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림 - 주장군전 [朱將軍傳] 해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송세림[宋世琳, 1479(성종 10)∼? )이 지은 가전체 작품.

주장군 맹은 대머리에다 세로로 찢어진 외눈박이로서 힘이 절륜하다고 소문난 인물이다. 이에 임금이 절충장군으로 삼아 막혀버린 연못을 뚫어 기름진 땅을 일구라는 명령을 내린다. 주장군은 머리를 앞세우면서 돌진하여 샘을 뚫어 놓고는 기운이 다해서 죽고 만다. 임금이 몹시 애도하면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이 작품은 주장군이라는 주인공의 외적 묘사를 통해 남자의 성기를 희화화하고,

또 주장군의 행적을 통해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음담패설이다.

송세림이 편찬한 《어면순(禦眠楯)》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여자의 성기를 의인화한 성여학(成汝學)의 《관부인전(灌夫人傳)》도 있는데, 모두 사대부들의 파한잡기이다.

 

<고전수필 순례 15> <주장군전(朱將軍傳)  上> 에서는 아래의 책을 참고하여

윤문했음을 밝혔다.

김창룡(金昌龍),한국가전문학선 上,정음사,1985.

 

생식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가전을 짓겠다는 발상은

세계설화문학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성세림은 세종대왕 다음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 한국인일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는 아래 현토본을 원문으로 사용하고,

宋世琳,朱將軍傳,〈禦眠楯〉《古今笑叢 全》(프린트 영인본),오성사,1959.

위 번역본인

 

<고전수필 순례 15>

blog.daum.net/leewj1004/12754900  

 

 

<고전수필 순례 16>

blog.daum.net/leewj1004/12945486 

 

 

을 옮겨 대역해 한문공부를 병행할 수 있게 처리해 보았다.

 

오역 부분이 발견되면 원문을 참고하여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작품은 너무 길어 2회로 나누어 제공한다.

 

인터넷에 원문을 옮긴 것은 처음임을 자부한다.

 

 

◈宋世琳,朱將軍傳,〈禦眠楯〉《古今笑叢 全》(프린트 영인본),오성사,pp. 95-99.

p.95.將軍의 諱는 猛이요 字는 仰之니 其先은 閬州人也라.

 장군의 성은 주(朱;붉음)요, 이름은 맹(猛;사나움)이고, 자는 앙지(仰之; 치켜듦)

 

그 윗대는 낭주(閬州=囊州; 陰囊을 가리킴)사람이었다.

 

 

 

遠祖剛이 事孔甲에 掌南方朱鳥曆象之官하야 出納惟允이러니

孔甲이 嘉之하야 賜甘泉君湯沐邑에 子孫이 因家焉이라.

먼 조상은 강(剛;단단함)인데,

 

공갑(孔甲; 구멍 난 조가비)을 섬기되

 

남방 주작(朱雀)의 역상지관(曆象之官)을 맡아 출납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던 바,

 

공갑이 이를 가상히 여겨서

 

감천군(달콤한 샘) 탕목읍을 식읍(食邑)을 삼게 하니

 

자손이 이로부터 가문을 이루게 되었다.

 

 考의 諱는 赩이니 歷事十朝요 官至中郞將이며

妃는 陰氏니 貫은 朱崖縣이라.

 아비의 이름은 혁(赩:낯붉음)이며,

 

열 임금을 두루 섬겨 벼슬이 중랑장(中郞將)에 이르렀고,

 

어미 음(陰)씨는 본관(本貫)이 주애현(朱崖縣; 붉은 물가의 고을)인데

 

 

 

少有姿하야 調紅顔赤脣하고

性且溫柔하야 內助之力이 弘多하니 赩이 深重之라.

雖時有小過나 不惡之러라.

어려서는 자태가 있어 붉은 얼굴과 붉은 입술이 조화를 이루었고

 

성품이 온유하여 내조의 힘이 크고 많았으니

 

혁이 매우 중시했다.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大曆十一年에 生猛하니

대력(大曆) 11년에 맹을 낳았다.

 

 

 

猛이 稟形이 絶凡하되 只箇一目竪라.

