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명사 도솔가

月明 兜率歌

-삼국유사 감통 제7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竝現

경덕왕 19년 경자(760) 4월 초 하루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挾(註,當作浹)旬不滅.

열흘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日官奏請緣僧 作散花功德則可禳.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있는 중을 청해서 산화공덕(散花攻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於是潔壇於朝元殿

이에 조원전에 제단을 정결히 하고

駕幸靑陽樓 望緣僧.

임금이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있는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時有月明師 行于阡陌之南路.

이 때 월명사가 천맥(阡陌)의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왕은 그를 부르게 하여 제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게 하니

明奏云,

월명사가 아뢰었다.

“臣僧但屬於國仙之徒

“신승(臣僧)은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只解鄕歌 不閑聲梵.”

다만 향가만 알 뿐, 성범(聲梵,범패)에는 익숙치 못하옵니다.”

王曰“旣卜緣僧 雖用鄕歌可也.”

왕:“이미 인연 잇는 중을 점복했으니 비록 향가를 사용하여도 좋소.”

明乃作兜率歌賦之 其詞曰,

월명은 이에 도솔가를 지어 바쳤는데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 -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오늘 이에 散花 블라

빠쌀반 고자 너는

고든 마으매 命ㅅ 브리압디

彌勒座主 뫼셔라

 

 


오늘 여기서 산화노래 부르면서

뿌리는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부릴 수 있으니

미륵좌주를 모셔라!


解曰,

한시로풀이하면,


龍樓此日散花歌 오늘 용루에서 산화가 부르며

挑送靑雲一片花 흰 구름에 꽃 한 송이 띄워 보낸다.

殷重直心之所使 정중하고 곧은 마음에서 하는 일이니

遠邀兜率大僊家 저 멀리 도솔천의 미륵보살 뫼셔라.


今俗謂此爲散花歌 誤矣.

지금 세간에서는 이를 산화가라고 하지만 잘못이다.

宜云兜率歌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 하며

別有散花歌.

별도의 산화가가 있는데,

文多不載;

그 글이 많아서 싣지 않는다.

[은자주]'산화가'는 한문 내지는 다라니로 추정됨.

旣而日怪卽滅.

조금 후에 이내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王嘉之 賜品茶一襲水晶念珠百八箇.

왕은 이것을 가상하게 여겨 품다(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했다.


忽有一童子

이 때 문득 한 동자가

儀形鮮潔 跪奉茶珠.

외모가 곱고 깨끗했는데 꿇어앉아 차와 염주를 받들고서

從殿西小門而出.

대궐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가버렸다.

明謂是內宮之使. 王謂師之從者.

월명은 이 동자를 내궁의 사자로 알고 왕은 스님의 시종으로 알았다.

及玄微而俱非.

그러나 서로 알고 보니 모두 잘못이었다.

王甚異之 使人追之.

왕은 심히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뒤를 쫓게 했더니

童入內院塔中而隱.

동자는 내원의 탑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茶珠在南壁畵玆氏像前.

차와 염주는 남쪽의 벽화 미륵상 앞에 있었다.

知明之至德與至誠能昭假于至聖也如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미륵보살을 소격(昭假, 가는 格과 같다.밝게 감동시킴)시킴이 이와 같음을 알겠다.

朝野莫不聞之.

조정이나 민간에 널리 퍼져 이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王益敬之 更贐*絹一百疋 以表鴻誠. *贐신:전별하다.

왕은 더욱 그를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했다.

 

◇兜率歌 해설

◊3대 儒理王代의 도솔가

신라 제3대 儒理王이 순행 중 죽어가는 노파를 발견하고 이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구해줌. 鰥寡孤獨 돌봄. 그 해에 풍년. 도솔가 지어 부름.

부족사회의 행사적 집단가요로 원시가요임. 신라 초기의 詩歌.

(梁柱棟) 愛國歌的 성격 지님.

◊도솔의 語義: 도솔천에서 옴(梁柱東)

두릿노래(집단행사시 부름)

텃노래(국토의 노래)

두리 ‘圓’

‘두리’하다 ― 길쌈 時

예) 쾌지나칭칭나네(경상도), 강강수월래(전라도)

◊두릿노래:국태민안을 비는 국가의 공식 지정 가요.

󰋬작품명이라기보다 노래 갈래 이름.

