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彗星歌 -융천사

융천사 혜성가 진평왕대

融天師 彗星歌 眞平王代

[은자주]세 화랑의 인격은 해와 같아서 달 아래 떠가는 혜성 따위야 문제될 게 없다는 화랑 찬양의 노래다.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와 동궤의 작품이다. 신라 천 년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이런 화랑과 충담사 같은 영향력 있는 인격자들이 신라 뒤안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第五居烈郞 第六實處郞(一作突處郞) 第七寶同郞等 三花之徒

제5 거열랑 제6 실처랑 제7 보동랑 등 화랑의 무리 세 사람이

欲遊楓岳 有彗星犯心大星.

풍악에 놀러가려는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했다.

郎徒疑之 欲罷其行.

낭도들은 이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하여 그 여행을 중지하려 했다.

時天師作歌 歌之. 星怪卽滅

이 때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서 부르니 별의 변괴는 사라졌다.

日本兵還國 反成福慶.

일본 군대가 저희 나라로 돌아가니 도리어 경사가 되었다.

大王歡喜 遣郎遊岳焉.

임금이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에 놀게 했다.

歌曰,


舊-理-東-尸-汀-叱-乾達婆-矣

游-烏-隱-城-叱-肹-良-望-良-古

倭-理-叱-軍-置-來-叱-多

烽-燒-邪-隱-邊-也-藪耶

三花-矣-岳 -音-見-賜-烏-尸-聞-古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衣

道-尸-掃-尸-星-利-望 -良-古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邪

此-也-友-物-北*-所-音-叱-彗-叱-只-有-叱-故

녜 새ㅅ믌갓 乾達婆 옛날 동해 물가/

노론 잣흘란 바라고 건달바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예ㅅ 軍두 옷다 “왜군도 왔다!”고

燧살얀 갓 이슈라 봉화를 든 변방이 있구나.

三花애 오름보샤올 듣고 세 화랑의 산구경 오심을 듣고

달두 바즈리 혀렬바애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길쓸 별 바라고 길 쓸 별을 바라보고

彗星여 살반여 사라미 잇다 “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

아으,달 아래 떠갯더라 아, 달은 저 아래로 떠나가 버렸더라

이어우 므슴ㅅ 彗ㅅ기 이실고 이 보아 무슨 혜성이 있을꼬.



12.彗星歌 해설

󰋬26대 진평왕 16년(594)으로 추정.

융천사는 승려이고 천문관이고 변괴를 물리치는 주술사.

󰋬백제 威德왕 41년(594) 겨울 11월에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남(삼국사기 백제본기)

󰋬心大星은 신라인들의 국가 또는 국왕을 상징하는 별.

󰋬건달바는 불교에서 말하는 음악과 놀이의 신이고, “건달바가 논 성”은 바로 신기루.

󰋬(4구)烽-燒-邪-隱-邊 -也-藪 -耶:(김완진)횃불 올린 어여 수풀이여.

홰-태-야-은-어여-여-수플-야>홰 얀 어여 수프리야

[김완진,p.131]‘邊也’는 ‘어여’로서 ‘스플’에 붙는 고유명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後世의 文證이 시기적으로 뒤지지만(漢淸文鑑), ‘귀어엿’, ‘그릇부리 어엿’으로 나타나는 古代語形이 ‘어여’였는지, 아니면 固有名詞 ‘어여’를 나타내기 위하여 ‘邊’의 訓 ‘어엿’을 이용하면서 그 末音이 ‘엿’이 아닌 ‘여’임을 ‘야’字로 표시하였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8구)彗星여 살반여 사라미 잇다: 사실이 아님. 혜성이 없다고 하면 나타난 혜성이 사라지는 언어의 주술성.

󰋬(10구)此-也-友-物-北*-所-音-叱: ‘北*’의 표기 문제. ‘友-物’의 語釋.

[양주동,p.872] ‘叱’의 誤字.