맹은 타고난 생김새부터가 범상함을 뛰어넘었는데,

 

눈은 다만 한 개가 털이 숭숭하게 난 이마에 있었을 뿐이었다.

 

 

安性强項하야

膂力이 過人에

有怒면 鬚髥이 輒長하야

勃ㄷ露其筋하고 長揖不屈이나

然이나 猶能恭謹하야 隨時低昻이요

 

성격은 매우 강직하여 굽힘이 없었고

 

게다가 근육의 힘이 남보다 뛰어나서

 

화를 낼 때에는 수염을 갑자기 뻗치고

 

울끈불끈 그 근육을 드러내고

 

오래도록 읍하는 모습 그대로 굽힐 줄 모르기도 했으나,

 

남을 공경하고 근신할 줄도 알아서 수시로 몸을 꺼떡거리기도 했다.

 

 

 

常着土紅團領이라.

雖隆寒盛暑나 不解하며

언제나 적토(赤土)빛의 단령(團領)을 입고

 

비록 엄동(嚴冬)이나 폭서(暴暑)를 만날지라도 벗을 줄을 몰랐다.

 

 

 

凡出入에 盛兩丸子紅囊하야 暫不去身하니 世號獨眠龍이라.

또 동그란 알 튀기기를 잘해서)

 

들락날락할 적마다

 

두 개의 탄환으로 붉은 주머니를 가득채웠고

 

잠시라도 몸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독안용(獨眼龍)이라 불렀다.

 

 

 

隣에 有妓 掌中仙 五指香하야

猛이 悅之하고 密令鬲縣으로 竝私之한대

兩妓가 交相拳猛 이어늘

猛이 目眦/(p.96.)가 幾裂에 涕泗가 沾衣나

 이웃에 장중선(掌中仙)과 오지향(五脂香)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맹은 그녀들이 마음에 들어 함께 사통(私通)하였는데,

 

두 기생은 질투하여 서로 번갈아 받들어 모시는 바람에

 

맹은 눈시울이 몇 군데 찢어지고 눈물과 콧물이 옷깃을 적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然이나 且甘受戱曰

「一日이라도 不遭爾拳이면 郄(隙과 같음?)吝이 復萌이라」하니

聞者 賤之라.

그러나 오히려 이를 달게 받으며 희롱했다.

 

『하루라도 두 주먹으로 두들겨 맞지 않으면

 

더러운 생각이 다시 싹터는구나.』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猛이 悔悟折節하고 礪氣亘懷러니

그러자 맹은  절조를 굽힌 것을 뉘우치고 깨달아

 

기운을 북돋우어 항시 늠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亶甲卽位之三年에

齊郡刺史 桓榮이(亶甲 桓榮[단갑 환영]은 方言이니 淫妓之稱也라) 發言하되

 하단갑(河亶甲;殷나라 10대 임금)이 卽位한 지 3년에

 

 

제군(齊郡; 齊는 臍[배꼽 제]와 통함) 자사(刺使) 환영(桓榮)이[하단갑이나

 

환영은 세속에서 음탕한 창기를 가리키는 말. 하단갑은 물밑 조가비?, 환영은 화냥?] 아뢰기를,

 

 

 

「郡底에 曰有寶池하니 泉甘而土肥라

『군 아래(郡은 臍郡; 곧 배꼽 아래)에는 오래된 보지(寶池;보배로운 연못)가 있사온데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진 곳입니다.

 

 

 

艸木이 叢茂하고 居民이 鮮少하야

力耕其中이면 收效甚夥커늘

頃緣旱沽에 其池가 盡沫하야

往ㄷ 澤氣가 上湫濕而壅結하니

초목이 무성하고 거주하는 백성들이 아주 적어

 

힘써 그 가운데를 경작하면 수확이 매우많을 것이나

 

그런데 근자에 가뭄이 심하여 물이 말라붙어

 

이따금 못 기운이 위로 올라와 사라져버리고

 

습기가 차서 막혀버리고 있사오니,

 

 

 

願陛下는 亟遣朝臣하사

開諭地神하고 日督役深鑒하야

俾貯澤流下則 不失其本이라.

