스며들자

賈女初踏春陽舞

(고녀초답춘양무) : 첫봄을 맞은 아가씨가 햇살 속에 춤추네.

羅衫輕拂海棠枝

(나삼경불해당지) : 비단 적삼 가볍게 해당화를 스쳤다가

驚起花間宿鸚鵡

(경기화간숙앵무) : 꽃 사이에 졸고 있던 앵무새만 깨웠네.

 

生卽和之曰

(생즉화지왈) : 이생도 바로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誤入桃源花爛熳

(오입도원화난만) : 도원에 잘못 들어와 복사꽃이 만발한데

多少情懷不能語

(다소정회불능어) : 많고 많은 이 내 정회(情懷)를 다 말할 수가 없네.

翠鬟雙綰金Ꟃ低

(취환쌍관금차저) : 구름같이 쪽찐 머리에 금비녀 낮게 꽂고

楚楚春衫裁綠紵

(초초춘삼재록저) : 산뜻한 봄 적삼을 모시 베로 지었구나.

東風初拆竝帶花

(동풍초탁병대화) : 나란히 달린 꽃가지를 봄바람에 꺾다니

莫使繁枝戰風雨

(막사번지전풍우) : 하많은 꽃가지에 비바람아 부지 마소.

飄飄仙袂影婆婆

(표표선몌영파파) : 선녀의 소맷자락 나부껴 그림자도 하늘거리고

叢桂陰中素娥舞

(총계음중소아무) : 계수나무 그늘 속에선 미녀가 춤을 춘다

勝事未了愁必隨

(승사미료수필수) : 좋은 일이 끝나지 않아도 시름이 따를 테니

莫製新詞敎鸚鵡

(막제신사교앵무) : 함부로 새 곡조 지어 앵무새에게 가르치지 마오

 

3)이생, 최랑의 누각 내실에 들어 마음껏 정을 나누다

-비경의 그림과 화제(畵題) 속에서 황홀경을 헤매다

 

吟罷

(음파) : 술자리가 끝나자

女謂生曰

(여위생왈) : 최랑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今日之事

(금일지사) : "오늘의 일은

必非小緣

(필비소연) : 반드시 작은 인연이 아니랍니다.

郞須尾我

(랑수미아) : 당신은 저를 따라오셔서

以遂情款(이수정관) : 정을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

言訖(언흘) : 말을 마치고

女從北窓入

(여종북창입) : 최랑이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生隨之

(생수지) : 이생도 그 뒤를 따라갔다.

樓梯在房中

(루제재방중) : 누각에 달린 사다리가 있었는데,

綠梯而昇

(록제이승) :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더니

果其樓也

(과기루야) : 과연 그 다락이 나타났다.

文房几案

(문방궤안) : 문방구와 책상들이

極其濟楚

(극기제초) : 아주 말끔했으며,

一壁展煙江疊嶂圖

(일벽전연강첩장도) : 한쪽 벽에는「연강첩장도(烟江疊圖)」와

幽篁古木圖

(유황고목도) :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가 걸려 있었는데,

皆名畵也

(개명화야) : 모두 이름난 그림이었다.

題詩其上

(제시기상) : 그 그림 위에는 시가 씌어 있었는데,

詩不知何人所作

(시부지하인소작) : 누가 지은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其一曰

(기일왈) : 첫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何人筆端有餘力

(하인필단유여력) : 어떤 사람의 붓끝에 힘이 넘쳐

寫此江心千疊山

(사차강심천첩산) : 이 강 속에다 겹겹이 쌓인 산을 그렸던가?

壯哉方壺三萬丈

(장재방호삼만장) : 웅장해라. 삼만 길의 저 방호산(方壺山)은

半出縹緲烟雲間

(반출표묘연운간) : 아득한 구름 사이로 반쯤만 드러났네.

遠勢微茫幾百里

(원세미망기백리) : 저 멀리 산세(山勢)는 몇백 리까지 뻗어 있는데

近見崒嵂靑螺鬟

(근견줄률청라환) : 푸른 소라처럼 쪽진 머리가 가까이 보이네.

滄波淼淼浮遠空

(창파묘묘부원공) : 끝없이 푸른 물결 공중에 닿았는데

日暮遙望愁鄕關

(일모요망수향관) : 저녁노을 바라보니 고향이 그리워라.

對此令人意蕭索

(대차령인의소삭) : 이 그림 구경하며 사람 마음이 쓸쓸해져

疑泛湘江風雨灣

(의범상강풍우만) : 소상강 비바람에 배 띄운 듯하여라.

 

其二曰

(기이왈) : 둘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幽篁蕭颯如有聲

(유황소삽여유성) : 쓸쓸한 대숲에선 가을 소리가 들리는 듯

古木偃蹇如有情

(고목언건여유정) : 비스듬히 누운 고목은 옛정을 품은 듯해라.

狂根盤屈惹苺苔

(광근반굴야매태) : 구부러진 늙은 뿌리엔 이끼가 가득 끼었고

老幹夭矯排風雷

(노간요교배풍뢰) : 굵고 곧은 가지는 바람과 천둥을 이겨 왔네.

胸中自有造化窟

(흉중자유조화굴) : 가슴속에 간직한 조화가 끝이 없으니

妙處豈與傍人說

(묘처기여방인설) : 미묘한 이 경지를 누구에게 말할 텐가.

韋偃與可已爲鬼

(위언여가이위귀) : 위언(韋偃)과 여가(輿可)도 이미 귀신이 되었으니

漏洩天機知有幾

(루설천기지유기) : 천기를 누설할 자가 그 몇이나 되려나.

晴窓嗒然淡相對

(청창탑연담상대) : 갠 창가 그윽한 곳에서 말없이 바라보니

愛看幻墨神三昧

(애간환묵신삼매) : 삼매경에 든 필법이 못내 사랑스러워라.

 

一壁貼四時景

(일벽첩사시경) : 한쪽 벽에는 사철의 경치를 읊은 시를

各四首

(각사수) : 각각 네 수씩 붙였는데,

亦不知爲何人所作

(역부지위하인소작) : 역시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其筆

(기필) : 그 글씨는

則摹松雪眞字

(칙모송설진자) : 송설(松雪)의 서체를 본받아

體極精姸

(체극정연) : 자체가 아주 곱고도 단정하였다.

其一幅曰

(기일폭왈) : 그 첫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芙蓉帳暖香如縷

(부용장난향여루) : 연꽃 그린 휘장은 따뜻하고 향내는 실같은데

窓外霏霏紅杏雨

(창외비비홍행우) : 창밖에 붉은 살구꽃이 비 내리듯 하는구나.

樓頭殘夢五更鐘

(루두잔몽오경종) : 다락 머리에서 새벽 종소리에 남은 꿈을 깨고 보니

百舌啼在辛夷塢

(백설제재신이오) :신이화핀 언덕에 백설조가 우짖네.

燕子日長閨閤深

(연자일장규합심) : 제비새끼 커 가는데 안방 깊숙이 들어앉아

懶來無語停金針

(라래무어정금침) : 귀찮은 듯 말도 없이 금바늘을 멈추었네.

 

花底雙雙飛蝶蛺

(화저쌍쌍비접협) : 꽃 아래로 쌍쌍이 나비들 짝 지어 날며

爭趰落花庭院陰

(쟁이락화정원음) : 그늘진 동산으로 지는 꽃을 따라가네.

嫩寒輕透綠羅裳

(눈한경투록라상) : 꽃샘 추위가 초록 치마를 스쳐 가면

空對春風暗斷腸

(공대춘풍암단장) : 무정한 봄바람에나의 애가끊어지네.

脉脉此情誰料得

(맥맥차정수료득) : 말없는 이 심정을 그 누가 안다더냐.

百花叢裏舞鴛鴦

(백화총리무원앙) : 온갖 꽃 만발한 속에 원앙새가 춤추는구나.

春色深藏黃四家

(춘색심장황사가) : 깊어 가는 봄빛을 뉘 집 동산에 간직했나?

深紅淺綠映窓紗

(심홍천록영창사) : 붉은 꽃잎 푸른 나뭇잎 사창에 비치었네

一庭芳草春心苦

(일정방초춘심고) : 뜨락의 꽃과 풀들은 봄시름에 겨웠는데

輕揭珠簾看落花

(경게주렴간낙화) : 주렴을 가볍게 걷고 지는 꽃을 바라보네.

 

其二幅曰

(기이폭왈) : 그 둘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小麥初胎乳燕斜

(소맥초태유연사) : 밀이삭 처음 베고 제비 새끼 날아드는데

南園開遍石榴花

(남원개편석류화) : 남쪽 뜰엔 석류꽃이 두루 피었구나.

綠窓工女幷刀響

(록창공녀병도향) : 푸른 창가에 앉아 길쌈하는 아가씨는 가위소리 울리고

擬試紅裙剪紫霞

(의시홍군전자하) : 붉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새 치마를 지으려네.

 

黃梅時節雨簾纖

(황매시절우렴섬) : 매실이 익는 철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鸎囀槐陰燕入簾

(앵전괴음연입렴) : 홰나무 그늘에 꾀꼬리 울고 제비는 주렴으로 날아드네.

又是一年風景老

(우시일년풍경노) : 또한 해 봄 풍경이 시들어 가니

棟花零落笋生尖

(동화영락순생첨) : 고련꽃 떨어지고 죽순이 삐죽 솟았네.

 

手拈靑杏打鸎兒

(수념청행타앵아) : 푸른 살구 손에 쥐고 꾀꼬리에게 던져 보네.

風過南軒日影遲

(풍과남헌일영지) : 남쪽 난간에 바람 일고 해그림자 더디어라.

荷葉已香池水滿

(하엽이향지수만) : 연잎에 향내 가시고 못에는 물이 가득한데

碧波深處浴鸕鶿

(벽파심처욕로자) : 푸른 물결 깊은 곳에서 가마우지가 목욕하네.

 

藤牀筠簟浪波紋

(등상균점랑파문) : 등 평상 대자리에 무늬가 물결 지고

屛畵瀟湘一抹雲

(병화소상일말운) : 소상강 그린 병풍에는 구름이 한 자락 있네.

懶慢不堪醒午夢

(라만불감성오몽) : 낮꿈을 깨고도 나른해 누웠더니

半窓斜日欲西曛

(반창사일욕서훈) : 반창에 비낀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네.

 

其三幅曰

(기삼폭왈) : 그 셋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秋風策策秋露凝

(추풍책책추로응) : 가을 바람이 쌀쌀해서 찬이슬이 맺히고

秋月娟娟秋水碧

(추월연연추수벽) : 달빛도 고와서 물빛 더욱 푸르구나.

一聲二聲鴻雁歸

(일성이성홍안귀) : 한 소리 또 한소리 기러기 울며 돌아가는데

更聽金井梧桐葉

(경청금정오동엽) : 우물에 오동잎 지는 소리를 다시금 듣고파라.

 

床下百蟲鳴喞喞

(상하백충명즐즐) : 상 밑에서는 온갖 벌레들이 처량하게 울고

床上佳人珠淚滴

(상상가인주루적) : 상 위에서는 아가씨가 구슬 눈물을 떨어뜨리네.

