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 제 7 권 별집


종북소선(鍾北小選)

자서(自序)

문장의 사실성을 확보하라


아, 포희씨(庖犧氏)가 죽은 뒤로 그 문장(文章)이 흩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벌레의 촉수(觸鬚), 꽃술, 석록(石綠), 비취(翡翠)의 깃털에 이르기까지도 그 문장의 핵심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으며, 솥 발, 병 허리, 해 고리, 달 시울에도 그 자체(字體)가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바람과 구름, 천둥과 번개, 비와 눈, 서리와 이슬 및 새와 물고기, 짐승과 곤충 등이 웃고 울고 지저귀는 소리에도 성(聲) · 색(色) · 정(情) · 경(境)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주D-001]포희씨(庖犧氏)가 …… 오래다 : 포희는 복희(伏羲)라고도 하며, 태곳적 중국의 삼황(三皇) 중의 한 사람이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포희가 천지를 관찰하여 팔괘(八卦)로 된 최초의 《역(易)》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 문장이 흩어진 지 오래다’라는 것은, 포희가 팔괘와 각 효(爻)를 풀이한 문장〔繫辭〕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D-002]석록(石綠) :
공작석(孔雀石)이라고도 한다. 녹청색의 아름다운 광물로 장식품이나 안료(顔料)로 쓰인다.
[주D-003]비취(翡翠)의 깃털 :
원문은 ‘羽翠’인데, ‘翠羽’와 같은 뜻이 아닌가 한다. 비취는 물총새로 아름다운 녹색 깃털을 지녔는데, 귀중한 물건으로 여겨져 장식품으로 쓰인다.
[주D-004]솥 발 …… 남아 있다 :
솥 정(鼎) 자는 솥의 세 발을 상형(象形)으로 나타낸 것이고, 병 호(壺) 자는 병의 허리 부분을 상형으로 나타낸 것이고, 해 일(日) 자는 해의 둥근 고리 모양을 상형으로 나타낸 것이고, 달 월(月) 자는 달의 휜 가장자리인 시울을 상형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을 읽지 않으면 그림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알지 못하면 글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포희씨가 《주역》을 만들 적에 위로는 하늘을 살피고 아래로 땅을 관찰하여 홀수인 양효(陽爻)와 짝수인 음효(陰爻)를 서로 포갠 것에 불과하였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그림이 되었으며, 창힐씨(蒼頡氏)가 문자를 만들 적에도 사물의 정(情)과 형(形)을 곡진히 살펴서 상(象)과 의(義)를 전차(轉借)한 것에 불과하였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글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D-005]사물의 …… 전차(轉借) : 한자(漢字)의 조자(造字) 방법인 ‘육서(六書)’를 가리킨다. 사물의 정(情)과 형(形)을 곡진히 살펴서 글자를 만든 것은 지사(指事) 및 회의(會意)와 상형(象形)에, 상(象)과 의(義)를 전차한 것은 형성(形聲) 및 전주(轉注)와 가차(假借)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에도 소리〔聲〕가 있는가?
이윤(伊尹)이 대신(大臣)으로서 한 말
주공(周公)이 숙부(叔父)로서 한 말을 내가 직접 듣지는 못했으나 글을 통해 그 목소리를 상상해 보면 아주 정성스러웠을 것이며, 아비에게 버림받은 백기(伯奇)의 모습과 기량(杞梁)의 홀로된 아내의 모습을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글을 통해 그 목소리를 상상해 보면 아주 간절하였을 것이다.