凡有血氣者 雖匹夫匹婦나

孰不歆ㄷ然知感哉리요?」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시 조신(朝臣)을 파견하시와

 

지신(地神)을 달래시고 깊숙하게 뚫는 역사(役事)를 감독하시어

 

기름진 못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하신다면

 

이는 한갓 천하의 근본을 잃지 않게 되올 뿐 아니오라

 

무릇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필부(匹婦)라 할지라도

 

그 어느 누가 폐하의 조치에 기꺼이 감동하지 않겠사옵니까?

 

 

 

王이 可奏而難人歷하야 咨群臣할새

溫陽府 經歷朱泚가 薦猛可用이라 하니

왕은 그 아뢰는 말을 옳게 여기시었으나,

 

그렇게 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신하들에게 일일이 자문하니

 

온양부(溫陽府)의 경력(經歷) 주자(朱泚)가

 

맹을 추천하면서 가히 쓸 만하다고 하니,

 

 

 

 

王曰「朕亦飮香이 久矣라.

但諺에 曰目不正則 心不正이라하며,

왕은 말했다.

『짐도 음향한 지 오래다.

 

속담에 이르기를,「눈이 바르지 못하면 그 마음도 바르지 못하다」했고,

 

 

 

 

又云 惡土는 不毛라 한즉

聞猛也는 頭童而眼竪가 是可恨也라.」

 

또 이르기를 「나쁜 땅에는 초목이 나지 않는다」했는데,

 

내가 듣기로는 맹은 머리는 어린애머리처럼 민대가리인데다가

 

눈도  천박하게 세로로 쭉 찢어졌다 하니,

 

그것이 안타깝구려!』

 

 

 

泚가 免冠頓首曰

주자가 관(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古에 聖君은 猶不以二卵으로 棄干城之將이니

豈可以一容貌之稱으로 遞處舍之耶잇가?

「옛 성군들은 오히려 두 알이라 해서 간성의 장수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한 가지 용모를 호칭해서 갑자기 버리시나이까?

願陛下는 姑試猛而可用也하소서.

若令猛으로 不堪其職이면 臣이 請當其罪하노이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맹을 시험해 보고 임용하소서.

만약 맹으로 그 직책을 감당치 못하게 한다면

신이 그 죄를 감당하겠나이다.」

 

村談解頤/199  

私淑齋 姜希孟撰

村談解頤序/201 無爲子序:自序

前4條 '太史公曰' 첨부

 

村談解頤者는 無爲子自著也라.

촌담해이란 책은 강희맹 나자신의 저술이다.

 

居士가 居閑에 與村翁으로 劇談할새

採其言耳 可解頤者는 筆之於書러니 書旣成에 客이 有過者曰

거사로 한가로이 지내면서 촌노인들과 해학을 나누다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자아내는 것들을 모아 책에 썼더니

책이 완성되자 지나가는 이들이 물었다.

 

「古昔聖賢의 著書立言이 皆垂世立敎之大者요 非苟爲也라.

“옛 성인이 책을 지어 글을 남긴 것은

모두 세상에 남겨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 위대함이요

구차스레 억지로 짓지는 않았습니다.

 

居士가 乃摭滑稽之言하야 著之爲書하니

無可考而意淺故로 不見信於君子歟저!」

거사께서 골계담을 모아 저술하여 책을 만들었으니

고찰할 수 없고 뜻이 천박하므로

군자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할까 합니다.”

 

居士曰

내가 답했다.

 

「不然하다.

事無精粗에 至理斯存이요 言無純狵에 耳順則解니

“그렇지 않습니다.

일에는 정밀함과 거친 것 할 것 없이 지극한 이치가 존재하고

언어란 순수함과 잡스러운 것 할 것 없이

순리에 맞으면 이해됩니다.

 

是以로 滄浪之歌는 孔子 歎其自取하고

陽貨之言은 孟子 取以論仁이어늘

事雖鄙俚나 燕書而郢說之니 何有於不可리요?」

이러므로 창랑지수 노래는 공자께서 그 물 자체를 취함에 감탄하였고

양화의 말은 맹자께서 가져다 인을 논의하였습니다.