[김완진,p.135] ‘므슴’을 나타내는 것은 ‘物-北*-所-音’이 아니라 ‘北*-所-音’으로 본다. 문제의 ‘北’자는 ‘甚’자의 草體로부터의 轉訛라고 보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甚’(=怎즘:어찌)은 ‘무슨’의 뜻으로 ‘甚所音’은 전형적인 訓主音從의 표기요, ‘므슴’을 나타내는 데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友-物’의 語釋

[소창진평] 이에 밧갓듸 밤ㅅ 비질악(이) 잇고

[양주동] 이어우 므슴ㅅ 彗ㅅ기 이실고

[지헌영] 이예 벋달ㅅ 살(헤)ㅅ아 잇고 ‘벋들’

[김선기] 이야 벋믈 다뵈숌ㄷ 쒿끼 읻고 ‘받몬’

[서재극] 이야 벋믈 배삼ㅅ 뷧즈락 잇고 ‘벋믈’(의미는 ‘벗들’)

[김준영] 이여우 믓솜 쉿ㄱ* 잇고. *쉬+(종성이 ㅅ+ㄱ)

[김완진] 이예 버믈 므슴ㅅ 彗ㅅ 닛고

‘繞’를 뜻하는 ‘버믈’을 想定함. 이-여-버믈-믈>이예 버믈>이에 어울릴 (무슨 彗星을 함께 하였습니까.)

󰋬세 화랑은 달과 별을 무색하게 하는 해와 같이 우뚝한 존재. 주술적 사고방식에다 화랑의 기백을 찬양하는 말을 첨가하여 격조 높은 암시를 창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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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遇賊歌 -영재

 

영재우적

永才遇賊-삼국유사 피은

 

釋永才性滑稽 不累於物 善鄕歌.

스님 영재는 천성이 익살스럽고 재물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향가를 잘했다.

暮歲將隱于南岳 至大峴嶺 遇賊六十餘人

만년에 장차 남악에 은거하려고 대현령에 이르렀을 때 60여명의 도둑떼를 만났다.

將加害.才臨刃無懼色 怡然當之.

도둑들이 해하려 했으나, 오히려 영재는 칼날 앞에서도 겁내는 기색이 없이 화기로운 태도로 그들을 대하였다.

賊怪而問其名 曰永才.

이상히 여긴 도둑들이 그의 이름을 묻자 영재라 대답했다.

賊素聞其名 乃命□□□作歌

평소 도둑들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에 노래를 짓게 했다.

 

其辭曰,그 가사는 이러하다.

 

自-矣-心-米

皃史-毛-達-只-將來-呑-隱-日

遠-鳥*-逸-⃞-⃞-過-出-知-遣 ※鳥:烏의 잘못.※⃞⃞:다아(盡良)/마(旣) 등의 말

今-呑-藪-未-去-遣-省-如

但-非-乎-隱-焉-破戒主

次-弗-⃞-史-內-於-都-還-於-尸-朗也

此-兵物-叱-沙-過 -乎

好-尸-曰*-沙-也-內-乎-呑-尼 ※曰:日?

阿耶 唯-只-伊-吾-音-之叱-恨-隱-㵛-陵-隱

安攴-尙-宅-都-乎-隱-以-多

 

제 마으매 제 마음에

즛* 모다렷단 날 형색탐(形色貪)을 모르려 하던 날

머리 ⃞⃞ 디나치고 멀리 ⃞⃞(‘欲界‘일 듯) 지나치고

엳딴 수메 가고쇼다 이제는 숨어서 가고 있네.

오직 외온 破戒主 오직 그릇된 파계승을

저플 즈새 나외 또 돌려

:두려워할 모습으로 (내 어찌) 또다시 돌아가리.

이 잠갈사 디내온 이 창칼이야 지내고 나면

됴할날 새누옷다니 좋은 새날이 오리니

아으, 오지 이오맛한 善은 아, 오직 요만한 선업(善業)은

안디 새집 다외니다 새 집이 아니 되오이다.