[주D-006]이윤(伊尹)이 …… 말 : 탕왕(湯王)이 죽고 그의 아들 태갑(太甲)이 왕이 되자 이윤이 어린 왕을 훈도하는 글을 올렸다. 《서경(書經)》 이훈(伊訓) · 태갑(太甲) · 함유일덕(咸有一德) 등은 이를 기록한 것이다.
[주D-007]주공(周公)이 …… 말 :
무왕(武王)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成王)이 왕이 되자 무왕의 아우인 주공 단(旦)이 어린 왕에게 안일(安逸)을 경계하는 글을 올려 훈계하였다. 《서경》 무일(無逸)은 이를 기록한 것이다.
[주D-008]아비에게 버림받은 백기(伯奇) :
주(周) 나라 선왕(宣王)의 신하인 윤길보(尹吉甫)의 아들 백기가 계모(繼母)의 모함을 받아 쫓겨나게 되자 ‘이상조(履霜操)’라는 노래를 지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樂府詩集 琴曲歌辭1》
[주D-009]기량(杞梁)의 홀로된 아내 :
춘추 시대 제(齊) 나라 대부인 기량이 전사(戰死)하자 그의 아내가 슬퍼하면서 목놓아 크게 울다 강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그녀의 여동생이 언니의 이러한 죽음을 애도하여 ‘기량처(杞梁妻)’라는 노래를 지었다. 《古今注 音樂》


글에도 빛깔〔色〕이 있는가?
《시경(詩經)》에도 있듯이,
“비단 저고리를 입으면 엷은 덧저고리를 입고, 비단 치마를 입으면 엷은 덧치마를 입는다네.〔衣錦褧衣 裳錦褧裳〕”라 하고, “검은 머리 구름 같으니, 달비도 필요 없네.〔鬒髮如雲 不屑髢也〕”라고 노래한 것이 그 예이다.


[주D-010]비단 저고리를 …… 입는다네 : 《시경》 정풍(鄭風) 봉(丰)에 나온다.
[주D-011]검은 머리 …… 필요 없네 :
《시경》 용풍(鄘風) 군자해로(君子偕老)에 나온다. 달비〔髢〕는 여자들이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덧넣은 가발로서 ‘다리’라고도 한다.


어떤 것을 정(情)이라 하는가?
새가 울고 꽃이 피며 물이 푸르고 산이 푸른 것을 말한다.


[주D-012]새가 …… 말한다 : 당(唐) 나라 현종(玄宗)이 양 귀비(楊貴妃)와 사별(死別)한 뒤에, “새가 울고 꽃이 지며 물이 푸르고 산이 푸르니〔鳥啼花落 水綠山靑〕” 더욱 슬프다고 탄식했다 한다. 여기에서는 ‘花落’을 ‘花開’로 고쳐 인용한 것이다. 《說郛 卷111下 楊太眞外傳下》


어떤 것을 경(境)이라 하는가?
멀리 있는 물은 물결이 없고 멀리 있는 산은 나무가 없고
멀리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요 공수(拱手)하고 있는 사람은 듣고 있는 사람이다.


[주D-013]
멀리 …… 없다 : 산수화에서 원경(遠景)을 간략하게 그리는 수법을 말한 것이다. 왕유(王維)의 산수론(山水論)이나 형호(荊浩)의 화산수부(畵山水賦)에 유사한 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늙은 신하가 어린 임금에게 고할 때의 심정과, 버림받은 아들과 홀로된 여인의 사모하는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함께 소리〔聲〕를 논할 수 없으며, 글에 시적인 구상(構想)이 없으면 《시경》 국풍(國風)의 빛깔〔色〕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이별을 겪지 못하고 그림에 고원한 의취(意趣)가 없다면 글의 정(情)과 경(境)을 함께 논할 수 없다. 벌레의 촉수나 꽃술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문장의 핵심이 전혀 없을 것이요, 기물(器物)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글자를 한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주D-014]
고원한 의취(意趣) : 왕유는 산수론에서 “산수를 그릴 때 의취가 붓질보다 우선한다.〔凡畵山水 意在筆先〕”고 하여, 원경(遠景)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원의(遠意)를 표현할 것을 강조하였다.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

글이란 뜻을 표현하면 된다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저와 같이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經書)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화공(畫工)을 불러서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살 하나 없이 펴서 평상시의 태도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모습을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주D-001]그 …… 것이다 : 원문은 ‘難得其眞’인데, 《종북소선(鍾北小選)》과 《병세집(幷世集)》에는 ‘眞’이 ‘意’로 되어 있다.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道)는 지극히 미세한 데까지 분포되어 있나니, 말할 만한 것이라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도올(檮杌)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楚) 나라의 국사(國史)는 그 이름을 취하였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몰래 매장하는 것은 극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는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그 참을 그릴 따름이다.


