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연암집 제 4 권


[주C-001]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영조 41년(1765) 연암은 벗 유언호(兪彦鎬) · 신광온(申光蘊)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할 때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를 보고 판서 홍상한(洪象漢)이 칭찬해 마지않았다고 하며, 연암 스스로도 득의작으로 자부하여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 수록해 놓았다. 윤광심(尹光心)의 《병세집(幷世集)》에는 총석관일(叢石觀日)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의 차이가 있으며 12행 84자가 추가되어 있다. 《연암집》에 수록된 시의 초고로 짐작된다.


行旅夜半相呌譍 길손들 한밤중에 서로 주고받는 말이
遠鷄其鳴鳴未應 먼 닭이 울었는가 아직 울지 않을 텐데
遠鷄先鳴是何處 먼저 우는 먼 닭은 그게 바로 어드메냐

只在意中微如蠅 의중에만 있는 거라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邨裏一犬吠仍靜 마을 속의 개 한 마리 짖다 도로 고요하니
靜極寒生心兢兢 고요 극해 찬기 일어 마음이 으시으시
是時有聲若耳鳴 이때 마침 소리 있어
두 귀가 울리는 듯

纔欲審聽簷鷄仍 자세히 듣자니 집닭 울음 뒤따르네


[주D-001]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 《시경(詩經)》 제풍(齊風) 계명(鷄鳴)에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파리 소리로다.〔匪鷄則鳴 蒼蠅之聲〕”라고 하였다. 현비(賢妃)가 임금이 조회(朝會)에 늦지 않게 깨우려고 조바심하다가 파리 소리를 닭 울음으로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주D-002]두 귀가 울리는 듯 :
이명증(耳鳴症)으로 헛소리를 들은 듯하다는 뜻이다.


此去叢石只十里 예서 가면 총석정이 십 리밖에 되잖으니

正臨滄溟觀日昇 동해에 곧바로 다다르면 해돋이를 보겠구먼

天水澒洞無兆朕 하늘과 맞닿은 물만 넘실넘실 해 뜰 조짐 전혀 없고
洪濤打岸霹靂興 거센 파도 언덕 치니 벼락이 일어나네
常疑黑風倒海來 노상 의심쩍은 건 폭풍이 바다를 뒤집어엎고

連根拔山萬石崩 뿌리째 산을 뽑아 뭇 바위 무너질까
無怪鯨鯤鬪出陸 고래
곤어 다투다가 뭍으로 나올 법도 하이
不虞海運値摶鵬 뜻밖에도 항해하다
나래 치는 붕새를 만날지도
但愁此夜久未曙 다만 걱정되는 건 이 밤이 오래도록 아니 새어
從今混沌誰復徵 이제부터 혼돈을 뉘 다시 징벌할지
無乃玄冥劇用武 아마도 겨울 신이 제 힘을 과시하여
九幽早閉虞淵氷 구유(九幽)를 일찍 닫고
우연(虞淵)을 얼게 하지 않았나


[주D-003]곤어(鯤魚) : 북해(北海)에 살며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물고기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원문의 ‘鯤’이 《병세집》에는 ‘鼉’로 되어 있다.
[주D-004]나래 치는 붕새 :
《제해(齊諧)》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이동할 때 물보라가 삼천 리나 일어나며 “나래로 회오리바람을 쳐서 오르기 구만 리나 된다.〔摶扶搖而上者九萬里〕”고 하였다. 《장자》 소요유에 나온다.
[주D-005]이제부터 혼돈을 :
혼돈은 천지개벽 초에 만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은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이 혼돈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 주로 부정적인 존재로 의인화(擬人化)되었다. 《장자》 응제왕(應帝王)에서는 눈, 코, 입,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 중앙의 제왕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황(三皇) 이전 천지의 시초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제홍(帝鴻) 즉 황제(黃帝)의 못난 자식으로서 그 후손이 요순(堯舜) 시대 때 악명 높은 사흉(四凶)의 하나였다고 한다. 《신이경(神異經)》에는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사는 악수(惡獸)라고도 하였다. 원문의 ‘從今’이 《병세집》에는 ‘從玆’로 되어 있다.
[주D-006]구유(九幽) :
땅속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킨다.
[주D-007]우연(虞淵) :
전설상 해가 지는 곳이다.