󰋬‘嗟辭’를 악기반주에 맞추어 되풀이한 여음으로 이해하고, 여러 章이 중첩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감탄사.

󰋬是年民俗歡康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유리왕5년)

󰋬始作兜率歌有嗟辭詞腦格(삼국유사 권1,노례왕)

◇도솔가와 사뇌가의 관계 규명에 대한 논의.

◊이동근,사뇌가의 해석,『한국문학사의 쟁점』,집문당,1986)

[최남선] 嗟辭詞腦格을 頌祝體 차사격과 表白體 차사격으로 해석하여, 차사격을 도솔가의 격조 중 하나로 봄.(육당최남선전집,현암사,1973)

[정병욱] 도솔가는 종교적 요소가 표백된 순전한 서정적 가요로, 사뇌가는 사뇌야 지방에서 유포되어 후일에 신라가요 전체를 대표하게 된 10구체 정형시로 봄. 위의 양자는 별도의 양식으로 구분함(향가의 역사적 形態論試攷,『국문학논문선』1,민중서관,1977)

[양주동] 도솔가는 民俗歡康, 時和豊年, 王道稱頌의 민중의 노래로 羅代의 國風, 雅頌의 남상으로 추단함.(增訂古歌硏究,일조각,1965)

[지헌영,김동욱] 향가의 범주 안에 무가(도솔가?), 민요, 사뇌가를 포함시키고, 有嗟辭詞腦格은 도솔가와 사뇌가가 동격인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一然의 시대에 와서 과거를 회고해 보니 사뇌가 격식의 민요 형태의 노래가 도솔가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함. (지헌영,‘次肹伊遣’에 대하여,『최현배선생환갑기념논문집』,사상계사,1954), 김동욱,향가의 하위장르,『신라시대언어와 문학』,형설출판사,1974)

[조지훈 서수생] 유리왕 때 이미 도솔가를 지었다고 했으니, 이것이 國定 사뇌가 시가의 시원인 동시에 신국가 노래의 효시로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가악의 시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임. 도솔가는 사뇌가의 한 종류임.(조지훈,신라가요연구론고『고대민족문화연구』1, 1964.10. 서수생,도솔가고『국문학논문선』1,민중서관,1977)


[참고] 月明師 兜率歌

◊제35대 경덕왕 19년(760) 월명사의 도솔가

 

◊산화공덕가 ― 범패. 범어 또는 한시(칠언시)(文多不載):중국의 불교의식 수용

도솔가 ―우리말 노래:토착화

󰋬경덕왕 16년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등 중앙집권제 강화함. 二日竝現은 왕당파의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김양상 등) 등장.

󰋬경덕왕 23년(764) 반왕당파의 金良相이 시중으로 등장. 김양상은

제29대 무열왕계를 대신한 제17대 내물왕계의 왕통을 이어 제37대 선덕왕이 됨(780).

󰋬화엄사상 위주로 질서를 존중하는 사회 지향. 월명사를 부른 것은 퇴조하는 화랑세력 등 불만 세력에 대한 무마용일 수도 있음.

󰋬꽃은 미륵에게 바친 공양물이며 미륵을 모셔올 수 있는 매개자인데, 시인은 “꽃아, 너는” 이라고 불러 주술을 걸었다.

󰋬미륵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신앙대상인데, 미륵이 불을 끌 수 있는 물의 상징으로서 용을 뜻하는 ‘미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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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월명사

-삼국유사 ‘월명사 도솔가’ 감통 제7.

[은자주]나는 신라인들의 상상력 또는 문학적 표현을 설명할 때 수로부인의 미, 양지 스님의 자동

지팡이와 함께 이 설화에 나오는, 운행을 정지한 달 이야기를 한다.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 중에는‘금환(金丸)’이 있다.


廻身掉臂弄金丸 몸 돌리고 팔 휘둘러 방울 굴리니

月轉星浮滿眼看 달이 구르고 별이 뜬 듯 눈이 어지러워

縱有宜僚那勝此 비록 의료가 있다 한들 어찌 이보다 나으랴

定知鯨海息波瀾 정히 동해의 물결 쉬게 함을 알겠다.

󰋬李瀷,星湖僿說. 金丸者 所謂宜僚弄丸 是也.