 



 

賊感其意 贈之綾二端.

도둑들은 이 노래에 감동하여 비단 2단을 주었다.

才笑而前謝曰

영재는 웃으면서 이를 사양하였다.

“知財賄之爲地獄根本

“재물이 지옥으로 가는 근본임을 알고

將避於窮山 以餞一生

바야흐로 깊은 산속으로 피해가서 여생을 마치려 하는데

何敢受焉?”

어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하며

乃投之地.

그것을 땅에 던졌다.

賊又感其言 皆釋劒投戈

도둑들은 그 말에 다시 감동되어 가졌던 칼과 창을 모두 버리고

落髮爲徒 同隱智異 不復蹈世.

머리를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어 함께 지리산에 숨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才年僅九十矣. 在元聖大王之世.

영재의 나이 거의 90이었으니 원성대왕의 시대였다.

讚曰,

기리어 읊는다.

 

策杖歸山意轉深 지팡이 짚고 산으로 돌아가매 품은 뜻 더욱 깊구나.

綺紈珠玉豈治心 능라며 주옥으로 어찌 마음 다스릴 수 있으랴.

綠林君子休相贈 綠林의 군자들아 서로 주고 받기를 금하라.

地獄無根只寸金 한 치의 금도 지옥으로 떨어질 근본이어라.

 

 

[참고]

[姜吉云역]

제-마음에

모습-못 알게-오려할-골짜기는

해가-머니-일찌기-지나치고

지금-단숨[息]에-가고 사라지고 싶다~가고 있구나

다만-잘못-숨은-破戒主

다루기 힘드는-모습-내어도-돌이킬-것입니까?

이-병장기야-허물인고

좋은-이야기야-시작하는-골짜기

아라, 오직이-남엣-헌은-사른-ㄴ

안 -안직-모도-숨은이다

 

[강길운 현대어역]

강길운,향가신해독연구,학문사,1995,p.299.

*읽기 편의상 전후 각 4구, 결구의 련을 나누엇다.

 

제 생각으로는,

남들이 내 모습 알지 못하게 몰래 오려 한 골짜기는

해가 아직 멀어서 일찍이 그 골짜기를 지나치고,

지금 단숨에 가서 사라지고 싶구나.

 

다만 잘못을 저질러 숨어 산 파계주들이,

천만에! 위협적 태도를 보여도 저들을 濟度코자 하는 내 마음을 돌이킬 것입니까?

이 무기야 무슨 허물인가?

회개하도록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골짜기건만

 

세존이시여! 오직 남에 대한 恨은 도적들의 착한

마음이 아직 모두 숨어 있는 것입니다.[저들이 회개토록 도와 주소서]

 

 

◇遇賊歌 해설

󰋬釋永才

󰋬화랑의 노래인 사뇌가로 도적들을 감복시킴. 하층민들이 사뇌가의 수용계층으로 부상함.

󰋬2구의 ‘日’과 3구의 ‘遠-鳥-逸’을 붙여 “날은 멀고 새는 게으르다.”는 한문구절로 보면 禪詩의 기풍을 지님.

󰋬진성여왕(재위887-897) 代 향가집『三代目』편찬(각간 위홍․대구화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9668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삼국유사』의 전체적인 구성은 먼저

권1「왕력」에는 삼국 및 가락 · 후삼국의 왕대와 연표가 있다.

