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


의산 문답(毉山問答)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내집 4권(內集 卷四)

보유(補遺)


[은자주]중국 주나라 역사를 중국역사의 정통으로 취한 것이 공자가 저술한 주나라 역사서인 <춘추>이다. 이에 바탕한 것이 춘추대의론이다. 그러니까 역외춘추론이란 춘추대의론의 상대적인 말로 세계에 안과 밖이 없으니 내가 서 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이고 내 나라 역사가, 종전에 역외라 생각하던 땅이 사실은 나에게 있어 세계의 중심인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북학파가 도달한 지구에 대한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다. 땅이 평면일 때는 중심이 존재했지만 땅이 구체(球體)로 되어 있음을 자각한 이상 이제 세계의 중심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홍대용은 이 <의산 문답(毉山問答)>에서 실옹(實翁)의 답변을 통하여 자기 나라의 역사가 바로 ‘춘추’라는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을 역설했다.

<의산 문답>의 도입부[정황의 파악을 위함]와 결말 부분을 소개한다.


[도입부]


자허자(子虛子)는 숨어 살면서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조화와 성명(性命)의 은미(隱微)함을 궁구하고 오행(五行)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진리를 달통하여 인도(人道)를 경위(經緯)로 하고 물리(物理)를 깨달아 통했다. 심오한 원위(源委)를 환히 안 다음에 세상에 나가 남에게 이야기했더니, 듣는 자마다 웃었다.


[주D-001]오행(五行) :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주D-002]삼교(三敎) :
유교(儒敎)ㆍ도교(道敎)ㆍ불교(佛敎).


허자가 말하기를,

“작은 지혜와 더불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없고 비루한 세속 사람과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하고, 서쪽으로 연도(燕都 북경)에 들어가 선비와 더불어 이것저것 이야기할 때 여관에서 60일 동안이나 있었으나 마침내 알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에 허자가 슬피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쇠했는가? 철인(哲人)이 죽었는가? 우리 도(道)가 글렀는가?”

하고, 행장을 차려 돌아왔다.
이에 의무려산(毉巫閭山)에 올라 남쪽으로 창해(滄海)와 북쪽으로 대막(大漠)을 바라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하기를,

“노담(老聃)은 ‘호(胡)로 들어간다.’고 했고, 중니(仲尼)는 ‘바다에 뜨고 싶다.’고 했으니, 어찌 알건가, 어찌 알건가.”

하고는 드디어 세상을 도피할 뜻을 두었다.
수십 리쯤 가니 앞에 돌문[石門]이 나왔는데 실거지문(實居之門)이라고 씌어 있다. 허자가 말하기를,

“의무려산이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있으니, 동북 사이에 이름난 산이다. 반드시 숨은 선비가 있을 것이니, 내가 반드시 가서 물어 보리라.”

하였다. 드디어 석문으로 들어가니 한 거인(巨人)이 새집처럼 만든 증소(橧巢) 위에 홀로 앉았는데, 모습이 괴이하였으며 나무를 쪼개서 글씨쓰기를 실옹지거(實翁之居)라 하였다.
허자는 혼잣말로,

“내가 허(虛)자로써 호(號)를 한 까닭은 장차 천하의 실(實)을 살펴보고 싶어 한 것이며, 저가 실(實)자로써 호한 것은 장차 천하의 허(虛)를 타파시키고자 함일 것이다. 허는 허대로 실은 실대로 하는 것이 묘도(妙道)의 진리리니, 내 장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하고, 엉금엉금 기어 앞으로 나아가 우러러 절한 다음, 공수(拱手 존경의 표시로 팔짱을 낌)하고 그의 오른쪽에 섰다. 거인(巨人)은 고개를 떨구고 멍하게 있는 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허자가 손을 들고 말하기를,

“군자(君子)로서 사람을 대하는데 진실로 이와 같이 거만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거인이 말하기를,

“네가 이 동해(東海)에 있는 허자인가?”

허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부자(夫子)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술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거인은 무릎에 기대서 눈을 부릅뜨고 말하기를,

“과연 허자로구나. 내가 무슨 술법을 가졌단 말이냐? 너의 옷차림을 보고 너의 음성을 들으니 동해라는 것을 알겠고, 너의 예법을 보니, 겸양을 꾸며서 거짓 공손함을 삼고 오로지 허로써 사람을 대한다. 이로써 네가 허자라는 것을 알았지, 내가 무슨 술법이 있겠느냐?”

