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귤당기(蟬橘堂記) -박지원

 

-종북소선(鍾北小選), 연암집 제 7 권 별집

 

[은자주]조선시대에 불경은 유학자에게 금서였다. 과거답안지에 불경의 문자가 나오면 몇 년씩 응시를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암은 이 記의 대부분을 불경의 언어로 채웠다. 이덕무가 호를 영처라 한 것은 북학파의 공통적 문학관인 동심설에 근거한 것이다.

연암의 글에 어린아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고정관념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실정을 표현하라는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동심설의 뿌리는중국 명말청초 이지의 동심설에 근원한 것으로 원굉도 등 공안파들이 이를 수용하였다. 이지는 수호지 등 구어소설의 우수성을 주장하엿고 그의 글은 당시 금서에 묶였다.


영처자(嬰處子 이덕무(李德懋))가 당(堂)을 짓고서 그 이름을 선귤당(蟬橘堂)이라고 하였다. 그의 벗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비웃었다.

“그대는 왜 어지럽게도 호(號)가 많은가.

옛날에

열경(悅卿)

이 부처 앞에서 참회를 하고 불법을 닦겠다고 크게 맹세를 하면서 속명(俗名)을 버리고 법호(法號)를 따를 것을 원하니, 대사(大師)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열경더러 이렇게 말을 했네.

[주D-001]그대는 …… 많은가 :

이덕무는 젊은 시절에 삼호거사(三湖居士) · 경재(敬齋) · 팔분당(八分堂) · 선귤헌(蟬橘軒) · 정암(亭巖) · 을엄(乙广) · 형암(炯菴) · 영처(嬰處) · 감감자(憨憨子) · 범재거사(汎齋居士) 등의 호를 지녔다. 《靑莊館全書 卷3 嬰處文稿1 記號》 그 밖에 청음관(靑飮館) · 탑좌인(塔左人) · 재래도인(䏁睞道人) · 매탕(槑宕) · 단좌헌(端坐軒) · 주충어재(注蟲魚齋) · 학초목당(學草木堂) · 향초원(香草園) 등의 호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호는 청장관(靑莊館)과 아정(雅亭)이다.


[주D-002]열경(悅卿) :

김시습(金時習)의 자이다. 김시습 역시 청한자(淸寒子) · 동봉(東峯) · 매월당(梅月堂) · 벽산청은(碧山淸隱) · 췌세옹(贅世翁) 등 호가 많았다.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심하도다, 너의 미혹됨이여. 너는 아직도 이름을 좋아하는구나. 중이란 육체가 마른 나무와 같으니 목비구(木比丘)라 부르고 마음이 식은 재와 같으니

회두타(灰頭陀)

라 부르려무나. 산이 높고 물이 깊은 이곳에서 이름은 있어 어디에 쓰겠느냐. 너는 네 육체를 돌아보아라. 이름이 어디에 붙어 있느냐? 너에게 육체가 있기에 그림자가 있다지만, 이름은 본래 그림자조차 없는 것이니 장차 무엇을 버리려 한단 말이냐? 네가 정수리를 만져 머리카락이 잡히니까 빗으로 빗은 것이지, 머리카락을 깎아 버린 이상 빗은 있어 무엇하겠느냐.
[주D-003]회두타(灰頭陀) : 두타(頭陀)는 범어(梵語)의 음역(音譯)으로 행각승(行脚僧)을 말한다.
네가 장차 이름을 버리려고 한다지만, 이름은 옥이나 비단도 아니요 땅이나 집도 아니며, 금이나 주옥이나 돈도 아니요 밥이나 곡물도 아니며, 밥솥이나 가마솥도 아니요 큰 가마나 큰솥도 아니며, 광주리도 술잔도 아니요 곡식 담는 각종 제기(祭器)도 고기 담는 제기도 아니다. 차고 다니는 주머니나 칼이나 향낭(香囊)처럼 풀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비단 관복이나 학(鶴)을 수놓은 흉배(胸背), 서대(犀帶)나

어과(魚果)

처럼 벗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쪽 끝에 원앙(鴛鴦)을 수놓은 베개나 술이 달린 비단 장막처럼 남에게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때나 먼지처럼 물로 씻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물까마귀 깃으로 토해 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부스럼이나 마른 딱지처럼 손톱으로 떼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D-004]어과(魚果) : 과(果)는 신표(信標)라는 뜻이다. 물고기 모양을 나무에 새기거나 구리로 빚어 허리띠에 차던 관리의 신표를 말한다. 어부(魚符) 또는 어패(魚佩)라고도 하였다.
그것이 네 이름이기는 하지만 너의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이 부르기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되고 영광스럽게도 치욕스럽게도 되며 귀하게도 천하게도 되니, 그로 인해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멋대로 생겨난다.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혹을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공포에 떨기까지 한다. 이빨과 입술은 네 몸에 붙어 있는 것이지만 씹고 뱉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는 셈이니, 네 몸에 언제쯤 네 이름이 돌아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저 바람 소리에 비유해 보자. 바람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인데 나무에 부딪침으로써 소리를 내게 되고 도리어 나무를 흔들어 댄다. 너는 일어나 나무를 살펴보아라. 나무가 가만히 있을 때 바람이 어디에 있더냐? 너의 몸에는 본시 이름이 없었으나

몸이 생겨남에 따라 이름이 생겨서

네 몸을 칭칭 감아 너를 겁박하고 억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D-005]몸이 …… 생겨서 : 원문은 ‘卽有是事 廼有是名’으로 되어 있으나 이본에 ‘卽有身故 乃有是名’으로 되어 있어 이본에 따라 번역하였다.
또 저 울리는 종에 비유해 보자. 북채를 멈추어도 그 소리는 울려 퍼진다. 그렇듯이 사람의 몸이 백 번 죽어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아서,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매미 소리를 찾거나 귤 향기를 맡으려 한다면 이는 껍질이나 허물이 저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처음 태어나서 강보(襁褓)에서 응애응애 울 때에는 이러한 이름이 없었다. 부모가 아끼고 기뻐하여 상서로운 글자를 골라 이름을 지어 주고,

다시 더럽고 욕된 이름을 지어 주었으니,

이 모든 게 다 네가 잘 되기를 축원한 것이다. 너는 이때만 해도 부모에 딸린 몸이어서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성장하고 나서야 네 몸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나’를 입신(立身)하고 나서는 ‘그’가 없을 수 없으니, ‘그’가 ‘나’에게 와서 짝이 되어 마침내 한 쌍이 되었다.

한 쌍의 몸이 잘 만나서

자녀를 두니

둘씩 짝을 이루는 것이 마치 《주역》의 팔괘와 같았다.