[주D-002]말이란 …… 버리겠는가 : 부서진 기와나 벽돌처럼 쓸모없는 것들에도 도(道)가 존재하므로, 이를 소재로 삼아 말로 표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에서 동곽자(東郭子)가 “이른바 도(道)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장자는 “없는 데가 없다.〔無所不在〕”고 하면서, 땅강아지나 개미에도 있고, 피〔稊稗〕에도 있고, 기와나 벽돌〔瓦甓〕에도 있고, 똥이나 오줌에도 있다고 하였다. 《시경(詩經)》 용풍(鄘風) 장유자(墻有茨)에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면 추해진다네.〔所可道也 言之醜也〕”라고 하였다. 원문의 ‘瓦礫’은 《종북소선》과 《병세집》에 ‘糞壤’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나오는 ‘不棄瓦礫’의 ‘瓦礫’도 같다.
[주D-003]도올(檮杌)은 …… 취하였고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진(晉) 나라의 《승(乘)》과 초(楚) 나라의 《도올》과 노(魯) 나라의 《춘추(春秋)》가 똑같은 것이다.” 하였다. 도올은 원래 전설에 나오는 사악한 짐승이었는데, 초 나라에서 악을 징계하기 위해 이로써 국사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원문의 ‘楚史取名’에서 ‘取’ 자는 《종북소선》에 ‘是’로 되어 있다.
[주D-004]몽둥이로 …… 남겼으니 :
극도로 흉악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역사책에 남겨 후세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게 한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왕온서(王溫舒)라는 혹리(酷吏)가 젊은 시절 사람을 죽이고 암매장하는 악행을 자행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혹리전(酷吏傳)에 그의 전기가 실려 있다. 원문의 ‘劇盜’는 《종북소선》과 《병세집》에 ‘狗屠’로 되어 있고, ‘遷固是敍’의 ‘是敍’는 《종북소선》에 ‘生色’으로 되어 있다.


이로써 보자면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제 귀가 갑자기 울리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기뻐하며, 가만히 이웃집 아이더러 말하기를,

“너 이 소리 좀 들어 봐라. 내 귀에서 앵앵 하며 피리 불고 생황 부는 소리가 나는데 별같이 동글동글하다!”

하였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맞대어 보았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자, 안타깝게 소리치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주D-005]이로써 보자면 : 원문은 ‘以是觀之’인데, ‘以是’가 《종북소선》에는 ‘由是’로, 《병세집》에는 ‘是以’로 되어 있다.
[주D-006]귀가 울리고 :
병으로 인해 귀에 이상한 잡음이 들리는 이명증(耳鳴症)을 말한다.
[주D-007]놀라서 …… 기뻐하며 :
원문은 ‘啞然而喜’인데, 《종북소선》에는 ‘啞’가 ‘哦’로 되어 있다.
[주D-008]내 귀에서 …… 동글동글하다 :
이와 비슷한 비유가 이덕무(李德懋)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권1에 나온다. 이덕무가, 어린 동생이 갑자기 귀가 쟁쟁 울린다고 하여 그 소리가 무엇과 비슷하냐고 물었더니, “그 소리가 별같이 동글동글해서 빤히 보고 주울 수 있을 듯해요.〔其聲也 團然如星 若可覩而拾也〕”라고 답했다. 이에 이덕무는 “형상을 가지고 소리를 비유하다니, 이는 어린애가 무언 중에 타고난 지혜이다. 옛날에 한 어린애가 별을 보고 ‘저것은 달의 부스러기이다.’라고 했다. 이런 따위의 말들은 몹시 곱고 속기를 벗어났으니, 케케묵은 식견으로는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고 평하였다.