다음 「기이(紀異)」에는 고조선부터 삼한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등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권2는 편목이 따로 있지 않고, 계속해서 신라 문무왕 이후의 통일신라와 후백제 및 가락국기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권3「흥법(興法)」은 신라의 불법 전래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권4는 「의해(義解)」로 신라시대의 학승 및 율사(律師)의 전기를 모았다. 다음

권5는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의 내용이다. 「신주」는 밀교 신승(神僧)의 사적을 다루었고, 「감통」은 근행감응(勤行感應)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다음 「피은」은 행적을 감춘 고승의 내용이 이어지며, 「효선」은 사람들의 효행과 선행에 대해 수록하였다. 곽영대 소장 국보 『삼국유사』는 이 중에 권3, 권4, 권5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규장각 소장 국보 『삼국유사』는 1512년 중종 임신본 계통의 여러 판본 중에 하나로 마멸과 일실의 부분을 일부 보각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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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怨歌- 信忠

신충괘관

信忠掛冠 -신충이 속세를 떠나다

-삼국유사 '피은'

[은자주]삼국유사 ‘피은’에는 신충과 영재가 말년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충괘관과 영재우적이 그것이다. 전자에는 원한의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걸어 두었더니 멀쩡하던 잣나무가 시들어 욕망을 성취한 이야기여서 신라인들의 언어의 주술성에 대한 신뢰를 읽을 수 있다. 앞에서 본 서동요의 증험도 입증되었지만, 융천사의 혜성가는 두 개의 해가 출현하는 혼란을 막고 쪽발이 침략자들까지 물리친 주술성에서 왕좌를 차지한다. <영재우적>에서 도적떼를 감동시켜 승려로 만든 아이디어는 <홍길동전>이나 <허생전>의 선편(先鞭)이 되었다. 세 작품을 함께 읽어 본다.


孝成王潛邸時

효성왕이 동굴 시절에,

與賢師信忠 圍碁於宮庭栢樹下. 嘗謂曰

어진 선비 신충과 더불어 대궐 뜰의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며 하루는 말했다.

「他日若忘卿 有如栢樹.」

“뒷날에 만약 내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거가 될 것이다.”

信忠興拜.

신충은 일어나서 절을 했다.

隔數月 王卽位賞功臣. 忘忠而不第之.

그 후 몇 달 뒤, 효성왕이 즉위하여 공신들에게 상을 주면서 신충을 잊고 공신록 명단에 넣지 않았다.

忠怨而作歌 帖於栢樹 樹忽黃悴.

이에 신충이 원망스런 노래를 지어 이를 잣나무에 붙였더니 나무가 갑자기 누렇게 시들었다.

王怪使審之 得歌獻之.

왕이 이상히 여겨 살펴보게 했더니 노래를 가져다 바쳤다.

大驚曰

왕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萬機鞅掌 幾忘乎角弓.」 *鞅앙:가슴걸이, 배때끈, 원망하다.

“정무가 바빠 하마터면 각궁(角弓)을 잊을 뻔 했구나.”

乃召之 賜爵祿 栢樹乃蘇

신충을 불러 벼슬을 주니 잣나무는 되살아났다.

歌曰,


物-叱-好支-栢-史

秋-察-尸-不冬-爾-屋-攴-墮-米

汝-於-多支-行-齊-敎 -因-隱

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

月-羅-理-影 -攴-古-理-因-淵-之-叱

行-尸-浪 阿-叱-沙矣-以-攴-如-攴

皃史-沙-叱-望-阿-乃

世-理-都 之-叱-逸-烏-隱-苐-也


믈흿* 자시 “한참 무성한 잣[栢]이

가살 안달 이우러 디매 가을에 아니 이울어지매

너 엇뎨 니저 이신 너를 어찌 잊어? “ 하시던

울월던 나치 겨샤온대 우럴던 얼굴이 계시온데.

닰그림제 녯 모샛 달 그림자가 예 못[淵]의

녈 믌결 애와티듯 가는 물결 원망하듯

즛사 바라나 모습이야 바라보나

누리도 아쳐론 뎨여 누리도 싫은지고!

後句亡

*[은자주] 9-10구 망실됨. 10구체 향가로 분류함.


由是寵現於兩朝.

이로써 신충은 효성왕, 경덕왕 두 왕조에 은총을 입었다.

景德王(王卽孝成之弟也)二十二年癸卯

경덕왕 22년 계묘(763)에

忠與二友相約 掛冠入南岳.

신충은 두 친구와 서로 약속하고 벼슬을 버리고 남악에 들어갔다.

