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溫達)

-삼국사기 권 제45 , 列傳第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容貌龍鍾可笑 中心則𣈑然(𣈑恐作曄)

얼굴이 험악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다.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며,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시정간을 왕래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평강왕의 어린 딸이 곧잘 울었으므로 왕이 농담으로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야 되겠다”라고 하였다.

王每言之.

왕은 그녀가 울 때마다 이런 말을 하였다.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딸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딸을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公主對曰

공주가 대답하기를,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오늘 무슨 까닭으로 전일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故曰王者無戱言

그러므로 ‘임금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今大王之命謬矣. 妾不敢祗承

이제 대왕의 명령이 잘못되었으므로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니,

王怒曰

왕이 화를 내어 말했다.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정말로 내 딸이 될 수 없다.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너 갈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


於是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이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걸고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떠났다.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見盲老母 近前拜問其子所在

그리고 눈먼 노모를 보고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절을 하며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老母對曰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내 아들은 가난하고 보잘 것이 없으니, 귀인이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보통이 아니고, 그대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으니, 필시 천하의 귀인인 듯합니다.

因誰之侜以至於此乎

누구의 속임수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다 못하여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 속으로 간 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공주가 그 집을 나와 산 밑에 이르렀을 때,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공주가 그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니 온달이 불끈 화를 내며 말했다.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이는 어린 여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니 필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遂行不顧

온달은 그만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공주는 혼자 돌아와 사립문 밖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모자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온달이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내 자식은 비루하여 귀인의 짝이 될 수 없고, 내 집은 몹시 가난하여 정말로 귀인이 거처할 수 없습니다.”

公主對曰

공주가 대답하였다.

古人言 一斗粟猶可春 一尺布猶可縫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꿰맬 수 있다.’고 하였으니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만일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꼭 부귀해야만 같이 살겠습니까?”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공주가 금팔찌를 팔아서 전지, 주택, 노비, 우마, 기물 등을 사들이니 살림 용품이 모두 구비되었다.

 

初買馬 公主語溫達曰

처음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侯換之

“부디 시장의 말을 사지 말고, 나라에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여 백성에게 파는 말을 선택하되, 병들고 수척한 말을 골라 사오세요.” 라고 하니

溫達如其言

온달이 그대로 말을 사왔다.

公主養飼其勤 馬日肥且壯

공주는 부지런히 말을 길렀다. 말은 날로 살찌고 건장해졌다.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고구려에서는 언제나 봄 3월 3일을 기하여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祭天及山川神

낙랑 언덕에 모여서 사냥하여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至其日王出獵 羣臣及五部兵士皆從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여러 신하와 5부의 군사들이 모두 수행하였다.

於是溫達以所養之馬隨行

이 때 온달도 자기가 기르던 말을 타고 수행하였는데,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그는 항상 앞장 서서 달리고, 또한 포획한 짐승도 많아서 다른 사람이 그를 따를 수 없었다.

王召來問姓名 驚且異之

왕이 불러서 성명을 듣고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時後周武帝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이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을 공격하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 들에서 맞아 싸웠다.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擊大克

그 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공을 논의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王嘉歎之曰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기를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작위를 주어 대형으로 삼았다.

由此寵榮尤渥 威權日盛

이로부터 그에 대한 왕의 은총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위풍과 권세가 날로 성하여졌다.

及陽岡王卽位 溫達奏曰

양강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기를

惟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북 지역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만들었으므로,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그곳의 백성들이 통탄하며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고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一往必還吾地 王許焉

단번에 우리 땅을 도로 찾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臨行誓曰

그가 길을 떠날 때 맹세하였다.

鷄立峴-竹嶺已西不歸於我 則不返也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遂行 與羅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失所中 路而死(路 趙炳舜本作踣)

그는 드디어 진격하여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欲葬 柩不肯動

그를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公主來撫棺曰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死生決矣 於乎歸矣

“사생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라 말하고,

遂擧而窆

마침내 영구를 들어 하관하였다.

大王聞之悲慟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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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국보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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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동요

薯童謠 -武王

-삼국유사 紀異 제2

[은자주]우리는 새로운 자아의 모습을 꿈꾼다. 바보 온달이 장수로 신분상승을 한 것은 확실히 인생역전의 드라마다. 거기에는 조력자로 평강공주가 있었다. 그래서 우린 기댈 언덕을 찾고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는지 모른다. 독불장군은 없다지 않는가?