일찍이 어떤 촌사람과 동숙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우람하여 마치 토하는 것도 같고, 휘파람 부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숨을 크게 내쉬는 것도 같고, 후후 불을 부는 것도 같고, 솥의 물이 끓는 것도 같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며 구르는 것도 같았으며,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내뿜을 때는 돼지처럼 씩씩대었다. 그러다가 남이 일깨워 주자 발끈 성을 내며 “난 그런 일이 없소.” 하였다.


[주D-009]마치 …… 같고 : 원문은 ‘如哇如嘯如嘆如噓’인데, 《종북소선》에는 ‘如歎如哇’로만 되어 있다.
[주D-010]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
원문은 ‘鋸’인데, 《종북소선》과 《병세집》에는 ‘鉅鍛’으로 되어 있다.
[주D-011]남이 일깨워 주자 :
원문은 ‘被人提醒’인데, 《종북소선》에는 ‘提醒’이 ‘搖惺’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나오는 ‘怒人之提醒’의 ‘提醒’도 같다.


아, 자기만이 홀로 아는 사람은 남이 몰라줄까 봐 항상 근심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먼저 깨닫는 것을 싫어하나니,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문장에도 있는데 더욱 심할 따름이다. 귀가 울리는 것은 병인데도 남이 몰라줄까 봐 걱정하는데, 하물며 병이 아닌 것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코 고는 것은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 주면 성내는데, 하물며 병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주D-012]자기가 …… 사람은 : 원문은 ‘己所未悟者’인데, 《종북소선》에는 ‘未’가 ‘不’로 되어 있다.
[주D-013]남이 …… 싫어하나니 :
원문은 ‘惡人先覺’인데, 《종북소선》과 《병세집》에는 ‘惡’가 ‘衆’으로 되어 있다.
[주D-014]문장에도 …… 따름이다 :
원문은 ‘文章亦有甚焉耳’인데, 《종북소선》에는 ‘焉’이 ‘然’으로 되어 있다.
[주D-015]하물며 :
원문은 ‘況’인데, 《종북소선》에는 이 앞에 ‘又’ 자가 더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부서진 기와나 벽돌도 버리지 않는다면, 화공의 선염법(渲染法)으로 극악한 도적돌출한 귀밑털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요, 남의 귀 울리는 소리를 들으려 말고 나의 코 고는 소리를 깨닫는다면 거의 작자의 뜻에 가까울 것이다.


[주D-016]
선염법(渲染法) : 동양화에서 먹을 축축하게 번지듯이 칠하여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하는 수법을 이른다.
[주D-017]극악한 도적 :
원문은 ‘劇盜’인데, 《종북소선》과 《병세집》에는 ‘狗屠’로 되어 있다.
[주D-018]돌출한 귀밑털 :
원문은 ‘突鬢’인데, 즉 봉두돌빈(蓬頭突鬢), 쑥대머리에다 돌출한 귀밑털이란 뜻으로, 거칠고 단정치 못한 모습을 말한다.
[주D-019]들으려 말고 :
원문은 ‘毋聽’인데, 《종북소선》에는 ‘不問’으로, 《병세집》에는 ‘無聽’으로 되어 있다.
[주D-020]깨닫는다면 :
원문 ‘醒’인데, 《종북소선》에는 ‘惺’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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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연암집 제 7 권 별집

종북소선(鍾北小選)

이서구 [李書九, 1754 ~ 1825]

자기 시대의 문장을 구사하라

옛글을 모방하여 글을 짓기를 마치 거울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뿌리와 가지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한낮이 되면 난쟁이〔侏儒僬僥〕가 되고 석양이 들면 키다리〔龍伯防風〕가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걸어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소리가 없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옛글과 끝내 비슷할 수 없단 말인가?


