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5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韓地險惡山居,

張儀去楚(장의거초) : 장의는 초나를 떠나

因遂之韓(인수지한) : 도중에 한나라에 들려서

說韓王曰(설한왕왈) : 한왕에게 유세하녀 말하기를

韓地險惡山居(한지험악산거) : “한나라의 지세는 험준하고 많은 주민들이 산에서 삽니다.

五谷所生,非菽而麥,〔1〕民之食大抵菽飯藿羹。〔2〕

五谷所生(오곡소생) : 농사짓는 곡식은

非菽而麥(비숙이맥) : 콩이 아니면 보리 정도

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민지식대저반숙반곽갱) : 백성들의 조석 끼니는 대개가 콩으로 지은 밥이나 콩족입니다.

一歲不收,民不饜糟糠。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

一歲不收(일세불수) : 1년만 농사를 그르치면

民不饜糟穅(민불염조강) : 백성들은 가루조차 충분히 먹을 수 없습니다.

地不過九百里(지불과구백리) : 토지는 사방 9백 리에 지나지 않고

無二歲之食(무이세지식) : 2년을 지탱할 식량이 없습니다.

料大王之卒,悉之不過三十萬,

料大王之卒(료대왕지졸) : 대왕의 군사들을 헤아려 보건대

悉之不過三十萬(실지불과삼십만) : 모두 다 해도 30만에 불과 합니다.

而廝徒負養在其中矣。〔3〕除守徼亭鄣塞,〔4〕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5〕

而廝徒負養在其中矣(이시도부양재기중의) : 그러고도 그 가운데는 잡역부·짐꾼·취사부가 포함되었고

除守徼亭鄣塞(제수요정장새) : 변경을 지키는 군사와 상을 지키는 군사를 제외하면

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견졸불과이십만이이의) : 현역군은 20만에 불과합니다 .

秦帶甲百余萬,車千乘,騎萬匹,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6〕至不可勝計。

秦帶甲百餘萬(진대갑백여만) : 그런데 진나라는 무장 병격이 100여 만,

車千乘(차천승) : 전차가 1000승,

騎萬匹(기만필) : 기마가 1만 필,

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호분지사도구과두관이분극자) : 맨발로 투구도 쓰지 않은 채 돌격하는 자 화살이 날아오는데도 창을 휘두르며 적에게 달려가는 자 등 용맹한 군사가

至不可勝計(지불가승계) :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秦馬之良,戎兵之眾,〔7〕探前趹后蹄間三尋騰者,〔8〕不可勝數。

秦馬之良(진마지량) : 진나라의 말은 건장하고

戎兵之衆(융병지중) : 병사는 많은 데다가

探前趹後蹄閒三尋騰者(탐전결후제한삼심등자) : 달릴 때에는 앞다리로 앞을 찾고 뒷다리는 뒤를 밟아 한 번 뛰면 굽과 굽 사이에 간격이 세 발 길이나 되는 날랜 말이

不可勝數(불가승수) :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山東之士被甲蒙胄以會戰,〔9〕秦人捐甲徒裼以趨敵,〔10〕左挈人頭,〔11〕右挾生虜。

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산동지사피갑몽주이회전) : 산동의 군사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모여 싸우는데

秦人捐甲徒裼以趨敵(진인연갑도석이추적) : 진나라 사람은 갑옷을 벗고 직진 가운데로 뛰어들어

左挈人頭(좌설인두) : 왼쪽으로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右挾生虜(우협생로) : 오른쪽으로 사로잡아 겨드랑에 낄 만큼 아주 용감합니다.

夫秦卒與山東之卒,猶孟賁之與怯夫;〔12〕以重力相壓,猶烏獲之與嬰兒。〔13〕

夫秦卒與山東之卒(부진졸여산동지졸) : 진나라 군사와 산동의 군사를 비교하면

猶孟賁之與怯夫(유맹분지여겁부) : 마치 맹분과 겁장아이을 나란히 하는 것과 같으니

以重力相壓(이중력상압) : 진나라 군사가 산동 군사를 누르는 것은

猶烏獲之與嬰兒(유오획지여영아) : 마치 오획이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鈞之重于鳥卵之上,必無幸矣。〔14〕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부전맹분오획지사이공불복지약국) : 맹분·오획 같은 용사로 하여금 복종하지 않는 약한 나라를 치는 것은

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무이수천균지중어조란지상) : 몇 천 근 무게를 새알 위에다 싣는 것과 같으니

必無幸矣(필무행의) : 반드시 요행은 없을 것입니다.