 

무왕은 적극적 공세로 선화공주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결혼이야말로 굳이 따지지 않고 니끼 내꺼고 내끼 내꺼인 부(富)를 공유 내지는 분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가진 자들끼리, 또는 부자들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혼인함으로써인류사의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있다. 온달의 잠재능력을 개발한 평강공주의 솔선수범은 시사하는 바 크다.

 

<서동요>와 삼국사기의 <온달전>을 함께 읽어 본다. <서동요>에선 보디가드와 성관계를 가진 후 상대방의 이름을 안 선화공주의 성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정조관념이 한반도에 깊게 뿌리내린 건 조선시대의 열녀운동을 통해서였다. 김유신의 부모님도 야합했고, 무열왕의 누이동생인 문희도 김유신과그러했다.

 

온달 이야기는 남한에서는 러브스토리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많으나 북한 국문학사에서는 신분상승도 가능하게 하는‘무예(武藝)’를 강조하는 영웅담으로 소개하고 있다. 정치체제에 맞는 설화의 이해라 하겠다.

 

武王(古本作武康 非也. 百濟無武康)

 

第三十武王名璋.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母寡居 築室於京師南池邊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못가에 살았는데

池龍交通而生

그 못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

小名薯童. 器量難測

어릴 때의 이름은 서동이라 불렀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넓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常掘薯蕷 賣爲活業

항상 마를 캐어다 팔아 생계를 꾸렸으므로

國人因以爲名.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고 불렀다.

聞新羅眞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化)美艶無雙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가 무척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剃髮來京師

서동은 머리를 깎고 서라벌로 가

以薯蕷餉閭里羣童 羣童親附之.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그를 따랐다.

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동요을 지어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하였다.

 

善化公主-主-隱 ※一作善花公主

他-密 -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善化公主님은/ 선화공주님은

남그으지 얼어두고/ 남 그윽히 얼어 두고

맛둥방을/ 맛둥방을

바매 몰 안고가다/ 밤에 몰래 안고 가다.

 

 

 

童謠滿京 達於宮禁

동요가 서울에 널리 퍼져 대궐에까지 알려지니

百官極諫 竄流公主於遠方.

백관들이 임금에게 간곡히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했다.

將行 王后以純金一斗贈行.

공주가 떠나려 하자 왕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公主將至竄所.

공주가 귀양지에 이르렀을 즈음,

薯童出拜途中. 將欲侍衛而行.

서동이 도중에 나타나 공주에게 절하며 모시고 가고자 했다.

公主雖不識其從來 偶爾信悅.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지는 알지 못했지만, 우연함을 믿고 기뻐하여

因此隨行 潛通焉

이로 인하여 수행하다가 몰래 사통했다.

然後知薯童名

그런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았다.

乃信童謠之驗.

이에 동요의 증험을 믿었다.

 

同至百濟 出王后所贈金 將謀計活.

서동과 함께 백제에 이르러 모후가 준 금을 꺼내놓고 생계를 도모하려 하는데,

薯童大笑曰

서동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此何物也?」

“이게 무엇이요?”

主曰: 「此是黃金, 可致百年之富.」

공주:“이것은 황금이니 평생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薯童曰:“吾自小掘薯之地 委積如泥土.”

서동: “내가 어렸을 적부터 마를 캐던 곳에 쌓인 것이 진흙처럼 있소.”

主聞大驚曰

이에 공주가 크게 놀라서 말했다.

“此是天下至寶. 君今知金之所在

“그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배이니 그대가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신다면,

則此寶輸送父母宮殿何如?”

그것을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薯童曰“可.”

서동: “좋소”

於是 聚金 積如丘陵.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詣龍華山師子寺知命法師所 問輸金之計.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 이것을 수송할 방법을 물었다.

師曰“吾以神力可輸. 將金來矣.”

법사: “내가 신통한 힘으로 수송할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主作書 幷金置於師子前.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옮겨 놓았다.

師以神力 一夜輸置新羅宮中.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그 금을 하룻밤 동안에 신라 궁중으로 보냈다.

眞平王異其神變 尊敬尤甚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그를 더욱 존경했으며,

常馳書問安否.

늘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薯童由此得人心 卽王位.