恐是乾軸旋斡久 아마도 하늘 축이 오래도록 돌고 돌다
遂傾西北隳環絙 서북으로 기울어져
묶은 줄이 끊어진 게지
三足之烏太迅飛 세 발 달린 까마귀 날기로는 천하제일인데
誰呪一足繫之繩 누가
주술 부려 발 하나를 노끈으로 매어 놓았나
海若衣帶玄滴滴 해야(海若)의 옷과 띠엔 물방울이 뚝뚝 듣고
水妃鬢鬟寒凌凌 수비(水妃)
쪽 찐 머린 추위 서려 싸늘하네

[주D-008]하늘 축 : 원문의 ‘軸’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紐’로 되어 있다. ‘건뉴(乾紐)’는 천도(天道)란 뜻이다.
[주D-009]서북으로 기울어져 :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列子 湯問》 《사기(史記)》 권127 일자열전(日者列傳)에도 “하늘은 서북쪽이 부족하니 별들이 서북으로 이동한다.〔天不足西北 星辰西北移〕”고 하였다.
[주D-010]묶은 …… 게지 :
원문의 ‘隳’가 《병세집》에는 ‘墮’로 되어 있다.
[주D-011]세 발 달린 까마귀 :
전설상 해 속에 산다는 새이다.
[주D-012]주술 :
원문의 ‘呪’가 《병세집》에는 ‘叱’로 되어 있다.
[주D-013]해야(海若) :
전설상의 해신(海神)이다.
[주D-014]수비(水妃) :
전설상 수중의 신녀(神女)이다.
[주D-015]쪽 찐 머린〔鬢鬟〕 :
양쪽 귀밑머리를 잡아당겨 만든 환상(環狀)의 쪽 찐 머리를 말한다.


巨魚放蕩行如馬 큰 고기 활개 치며 준마같이 내달리니
紅鬐翠鬣何鬅鬙 붉고 푸른 지느러미 어찌 그리 터부룩한고
天造草昧誰參看 개벽 이전 어둔 누리 본 사람이 누구더냐
大呌發狂欲點燈 참다 못해 외쳐 대며 등이라도 켜려 드네
欃槍擁彗火垂角 혜성이 꼬리를 끌고 화성(火星)이 광망(光芒)을 뻗치네


[주D-016]혜성이 꼬리를 끌고 : 원문의 참창(欃槍)은 혜성의 이름이고, 혜성은 비를 들어 쓸어 버린 듯이 꼬리를 길게 끌기 때문에 소추성(掃帚星)이라고도 한다.

禿樹啼鶹尤可憎 낙엽 진 나무의 부엉이 울음 더욱더 밉상일레
斯須水面若小癤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誤觸龍爪毒可

용의 발톱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其色漸大通萬里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波上邃暈如雉膺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天地茫茫始有界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以朱劃一爲二層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梅澁新惺大染局 매삽이라 신성이라 염색집이 하도 커서
千純濕色縠與綾 몇 천 필 색을 들여 온갖 비단 으리으리

作炭誰伐珊瑚樹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주D-017]붉은 …… 그어 : 원문의 ‘以朱劃一’이 《병세집》에는 ‘殷紅深碧’으로 되어 있다.
[주D-018]매삽(梅澁)이라 신성(新惺)이라 :
‘매삽’과 ‘신성’은 그 의미가 불확실하나 염색집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문의 ‘惺’이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醒’으로 되어 있다.


繼以扶桑益熾蒸 부상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炎帝呵噓口應喎 염제는 불을 불어 입이 응당 비틀리고
祝融揮扇疲右肱 축융은 부채 휘둘러 바른팔이 지쳤구려
鰕鬚最長最易爇 새우 수염 가장 길어 그슬리기 제일 쉽고
蠣房逾固逾自

