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ydong77.tistory.com/20996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창제원리

세종께서 왼손에 들고 계신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 https://namu.wiki/w/%ED%9B%88%EB%AF%BC%EC%A0%95%EC%9D%8C%20%ED%95%B4%EB%A1%80%EB%B3%B8 1. 개요   2. 어떤 책인가?  3. 해례본의 구성   4. 현존하..

kydong77.tistory.com

 

 

 

 

<천년만세(千年萬歲)>

모음곡 형식. '계면가락도들이, 양청도들이,

우조가락도들이'의 3곡을 묶은 악곡,

(해설 : http://blog.daum.net/sorirang/8638812)

 

천년만세 중 계면가락도드리

https://www.youtube.com/watch?v=BjRNuKYmE1U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천년만세(千年萬歲)> 모음곡 형식. '계면가락도들이, 양청도들이, 우조가락도들이'의 3곡을 묶은 악곡, (해설 : http://blog.daum.net/sorirang/8638812)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6) 겨울에세종대왕께서 친히

kydong77.tistory.com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6) 겨울에세종대왕께서 친히 창제 하셨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과 창제원리

     최종민(초안 2006.3.24수정 06.5.16)

 

 

1.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 :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하셨다는 것을 다음의 문헌 기록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세종실록》(권 102) 25년 계해 12월조 끝부분 :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시월. 상친제언문이십팔자. 기자방고전. 분위초중종성. 합지연후.내성자.

凡千文字及 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범천문자급 본국리어개가득이서. 자수간요전환무궁시위훈민정음.

이 달 상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시니(制) 그 글자는 옛 전서를 본땄고

나누어 초성 중성 종성으로 하여 합한 연후에 이에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천 가지 문자와 본국의 우리말을 모두 가히 얻어 글(書) 할 수 있다.

글자가 비록 간요하나 전환이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이라 이른다.

(참고문헌의 國史編纂委員會, 1955 : 533쪽)

 

ㄴ. 세종실록 (권 103) 28년 병인 9월조 끝부분 :

"是月. 訓民正音成……"(國史編纂委員會,1955 : 702쪽)


ㄷ.《훈민정음》정인지 서문(꼬리글) :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계해동. 아전하창제정음이십팔자. 략게례의이시지. 명왈훈민정음

……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훈민정음》원본)

정통십일년구월상한,   자헌대부례조판서집현전대제학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신정인지배수계수근서

*正統十一年 1446년

 

위ㄱ, ㄴ, ㄷ의기록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1443년에 친히 창제하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훈민정음》(원본 문헌)을 펴내어 표기법이 세상에 나온 것은 1446년인데 이 일을 '훈민정음 반포' (널리 알리게 되었다는 뜻)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全文]

https://ko.wikisource.org/wiki/%EC%82%AC%EC%9A%A9%EC%9E%90:Betalph/%ED%9B%88%EB%AF%BC%EC%A0%95%EC%9D%8C/%EC%A0%95%EC%9D%B8%EC%A7%80_%EC%84%9C%EB%AC%B8

 

사용자:Betalph/훈민정음/정인지 서문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鄭麟趾 序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盖外國之語

ko.wikisource.org

鄭麟趾 序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유천지자연지성 칙필유천지자연지문. 소이고인인성제자 이통만물지정 이재삼재지도 이후세부능역야.

(세상에)천지자연의 (이치에 맞는)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천지자연의(이치에 맞는) 글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중국에서는) 옛 사람이 (그)소리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글자를 만들어서, 그리하여 (그것으로써) 온갖 사물의 실상(實相)과 통하게 하였고, (그것으로써) 삼재의 도리를 책에 싣게 하니, 후세 사람이 능히 (이를) 바꾸지 못하였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연사방풍토구별 성기역수이리언.

그러나, 세계는 기후와 토질이 (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말소리의 기운도 또한 (이에)따라서 서로 다르다.

盖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개외국지어 유기성이무기자.

 (그런데) 대개 중국 이외의 나라말은 그 말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는 없다.

假中國文字以通其用 是猶 鑿之也. 豈能達而無乎.

가중국문자이통기용 시유 착지야. 개능달이무호.

 (그래서) 중국의 글자를 빌어서, 그리하여 그 사용을 같이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낀 것과 같이 서로 어긋나는 일이어서 어찌 능히 통달해서 막힘이 없을수 있겠는가?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요개각수소처이안 부가강지사동야.