서동은 이로 말미암아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무왕)

 

一日王與夫人 欲幸師子寺 至龍華山下大池邊

어느 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가에 닿으니

彌勒三尊出現池中 留駕致敬.

미륵삼존이 못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했다.

夫人謂王曰

부인이 왕에게 말했다.

“須創大伽藍於此地 固所願也.”

“이곳에 큰 절을 세우십시요. 진실로 저의 소원입니다.”

王許之. 詣知命所 問塡池事.

왕이 그것을 허락하고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의논했다.

以神力一夜頹山塡池爲平地.

이에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에 산을 헐고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乃法像彌勒三會(註,尊)殿․塔․廊廡各三所創之.

여기게 미륵삼존의 상을 만들고, 회전(會殿)과 탑과 낭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額曰彌勒寺(國史云王興寺).

편액을 미륵사라 했다.(國史에는 왕흥사라 했다.)

眞平王遣百工助之. 至今存其寺

진평왕이 여러 工人들을 보내어 그 역사를 돕도록 했는데, 지금껏 그 절은 보존되었다.

(三國史云 是法王之子 而此傳之獨女之子. 未詳).

(삼국사기에는 법왕의 아들이라 하였는데 이 전기에는 홀어미의 아들이라 하니 자세하지 않다.)

 

◇薯童謠 해설

󰋬26대 진평왕(재위 579-632)

󰋬이전부터 있었던 민요를 진평평왕대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선화공주와 결부시킴. 상하층의 신분의 장벽을 무너뜨림.

󰋬(4구)[夕+卩]-乙:(小倉 ․梁柱東)卯乙ㅡ몰. 몰래.

[서재극] 알안겨거다.

[김완진] 알흘 안고 가다.‘알’은 은어 내지 비유적 표현.

[은자주]남녀의 샅에는 '-알'이라 불리우는 외음부가 있다. 여기서는 남자의 것으로 대유법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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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안민가 -충담사

安民歌

景德王 忠談師․表訓大德


[註,누락부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9 孝成王 二年(738)

夏四月. 唐使臣邢瓙以老子道德經等文書獻于王.]

4월에 당사 형숙이 노자도덕경 등 문서를 왕에게 바쳤다.


[누락]德經等 大王備禮受之.

당에서 도덕경(德經-노자의 도덕경) 등을 보내니 대왕이 예를 갖추어 이를 받았다.

王御國二十四年 五岳三山神等 時或現侍於殿庭.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만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간혹 모습을 나타내어 대궐의 뜰에서 왕을 모시었다.

三月三日 王御歸正門樓上 謂左右曰

3월3일에 왕은 귀정문의 누상에 나아가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誰能途中得一員榮服僧來?”

“누가 도중에서 능력 있는 스님을 한 사람 데리고 올 수 있겠소?”

於是適有一大德 威儀鮮潔 徜徉而行.

이 때 마침 큰 스님이 위의를 갖추고 지나가고 있었다.

左右望而引見之.

좌우의 신하가 바라보고 그를 데리고 와서 왕께 뵈었다.

王曰“非吾所謂榮服僧也 退之.”

왕:“내가 말하는 위의를 갖춘 스님이 아니다. 물러나라”


更有一僧 被衲衣

다시 스님 한 사람이 납의(納衣)를 걸치고

負櫻筒(一作荷簣) 從南而來.

앵통(櫻筒)을 혹은 삼태기를 걸머지고 남쪽에서 왔다.

王喜見之 邀致樓上

왕은 기뻐하며 누상으로 인도하였다.

視其筒中 盛茶具已.

앵통의 가운데를 바라보니 다구(茶具)만이 가득했다.

曰“汝爲誰耶?”

왕: “그대는 누구인가?”

僧曰“忠談.”

중: “충담이라 하옵니다.”

曰“何所歸來?”

왕: “어디에서 왔소?”

僧曰“僧每重三重九之日

중: “저는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이면

烹茶饗南山三花嶺彌勒世尊.

차를 다려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드립니다.

今玆旣獻而還矣.”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王曰“寡人亦一甌茶有分乎?”

왕: “나에게도 차를 한 사발 주시겠소?”

僧乃烹茶獻之. 茶之氣味異常 甌中異香郁烈.

스님은 차를 다려 왕께 드렸는데 차 맛이 이상하고 그릇 속에 향기가 그윽하였다.

