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양봉래(楊蓬萊)의 선종암(仙鍾巖)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鏡裏芙蓉三十六 경리부용삼십육

天邊螻䯻萬二千 천변루고만이천

中間一片滄洲石 중간일편창주석

可以言詩此百年 가이언시차백년

거울속 부용은 서른 여섯인데

하늘가에 바라뵈는 일만 이천 봉

그 가운데 한조각 창주석에는

한 백년 동안에 시라고 말할 수가 있다오

박 상공(朴相公)이 끝구절을 고쳐,

合著東來海客眠 합저동래해객면

동녘에 온 해객이 졸기에 합당하네

하자, 봉래가 온당하다고 하여 드디어 고치고 나중에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의 호) 황 상공(黃相公)에게 말하니 상공이,

“이는 공의 시어(詩語)가 아니니 바른 대로 말하시오”

하므로 봉래가 지천의 식견에 크게 탄복했다. 지천은 봉래를 잘 알아보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박 상공(朴相公)의 이름은 순(淳),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庵), 충주인(忠州人)이며 벼슬은 영의정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사암의 퇴계 선생이 남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며[送退溪先生南還]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鄕心不斷若連環 향심부단약연환

一騎今朝出漢關 일기금조출한관

寒勒嶺梅春未放 한륵영매춘미방

留花應待老仙還 유화응대노선환

고향생각 끊임없어 고리인 양 이어지니

한필 말로 오늘아침 한관 떠나네

추위에 고갯매화 봄인데도 못 피니

늦은꽃 응당 늙은 신선 돌아오길 기다리리

총병(總兵) 양조(楊照)의 사당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鐵衣金劍已塵沙 철의금검이진사

廟間松杉噪夕鴉 묘간송삼조석아

惆悵漢家飛將死 추창한가비장사

胡笳頻度白狼河 호가빈도백낭하

철갑옷 금빛칼도 이미 흙이 되었고

사당집 소나무 전나무엔 저녁 까마귀 지저귀네

슬프다 중국 날센 장수 죽었으니

갈대 피리 소리만 백낭하 자주 넘네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 시는 다음과 같다.

客心孤廻自生愁 객심고회자생수

坐聽江聲不下樓 좌청강성불하누

明日又登官道去 명일우등관도거

白雲紅樹爲誰秋 백운홍수위수추

나그네 그리움 외로이 절로 시름 생기니

앉은 채 강물소리 듣노라 다락에서 내려올 줄 모르네

내일 또 벼슬길로 가버린다면

흰 구름에 단풍은 누구 위한 가을일꼬

견 상인(堅上人)에게 보내는 시는 다음과 같다.

久沐恩波役此心 구목은파역차심

曉鷄聲裏戴朝簪 효계성리대조잠

江南野屋今蕪沒 강남야옥금무몰

却倩山僧護竹林 각천산승호죽림

오랫동안 입은 은혜이기에 이 마음 궁리 많아

새벽 닭소리에 조회 나갈 비녀를 꽂네

강남 땅 들집은 하마 황폐했겠지

산승을 고용하여 대밭을 돌보게 했네

짧은 거문고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嶧山誰採鳳凰枝 역산수채봉황지

雷斧餘痕斲更奇 뇌부여흔착갱기

休恨賞音人已逝 휴한상음인이서

照衿明月卽鍾期 조금명월즉종기

역산에서 그 누가 오동나무 잘랐는가

벼락친 자욱 있어 깎아보니 더욱 기이해

소리 알 이 이미 갔다 서러워 마라

옷깃 비추는 저 달이 바로 종자기라네

이양정(二養亭) 벽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谷鳥時時聞一箇 곡조시시문일개

匡床寂寞散群書 광상적막산군서

可憐白鶴臺前水 가련백학대전수

纔出山門便帶淤 재출산문편대어

산새 소리 어쩌다 외마디 들리고

침상은 쓸쓸해라 여러 책 흩어졌네

가엾어라 백학대 앞 저 물도

산문을 나서자 이내 진흙 머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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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내 누님의 보허사(步虛詞)는 다음과 같다.

乘鸞夜下蓬萊島 승난야하봉래도

閒碾麟車踏瑤草 한년인거답요초

海風吹折碧桃花 해풍취절벽도화

玉盤滿摘如瓜棗 옥반만적여과조

난새 타고 한밤 중 봉래도에 내려서

기린수레 한가로이 몰고 아름다운 풀 밟기도 하네

바닷바람은 벽도화를 불어 꺾어오고

옥소반엔 가득찬 외만한 대추

또 다음과 같이도 읊었다.

九華裙幅六銖衣 구화군폭육수의

鶴背冷風紫府歸 학배냉풍자부귀

瑤海月沈星漢落 요해월침성한락

玉簫聲裏霱雲飛 옥소성리휼운비

구화의 치마폭에 육수의 웃옷 입고

학의 등 싸늘바람 자부로 돌아왔네

비취 바다 달도 지고 은하수 기우는데

옥피리 소리 속에 상서구름 날리네

유몽득(劉夢得)을 본받았으나, 맑고 뛰어나긴 그보다 더하다.

유선사(遊仙詞) 백편은 모두 곽경순(郭景純 경순은 동진(東晋) 곽박(郭璞)의 자)의 남긴 뜻인데,

조요빈(曺堯賓) 따위로는 미치지 못한다.