요컨대 (글자란) 모두 각자가 살고 있는 곳에 따라서 정해질 것이지, 그것을 강요하여 같이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獄者疾其曲折之難通.

오동방례낙문장 의화하. 단방언지어 부여지동. 학서자환기지취지난효 옥자질기곡절지난통.

우리 동방은 예악(禮樂),문장등 문물제도가 중국에 견줄만하나 다만 방언 이어가 (나라말만은) 중국과 같지 않다. (그래서) 글 배우는 이는 그 뜻의 깨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법을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新羅薛總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 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신라설총 시작리두 관부민간 지금행지. 연개가자이용 혹삽혹질. 비단비 무계이이 지어언어지간 즉불능달기만일언.

 옛날,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글자를 만들었는데, 관청과 민간에서는 이제까지도 그것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어서 사용하므로,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우리 말에)들어맞지 않는다. 비단 속되고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적는데 이르러서는 그 만분의 일도 통달치 못하는 것이다.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계해동. 아전하창제정음이십팔자 략게례의이시지 명왈훈민정음.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상형이자방고전 인성이음서칠조. 삼극지의 이기지묘 막부해괄 이이십팔자이전환무궁 간이요 정이통.

 (게다가)이 28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고지자부종조이회 우자가협순이학 이시해서 가이지기의.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獨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이시청송 가이득기정. 자운칙청독지능변 낙가칙률려지극해. 무소용이부비 무소왕이부달. 

한자음은 청탁을 능히 구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의 율려(律呂)가 고르게 되며, 쓰는 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어떤 경우에라도) 이르러 통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雖風聲鶴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수풍성학 계명구폐 개가득이서의.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 副敎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臣撰李塏 臣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傾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축명상가해석 이유제인. 어시 신여집현전응교신최항 부교뢰신박팽년 신신숙주 수찬신성삼문 돈녕부주부신강희안 항집현전부신찬리개 신리선노등 근작제해급렬 이서기경개. 서사관자부사이자오. 야기연원정의지묘 칙비신등지소능발휘야.

 

恭惟我殿下 天 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공유아전하 천 지성 제도시위초월백왕. 정음지작 무소조술 이성어자연. 개이기지뢰지무소부재 이비인위지사야.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백왕(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데가 없으니, (이는) 어떤 개인의 사적(私的)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부동방유국 부위부구 이개물성무지대지 개유대어금일야여.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심이 계옵셨구나!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정통 11년 9월 상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正統十一年 1446년

 

 

2.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이론적 기반 위에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 이론적 기반을 세 가지 제시하고,

다음에 창제원리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합니다.

 

2.1. 정음 창제의 이론적 기반

《훈민정음》(원본)에 따르면, 훈민정음 창제는역학 (음양*오행, 삼재*)과 중국의 운학 그리고 음악 이론 (원리)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양* : 음모음 양모음

삼재* : 모음의 · , 지 ㅡ , 인 ㅣ


2.2.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소리내는 모양 (발음기관*)을 본 뜬 '상형의 원리'와 소리의 세기 (생김새)를  나타낸 '가획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음의 기본적인 짜임새 '3성법'의 창안에 따른 것이므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상형·가획의 원리'와 '3성법 창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음기관 - 아 설 순 치 후

*'3성법  - 초성, 중성, 종성

 

가) 상형·가획의 원리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서 기본 5자를 만들고, 여기에 소리의 성질에 따라서

획을 더하는 원리로 창제되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초성의 창제 원리

ㄱ. 상형원리 (기본 5자)-발음기관 본뜨기
① 아음 : ㄱ ② 설음 : ㄴ ③ 순음 : ㅁ ④ 치음 : ㅅ ⑤ 후음 : ㅇ

ㄴ. 가획원리 (성출초려-인성가획)-세기따라 획더하기
① ㄱ ㅋ   ② ㄴ ㄷ ㅌ    ③ ㅁ ㅂ ㅍ    ④ ㅅ ㅈ ㅊ   ⑤ ㅇ ㆆ ㅎ
(단 ㆁ, ㄹ, ㅿ은 가획과 상관없음 : 소리 성질 반영)

*가획원리로 인하여 한글은 배우기 쉽다.

(1)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소리를 내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기본 5자와 소리가 세어지는 데에 따라서 획을 더한 방법으로 창제되었으므로, 형태가 합리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한편, 훈민정음 중성 (가운뎃소리)도 상형 원리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창제되었다.