良人萬里事征戰

(양인만리사정전) : 만리 밖 싸움터에 몸을 바친 님에게도

今夜玉門關月白

(금야옥문관월백) : 오늘밤 옥문관(玉門關)에 달빛이 환하겠지.

 

新衣欲裁剪刀冷

(신의욕재전도냉) : 새 옷을 마르려니 가위가 차가워라.

低喚丫兒呼熨斗

(저환아아호위두) : 나직이 아이 불러 다리미를 가져오라네.

熨斗火銷全未省

(위두화소전미성) : 다리미에 불 꺼진 걸 살피지 못하다가

細撥秦箏又搔首

(세발진쟁우소수) : 머리를 긁으며 피리대로 가만히 헤치네.

 

小池荷盡芭蕉黃

(소지하진파초황) : 작은 연못에 연꽃도 지고 파초 잎도 누래지자

鴛鴦瓦上粘新霜

(원앙와상점신상) : 원앙 그린 기와 위에 첫서리가 내렸네.

舊愁新恨不能禁

(구수신한불능금) : 묵은 시름 새 원한을 막을 길이 없는데

況聞蟋蟀鳴洞房

(황문실솔명동방) : 귀뚜라미 울음까지 골방에 들리네.

 

其四幅曰

(기사폭왈) : 그 넷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一枝梅影向窓橫

(일지매영향창횡) : 한 가지 매화 그림자가 창 앞으로 뻗었는데

風緊西廊月色明

(풍긴서랑월색명) : 바람 센 서쪽 행랑에 달빛 더욱 밝아라.

爐火未銷金筋撥

(로화미소금근발) : 화롯불 꺼졌는지 부저로 헤쳐 보고는

旋呼丫髻換茶鐺

(선호아계환다당) : 아이를 불러다 차솥을 바꾸라네.

 

林葉頻驚半夜霜

(임엽빈경반야상) : 밤서리에 놀란 잎이 자주 흔들리고

回風飄雪入長廊

(회풍표설입장랑) : 돌개바람이 눈을 몰아 긴 마루로 들어오네.

無端一夜相思夢

(무단일야상사몽) : 님 그리워 밤새도록 꿈속에 뒤척이니

都在氷河古戰場

(도재빙하고전장) : 빙하(氷河)가 어디런가, 그 옛날 전쟁터일세.

 

滿窓紅日似春溫

(만창홍일사춘온) : 창에 가득한 붉은 해는 봄날처럼 따뜻한데

愁鎖眉峰著睡痕

(수쇄미봉저수흔) : 시름에 잠긴 눈썹에 졸음까지 더하네.

膽甁小梅腮半吐

(담병소매시반토) : 병에 꽂힌 작은 매화는 필 듯 말듯 하는데

含羞不語繡雙鴛

(함수불어수쌍원) : 수줍어 말도 못하고 원앙새만 수놓는구나.

 

剪剪霜風掠北林

(전전상풍략북림) : 쌀쌀한 서리 바람이 북쪽 숲을 스치는데

寒鳥啼月正關心

(한조제월정관심) : 처량한 까마귀가 달을 보며 우는구나.

燈前爲有思人淚

(등전위유사인루) : 등불 앞에 님 생각 눈물 되어 흐르니

滴在穿絲小挫針

(적재천사소좌침) : 실에도 떨어지고 바늘에도 떨어지네.

 

一傍

(일방) : 한쪽에

別有小室一區

(별유소실일구) : 작은 방 하나가 따로 있었는데,

帳褥衾枕

(장욕금침) : 휘장 . 요 . 이불 .베개들이

亦甚整麗

(역심정려) : 또한 아주 깨끗하였다.

帳外爇麝臍

(장외설사제) : 휘장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燃蘭膏

(연난고) : 난향의 촛불을 켜놓았는데,

熒煌映徹

(형황영철) : 환하게 밝아서

恍如白晝

(황여백주) : 마치 대낮 같았다.

 

生與女

(생여녀) : 이생은 최랑과 더불어

極其情歡

(극기정환) :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면서

遂留數日

(수유수일) : 여러 날 머물었다.

生謂女曰

(생위녀왈) : 어느 날 이생이 최랑에게 말하였다.

先聖有言

(선성유언) : "옛 성인의 말씀에,

父母在

(부모재) : '어버이가 계시면

遊必有方

(유필유방) :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而今我定省

(이금아정성) : 이제 내가 부모님을 떠난 지가

已過三日

(이과삼일) : 사흘이나 되었소.

親必倚閭而望

(친필의려이망) : 부모님께서 반드시 대문에 기대어 기다리실 테니,

非人子之道也

(비인자지도야) : 이 어찌 아들의 도리라고 하겠소?"

 

女惻然而頷之

(여측연이함지) : 최랑은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踰垣而遣之

(유원이견지) :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生自是以後

(생자시이후) : 이생을 이 뒤부터

無已不往

(무이불왕) : 저녁마다 최랑을 찾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風流李氏子

“풍류이씨자 풍류스러운 이 총각

窈窕崔家娘.

요조최가낭. 아리따운 최 처녀.

才色若可餐

재색약가찬 그 재주와 그 얼굴 먹음직스러워

可以療飢腸.

가이료기장.” 주린 창자 요기할 만해.

李生嘗挾冊詣學, 常過崔氏之家,

이생상협책지학 산과최씨지가

이생은 일찍부터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다닐 때에 언제나 최씨네 집을 지나다녔다.

 

北牆外, 垂楊裊裊, 數十株環列,

북장외  수양요요 수십주환렬

북쪽 담 밖으로 수양버들 수십 그루가 간들거리며 그 담을 둘러싸고 있었다.

 

 

李生憩於其下. 一日窺牆內, 名花盛開, 蜂鳥爭喧,

리생게어기하. 일일규장내, 명화성개, 봉조쟁훤,

이생이 그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어느 날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고 벌과 새들이 다투어 재잘거리고 있었다.

傍有小樓, 隱映於花叢之間, 

방유소루, 은영어화총지간,

그 곁에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꽃떨기 사이로 은은히 보였다.

 

株簾半掩, 羅幃低垂.

주렴반엄, 라위저수.

구슬발이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有一美人, 倦繡停針, 支頤而吟曰

유일미인 권수정침 지이이음왈

: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수를 놓다가 지쳐 잠시 바늘을 멈추며 턱을 괴고 시를 읊었다.

 

獨倚紗窓刺繡遲,

독의사창자수지, 사창(紗窓)에 홀로 기대앉아 수놓기도 귀찮구나.

百花叢裏囀黃鸝.

백화총리전황리. 온갖 꽃떨기 속에 꾀꼬리 소리 다정도 해라.

無端暗結東風怨,

무단암결동풍원, 마음속으로 부질없이 봄바람을 원망하며(싱숭생숭)

不語停針有所思.

불어정침유소사. 말없이 바늘 멈추고는 생각에 잠겼어라.

 

 

2]이생, 최랑과 이별하다

1)이생의 행동이 탄로나 울주로 보내지다

 

一夕

(일석) : 어느 날 저녁에

李生之父

(이생지부) : 이생의 아버지가

問曰

(문왈) : 이생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汝朝出而暮還者

(여조출이모환자) :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將以學先聖仁義之格言

(장이학선성인의지격언) : 옛 성인의 어질고 의로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昏出而曉還

(혼출이효환) : 그런데 요즘은 저녁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니,

當爲何事

(당위하사) : 이게 어찌 된 일이냐?

必作輕薄子

(필작경박자) : 반드시 경박한 놈들의 행실을 배워

踰垣牆

(유원장) : 남의 집 담을 넘어서

折樹壇耳

(절수단이) : 아가씨나 엿보고 다닐게다.

事如彰露

(사여창로) : 이런 일이 만일 탄로되면

人皆譴我敎子之不嚴

(인개견아교자지불엄) :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다.

而如其女

(이여기녀) : 또 그 처녀도

定是高門右族

(정시고문우족) :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則必以爾之狂狡

(칙필이이지광교) : 반드시 네 미친 짓 떄문에

穢彼門戶

(예피문호) : 그 집안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獲戾人家

(획려인가) : 남의 집에 죄를 지었으니,

其事不小

(기사불소) : 이 일이 작지 않다.

 

速去嶺南

(속거영남) : 너는 빨리 영남으로 내려가서

率奴隷監農

(솔노례감농) : 종들을 데리고 농사나 감독하거라.

勿得復還

(물득복환) :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卽於翌日

(즉어익일) : 그 이튿날

謫送蔚州

(적송울주) :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울주로 내려보냈다.

 

2)최랑이 상사병이 나다

 

女每夕

(녀매석) : 최랑은 저녁마다

於花園待之

(어화원대지) : 화원에서 이생을 기다렸지만,

數月不還

(수월불환) :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女意其得病

(녀의기득병) : 최랑은 이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命香兒

(명향아) : 향아를 시켜

密問於李生之鄰

(밀문어이생지린) : 이생의 이웃들에게 물래 물어 보게 하였다.

 

鄰人曰

(린인왈) : 이웃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李郞

(이랑) : "이도령은

得罪於家君

(득죄어가군) : 그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去嶺南

(거영남) : 영남으로 떠난 지가

已數月矣

(이수월의) : 벌써 여러 달이나 되었다오."

 

女聞之

(녀문지) : 최랑은 이 소식을 듣고

臥疾在床

(와질재상) :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웠다.

轉轉不起

(전전불기) :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水醬不入於口

(수장불입어구) :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言語支離

(언어지리) :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肌膚憔悴

(기부초췌) : 얼굴이 초췌해졌다.

 

父母怪之

(부모괴지) : 최랑의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問其病狀

(문기병상) : 그 병의 증상을 물었지만,

喑喑不言

(암암불언) :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搜其箱篋

(수기상협) :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得李生前日唱和詩

(득이생전일창화시) : 이생과 지난날에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擊節驚訝曰

(격절경아왈) : 최랑의 부모들이 그제야 놀라서 무릎을 치며 말하였다.

幾乎失我女子矣

(기호실아녀자의) : "어이구. 우리 딸자식을 잃어버릴 뻔했구려."

問曰

(문왈) : 그리고는 딸에게 물었다.

李生誰耶

(이생수야) : "이생이 누구냐?"

至是

(지시) : 이렇게 되자

女不能復隱

(녀불능부은) : 최랑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細語在咽中

(세어재인중) : 목구멍에서 겨우 나오는 소리로

告父母曰

(고부모왈) : 부모에게 아뢰었다.

 

父親母親

(부친모친) :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鞠育恩深

(국육은심) : 길러 주신 은혜가 깊으니,

不能相匿

(불능상닉) : 어찌 사실을 슴기겠습니까?

竊念男女相感

(절념남녀상감) : 저 혼자 생각해보니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人情至重

(인정지중) : 인정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합니다.

是以

(시이) : 그러므로

摽梅迨吉

(표매태길) : '결혼할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말은

咏於周南

(영어주남) : "『시경(詩經)』의 주남(周南)편에도 나타나고,

咸腓之凶

(함비지흉) :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말은

刑於羲易

(형어희역) : 『주역(周易)』에서도 경계하였습니다.