【注釋】〔1〕“菽”,大豆。“而”,則,即。〔2〕“藿”,豆葉。〔3〕“廝徒負養”,擔任雜役的人。

〔4〕“徼亭”,徼,邊界。徼有亭,以供瞭望。“鄣塞”,塞,險要之處。塞有工事,作為屏障。

〔5〕“見”,通“現”。

〔6〕“跿跔”,徒跣,赤足。音tūjü。“科頭”,空頭,不戴頭盔。“貫頤”,張弓。“貫”,讀為彎弓的彎。

“頤”,弓名。“奮戟”,執戟奮怒地沖入敵陣。“戟”,戈矛的合體,可鉤可刺。

〔7〕“戎兵之眾”,此句是衍文,當刪去。

〔8〕“探前趹后”,馬的前蹄躍向前,后蹄踢地而起,“趹”,音jué。“尋”,古七尺或八尺為尋。

〔9〕“被”,披上。“胄”,頭盔。〔10〕“捐”,棄。“徒裼”,赤腳露體。

〔11〕“挈”,提。“挈”,音qiè。〔12〕“孟賁”,衛國勇士。

〔13〕“烏獲”,秦武王時的大力士。〔14〕“千鈞”,形容極重。古代以三十斤為一鈞。

  “夫群臣諸侯不料地之寡,而聽從人之甘言好辭,比周以相飾也,〔1〕皆奮曰‘聽吾計可以強霸天下’。

夫羣臣諸侯不料地之寡(부군신제후불료지지과) : 대개의 제후들은 자기 영토가 작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而聽從人之甘言好辭(이청종인지감언호사) : 합종론자의 감언의 언사에 혹하여

比周以相飾也(비주이상식야) : 한패가 되어서 합종론이 좋다고 말들을 하고

皆奮曰(개분왈) : 모두 떨쳐 이르기를,

聽吾計可以彊霸天下(청오계가이강패천하) : ‘우리의 계략을 들어야 천하의 강국으로서 승리를 부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2〕詿誤人主,無過此者。〔3〕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부불고사직지장리이청수유지설) : 무릇 국가 영원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한때의 경박한 말을 듣는다면

詿誤人主(괘오인주) : 임금을 그르치게 함이

無過此者(무과차자) : 이보다 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注釋】〔1〕“比周”,勾結。〔2〕“須臾”,短暫的時間。

〔3〕“詿誤”,貽誤。“詿”,音gu4。

  “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斷韓之上地,東取成皋、滎陽,〔1〕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아

秦下甲據宜陽(진하갑거의양) : 진나라가 병사를 풀어 의양에 웅거하면서

斷韓之上地(단한지상지) : 한나라의 위쪽 지방을 끊어

東取成皐滎陽(동취성고형양) : 동쪽의 성고와 형양을 취할 것입니다.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2〕夫塞成皋,絕上地,則王之國分矣。先事秦則安,不事秦則危。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칙홍대지궁상림지원비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홍대궁 상림원은 이미 임금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夫塞成皐(부새성고) : 무릇 진나라가 성고의 길을 막고

絶上地(절상지) : 위쪽의 땅을 끊으면

則王之國分矣(칙왕지국분의) : 임금의 나라는 쪼개지고 말 것입니다.

先事秦則安(선사진칙안) : 그보다 앞서 진나라를 섬기면 태평하겠거니와

不事秦則危(불사진칙위) : 그렇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夫造禍而求其福報,計淺而怨深,逆秦而順楚,雖欲毋亡,不可得也。

夫造禍而求其福報(부조화이구기복보) : 스스로 화를 만들어 그 복됨을 갚음을 구한다는 것은

計淺而怨深(계천이원심) : 계략으로는 얕은 것이며 진나라의 원한만 깊어질 따름입니다 .