춘추시대 의료(宜僚)는 방울 굴리기의 명인으로 공중에 8개 아래에

1개로 롱환(弄丸)하니 군사들이 싸움을 중지했다는 고사가 있다. 최치원은 동해 바다가 파도치는

것도 잊었다고 공중에 던지는 방울의 현란함을 표현하였다. 군사들이 농환에 팔려 전쟁을 중지한

건 인간세상의 일이고 동해 바다가 파도치는 걸 잊은 건 우주 자연의 일이다. 그러니 최지원은

지금의 이 금방울을 던지고 받는 놀이가 춘추시대 의료보다 낫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동해 바다는 바람이 자면 파도가 잠잘 수도 있으나 잠시도 멈출 수 없는것이

해와 달의 운행이다. 이 설화의 기술자는달이 잠시 운행을 정지하면 어떤가? 천재지변도 상관없다.

저 하늘의 피리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아마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피리의 명인 월명 스님이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님은 그 피리소리를 듣느라 운행하는 것도 잊었다니,

세상에나, 이보다 피리를 더 잘 부는 이가 있을까?

<도솔가> 기술물울 보면 그는 소문난 음악가이고 신분이 승려이면서 범패를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시나위 음악은 천지만물을 감동시킨다.지금도 재를 올리면 스님들은 뭔 말인가도 모르는

한문으로 쓴 경문이나 다라니 주문을 외거나 읽는다. 그런데 월명사는 신라 때 이미 이런 새소리를

집어치고 우리말로 노래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망매가>도 <도솔가>도

우리말 노래다.

참고로 향가 15 작품 중 서정시의 최고봉을 <제망매가>로 꼽는 데는 이론이 없다. 국민가요 <도솔가>도

그의 작품이다. 유리왕대에 <도솔가>가 있는 걸 보면 이 명칭은국태민안을 비는 음악 장르의 명칭

이기도 하다.

아으, 잣가지 노파아, 잣가지 드높아

서리 몯누올 花判이여. 서리를 모를 그대 모습이여!

*[은자주]구름을 발 아래 내려다 보는 잣나무는 서리와 아무 상관이 없음.

<찬기파랑가>의 결구를 나는 월명사에게도 바친다.

明又嘗爲亡妹營齋

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제를 올렸는데

作鄕歌祭之.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忽有驚飇吹紙錢 飛擧向西而沒.

문득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지전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졌다.


歌曰,


生死路-隱

此-矣-有-阿-米-次-肹-伊-遣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 -遣-去-內-尼-叱-古

於-內-秋 -察-早 -隱-風 -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 -等-隱-枝-良-出-古

去-奴-隱-處-毛-冬-乎-丁

阿也 彌陀刹-良-逢 -乎*-吾

道-修-良-待 -是-古-如



[양주동역] *아래아는 ‘ㅏ, ㅡ'로 표기함.

生死路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예 이샤매 저히고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가나다 말ㅅ도 “나는 간다.”는 말도

몯다 닏고 가나닛고 못 다 이르고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라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딜 닙다이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하단 가재 나고 한 가지에 나서도

가논곧 모다*온뎌 가는 곳을 모르는가!

아으, 彌陀刹에 맛보올 내 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道닷가 기드리고다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明常居四天王寺. 善吹笛.

월명은 늘 사천왕사에서 지내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嘗月夜吹過門前大路.

어느 날 피리를 불면서 문 앞의 큰 길을 지나가는데

月馭爲之停輪.

달의 운행이 피리소리를 위해[그 소리를 듣느라고] 바퀴를 멈추었다.

因名其路曰月明里.

이로 인해 그길을 월명리라 했고,

師亦以是著名.

월명사란 이름도 또한 이 일로 해서 저명해졌다.

師則能俊大師之門人也.

월명사는 곧 능준대사의 제자이다.

羅人尙鄕歌者尙矣. 盖詩頌之類歟.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한 자가 많았으니, 이것은 대개 시, 頌과 같은 것이었다.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그러므로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讚略]

기리어 읊는다.


風送飛錢資逝妹 바람은 지전을 날려 누이의 저승 노자 삼고

笛搖明月住姮娥 피리 소리 밝은 달 움직여 항아를 머물게 했네.

莫言兜率連天遠 도솔천이 멀다고 말하지 마라.

萬德花迎一曲歌 만덕화 한 곡조로 즐겨 맞았네.