落髮爲沙門 爲王創斷俗寺居焉.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再徵不就,

왕이 두 번을 불렀으나 그 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세우고 그 곳에서 살았다.

願終身丘壑 以奉福大王. 王許之.

평생을 구학(丘壑)에서 마치며 대왕의 복을 빌기를 원했으므로 왕은 이를 허락했다.

留眞在金堂後壁是也.

임금의 진영을 모셔 두었는데 금당 뒷벽에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南有村名俗休 今訛云小花里.

남쪽으로 속휴라는 마을이 있는데 현재는 와전되어 소화리라 한다.

(按三和尙傳 有信忠奉聖寺. 與此相混. 然計其神文之世 距景德已百餘年. 況神文與信忠 乃宿世之事 則非此信忠明矣. 宜詳之.)


又別記云

또 별기에는 이렇게 전한다.

景德王代 有直長李俊(高僧傳作李純) 早曾發願

경덕왕 때에 직장 이준이 일찍이 발원하기를,

年至知命 須出家創佛寺.

나이 50이 되면 모름지기 출가하여 절을 창건하리라고 했는데,

天寶七年戊子 年登五十矣.

천보7년(748) 무자년에 나이 50이 되자

改創槽淵小寺爲大刹 名斷俗寺.

조연소사를 고쳐 지어 큰 절로 만들고 이름을 단속사라 했다.

身亦削髮 法名孔宏長老.

자신도 또한 머리를 깎고 법명을 공굉장로라 하고

住寺二十年乃卒.

절에 거주한 지 20년에 세상을 떠났다.

與前三國史所載不同 兩存之闕疑.

이 기록은 앞의 삼국사에 실린 것과 같지 않으나, 두 가지 설을 실음으로 의심하는 점을 덜고자 한다.

讚曰,

功名未已鬢先霜 공명을 다하기 전에 귀밑머리 먼저 희어지네.

君寵雖多百歲忙 군왕의 총애야 많지만 죽음의 길 바쁘구나.

隔岸有山頻入夢 강 건너 저 산이 자주 꿈 속에 뵈니

逝將香火祝吾皇 가서 향불 피우며 우리 임금 축원하리.


[참고]

[姜吉云역]宮庭栢歌:(梁,怨歌)

빛깔이-좋은-잣

;빛깔이 좋은 싱싱한 잣나무가

가을-아니-가까와-떨어지매

;가을이 가깝지 아니하여서 잎이 떨어지매

너-어찌-가고자-하시므로

:임금님이“네 어찌 떠나가고자 하는가?”하셨으므로,

우러르던-낯-변하신-것이구나/또는 겨울이여

:고마운 정리를 잊지 못해 우러르던 그 환한 얼굴이 변하셨구나.

달님이-그림자-여린

:달님의 그림자가 생생하게 비친

소에의-출렁거리는-물결-가장자리의

:깊은 못에서, 출렁거리는 물결가의

모래-일듯이(=도태되듯이)모습이야

:모래가 도태되듯이 [임금님 얼굴이 조금씩 못해져 가니] 모습이야

바라보나 세상도 -한탄스럽구나

:바라보지마는 애가 씌어서 세상도 한탄스럽구나

後句亡


[강길운역 현대어역]

빛깔이 좋은 싱싱한 잣나무가

가을이 가깝지 아니하여서 잎이 떨어지매

임금님이 “네 어찌 떠나가고자 하는가?” 하셨으므로,

정리를 잊지 못해 우러르던 그 환한 얼굴이 변하셨구나.

달님의 그림자가 생생하게 비친

깊은 못에서, 출렁거리는 물결가의

모래가 도태되듯이 [임금님 얼굴이 조금씩 못해져 가니] 모습이야

바라보지마는 애가 씌어서 세상도 한탄스럽구나


13.怨歌 해설

󰋬34대 효성왕(재위 737-742) 33대 성덕왕의 둘째아들. 즉위에 신충도 도움을 준 듯함.