하였다.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짓되 중국은 안으로, 사이(四夷)는 밖으로 하였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와 같이 엄격하거늘 지금 부자는 ‘인사의 감응이요 천시의 필연이다.’고 하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하늘이 내고 땅이 길러주는,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이 사람이며, 여럿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이 임금이며,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章甫)이건 위모(委貌)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이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


[주D-039]위모(委貌) : 주 나라의 갓 이름.
[주D-040]문신(文身) :
문신(文身)은 오랑캐의 별칭임.
[주D-041]조제(雕題) :
조제(雕題)는 미개한 민족의 별칭임.


대저 천지의 변함에 따라 인물이 많아지고 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물아(物我 주체와 객체)가 나타나고 물아가 나타남에 따라 안과 밖이 구분된다. 장부[五臟六腑]와 지절(肢節)은 한 몸뚱이의 안과 바깥이요, 사체(四體)와 처자(妻子)는 한 집안의 안과 바깥이며, 형제와 종당(宗黨)은 한 문중의 안과 바깥이요, 이웃 마을과 넷 변두리는 한 나라의 안과 바깥이며, 법이 같은 제후국(諸侯國)과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는 천지의 안과 바깥인 것이다.

대저 자기의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죄가 아닌데 죽이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사이(四夷)로서 중국을 침노하는 것을 구(寇)라 하고, 중국으로서 사이(四夷)를 번거롭게 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그러나 서로 구(寇)하고 서로 적(賊)하는 것은 그 뜻이 한 가지다.
공자는 주 나라 사람이다. 왕실(王室)이 날로 낮아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吳) 나라와 초(楚) 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혀 도둑질하고 해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춘추(春秋)란 주 나라 사기인 바, 안과 바깥에 대해서 엄격히 한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느냐?
그러하나 가령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 나라 도(道)를 역외(域外)에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스스로 딴 역외 춘추(域外春秋)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된 까닭이다.”

[의무려산 & 홍대용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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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에 대하여


아래의 쪽수는 󰡔박지원소설연구󰡕(김영동, 태학사.1988)의 것임.

* 熱河는 고종이 피서간 몽고 아래 중국 서북방의 河川名. 온천수 나옴.

* 渡江錄 6.24.-還燕道中錄8.20.

일기 7편+ 外19편=合26편(避暑錄補 1편을 합하면 27편)


열하일기 구성

열하일기 서(熱河日記序)

1.도강록(渡江錄)

14.황교문답(黃敎問答)

2.성경잡지(盛京雜識)

15.피서록(避暑錄)

피서록보(避暑錄補)

3.일신수필(馹汛隨筆)

16.양매시화(楊梅詩話)

4.관내정사(關內程史)

17.동란섭필(銅蘭涉筆)

5.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18.옥갑야화(玉匣夜話)

6.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19.행재잡록(行在雜錄)

7.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20.금료소초(金蓼小抄)

8.경개록(傾蓋錄)

21.환희기(幻戲記)

9.심세편(審勢編)

22.산장잡기(山莊雜記)

10.망양록(忘羊錄)

23.구외이문(口外異聞)

11.혹정필담(鵠汀筆談)

24. 황도기략(黃圖紀略)

12.찰십륜포(札什倫布)

25.알성퇴술(謁聖退述)

13.반선시말(班禪始末)

26.앙엽기(盎葉記)



*8.13. 청 고종의 천추절.

* 행렬은 통상 200여명이나 541명에 말이 435필인 때도 있었음(p.137)

* 연암의 신분은 伴當; 武夫 차림의 子弟 軍官(p.23)

󰡔열하일기󰡕<渡江錄>6.24.- <還燕道中錄>8.20.까지만 기록.

장장 5개월여의 여행.

1780.5.25.한양 출발, 6.24.도강, 8.1.북경 도착, 8.5.북경 출발하여 8.9일 열하 도착,

8.15.열하 출발, 8.20. 북경 도착. 9.17.북경 출발, 10.27.한양 도착(p.137)


4) 연암소설의 수사법

◇ 반어법

*虎之威其嚴乎,

*東里子善守寡. 然有子五人 各有其姓,

*북곽선생과 동리자의 밀회.

◇ 同音異意語 구사

醫者疑也, 巫者誣也, 儒者諛也

◇ 어조 및 구성상의 특징(문법) ←發憤의 정신[사마천, 사기 및 장자 도척편]

;(盜跖聞之大怒曰)󰡔장자󰡕 <도척편>, 도척은 이 소리를 듣고 대로했다.

(盜跖大怒)도척은 대로하여

두 다리를 쭉 뻗고 칼자루에 손을 얹고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마치 새끼 가진 호랑이 소리 같았다. 盜跖大怒曰

󰡔양반전󰡕 大怒曰, 罵曰.