王曰“朕嘗聞師歌讚耆婆郞詞腦歌

왕: “내가 듣건대 스님께서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思腦歌)가

其意甚高 是其果乎?”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요?”

對曰“然.”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王曰“然則爲朕作理安民歌.”

왕: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할 노래를 지어 주시오.”

僧應 時奉勅歌呈之.

스님은 즉시 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王佳之 封王師焉.

왕이 그를 가상히 여겨 왕사(王師)로 봉하니

僧再拜固辭不受.

스님은 두 번 거듭 절하고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安民歌曰,


君-隱-父-也

臣-隱-愛-賜-尸-母-史-也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民-是-愛 -尸-知-古-如

窟 -理-叱-大-肹-生-以-支 -所-音-物-生

此-肹-喰-惡-攴-治 -良-羅

此-地-肹-捨 -遣-只-於-冬-是-去-於-丁

爲-尸-知-國 -惡-攴-持 -以 支-知-古-如

後句

君-如 -臣-多-支-民-隱-如

爲-內-尸-等-焉

國 -惡-太-平-恨-音-叱-如


君은 어비여

臣은 다사샬 어시여

民은 얼한 아해고 하샬디

民이 다살 알고다

구믈ㅅ다히 살손 物生

이흘 머기 다사라

이따흘 바리곡 어듸갈뎌 할디

나라악* 디니디 알고다

아으 君다이 臣다이 民다이 하날단

나라악 太平하니잇다.

[현대역]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 아이로다!’ 하신다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이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시렵니까?’ 한다면

나라가 유지될 줄 알리라.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늘 태평할 것입니다.


◇安民歌 해설

󰋬경덕왕 24년(765) 3월 충담사에게 <安民歌>를 짓게 함. 경덕왕은 후사가 없어 의상의 십대제자 중 한 분이며 화엄학의 고승인 表訓에게 청해 재차 하늘에 올라가 딸을 아들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으나 예언대로 나라가 위태로움. 19년 二日竝現에 이어 764년 진골 金良相이 시중이 되어 더욱 불안을 느낌. 765년 6월에는 8세의 혜공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비운을 맞음. 결국 780년 김양상은 37대 선덕왕이 되어 반왕당파에게로 권력 이동.

󰋬三花嶺에서 미륵에게 차를 공양하고 돌아오는 충담사를 부른 것은 반대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권력에서 소외된 화랑세력과의 결탁을 의미함.


4.찬기파랑가 -충담사

讚耆婆郞歌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삼국유사 紀異 제2


[은자주]지철로왕 때도 얘기한 바이지만 향가 설화 화자들은 왕의 음경 길이를 애기하는 걸 예사로 여겼던 듯하다. 말하자면 그 정도의 성담론은 금기사항이 아니었던 시대였다. 八寸이나 되는 음경 길이는 지증왕의 一尺五寸에 비하면 겨우 절반이 넘는 길이지만 결코 작은 고추가 아니다. 왕비가 無子하여 폐위한 걸 보면 굳이 그 길이를 따진 것은 후사(後嗣) 문제와 연결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증왕 얘기에서도 음경이 너무 커서 배우자를 구하기 어렵웠다고 한 기록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충담사를 불러들여 <안민가>를 받은 걸 보면 경덕왕대는 극도의 혼란기였고, 각간의 딸을 후비로 맞아야 할 만큼 왕권도 흔들렸다. 그러나 경덕왕은 행복했다. 하늘의 천제와 소통하는 표훈대덕과 충언을 아끼지 않는 충담사도 그의 신하가 아닌가?


서술 순서대로라면 <안민가>부터 살펴야 하겠지만 향가와 설화의 수월성을 기준으로 <찬기파랑가>의 내용부터 검토해 보겠다.



讚耆婆郞歌曰,

찬기파랑가에 이르기를,


咽-嗚-爾-處-米

露 -曉-邪-隱-月-羅-理

白-雲 -音-逐-于-浮-去-隱-安-攴-下

沙-是-八-陵-隱-汀 -理-也-中

耆-郞-矣-皃-史-是-史-藪-邪

逸-烏-川 -理-叱-磧 -惡-希

郞-也-持 -以-支 -如-賜-烏-隱

心 -未-際-叱-肹-逐-內-良-齊

阿-也, 栢-史-叱-枝 -次-高-攴 -好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열치매 ‘구름을 열치매

나토얀 리 나타난 달이

흰구룸 조초 떠가는 안디하 흰 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닌가?‘

새파란 나리여해‘새파란 냇물에

耆郞애 즈시 이슈라 기파랑의 모습이 잠겨 있네!‘

일로 나리ㅅ* 재벽해일오(逸烏) 냇가 조약돌에서

郞애 디니다샤온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으매갓흘 좇누아져 ‘마음의 끝’을 좇으려 하네‘

아으, 잣가지 노파 아, 잣가지 드높아

서리 몯누올 花判이여. 서리를 모를 그대 모습이여!