逆秦而順楚(역진이순초) :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른다면

雖欲毋亡(수욕무망) : 망하지 않을래야

不可得也(불가득야) : 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注釋】〔1〕“滎陽”,韓邑,在今河南滎陽東北。

〔2〕“鴻臺之宮、桑林之苑”,都是韓國的宮苑名。苑,畜養鳥獸的園林,形狀婉轉曲折,所以稱為苑。

  “故為大王計,莫如為秦。〔1〕

故爲大王計(고위대왕계) : 그런 까닭에 대왕을 위해 생가가하건대

莫如爲秦(막여위진) : 진나라에 가담하는 수밖에 좋은 방책은 달리 없습니다.

秦之所欲莫如弱楚,而能弱楚者莫如韓。非以韓能強于楚也。〔2〕其地勢然也。

秦之所欲莫如弱楚(진지소욕막여약초) : 진나라가 바라는 것은 초나라를 위축시키는 일이며

而能弱楚者莫如韓(이능약초자막여한) : 초나라를 위축시킬 수 있기로는 한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

非以韓能彊於楚也(비이한능강어초야) : 이것은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고

其地勢然也(기지세연야) : 지세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秦王必喜。夫攻楚以利其地,轉禍而說秦,計無便于此者。”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금왕서면이사진이공초) : 이제 만약 임금이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초나라를 치면

秦王必喜(진왕필희) : 진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夫攻楚以利其地(부공초이리기지) : 초나라를 쳐서 토지를 빼앗고

轉禍而說秦(전화이설진) : 화를 굴려서 진나라를 기쁘게 한다면

計無便於此者(계무변어차자) : 이보다 좋은 계책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釋】〔1〕“為”,《戰國策·韓策一》作“事”,臣服的意思。〔2〕“以”,認為。

  韓王聽儀計。張儀歸報,秦惠王封儀五邑,號曰武信君。

韓王聽儀計(한왕청의계) : 한왕이 장의의 모책에 따랐으므로

張儀歸報(장의귀보) :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보고하였다.

秦惠王封儀五邑(진혜왕봉의오읍) : 진혜왕은 장의를 5읍의 영주로 봉하고

號曰武信君(호왈무신군) : 무신군이란 호를 내렸다.

使張儀東說齊湣王曰:〔1〕“天下強國無過齊者,大臣父兄殷眾富樂。

使張儀東說齊湣王曰(사장의동설제혼왕왈) : 그리고 혜왕은 장의를 동쪽 제나라에 보내어 혼왕에게 유세하게 하기를

天下彊國無過齊者(천하강국무과제자) : ‘천하의 강국으로서는 제나라에 미칠 것이 없습니다.

大臣父兄殷衆富樂(대신부형은중부락) : 대신과 부형은 모두 살림이 번성하고 부귀와 안락을 누립니다.

然而為大王計者,皆為一時之說,不顧百世之利。

然而爲大王計者(연이위대왕계자) : 그러면서도 대왕을 위해 게책을 바치는 자는

皆爲一時之說(개위일시지설) : 모두 한때의 의논에 끌려서

不顧百世之利(불고백세지리) : 백 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從人說大王者,必曰‘齊西有強趙,南有韓與梁。齊,負海之國也,〔2〕地廣民眾,兵強士勇,雖有百秦,將無奈齊何’。

從人說大王者(종인설대왕자) : 합종론을 가지고 대왕께 말씀드리는 자는

必曰(필왈) : 반드시 이렇게 말합니다.

齊西有彊趙(제서유강조) : ‘제나라는 서쪽에 강국 조나라가 있고

南有韓與梁(남유한여량) : 남쪽에 하나라와 위나라가 있고

齊負海之國也(제부해지국야) : 제나라는 배후에 바다를 낀 나라다.

地廣民衆(지광민중) : 토지는 넓고 주민은 많고

兵彊士勇(병강사용) : 군사는 강하고 용감하여

雖有百秦(수유백진) : 100 개의 진나라를 가지고도

將無柰齊何(장무내제하) : 제나라를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夫從人朋黨比周,〔3〕莫不以從為可。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대왕현기설이불계기실) : 대왕은 이 말을 현명한 것으로 알고 그 실질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夫從人朋黨比周(부종인붕당비주) : 저 합종론자들은 서로 도당을 만들고 한동아리가 되어서

莫不以從爲可(막불이종위가) : 합종을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자가 없습니다.