自將蒲柳之質

(자장포류지질) :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몸으로

不念桑落之詩

(불념상낙지시) : 얼굴빛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行露沾衣

(행로첨의) :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竊被傍人之嗤

(절피방인지치) : 옆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絲蘿托木

(사라탁목) : 새삼 덩굴이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듯이

已作渭兒之行

(이작위아지행) : 저는 벌써 위당(渭塘)의 처녀 노릇을 가게 되었으니,

罪已貫盈

(죄이관영) : 죄가 이미 가득 차

累及門戶

(루급문호) : 집안에까지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然而彼狡童兮

(연이피교동혜) : 그러나 저 아름다운 도련님과

一偸賈香

(일투가향) : 한 번 정을 통한 뒤부터는

千生喬怨

(천생교원) :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천만 번 생기게 되었습니다.

 

以眇眇之弱軀

(이묘묘지약구) : 연약한 몸으로

忍悄悄之獨處

(인초초지독처) : 괴로움을 참으며 홀로 살아가려니,

情念日深

(정념일심) : 그리운 정은 나날이 깊어 가고

沈痾日篤

(침아일독) : 아픈 상처를 나날이 더해 가서

濱於死地

(빈어사지) :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將化窮鬼

(장화궁귀) : 이제는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化)해 버릴 것 같습니다.

父母如從我願

(부모여종아원) :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終保餘生

(종보여생) : 남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고,

倘違情款

(당위정관) : 이 간절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斃而有已

(폐이유이) :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當與李生

(당여이생) : 이생과

重遊黃壞之下

(중유황괴지하) : 저승에서 다시 만나 노닐지언정,

誓不登他門也

(서불등타문야) :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ꡓ

 

於是

(어시) : 그러자

父母已知其志

(부모이지기지) : 부모도 이미 그의 뜻을 알았으므로

不復問病

(불부문병) :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았다.

且警且誘

(차경차유) : 타이르고 달래면서

以寬其心

(이관기심) :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3]끊어진 사랑이 이어지다

1)이랑집에 중매를 보내 성혼, 이생 문과급제하여 입신양명하다

 

復修媒妁之禮

(복수매작지례) : 그리고는 중매쟁이의 예를 갖추어

問于李家

(문우이가) :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李氏問崔家門戶優劣曰

(이씨문최가문호우열왈) : 이생의 아버지가 최씨 집안이 얼마나 번성한지 물은 뒤에 말하였다.

吾家豚犬

(오가돈견) : "우리 집 아이가

雖年少風狂

(수년소풍광) : 비록 어린 나이에 바람이 났지만,

學問精通

(학문정통) : 학문에 정통하고

身彩似人

(신채사인) : 사람답게 생겼소.

所冀捷龍頭於異日

(소기첩용두어이일) : 앞으로 장원급제할 것이며

占鳳鳴於他年

(점봉명어타년) : 훗날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不願速求婚媾也

(불원속구혼구야) : 서둘러 혼처를 정하고 싶지 않소."

 

媒者

(매자) : 중매장이가

以言返告

(이언반고) :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자,

崔氏復遣曰

(최씨복견왈) : 최씨가 다시 중매인을 이씨 집으로 보내어 말하게 하였다.

一時朋伴

(일시붕반) : "한 시대의 친구들이

皆稱令嗣才華邁人

(개칭령사재화매인) : 모두들 '그 댁의 영식(令息)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今雖蟠屈

(금수반굴) : 아직은 또아리를 틀고 있지만,

豈是池中之物

(기시지중지물) : 어찌 끝까지 연못 속에 잠겨만 있겠습니까?

宜速定嘉會之晨

(의속정가회지신) : 빨리 혼삿날을 정해

以合二姓之好

(이합이성지호) : 두 집안의 즐거움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媒者

(매자) : 중매쟁이가

又以其言

(우이기언) : 또 그 말을

返告李生之父

(반고이생지부) : 돌아가서 이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였더니,

父曰

(부왈) : 이생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吾亦自少

(오역자소) : "나도 젊었을 때부터

把冊窮經

(파책궁경) : 책을 잡고 학문을 닦았지만,

年老無成

(년노무성) : 나이 늙도록 성공하지 못하였소.

奴僕逋逃

(노복포도) : 종들도 흩어지고

親戚寡助

(친척과조) : 친척의 도움도 적어,

生涯疎闊

(생애소활) : 생업이 신통치 않고

家計伶俜

(가계령빙) : 살림도 궁색해졌소.

而況巨家大族

(이황거가대족) : 그러니 문벌 좋고 번성한 집안에서

豈以一人寒儒

(기이일인한유) : 어찌 한갓 빈한한 선비를

留意爲贅郞乎

(유의위췌랑호) : 사위로 삼으려 하시겠소?

是必好事者

(시필호사자) : 이는 반드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過譽吾家

(과예오가) : 우리 집안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以誣高門也

(이무고문야) : 귀댁을 속이려는 것일 거요."

 

媒又告崔家

(매우고최가) : 중매쟁이가 돌아와서 또 최씨 집안에 전하자.

崔家曰

(최가왈) : 최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納采之禮

(납채지례) : "예물 드리는 모든 절차와

漿束之事

(장속지사) : 옷차림은

吾盡辨矣

(오진변의) : 모두 저희 집에서 갖추겠습니다.

宜差穀旦

(의차곡단) : 좋은 날을 가려서

以定花燭之期

(이정화촉지기) : 화촉의 시기만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媒者

(매자) : 중매쟁이가

又返告之

(우반고지) : 또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였다.

李家至是

(이가지시) : 이씨 집안에서도 이렇게까지 되자

稍回其意

(초회기의) : 뜻을 돌려,

卽遣人

(즉견인) : 곧 사람을 보내어

召生問之

(소생문지) : 이생을 불러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生喜不自勝

(생희부자승) : 이생을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乃作詩曰

(내작시왈) : 곧 시 한 수를 지었다.

 

破鏡重圓會有時

(파경중원회유시) : 깨어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되니 만남도 때가 있어

天津烏鵲助佳期

(천진오작조가기) : 은하의 까마귀와 까치들이아름다움 기약을 도와주었네.

從今月老纏繩去

(종금월노전승거) : 이제야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붉은 실을 잡아매었으니

莫向東風怨子規

(막향동풍원자규) : 봄바람이 건듯 불더라도 소쩍새를 원망 마소.

 

女聞之

(여문지) : 최랑이 이 시를 듣고는

病亦稍愈

(병역초유) : 병도 차츰 나아져,

又作詩曰

(우작시왈) : 자기도 시를 지었다.

 

惡因緣是好因緣

(악인연시호인연) : 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던가?

盟語終須到底圓

(맹어종수도저원) : 그 옛날 맹세가 마침내 이루어졌네.

共輓鹿車何日是

(공만녹차하일시) : 어느 때나 님과 함께 작은 수레를 끌고 갈까?

倩人扶起理花鈿

(천인부기리화전) : 아이야, 나를 일으켜 다오 꽃비녀를 손질하련다.

 

於是

(어시) : 이에

擇吉日

(택길일) : 좋은 날을 가려

遂定婚禮

(수정혼례) : 마침내 혼례를 이루니,

而續其絃焉

(이속기현언) :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自同牢之後

(자동뢰지후) :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

夫婦愛而敬之

(부부애이경지) :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相待如賓

(상대여빈) : 마치 손님처럼 대하니,

雖鴻光鮑桓

(수홍광포환) : 비록 양홍 . 맹광이나 포선(鮑宣).환소군(桓少君)이라도

不足言其節義也

(부족언기절의야) :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가 없었다.

生翌年

(생익년) : 이생이 이듬해

捷高科

(첩고과) : 문과에 급제하여

登顯仕

(등현사) : 높은 벼슬에 오르자,

聲價聞于朝著

(성가문우조저) :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4]최랑,홍건적의 난에 정조를 지켜 목숨을 잃다

 

辛丑年

(신축년) : 신축년(1361)에

紅賊據京城

(홍적거경성) :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王移福州

(왕이복주) :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賊焚蕩室廬

(적분탕실려) :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臠炙人畜

(련자인축) :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夫婦親戚

(부부친척) : 부부와 친척끼리도

不能相保

(불능상보) :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東奔西竄

(동분서찬) :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各自逃生

(각자도생) :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生挈家

(생설가) :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隱匿窮崖

(은닉궁애) :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有一賊

(유일적) : 한 도적이

拔劍而逐

(발검이축) :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生奔走得脫

(생분주득탈) :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女爲賊所虜

(여위적소로) :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欲逼之

(욕핍지) :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女大罵曰

(여대매왈) :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虎鬼殺啗我

(호귀살담아) : "창귀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寧死葬於豺狼之腹中

(영사장어시랑지복중) :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의 밥이 될지언정

安能作狗彘之匹乎

(안능작구체지필호) :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賊怒

(적노) : 도적이 노하여

殺而剮之

(살이과지) :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生竄于荒野

(생찬우황야) :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僅保餘軀

(근보여구) :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聞賊已滅

(문적이멸) :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遂尋父母舊居

(수심부모구거) :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其家已爲兵火所焚

(기가이위병화소분) :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又至女家

(우지녀가) :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廊廡荒凉

(랑무황량) :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鼠喞鳥喧

(서즐조훤) :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悲不自勝

(비부자승) :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登于小樓

(등우소루) :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收淚長噓

(수루장허) :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奄至日暮

(엄지일모) : 날이 저물도록

塊然獨坐

(괴연독좌) : 우두커니 홀로 앉아

佇思前遊

(저사전유) :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宛如一夢

(완여일몽) :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5]이생, 최랑의 환신과 만나다

 

將及二更

(장급이경) : 이경쯤 되자

月色微吐

(월색미토) : 달빛이 흐릿하게 토하여

光照屋梁

(광조옥량) : 빛이 들보를 비추는데

漸聞廊下有跫然之音

(점문랑하유공연지음) :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自遠而近

(자원이근) :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至則崔氏也

(지칙최씨야) :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生雖知已死

(생수지이사) :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愛之甚篤

(애지심독) :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不復疑訝

(부복의아) : 의심하지도 않고

遽問曰

(거문왈) : 급히 물어 보았다.

避於何處

(피어하처) :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全其軀命

(전기구명) : 목숨을 보전하였소?"

 

女執生手

(여집생수) :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慟哭一聲

(통곡일성) : 한바탕 통곡하더니,

乃敍情曰

(내서정왈) :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妾本良族

(첩본량족) :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幼承庭訓

(유승정훈) :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工刺繡裁縫之事

(공자수재봉지사) :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學詩書仁義之方

(학시서인의지방) :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但識閨門之治

(단식규문지치) :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豈解境外之修

(기해경외지수) :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然而一窺紅杏之墻

(연이일규홍행지장) :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自獻碧海之珠

(자헌벽해지주) :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花前一笑

(화전일소) : 꽃 앞에서 한번 웃고

恩結平生

(은결평생) :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帳裏重遘

(장리중구) :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情愈百年

(정유백년) :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言至於此

(언지어차) :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悲慙曷勝

(비참갈승) :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將謂偕老而歸居

(장위해로이귀거) :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豈意橫折而顚溝

(기의횡절이전구) :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終不委身於豺虎

(종불위신어시호) :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自取磔肉於泥沙

(자취책육어니사) :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固天性之自然

(고천성지자연) :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匪人情之可忍

(비인정지가인) :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却恨一別於窮崖

(각한일별어궁애) :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竟作分飛之匹鳥

(경작분비지필조) :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家亡親沒

(가망친몰) :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傷殢魄之無依

(상체백지무의) :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義重命輕

(의중명경) :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幸殘軀之免辱

(행잔구지면욕) :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誰憐寸寸之灰心

(수련촌촌지회심) :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徒結斷斷之腐腸

(도결단단지부장) :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骨骸暴野

(골해폭야) :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肝膽塗地

(간담도지) :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細料昔時之歡娛

(세료석시지환오) :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適爲當日之愁寃

(적위당일지수원) :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今則鄒律已吹於幽谷

(금칙추률이취어유곡) :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倩女再返於陽閒

(천녀재반어양한) :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蓬萊一紀之約綢繆

(봉래일기지약주무) : 봉래산 십이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聚窟三生之香芬郁

(취굴삼생지향분욱) : 삼세(三世)의 향이 향그러우니,

重契闊於此時

(중계활어차시) :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期不負乎前盟

(기부부호전맹) :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如或不忘

(여혹불망) :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終以爲好

(종이위호) :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李郞其許之乎

(이랑기허지호) :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生喜且感曰

(생희차감왈) :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固所願也

(고소원야) :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相與款曲抒情

(상여관곡서정) :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言及家産被寇掠有無

(언급가산피구략유무) :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女曰

(녀왈) : 여인이 말하였다.