굴껍질은 굳을수록 더욱더 절로 익네


[주D-019]부상(扶桑)나무 : 전설상 해 뜨는 곳에 자란다는 나무이다.
[주D-020]염제(炎帝) :
전설상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주D-021]축융(祝融) :
이 또한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寸雲片霧盡東輳 한 치 구름 조각 안개 동으로 다 쓸려 가서
呈祥獻瑞各效能 온갖 상서 바치려고 제 힘을 다하누나
紫宸未朝方委裘 자신궁(紫宸宮)엔 조회 전에
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陳扆設黼仍虛凭 병풍만 펼쳐 논 채 용상은 비어 있네
纖月猶賓太白前 초승달은 샛별 앞에 오히려 밀려나서
頗能爭長薛與滕 먼저 예를 행하겠다고
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주D-022]온갖 …… 다하누나 : 원문의 ‘獻瑞各效能’이 《병세집》에는 ‘效瑞難具稱’으로 되어 있으며, 이어서 ‘成曇變霱爭來王 縓緣絳領金線縢’ 2행이 추가되어 있다.[주D-023]자신궁(紫宸宮) : 당송(唐宋) 시대에 천자가 신하나 외국의 사신을 조회하던 정전(正殿)이다.
[주D-024]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아직 조정에 나와 앉기 전에는 선왕의 유의(遺衣)인 갖옷을 모셔놓고 조회한다.
[주D-025]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
노(魯) 나라 은공(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노 나라에 조현(朝見)을 왔다가 예를 행하는 데 있어 그 선후를 다투자 은공이 설후를 설득하여 등후가 먼저 예를 행하도록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赤氣漸淡方五色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遠處波頭先自澄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海上百怪皆遁藏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獨留羲和將驂乘 희화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圓來六萬四千年 육만이라 사천 년을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今朝改規或四楞 오늘 아침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가 될라
萬丈海深誰汲引 만길의 깊은 바다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을까
始信天有階可陞 이제서야 믿겠노라 하늘도 오를 계단이 있음을


[주D-026]먼 물결 머리부터 : 원문의 ‘處’가 《병세집》에는 ‘海’로 되어 있다.
[주D-027]바다 위 :
원문은 ‘海上’인데, 《병세집》에는 ‘俄者’로 되어 있다.
[주D-028]희화(羲和) :
전설상 해를 태운 수레를 모는 신이다.
[주D-029]수레 …… 하네 :
《병세집》에는 이 다음에 ‘有物如盖來覆之 其下蜿蜒馳神螣’ 2행이 추가되어 있다.
[주D-030]육만이라 사천 년 :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의하면, 우주가 개시해서 소멸할 때까지를 1원(元)이라 하는데, 1원은 12회(會)로, 1회는 30운(運)으로, 1운은 12세(世)로, 1세는 30년(年)으로 나뉜다. 따라서 1원은 12만 9600년이 된다. 우주의 역사가 6회(會)가 되면 6만 4800년이 된다.
[주D-031]하늘도 …… 있음을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공자라도 그대만 못하겠다고 칭찬하자, 자공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음은 하늘을 계단을 밟아 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반박하였다.

鄧林秋實丹一顆 등림에 가을 열매 한 덩이가 붉었고
東公綵毬蹙半登 동공이 채색 공을 차서 반만 올렸구려
夸父殿來喘不定 과보는 헐레벌떡 뒤따라오고 있고
六龍前道頗誇矜 육룡은 앞서 끌며 교만스레 자랑하네
天際黯慘忽顰蹙 하늘가 어둑해져 갑자기 눈살 찌푸리고
努力推轂氣欲增 어영차 해 수레 미니 기운이 솟아난 듯
圓未如輪長如瓮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出沒若聞聲砯砯 뜰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
萬物咸覩如昨日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
有誰雙擎一躍騰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주D-032]등림(鄧林) : 전설상의 숲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에, 과보(夸父)가 해를 따라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었는데 그때 버린 지팡이가 숲을 이뤄 등림이 되었다고 한다.
[주D-033]동공(東公) : 전설상의 해를 맡은 신이다.

[주D-034]육룡(六龍)은 앞서 끌며 :
전설에서 해의 신이 수레를 타면 여섯 용이 수레를 끌고 희화가 이를 몰고 다닌다고 한다. 원문의 ‘道’가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導’로 되어 있다.
[주D-035]바퀴처럼 둥글잖고 :
원문의 ‘圓’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團’으로 되어 있다.
[주D-036]뜰락 …… 듯 :
《병세집》에는 이 구절 다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金銀震蕩色未定 欲掛冥靈枝不勝 慌惚直欲雙手擎 轉眄之間一躍騰 快如盡曉難解書 喜極新逢欲招朋 爽如翻惺作噩夢 喉中未聲聲忽能 離海一尺無不照 儘覺生平天宇弘”으로 되어 있다.
[주D-037]만인이 …… 바라보는데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 대한 공자의 풀이 중에 “성인이 나타나시니 만물이 바라본다.〔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있다.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이때 만물(萬物)은 만인(萬人)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해를 성인에 비겼다.