일이 비록 비리하고 견강부회하는 말을 사용했을지라도

어찌 불가함이 있으리오?”

 

曰「何始乎牧丹고?」

“어째서 ‘牧丹奪財’로 시작했습니까?“

 

「人情之易惑難解者는 美色 而娼家가 爲尤甚故로

首之以此하니 警世之微意也라」

“인정이 미혹하기 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게 미색인데

창기의 집에서 헤어나기가 더욱 어려우므로

이것을 첫머리에 실어 세상을 경계하는 미미한 취지입니다.”

 

「何終乎慧能고?」

“어째서 ‘鬼棒變怪’의 혜능 이야기로 끝맺었습니까?”

 

「男女之欲이 惟髡最重하야 始雖自防이나 終至於迷라.

其與李生으로 相類而相反에 終至於此라. 」

“남녀간의 정욕이 유독 승려들에게 가장 엄격하여

처음에는 스스로 방어할지라도 끝내 미혹에 빠집니다.

첫 설화의 이생과 비슷하나 상반됨에 이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曰「始終條理之意가 何以男女之事多而 得其正者는 少歟저!」

“시종한 조리의 뜻이 어째서 남녀간의 일에는 많은데

정도를 얻은 자는 작은가?”

 

「人事之過差가 多起於此而 言之者가 偶如此也라.」

“인간세상의 지나침과 모자람은 여기에서 많이 일어나지만

말하는 이가 우연히도 이처럼 된 것이오.”

 

曰「其爲敎也 奈何?」

“가르치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苟能辨牧丹之詐則 內無色荒而 夫婦之倫이 正矣요

“첫 이야기에서 진실로 모란의 사기를 변별하였다면

안으로 황음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니

부부의 윤리가 올바를 것이요,

[牧丹奪財1]

 

察痴奴之僞則 家無亂政而 上下之分이 定矣며

어리석은 종의 사기를 살폈다면

집안 질서가 문란하지 않고 다스려져

상하의 구분이 정해졌을 것이며[痴奴護妾2]

 

狂奴行媒에 輔主之忠이 得矣오

미치광이 같은 종이 중매한 것은

주인을 보필하는 충성에서 이뤄진 것이요

 

 

鼴鼠圖婚에 安危之分이 著矣라.

두더지가 혼인을 도모한 것은 안위의 분별에서 드러났소.

 

撫少失恩則 何怪乎沙彌之偸柹며

어떤 사람을 무마하는 데 있어 은혜를 잃는다면

사미승이 감을 훔쳐먹는 일이야 어찌 괴이하랴.

[繫頸住持4]

 

受恩不報則 奚怨乎狡兒之決訟가?

은혜를 입고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교활한 아이의 결송을 또한 원망할 수 있겠소?

 

以至洪善之妄信天帽와 致義之虛逐雙鹿과

홍선이 천모를 맹신함에 이르고

치의가 헛되이 쌍록을 몰아내는 데 이르고

 

慧能之 繫頸煙花가 皆駭俗之殷鑑也니

혜능이 연화에 의해 목을 매인 것들은

모두 해괴한 풍속의 은감이요

 

以之修身則 身不得不修요

以之齊家則 家不得不齊요

이로써 자신을 수양하면

몸은 수양되지 않을 수 없고

이로써 집안을 다스린다면

집안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推而達之天下에 安王而不致其功哉아?

이를 미루어 천하에 도달한다면

어디서나 왕노릇하여 그 공을 이루지 않겠소?

 

古者에 聖賢의 垂世立敎之言이 亦不過如斯而已로라.」한대,

옛날 성현이 세상에 알려 가르침을 세운 말들이

또한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을 뿐이로다.”

 

客이 曰「唯唯라.」하야

객이 말했다.

“예, 그렇습지요.”

 

於是에 書于冠諸篇端而

이에 여러 편 글의 첫머리에 서문을 쓴다.

 

無爲子 江希孟은 序하노라.