[주D-006]다시 …… 주었으니 : 유아 사망률이 높던 당시에 귀신이 데려가지 말라고 일부러 ‘개똥이’와 같은 천한 이름을 지어 불렀던 풍습을 말한다.


[주D-007]한 쌍의 …… 만나서 :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혼의(昏義)에 “혼례란 장차 두 성씨가 잘 만나는 것〔婚禮者 將合二姓之好〕”이라 하였다.


[주D-008]둘씩 …… 같았다 :

자녀들이 차례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팔괘가 음효(陰爻)와 양효(陽爻)의 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 구절이 ‘卽成四身’으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들과 딸을 두어 네 몸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하여

몸이 이미 여럿이다 보니

거추장스럽게 되어 무거워 다닐 수가 없게 된다. 비록 명산(名山)이 있어 좋은 물에서 놀고 싶어도

이것 때문에 즐거움이 그치고

슬퍼하고 근심하게 되며, 사이좋은 친구들이 술상을 차려 부르면서 이 좋은 날을 즐기자고 말을 해도 부채를 들고 문을 나서다 도로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이 몸에 딸린 것을 생각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주D-009]몸이 …… 보니 : 원문은 ‘身之旣多’인데, ‘몸이 이미 넷이다 보니〔身之旣四〕’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주D-010]이것 …… 그치고 :

원문은 ‘爲此艮兌’인데, 간괘(艮卦)는 그침〔止〕을 상징하고, 태괘(兌卦)는 즐거움〔說〕을 상징한다. 이 구절이 ‘이 네 몸 때문에〔爲此四身〕’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주D-011]이 …… 생각하여 :

원문은 ‘爲此卦身’인데, ‘이 네 몸을 생각하여〔爲此四身〕’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네 몸이 얽매이고 구속을 받는 것은

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는 네 이름과 마찬가지여서, 어려서는 아명(兒名)이 있고 자라서는 관명(冠名)이 있으며, 덕(德)을 나타내기 위해 자(字)를 짓고 사는 곳에 호(號)를 짓는다. 어진 덕이 있으면 선생(先生)이란 호칭을 덧붙인다. 살아서는 높은 관작(官爵)으로 부르고 죽어서는 아름다운 시호(諡號)로 부른다. 이름이 이미 여럿이라 이처럼 무거우니 네 몸이 장차 그 이름을 감당해 낼지 모르겠다.’
[주D-012]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 원문은 ‘以多身故’인데, ‘몸이 넷이기 때문이다〔以四身故〕’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이는

《대각무경(大覺無經)》

에 나온 이야기일세. 열경(悅卿)은 은자(隱者)로서 이름이 아주 많아

다섯 살 적부터 호(號)가 있었지.

때문에 대사(大師)가 이로써 경계한 것이네.
[주D-013]《대각무경(大覺無經)》 : 허구로 지어낸 불경 이름이다.


[주D-014]다섯 …… 있었지 :

김시습은 다섯 살 적에 세종 앞에서 시를 지어 명성을 떨쳤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오세(五歲)’라고 불렀다고 한다. 《梅月堂先生傳》 오세암(五歲菴)도 그의 당호(堂號)라는 설이 있다.


갓난아기는 이름이 없으므로 영아(嬰兒)라 부르고 시집가지 않은 여자를 처자(處子)라고 하지. 따라서 영처(嬰處)라는 호는 대개 은사(隱士)가 이름을 두고 싶지 않을 때 쓴다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선귤(蟬橘)로써 자호(自號)를 하였으니 자네는 앞으로 그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일세. 왜냐하면 영아는 지극히 약한 것이고 처녀란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어서, 사람들이 자네의 유약함을 보고는 여전히 이 호로써 부를 것이요, 매미 소리가 들리고 귤 향기까지 난다면 자네의 당(堂)은 앞으로 시장처럼 사람이 모이게 될 걸세.”이에 영처자(嬰處子)가 말하기를,“대사가 한 말과 같이, 매미가 허물을 벗어 그 허물이 말라붙고 귤이 시들어서 그 껍질이 텅 비어 버렸는데 어디에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있겠소? 이미 좋아할 만한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없는데 사람들이 장차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나를 찾겠소?”하였다.

 





이덕무

 

영처고서-박지원

종북소선(鍾北小選), 연암집 제 7 권 별집

 

자패(子佩, 유련(柳璉))이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이 시를 지은 것이야말로!

옛사람의 시를 배웠음에도 그와 비슷한 점을 보지 못하겠다.

털끝만큼도 비슷한 데가 없으니 어찌 그 소리인들 비슷할 수 있겠는가?

야인(野人)의 비루함에 안주하고 시속(時俗)의 자질구레한 것을 즐기고 있으니,

바로 오늘날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시에서 살필 수 있는 점이다.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본다면 지금이 진실로 비속하기는 하지만, 옛사람들도 자신을 보면서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본 것 역시 그때에는 하나의 지금일 따름이다.

 

[주D-001]이것이야말로 …… 점이다 :

원문은 ‘此可以觀’인데,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의 시로써 풍속의 성쇠(盛衰)를 “살필 수 있다.〔可以觀〕”고 하였다.[주D-002]옛날을 …… 따름이다 : 옛날을 이상화하고 지금을 말세로 여기는 귀고천금(貴古賤今)의 복고적 사상을 비판한 말이다.

 

그러므로 세월이 도도히 흘러감에 따라 풍요(風謠)도 누차 변하는 법이다. 아침에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저녁에는 그 자리를 떠나고 없으니, 천추만세(千秋萬世)토록 이제부터 옛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일컬어지는 이름이요, ‘비슷하다’는 것은 그 상대인 ‘저것’과 비교할 때 쓰는 말이다. 무릇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비슷하기만 한 것이어서 저것은 저것일 뿐이요, 비교하는 이상 이것이 저것은 아니니, 나는 이것이 저것과 일치하는 것을 아직껏 보지 못하였다.종이가 하얗다고 해서 먹이 이를 따라 하얗게 될 수는 없으며, 초상화가 아무리 실물과 닮았다 하더라도 그림이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사단(雩祀壇)

아래 도저동(桃渚洞)에 푸른 기와로 이은 사당이 있고, 그 안에 얼굴이 붉고 수염을 길게 드리운 이가 모셔져 있으니 영락없는 관운장(關雲長)이다. 학질(瘧疾)을 앓는 남녀들을 그 좌상(座牀) 밑에 들여보내면 정신이 놀라고 넋이 나가 추위에 떠는 증세가 달아나고 만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무서움도 없이 그 위엄스런 소상(塑像)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데, 그 눈동자를 후벼도 눈을 깜짝이지 않고 코를 쑤셔도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덩그러니 앉아 있는 소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건대, 수박을 겉만 핥고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자와는 더불어 그 맛을 말할 수가 없으며, 이웃 사람의 초피(貂皮) 갖옷을 부러워하여 한여름에 빌려 입는 자와는 더불어 계절을 말할 수가 없듯이, 관운장의 가상(假像)에다 아무리 옷을 입히고 관을 씌워 놓아도 진솔(眞率)한 어린아이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D-003]

우사단(雩祀壇) : 서울 남산 서편 기슭에 있었던 기우제 지내던 단(壇)이다. 사방이 40척이고, 구망(句芒), 축융(祝融), 후토(后土), 욕수(蓐收), 현명(玄冥), 후직(后稷)을 모셨다. 유월 상순에 제사를 드렸다. 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부근인 남대문 밖 도저동(桃渚洞)에 있었는데 선조(宣祖) 때 명 나라 장수 진인(陳寅)이 세웠다고 한다.