󰡔호질󰡕 虎추然變色 易容而不悅曰, 虎叱曰.

󰡔허생󰡕 許生大怒曰, 許生大叱, 僧罵曰, 僧復大罵曰


6)虎 叱

◇󰡔熱河日記󰡕 關內程史 7.28.

* 壁上奇文은 북곽선생과 동리자의 밀회 얘기 정도가 아닐까? (p.143)

◇ 前識, 부록 pp.35-37.

◇ 後識, 부록 pp.43-45.

◇〈虎 叱〉金澤榮 跋文

󰋬金澤榮本, 󰡔重編 朴燕巖先生文集󰡕 권5, 1917년 중국에서 간행, 李在秀 所藏本.


(7)玉匣夜話

◇ 前識, 부록 pp.46-50.해설, pp.184-188.

◇ 허생전

◇ 後識

1차)進德齋夜話後識(初稿), 부록 pp.60-62. 해설, pp. 204-206.

2차)玉匣夜話 後識(改稿), 부록 pp.58-59. 해설, pp.206-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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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갑신(甲申) & 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도강록(渡江錄) 6월 24일 신미(辛未)에 시작하여 7월 9일 을유(乙酉)에 그쳤다. 압록강(鴨綠江)으로부터 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이 걸렸다.

[참고]

요동벌 새벽길(遼野曉行)’

-박지원


遼野何時盡, 요동벌은 언제 끝날까?

一旬不見山. 열흘을 가도 산을 못 보네.

曉星飛馬首, 말 머리에 샛별이 날리고

朝日出田間. 밭두렁에서 아침 해가 돋는다.

개었다.
정사와 한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서,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10리 남짓 가서 산모롱이 하나를 접어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국궁(鞠躬)하고 말 앞으로 달려 나와서 땅에 엎드려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보입니다.” 한다.


태복은 정 진사의 마두다. 아직 산모롱이에 가려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빨리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모롱이를 벗어나자, 안광(眼光)이 어른거리고 갑자기 한 덩이 흑구(黑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내 오늘에 처음으로, 인생(人生)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한 곳이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 하였다.

정 진사가,

“이렇게 천지간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울고 싶다니, 웬 말씀이오.”

하고 묻는다.

나는,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천고의 영웅(英雄)이 잘 울었고, 미인(美人)은 눈물 많다지. 그러나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기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金)ㆍ석(石)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음은 듣지 못하였소.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중에서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는 것이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 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오.

지극한 정(情)이 우러나오는 곳에,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는다면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인생의 보통 감정은 오히려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이로 인하여 상고를 당했을 때 억지로 ‘애고’, ‘어이’ 따위의 소리를 부르짖지. 그러나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온 지극하고도 참된 소리란 참고 눌러서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오.

그러므로, 저 가생(賈生)은 일찍이 그 울 곳을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해서 별안간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 마디 길게 울부짖었으니, 이 어찌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해괴히 여기지 않으리오.” 한즉,


정은, “이제 이 울음 터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의당 당신과 함께 한 번 슬피 울어야 할 것이나, 우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느 것에 해당될까요.” 한다.


[주D-001]칠정(七情) : 《예기(禮記)》에서 말한, 사람이 가진 일곱 가지의 감정. 곧 희(喜)ㆍ노(怒)ㆍ애(哀)ㆍ구(懼)ㆍ애(愛)ㆍ오(惡)ㆍ욕(欲)을 말한다.
[주D-002]
가생(賈生) :
한(漢)의 신진 문학가. 이름은 의(誼)인데, 나이가 젊었으므로 가생으로 불리었다. 그는 이론이 날카로웠으므로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쫓겨났으나, 오히려 문제(文帝)에게 치안책(治安策)이라는 정견을 올려서, 시사(時事)의 통곡(痛哭)ㆍ유체(流涕)ㆍ장태식(長太息)할 만함을 진술하였다.
[주D-003]
선실(宣室) :
한의 미앙궁(未央宮) 전전(前殿)의 정실(正室). 문제가 이곳에서 가의에게 귀신(鬼神)에 대한 이론을 물었다.


나는, “저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오. 그가 처음 날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가. 그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에는 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기쁘지 않을 리 없지. 이러한 기쁨이 늙도록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리 없으며 의당 즐겁고 웃어야 할 정만 있어야 하련만, 도리어 분한(忿恨)이 가슴에 사무친 것같이 자주 울부짖기만 하니, 이는 곧 인생이란 신성(神聖)한 이나 어리석은 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한결같이 마침내는 죽어야만 하고 또 그 사이에는 모든 근심 걱정을 골고루 겪어야 하기에, 이 아기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저절로 울음보를 터뜨려서 스스로를 조상함인가.