무위자 강희맹은 서문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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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鬼棒變怪(귀봉변괴)

*유명한 제329화를 원문[한문]:국문 대역으로 다시 본다. 제329화 鬼棒變怪(귀봉변괴) -도깨비의 몽둥이가 괴상하게 변하다 鄕村有一寡女常言 ( 향촌유일과녀상언) 시골에 한 과부가 항상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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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제329화를 원문[한문]:국문 대역으로 다시 본다.

제329화 鬼棒變怪(귀봉변괴)

-도깨비의 몽둥이가 괴상하게 변하다

 

鄕村有一寡女常言

( 향촌유일과녀상언), 시골에 한 과부가 항상 말하기를,

願女鬼神相親

(원여귀신상친), "도깨비와 더불어 서로 친하기를 원하여

親卽可望之物 無不持來

(친즉가망지물 무불지래), [만약] 친하면 가히 바라는 물건을 아니 가져옴이 없으며

疎卽田野之穀逆植 蓋入釜中

(소즉전야지곡역식 개입부중), [만약 사이가] 소원하면

[도깨비가] 밭들의 곡식을 거꾸로 심어 놓으며, [솥] 두껑을 솥 안에 넣으며

沙岩投入房中云

(사암투입방중운), 모래와 바위를 방안으로 던져 넣는다." 고 하였다.

 

一夜寡女獨房中

(일야과녀독방중), 하루는 밤에 [그] 과부가 홀로 방 가운데 앉아 있으려니

鬼神一物投入於房內

(귀신일물투입어방내), 도깨비가 한 물건을 방 안으로 던져 넣자

驚愕細看卽 一長大之陽物也

(경악세간즉 일장대지양물야), [과부가] 놀라 [그 물건을] 자세히 본즉

[그것은] 하나의 길고 큰 양물이었다.

心思曰 鬼神使我同情云

(심사왈 귀신사아동정운),

 [과부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말하기를,

'도깨비가 나를 동정하는구나.' 운운하며

手執戱之曰 此何用物耶

(수집희지왈 차하용물야), 손으로 그것을 집어 장난치며 말하기를,

"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忽變爲一健壯之總角

(홀변위일건장지총각), [그 양물이] 갑자기 변하여 한 건장한 총각이 되어

不問曲直 遂成雲雨之戱

(불문곡직 수성운우지희), 불문곡직하고 드디어 과부와 성교의 놀음을 이루고

歡畢 變爲本一個陽物而已, 

(환필 변위본일개양물이이), 즐거움을 마치자

[다시] 변해 본래의 한 개의 양물로 될 뿐이었다.

寡女心中大喜而 間間敍其所懷

(과녀심중대희이 간간서기소회), [이에] 과부가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간간히 회포를 풀며

莫貴於此物 深藏篋裏

(막귀어차물 심장협리),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하여 상자 속에 깊이 간직하고

若有要卽 取出曰 此何用物耶

(약유요즉 취출왈 차하용물야), 만약 필요가 있으면 꺼내 가로대,

"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면

變爲總角而 必行淫事

(변위총각이 필행음사), 그 물건이 변하여 총각이 되어 반드시 음사를 행하였다.

* <淫事(음사) ; 음란한 일, 즉 성교>

自此以後 顔色常有喜悅

(자차이후 안색상유희열), 이후부터는 과부의 얼굴 빛에 항상 희열이 있었다.

 

一日有緊關出他故 打家於隣女

(일일유긴관출타고 타가어린녀), 

하루는 긴급한 관계의 일이 있어 출타하게 된 까닭으로 이웃 여자에게 집을 맡겼는데,

其女亦寡居 取爲情密者也

( 기녀역과거 취위정밀자야), 그 이웃 여자가 역시 과부로서

주인집 과부와 가장 정이 가깝게 된 자였다.

隣女偶開篋裏視之卽 有一物 恰似陽物也

(린여우개협리시지즉 유일물 흡사양물야), 이웃 여자가 우연히 상자 속을 열어 그곳을 본즉

한 물건이 있는데 [그 모양이] 양물과 흡사했다.