 

무릇 시대와 풍속을 걱정하고 가슴 아파한 사람으로는 역사상 굴원(屈原)만 한 사람이 없는데도, 초(楚) 나라 풍속이 귀신을 숭상했기 떄문에 귀신을 노래한 구가(九歌)를 지었으며, 한(漢) 나라는 진(秦) 나라의 옛것에 의거하여 진 나라의 땅에서 황제가 되고 진 나라의 성읍에다 도읍을 정하고 진 나라의 백성을 백성으로 삼았으되,

약법삼장(約法三章)에 있어서는 진 나라의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주D-004]구가(九歌) : 태일신(太一神)인 동황태일(東皇太一), 구름신인 운중군(雲中君), 상수(湘水)의 신인 상군(湘君),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상부인(湘夫人) 등 귀신들을 노래한 11수로 되어 있다.


[주D-005]약법삼장(約法三章
  한 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진 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 진 나라의 가혹하고 번다한 법률 대신 삼장(三章), 즉 살인자는 죽이고 상해자와 도적은 처벌한다는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지금 무관(懋官)은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기후가 중화(中華) 땅과는 다르고 언어와 풍속도 한당(漢唐)의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만약 작법을 중화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당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작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그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그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뿐이다.

 

[주D-006]실로 : 원문은 ‘實’로 되어 있는데, 이본에는 ‘益’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구석진 나라이기는 하나 이 역시 천승(千乘)의 나라요,

신라와 고려가 비록 검박(儉薄)하기는 하나 민간에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으니,

그 방언을 문자로 적고 그 민요에다 운(韻)을 달면 자연히 문장이 되어 그 속에서 ‘참다운 이치〔眞機〕’가 발현된다.

답습을 일삼지 않고 빌려 오지도 않으며,

차분히 현재에 임하여 눈앞의 삼라만상을 마주 대하니, 오직 이 시가 바로 그러하다.

아, 《시경》에 수록된 삼백 편의 시는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을 들지 않은 것이 없고,

여항(閭巷)의 남녀가 나눈 말들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패국(邶國)과 회국(檜國) 사이에는 지리적으로 풍토가 같지 않고,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유역에는 백성들이 그 풍속을 각기 달리하므로,

시를 채집하는 사람이 열국(列國)의 국풍(國風)으로 만들어

그 지방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고찰하고 그 풍속을 파악하였던 것이다.

 

[주D-007]《시경》에 …… 없고 :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의 시를 공부하면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주D-008]여항(閭巷)의 …… 않는다 :

주자(朱子)는 시집전서(詩集傳序)에서 《시경》의 국풍(國風)은 여항의 가요에서 나온 것이 많으며,

남녀가 함께 노래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무관(懋官)의 이 시가 예스럽지 않은 점에 대해 어찌 다시 의아해하겠는가.

만약 성인(聖人)이 중국에 다시 나서 열국의 국풍을 관찰한다면,

이 《영처고(嬰處稿)》를 상고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 남녀의 성정 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주D-009]우리나라 남녀의 성정 : 원문은 ‘貊男濟婦之性情’인데, ‘貊男濟婦’의 정확한 뜻을 판단하기 어렵다. ‘貊男’은 고구려 남자, ‘濟婦’는 백제 여자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한다.

 

https://leeza.tistory.com/1880

 

박지원 - 영처고서(嬰處稿序)

조선의 노래를 담아내다 영처고서(嬰處稿序) 박지원(朴趾源) 이덕무의 시가 현재의 시라고 비판 받다 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學古人而不見其似也.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安野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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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시가 현재의 시라고 비판 받다

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자패【유득공(柳得恭)의 숙부인 우련(柳璉, 1741~1788)으로 자패(子珮)는 그의 자(字)이다. 문집으로 『낭환집(蜋丸集)』이 있다】가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이 시를 지음이여.

 

學古人而不見其似也.

옛 사람을 배웠다고 하나 비슷하지가 않구나.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일찍이 터럭과 털이 유사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가 비슷하겠는가?

 

安野人之鄙鄙, 樂時俗之瑣瑣,

촌사람들의 거침을 편안히 여기고 당시 풍속의 자질구레함을 즐기니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

이것은 지금의 시지, 옛날의 시가 아니다.”

 

지금이 옛날이 되고 같지 않음은 전범(典範)이 되리라

 

余聞而大喜曰:

내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此可以觀.

“이것은 볼 만한 게 있다.

 

由古視今, 今誠卑矣.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은 참으로 비루하다.

 

古人自視, 未必自古.

그러나 옛 사람이 스스로 봄에 스스로 옛 것일 필요는 없다.

 

當時觀者, 亦一今耳.

당시에 보는 것들이 또한 하나의 지금일 뿐이니 말이다.

 

故日月滔滔, 風謠屢變,

그러므로 해와 달은 도도히 바뀌고 노래는 자주 변하여

 

朝而飮酒者, 夕去其帷,

아침에 술 마시던 사람이 저녁이면 주막을 떠나니,

 

千秋萬世, 從此以古矣.

천추만세가 이로부터 옛날이 되었다.

 

然則今者對古之謂也,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칭적으로 말한 것이고,

 

似者方彼之辭也.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에 비교하여 말한 것이다.

 

夫云似也似也, 彼則彼也,

대체로 ‘비슷하다’고 말하면 비슷한 것이고, ‘저것이다’라고 하면 저것이지만,

 

方則非彼也, 吾未見其爲彼也

비교하면 저것이 아닌 게 되니, 나는 저것이 됨을 보지 못했다.

 

紙旣白矣, 墨不可以從白;

종이는 이미 희기에 먹은 흰 것을 따를 수 없고

 

像雖肖矣, 畵不可以爲語.