[김홍도 이인문 그림]










불이당기(不移堂記)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연암집 제 3 권

 

사함(士涵)이 스스로 호를 죽원옹(竹園翁)이라고 짓고,

거처하는 당(堂)에 ‘불이(不移)’라는 편액을 걸고는 나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청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그 마루에 올라 보고 정원을 거닐어 보았어도 한 그루의 대나무도 보지 못했다. 내가 돌아보고 웃으며,

“이는 이른바

무하향(無何鄕)

이요

오유선생(烏有先生)

의 집인가?

이름이란 실질(實質)의 손님이니 날더러 장차 손님이 되란 말인가?”

하였더니, 사함이 실망스러워하며 한참 있다가 하는 말이,“그저 스스로 뜻을 붙인 것뿐일세.”하였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상심할 것 없네. 내 장차 자네를 위해 실질이 있게 만들어 줄 테니.

 

[주D-001]사함(士涵)이 …… 왔다 :

사함이 누구의 자(字)인지 알 수 없다. ‘불이(不移)’는 사철 내내 푸른 대나무처럼 절조를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빈천이 그의 절조를 변하게 할 수 없는〔貧賤不能移〕” 사람이라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주D-002]거처하는 당 :

원문은 ‘所居之堂’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所’ 자가 ‘新’ 자로 되어 있다.


[주D-003]무하향(無何鄕) :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준말로,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현실의 제약을 벗어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을 가리킨다. 《莊子 逍遙遊》


[주D-004]오유선생(烏有先生) :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을 뜻한다.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에서 자허(子虛) · 오유선생 · 무시공(亡是公)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을 설정하여 문답을 전개하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5]이름이란 …… 말인가 :

《장자》 소요유에서 요(堯) 임금이 은자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하자 허유가 이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다. 이름과 실질의 관계를 고찰하는 명실론(名實論)은 묵가(墨家) 등 중국 고대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다. 이름이 실질의 손님이란 말은, 이름이 실질에 대해 종속적 · 부차적인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지난날

학사(學士) 이공보(李功甫)

께서 관직에 있지 않고 한가히 지낼 적에 매화시(梅花詩)를 짓고는,

심동현(沈董玄)

의 묵매도(墨梅圖)를 얻자 그 시로써 두루마리 그림의 첫머리에 화제(畫題)를 붙이셨지. 그리고 나서 웃으며 나더러 말씀하시기를,‘너무하구나, 심씨의 그림이여! 능히 실물을 빼닮았을 뿐이구나!’하기에, 나는 의혹이 들어서,‘그림을 그린 것이 실물을 빼닮았다면

훌륭한 화공

인데 학사께서는

어째서 웃으십니까?’

하고 물었네.

 

[주D-006]학사(學士) 이공보(李功甫) : 이양천(李亮天 : 1716 ~ 1755)으로, 공보는 그의 자이다. 연암의 장인인 이보천(李輔天)의 동생으로, 홍문관 교리를 지냈으므로 학사라 칭한 것이다. 이양천은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수학 시절의 연암에게 문학을 지도하였다. 《연암집》 권3 ‘영목당 이공에 대한 제문〔祭榮木堂李公文〕’ 참조.


[주D-007]심동현(沈董玄) :

화가 심사정(沈師正 : 1707 ~ 1769)으로, 동현은 그의 자이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면서도 과거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화업(畫業)에 정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화훼(花卉) · 초충(草蟲)을 가장 잘 그렸다고 한다.


[주D-008]훌륭한 화공 :

원문은 ‘良工’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良畫’로 되어 있다.


[주D-009]어째서 웃으십니까 :

원문은 ‘何笑爲’인데,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笑’ 자가 ‘所’ 자로 되어 있다.

 

그러자 학사께서 말씀하시기를,‘그럴 일이 있지. 내가 처음에

이원령(李元靈)

과 교유할 적에 비단 한 벌을 보내어

제갈공명(諸葛孔明) 사당 앞의 측백나무

를 그려 달라고 청했더니, 원령이 한참 있다가 전서(篆書)로

설부(雪賦)

를 써서 돌려보냈지.