一分不失

(일분부실) : "조금도 잃지 않고

埋於某山某谷也

(매어모산모곡야) :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又問

(우문) : 이생이 또 물었다.

兩家父母骸骨安在

(양가부모해골안재) :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女曰

(여왈) : 여인이 말하였다.

暴棄某處

(폭기모처) :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 두었지요."

 

敍情罷

(서정파) :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同寢極歡如昔

(동침극환여석) :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明日

(명일) : 이튿날

與生俱往尋瘞處

(여생구왕심예처) :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

(과득금은수정급재물약간) :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물도 약간 있었다.

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

(우득수습양가부모해골) :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貿金賣財

(무김매재) : 금과 재물을 팔아

各合葬於五冠山麓

(각합장어오관산록) :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封樹祭獻

(봉수제헌) :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皆盡其禮

(개진기례) :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其後

(기후) : 그 뒤에

生亦不求仕官

(생역불구사관) :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與崔氏居焉

(여최씨거언) :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幹僕之逃生者

(간복지도생자) :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亦自來赴

(역자래부) :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生自是以後

(생자시이후) : 이생은 이때부터

懶於人事

(라어인사) :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雖親戚賓客賀弔

(수친척빈객하조) :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杜門不出

(두문불출) :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常與崔氏

(상여최씨) :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或酬或和

(혹수혹화) :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琴瑟偕和

(금슬해화) : 금실 좋게 지내었다.

 

6]이생, 최랑과 영별하다

 

荏苒數年

(임염수년) :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一夕

(일석) : 어느 날 저녁에

女謂生曰

(녀위생왈) :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三遇佳期

(삼우가기) :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世事蹉跎

(세사차타) :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歡娛不厭

(환오불염) :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哀別遽至

(애별거지) :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遂嗚咽

(수오인) : 여인이 목메어 울자

生驚問曰

(생경문왈) :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何故至此

(하고지차) : "어찌 이렇게 되었소?"

 

女曰

(녀왈) : 여인이 대답하였다.

冥數不可躱也

(명수불가타야) :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天帝以妾與生

(천제이첩여생) :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緣分未斷

(연분미단) :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又無罪障

(우무죄장) :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假以幻體

(가이환체) : 이 몸을 환생시켜

與生暫割愁腸

(여생잠할수장) :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非久留人世

(비구류인세) :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以惑陽人

(이혹양인) :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命婢兒進酒

(명비아진주) :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歌玉樓春一闋

(가옥루춘일결) :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以侑生

(이유생) :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歌曰

(가왈) : 노래는 이러했다

 

干戈滿目交揮處

(간과만목교휘처) :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玉碎花飛鴛失侶

(옥쇄화비원실려) :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殘骸狼籍竟誰埋

(잔해랑적경수매) :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血汚遊魂無與語

(혈오유혼무여어) :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高唐一下巫山女

(고당일하무산녀) :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번 내려온 뒤에

破鏡重分心慘楚

(파경중분심참초) : 깨어진 종(鐘)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從玆一別兩茫茫

(종자일별양망망) :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天上人間音信阻

(천상인간음신조) :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每歌一聲

(매가일성) :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飮泣數下

(음읍수하) : 눈물이 자꾸 내려

殆不成腔

(태불성강) :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生亦悽惋不已曰

(생역처완불이왈) :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寧與娘子

(영여낭자) :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同入九泉

(동입구천) : 황천(荒天)으로 갈지언정

豈可無聊獨保殘生

(기가무료독보잔생) :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向者

(향자) : 지난 번

傷亂之後

(상난지후) : 난리를 겪고 난 뒤에

親戚僮僕

(친척동복) :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各相亂離

(각상난리) : 서로 흩어지고

亡親骸

(망친해) :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狼籍原野

(랑적원야) :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儻非娘子

(당비낭자) : 당신이 아니었다면

誰能奠埋

(수능전매) :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古人云

(고인운) : 옛 사람 말씀에,

生事之以禮

(생사지이례) :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死葬之以禮

(사장지이례) :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

盡在娘子

(진재낭자) :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天性之純孝

(천성지순효) :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人情之篤厚也

(인정지독후야) :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感激無已

(감격무이) :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自愧可勝

(자괴가승) :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願娘子

(원낭자) : 원하기는 당신도

淹留人世

(엄류인세) :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百年之後

(백년지후) : 백년 뒤에

同作塵土

(동작진토) :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女曰

(녀왈) : 여인이 말하였다.

李郞之壽

(이랑지수) : "당신의 목숨은

剩有餘紀

(잉유여기) : 아직 남아 있지만,

妾已載鬼籙

(첩이재귀록) :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不能久視

(불능구시) :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若固眷戀人間

(약고권련인간) :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違犯條令

(위범조령) :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非唯罪我

(비유죄아) :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兼亦累及於君

(겸역누급어군) :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但妾之遺骸

(단첩지유해) : 저의 유골이

散於某處

(산어모처) :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倘若垂恩

(당약수은) :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勿暴風日

(물폭풍일) :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相視泣下數行云

(상시읍하수행운) :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李郞珍重

(이랑진중) :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言訖漸滅

(언흘점멸) :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了無踪迹

(료무종적) :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生拾骨

(생습골) :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附葬于親墓傍

(부장우친묘방) :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旣葬

(기장) : 장사를 지낸 뒤에는

生亦以追念之故

(생역이추념지고) :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得病數月而卒

(득병수월이졸) :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聞者莫不傷歎而慕其義焉

(문자막불상탄이모기의언) :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주]

Ode to the West Wind by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서풍에 부치는 노래 (퍼시 비시 셸리)

 

…Oh, lift me as a wave, a leaf, a cloud!

 

…Like wither’d leaves to quicken a new birth!

 

And, by the incantation of this verse,

Scatter, as from an unextinguish’d hearth

Ashes and sparks, my words among mankind!

 

Be through my lips to unawaken’d earth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서풍에 부치는 노래 (퍼시 비시 셸리)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새 생명을 주어라!

그리하여, 부르는 이 노래의 소리로,

영원의 풀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나의 말을 인류 속에 넣어 흩어라!

내 입술을 빌려 이 잠자는 지구 위에

 

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쳐라,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부분. 함석헌 역)

 

 

路上誰家白面郞,

로상수가백면랑, 저기 가는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일까?

靑衿大帶映垂楊.

청금대대영수양. 푸른 옷깃 넓은 띠가 늘어진 버들 사이로 비쳐 오네.

何方可化堂中燕,

하방가화당중연,이 몸이 죽어 가서 대청 위의 제비 되면(무슨 방도로...)

低掠珠簾斜度墻.

저략주렴사도장. 주렴 위를 가볍게 스쳐 담장 위를 날아 넘으리.

生聞之, 不勝技癢,

이생은 그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然其門戶高峻, 庭闈深邃, 但怏怏而去.

연기문호고준, 정위심수, 단앙앙이거.

그러나 그 집의 담이 높고도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還時以白紙一幅, 作詩三首, 繫瓦礫投之曰  [주] 礫력:조약돌.

환시이백지일폭, 작시삼수, 계와력투지왈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흰 종이 한 장에다 시 세 수를 써서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넣었다.

 

巫山六六霧重回,

무산육육무중회, 무산 열두 봉우리 첩첩이 쌓인 안개 속에

半露尖峰紫翠堆.

반로첨봉자취퇴. 반쯤 드러난 봉우리가 붉고도 푸르구나.

惱却襄王孤枕夢,

뇌각양왕고침몽, 양왕의 외로운 꿈을 수고롭게 하지 마오. 괴로워라.

肯爲雲雨下陽臺.

긍위운우하양대.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양대에서 만나 보세.

 

[주]

宋玉의 <高堂賦>

楚懷王→襄王

雲雨之樂: 남녀가 동침하는 즐거움을 이르는 말. 雲雨之交[情] 또는 巫山之夢.

 

神女賦

 

相如欲挑卓文君,

상여욕도탁문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되어 탁문군(卓文君)을 꾀어내려니

多少情懷已十分.

다소정회이십분.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은 이미 다 이루어졌네.

紅粉墻頭桃李艶,

홍분장두도리염, 붉은 담머리의 복사꽃과 오얏꽃은

隨風何處落繽紛.

수풍하처락빈분. 바람에 날려서 어디로 떨어지나?

 

[주]

사마상여:전한 때 詞賦에 능함. 蜀중 임공을 지나다 부자집에 투숙.

거문고로 卓文君을 꾀어 도망쳐 부부되어 송도로 돌아와 살다.

 

卓文君, 白頭吟

탁문군, 백두음

 

皚如山上雪 * 皚(애):눈서리흴. 霜雪之白也.

애여산상설, 희기는 산 위의 눈 같고

 

皎若雲間月교약운간월 밝기는 구름 사이 달 같구나.

 

聞君有兩意

문군유양의, 그대가 두 마음 가졌다는 소문 듣고

 

故來相決絶

고래상결절, 찾아와 서로 헤어지려 한다.

 

今日斗酒會

금일두주회, 오늘은 말 술로 만나지만

 

明旦溝水頭

명단구수두, 내일은 개천 가에 있겠지.

 

蹀躞御溝上 *蹀躞(섭접):行貌, 저벅저벅 걷는 모양. 御溝(어구):대궐 안 도랑.

접섭어구상 대궐 안 도랑 가 걷다보니

 

溝水東西流

구수동서류, 도랑물도 동쪽 서쪽으로 흘러가누나.

 

凄凄復凄凄 *凄凄(처처):눈물이 흐르는 모양.

처처부처처,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르누나.

 

嫁娶不須啼

가취불수제, 시집올 적에도 모름지기 울지 않았는데.

 

願得一心人

원득일심인, 내 소원은 한 사람의 사랑을 받아

 

白首不相離

백수불상리 흰머리 되도록 헤어지지 않는 것.

 

竹竿何嫋嫋 *嫋嫋(요요):長也.

죽간하뇨뇨, 낚시대는 어찌 그리 한들거리고

 

魚尾何簁簁 *簁簁(사사):動搖也

어미하사사, 물고기꼬리는 어찌 그리 파닥거리나?