[참고]

月明寺 祭亡妹歌


[姜吉云역] <亡妹營齋歌>

*강길운은 터키어를 참고하여 향가를 해석함.

죽살이 길은

:죽고 살고 하는 길은

이에-이쇼매-버금이고

:현실에 있으므로 그것에 대한 슬픔은 차치하고

난-가나다-말쌈/[말삼]두

:나는 먼저 저승으로 간다는 유언도

못 다-말하고-가나닛고

:제게 전하지 못하고 가는 것입니까?

어느-가을-이른-바라매

:어느 가을철 이른 강풍에

이에저에-떠러질-잎처럼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가탄-가재-나고

:같은 가지에 나고서

가는-곳-모라온뎌

:서로 가는 곳을 모르는 낙엽처럼 동기간에 누이의 가는 곳을 모르다니!

아, 彌陀刹애-맛볼-나

:아, 무량수불님 계신 서방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이니

道-닦아-기드리고져

:불도를 닦아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게 하소서.


11.祭亡妹歌 해설

󰋬화랑의 무리에 속하는 승려인 월명사는 미륵이 화랑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미륵하생신앙을

믿었고 화랑도의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전통을 계승했다. 그러나 그는 화랑이 밀려나는

시대에 태어나 길거리를 방황했으며, 그들의 생각이 통용되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륵이 아닌 미타를 찾아 피안을 희구하여, 나라의 노래나 화랑 집단의 노래가 아닌

개인의 노래를 지어 자신의 고독한 심정을 토로하였다.(통사1, p.149)

讚曰,[홍기문 역]

바람에 날리는 종이돈 돌아간 누이게 보내고

피리소리 저 달을 흔들어 항아(姮娥)도 발걸음 멈춘다.

이 세상과 도솔천(兜率天) 까마득 멀다고 이르지 말라

도솔가 한 곡조로 흩는 꽃 송이송이 미륵보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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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양지사석

良志使錫

-삼국유사 義解 제4

 

[은자주]향가 작품 가운데는 시가 못지 않게 기술물이 탁월한 작품도 있다.

이 설화에는 오토매틱 스틱이 등장한다. 양지 스님의 신통력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물이다.

어떤 부사를 동원해도 그의 신통력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설화의 기술자는 자루를 걸어두면 시주하는 집을 돌다가 자루가 가득차면 그 지팡이는 저절로 석장사로 날아왔다는 자동지팡이를 창안한 것이다. 얼마나 판타스틱한 지팡이인가? 신라인의 상상력은 그런 지팡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석장사 터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뒷산에 있다. 이 학교 박물관에서 십여 년전 그곳을 발굴하여 불상이 조각된 벽돌도 여러 장 찾아냈다. 그 벽돌은 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釋良志, 未詳祖考鄕邑, 唯現迹於善德王朝.

중 양지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왕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錫杖頭掛一布帒,

석장의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錫自飛至檀越家, 振拂而鳴,

그 지팡이는 저절로 날아가 시주의 집에 가서 흔들면서 석장 끝에 달린 방울소리를 울렸다.

戶知之納齋費, 帒滿則飛還.

그 집에서는 또 이를 알고서 재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었고, 포대가 다 차면 이 석장은 다시 날아서 돌아온다.

故名其所住曰錫杖寺,

그러므로 그가 거주한 곳을 석장사라고 했다.

其神異莫測皆類此. 旁通雜譽, 神妙絶比,

양지는 신기하고 특이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으며, 여러 가지 技藝에도 두루 통달하여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又善筆札.

또 필찰(筆札-원래는 편지라는 의미이나 여기서는 서화 조각등의 손재주)에도 능하여

靈廟丈六三尊‧天王像幷殿塔之瓦,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또는 전탑의 기와와

天王寺塔下八部神將, 法林寺主佛三尊‧左右金剛神等, 皆所塑也.

천왕사 탑 밑의 8부신장과 법림사의 주불 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書靈廟‧法林二寺額. 又嘗彫磚造一小塔,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고, 벽돌로 탑을 하나 만들었으며,

竝造三千佛, 安其塔置於寺中, 致敬焉.

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

其塑靈廟之丈六也, 自入定以正受所對爲揉式,

그가 영묘사의 장육상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마음을 바르고 밝게하여 잡념에서 벗어나 法心만이 있는 경지)의 자세로 만드니

故傾城士女爭運泥土.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날라 들였다.