臣聞之,齊與魯三戰而魯三勝,〔4〕國以危亡隨其后,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齊與魯三戰而魯三勝(제여로삼전이로삼승) : ‘일직이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번을 싸워 노나라는 세 번 다 이기고도

國以危亡隨其後(국이위망수기후) : 나라가 위태하게 되어 마침내 망했다.’고 말입니다.

雖有戰勝之名,而有亡國之實。是何也? 齊大而魯小也。

雖有戰勝之名(수유전승지명) : 싸움에 이겼다는 이름은 있으면서

而有亡國之實(이유망국지실) : 나라가 망한 결과가 생겼습니다 망했습니다.

是何也(시하야) : 이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齊大而魯小也(제대이로소야) : 제나라 대국이요 노나라는 소국이기 때문입니다.

今秦之與齊也,猶齊之與魯也。秦趙戰于河漳之上,再戰而趙再勝秦;〔5〕

今秦之與齊也(금진지여제야) : 가까이는 진나라와 제나라인 경우도

猶齊之與魯也(유제지여로야) : 제나라나 노나라의 예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秦趙戰於河漳之上(진조전어하장지상) : 진나라와 조나라는 하수와 장수의 근방에서

再戰而趙再勝秦(재전이조재승진) : 두 번 사워 조나라가 두 번 다 이겼습니다.

戰于番吾之下,再戰又勝秦。〔6〕四戰之后,趙之亡卒數十萬,邯鄲僅存,〔7〕

戰於番吾之下(전어번오지하) : 번오의 성 아래서도

再戰又勝秦(재전우승진) : 두 번을 싸워 또 진나라에 이겼습니다.

四戰之後(사전지후) : 그러나 네 번을 싸운 뒤에

趙之亡卒數十萬(조지망졸수십만) : 조나라의 전사자는 몇 십만에 달하고

邯鄲僅存(감단근존) : 간신히 서울인 한단을 유지했을 뿐입니다 .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是何也?秦強而趙弱。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수유전승지명이국이파의) : 비록 전승의 이름은 있었지만 나라는 이미 다 깨어졌습니다.

是何也(시하야) : 이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秦彊而趙弱(진강이조약) : 오직 진나라가 강하고 조나라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注釋】〔1〕“齊湣王”,名地,齊宣王之子,公元前三○○年至前二八四年在位。

湣王即位時,張儀已死九年,此處說張儀東說齊湣王,不合事實。

〔2〕“負”,背靠。〔3〕“朋黨”,結成小集團。

〔4〕“齊與魯三戰而魯三勝”,這是假設的話,不是事實。

〔5〕“秦趙戰于河漳之上,再戰而再勝秦”,這兩戰也不見記載,恐不可靠。

“河”指黃河,“漳”指漳水。

〔6〕“戰于番吾之下,再戰又勝秦”,秦攻趙番吾,被趙將李牧打退,事在公元前二三二年,

時張儀已死七十七年。“番吾”,趙邑,在今河北磁縣境。“番”,音p2n或p2。

〔7〕“邯鄲”,趙都,公元前三八六年趙敬侯自晉陽徙都于此。故址在今河北邯鄲市西南十里,

俗稱趙王城。

  “今秦楚嫁女娶婦,〔1〕為昆弟之國。

今秦楚嫁女娶婦(금진초가녀취부) :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여자를 시집보내어

爲昆弟之國(위곤제지국) :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塞獻宜陽;〔2〕梁效河外;〔3〕趙入朝澠池,〔4〕割河間以事秦。〔5〕

韓獻宜陽(한헌의양) : 한나라는 진나라에 성양의 땅을 바치고

梁效河外(량효하외) : 위나라는 하외를 제공하고

趙入朝澠池(조입조민지) : 조나라는 민지에서 진나라의 회견에 응하였고

割河閒以事秦(할하한이사진) : 하간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를 받들었습니다.