 

(2) 중성의 창제 원리

ㄱ. 상형의 원리(기본 3자) :

① ㆍ : 하늘 [天] ② ㅡ : 땅[地] ③ ㅣ : 사람 [人]

ㄴ. 합성의 원리 (가획의 방법)
초출자 합성 : ㅡ와 ㅣ에 ㆍ를 합하는 방법
① ㅗ : ㆍㅡ의 합  ② ㅏ : ㅣㆍ의 합  ③ ㅜ : ㅡㆍ의 합   ④ ㅓ : ㅡㆍ의 합
재출자 합성- 'ㅗ, ㅏ, ㅜ, ㅓ'에 ㅣ소리를 합하는 방법
① ㅛ : ㅣ와 ㅗ ② ㅑ : ㅣ와 ㅏ ③ ㅠ : ㅣ와ㅜ ④ ㅕ : ㅣ와 ㅓ
('ㅛ, ㅑ, ㅠ, ㅕ'는 'ㅗ, ㅏ, ㅜ, ㅓ'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남)


(2)에 따르면, 중성도 상형의 원리에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초성과 같은 가획의 방법이
아니라 3가지 기본 글자를 합성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획을 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는 가획의 원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음의 짜임새 3·2성틀
《훈민정음》(원본)에서 보면, 소리 단위인 음(글자)의 짜임새에 관련된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3)ㄱ."무릇 글자는 반드시 어울려야 소리가 되니……" (한글학회 1998 : 4)

ㄴ. "첫소리[초성]와 가운뎃소리[중성]와 끝소리[종성,받침]의 세 소리 (글자)가 어울려야 글자를 이룬다." (한글학회 1998 : 20)

ㄷ. "ㅇ은 소리가 맑고 비어서 반드시 끝소리에 쓰지 않더라도 가운뎃소리(ㅇ을 붙이지 않고서)가 소리를 이룰 수 있다." (한글학회 1998 : 18)

ㄹ. "가운뎃소리가 깊고 얕고 오므라지고 펴짐으로써 앞에서 소리나고, 첫소리가 오음의 맑고흐림으로써 뒤에서 화답하여, 첫소리가 되고 다시 끝소리가 되니……" (한글학회 1998 : 11)

(3ㄱ, ㄴ)에 따르면, 글자는 '초·중·종' 3성이 묶여서 이루어지므로, 한 글자는 3성의 묶음 구조입니다.

 

그런데 (3ㄱ)에서 '합이성음 (合而成音)'이라 하였고, (3ㄴ)에서는 '합이성자 (合而成字)'라고 하였으므로, '음 (音)'과 '자 (字)'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훈민정음은 말의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합이성음'과 '합이성자'라는 문맥을 볼 때, '합하여 이루어지는 관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훈민정음》에서 글자 (자)는 곧 '소리 (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ㄴ)에서는 세 소리 즉, 초성·중성·종성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이 합해져야 음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소리를 묶는 틀은 '3성틀' (3성 구조)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훈민정음의 음 구조는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 3성틀입니다.

최기호 (1994 : 161-162)에서는, 중국어가 한 음절을 2분법 (聲, 韻)으로 설명한 데 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3분법 (初聲, 中聲, 終聲)으로 나누면서도 종성자는 따로 만들지 않았으며, 또한 성조에 이르기까지 완벽을 기하였던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하였습니다.

(4) 君

  ㄱ(성모) + ㅜㄴ(운모) :2분법

           ㄱ(초성) +ㅜ(중성) + ㄴ(종성) ;3분법

 

(4)에 따르면, 중국의 2분법에 비하여 훈민정음 3분법은 독창적인 창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3분법이란 소리묶음의 틀로 말하면 3성틀 (3성 구조)입니다.

이것이 훈민정음의 음 구조의 창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민정음을 사용할 때 종성 (끝소리, 받침)이 없는 음 (글자)도 있습니다. 받침이 없는 글자는 3성을 다 갖추지 않았으므로, 초성과 중성으로 된 2성 구조입니다.《훈민정음》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3ㄷ)처럼 종성이 없어도 글자 (음)가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종성이 없는 상태에서 중성만으로 소리묶음 단위가 이루어진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종성이 없는 글자 구조는 초성과 중성으로 된 2성 구조인  '2성틀 (2성 구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3성과 2성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구조를 훈민정음 음 (글자)의 '3·2성 묶음틀' (이하 '3·2성틀')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정리하면《훈민정음》의 소리묶음틀은 3·2성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성이나 종성의 합용병서 'ㅺ, ㅼ, ㅳ,ㅄ, ㅴ,ㄺ' 등에 대하여, 그 음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성에서는 이른바 '8종성법'이라 하여 종성을 한 글자로만 표기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종성은 한 소리로 발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성의 경우에 각자 발음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모두 묶어서 초성임에는 틀림없다. 즉 그것이 각자대로 발음되었거나, 하나로 경음화 되어 발음되었거나, 상관없이 초성으로 볼 수 있으므로, 3성과 2성틀의 구조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음 형식 창안 - 훈민정음의 창의성