[주D-001]난쟁이〔侏儒僬僥〕 : 주유(侏儒)는 난쟁이를 말하고, 초요(僬僥)는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나오는 단인국(短人國) 사람, 또는 《국어(國語)》 노 하(魯下)에 나오는 키가 석 자밖에 안 된다는 종족이다.
[주D-002]키다리〔龍伯防風〕 :
용백(龍伯)은 《열자》 탕문에 나오는 대인국(大人國) 사람, 방풍(防風)은 《국어》 노 하에 나오는 키가 큰 종족이다.


그런데 어찌 구태여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가?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말할 때 ‘꼭 닮았다〔酷肖〕’라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진짜에 아주 가깝다〔逼眞〕’라고 일컫는다.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을 통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한자(漢字)의 자체(字體)가 달라도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외형은 서로 다르지만 내심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내면의 의도라 할 것이요 ‘외형이 비슷한 것〔形似〕’은 피상적인 겉모습이라 하겠다.
이씨 집안의 자제인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는 나이가 16세로 나를 따라 글을 배운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심령(心靈)이 일찍 트이고 혜식(慧識)이 구슬과 같았다. 일찍이 《녹천관집(綠天館集)》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질문하기를,

“아, 제가 글을 지은 지가 겨우 몇 해밖에 되지 않았으나 남들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라도 조금 새롭다던가 한 글자라도 기이한 것이 나오면 그때마다 사람들은 ‘옛글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발끈 화를 내며 ‘어찌 감히 그런 글을 짓느냐!’고 나무랍니다. 아, 옛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면 제가 어찌 다시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판정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세 번 절한 다음 꿇어앉아 말하였다.

“네 말이 매우 올바르구나. 가히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만하다.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들 때 어떤 옛것에서 모방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안연(顔淵)이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유독 저서가 없었다. 만약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를 생각하고, 안연이 표현하지 못한 취지를 저술한다면 글이 비로소 올바르게 될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남들에게 노여움을 받으면 공경한 태도로 ‘널리 배우지 못하여 옛글을 상고해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사과하거라. 그래도 힐문이 그치지 않고 노여움이 풀리지 않거든, 조심스런 태도로 ‘은고(殷誥)와 주아(周雅)는 하(夏) · 은(殷) · 주(周) 삼대(三代) 당시에 유행하던 문장이요, 승상(丞相) 이사(李斯)와 우군(右軍)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는 진(秦) 나라와 진(晉) 나라에서 유행하던 속필(俗筆)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거라.”



[주D-003]
나이가 16세로 : 이서구는 1754년에 태어났으므로, 이 글을 지은 때는 1769년임을 알 수 있다.
[주D-004]은고(殷誥)와 주아(周雅) :
은고는 중훼지고(仲虺之誥)와 탕고(湯誥), 즉 《서경(書經)》을 가리키고, 주아는 주공(周公)이 제정했다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 즉 《시경(詩經)》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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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집서(楚亭集序)

연암집 제 1 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박제가 [朴齊家] (1750~1805).