大王不事秦,秦驅韓梁攻齊之南地,悉趙兵渡清河,〔6〕指博關,〔7〕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께서 만약 진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秦驅韓梁攻齊之南地(진구한량공제지남지) : 진나라는 하나라와 위나라를 앞장세워 제나라의 남부를 공격하고

悉趙兵渡淸河(실조병도청하) : 조나라의 병력을 모두 들어서 청하를 건너

指博關(지박관) : 박관을 향해 진격할 것입니다.

臨菑、即墨非王之有也。〔8〕國一日見攻,雖欲事秦,不可得也。是故愿大王孰計之也。”

臨菑卽墨非王之有也(임치즉묵비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임치와 즉묵은 임금의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國一日見攻(국일일견공) : 제나라가 한 번 진나라에 공격을 받으면

雖欲事秦(수욕사진) : 진나라를 섬기고 싶어도

不可得也(불가득야) : 이미 때가 늦습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也(시고원대왕숙계지야) :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注釋】〔1〕“秦楚嫁女娶婦”,據《六國年表》,秦往楚迎婦在秦昭王二年(公元前三五五年),時張儀已死五年。

〔2〕“韓獻宜陽”,這不合事實。秦取宜陽是用武力攻取,并非韓國所獻。

事在秦武王四年(公元前三○七年),張儀已死三年。

〔3〕“梁效河外”,“河外”,地區名,指曲沃(今山西聞喜東北)、平周(今山西介休西)等地。

據《六國年表》,公元前三二二年,秦取曲沃、平周,可見河外入秦也是秦用武力攻取,不是魏國所獻。

〔4〕“趙入朝澠池”,據《六國年表》,秦、趙會澠池在周赧王三十六年(公元前二七九年),時張儀已死三十年。

〔5〕“割河間以事秦”,河間,地區名,指黃河、漳水之間。秦、趙澠池之會時,趙并無割河間事。

〔6〕“清河”,古河名,在齊、趙二國之間,源出今河南內黃縣南。

〔7〕“博關”,古關名,在今山東博平縣西北。

〔8〕“即墨”,齊邑,故城在今山東平度東南。

  齊王曰:“齊僻陋,隱居東海之上,未嘗聞社稷之長利也。”乃許張儀。

齊王曰(제왕왈) : 제나라 왕이 이르기를

齊僻陋(제벽루) : “제나라는 벽지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미개의 나라로서

隱居東海之上(은거동해지상) : 과인은 동해와 근방에 은거해 있으므로

未嘗聞社稷之長利也(미상문사직지장리야) : 지금껏 국가 장구의 이익을 들은 일이 없었습니다.”하고

乃許張儀(내허장의) : 장의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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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4

  張儀既出,未去,聞蘇秦死,〔1〕

張儀旣出(장의기출) : 장의는 석방이 되어서도

未去(미거) : 초나를 떠나지 않다가

聞蘇秦死(문소진사) : 소진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乃說楚王曰:“秦地半天下,兵敵四國,〔2〕被險帶河,〔3〕四塞以為固。

乃說楚王曰(내설초왕왈) : 곧 초왕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秦地半天下(진지반천하) : “진나라 영토는 천하의 반을 차지하고

兵敵四國(병적사국) : 그 군사는 4개국을 대적할 수 있으며

被險帶河(피험대하) : 험한 땅이 둘려졌고 하수를 끼고

四塞以爲固(사색이위고) : 사방이 닫히었으므로 나라가 견고합니다.