훈민정음으로 나타내는 음의 형식은 3·2성틀로 구조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으로 표기되는 모든 음은 3틀과 2틀의 연결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글자 창제의 '상형·가획원리'와 글자 구조의 '3·2성틀 원리'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음의 형식에서 3성틀은 장형성, 2성틀은 단형성을 가지므로, 3·2성틀은장단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훈민정음으로 나타내는 모든 음 (글자)은 장단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 형식의 장단형 비율은 3 : 2입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수리적인 묶음 3·2틀의 장단미라는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적인 구조 3·2틀은 장단성과 함께 국악이나 시가의 음수율, 그리고 미학적인 비율의 의미가 있으므로 원형적인 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련된 내용-이 곳에 올린글 '훈민정음 3-2성틀의 황금비율성 소리 형식미' 참조).

 

3. 맺는말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친히 창제하셨습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첫째로 상형과 가획의 원리(본뜨기와 획더하기)이며,

둘째로 3·2성틀의 글자(음)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최기호 (1994). 《한국어 변천사》. 토담.
최현배 (1940/1976).《고친 한글갈》.정음사.
한글학회 (1998).《훈민정음》옮김과 해설, 해성사 (고서보존회).

國史編纂委員會 (1955).《朝鮮王朝實錄》四 : 世宗實錄 (三).

 

https://kydong77.tistory.com/7906?category=485871 

 

훈민정음 어제서문과 예의

《훈민정음》어제서문과 예의(例義) [은자주]<조선왕조실록>에는 어제와 예의(例義), 정인지의 서문이 실려 있다. 국역과 함께 이를나누어 옮겨본다. 세종 113 28/09/29(갑오) / 《훈민정음》이 이루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21619

 

世宗御製訓民正音/ 중세국어 원문자료 모음

해례본 원문 訓民正音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언해본 원문 世솅〮宗

kydong77.tistory.com

 

 

[훈민정음 어제서문 & 예의(例義)-(本文)]













 

https://kydong77.tistory.com/20996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창제원리

세종께서 왼손에 들고 계신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 https://namu.wiki/w/%ED%9B%88%EB%AF%BC%EC%A0%95%EC%9D%8C%20%ED%95%B4%EB%A1%80%EB%B3%B8 1. 개요   2. 어떤 책인가?  3. 해례본의 구성   4. 현존하..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21523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경/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

[세종이 유언한 신미대사의 시호] 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신미,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리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 密傳正法 - 범

kydong77.tistory.com

세종의 유언으로 문종이 하사한 신미대사의 시호

[세종이 유언한 신미대사의 시호]

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신미,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리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 密傳正法 - 범어[산스크리트어]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함.

*신미대사의 시호중 "悲智雙運"의 '悲智'는 '자비'와 '지혜'의 의미임.

*'祐國利世' - 표음문자인 한글 창제를 선도함.

세종이 지은 시호를 종합해 보면, 범어에 능통한 信眉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祐國利世'한 한국의 붓다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zKM3Dtz2xeg&t=13s 

 

 

https://www.youtube.com/watch?v=Khcr7K8ugaU&t=1996s 

* 훈민정음 글씨 안평대군(당대 명필), 結曰 [선시] - 승려 아니면 불가함.

 

https://kydong77.tistory.com/21623

 

세종,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上 /붓다의 생애 八相 찬불가

조선조 초기의 용미어천歌, 원인천강지曲 등의 악장문학은 실상 歌曲으로 연행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kydong77.tistory.com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2459

 