驚曰 此何用物耶

(경왈 차하용물야), 놀라서 말하기를, "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忽有一健壯之總角 强押而行姦

(홀유일건장지총각 강압이행간), 갑자기 한 건장한 총각이 억지로 친압하여 간음을 행하고

事畢還爲一個陽物也

(사필환위일개양물야), 일을 마치자 도로 하나의 양물이 되었다.

故心稱大寶

(고심칭대보), 고로 마음속으로 커다란 보배라고 일컬었는데

 

主女及歸家 隣女以前事實告

(주녀급귀가 린여이전사실고), 주인 여자가 귀가하자 이웃 여자가 그 앞서의 일을 사실대로 고하니

兩女間仍爲情疎妬爭故 遂訴于官

(양여간잉위정소투쟁고 수소우관), 두 여자 사이에 곧 정이 성기게 되고

질투로 다투게 된 까닭에 마침내 관가에 소송을 하였다.

 

倅以其物卽納細看卽 一個陽物也

(수이기물즉납세간즉 일개양물야). [이에] 원님이 그 물건을 곧 들이게(바치게) 하여

자세히 살펴본즉 한개의 양물이었다.

倅笑曰 此何用物耶

(수소왈 차하용물야), 원님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其物如前忽變 衆人中劫姦其倅

(기물여전홀변 중인중겁간기수), 그 물건이 앞서와 같이 갑자기 변하여

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원님을 겁간했다.

倅怒而告達于監營

(수노이고달우감영),원님이 노하여 감영에 고하여 알리니

監司曰 其有如此之理

(감사왈 기유여차지리), 감사가 가로대, "어찌]이와 같은 이치(理)가 있겠는가?" 하며

卽以本物納而見之後 異哉此何用物耶

(즉이본물납이견지후 이재차하용물야), 

곧 [그] 본래의 물건을 들이게 하여 그것(之)을 본 뒤에,

"이상도 하구나. 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忽變爲一壯漢 强劫監司

(홀변위일장한 강겁감사), 장대한 놈이 변하여 억지로 감사를 겁탈했다.

 

監司大怒而 使此妖物放任卽 騷動人世

(감사대노이 사차요물방임즉 소동인세), 감사가 크게 노하여

"이 요상한 물건으로 하여금 그대로 방임한즉 인간 세상을 요동하겠구나 ." 말했다.

燒於火而不燒

(소어화이불소), 불에 태웠으나 안 타고

浸於熱湯而不熟故 無可奈

(침어열탕이불숙고 무가네), 뜨거운 물에 담갔으나 익지 않는고로, 어찌할 방법이 없는지라

還送其寡女

(환송기과녀), 그 과부에게 되돌려 보냈다.

 

https://kydong77.tistory.com/13065

 

고금소총(古今笑叢)이란 무엇인가?

[참고] http://kydong77.tistory.com/10674 고금소총 출간에 대하여 [서울숲] *고금소총 출간에 대한 기록으로는 아래 머리말이 자세하여 여기에 옮긴다. 古今笑叢 http://nyscan33.egloos.com/2114750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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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주)

조선시대에는 중인 이상의 소수의 사람들만 한문 사용이 가능하여 설화의 원문은 한문으로 기록했을지라도 설화의 이용자들은 구전을 통하여 우리말로 서로 소통했으므로 설화가 소멸하지 않고 유전된 그 자체만으로도 양반과 평민사회에서 설화의 본질인 '흥미'라는 요소가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1947년 송신용(宋申用)이  <어수록(禦睡錄)> <촌담해이> <어면순(禦眠楯)>을 <조선고금소총>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정음사(正音社)에서 출판했다.

그리고 1959년에는 민속자료간행회에서 <고금소총> 제1집을 유인본(油印本)으로 간행했다.