 

[주D-010]이원령(李元靈) : 화가 이인상(李麟祥 : 1710 ~ 1760)으로, 원령은 그의 자이다. 호는 능호관(凌壺觀)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참봉(參奉)이 되고 음죽 현감(陰竹縣監) 등을 지냈으나,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하며 벗들과 시 · 서 · 화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주D-011]제갈공명(諸葛孔明) …… 측백나무 :

두보(杜甫)의 시 촉상(蜀相)에 “촉 나라 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으리. 금관성 밖 측백나무 울창한 곳이라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柏森森〕”라 하였다. 여기에서 측백나무는 변치 않는 제갈공명의 절조를 상징한다. 이양천은 이인상에게 두보의 이 시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주D-012]설부(雪賦) :

진(晉) 나라 사혜련(謝惠連 : 397 ~ 433)이 지은 부(賦)의 제목이다. 서한(西漢)의 양효왕(梁孝王)이 양원(梁園)이라는 호사스런 원림(園林)에서 당대의 문사인 사마상여(司馬相如) 등과 함께 주연을 벌이다가 눈이 오자 흥에 겨워 시를 주고받았던 고사를 노래하였다. 《文選 卷14 雪賦》

 

내가 전서를 얻고는 우선 기뻐하며 더욱 그 그림을 재촉하였더니, 원령이 빙그레 웃으며, 「그대는 아직 모르겠는가? 전에 이미 그려 보냈네.」 하길래, 내가 놀라서, 「전에 보내온 것은 전서로 쓴 설부뿐이었네. 그대는 어찌 잊어버린 겐가?」 했더니, 원령은 웃으며, 「측백나무가 그 속에 들었다네. 무릇 바람과 서리가 매섭게 몰아치면 변치 않을 것이 어찌 있겠는가. 그대가 측백나무를 보고 싶거든 눈 속에서 찾아보게나.」 하였지.나는 마침내 웃으며 응수하기를,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는데 전서를 써 주고, 눈을 보고서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하라고 하다니, 측백나무와는 거리가 너무도 머네그려.

그대가 도(道)를 행하는 것이 너무도 멀리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였지.

 

[주D-013]그대가 …… 아닌가 : 《중용(中庸)》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중용장구》 제 13 장에서 공자는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나니,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을 멀리하면 도라고 할 수 없다.〔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고 하였다. 고원(高遠)하여 행하기 힘든 일에서 도를 찾으려는 경향을 경계한 말이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상소를 올린 일로 죄를 얻어 흑산도(黑山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지.

그때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700리 길을 달려갔는데, 도로에서 전하는 말들이 금부도사(禁府都事)가 장차 이르면

후명(後命)

이 있을 것이라 하니, 하인들이 놀라서 떨며 울음을 터뜨렸지. 때마침 날씨는 차고 눈이 내리며, 낙엽진 나무들과 무너진 산비탈이

들쭉날쭉

앞을 가리고 바다는 눈앞에 끝없이 펼쳐졌는데, 바위 앞에 오래된 나무가 거꾸로 드리워져 그 가지가 마른 대나무와 같았지. 나는 바야흐로 말을 세우고 도롱이를 걸치다가, 손으로 멀리 가리키면서 그 기이함을 찬탄하며 「이것이야말로 어찌 원령이 전서로 쓴 나무가 아니겠는가!」 하였지.

 

[주D-014]나는 ……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지 : 실록에 의하면 영조 28년(1752) 10월 홍문관 교리 이양천은 소론의 영수인 이종성(李宗城)을 영의정으로 임명한 조치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분노를 사서 흑산도에 위리안치되는 처벌을 받았다. 그 이듬해 6월 위리(圍籬)가 철거되고 육지로 나왔으나, 영조 31년(1755)에야 관직에 복귀했다가 이내 사망했다.


[주D-015]후명(後命) :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다시 사약(賜藥)을 내리는 일을 말한다.


[주D-016]들쭉날쭉 :

대본은 ‘嵯砑’인데, ‘砑’는 ‘岈’의 오자이다. ‘치아(嵯岈)’는 둘쭉날쭉 뒤섞여 있는 모습을 뜻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승계문고 필사본에는 ‘차아(嵯峨)’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뜻한다.