 

男兒重意氣

남아중의기, 남자가 의기를 중히 여겨야지

 

何用錢刀爲  *錢刀(전도):古錢名, 形如刀.

하용전도위, 돈에 팔리다니 어디다 쓰나?

 

好因緣邪惡因緣,

호인연사악인연, 좋은 인연되려는지 나쁜 인연 되려는지

空把愁腸日抵年.

공파수장일저년, 부질없는 이 내 시름 하루가 일 년 같아라.

二十八字媒已就,

이십팔자매이취, 스물여덟 자로 황혼의 기약을 맺었으니

藍橋何日遇神仙.

남교하일우신선. 남교에서 어느 날 신선을 만나려나?

[주] 남교:신선굴 있음. 당나라 때 배항(裵航)이 雲英을 만난 곳.

 

崔氏, 命侍婢香兒, 往取見之, 卽李生詩也.

최씨 명시비향아   왕취견지  즉이생시야

최랑이 몸종 향아(香兒)를 시켜서 그 편지를 주워다 보니, 바로 이생이 지은 시였다.

 

披讀再三, 心自喜之.

피독재삼, 심자희지.

최랑이 그 시를 펼쳐서 두세 번 읽고는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였다.

以片簡, 又書八字, 投之曰:

이편간, 우서팔자, 투지왈:

종이쪽지에 여덟 자를 써서 담 밖으로 던져 주었다.

“將子無疑, 昏以爲期.”

“장자무의, 혼이위기.”

님이여, 의심 마세요. 황혼에 만나기로 하세요.”

生如其言, 乘昏而往,

생여기언, 승혼이왕,

이생이 그 말대로 황혼이 되자 최랑의 집을 찾아갔다.

忽見桃花一枝, 過墻而有搖裊之影.

홀견도화일지, 과장이유요뇨지영.

갑자기 복사꽃 한 가지가 담 위로 넘어오면서 하늘거리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往視之則以鞦韆絨索, 繫竹兜下垂. 

왕시지칙이추천융색, 계죽두하수.

이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이 대바구니를 매어서 아래로 늘어뜨려 놓았다.

生攀緣而踰.

생반연이유.

이생을 그 줄을 잡고 담을 넘었다.

 

會月上東山, 花影在地, 淸香可愛.

회월상동산, 화영재지, 청향가애.

마침 달이 동산에 떠오르고 꽃 그림자가 땅에 비껴 맑은 향내가 사랑스러웠다.

 

生意謂已入仙境, 心雖竊喜, 

생의위이입선경, 심수절희

이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여 마음은 비록 기뻤지만, 

而情密事秘, 毛髮盡竪,

이정밀사비, 모발진수,

자기의 마음이나 지금 하려는 일이 비밀스러워서 머리칼이 모두 곤두섰다.

 

回眄左右, 女已在花叢裏, 與香兒, 折花相戴, 鋪罽僻地,

회면좌우, 녀이재화총리, 여향아, 절화상대, 포계벽지,

이생이 좌우를 둘러보았더니,

최랑은 꽃떨기 속에서 향아와 같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외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주]

罽계:융단,카페트. 折花相戴:데크레이션

/狂女: 꽃잎-이정현, 동막골-강혜정.

[명대사]

#1여일 (강혜정) -거기 뱀나와~! 물리면 마이아파~ / 아직도 거 있나? 언넝 나와~

#2여일 (강혜정) - 마실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하는 게 누굴 말하나?

꼬마 남 3 (안근필) - 우리 동네 미친년이 니 말고 또 있나?

 

見生微笑, 口占二句, 先唱曰:

견생미소, 구점이구, 선창왈:

최랑이 이생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桃李枝間花富貴, 

도리지간화부귀, 복사와 오얏 가지 속에 꽃송이 탐스럽고

鴛鴦枕上月嬋娟.

원앙침상월선연,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고와라.

 

生續吟曰:

생속음왈:이생이 뒤를 이어 시를 읊었다.

 

他時漏洩春消息, * love story

타시루설춘소식, 다음날 어쩌다가 봄소식이 새나간다면

風雨無情亦可憐.

풍우무정역가련. 무정한 비바람에 더욱 가련해지리라.

 

女變色而言曰:

녀변색이언왈 최랑이 얼굴빛이 변하면서 말하였다.

 

 

“本欲與君, 終奉箕帚, 永結歡娛, 郞何言之若是也?

본욕여군, 종봉기추, 영결환오, 랑하언지약시거야? []

   [주] 箕帚기추;키와 비. 遽거:갑자기, 재빠르다, 황급하다.

“저는 본디 당신과 함께 부부가 되어

끝까지 남편으로 모시고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당신은 어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妾雖女類, 心意泰然, 丈夫意氣, 肯作此語乎 ?

첩수녀류, 심의태연, 장부의기, 긍작차어호 ?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마음이 태연한데,

장부의 의기를 가지고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他日閨中事洩, 親庭譴責, 妾以身當之.

타일규중사설, 친정견책, 첩이신당지.

다음날 규중의 일이 누설되어 친정에서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제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香兒可於房中, 酒果以進.” [주]재:가져오다, 의 俗字.

향아가어방중, 재주과이진.

“향아야. 방 안에서 술과 안주를 가져오너라.”

 

兒如命而往, 四座寂寥, 闃無人聲, [주] 闃격:고요하다.

아여명이왕, 사좌적요, 격무인성,

향아가 시키는 대로 가버리자,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生問曰: “此是何處?”

생문왈: “차시하처?”

이생이 최랑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女曰: “此是北園中小樓下也. 父母以我一女, 情鍾甚篤,

녀왈: “차시배원중소누하야. 부모이아일녀, 정종심독,

최랑이 말하였다.

“이곳은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아래이지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외동딸이기 때문에 여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別構此樓于芙蓉池畔, 方春時, 名花盛開, 欲使從侍兒遨遊耳.

별구차루우부용지반, 방춘시, 명화성개, 욕사종시아오유이.

그래서 연못가에다 이 누각을 따로 지어 주셨지요. 봄이 되어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면 몸종 향아와 함께 즐겁게 놀라고 하신 거지요.

 

親闈之居, 閨閤深邃, 雖笑語啞咿, 亦不能卒爾相聞也.”

친위지거, 규합심수, 수소어아이, 역불능졸이상문야.”

부모님이 계신 곳은 여기서 멀기 때문에 아무리 웃으며 크게 이야기해도

쉽게 들리지는 않는답니다.”

 

女酌綠蟻一巵, 口占古風一篇曰:

녀작녹의일치, 구점고풍일편왈:

최랑이 술 한 잔을 따라 이생에게 권하면서 고풍(古風)으로 한 편을 읊었다.

 

曲欄下壓芙蓉池,

곡란하압부용지, 부용못 푸른 물을 난간에서 굽어보다

池上花叢人共語.

지상화총인공어.꽃떨기 속에서 님들이 속삭이네.

香霧霏霏春融融, 향무비비춘융융, 향그런 안개 깔린 속에 봄빛이 화창해서

製出新詞歌白紵.

제출신사가백저. 새 가사를 지어내어「백저사(白紵詞)」를 부르는구나.

月轉花陰入氍毹,

월전화음입구유, 꽃그늘에 달빛이 비껴 털방석에 스며들고

共挽長條落紅雨.공만장조락홍우. 긴 가지 함께 잡으니 붉은 꽃비가 떨어지네.

風攪淸香香襲衣,

풍교청향향습의, 바람이 향내를 끌어와 옷 속에 스며들자

賈女初踏春陽舞.

가녀초답춘양무. 첫봄을 맞은 아가씨가 햇살 속에 춤추네.

羅衫輕拂海棠枝,

나삼경불해당지, 비단 적삼 가볍게 해당화를 스쳤다가

驚起花間宿鸚鵡.경기화간숙앵무. 꽃 사이에 졸고 있던 앵무새만 깨웠네.

 

生卽和之曰:

생즉화지왈:

이생도 바로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誤入桃源花爛熳,

오입도원화난만, 도원에 잘못 들어와 복사꽃이 만발한데

多少情懷不能語.

다소정회불능어. 많고 많은 이 내 정회(情懷)를 다 말할 수가 없네.

翠鬟雙綰金低,

비녀차[채]취환쌍관금저, 구름같이 쪽찐 머리에 금비녀 낮게 꽂고

楚楚春衫裁綠紵.

초초춘삼재록저. 산뜻한 봄 적삼을 모시 베로 지었구나.

東風初拆竝帶花,

동풍초탁병대화, 나란히 달린 꽃가지를 봄바람에 꺾다니

莫使繁枝戰風雨.

막사번지전풍우. 하 많은 꽃가지에 비바람아 부지 마소.

飄飄仙影婆婆,

소매몌표표선영파파, 선녀의 소맷자락 나부껴 그림자도 하늘거리고

叢桂陰中素娥舞.

총계음중소아무. 계수나무 그늘 속에선 항아 아씨 춤을 추고

勝事未了愁必隨,

승사미료수필수, 좋은 일 끝나기 전 시름이 따를 테니

莫製新詞敎鸚鵡.

막제신사교앵무. 함부로 새 곡조 지어 앵무새에게 가르치지 마오.

 

吟罷, 女謂生曰:

음파, 녀위생왈:

술자리가 끝나자 최랑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今日之事, 必非小緣 

금일지사, 필비소연, 오늘의 일은 반드시 작은 인연이 아니랍니다.

 

郞須尾我, 以遂情款.”

랑수미아, 이수정관.당신은 저를 따라오셔서 정을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

 

言訖, 女從北窓入, 生隨之,

언흘, 녀종북창입, 생수지,

말을 마치고 최랑이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생도 그 뒤를 따라갔다.

 

樓梯在房中. 梯而昇, 果其樓也.

루제재방중. 연제이승, 과기루야

누각에 달린 사다리가 있었는데,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더니 과연 그 다락이 나타났다.

 

文房几案, 極其濟楚. 一壁展煙江疊嶂圖, 幽篁古木圖, 皆名畵也.

문방궤안, 극기제초. 일벽전연강첩장도, 유황고목도, 개명화야.

문방구와 책상들이 아주 말끔했으며,

한쪽 벽에는「연강첩장도(烟江疊圖)」와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가 걸려 있었는데, 모두 이름난 그림이었다.

 

題詩其上, 詩不知何人所作. 其一曰:

제시기상, 시불지하인소작. 기일왈

4폭의 시는 차례대로 춘하추동을 노래함.그 그림 위에는 시가 씌어 있었는데,

누가 지은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첫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何人筆端有餘力,

하인필단유여력, 어떤 사람의 붓끝에 힘이 넘쳐

寫此江心千疊山.

사차강심천첩산. 이 강 속에다 겹겹이 쌓인 산을 그렸던가?

壯哉方壺三萬丈,

장재방호삼만장, 웅장해라. 삼만 길의 저 방호산(方壺山)은

半出縹緲烟雲間.반출표묘연운간. 아득한 구름 사이로 반쯤만 드러났네.

遠勢微茫幾百里,

원세미망기백리, 저 멀리 산세(山勢)는 몇 백 리까지 뻗어 있는데

近見崒嵂靑螺鬟.

근견줄률청라환. 푸른 소라처럼 쪽진 머리가 가까이 보이네.