(그림으로 그려진) 형상이 비록 닮았더라도 그림이기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처고엔 어린아이의 진솔함이 담겨 있다

 

雩祀壇之下, 桃渚之衕, 靑甍而廟,

우사단(雩祀壇)아래 도저동에 푸른 대마루의 사당에

*우사단(雩祀壇): 서울 남산 서편 기슭에 있었던 기우제 지내던 단()이다사방이 40척이고구망(句芒), 축융(祝融), 후토(后土), 욕수(蓐收), 현명(玄冥), 후직(后稷) 모셨다유월 상순에 제사를 드렸다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부근인 남대문 밖 도저동(桃渚洞)에 있었는데 선조(宣祖)때 명(장수 진인(陳寅)이 세웠다고 한다】 

 

貌之渥丹而鬚儼然, 公也.

모습이 윤기 나고 붉은 수염을 단 근엄 있는 관우상이 있다.

 

士女患瘧, 納其牀下,

사녀(士女)【사녀(士女): 남자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학질을 앓아 그 평상 아래에 들어가면

 

戄神褫魄, 遁寒祟也.

정신이 혼미해지고 넋이 나가 한기를 내쫓는 빌미가 되곤 한다.

 

孺子不嚴, 瀆冒威尊,

그런데 어린아이는 무서워하지 않고 위엄과 존중을 모독하여

 

爬瞳不瞬, 觸鼻不啑,

눈동자를 찔러대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코를 후벼대도 기침하지 않는

 

塊然泥塑也.

한 덩어리 진흙 상(像)인 것이다.

 

由是觀之, 外舐水匏,

이로 말미암아 보면 수박의 겉핥기 하는 사람이나

 

全呑胡椒者, 不可與語味也;

후추 통째로 삼키기 한 사람과는 함께 맛에 대해 얘기할 수 없고,

 

羡鄰人之貂裘, 借衣於盛夏者,

이웃의 담비가죽옷을 부러워한 나머지 한 여름에 빌리는 사람과는

 

不可與語時也.

함께 시기적절함에 대해 말할 수 없다.

 

假像衣冠, 不足以欺孺子之眞率矣.

그러니 의관을 본떴더라도 어린아이의 진솔함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의 풍속을 존중한 굴원과 진나를 계승한 한나라

 

夫愍時病俗者, 莫如屈原,

때를 가엾게 여기며 풍속을 안타까워한 사람으로는 굴원만한 이가 없는데

 

俗尙鬼, 「九歌」是歌.

초나라 풍속에선 귀신을 숭상했기에 「구가(九歌)」에선 귀신을 노래했다.

*구가(九歌): 굴원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태일신(太一神)인 동황태일(東皇太一), 구름신인 운중군(雲中君), 상수(湘水)의 신인 상군(湘君),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상부인(湘夫人등 귀신들을 노래한 11수로 되어 있다

 

之舊, 帝其土宇,

한나라는 진나라의 옛것들을 살펴 땅과 집에서 제왕이 되었고

 

都其城邑, 民其黔首,

성읍에서 도읍했으며, 그 백성들을 그대로 백성으로 삼았지만

 

三章之約, 不襲其法.

삼장(三章)의 간략함으로 진나라의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삼장지약(三章之約): 한 나라 고조(高祖유방(劉邦)은 진 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진의 가혹하고 번다한 법률 대신 삼장(三章), 즉 살인자는 죽이고 상해를 입힌 자와 도적은 처벌한다는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함

 

덕무의 글은 어설프게 따라하지 않고 지금을 그려냈다

 

懋官朝鮮人也.

이제 무관은 조선 사람이다.

 

山川風氣地異中華, 言語謠俗世非.

산천과 풍기가 중국과 다르고 언어와 노래와 풍속이 한나라나 당나라가 아니다.

 

若乃效法於中華, 襲體於,

그럼에도 만약 법은 중국을 본받고 문체는 한나라나 당나라를 답습했다면

 

則吾徒見其法益高而意實卑,

우리들은 그 법은 더욱 고상하되 내용은 실제로 비루해지고

 

軆益似而言益僞耳.

문체는 더욱 유사하되 말은 더욱 인위적임을 보게 될 뿐이다.

 

左海雖僻國, 亦千乘,

우리나라는 비록 구석에 있지만 나라는 또한 천승의 국가이고

 

雖儉, 民多美俗,

신라와 고려가 비록 볼품없지만 백성에게는 아름다운 풍속이 많으니,

 

則字其方言, 韻其民謠,

사투리를 글로 적고 민요를 부르면

 

自然成章, 眞機發現.

자연히 문장이 만들어져 참된 천기가 발현된다.

 

不事沿襲, 無相假貸,

따라 답습하길 일삼지 않고 서로 빌려오지 않으며

 

從容現在, 卽事森羅,

조용히 현재를 따라 곧 삼라만상을 일삼으니

 

惟此詩爲然.

오직 이 시가 그러한 것이다.

 

지금을 담아냈기에, 이 책은 조선의 노래다

 

嗚呼! 三百之篇, 無非鳥獸草木之名,

아! 300편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이 아닌 게 없었고

 

不過閭巷男女之語.

마을 남녀의 말에 지나지 않았다.

 

之間, 地不同風,

그러니 패땅과 회땅의 사이에서도 지리적으로 풍속이 같지 않고

 

江漢之上, 民各其俗.

양자강과 한수의 위에서도 백성들의 풍속이 제각각이었다.

 

故釆詩者以爲列國之風,

그러므로 시를 채집하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의 노래로

 

攷其性情, 驗其謠俗也.

성정(性情)을 고찰했고 노래의 풍속을 징험했다.

 

復何疑乎此詩之不古耶.

그러니 다시 어찌 이 시가 옛 것이 아님을 의심하리오.

 

若使聖人者, 作於諸夏,

가령 성인에게 중국에서 일어나

 

而觀風於列國也, 攷諸嬰處之稿,

여러 나라의 풍속을 관찰하게 한다면 영처의 원고를 살펴보리니,

 

三韓之鳥獸艸木, 多識其名矣,

삼한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고

 

貊男ㆍ濟婦之性情, 可以觀矣,

이북 사내와 제주 아낙의 성정을 볼 수 있으리니,

 

雖謂朝鮮之風可也. 『燕巖集』 卷之七

비록 ‘조선의 노래’라 말하더라도 괜찮으리라.

 

 

namu.wiki/w/%EC%9D%B4%EB%8D%95%EB%AC%B4

 

이덕무 - 나무위키

단 것이 귀하던 시절 이덕무는 유독 단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서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자기 말로는 성성이(오랑우탄)가 술을 좋아하고 원숭이가 과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사족을 못 썼다

namu.wiki

"남을 부를 때 ‘이놈, 저놈’ 또는 ‘이것, 저것’이라 하지 말라.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개돼지’니 ‘원수’니,

또 거기에다 ‘죽일 놈’이라 욕하거나 ‘왜 안 죽니’라고도 하지 말라.