그러나 갓난아기의 본정이란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거요. 무릇 그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나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을 펴고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할 것이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우리는 의당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저 비로봉(毗盧峯) 산마루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長淵 황해도의 고을) 바닷가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1천 2백 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곳이 아교풀[膠]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가는 비구름만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소.”

하였다.
한낮은 몹시 무더웠다. 말을 달려 고려총(高麗叢)ㆍ아미장(阿彌庄)을 지나서 길을 나누어 갔다. 나는 조 주부 달동과 변군ㆍ내원ㆍ정 진사와 하인 이학령(李鶴齡)과 더불어 구요양(舊遼陽)에 들어갔다. 구요양은 봉황성보다도 10배나 더 번화하고 호화스러웠다. 따로 요동기(遼東記)를 썼다.


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관제묘를 나와 5마장도 채 못 가서 하얀 빛깔의 탑(塔)이 보인다. 이 탑은 8각 13층에 높이는 70길[仞]이라 한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당(唐)의 울지경덕(蔚遲敬德)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러 왔을 때에 쌓은 것이다.”

한다. 혹은 이르기를,

“선인(仙人) 정령위(丁令威)가 학을 타고 요동으로 돌아와 본즉, 성곽과 인민이 이미 바뀌었으므로 슬피 울며 노래 부르니, 이것이 곧 그가 머물렀던 화표주(華表柱)다.”

한다.


[주C-001]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 어떤 본에는 관제묘기(關帝廟記) 위에 있었으나, 그릇되었으므로 여기로 옮겼다.
[주D-001]
울지경덕(蔚遲敬德) :
당의 명장. 태종을 따라 여러 군데에 원정하였다.
[주D-002]
정령위(丁令威) :
한의 선인.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의하면, 그가 신선이 되어 천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하였다.
[주D-003]
화표주(華表柱) :
큰 길거리나 고을 앞과 같은 곳에 세우는 촛대.


그러나 이는 그릇된 말이다. 요양성 밖에 있으니 성에서 10리도 못 되는 곳이고, 또 그리 높고 크지도 않다. 그저 백탑이라 함은 우리나라 조례(皁隷)들이 아무렇게나 부르기 쉽게 지은 이름이다.
요동은 왼편에 창해(滄海)를 끼고 앞으로는 벌판이 열려서 아무런 거칠 것 없이 천 리가 아득하게 틔었는데, 이제 백탑이 그 벌판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탑 꼭대기에는 구리북 세 개가 놓였고, 층마다 처마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는데, 그 크기가 물들통만 하고, 바람이 일 때마다 풍경이 울어서 그 소리가 멀리 요동벌에 울린다.
탑 아래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만주 사람으로, 약을 사러 영고탑(寧古塔)에 가는 길이다. 땅에 글자를 써서 문답을 하는데, 한 사람이
고본(古本) 《상서(尙書)》가 있나를 묻고, 또 한 사람은,

“안부자(顏夫子 공자의 제자인 안회(顏回), 부자는 존칭)가 지은 책과 자하(子夏 공자 제자, 성명은 복상(卜商), 자하는 자)가 지은 악경(樂經)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이는 모두 내가 처음 듣는 것이므로 없다고만 답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아직 청년인데, 처음으로 이곳을 지나며 이 탑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길이 바빠서 그의 이름을 묻지는 못했으나 수재(秀才)인 듯싶다.


[주D-004]고본(古本)……묻고 :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고본 상서가 있었다 하므로, 그들이 물은 것이다.

[참고]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2]

“천이백리 요동벌 마주하니 한바탕 울고 싶어라”

http://www2.donga.com/docs/magazine/shin/2007/05/03/200705030500003/200705030500003_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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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열하일기 산장잡기(山莊雜記)

하수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나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서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흘연(屹然)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蛟螭)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산중의 내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거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노한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급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文武)가 겸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로운 탓이요, 거문고가 궁(宮)과 우(羽)에 맞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슬픈 탓이요, 종이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의심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ㆍ황화(黃花)ㆍ진천(鎭川) 등 모든 물과 합쳐 밀운성 밑을 거쳐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하류(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 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리 밖에서 폭우(暴雨)가 온 것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 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黙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 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에 밟혀서 뒷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 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 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禹)는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으로 떠받치니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의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크거나 작거나가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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