滄波淼淼浮遠空,

창파묘묘부원공, 끝없이 푸른 물결 공중에 닿았는데

日暮遙望愁鄕關.

일모요망수향관. 저녁노을 바라보니 고향이 그리워라.

對此令人意蕭索,

대차령인의소삭, 이 그림 구경하며 사람 마음이 쓸쓸해져

疑泛湘江風雨灣.

의범상강풍우만. 소상강 비바람에 배 띄운 듯하여라.

 

其二曰:

기이왈, 둘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幽篁蕭颯如有聲,

유황소삽여유성, 쓸쓸한 대숲에선 가을 소리가 들리는 듯

古木偃蹇如有情.

고목언건여유정. 비스듬히 누운 고목은 옛정을 품은 듯해라.

狂根盤屈惹苺苔,

광근반굴야매태, 구부러진 늙은 뿌리엔 이끼가 가득 끼었고

老幹夭矯排風雷.

노간요교배풍뢰. 굵고 곧은 가지는 바람과 천둥을 이겨 왔네.

胸中自有造化窟,

흉중자유조화굴, 가슴속에 간직한 조화가 끝이 없으니

妙處豈與傍人說.

묘처기여방인설. 미묘한 이 경지를 누구에게 말할 텐가?

韋偃與可已爲鬼,

언여가이위귀, 위언(韋偃)과 여가(輿可)도 이미 귀신이 되었으니

漏洩天機知有幾.

루설천기지유기. 천기를 누설할 자가 그 몇이나 되려나.

晴窓嗒然淡相對,

청창탑연담상대, 갠 창가 그윽한 곳에서 말없이 바라보니

愛看幻墨神三昧.

애간환묵신삼매. 삼매경에 든 필법이 못내 사랑스러워라.

 

一壁貼四時景, 各四首, 亦不知爲何人所作.

일벽첩사시경, 각사수, 역불지위하인소작.

한쪽 벽에는 사철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였는데, 역시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其筆, 則摹松雪眞字, 體極精姸. 其一幅曰:

기필, 칙모송설진자, 체극정연. 기일폭왈:

그 글씨는 송설(松雪)의 서체를 본받아 자체가 아주 곱고도 단정하였다. 다음은 그 첫째 폭의 시이다.

 

芙蓉帳暖香如縷,

부용장난향여루, 연꽃 그린 휘장은 따뜻하고 향내는 실 같은데

窓外霏霏紅杏雨.

창외비비홍행우. 창밖에 붉은 살구꽃이 비 내리듯 하는구나.

樓頭殘夢五更鐘, 루두잔몽오경종, 다락 머리에서 새벽 종소리에 남은 꿈을 깨고 보니

百舌啼在辛夷塢.

백설제재신이오. 개나리 무성한 둑에 지빠귀가 우짖네.

 

燕子日長閨閤深,

연자일장규합심, 제비새끼 커 가는데 안방 깊숙이 들어앉아

懶來無語停金針.

나래무어정금침. 귀찮은 듯 말도 없이 금바늘을 멈추었네.

花底雙雙飛蝶蛺,

화저쌍쌍비접협, 꽃 아래로 쌍쌍이 나비들 짝 지어 날며

爭趰落花庭院陰.

쟁이락화정원음 . 그늘진 동산으로 지는 꽃을 따라가네.

 

嫩寒輕透綠羅裳,

눈한경투록라상, 꽃샘 추위가 초록 치마를 스쳐 가면

空對春風暗斷腸.

공대춘풍암단장. 무정한 봄바람에 이 내 간장 끊어지네.

脉脉此情誰料得,

맥맥차정수료득, 말없는 이 심정을 그 누가 안다더냐?

百花叢裏舞鴛鴦.

백화총리무원앙. 온갖 꽃 만발한 속에 원앙새가 춤추는구나.

 

春色深藏黃四家,

춘색심장황사가, 깊어 가는 봄빛을 뉘 집 동산에 간직했나?

深紅淺綠映窓紗.

심홍천록영창사. 붉은 꽃잎 푸른 나뭇잎 사창에 비치었네.

一庭芳草春心苦,

일정방초춘심고, 뜨락의 꽃과 풀들은 봄 시름에 겨웠는데

輕揭珠簾看落花.

경게주렴간낙화. 주렴을 가볍게 걷고 지는 꽃을 바라보네.

 

其二幅曰:다음은 그 둘째 폭의 시이다.

小麥初胎乳燕斜,

소맥초태유연사, 밀 이삭 처음 베고 제비 새끼 날아드는데

南園開遍石榴花.

남원개편석류화. 남쪽 뜰엔 석류꽃이 두루 피었구나.

綠窓工女幷刀饗,

록창공녀병도향, 푸른 창가에 앉아 길쌈하는 아가씨는

擬試紅裙剪紫霞.

의시홍군전자하. 붉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새 치마를 지으려네.

 

黃梅時節雨簾纖,

황매시절우렴섬, 매실이 익는 철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鸎囀槐陰燕入簾.

앵전괴음연입렴. 홰나무 그늘에 꾀꼬리 울고 제비는 주렴으로 날아드네.

又是一年風景老,

우시일년풍경노, 또한 해 봄 풍경이 시들어 가니

棟花零落笋生尖.

동화영락순생첨. 소태곷 떨어지고 죽순이 삐죽 솟았네.

 

手拈靑杏打鸎兒,

수념청행타앵아, 푸른 살구 손에 쥐고 꾀꼬리에게 던져 보네.

風過南軒日影遲.

풍과남헌일영지. 남쪽 난간에 바람 일고 해 그림자 더디어라.

荷葉已香池水滿,

하엽이향지수만, 연잎에 향내 가시고 못에는 물이 가득한데

碧波深處浴鸕鶿.

벽파심처욕로자. 푸른 물결 깊은 곳에서 원앙새가 목욕하네.

 

藤牀筠簟浪波紋,

등상균점랑파문, 등 평상 대자리에 무늬가 물결 지고

屛畵瀟湘一抹雲.

병화소상일말운. 소상강 그린 병풍에는 구름이 한 자락 있네.

懶慢不堪醒午夢,

라만불감성오몽, 낮 꿈을 깨고도 나른해 누웠더니

半窓斜日欲西曛.

반창사일욕서훈. 반창에 비낀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네.

 

 

其三幅曰:

기삼폭왕, 다음은 그 셋째 폭의 시이다.

 

秋風策策秋露凝,

추풍책책추로응, 가을바람이 쌀쌀해서 찬이슬이 맺히고

秋月娟娟秋水碧.

추월연연추수벽. 달빛도 고와서 물빛 더욱 푸르구나.

一聲二聲鴻雁歸,

일성이성홍안귀, 한 소리 또 한소리 기러기 울며 돌아가는데

更聽金井梧桐葉.

경청금정오동엽. 우물에 오동잎 지는 소리를 다시금 듣고파라.

 

床下百蟲鳴喞喞,

상하백충명즐즐, 상 밑에서는 온갖 벌레들이 처량하게 울고

床上佳人珠淚滴.

상상가인주루적. 상 위에서는 아가씨가 구슬 눈물을 떨어뜨리네.

良人萬里事征戰,

양인만리사정전, 만 리 밖 싸움터에 몸을 바친 님에게도

今夜玉門關月白.

금야옥문관월백. 오늘밤 옥문관(玉門關)에 달빛이 환하겠지.

 

新衣欲裁剪刀冷,

신의욕재전도냉, 새 옷을 마르려니 가위가 차가워라.

低喚丫兒呼熨斗.

저환아아호위두. 나직이 아이 불러 다리미를 가져오라네.

熨斗火銷全未省,

위두화소전미성, 다리미에 불 꺼진 걸 살피지 못하다가

細撥秦箏又搔首.

세발진쟁우소수. 머리를 긁으며 피리대로 가만히 헤치네.

 

小池荷盡芭蕉黃,

소지하진파초황, 작은 연못에 연꽃도 지고 파초 잎도 누레지자

鴛鴦瓦上粘新霜.

원앙와상점신상. 원앙 그린 기와 위에 첫서리가 내렸네.

舊愁新恨不能禁,

구수신한불능금, 묵은 시름 새 원한을 막을 길이 없는데

況聞蟋蟀鳴洞房.

황문실솔명동방. 귀뚜라미 울음까지 골방에 들리네.

 

 

其四幅曰:다음은 그 넷째 폭의 시이다.

一枝梅影向窓橫,

일지매영향창횡, 한 가지 매화 그림자가 창 앞으로 뻗었는데

風緊西廊月色明.

풍긴서랑월색명. 바람 센 서쪽 행랑에 달빛 더욱 밝아라.

爐火未銷金筋撥,

로화미소금근발, 화롯불 꺼졌는지 부저로 헤쳐 보고는

旋呼丫髻換茶鐺.

선호아계환다당. 아이를 불러다 차 솥을 바꾸라네.

 

林葉頻驚半夜霜,

임엽빈경반야상, 밤 서리에 놀란 잎이 자주 흔들리고

回風飄雪入長廊.

회풍표설입장랑. 돌개바람이 눈을 몰아 긴 마루로 들어오네.

無端一夜相思夢,

무단일야상사몽, 님 그리워 밤새도록 꿈속에 뒤척이니

都在氷河古戰場.

도재빙하고전장. 도시 빙하(氷河) 덮인 그 옛날 전쟁터 헤매네.

 

滿窓紅日似春溫,

만창홍일사춘온, 창에 가득한 붉은 해는 봄날처럼 따뜻한데

愁鎖眉峰著睡痕.

수쇄미봉저수흔. 시름에 잠긴 눈썹에 졸음까지 더하네.

膽甁小梅腮半吐,

담병소매시반토, 병에 꽂힌 작은 매화는 필 듯 말듯 하는데

含羞不語繡雙鴛.

함수불어수쌍원. 수줍어 말도 못하고 원앙새만 수놓는구나.

 

剪剪霜風掠北林,

전전상풍략북림, 쌀쌀한 서리 바람이 북쪽 숲을 스치는데

寒鳥啼月正關心.

한조제월정관심. 처량한 까마귀가 달을 보며 우는구나.

燈前爲有思人淚,

등전위유사인루, 등불 앞에 님 생각 눈물 되어 흐르니

滴在穿絲小挫針.

적재천사소좌침. 실에도 떨어지고 바늘에도 떨어지네.

 

一傍, 別有小室一區, 帳褥衾枕, 亦甚整麗.

일방, 별유소실일구, 장욕금침, 역심정려.

한쪽에 작은 방 하나가 따로 있었는데, 휘장 . 요 . 이불 .베개들이 또한 아주 깨끗하였다.

 

帳外爇麝臍, 燃蘭膏, 熒煌映徹, 恍如白晝. 

장외설사제, 연난고, 형황영철, 황여백주.

[주]열:사르다. 형황;빛나다. 昏定晨省.

휘장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놓았는데,

환하게 밝아서 마치 대낮 같았다.

 

生與女, 極其情歡, 遂留數日, 生謂女曰:

생여녀, 극기정환, 수류수일, 생위녀왈:

이생은 최랑과 더불어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면서 여러 날 머물렀다.

(어느 날) 이생이 최랑에게 말하였다.