그가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이것이 교양인(선비)의 예절이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비록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 해도

내가 아는 것을 고집하여 핏대를 올리며 남을 꺾으려 들지 말라.

남의 연회에 참석했을 때도 음식이 시다느니 짜다느니 평하지 말라.

돌아와서 음식이 맛나지 않은 것을 흉보지 말라.

남의 집에 갔을 때 머리를 돌리고 눈알을 굴리며 사방 벽을 바삐 보거나 책을 마구 빼 보고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

이것이 교양인(선비)의 예절이다."

"요새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서 지껄이는 말이 농담, 바둑이나 장기 이야기, 여색 이야기, 술과 음식 이야기,

아니면 벼슬에 관한 이야기나 가문의 자랑에 대한 것에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 역시 민망스럽다.

이런 말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남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상추를 싸 먹을 때 직접 손을 대서 싸 먹어서는 안된다.

너무 크게 싸서 입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사소절(士小節)」, 사전(士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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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덕무(李德懋, 1741년 7월 23일(음력 6월 11일) ~ 1793년 3월 7일(음력 1월 25일))은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이다. 그는 소위 조선 시대 국민 간서치(朝鮮 時代 國民

ko.wikipedia.org

저서

  • 《관독일기》(觀讀日記)
  • 기년아람》(紀年兒覽) : 이만운과 공저
  • 《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 《사소절》(士小節)
  • 《앙엽기》(盎葉記)
  • 《열상방언》(洌上方言)
  • 《영처문고》
  • 《영처시고》
  • 《예기고》(禮記考)
  • 《이목구심서》
  • 《입연기(入燕記)》
  •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 《청비록》(淸脾錄)
  • 《편찬잡고》
  • 《한죽당섭필》
  • 《협주기》(峽舟記)
  • 《건연집》 :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와 공저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 -박지원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연암집 제 4 권


[주C-001]좌소산인(左蘇山人) :

서유본(徐有本 : 1762 ~ 1822)의 호이다. 서유본은 그 아우 서유구(徐有榘)와 함께 연암을 종유(從遊)하고 문학적으로 큰 감화를 받았다.

 

[은자주] 앞의 법고와 창신 문제와 관련시켜 보면 연암의 문장론은 무게 중심이 창신에 있음이 확인된다. <녹천관집서>도 같은 취지의 글이다.

我見世之人 
아견세지인, 이 세상 사람들을 내 살펴보니

譽人文章者 
예인문장자, 남의 문장을 기리는 자는

文必擬兩漢
문필의양한, 문(文)은 꼭 양한을 본떴다 하고

詩則盛唐也
시칙성당야, 시는 꼭 성당을 본떴다 하네

 

[주D-001]문(文)은 …… 하네 : 명(明) 나라 왕세정(王世貞)이 “문은 반드시 서한을 본뜨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떠야 한다.〔文必西漢 詩必盛唐〕”고 제창하여 의고주의(擬古主義) 문풍이 성행하게 되었다.

 

曰似已非眞 왈사이비진 비슷하다는 그 말 벌써 참이 아니라는 뜻
漢唐豈有且 한당기유차 한당(漢唐)이 어찌 또 있을 리 있소
東俗喜例套 동속희예투 우리나라 습속은 옛 투식 즐겨
無怪其言野 무괴기언야 당연하게 여기네 촌스러운 그 말을
聽者都不覺 청자도불각 듣는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해
無人顔發赭 무인안발자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없군
騃骨喜湧頰 애골희용협 못난 놈은 기쁨이 뺨에 솟아서
涎垂噱而哆 연수갹이치 입을 벌려 웃어 대며 침을 흘리고
黠皮乍撝謙 힐피사휘겸 약은 놈은 갑자기 겸양을 발휘하고
逡巡若避舍 준순약피사 삼십 리나 피하여 달아나는 척
餒髥驚目瞠 뇌염경목당 허한 놈은 두 눈이 놀라 휘둥글
不熱汗如瀉 불열한여사 더웁지 않은데도 땀 쏟아지고
懦肉健慕羨 나육건모선 약골은 굉장히도 부러워하여
聞名若蘅若 문명약형약 이름만 들어도

향기 나는 듯


忮肚公然怒 기두공연노 심술꾼은 공공연히 노기를 띠어
輒思奮拳打 첩사분권타 주먹 불끈 후려치길 생각한다오

 

[주D-002]향기 나는 듯 : 원문의 형약(蘅若)은 향초(香草)인 두형(杜蘅)과 두약(杜若)을 말한다. 형약(蘅若)의 ‘약(若)’은 이때 상성(上聲) 마운(馬韻)으로 압운하였으므로 ‘人’과 ‘者’의 반절(反切)인 ‘야’로 읽어야 한다.

 

我亦聞此譽 아역문차예 내 또한 이와 같은 기림을 듣고
初聞面欲剮 초문면욕과 갓 들을 땐 낯가죽이 에이는 듯싶더니
再聞還絶倒 재문환절도 두 번째 듣고 나니 도리어 포복절도
數日酸腰髁 수일산요과 여러 날 허리 무릎 시큰하였다네
盛傳益無味 성전익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더욱 흥미 없어
還似蠟札飷 환사납찰자 밀조각을 씹은 듯이 도리어 맛이 없더군
因冒誠不可 인모성불가 그대로 베껴서는 진정 안 될 말
久若病風傻 구약병풍사 오래 가면 마치도 발광하여 바보가 된 듯하지
回語忮克兒 회어기극아 심술쟁이를 돌아보며 얘기하노니
伎倆且姑舍 기량차고사 잔재주 따윌랑 우선 버리게
靜聽我所言 정청아소언 조용히 내가 한 말 들어나 보면
爾腹應坦奲 이복응탄차 네 마음 응당 너그러워질 터
摸擬安足妒 모의안족투 흉내쯤이야 시새울 게 무엇이 있다고
不見羞自惹 불견수자야 스스로 야료를 부리다니 무안스럽지 않나

 

學步還匍匐 학보환포복 걸음을 배우려다가 되려 기어서 오고
效嚬徒醜䰩 효빈도추䰩 찌푸림을 본받으면 단지 추할 뿐

 

[주D-003]걸음을 …… 오고 : 수릉(壽陵) 지방의 젊은이가 당시 조(趙) 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세련된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이를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예전의 걸음걸이마저 잃어버린 채 기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秋水》


[주D-004]찌푸림을 …… 뿐 :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는 서시(西施)가 가슴앓이로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이자 이웃의 추녀가 그 모습을 흉내 내었으나 도리어 더 추해 보였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天運》

 