법고(法古)와창신(刱新 )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논자(論者)들은 반드시 ‘법고(法古 옛것을 본받음)’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옛것을 흉내내고 본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으로 족히 예악을 제정할 수 있고, 양화(陽貨)가 공자와 얼굴이 닮았다 해서 만세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법고’를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창신(刱新 새롭게 창조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괴벽하고 허황되게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세 발〔丈〕 되는 장대가 국가 재정에 중요한 도량형기(度量衡器)보다 낫고, 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을 종묘 제사에서 부를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창신’을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면 문장 짓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주C-001]초정집서(楚亭集序) : 박제가(朴齊家 : 1750 ~ 1805)의 초기 문집인 《초정집》에 부친 서문이다. 박제가는 초명을 제운(齊雲)이라 했으며, 초정은 그의 여러 호 중의 하나이다. 박제가의 《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 권1에도 단지 ‘서(序)’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법고(法古)’를 ‘학고(學古)’라고 하는 등 표현상의 차이가 상당히 있고 박제가의 나이를 ‘스물셋’이 아니라 ‘열아홉’이라 기술한 점으로 미루어, 이 글을수년 뒤에 손질한 것이 초정집서인 듯하다.
[주D-001]왕망(王莽)의 《주관(周官)》 :
왕망(기원전 45 ~ 기원후 23)은 한(漢) 나라 평제(平帝)를 시해한 뒤 섭황제(攝皇帝)로 자칭하며 섭정(攝政)을 행하다가 결국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신(新) 나라를 세웠다. 그는 주공(周公)의 선례를 들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면서 주공이 지었다는 《주례(周禮)》에 근거하여 각종 개혁을 시도했으나, 시대착오적인 개혁으로 혼란을 초래하여 민심을 잃고 농민 반란군에게 피살되었다. 《주관》은 곧 《주례》를 말한다. 왕망이 집권할 때 그에게 아부하기 위해 유흠(劉歆)이 비부(秘府)에 소장되어 있던 《주관》을 개찬(改竄)하고 《주례》로 이름을 고쳐 유가 경전의 하나로 격상시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유흠 등은 태후에게 올린 글에서 섭황제인 왕망을 극구 예찬하여 “드디어 비부를 열고 유자들을 모아 예와 악을 제작했으며〔遂開秘府 會群儒 制禮作樂〕”, “《주례》를 발굴하여 하(夏) 나라와 은(殷) 나라의 예를 본받았음을 밝히셨다.〔發得周禮 以明因監〕”고 하였다. 《漢書 卷99 王莽傳上》
[주D-002]양화(陽貨)가 …… 닮았다 :
양화는 이름이 호(虎)이며, 춘추 시대 노(魯) 나라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었다. 공자(孔子)가 그와 얼굴이 비슷한 탓에 진(陳) 나라로 가던 도중 광(匡) 땅에서 양화로 오인되어 곤욕을 당한 일이 있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3]세 발〔丈〕 되는 장대 :
진(秦) 나라 효공(孝公) 때에 상앙(商鞅)이 자기가 만든 법령을 공포하기에 앞서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도성 남문에 세 발 되는 장대를 세워 놓고, 이것을 북문에 옮겨 놓는 자에게는 상금을 주겠다고 하여 이를 옮겨 놓은 자에게 약속대로 상금을 주었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주D-004]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 :
이연년은 한 나라 무제(武帝)가 총애한 이 부인(李夫人)의 오빠로, 노래를 매우 잘했으며, 신성 즉 신작 가곡을 지었다. 그 덕분에 협률도위(協律都尉)까지 되었으나 이 부인이 죽음에 따라 그에 대한 총애도 식어 결국에는 죄에 연좌되어 죽었다. 《史記 卷125 佞幸列傳》
[주D-005]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
원문은 ‘如之何其可也’인데, 이본들에 따라 ‘如之何而可也’로도 되어 있으나 뜻은 같다.


아! 소위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이다.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다.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읽은 이가 있었으니
공명선(公明宣)이 바로 그요,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짓는 이가 있었으니 회음후(淮陰侯)가 바로 그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주D-006]공명선(公明宣) : 춘추 시대 노 나라 남무성(南武城) 사람으로 증자(曾子)의 제자이다. 아래의 일화는 《설원(說苑)》과 《소학(小學)》 등에 나온다.
[주D-007]회음후(淮陰侯) :
한 나라 때의 명장 한신(韓信)의 봉호이다. 아래의 일화는 《사기》 권92 회음후열전에 나온다.


공명선이 증자(曾子)에게 배울 때 3년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기에 증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계실 때나 손님을 응접하실 때나 조정에 계실 때를 보면서 그 처신을 배우려고 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 문하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물을 등지고 진(陣)을 치는 배수진(背水陣)은 병법에 보이지 않으니, 여러 장수들이 불복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회음후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데, 단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뿐이다. 병법에 그러지 않았던가?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고.”