 

 

“先聖有言, 父母在. 遊必有方, 而今我定省. 已過三日,

선성유언, 부모재. 유필유방, 이금아정성. 이과삼일,

[주]*昏定晨省(혼정신성).

“옛 성인의 말씀에,'어버이가 계시면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내가 부모님을 떠난 지가 사흘이나 되었소.

 

親必倚閭而望, 非人子之道也.”

친필의려이망, 비인자지도야.”

부모님께서 반드시 대문에 기대어 기다리실 테니, 이 어찌 아들의 도리라고 하겠소?”

 

女惻然而頷之, 踰垣而遣之.

녀측연이함지, 유원이견지.

최랑은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生自是以後, 無已不往.

생자시이후, 무이불왕.

이생을 이 뒤부터 저녁마다 최랑을 찾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一夕, 李生之父, 問曰:

일석, 리생지부, 문왈:

어느 날 저녁에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꾸짖으며 물었다.

 

“汝朝出而暮還者, 將以學先聖仁義之格言,  

여조출이모환자, 장이학선성인의지격언,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옛 성인의 어질고 의로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昏出而曉還, 當爲何事?

혼출이효환, 당위하사?

그런데 요즘은 저녁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必作輕薄子, 踰垣牆, 折樹壇耳.

필작경박자, 유원장, 절수단이.

반드시 경박한 놈들의 행실을 배워 남의 집 담을 넘어서 아가씨나 엿보고 다닐게다.

 

事如彰露, 人皆譴我敎子之不嚴,

사여창로, 인개견아교자지불엄,

이런 일이 만일 탄로되면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다.

 

而如其女, 定是高門右族, 則必以爾之狂狡, 穢彼門戶,

이여기녀, 정시고문우족, 칙필이이지광교, 예피문호,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미친 짓 떄문에 그 집안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人家, 其事不小, [주] 려:어그러지다

획려인가, 기사불소,

남의 집에 죄를 지었으니, 이 일이 작지 않다.

 

速去嶺南, 率奴隷監農, 勿得復還.”

속거령남, 솔노례감농, 물득복환.”

너는 빨리 영남으로 내려가서 종들을 데리고 농사나 감독하거라.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卽於翌日, 謫送蔚州.

즉어익일, 적송울주.

그 이튿날 그를 울주(울산)로 내려보냈다.

 

女每夕, 於花園待之, 數月不還.

녀매석, 어화원대지, 수월불환.

최랑은 저녁마다 화원에서 이생을 기다렸지만,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女意其得病, 命香兒, 密問於李生之鄰,

녀의기득병, 명향아, 밀문어리생지린,

최랑은 이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향아를 시켜 이생의 이웃들에게 물래 물어 보게 하였다.

 

鄰人曰: “李郞, 得罪於家君, 去嶺南, 已數月矣.”

린인왈: “리랑, 득죄어가군, 거령남, 이수월의.”

이웃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도령은 그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영남으로 떠난 지가 벌써 여러 달이나 되었다오.”

 

女聞之, 臥疾在床, 輾轉不起, 水醬不入於口,

녀문지, 와질재상, 전전불기, 수장불입어구,  *輾轉反側(전전반측)

최랑은 이 소식을 듣고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言語支離, 肌膚憔悴,

언어지리, 기부초췌,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얼굴이 초췌해졌다.

 

父母怪之, 問其病狀, 喑喑不言.

부모괴지, 문기병상, 암암불언.

최랑의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그 병의 증상을 물었지만,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搜其箱篋, 得李生前日唱和詩,

수기상협, 득리생전일창화시,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이생과 지난날에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擊節驚訝曰: “幾乎失我女子矣.”

격절경아왈: “기호실아녀자의.”

최랑의 부모들이 그제야 놀라서 무릎을 치며 말하였다.

“어이구. 우리 딸자식을 잃어버릴 뻔했구려.”

 

問曰: “李生誰耶?”

문왈: “리생수야?”

그리고는 딸에게 물었다.

“이생이 누구냐?”

 

至是, 女不能復隱, 細語在咽中, 告父母曰:

지시, 녀불능복은, 세어재열중, 고부모왈:

이렇게 되자 최랑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목구멍에서 겨우 나오는 소리로 부모에게 아뢰었다.

 

“父親母親, 鞠育恩深, 不能相匿.

부친모친, 국육은심, 불능상닉.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길러 주신 은혜가 깊으니,

어찌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竊念男女相感, 人情至重.

절념남녀상감, 인정지중.

저 혼자 생각해보니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인정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합니다.

 

是以, 摽梅迨吉, 咏於周南, 咸腓之凶, 刑於羲易.

시이, 표매태길, 영어주남, 함비지흉, 형어희역.

그러므로 '결혼할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마라'는 말은“시경(詩經)의 주남(周南)편에도 나타나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말은주역(周易)에서도 경계하였습니다.

 

[주]

摽梅迨吉(표매태길):표매는 떨어지는 매화, 곧처녀가 결혼할 좋은 시기를 놓침을 빗대어 한 말. 태:미치다.

咸腓之凶(함비지흉):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말. 주역 咸卦에 “六二 咸其腓凶”이라 함. 비:장딴지

 

[31]

 

第三十一卦 咸(함) 澤山咸(택산함) 兌上艮下

 

31 Hsien Influence (Wooing)

咸.亨.利貞.取女吉.

 

初六.咸其拇.象曰.咸其拇.志在外也.

Six at the beginning means:

The influence shows itself in the big toe.

 

六二.咸其腓.凶.居吉.象曰.雖凶居吉.順不害也.

Six in second place means:

The influence shows itself in the calves of the legs. Misfortune. Tarrying brings good fortune.

 

九三.咸其股.執其隨.往吝.象曰.咸其股.亦不處也.志在隨人.所執下也.

Nine in third place means:

The influence shows itself in the thighs. Holds to that which follows it. To continue is humiliating.

 

自將蒲柳之質, 不念桑落之詩, 行露沾衣, 竊被傍人之嗤.

자장포류지질, 불념상락지시, 행로첨의, 절피방인지치.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몸으로 얼굴빛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行露沾衣 시경소남 행로장,여자가 정조를 더럽힘.

 

絲蘿托木, 已作渭兒之行. 罪已貫盈, 累及門戶.

사라탁목, 이작위아지행. 죄이관영, 루급문호.

새삼 덩굴이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듯이

저는 벌써 위당(渭塘)의 처녀 노릇을 가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집안에까지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然而彼狡童兮, 一偸賈香, 千生喬怨,

연이피교동혜, 일투가향, 천생교원,

그러나 저 아름다운 도련님과 한 번 정을 통한 뒤부터는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천만 번 생기게 되었습니다.

 

以眇眇之弱軀, 忍悄悄之獨處 , 情念日深, 沈痾日篤, 濱於死地,

이묘묘지약구, 인초초지독처 , 정념일심, 침아일독, 빈어사지,

연약한 몸으로 괴로움을 참으며 홀로 살아가려니,

그리운 정은 나날이 깊어 가고 아픈 상처를

나날이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將化窮鬼.

장화궁귀.

이제는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化)해 버릴 것 같습니다.

 

父母如從我願, 終保餘生, 倘違情款, 斃而有已.

부모여종아원, 종보여생, 당위정관, 폐이유이.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남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고,

이 간절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當與李生, 重遊黃壞之下, 誓不登他門也.”

당여리생, 중유황괴지하, 서불등타문야.”

이생과 저승에서 다시 만나 노닐지언정,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

 

於是, 父母已知其志, 不復問病, 且警且誘, 以寬其心,

어시, 부모이지기지, 불복문병, 차경차유, 이관기심,

그러자 부모도 이미 그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았다.

타이르고 달래면서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復修媒妁之禮, 問于李家.

부수매작지례, 문우리가.

그리고는 중매쟁이의 예를 갖추어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李氏問崔家門戶優劣曰:

리씨문최가문호우렬왈:

이생의 아버지가 최씨 집안이 얼마나 번성한지 물은 뒤에 말하였다.

 

 

“吾家豚犬, 雖年少風狂, 學問精通, 身彩似人,  

오가돈견, 수년소풍광, 학문정통, 신채사인,

“우리 집 아이가 비록 어린 나이에 바람이 났지만,

학문에 정통하고 사람답게 생겼소.

 

所冀捷龍頭於異日, 占鳳鳴於他年, 不願速求婚媾也.”

소기첩룡두어리일, 점봉명어타년, 불원속구혼구야.”

앞으로 장원급제할 것이며 훗날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서둘러 혼처를 정하고 싶지 않소.”

 

媒者, 以言返告, 崔氏復遣曰:

매자, 이언반고, 최씨복견왈:

중매쟁이가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자,

최씨가 다시 중매인을 보내어 말하게 하였다.

 

“一時朋伴, 皆稱令嗣才華邁人,

일시붕반, 개칭령사재화매인,

“한 시대의 친구들이 모두들 '그 댁의 영식(令息)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今雖蟠屈, 豈是池中之物.

금수반굴, 기시지중지물.

아직은 똬리를 틀고 있지만, 어찌 끝까지 연못 속에 잠겨만 있겠습니까?

 

 

宜速定嘉會之晨, 以合二姓之好.”

의속정가회지신, 이합이성지호.”

빨리 혼삿날을 정해 두 집안의 즐거움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媒者, 又以其言, 返告李生之父.

매자, 우이기언, 반고리생지부.

중매쟁이가 돌아가서 또 그 말을 이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였다.

 

父曰: “吾亦自少, 把冊窮經, 年老無成.

부왈: “오역자소, 파책궁경, 년로무성.

이생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나도 젊었을 때부터 책을 잡고 학문을 닦았지만,

나이 늙도록 성공하지 못하였소.

 

奴僕逋逃, 親戚寡助, 生涯疎闊,家計伶俜,

노복포도, 친척과조, 생애소활,가계령빙,

종들도 흩어지고 친척의 도움도 적어,

생업이 신통치 않고 살림도 궁색해졌소.

 

而況巨家大族, 豈以一人寒儒, 留意爲贅郞乎.

이황거가대족, 기이일인한유, 류의위췌랑호.

그러니 문벌 좋고 번성한 집안에서

어찌 한갓 빈한한 선비를 사위로 삼으려 하시겠소?

 

是必好事者, 過譽吾家, 以誣高門也.”

시필호사자, 과예오가, 이무고문야.”

이는 반드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우리 집안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귀댁을 속이려는 것일 거요.”

 

媒, 又告崔家,

, 우고최가,

중매쟁이가 돌아와서 또 최씨 집안에 전하자.

 

崔家曰: “納采之禮, 漿束之事, 吾盡辨矣.

최가왈: “납채지례, 장속지사, 오진변의.

최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물 드리는 모든 절차와 옷차림은 모두 저희 집에서 갖추겠습니다.

 

宜差穀旦,以定花燭之期.”

의차곡단,이정화촉지기.”

좋은 날을 가려서 화촉의 시기만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媒者, 又返告之. 李家至是, 稍回其意, 卽遣人, 召生問之.

매자, 우반고지. 리가지시, 초회기의, 즉견인, 소생문지.

중매쟁이가 또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였다.

이씨 집안에서도 이렇게까지 되자 뜻을 돌려,

곧 사람을 보내어 이생을 불러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生喜不自勝, 乃作詩曰:

생희불자승, 내작시왈:

이생을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시 한 수를 지었다.