여기에는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禦眠楯)>,

부묵자(副墨子)의 <파수록(破睡錄)>,

편자 미상의 <기문(奇聞)>,

장한종(張寒宗)의 <어수신화(禦睡新話)>,

편자 미상의 <성수패설(醒睡稗設)>,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頤)>,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續禦眠楯)>,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蓂葉志諧)>,

편자 미상의 <진담록(陳談錄)>,

편자 미상의 <교수잡사(攪睡雜史)> 등

 

11권의 소화집에 789편의 소화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1970년 조영암(趙靈巖)<고금소총>이라는 표제로 소화 379편을 번역하고 그 원문까지 인용하여 명문당(明文堂)에서 발간한 바 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306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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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僧藁俵9[村談]213

신승고표(神僧藁俵)

(신통한 스님의 짚 가마니)

 

시골에 한 과부가 가난한데다 외롭게 홀로 살았는데,

오랫동안 정절(貞節)을 지켜 그 명성이 원근에 자자하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한 노승(老僧)이 바랑을 지고

석장(錫杖)을 이끌고 와서 사립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거늘,

『저의 집은 워낙 가난하고 또 남정네도 없으며,

내가 홀로 단칸방에 살 뿐이니 딴 데로 가소서.』

『이미 날은 어두웠고 밖에 인가가 없으니

자비심으로써 일박을 허락하시면 그 은혜가 크리로다.』

하므로 부득이 허락한 후에

보리밥과 토장국이나마 깨끗이 바치니

스님이 주림 끝에 달게 먹었다.

 

주인은 늙은 스님을 생각하여 아랫목에서 쉬게 하고

자기는 웃목에서 자게 되었는데,

여주인은 옷조차 벗지 않고 그냥 잤다.

서로 잠이 오지 않아서 끙끙대다가 스님이 잠든 체하고

다리로써 여주인의 다리 위에 걸어 놓은 즉,

여인이 양손으로 공손히 내려놓았고,

얼마 후에 또 한 손을 여인의 가슴 위에 놓은 즉

여인이 또한 두 손으로 공손히 내려놓으며,

『너무 곤하셔서 이렇게 하시는가보다.』

하고 새벽이 되자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 깨끗하고 담박한 밥상을 올렸다.

 

스님이 또 달게 다 자신 후,

『볏짚이 있으면 몇 단 주시오.』

하거늘 볏짚을 드렸더니

그것으로 스님은 가마니를 짜서,

『후한 은혜를 무엇으로 사례하리까?

이로써 예사(禮謝)하노라.』

하고 소매를 떨치고 가니,

그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얼마 후에 그 가마니 속을 들여다보니

이것이 웬일이냐, 흰 쌀이 그 속에 그득했다.

쌀을 궤 속에 옮기고 난즉

또 다시 그 가마니 속이 쌀로 불룩했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큰 부자가 되었다.

 

이웃 마을에 욕심 많은 과부 한 사람이 소문을 듣고,

『나도 마땅이 중이 와서 자게 되면 그렇게 하리라.』

하고 스님이 찾아오기를 고대했다.

 

하루는 석양 무렵에 한 늙은 스님이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거늘,

과부가 곧 허락하여 저녁밥을 대접한 후 함께 한 방에서 자더니,

여인이 거짓 자는 체하다가 먼저 자기 다리를 스님의 배 위에 걸쳐 놓으니,

스님이 다시 가만히 내려놓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아침에 여인이 일찍 일어나 조반 지어 대접하니

스님이 떠날 때 과연 볏짚을 청햇다.

여인이 크게 기꺼워하여 볏짚 여러 단을 가져가니

스님 또한 가마니 한 개를 만들어 주곤 훌훌히 떠나갔다.

 

여인이 그 가마니 속을 들여다 봤다.

이것은 무엇이냐? 해괴하기 그지없었다.

그 속에는 양물(陽物)이 하나 그득 쌓였다.

여인이 크게 놀라 솥뚜껑으로써 덮으니

이번엔 솥 속에도 그것이 꽉 차올랐다.

여인은 미칠 지경이 되어,

그것을 우물에 던져 버리니,

우물 안에 그득한 것이 양물(陽物)천지였다.

 

그것이 어지러이 날고 뛰어서 온 집안에 꽉 차니

여인이 과욕(過慾)을 뉘우쳐

신승(神僧)의 경계(警戒)하심을 비로소 깨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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