風謠云: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원문/풀이]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라/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의내여/ 서럽다 우리들이여!

功德 닷가라 오다/ 공덕 닦으러 오다.

 



至今, 土人舂相役作皆用之, 蓋始于此.

지금까지도 시골에서는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모두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대개이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像(初)成之費, 入穀二萬三千七百碩(或(云)(改)金時租).

장육상을 처음 만들 때에 든 비용은 곡식 2만 3천 7백석이었다.

議曰:

논평해 보면,

師可謂才全德充,

양지스님은 가히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만하였다.

而以大方隱於末技者也.

여러 방면의 대가로서 하찮은 재주만 드러내는 데 숨어지낸 자라고 하겠다.

讚曰:

기리어 읊는다.

齋罷堂前錫杖閑, 재 마치니 법당 앞에 석장은 한가한데

靜裝爐鴨自焚檀. 오리 모양 향로를 손질하여 홀로 단향(檀香)피우네.

殘經讀了無餘事, 남은 불경 다 읽어 할일 없으니,

聊塑圓容合掌看. 애오라지 소상의 부처님 얼굴 합장하고 쳐다보네.

 

8.風謠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MWBy6Wdaz0s 

 

 

https://kydong77.tistory.com/20949

 

신라 조각승 양지의 작품과 예술세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12 신라 조각승 양지의 작품과 예술세계 조명 :: 통일신라시대 조각가인 양지 스님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경주문화..

kydong77.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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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願往生歌 -광덕의 처

광덕과 엄장

廣德 嚴莊 -삼국유사 感通 第七

[은자주] 앞 꼭지의 노힐부득 달달박박의 이야기와 동궤[同軌]의 설화이다.

“노힐부득:달달박박:낭자”의 캐릭터는 “광덕:엄장:분황사비(광덕의 처)”에 대응하여 재현된다.

이름도 관대한 성격의 광덕에, 계율에 빛나는 엄장이 수도승이고, 여성인 광덕의 아내는 수도의 조력자

로서 두 수도승을 차례로 극락왕생케 한다. 원효 이후 민중불교시대의 매력적인 설화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광덕이 부르던 <원앙생가>가 있어 설화의 매력은 배가된다.

본문의 “盖十九應身之一德嘗有歌云,”에서 종전의 “一德, 嘗有歌云”로 구두점을 찍어오던 것을

고 김동욱님은 “一, 德嘗有歌云”로 구두점을 찍어 노래의 작가를 광덕에서 광덕의 처로 바로잡은

공적을 남겼다. 더군다가 ‘作歌’가 아니고 ‘有歌’인 점도 이론(異論)의 문제제기를 차단했다.

그 문맥만으로도 광덕이 이 노래의 작가가 아님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文武王代 有沙門名廣德嚴莊二人友善. 日夕約曰

문무왕 때에 중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밤낮으로 약속했다.

“先歸安養者須告之.”

“먼저 안양[극락]으로 돌아가는 이는 마땅히 서로 알리도록 하자.”

德隱居芬皇西里(或云 皇龍寺有西去房. 未知孰是) 蒲鞋爲業 挾妻子而居.

광덕은 분황 서리에 숨어서 신 삼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처자와 함께 살았으며,

莊庵栖南岳 大種力耕.

엄장은 남악에 암자를 짓고, 대종도경(大種刀耕)하면서 살았다.

一日日影拖紅 松陰靜暮 窓外有聲 報云

어느 날 해그림자가 붉게 노을지고 솔그늘이 고요히 저무는데 창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某已西往矣. 有君好住 速從我來.”

‘나는 이제 서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지내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게나.’

莊排闥而出顧之 雲外有天樂聲 光明屬地.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밝은 빛은 땅까지 드리웠다.

明日歸訪其居 德果亡矣.

이튿날 엄장은 광덕이 사는 곳을 찾아갔더니 광덕은 과연 죽어 있었다.

於是乃與其婦收骸 同營蒿里 旣事.

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광덕의 유해를 거두어 함께 호리(蒿里)에 장례지냈다.

乃謂婦曰

그리고 그 부인에게 말했다.

“夫子逝矣. 偕處何如?”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婦曰“可.”

부인 : “좋습니다.“

遂留 夜將宿欲通焉.