始知畵桂樹 시지화계수 이제 알리라 그려 놓은 계수나무가
不如生梧檟 불여생오가 생생한 오동만 못하다는 걸


抵掌驚楚國 

저장경초국,  손뼉 치며 초(楚) 나라를 놀라게 해도

乃是衣冠假 
내시의관가 마침내는 의관(衣冠)을 빌린 것이며

靑靑陵陂麥 
청청능피맥 푸르고 푸른 언덕의 보리를 노래한 것은

口珠暗批撦

주암비차 입속의 구슬을 몰래 빼내기 위함이라


 

[주D-005]

손뼉 …… 것이며 : 초(楚) 나라 악공(樂工) 우맹(優孟)이 죽은 초 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의관을 입고 장왕(莊王) 앞에 나타나 손뼉을 치면서 이야기하자 장왕이 깜짝 놀라면서 손숙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으로 믿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주D-006]
푸르고 …… 위함이라 :
장자(莊子)가 유자(儒者)를 도굴꾼에 비유해 풍자한 글에서, 유자가 시체의 입에 물고 있는 구슬을 보고 “푸르고 푸른 보리, 언덕 위에 자랐네. 살아 생전 베풀지 않더니만, 죽어서 구슬 문들 무엇하리오.〔靑靑之麥 生于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爲〕”라는 시를 읊조리며 입을 벌려 구슬을 끄집어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시문(詩文)을 지을 때 남의 훌륭한 구절을 훔쳐 내어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말한 것이다. 《莊子 外物》

 

不思膓肚俗 
불사장두속 제 속이 속된 줄은 생각 안 하고

强覓筆硯雅 
강멱필연아 아름다운 붓 벼루만 애써 찾거든

點竄六經字 

점찬육경자, 육경의 글자로만 점철하는 건
譬如鼠依社

비여서의사, 비하자면 사당에 의탁한 쥐와 꼭 같지


掇拾訓詁語

철습훈고어 훈고(訓詁)의 어휘를 주워 모으면
점찬육경자

陋儒口盡啞

누유구진아 못난 선비들은 입이 다 벙어리 되네

太常列飣餖

태상열정두 태상 이 제물을 벌여 놓으니
臭餒雜鮑鮓

취뇌잡포자 절인 생선과 젓갈 뒤섞여 썩은 냄새 진동하고
夏畦忘疎略

하휴망소략 여름철 농사꾼이 허술한 제 차림 잊고
倉卒飾緌銙

창졸식유과 창졸간에 갓끈과 띠쇠로 겉치장한 셈이지

 

[주D-007]육경(六經)의 …… 같지 : 사람들이 범할 수 없는 사당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쥐처럼, 사람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성스러운 경전(經典)에 의탁하여 시문을 짓는 것을 말한다. 《晏子春秋 問上九》
[주D-008]태상(太常) :
제사와 예악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卽事有眞趣

즉사유진취 눈앞 일에 참된 흥취 들어 있는데
何必遠古抯

하필원고저 하필이면 먼 옛것을 취해야 하나
漢唐非今世

한당비금세 한당은 지금 세상 아닐 뿐더러
風謠異諸夏

풍요이제하 우리 민요 중국과 다르고말고
班馬若再起

반마약재기 반고(班固)나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決不學班馬 

반고나 사마천을 결단코 모방 아니 할걸
新字雖難刱

신자수난창 새 글자는 창조하기 어렵더라도
我臆宜盡寫

아억의진사 내 생각은 마땅히 다 써야 할 텐데
奈何拘古法

내하구고법 어쩌길래 옛 법에만 구속이 되어
刦刦類係把

겁겁류계파 허겁지겁하기를 붙잡고 매달린 듯 하나

莫謂今時近

막위금시근 지금 때가 천근(淺近)하다 이르지 마소

 

應高千載下

응고천재하 천년 뒤에 비한다면 당연히 고귀하리


孫吳人皆讀

손오인개독 손자(孫子) 오자(吳子)의 병서 사람마다 읽긴 하지만

背水知者寡

배수지자과 배수진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지

[주D-009]지금 …… 고귀하리 : 근대 이전 동양에서는 복고적인 역사관에 따라 문학에서도 옛것일수록 고귀하게 여기고 요즘 것일수록 천시하는 귀고천금(貴古淺今)의 경향이 심했다. 연암은, 지금 것도 천년이 지나면 옛것이 되어 고귀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여 복고적인 사상을 비판한 것이다.[주D-010]배수진(背水陣)을 …… 드물지 : 한(漢) 나라 장수 한신(韓信)은 “사지(死地)에 빠진 뒤에야 살 수 있고, 죽을 자리에 놓인 뒤라야 산다.”는 병법을 활용하여, 오합지졸들을 모아 배수진을 침으로써 조(趙) 나라 군대를 대파할 수 있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趣人所不居

취인소불거 남들이 사 두지 않는 물건을 서둘러 산 이는


獨有陽翟賈

독유양적가 유독 저 여불위(呂不韋)란 큰 장사치뿐이었네

而我病陰虛 이아병음허 이 몸은 음(陰)이 허해 병이 깊어져


四年疼跗踝 사년동부과 사 년째 다리가 쑤시고 아팠다오
逢君寂寞濱 봉군적막빈 적막한 물가에서 그대를 만나니
靜若秋閨姹 정약추규차 가을철 쓸쓸한 규방의 미인마냥 얌전도 하이

解頤匡鼎來

해이광정래 웃음을 자아내는 광형(匡衡)이 방금 온 듯


幾夜剪燈灺

기야전등사 몇 밤이나 등잔 심지 돋우었던가

[주D-011]여불위(呂不韋) : 전국 시대 말기 양적현(陽翟縣)의 대상인이다. 조(趙) 나라에 볼모로 와 천대받고 있던 진(秦) 나라 공자 자초(子楚)를 만나자 이를 ‘사 둘 만한 기화〔奇貨可居〕’라 여기고는, 계책을 써서 진 나라의 왕이 되게 함으로써 그의 아들인 진 시황에 이르기까지 진 나라의 승상을 지낼 수 있었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주D-012]
이 몸은 …… 깊어져 :
한의학에서 음(陰)에 속하는 정액이나 진액(津液)이 부족해지는 병을 음허(陰虛)라고 한다. 음허가 되면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과 천식이 생긴다고 한다.
[주D-013]
웃음을 …… 듯 :
한(漢) 나라 광형(匡衡)은 《시경》에 대한 풀이를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시경에 대해 풀이할 사람이 없다 싶으면 광형이 바로 오고, 광형이 시경을 풀이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웃음을 터뜨린다.〔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 하였다. 《漢書 卷81 匡張孔馬傳》

 