虎賁之士百余萬,〔4〕車千乘,騎萬匹,積粟如丘山。

虎賁之士百餘萬(호분지사백여만) : 또 날랜 군사가 100여만

車千乘(차천승) : 전차가 1000 승

騎萬匹(기만필) : 기마가4만 필

積粟如丘山(적속여구산) : 곡식을 저장하기를 산더미 같이 하고

法令既明,士卒安難樂死,〔5〕主明以嚴,將智以武,

法令旣明(법령기명) : 법령은 밝아서

士卒安難樂死(사졸안난락사) : 군사들은 고생을 잘 견디고 죽음을 가볍게 알며

主明以嚴(주명이엄) : 임금은 총명하고 엄격하며

將智以武(장지이무) : 장군은 지모가 있어서

雖無出甲,席卷常山之險,必折天下之脊,〔6〕天下有后服者先亡。

雖無出甲(수무출갑) : 무력을 써 출병하지 않더라도

席卷常山之險(석권상산지험) : 그 기세는 상산의 험한 땅이라도 반

必折天下之脊(필절천하지척) : 명석말이를 할 만하니 반드시 천하의 등골을 꺾을 것입니다

天下有後服者先亡(천하유후복자선망) : 천하 제후로서 늦게 진나라에 복종하는 자가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且夫為從者,無以異于驅群羊而攻猛虎,虎之與羊不格明矣。〔7〕

且夫爲從者(차부위종자) : 더욱이 합종에 참가하는 자는

無以異於驅羣羊而攻猛虎(무이이어구군양이공맹호) : 일부러 공격하여 맹호를 공격하는 양떼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虎之與羊不格明矣(호지여양불격명의) : 호랑이와 양은 승부가 안될 것이 분명합니다

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臣竊以為大王之計過也。〔8〕

今王不與猛虎而與羣羊(금왕불여맹호이여군양) : 이제 임금은 맹호와 손잡지 않고 양떼와 더불어 있는데

臣竊以爲大王之計過也(신절이위대왕지계과야)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같은 대왕의 계책은 그릇되었습니다

【注釋】〔1〕“聞蘇秦死”,此句不是事實,據《六國年表》,張儀死于公元前三○九年。

據當代學者研究,蘇秦乃死于公元前二八四年。蘇秦死時,張儀已先死二十五年。

〔2〕“四國”,泛指各諸侯國。〔3〕“被險”,險關環抱。“帶河”,黃河圍繞。

〔4〕“虎賁之士”,勇士。〔5〕“安難樂死”,這是說不避死亡。

〔6〕“雖無出甲”,三句“雖”通“唯”。這是說只是不出甲而已,如果出甲,一定會席卷常山而折天下之脊。

〔7〕“格”,敵。〔8〕“過”,錯誤。

  “凡天下強國,非秦而楚,非楚而秦,〔1〕兩國交爭,其勢不兩立。

凡天下彊國(범천하강국) : 무릇 천하의 강국은

非秦而楚(비진이초) :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

非楚而秦(비초이진) :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이니

兩國交爭(양국교쟁) : 두 나라가 서로 싸우면

其勢不兩立(기세불양입) : 그 세력은 양립되지 못합니다

大王不與秦,秦下甲據宜陽,韓之上地不通。〔2〕下河東,〔3〕取成皋,〔4〕韓必入臣,〔5〕梁則從風而動。

大王不與秦(대왕불여진) : 대왕께서 만일 진나라와 손잡지 않으면

秦下甲據宜陽(진하갑거의양) : 진나라는 무장한 군사를 남쪽으로 내려 보내 선양에 웅거할 것이며

韓之上地不通(한지상지불통) : 한나라 상군 땅은 통로를 끊길 것입니다

下河東(하하동) : 진나라 군사가 하수 동쪽을 남하하여

取成皐(취성고) : 성고를 취하면

韓必入臣(한필입신) : 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신하로 들 것이며

梁則從風而動(량칙종풍이동) : 위나라는 그때그때 바람을 탐서 움직일 것입니다

秦攻楚之西,韓、梁攻其北,社稷安得毋危?

秦攻楚之西(진공초지서) : 진나라가 초나라의 서쪽을 공격하고

韓梁攻其北(한량공기북) : 한나라와 위나라가 초나라의 북쪽을 공격하면

社稷安得毋危(사직안득무위) : 초나라의 사직은 도저히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注釋】〔1〕“而”,則,即。

〔2〕“上地”,地區名,指上黨之地。上黨,韓郡,轄境相當今山西和順、榆順以南,沁水流域以東地。

〔3〕“河東”,地區名,在今山西西南部。〔4〕“成皋”,韓邑,故城在今河南滎陽汜水鎮西。

〔5〕“入臣”,稱臣。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強,不料敵而輕戰,國貧而數舉兵,危亡之術也。