나의 중형과 이익지가 모두 모방하여 지었으되, 마침내 그 울을 넘지 못했으니,

우리 누님은 천선(天仙)의 재주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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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양봉래(楊蓬萊)의 풍악에서[在楓岳]란 시는 다음과 같다.

白玉京蓬萊島 백옥경봉래도

浩浩煙波古 호호연파고

熙熙風日好 희희풍일호

碧桃花下閒來往 벽도화하한래왕

笙鶴一聲天地老 생학일성천지로

백옥경 봉래도에

허허 넓은 연파는 태고적이고

맑고 따사로운 날씨도 좋구나

벽도화 그늘에 한가로이 오가니

학 탄 신선 피리소리에 세월은 간다

신선 같은 풍채와 도인 같은 느낌이 짙다.

자동(紫洞) 차식(車軾)이 흉내내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朝玄圃暮蓬萊 조현포모봉래

山月鉢淵瀑 산월발연폭

香風桂樹臺 향풍계수대

俯臨東海揖麻姑 부림동해읍마고

六六壺天歸去來 육육호천귀거래

아침엔 현포에 저물녘엔 봉래산에

산달 걸린 박연폭포요

향풍어린 계수대라

동해를 굽어보며 마고에게 절하고

삼십륙동천에 돌아가노라

원숙하기는 하나. 격(格)이 미치지 못한다.

나의 중형도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鶴軒昂燕差池학헌앙연차지

三山歸去五雲中飛삼산귀거오운중비

乾坤三尺杖 건곤삼척장

身世一布衣 신세일포의

好掛長劍巖頭樹 호괘장검암두수

手弄淸溪茹紫芝 수농청계여자지

학은 훤칠하게 제비는 높게 낮게

삼신산에 돌아와 오색 구름에 나는구나

이 천지간 석자짜리 지팡이에

포의로 한 세상 보내누나

바윗머리 나무에 긴 칼 척 걸어 두고

맑은 시내에 손 담그고 영지풀잎 씹네

비록 좋기는 해도 마침내 양봉래의 신선 같은 운치에는 미치질 못한다.

이익지(李益之)에게 읊게 한다 해도 미치지 못할는지 모르겠다.

양봉래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山上有山山出地 산상유산산출지

水邊流水水中天 수변유수수중천

蒼茫身在空虛裏 창망신재공허리

不是煙霞不是仙 불시연하불시선

산 위에 또 산 있으니 산이 땅에서 나오고

물가에 또 물 흐르니 물 속에 하늘 어리었네

아득해라 이 몸 공허 속에 있거니

연하도 아닌 것이 선경도 아니로세

불게(佛偈)와도 비슷하다.

또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金屋樓臺拂紫煙 금옥루대불자연

躍龍雲路下群仙 약용운로하군선

靑山亦厭人間世 청산역염인간세

飛入蒼溟萬里天 비입창명만리천

금옥루대에 보랏빛 안개 떨치고

용이 나는 구름길에 신선 내려오네

청산도 인간 세상에 역겨웠던지

푸른 바다에 어린 구만리 장천 속에 날아들었네

蟠桃子熟三千歲 반도자숙삼천세

半夜白鸞來一雙 반야백난래일쌍

中天仙郞降王母 중천선랑강왕모

玲瓏海氣連雲牕 영롱해기연운창

삼천 년 만에 익는다는 신선 복숭아

한밤중 하얀 난새 쌍으로 왔네

중천에 신선 서왕모 내려오니

아롱진 바다기운 구름창에 이었네

역시 그를 따라 배울 만하다.

차식(車軾)의 자는 경숙(敬叔), 호는 이재(頤齋), 연안인(延安人)이며 벼슬은 군수이다.

《기아(箕雅)》를 참고하건대 ‘金玉’은 ‘金屋’으로 되었고, ‘躍龍’은 어떤 본에는 ‘濯龍’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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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죽은 뒤, 오세억(吳世億)이란 자가 갑자기 죽더니 반나절 만에

깨어나서는, 스스로 하는 말이, 어떤 관부(官府)에 이르니 ‘자미지궁(紫微之宮)’이란 방이 붙었는데

누각이 우뚝하여 난새와 학이 훨훨 나는 가운데 어떤 학사(學士) 한 분이 하얀 비단 옷을 입었는데,

흘긋 보니 바로 하서였다. 오씨는 평소에 그 얼굴을 알고 있는데, 하서가 손으로 붉은 명부를

뒤적이더니,

“자네는 이번에 잘못 왔네. 나가야겠네그려.”

하더니,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주었다고 했다.

世億其名字大年 세억기명자대년

排門來謁紫微仙 배문래알자미선

七旬七後重相見 칠순칠후중상견

歸去人間莫浪傳 귀거인간막랑전

세억은 그 이름 자는 대년

문 밀치고 와서 자미선 뵈었구려

일흔에 또 일곱 된 뒤에 다시 만나리니

인간 세상 돌아가선 함부로 말하지 마오

깨어나자 소재 상공(蘇齋相公)께 말씀드렸다. 그 뒤에 오씨가 일흔일곱 살에 죽었다.

인후(麟厚)의 자는 후지(厚之), 울주인(蔚州人)이며 벼슬은 교리(校理)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하서(河西)가 충암(冲庵) 시권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來從何處來 래종하처래

去向何處去 거향하처거

去來無定蹤 거래무정종

悠悠百年許 유유백년허

오기를 어디로부터 왔으며

가기를 또한 어디를 향해 가는고

가기도 오기도 정한 자취 없이

유유한 세월 백년 남짓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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