王玉莖長八寸.

왕은 옥경(玉經)의 길이가 여덟치나 되었다.

無子廢之 封沙梁夫人.

아들이 없어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에 책봉했다.

後妃滿月夫人 諡景垂太后 依忠角干之女也.

후비인 만월부인의 시호는 경수태후이며 의충 각간의 딸이었다.

王一日 詔表訓大德曰

왕이 어느날 표훈대덕에게 말했다.

「朕無祜 不獲其嗣

“내가 복이 없어 아들을 얻지 못했으니

願大德請於上帝而有之.」

원컨대 대덕은 상제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하여 주오.”

訓上告於天帝.

표훈은 하늘에 올라가 천제께 고했다.

還來奏云

돌아와 아뢰었다.

「帝有言 求女則可 男則不宜.」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을 구하면 가능하지만 아들이라면 불가하다 하옵니다.”

王曰「願轉女成男.」

왕: “원하건대 딸을 바꾸어서 아들이 되게해 주오.”

訓再上天請之.

표훈이 다시 하늘에 올라 상제께 청하니

帝曰「可則可矣 然有男則國殆矣.」

상제께서 말하기를,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訓欲下時 帝又召曰

표훈이 하계로 내려오려고 할 때 상제가 불러 말하기를,

「天與人不可亂.

“하늘나라는 인간세상과 어지럽힐 수 없다.

今師往來如隣里 漏洩天機

지금 대사가 왕래하기를 이웃 마을처럼 하여 천기를 누설하니

今後宜更不通.」

오늘 이후로는 의당 다시는 교통하지 말라.”

訓來以天語諭之.

표훈은 지상으로 돌아와 천제의 말로 깨우쳤다.

王曰「國雖殆得男而爲嗣足矣.」

왕: “나라가 비록 위태로울지라도 아들을 얻어 후사를 삼으면 족하리라.”

於是 滿月王后生太子. 王喜甚.

그 후 만월왕후가 태자를 낳으니 왕이 기뻐하였다.

至八歲王崩. 太子卽位 是爲惠恭大王.

태자가 여덟살 때 왕이 세상을 떠나니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혜공대왕이다.

幼沖故太后臨朝

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태후가 임조(臨朝)하였는데

政條不理 盜賊蜂起 不遑備御

정사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막아낼 수 없었다.

訓師之說驗矣.

표훈대사의 말이 증험이 있었다.

小帝旣女爲男

왕은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故自期晬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戱.

돌날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언제나 부녀자의 놀이를 하였다.

好佩錦囊 與道流爲戱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도류(道流-도사)와 어울려 희롱하였으므로

故國有大亂

나라가 크게 어지러웠다.

修(註,終)爲宣德與金良相*所弑. *金良相:37대 선덕왕이 됨.

마침내 선덕왕과 김양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은자주]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16년조에 의하면, 이찬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키자 상대등 김양상이 이를 진압하고 또한 혜공왕은 난병에게 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自表訓後 聖人不生於新羅云.

표훈은 이후로 신라에는 성인이 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4.讚耆婆郞歌 해설

󰋬왕이 ‘讚耆婆郞詞腦歌’라 하여 ‘詞腦’를 덧붙인 것은 사뇌가의 전형적 작품 또는 사뇌가가 갖춰야 할 높은 이상을 잘 갖춘 작품임을 나타낸 듯. 사뇌가를 10구체 향가 형식으로 보는 이들도 있음. 사뇌는 우리말 표기로 ‘東川, 東國’의 뜻이다.

[홍기문역]

王曰「내 들으니 대사가 지은 기파랑을 찬양한 사뇌가는 그 뜻이 매우 높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對曰「그렇습니다.」


󰋬花判:꽃잎, 고갈, 화랑의 상징.

󰋬주제: 기파랑의 높은 인격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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