且夫從者聚羣弱而攻至彊(차부종자취군약이공지강) : 대체로 합종론자는 약속한 나라를 모두 모아서 지극히 강한 진나라를 공격하되

不料敵而輕戰(불료적이경전) : 적의 힘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싸우고

國貧而數擧兵(국빈이수거병) : 나라가 가난해도 자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危亡之術也(위망지술야) : 이것은 위험과 멸망의 술책일 뿐입니다

臣聞之,兵不如者勿與挑戰,粟不如者勿與持久。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들으니

兵不如者勿與挑戰(병불여자물여도전) : ‘병격이 미치지 않거든 싸움을 걸지 말고

粟不如者勿與持久(속불여자물여지구) : 식량이 궁하거든 오래 견딜 생각을 말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夫從人飾辯虛辭,〔1〕高主之節,言其利不言其害,

夫從人飾辯虛辭(부종인식변허사) : 저 합종론자는 자기들의 말을 아름답게 꾸며

高主之節(고주지절) :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을 절조라 하여 높이 받들고

言其利不言其害(언기리불언기해) : 합종의 이익만을 말할 뿐으로 손해됨은 조금도 말하지 않습니다

卒有秦禍,〔2〕無及為已。是故愿大王之孰計之。〔3〕

卒有秦禍(졸유진화) : 이 때문에 결국은 진나라의 화가

無及爲已(무급위이) : 자신에게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是故願大王之孰計之(시고원대왕지숙계지) :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注釋】〔1〕“飾辯”,粉飾。〔2〕“卒”,通“猝”。

〔3〕“孰計’,仔細考慮。“孰”,通“熟”。

  “秦西有巴蜀,大船積粟,起于汶山,〔1〕浮江已下,〔2〕至楚三千余里。舫船載卒,〔3〕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

秦西有巴蜀(진서유파촉) : 진나라는 서쪽에 파·촉의 땅을 가졌습니다

大船積粟(대선적속) : 큰 배에 곡식을 싣고

起於汶山(기어문산) : 문산으로부터

浮江已下(부강이하) : 강수를 내려가면

至楚三千餘里(지초삼천여리) : 초나라에까지 3천여 리,

舫船載卒(방선재졸) : 배를 늘어 세워 군사를 싣는데

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일방재오십인여삼월지식) : 한 쌍의 배에 50면과 석 달 양식을 채울 수 있고

下水而浮,一日行三百余里,里數雖多,然而不費牛馬之力,不至十日而距捍關。〔4〕

下水而浮(하수이부) : 물을 따라 내려 떠가도

一日行三百餘里(일일행삼백여리) : 하루에 가기를 3백여 리

里數雖多(리수수다) : 이수는 많다 해도

然而不費牛馬之力(연이불비우마지력) : 우·마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不至十日而距扞關(불지십일이거한관) : 열흘 안에 한관에 닿을 수 있습니다