 

섬에 위리안치되고 나니 장기(瘴氣)를 머금은 안개로 음침하기 짝이 없고 독사와 지네 따위가 베개나 자리에 이리저리 얽혀 언제 해를 끼칠지 알 수 없었지. 어느 날 밤 큰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 벼락이 치는 듯했으므로 종인(從人)들이 다 넋이 달아나고 토하고 어지러워했는데, 나는 노래를 짓기를,

 

南海珊瑚折奈何 남해산호절내하 남쪽 바다 산호가 꺾어진들 어쩌리오
秪恐今宵玉樓寒 지공금소옥루한 오늘 밤 옥루가 추울까 그것만 걱정일레

 

 

하였지.원령이 편지로 답하기를, 「근자에 산호곡(珊瑚曲)을 얻어 보니, 말이 완곡하면서 슬픔이 지나치지 않고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뜻이 조금도 없으니, 그만하면 환난에 잘 대처할 수 있겠구려. 지난날에 그대가 측백나무를 그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대 역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할 수 있겠소. 그대가 떠난 후에 측백나무를 그린 그림 수십 본이 서울에 남아 있는데, 모두

조리(曹吏)

들이

몽당붓〔禿筆〕

으로 서로 돌려가며 베껴 그린 것이라오. 그러나 그 굳센 줄기와 꼿꼿한 기상이 늠름하여 범접할 수 없고, 가지와 잎은 촘촘하여 어찌 그리도 무성하던지!」 하였으므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원령이야말로 몰골도(沒骨圖)라 이를 만하구나

하였지. 이로 말미암아 보면, 좋은 그림이란 실물을 빼닮은 데 있는 것은 아니야.’하시기에, 나도 역시 웃었다네.

 

[주D-017]남쪽 …… 걱정일레 : 옥루(玉樓)는 상제(上帝)가 산다는 곳인데, 여기서는 궁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는 개의치 않고 오직 임금께서 평안하신지 염려한다는 뜻이다. 이 시는 걸작으로 알려져, 그의 벗 이윤영(李胤永)이 지은 만시(輓詩)에도 인용되었다. 《丹陵遺稿 卷10 挽功甫》


[주D-018]조리(曹吏) :

예조(禮曹)의 도화서(圖畫署)에 소속된 화원(畫員)을 이른다. 이들의 그림을 화원화(畫員畫)라고 하여, 사대부 출신 화가들이 그린 문인화(文人畫)와 차별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였다.


[주D-019]몽당붓〔禿筆〕 :

예리하지 못한 붓이라는 뜻으로, 그림 솜씨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경우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주D-020]원령이야말로 …… 만하구나 :

몰골도(沒骨圖)는 붓으로 윤곽을 그리지 않고 직접 채색하는 수법으로 그린 그림을 이른다. 몰골도에는 붓 자국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인상이 편지에서, 화원들이 모방한 측백나무 그림이 사이비(似而非)임을 언중유골(言中有骨)로 은근히 풍자했다는 뜻이다.!」

 

얼마 있다가 학사께서 세상을 떠났기에 나는 그분을 위하여 그 시문(詩文)을 편집하다가, 그분이 유배지에 있을 적에 형님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네. 그 내용인즉,

‘근자에 아무개의 편지를 받아 보니, 그가 나를 위하여 당로자(當路者)에게 귀양을 풀어 주기를 청하고자 한다 하였으니,

어찌 나를 이다지도 천박하게 대우하는지요? 비록 바다 한가운데에 갇혀서 병들어 죽을지언정 저는 그런 노릇은 하지 않겠습니다.’했네. 나는 그 편지를 쥐고 슬피 탄식하며,‘이 학사(李學士)야말로 진짜 눈 속에 서 있는 측백나무이다. 선비란 곤궁해진 뒤라야 평소의 지조가 드러난다. 재난을 염려하면서도 그 지조를 변치 않고, 고고하게 굳건히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신 것은, 어찌

추운 계절이 되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네.”

 

[주D-021]근자에 …… 하였으니 : 실록에 의하면 영조 29년(1753) 3월과 4월에 언관(言官)들이 이양천의 해배(解配)를 건의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이러한 공개적인 노력 말고도, 이양천의 벗들 중에 당시 정계의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며 석방운동을 벌이려는 사람이 있었던 듯하다.


[주D-022]추운 …… 아니겠는가 :

《논어》 자한(子罕)에 “추운 계절이 되어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맨 나중에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아, 사함은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인가? 추운 계절이 닥친 뒤에 내 장차 자네의 마루에 오르고 자네의 정원을 거닌다면, 눈 속에서 대나무를 볼 수 있겠는가?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종북소선(鍾北小選), 연암집 제 7 권 별집

 

[참고] 아래 포스트에재록함.