드디어 머물며 밤에 잠자리에 들어 욕정을 통하고자 했다.

婦慚之曰.

부인은 그것을 부끄러워했다.

“師求淨土 可謂求魚緣木.”

“스님께서 서방정토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구하면서 나무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莊驚怪問曰

엄장이 놀라서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德旣乃爾 予又何妨?”

“광덕도 이미 그러했는데 나 또한 득도에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婦曰

광덕의 아내는 말했다.

“同居十餘載 未嘗一夕同床而寢.

“남편은 나와 십여 년을 살았지만 일찍이 하룻밤도 침대를 같이하여 잔 적이 없었거늘,

況觸汚乎?

어찌 몸을 더럽혔겠습니까?

但每夜端身正坐 一聲念阿彌陀佛號.

다만 밤마다 단정히 앉아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염송했습니다.

或作十六觀. 觀旣熟

혹은 16관을 만들어 달관하여

明月入戶 時昇其光 加趺於上

밝은 달빛이 창에 비치면 때때로 그 빛 위에 올라 가부좌하였습니다.

竭誠若此 雖欲勿西奚往?

정성을 쏟음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려 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夫千里者 一步可規

대체로 천리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 첫걸음부터 알 수 있으니,

今師之觀可云東矣 西則未可知也.”

지금 스님의 관법은 동쪽으로 간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서방으로 가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莊愧赧而退.

엄장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며 물러나왔다.

便詣元曉法師處 懇求津要.

그 길로 원효법사의 처소로 가서 득도의 요체[津要]를 간곡하게 구했다.

曉作鍤(주,‘淨’일 듯.이동환)觀法誘之.

원효는 삽[정]관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

藏(주,莊)於是潔己悔責.

엄장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一意修觀 亦得西昇.

한 뜻으로 도를 닦았으므로 또한 서방정토로 승천했다.

鍤觀在曉師本傳與海東僧傳中.

삽[정]관법은 원효법사의 본전과 해동고승전 속에 있다.

其婦乃芬皇寺之婢 盖十九應身之一.

그 부인은 바로 분황사의 여자종이니 대개 관음보살 19응신 가운데 하나였다.

德嘗有歌云,

광덕에게는 일찍이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遣

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多-可-攴 -白-遣-賜-立

誓 -音-深-史-隱-尊-衣-希-仰 -攴

兩-手-集-刀-花乎-白-良

願往生 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

阿邪, 此-身-遺 -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양주동 역[아래아는 'ㅏ'로 바꿈]

달하 이뎨 달님이시여,

西方까장 가샤리고 이제 서방까지 가셔서

無量壽佛前에 무량수불 전에

닏곰다가 삷고샤셔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딤 기프샨 尊어 울워러 “다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두손 모도호 살바 두 손을 올려

願往生 願往生 ‘원왕생 원왕생‘

그릴사람 잇다 삷고샤셔 그리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으, 이몸 기텨 두고 아, 이 몸을 남겨 두고

四十八大願 일고샬가 사십팔대원을 이루실까.


◇願往生歌 해설

󰋬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하던 광덕이 서방정토에 가다.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이동.

미천한 백성들은 신라가 불국토임을 내세우거나 미륵이 下生해서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을 귀족과 함께 느끼기엔 불리한 처지였다. 그렇다고 화엄사상의 오묘하고 치밀한 체계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현세에서 관음이 출현하여 구원을 해주는 기적을 기다리거나 내세에는 서방정토에 태어나도록 열심히 염불을 하면서 나날의 고통을 잊고자 했다.(통사1, p155.)

󰋬수도의 두 방법: 진실한 신앙과 계율에 의존하는 신앙.

󰋬광덕은 부부로 살았지만 한 번도 동침하지 않은 생활의 실상과 정신적 지향을 함께 표현함. 노힐부득 달달박박의 이야기와 同軌임.

󰋬(1구)月下伊 底亦:①(소창)달애 믿예.

②(양주동)갈하 이제

[김완진]다랄-아래-이 엇뎨-역 다라리 엇뎨역. 底엇뎨:어찌하여

󰋬(7구)[김완진] ‘三句六名’은 1․3․7행의 세 句가 6音節로 되어 있음을 말함.

󰋬‘三句六名’은 향가, 려요, 시조에 이어지는 형식. 시조의 3章6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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