그러므로 무턱대고 배우지는 아니하는 것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혼자 살던 노(魯) 나라의 남자요, 아궁이를 늘려 아궁이를 줄인 계략을 이어 받은 것은 변통할 줄 안 우승경(虞升卿)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하늘과 땅이 아무리 장구해도 끊임없이 생명을 낳고, 해와 달이 아무리 유구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듯이, 서적이 비록 많다지만 거기에 담긴 뜻은 제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날고 헤엄치고 달리고 뛰는 동물들 중에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산천초목 중에는 반드시 신비스러운 영물(靈物)이 있으니, 썩은 흙에서 버섯이 무럭무럭 자라고, 썩은 풀이 반디로 변하기도 한다.


[주D-008]혼자 …… 남자 : 노 나라에 안숙자(顔叔子)라는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과부가 밤중에 폭풍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를 찾아와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청하니 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 과부가 “당신은 어찌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않소?” 하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난 안 되오. 나는 장차 나의 할 수 없는 점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는 점을 배우려고 하오.”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가 “유하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중에 이와 비슷한 경우는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한다. 《詩經 小雅 巷伯 毛傳》 《孔子家語 卷2 好生》
[주D-009]아궁이를 …… 우승경(虞升卿)이었다 :
손빈(孫臏)이 제(齊)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魏) 나라의 장수 방연(龐涓)과 싸우게 되자 첫날에는 취사하는 아궁이를 10만 개 만들었다가 이튿날엔 5만 개로 줄이고 또 그 이튿날엔 3만 개로 줄여 군사들이 겁먹고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방연이 방심하고 보병을 버려둔 채 기병만으로 추격을 하다 마릉(馬陵)에서 손빈의 복병을 만나자 자결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후한(後漢) 때의 장수 우후(虞詡)는 자가 승경(升卿)으로, 북방의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병력의 열세로 인해 몰리게 되자 구원병이 온다는 거짓 소문을 내고는 아궁이의 수를 매일 늘려 구원병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어떤 이가 묻기를, “손빈은 아궁이의 수를 줄였다는데 그대는 늘리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오?” 하자, “손빈은 허약한 척하느라고 아궁이 수를 줄인 것이고 나는 반대로 강하게 보이려고 아궁이 수를 늘린 것이니, 이는 형세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88 虞詡列傳》
[주D-010]해와 …… 유구해도 :
원문은 ‘日月雖久’인데, 《하풍죽로당집》, 《백척오동각집》, 《동문집성(東文集成)》 등에는 ‘日月雖舊’로 되어 있다.


또한 예에 대해서도 시비가 분분하고 악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어진 이는 도를 보고 ‘인(仁)’이라고 이르고 슬기로운 이는 도를 보고 ‘지(智)’라 이른다.
그러므로 백세(百世) 뒤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라 한 것은 앞선 성인의 뜻이요, 순 임금과 우 임금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 한 것은 뒷 현인이 그 뜻을 계승한 말씀이다. 우 임금과 후직(后稷), 안회(顔回)가 그 법도는 한 가지요, 편협함〔隘〕과 공손치 못함〔不恭〕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 법이다.