박지원 -능양시집서/ 괴이함에 대하여  (0) 2019.03.21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category/한문학/연암 박지원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달관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속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으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관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다 찾아 눈으로 꼭 보았겠는가.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눈앞에 그려 보고, 열 가지를 보면 백 가지를 마음속에 설정해 보니,

천만 가지 괴기(怪奇)한 것들이란 도리어 사물에 잠시 붙은 것이며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마음이 한가롭게 여유가 있고 사물에 응수함이 무궁무진하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기니,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주D-001]오리를 …… 여기니 :

다리가 짧은 오리가 다리가 긴 학을 넘어지기 쉽다고 비웃는다는 뜻이다.

부단학장(鳧短鶴長)이란 말이 있다.

《장자(莊子)》 병무(騈拇)에 “길다고 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며, 짧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오리는 다리가 짧지만 그 다리를 이어 주면 걱정하고,

학은 다리가 길지만 그 다리를 자르면 슬퍼한다.”고 하였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유금(乳金) 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석록(石綠) 빛을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눈이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써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으리오.

보지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아,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고정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늘,

또다시 까마귀로써 천하의 모든 색을 고정 지으려 하는구나.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하지만,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른빛과 붉은빛이 그 검은 빛깔〔色〕 안에 들어 있는 빛〔光〕인 줄 알겠는가.

검은 것을 일러 ‘어둡다’ 하는 것은 비단 까마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빛깔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은 검기 때문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옻칠은 검기 때문에 능히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빛깔이 있는 것 치고 빛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형체〔形〕가 있는 것 치고 맵시〔態〕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미인(美人)을 관찰해 보면 그로써 시(詩)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나직이 숙이고 있는 것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턱을 고이고 있는 것은 한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시름에 잠겨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만약 다시 그녀에게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하는 것처럼 단정하지 않다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소상(塑像)처럼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이는

양 귀비(楊貴妃) 더러 이를 앓는다고 꾸짖거나

번희(樊姬)더러 쪽을 감싸 쥐지 말라고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 를 요염하다고 기롱하거나

손바닥춤〔掌舞〕 을 경쾌하다고 꾸짖는 것과 같은 격이다.

 

[주D-002]양 귀비(楊貴妃) : 당 나라 현종(玄宗)의 애첩이다. 양 귀비가 평소 치통을 앓았는데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를 그린 양귀비병치도(楊貴妃病齒圖)가 있다.


[주D-003]번희(樊姬)더러 …… 말라고 :

번희는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영현(伶玄)의 애첩이었던 번통덕(樊通德)을 가리킨다. 영현이 번희에게 조비연(趙飛燕)의 고사를 이야기하자, 번희가 손으로 쪽을 감싸 쥐고 서글피 울었다고 한다. 이를 소재로 한 번희옹계(樊姬擁髻)라는 희곡도 있다. 《趙飛燕外傳 附 伶玄自敍》


[주D-004]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 :

제(齊) 나라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다 깔아 놓고 애첩인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걸어가게 한 후 사뿐대는 걸음걸이를 보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였다. 《南史 齊紀下 廢帝東昏侯》


[주D-005]손바닥춤〔掌舞〕 :

한 나라 때 유행한 춤으로 춤사위가 유연하고 경쾌하다. 한 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인 조비연(趙飛燕)이 잘 추었다고 한다. 장상무(掌上舞) 또는 장중무(掌中舞)라고도 한다.

 

나의 조카 종선(宗善) 은 자(字)가 계지(繼之)인데 시(詩)를 잘하였다.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해서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체를 띠고 있고 또 어느새 송명(宋明)의 시체를 띠고 있다.

송명의 시라고 말하려고 하자마자 다시 성당의 시체로 돌아간다.

 

[주D-006]종선(宗善) : 1759 ~ 1819. 연암의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서장자(庶長子)로 규장각 검서를 지냈다.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너무도 심하건만,

계지의 정원에 있는 까마귀는 홀연히 푸르렀다 홀연히 붉었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미인으로 하여금 재계하는 모습이나 소상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손바닥춤이나 사뿐대는 걸음걸이는 날이 갈수록 경쾌하고 요염해지며

쪽을 감싸 쥐거나 이를 앓는 모습에도 각기 맵시를 갖추고 있으니,

그네들이 날이 갈수록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세상에 달관한 사람은 적고 속인들만 많으니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아!
연암노인(燕巖老人)이 
연상각(烟湘閣) 에서 쓰노라.