내불당(內佛堂)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왕실의 불교신앙을 위하여 창건하였다. 조선의 태조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4매와 두골(頭骨)·패엽경(貝葉經)·가사(袈裟) 등을 흥천사(興天寺) 석탑에 안치하였는데, 1418년(세종즉위

encykorea.aks.ac.kr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전기 에 창건된 왕실의 사찰.
내용
왕실의 불교신앙을 위하여 창건하였다. 조선의 태조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4매와 두골(頭骨)·패엽경(貝葉經)·가사(袈裟) 등을 흥천사(興天寺) 석탑에 안치하였는데, 1418년(세종즉위년) 세종이 내불당을 창건하고 이들을 옮겨 봉안하였다.
1419년에는 최흥효(崔興孝) 등에게 명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이곳에 옮기고 대비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단종 때 집현전과 사헌부의 학자들이 상소하여 내불당을 철폐할 것을 여러 차례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조 때에는 내불당을 크게 일으키고 법회를 열었다.
1456년(세조 2)에 법석(法席)을 열었고, 1459년 사월초파일에는 간경회(看經會)를 베풀었으며, 1464년에는 계양대군(桂陽大君)의 쾌유를 비는 특별법회를 열었다. 1470년(성종 1)에는 내불당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는 유생들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83년에는 예조에 명하여 역대로 왕실의 보호를 받았던 이 절에 대하여 특별경계와 순시를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1507년(중종 2)에도 이 절의 보호를 명하였다.
내불당은 억불숭유정책으로 일관한 조선시대 불교의 특이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사찰로서, 왕 자신의 믿음이 불교가 아닌 경우에는 선왕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목으로 보호되어 조선 중기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선조 이후에는 내불당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https://kydong77.tistory.com/21603

 

훈민정음 청제, 신미대사와 세종대왕, 간경도감의 불교경전번역본들

https://kydong77.tistory.com/19510 한글 창제의 독창성/ 신숙주, 동국정운/ 신미대사 창제설, 불경譯의 범어 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한글의 독창성과 그 우수성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에..

kydong77.tistory.com

경전 언해는 1447년 석보상절을 시작으로 월인석보, 금강경, 반야심경, 능엄경20여 종에 걸쳐 진행됐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26_0020_0020_0060_0030 

 

우리역사넷

(3) 간경도감의 불경언해  세종 6년(1460) 6월에 설치된 刊經都監은 정음 창제 이후에 이 문자로 책을 간행한 가장 큰 기관이었으니 정음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contents.history.go.kr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중요한 책들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楞嚴經諺解≫10권(세조 7년;1462) ≪妙法華經諺解≫7권(세조 8년) ≪金剛經諺解≫1권(세조 9년) ≪佛說阿彌陀經諺解≫1권(세조 9년) ≪禪宗永嘉集諺解≫2권(세조 9년) ≪般若心經諺解≫1권(세조 9년) ≪圓覺經諺解≫12권(세조 10년) ≪牧牛子修心訣諺解≫1권(세조 13년)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60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참고]

흔히 언문이라면 한문과 대비하여 비하하는 명칭으로 알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상용한 것을 보면 훈민정음의 다른 명칭이다.

불경언해에 주력한 것은 한글 보급과 고려의 정시적 유산으로 남겨진 불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남한 한글날 10월9일 반포일 기준

북한  '조선글날' 1월15일 제작일 기준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394 

 

북한 한글날은 1월15일…명칭도 달라 - NK조선

북한의 한글날인 '조선글날'은 10월9일이 아닌 1월15일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매체 뉴포커스는 9일 "북한에는 남한의 '한글날'과 같은 ...

nk.chosun.com

 

 한글날과 조선글날의 날짜가 다른 것은 우리측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1446년 10월9일)을 기준으로 삼은 반면 북한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날(1444년 1월15일)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남한 한글날 10월9일 반포일 기준

북한  '조선글날' 1월15일 제작일 기준

북한의 한글날인 '조선글날'은 10월9일이 아닌 1월15일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매체 뉴포커스는 9일 "북한에는 남한의 '한글날'과 같은 '조선글날(1월15일)'이 있지만 '조선글은 인민이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었다'는 언급만 있을 뿐 세종대왕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거의 없다"며 "남과 북은 같은 말을 쓰면서도 그 말의 창시자에 대한 의견은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북한의 한글날인 '조선글날'은 10월9일이 아닌 1월15일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매체 뉴포커스는 9일 "북한에는 남한의 '한글날'과 같은 '조선글날(1월15일)'이 있지만 '조선글은 인민이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었다'는 언급만 있을 뿐 세종대왕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거의 없다"며 "남과 북은 같은 말을 쓰면서도 그 말의 창시자에 대한 의견은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운영자 의견]

문자의 명칭 - '훈민정음'

제작자의 장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취지임.

한국어에는 한자어가 많다. 북한에서는 인위적인 두음법칙을 만들지 않고 발음대로 적는데  그것이 표기법에 맞다고 본다. 발음은 별개의 문제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01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