論文若執契

논문약집계 글 평론 약속한 듯 서로 꼭 들어맞으니
雙眸炯把斝

쌍모형파가 두 눈을 빛내며 술잔을 잡네
一朝利膈壅

일조이격옹 하루아침에 막힌 가슴 쑥 내려가니
滿口嚼薑葰

만구작강준 입에 가득 매운 생강 씹은 맛일레
平生數掬淚

평생수국루 평생에 숨겨 둔 두어 줌 눈물
裹向秋天灑

과향추천쇄 싸 두었다 뿌리노라 가을 하늘에
梓人雖司斲

재인수사착 목수장이 나무 깎길 맡았지마는
未曾斥鐵冶

미증척철야 대장장이를 배척한 일이 없었네
圬者自操鏝

오자자조만 미장이는 제 스스로 쇠흙손 잡고
蓋匠自治瓦

개장자치와 기와 이는 놈 제 스스로 기와 만드네
彼雖不同道

피수불동도 그들이 방법은 비록 같지 않지만
所期成大厦

소기성대하 목적은 큰 집을 짓자는 거야
悻悻人不附

행행인불부 저만 옳다 하면 남이 붙지를 않고
潔潔難受嘏

결결난수하 지나치게 깔끔을 떨면 복 못 받느니
願君守玄牝

원군수현빈 그대는 아무쪼록 현빈지키고
願君服氣姐

원군복기저 아무쪼록 기저를 장복(長服)하게나
願君努壯年

원군노장년 부디 한창 젊을 적에 노력한다면
專門正東閜

      전문정동하 전문이 동쪽으로 활짝 열리리

 

[주D-014]현빈(玄牝) : 《노자(老子)》 6장에 “곡신은 죽지 않으니 현빈이라 이른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天地之根〕”라고 하였다. 현빈은 현묘한 모체(母體)란 뜻으로, 양생(養生)의 도(道)를 가리킨다.


[주D-015]
기저(氣姐) :
기저의 저(姐)는 모(母)와 같은 뜻으로 《說文 女部》, ‘玆’와 ‘野’의 반절인 ‘자’로 읽어야 한다. 기저는 기모(氣母), 즉 우주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복희씨가 도를 얻어 기모를 배합했다고 한다. 복기(服氣)는 도가(道家)의 양생술인 호흡법을 말한다.
[주D-016]
전문(專門)이 …… 열리리 :
이백(李白)의 고시(古詩) 59수 중 제 3 수에서 진 시황(秦始皇)이 천하를 제압한 사실을 노래하면서, “함곡관(函谷關)이 동쪽으로 활짝 열렸네.〔函谷正東開〕”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육국(六國)을 병합하자 침략을 두려워할 일이 없어, 그동안 굳게 닫아걸었던 동쪽 관문(關門) 함곡관을 활짝 열어 두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좌소산인 서유본이 문장 공부에 전념한다면 장차 천하를 제압하는 명가(名家)가 되리라는 격려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공작관기(孔雀館記) -박지원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암집 제 1 권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의 남헌(南軒)이 공작관(孔雀館)이고, 남으로 수 십 걸음 채 안 가서 꼭대기에 호로(胡盧)를 얹고 맞서 있는 것이 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이다. 뜰 중간을 가로질러 대를 엮어 시렁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구기자, 해당화, 팥배나무, 박태기나무를 섞어서 심으니, 길게 뻗은 가지와 부드러운 넝쿨이 얽히고 우거져 어릿어릿 비치면서 앞을 가려 봄여름에는 병풍이 되고 가을과 겨울에는 울이 되니, 병풍에는 어우러진 꽃이 제격이고 울에는 쌓인 눈이 제격이다.

 

[주D-001]호로(胡盧) :

‘호로(胡蘆)’라고도 하며, 누각 지붕의 중앙 정점에 설치한 조롱박 모양의 장식물을 말한다.

[주D-002]박태기나무 : 원문은 ‘紫荊’인데, 까치콩을 뜻하는 ‘白扁荳’, 또는 인동덩굴을 뜻하는 ‘忍冬籐’으로 되어 있는 이본들도 있다.


그 길쭉이 트인 곳이 자연스러운 문이 되어 사립도 달지 않았다. 또 북녘 담을 뚫고 도랑을 끌어다 북지(北池)에 들이고, 북지가 넘쳐 그 물이 앞을 지날 땐 곡수(曲水)가 되니, 연잎을 따서 술잔을 실어 띄워 흐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공작관이 집은 같아도 주위 환경이 달라지고, 자리를 옮기면 전망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내가 십팔구 세 때에 꿈에 한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거창하고 훤칠하여 공관(公館) 같기도 하고 법당 같기도 하였다. 좌우에는 비단 
책갑(冊匣)과 옥첨(玉籤)이 질서 정연하게 꽂혀 있었으며 겨우 한 사람 들어갈 만한 통로로 굽이굽이 들어가니 그 가운데에 두어 자 되는 푸른 화병이 놓여 있었는데 지붕에 닿을 만한 비취새 꼬리 두 개가 거기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 한참 배회하다가 그만 깨어난 적이 있었다.

 

[주D-003]책갑(冊匣) : 책을 넣어 둘 수 있게 책의 크기에 맞추어 만든 작은 상자를 이른다.

[주D-004]옥첨(玉籤)책갑이 벗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옥으로 만들어 끼우도록 한 뾰족한 찌를 이른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나 내가 중국에 들어가 공작 세 마리를 보았는데,

학보다는 작고 해오라비보다는 크며, 꼬리는 길이가 두 자 남짓하고, 정강이는 붉고 뱀이 허물 벗은 것 같으며, 부리는 검고 매처럼 안으로 오므라들었으며, 털과 깃이 온 몸을 덮어 불이 타오르듯 황금이 반짝이듯 고왔다.

깃 끝에는 각각 한 개의 황금빛 눈이 달려 있는데, 석록색(石綠色)의 눈동자와 수벽색(水碧色)의 중동(重瞳) 에 자주색이 번지고 남색으로 테를 둘러, 자개처럼 아롱지고 무지개처럼 환하니, 그것을 푸른 물총새라 해도 아니요 붉은 봉황새라 해도 아니다. 이따금 움칠해서 빛이 사라졌다가 곧바로 나래 쳐 되살아나며 금방 번득거려 푸른 빛이 돌고 갑자기 너울거려 불꽃이 타오르니, 대개 문채의 극치가 이보다 더한 것이 없었다.
무릇 색깔〔色〕이 빛〔光〕을 낳고, 빛이 빛깔〔輝〕을 낳으며, 빛깔이 찬란함〔耀〕을 낳고, 찬란한 후에 환히 비치게〔照〕 되니, 환히 비친다는 것은 빛과 빛깔이 색깔에 떠서 눈에 넘실거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지으면서 종이와 먹을 떠나지 못한다면
아언(雅言)이 아니고, 색깔을 논하면서 마음과 눈으로 미리 정한다면 정견(正見)이 아니다.