[주D-011]문자는 …… 못한다 : 《주역》 계사전 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하였다. 그런데 《열하일기(熱河日記)》 태학유관록(太學留舘錄) 8월 11일 조에도 공자의 말로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圖不盡意〕”고 한 점을 보면, 연암은 《주역》에 나오는 위의 구절을 일부 잘못 기억하고 인용한 듯하다.
[주D-012]어진 …… 이른다 :
역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나오는 말로, 각자의 본성으로 인해 도(道)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주D-013]백세(百世) …… 뜻이요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 29 장에 “군자의 도는 자기 몸에 근본하여 백성들에게 징험하며, 삼왕(三王)에게 상고하여도 틀리지 않으며, 천지에 세워 놓아도 어긋나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으며, 백세 뒤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다.〔君子之道 本諸身 徵諸庶民 考諸三王而不謬 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라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앞선 성인은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주D-014]순(舜) 임금과 …… 말씀이다 :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성인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聖人復起 不易吾言矣〕”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뒷 현인은 맹자를 가리킨다.
[주D-015]우(禹) 임금과 …… 한 가지요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서 맹자는, 태평성대에 나랏일을 돌보느라 자신의 집을 세 번이나 지나치고도 들르지 않은 우 임금과 후직, 난세를 만나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변치 않은 안회에 대하여 공자가 칭송한 점을 들면서 “우 임금과 후직, 안회는 그 도가 같다.〔禹稷顔回同道〕”고 하였다. 또 같은 편에서 맹자는, 순 임금과 문왕이 살던 지역이 서로 천여 리나 떨어져 있고 살던 시대가 천여 년이나 차이가 있어도 뜻을 얻어 중국에 시행한 것이 마치 부절(符節)을 합한 듯이 똑같음을 들어 “앞선 성인과 뒷 성인이 그 법도는 한 가지이다.〔先聖後聖 其揆一也〕”라고 하였다.
[주D-016]편협함〔隘〕과 …… 법이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는, 자신의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타협하지 않은 백이(伯夷)와 더러운 세태에 아랑곳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 간 유하혜(柳下惠)를 예로 들면서 “백이는 편협하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못하니 편협함과 공손치 못함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 君子不由也〕”고 하였다.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이 나이 스물셋으로 문장에 능하고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는데, 나를 따라 공부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는 문장을 지음에 있어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때 작품을 흠모하면서도 옛 표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면 혹 근거 없는 표현을 쓰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내세운 주장이 너무 고원하다 보면 혹 상도(常道)에서 자칫 벗어나기도
한다.

이래서 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법고’와 ‘창신’에 대하여 서로 비방만 일삼다가 모두 정도를 얻지 못한 채 다 같이 말세의 자질구레한 폐단에 떨어져, 도를 옹호하는 데는 보탬이 없이 한갓 풍속만 병들게 하고 교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 ‘창신’을 한답시고 재주 부릴진댄 차라리 ‘법고’를 하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주D-017]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 : 명 나라 때 이반룡(李攀龍) · 왕세정(王世貞) 등 이른바 칠자(七子)들은 “산문은 반드시 선진(先秦) 양한(兩漢)을 본받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고 하면서 법고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 반면, 원굉도(袁宏道) 형제 등 소위 공안파(公安派)들은 “성령을 독자적으로 표현하고 상투적 표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獨抒性靈 不拘格套〕”고 하면서 창신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였다.


내 지금 《초정집》을 읽고서 공명선과 노 나라 남자의 독실한 배움을 아울러 논하고, 회음후와 우후(虞詡)의 기이한 발상이 다 옛것을 배워서 잘 변화시키지 않은 것이 없음을 나타내 보였다. 밤에 초정(楚亭)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침내 그 책머리에 써서 권면하는 바이다.

문장을 논한 정도(正道)라 하겠다. 사람을 깨우치는 대목이 마치 구리 고리 위에 은빛 별 표시가 있어 안 보고 더듬어도 치수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글에는 두 짝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끊어진 벼랑이 되고, 다른 하나는 긴 강물이 되었다. ‘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서로 비방만 일삼다가 하나로 의견이 합치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 말은 편언절옥(片言折獄)이라고 이를 만하다.


[주D-018]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판정을 내림을 말한다.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는 “한마디 말로 옥사를 결단할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자로(子路)일 것이다.〔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라고 하였다.
[주D-019]문장을 …… 만하다 :
이는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 : 1751 ~ 1809)이 글 뒤에 붙인 평어(評語)이다. 이하의 평어는 모두 그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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