破鏡重圓會有時,

파경중원회유시, 깨어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되니 만남도 때가 있어

天津烏鵲助佳期.

천진오작조가기.은하의 까마귀와 까치들이 아름다움 기약을 도와주었네.

從今月老纏繩去,

종금월노전승거, 이제야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붉은 실을 잡아매었으니

莫向東風怨子規.

막향동풍원자규. 봄바람이 건듯 불더라도 소쩍새를 원망 마오.

 

女聞之, 病亦稍愈, 又作詩曰:

녀문지, 병역초유, 우작시왈:

최랑이 이 시를 듣고는 병도 차츰 나아져, 자기도 시를 지었다.

 

惡因緣是好因緣,

악인연시호인연, 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던가?

盟語終須到底圓.

맹어종수도저원. 그 옛날 맹세가 마침내 이루어졌네.

共輓鹿車何日是,

공만녹차하일시, 어느 때나 님과 함께 작은 수레를 끌고 갈까?

倩人扶起理花鈿.

천인부기리화전. 아이야, 나를 일으켜 다오. 꽃 비녀를 손질하련다.

 

於是, 擇吉日, 遂定婚禮, 而續其絃焉. 

어시 택길일 수정혼례 이속기현언.

이에 좋은 날을 가려 마침내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自同牢之後, 夫婦愛而敬之, 相待如賓, 

자동뢰지후, 부부애이경지, 상대여빈,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마치 손님처럼 대하니,

雖鴻光鮑桓, 不足言其節義也.

수홍광포환, 불족언기절의야.

비록 양홍 . 맹광이나 포선(鮑宣)․환소군(桓少君)이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가 없었다.

 

*양홍 맹광: 후한 때 부자집 딸인 맹광은 가난한 선비 양홍과 모범 가정을 이룸.

擧案齊眉(거안제미)

鮑宣(포선)․桓少君(환소군); 전한 시대 부부.

 

生翌年, 捷高科, 登顯仕, 聲價聞于朝著. 

생익년  첩등과 등현사  성가문우조저

이생은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자그의 명성이 조정에 알려졌다.

辛丑年, 紅賊據京城, 王移福州.

신축년, 홍적거경성, 왕이복주.

신축년(1361)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신축년 고려 공민왕 10(1361) 홍건적이 압록강 건너 침범함.

 

賊焚蕩室廬, 臠炙人畜.

적분탕실려, 련자인축.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夫婦親戚,不能相保, 東奔西竄, 各自逃生. 

부부친척,불능상보, 동분서찬, 각자도생.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生挈家, 隱匿窮崖. 有一賊, 拔劍而逐. 

생설가, 은특궁애. 유일적, 발검이축.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生奔走得脫, 女爲賊所虜, 

생분주득탈, 녀위적소로,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欲逼之, 女大罵曰: 

욕핍지, 녀대매왈: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虎鬼殺啗我, 寧死葬於豺狼之腹中, 安能作狗彘之匹乎?”

호귀살담아, 녕사장어시랑지복중, 안능작구체지필호?”

“창귀(倀鬼) 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賊怒, 殺而剮之.

적로, 살이과지.

도적이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生竄于荒野, 僅保餘軀. 聞賊已滅, 遂尋父母舊居, 

생찬우황야, 근보여구. 문적이멸, 수심부모구거,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其家已爲兵火所焚. 

기가이위병화소분.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又至女家, 廊廡荒凉, 鼠喞鳥喧. 

우지녀가, 랑무황량, 서즐조훤.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悲不自勝, 登于小樓, 收淚長噓. 

비불자승, 등우소루, 수루장허.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奄至日暮, 塊然獨坐, 佇思前遊, 宛如一夢. 

엄지일모, 괴연독좌, 저사전유, 완여일몽.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將及二更, 月色微吐, 光照屋梁. 漸聞廊下, 有跫然之音, 

장급이경, 월색미토, 광조옥량. 점문랑하, 유공연지음,

二更(이경)쯤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自遠而近, 至則崔氏也. 

자원이근, 지칙최씨야.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生雖知已死, 愛之甚篤, 不復疑訝. 遽問曰:

생수지이사, 애지심독, 불복의아. 거문왈: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 보았다.

“避於何處, 全其軀命?”

피어하처, 전기구명?”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목숨을 보전하였소?”

女執生手, 慟哭一聲. 乃敍情曰: 

녀집생수, 통곡일성. 내서정왈: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妾本良族,幼承庭訓, 工刺繡裁縫之事, 學詩書仁義之方,

첩본량족,유승정훈, 공자수재봉지사, 학시서인의지방,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但識閨門之治, 豈解境外之修.

단식규문지치, 기해경외지수.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然而一窺紅杏之墻, 自獻碧海之珠.

연이일규홍행지장, 자헌벽해지주.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花前一笑, 恩結平生, 帳裏重遘, 情愈百年.

화전일소, 은결평생, 장리중구, 정유백년.

꽃 앞에서 한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言至於此, 悲慙曷勝.

언지어차, 비참갈승.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將謂偕老而歸居, 豈意橫折而顚溝,

장위해로이귀거, 기의횡절이전구,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終不委身於豺虎, 自取磔肉於泥沙,

종불위신어시호, 자취책육어니사,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固天性之自然, 匪人情之可忍.

고천성지자연, 비인정지가인.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却恨一別於窮崖, 竟作分飛之匹鳥.

각한일별어궁애, 경작분비지필조.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家亡親沒, 傷殢魄之無依,

가망친몰, 상체백지무의,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義重命輕, 幸殘軀之免辱.

의중명경, 행잔구지면욕.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誰憐寸寸之灰心, 徒結斷斷之腐腸,

수련촌촌지회심, 도결단단지부장,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骨骸暴野, 肝膽塗地. 細料昔時之歡娛, 適爲當日之愁寃.

골해폭야, 간담도지. 세료석시지환오, 적위당일지수원.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今則鄒律已吹於幽谷, 倩女再返於陽閒.

금칙추률이취어유곡, 천녀재반어양한.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蓬萊一紀之約綢繆, 聚窟三生之香芬郁, 重契闊於此時, 期不負乎前盟,

봉래일기지약주무, 취굴삼생지향분욱, 중계활어차시, 기불부호전맹,

봉래산 십이 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삼세(三世)의 향이 향그러우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如或不忘, 終以爲好, 李郞其許之乎?”

여혹불망, 종이위호, 리랑기허지호?”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生喜且感曰: “固所願也.”

생희차감왈: “고소원야.”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相與款曲抒情. 言及家産被寇掠有無,

상여관곡서정. 언급가산피구략유무,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왔다.

 

 

女曰: “一分不失, 埋於某山某谷也.”

녀왈: “일분불실, 매어모산모곡야.”

여인이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又問: “兩家父母骸骨安在?”

우문: “량가부모해골안재?”

이생이 또 물었다.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女曰: “暴棄某處.”

녀왈: “폭기모처.”

여인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두었지요.”

 

 

敍情罷, 同寢極歡如昔.

서정파, 동침극환여석.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明日, 與生俱往尋瘞處, 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

명일, 여생구왕심예처, 과득금은수정급재물약간.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 貿金賣財, 各合葬於五冠山麓,

우득수습량가부모해골. 무금매재, 각합장어오관산록,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封樹祭獻, 皆盡其禮. 

봉수제헌, 개진기례.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其後, 生亦不求仕官,與崔氏居焉. 

기후, 생역불구사관,여최씨거언.

그 뒤에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幹僕之逃生者, 亦自來赴. 

간복지도생자, 역자래부.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生自是以後, 懶於人事, 雖親戚賓客賀弔, 杜門不出, 

생자시이후, 라어인사, 수친척빈객하조, 두문불출,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常與崔氏, 或酬或和, 琴瑟偕和, 荏苒數年.

상여최씨, 혹수혹화, 금슬해화, 임염수년.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내었다.그럭저럭 몇 년이 지났다.

 

 

一夕, 女謂生曰: “三遇佳期, 世事蹉跎, 歡娛不厭, 哀別遽至.”

일석, 녀위생왈: “삼우가기, 세사차타, 환오불염, 애별거지.”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遂嗚咽, 生驚問曰: “何故至此?”

수오열, 생경문왈: “하고지차?”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되었소?”

 

女曰: “冥數不可躱也,

녀왈: “명수불가타야,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天帝以妾與生, 緣分未斷, 又無罪障, 假以幻體, 與生暫割愁腸,

천제이첩여생, 연분미단, 우무죄장, 가이환체, 여생잠할수장,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非久留人世, 以惑陽人.”

비구류인세, 이혹양인.”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命婢兒進酒, 歌玉樓春一闋, 以侑生, 歌曰:

명비아진주, 가옥루춘일결, 이유생, 가왈: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干戈滿目交揮處,

간과만목교휘처,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玉碎花飛鴛失侶.

옥쇄화비원실려.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殘骸狼籍竟誰埋,

잔해랑적경수매,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血汚遊魂無與語.

혈오유혼무여어.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高唐一下巫山女,

고당일하무산녀,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번 내려온 뒤에

破鏡重分心慘楚.

파경중분심참초. 깨어진 종(鐘)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從玆一別兩茫茫,

종자일별양망망,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天上人

間音信阻.

천상인간음신조.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每歌一聲, 飮泣數下, 殆不成腔.

매가일성, 음읍수하, 태불성강.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生亦悽惋不已曰: “寧與娘子, 同入九泉, 豈可無聊獨保殘生.

생역처완불이왈: “녕여낭자, 동입구천, 기가무료독보잔생.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황천(荒天)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向者, 傷亂之後, 親戚僮僕, 各相亂離, 亡親骸 狼籍原野,

향자, 상란지후, 친척동복, 각상란리, 망친해 랑적원야,

지난 번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儻非娘子, 誰能奠埋.

당비낭자, 수능전매.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古人云: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盡在娘子,

고인운: 생사지이례, 사장지이례. 진재낭자,

옛 사람 말씀에,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天性之純孝, 人情之篤厚也. 感激無已, 自愧可勝.

천성지순효, 인정지독후야. 감격무이, 자괴가승.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願娘子, 淹留人世, 百年之後, 同作塵土.”

원낭자, 엄류인세, 백년지후, 동작진토.”

당신도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년 뒤에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女曰: “李郞之壽, 剩有餘紀, 妾已載鬼籙, 不能久視.

녀왈: “리랑지수, 잉유여기, 첩이재귀록, 불능구시.

여인이 말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若固眷戀人間, 違犯條令, 非唯罪我, 兼亦累及於君.

약고권련인간, 위범조령, 비유죄아, 겸역루급어군.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但妾之遺骸, 散於某處, 倘若垂恩, 勿暴風日.”

단첩지유해, 산어모처, 당약수은, 물폭풍일.”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그 유골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相視泣下數行云: “李郞珍重.”

상시읍하수행운: “리랑진중.”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言訖漸滅,了無踪迹.

언흘점멸,료무종적.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生拾骨

(생습골) :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附葬于親墓傍

(부장우친묘방) :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旣葬

(기장) : 장사를 지낸 뒤에는

生亦以追念之故

(생역이추념지고) :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得病數月而卒

(득병수월이졸) :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聞者莫不傷歎而慕其義焉

(문자막불상탄이모기의언) :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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