󰋬信忠: 진골 귀족으로 효성왕 3년에 집사부의 책임자인 중시가 되고, 경덕왕 16년(757)에는 상대등의 지위에 오름. 양대에 걸친 왕당파. 경덕왕 16년에는 한자식 지명으로 교체하는 개혁 단행. 향가의 주술적 힘을 개인 영달의 수단으로 변질됨. 능란한 처세가.

󰋬(5-6구)[김완진]다라리 그르메 다린 못갓/ 녈 믌겨랏 몰애로다;

달이 그림자 내린 연못 가 지나가는 물결에 대한 모래로다.

[서재극](5-8구)다리 얼히고 다사란 모tot 녈 믈 끔사 애해다히

즛사ㅅ 라나 누리도 즛론뎨야;

달이 비치고 잠잠한 못에 지나는 물결 언덕을 할퀴듯

모습이야 바라나 누리도 짓달리는구나.(세상 인심 함부로 달리는구나)

󰋬5-6구:달의 모습은 변함이 없건만 자신의 처지는 물결 언덕을 할퀴듯 괴롭고.

󰋬주술에 바탕을 둔 서정성을 갖춤

[주] "뜰 앞의 잣나무"란 말 자체가 불가의 유명한 화두다. 불교의 진리는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이심전심의 화두를 사용한다. 참고로 여기에 소개한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http://cafe.naver.com/bulyu/1639


어느 수행승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니라."
수행승이 질문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에서 조사는 중국선의 창시자인 달마 대사를 가리키며, 서쪽은 인도가 중국의 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인도를 가리킨 말이다. 따라서 수행승이 물은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는 바로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뜻은 무엇인가라는 말로, 불교의 근본정신이나 선의 진수를 물을 때 쓰는 말이다.
요컨대 그 수행승은 달마가 무슨 생각을 갖고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는지를 조주에게 물은 것이다. 그런데 조주 화상은 질문의 내용과는 전혀 엉뚱하게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이다.
조주 화상이 거주하던 관음원 경내에는 커다란 잣나무가 있어서 백림사(柏林寺)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때마침 수행승이 묻자 조주의 뇌리에는 번득 잣나무가 떠올랐다. 때문에 그대로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 뿐이다. 잣나무가 아니라 소나무나 복숭아나무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잣나무'자체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단순히 잣나무에만 집착한다면 이 공안은 물론 선의 참뜻도 이해하지 못한다.
관산(關山) 국사는 조주 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에 대해 "잣나무의 얘기에 도적의 낌새(賊機)가 있다."고 평했다. 이 말은 '뜰 앞의 잣나무'에는 도적과 같은 두려운 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 갖고 있는 망상이나 집착심을 남김없이 뺏고야 말겠다는 무서운 대 도적의 살아 있는 책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관산 국사가 입적하고 나서 대략 300년 뒤인 명대(明代)의 고승 은원(隱元) 선사가 관산 국사가 머물던 묘심사에 들러 "개산 법어(開山 法語:한 파를 창시하면서 내리는 법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묘심사의 수좌가 없다고 대답하자 은원 선사는 "그렇다면 일파를 개산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그러자 그 수좌(大疑 화상)는 스승 우당(愚堂) 국사와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산할 때 법어는 없었지만 '뜰 앞의 잣나무 얘기에 도적의 낌새가 있다'고 한 한마디는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은원 선사는 어쩔 줄 몰라 두려워하면서 "이 한마디가 백천만의 어록보다 낫다."고 찬탄하고서 물러갔다고 한다.
'뜰 앞의 잣나무'는 문자나 언어적 설명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서 실제로 참구(參究)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우문 선사는 '마른 똥막대기'라 했고 동산 선사는 '삼 세 근'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잣나무와 마찬가지로 그 사물들 자체에는 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망상분별을 씻어 내고 '뜰 앞의 잣나무' 자체가 되어야 비로소 조주 선사의 참뜻은 물론 선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無門關>



도미都彌

-삼국사기 列傳 第8, 卷48

[은자주]도미 아내의 정절은 특이하다. 왕[실재는 왕의 사자]이 동침을 요구하자 하녀를 들여보내다니. 그러고도 살아남은 건 하늘이 부부의리의 소중함과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자 함인가? 이들 부부가 기구한 팔자를 탓하랴? 부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킨 그 붉은 마음에 찬탄과 경의를 보낸다.