[주D-005]그 뒤 …… 보았는데 : 연암은 1780년(정조 4) 진하별사(進賀別使)의 일원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그해 음력 8월 북경에 도착하여 열하(熱河)를 다녀온 뒤 9월 중순까지 북경에 머무르며 관광하였다. 《열하일기》 황도기략(黃圖紀略) 공작포조(孔雀圃條)에 공작을 구경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6]석록색(石綠色)의 …… 중동(重瞳)
   석록(石綠)은 공작석(孔雀石)이라고도 하는 녹색 보석으로 진한 녹색을 내는 물감의 재료로 쓰인다. 수벽(水碧)은 벽옥(碧玉)이라고도 하는 옥의 일종인데 누런 녹색을 띤다. 중동(重瞳)은 눈에 동자가 겹으로 된 것을 말하며 귀인(貴人)의 상(相)으로 간주되었다. 

 

 [주D-007]아언(雅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정언(正言) 즉 정확하고 합리적인 언론이란 뜻이다.

 

 

내가 북경에 있을 때 중국의 동남 지방 선비들과 날마다 단가포(段家舖)에서 술을 마시고 글을 논하였다.

매양 ‘공작과 흡사하다〔似孔雀〕’는 말로 그들의 시와 산문을 평하였더니, 좌중에 태사(太史) 고역생(高棫生)이 있다가 농담으로 “우리 손님 얼굴은 부자(夫子)의 가금(家禽) 에 비해 어떠합니까?”라고 하여 서로 크게 웃었다.


[주D-008]내가 …… 논하였다 : 《열하일기》 피서록(避暑錄)에 의하면 단가포(段家舖)는 북경 유리창(琉璃廠) 양매서가(楊梅書街)에 있던 단씨(段氏)의 백고약포(白膏藥舖)로 ‘단가루(段家樓)’라고도 하였다. 현존하는 《열하일기》에 서목(書目)만 전하는 양매시화(楊梅詩話)와 단루필담(段樓筆談)은 바로 이 단가포에서 연암이 중국 문사 유세기(兪世琦) · 능야(凌野) · 고역생(高棫生) · 초팽령(初彭齡) · 왕성(王晟) · 풍병건(馮秉建) 등과 시화(詩話)를 이야기하고 필담을 나눈 기록들로 짐작된다. 이가원(李家源) 선생의 《국역 열하일기》 Ⅱ(민족문화추진회)에 양매시화의 서문과 본문 일부가 발굴 소개되어 있다.

 

[주D-009]태사(太史)  청(淸) 나라 때 한림원(翰林院)의 관원을 가리킨다. 주로 사관(史官)의 임무를 수행했으므로 태사라고 하였다.

[주D-010]부자(夫子)의 가금(家禽)  부자는 공자(孔子)를 가리키며, 부자의 가금이란 공자의 집에서 기르는 새라는 뜻으로 공작(孔雀)에 빗대어 말하였다. 취기가 올라 연암의 얼굴빛이 공작처럼 붉으락푸르락 변함을 풍자한 것이다.

 

그 후 5년이 지나, 중국에 다녀온 사람이 ‘공작관(孔雀館)’이란 세 글자를 얻어 왔는데 전당(錢塘) 사람 조설범(趙雪帆)이 쓴 것이었다. 지난날에 내가 조설범과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다른 사람에게서 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만 리 밖에서 성의를 담아 보내온 것이리라. 그러나 관(館)이란 사실(私室)에 붙이는 이름이 아니요, 또 나는 늙어서도    조그마한 서실 도 없으니, 도대체 어디다 그것을 걸겠는가. 그런데 이제 다행히 임금의 은혜로 명승지의 수령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낸 지 4년 동안에 관아로 집을 삼으니 헌 책을 담은 해진 상자도 내 몸 가는 대로 따라 항상 같이 있게 되었는데, 장마 끝에 책을 말리다가 우연히 이 필적을 발견했다.
아아, 공작은 다시 볼 수 없으나 옛 꿈을 되새겨 보니, 숙연(宿緣)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어찌 알겠는가. 드디어 새겨서 앞기둥에 걸고, 아울러 이처럼 기록한다.

 

눈으로 색깔을 보는 것은 다 같으나, 빛이나 빛깔이나 찬란함에 있어서는 보고도 똑똑히 보지 못하는 자가 있고, 똑똑히 보고도 잘 살피지는 못하는 자가 있고, 살피고도 입으로 형용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은, 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심령(心靈)에 트이고 막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 종이와 이 먹에 대해 흑백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는 장님이요, 흑백은 구분하지만 그것이 글자임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린애요, 그것이 글자임은 알지만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자는 노예요, 겨우 소리를 내어 읽어도 반신반의하는 자는 시골의 서당 선생이요, 입으로 술술 읽어 그 전에 기억하던 것을 외우듯 하면서도 덤덤히 마음에 두지 않는 자는 과거 시험장의 서생이다.

 


[주D-011]조그마한 서실 : 원문은 ‘一廛之室’인데, 《주례》 지관(地官) 수인씨(遂人氏)에, 나라에서 평민 남자 한 사람 즉 일부(一夫)에게 나누어 준 주거지(住居地)를 ‘일전(一廛)’이라 하였다.

[주D-012]눈으로 …… 서생이다   김노겸(金魯謙 : 1781 ~ 1853)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연암의 말이라 한다. 김노겸이 어린 시절에 우연히 좌중에서 연암의 그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겼는데, 나중에 연암의 문집에 바로 그 말이 있음을 보고 감회를 이기지 못해 기록한다고 하였다. 《性菴集 卷7 附錄 囈說》
이글은  설전(雪牋) 에 쓰고 옅은 파란색으로 비점(批點)을 찍어 오래된 좀먹은 상자 속에 감추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어찌 한 번 주욱 논설을 펴서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자로 하여금 말을 듣게 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이런 무리의 입과 눈을 한 번 거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무리는 광대 상모 꼭지의 아롱다롱한 털이 동전 쌓이듯한 기상(氣像)만 익숙히 보았지, 도리어 녹색 술병을 쇄창(瑣窓) 아래에서 기울이는 운치는 알지 못한다.

 

[주D-013]설전(雪牋) : 문자 그대로는 눈처럼 흰 소폭의 종이란 뜻이다. 혹은 ‘설전(薛牋)’ 즉 짙은 붉은색이 나는 소폭의 채색 종이인 설도전(薛濤牋)의 오기(誤記)인지도 모르겠다.


[주D-014]쇄창(瑣窓) :
꽃무늬를 새긴 격자창(格子窓)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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