 

[주D-007]연상각(烟湘閣) : 연암이 안의 현감(安義縣監) 시절 관아(官衙) 안에 지었다는 정각(亭閣) 중의 하나이다.







노인일쾌사

老人一快事 其五

 

[원제]

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노인의 한 가지 쾌사에 관한 시 여섯 수를 백향산의 시체를 본받아 짓다

-시(詩) 송파수작(松坡酬酢), 다산시문집 제6권

老人一快事 로인일쾌사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縱筆寫狂詞 종필사광사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일세

競病不必拘 경병불필구 경병을 굳이 구애할 것이 없고
推敲不必遲 추고불필지 퇴고도 꼭 오래 할 것이 없어라
興到卽運意 흥도즉운의 흥이 나면 곧 이리저리 생각하고
의도즉사지 의도즉사지 생각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가되
我是朝鮮人 아시조선인 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
甘作朝鮮詩 감작조선시 조선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일세
卿當用卿法 경당용경법 누구나 자기 법을 쓰는 것인데
迂哉議者誰 우재의자수 오활하다 비난할 자 그 누구리오
區區格與律 구구격여률 그 구구한 시격이며 시율을
遠人何得知 원인하득지 먼 데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랴
릉릉이반룡 릉릉이반룡 능가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嘲我爲東夷 조아위동이 우리를 동이라고 조롱했는데

 

袁尤槌雪樓 원우퇴설루 원굉도는 오히려 설루를 쳤으나
海內無異辭 해내무이사 천하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背有挾彈子 배유협탄자 등 뒤에 활을 가진 자가 있거늘
奚暇枯蟬窺 해가고선규 어느 겨를에 매미를 엿보리오

我慕山石句 아모산석구 나는

산석의 시구를 사모하노니
恐受女郞嗤 공수여랑치 여랑의 비웃음을 받을까 염려로세


焉能飾悽黯 언능식처암 어찌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辛苦斷腸爲 신고단장위 고통스레 애를 끊일 수 있으랴
梨橘各殊味 이귤각수미 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嗜好唯其宜 嗜好唯其宜 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주D-001]경병(競病) :

험운(險韻)을 가지고 시를 짓는 것을 말함. 양(梁) 나라 조경종(曹景宗)이 개선(凱還)할 때에 양 무제(梁武帝)가 잔치를 베풀고 연구(聯句)를 시험했던바, 험운인 경병 두 자만 남았을 때 조경종이 최후로 참여하여 바로 지어 쓰기를, “떠날 땐 아녀들이 슬퍼하더니, 돌아오매 피리와 북 다투어 울리네. 길가는 사람에게 묻노니, 곽거병 그 사람과 과연 어떤고?[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 한 데서 온 말이다.《南史 曹景宗傳》


[주D-002]원굉도(袁宏道)는……쳤으나 :

원굉도는 바로 명(明) 나라 때의 시인이고, 설루(雪樓)는 역시 명나라 때의 시인 이반룡(李攀龍)의 서실(書室) 이름인 백설루(白雪樓)의 준말이다. 원굉도는 본디 시문에 뛰어난 사람으로서 그의 형인 종도(宗道), 아우인 중도(中道)와 함께 모두 당대에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특히 왕세정(往世貞)과 이반룡의 시체(詩體)를 매우 강력히 배격하고 홀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당대에 많은 학자들이 왕세정·이반룡을 배제하고 그를 따르면서 그의 시체를 공안체(公安體 : 공안은 원굉도의 자)라 지목했던 데서 온 말이다.《明史 卷二百八十八》


[주D-003]등……엿보리오 :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가 밤나무 숲에서 이상한 까치를 발견하고 그를 잡기 위해 활에 화살을 끼우고 있었는데, 이때 보니 사마귀[螳蜋]는 신이 나게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이상한 까치가 그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 그 뒤에서는 장자 자신이 그 이상한 까치를 노리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莊子 山木》


[주D-004]산석(山石)의……염려로세 :

이 고사는 앞의 주 292)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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