그때는 물고기 이름을 사람 이름에다 붙였나 보다. 도미는 평민도 아닌 관료였는데...

都彌 百濟人也.

도미는 백제인이다.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編戶(편호): ‘오두막집’

비록 소민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의리에 아주 밝았다.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그의 아내는 예쁘기도 하고 행실에 절조가 있어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蓋婁王聞之 召都彌與於曰

개루왕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말했다.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대체로 부인의 덕은 정결을 으뜸으로 치지만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

則能不動心者鮮矣乎!”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對曰

도미가 대답하였다.

“人之情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貳(이):‘두 마음을 가지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저의 아내와 같은 여자는 죽어도 변함이 없을 사람입니다.”

王欲試之 留都彌以事.

왕이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일을 핑계로 도미를 붙잡아 두고

使一近臣假王衣服馬從

가까운 신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왕의 의복과 말과 종자를 가장하여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밤에 도미의 집으로 가게 하고, 사람을 보내 미리 왕이 온다고 알리게 하였다.

謂其婦曰

가짜 왕이 부인에게 이르기를

“我久聞爾好 與都彌博得之. *博(박):노름.

“내가 오래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하여 이겼다.

來日入爾爲宮人. 自此後爾身吾所有也.”

내일 너를 데려다가 궁인으로 삼을 것이니 지금부터 너의 몸은 내 것이다”라고 하였다.

遂將亂之. 婦曰

그가 마침내 덤벼들려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國王無妄語 吾敢不順?

“국왕은 망언을 하지 않을 것이니 제가 어찌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請大王先入室 吾更衣乃進.”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退而雜飾一婢子薦之.

물러나와 어여쁜 여종 하나를 단장시켜 모시게 하였다.

王後知見欺大怒. 誣都彌以罪 臛其兩眸子 * 矐(학):눈을 멀게 하다.

왕이 나중에 속은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워서 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使人牽出之. 置小船泛之河上.

사람을 시켜 끌어내어 조그마한 배에 싣고 강 위에 띄워 보냈다.

遂引其婦 强欲淫之.

그리고는 마침내 그 부인을 끌어 들여 억지로 간음하려 하니

婦曰

부인이 말했다.

“今良人已失 單獨一身 不能自持.

“이제 이미 남편을 잃어 혼자 몸으로는 스스로를 부지할 수 없사온데

況爲王御 豈敢相違.

더구나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今以月經 渾身 穢. 請俟他日薰浴而後來.”

그러나 지금은 제가 월경으로 온 몸이 더러우니 다른 날 목욕을 깨끗이 한 뒤에 오겠습니다.”

王信而許之.

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婦便逃至江口

그녀는 곧 도망하여 강 어구에 이르렀다.

不能渡 呼天慟哭.

그러나 건널 수가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忽見孤舟隨波而至. 乘至泉城島.

갑자기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다가오자, 그녀는 그 배를 타고 천성도에 이르렀다.

遇其夫未死 掘草根以喫.

남편을 만났는데 아직 죽지 않았으며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살았다.

遂與同舟 至高句麗蒜山之下. *蒜山(산산):함경남도에 있던 옛 지명

그들은 마침내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 밑에 이르렀다.

麗人哀之 以衣食 遂苟活.

고구려인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옷과 밥을 주었다.

終於羈旅. *羈旅(기려):타관살이. ‘나그네 신세’의 뜻.

그들은 나그네 신세로 일생을 마쳤다.

삼국사기 권 제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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