捍關驚,則從境以東盡城守矣,〔5〕黔中、巫郡非王之有。秦舉甲出武關,南面而伐,則北地絕。〔6〕

扞關驚(한관경) : 한관을 경동하게 하면

則從境以東盡城守矣(칙종경이동진성수의) : 초나라의 경계 동쪽은 다 겁을 먹고 성에서 지킬 것입니다

黔中巫郡非王之有(검중무군비왕지유) : 이렇게 되면 금중과 무근은 임금의 차지가 되지 않을 것이며

秦擧甲出武關(진거갑출무관) : 진나라가 전군을 들어 무관을 나와

南面而伐(남면이벌) : 남쪽을 향해 공격하면

則北地絶(칙북지절) : 북쪽 지방과의 교통은 끊어질 것입니다

秦兵之攻楚也,危難在三月之內,而楚待諸侯之救,在半歲之外,

秦兵之攻楚也(진병지공초야) : 진군이 초나라를 공격하려 하면

危難在三月之內(위난재삼월지내) : 위험한 지경은 석 달 안에 오는데

而楚待諸侯之救(이초대제후지구) : 초나라가 제후의 구우런을 기다림에는

在半歲之外(재반세지외) : 반 년 이상이 걸립니다

此其勢不相及也。夫恃弱國之救,忘強秦之禍,此臣所以為大王患也。

此其勢不相及也(차기세불상급야) : 이래서는 그 세력만 가지고도 벌써 미치지 못합니다

夫待弱國之救(부대약국지구) : 대관절 약소국의 구원을 기다려서

忘彊秦之禍(망강진지화) : 강한 진나라의 화를 잊어버리는 것은

此臣所以爲大王患也(차신소이위대왕환야) : 신이 대왕을 위 근심하는 바입니다

 【注釋】〔1〕“汶山”,山名,即岷山,在今四川松潘北。〔2〕“已”,通“以”。

〔3〕“舫船”,兩船相并。“舫”,音f3ng。〔4〕“距”,至。“捍關”,古關名,故址在今湖北長陽西。

〔5〕“從境”,當從《戰國策·楚策一》作“竟陵”,其地在今湖北潛江西北。“城守”,修筑防禦工事。

〔6〕“北地”,指楚國的北境。

“大王嘗與吳人戰,〔1〕五戰而三勝,陣卒盡矣;偏守新城,〔2〕存民苦矣。

大王嘗與吳人戰(대왕상여오인전) : 일찌기 대왕은 오나라의 군사와 싸워서

五戰而三勝(오전이삼승) : 다섯 번을 싸워 세 번을 이겼으나

陣卒盡矣(진졸진의) : 진을 친 군사는 전멸하였고

偏守新城(편수신성) : 겨우 신성을 지켜

存民苦矣(존민고의) : 백성의 고통만 남겼습니다

臣聞功大者易危,而民敝者怨上。夫守易危之功而逆強秦之心,臣竊為大王危之。

臣聞功大者易危(신문공대자이위) : 신이 들으니 ‘큰 공업은 기울어지기 쉽고

而民敝者怨上(이민폐자원상) : 피폐한 백성은 위를 원망한다.’고 하였습니다

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부수역위지공이역강진지심) : 기울어지기 쉬운 공업을 지켜 강한 진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臣竊爲大王危之(신절위대왕위지) : 신이 대왕을 위해 은근히 위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注釋】〔1〕“大王嘗與吳人戰”,此句有誤。吳在前四七三年被越國滅亡,越又亡于楚。懷王時,吳國早已不復存在。

〔2〕“新城”,新取得的城邑。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十五年以攻齊、趙者,〔1〕陰謀有合天下之心。〔2〕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차부진지소이불출병함곡) : 대체로 진나라가 함곡관에서 출병하여

十五年以攻齊趙者(십오년이공제조자) : 제나라와 조나라를 15년이나 공격하지 않은 것은

陰謀有合天下之心(음모유합천하지심) : 천하를 병합하려는 음모의 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楚嘗與秦構難,戰于漢中,楚人不勝,列侯執珪死者七十余人,〔3〕遂亡漢中。

楚嘗與秦構難(초상여진구난) : 일찍이 초나라가 진나라와 싸움을 겨루어

戰於漢中(전어한중) : 한중에서 싸웠을 때

楚人不勝(초인불승) : 초군이 패하여

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열후집규사자칠십여인) : 열후 집규자만 70여명이나 죽고

遂亡漢中(수망한중) : 마침내 한중 땅을 잃었습니다

楚王大怒,〔4〕興兵襲秦,戰于藍田。此所謂兩虎相搏者也。

楚王大怒(초왕대노) : 초왕은 크게 노하여

興兵襲秦(흥병습진) : 군사를 있는 대로 내어서 진나라를 습격하고

戰於藍田(전어람전) : 남전에서 싸웠습니다

此所謂兩虎相搏者也(차소위양호상박자야) : 이것은 이른바 두 호랑이가 서로 겨루는 것과 같은 것이니

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后,計無危于此者矣。愿大王孰計之。

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부진초상폐이한위이전제기후) : 진나라와 초나라가 함께 피로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온전한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뒤를 제압하면

計無危於此者矣(계무위어차자의) : 초나의 계략이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며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願大王孰計之(원대왕숙계지) :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注釋】〔1〕“秦之所以不出兵函谷十五年”,這句話不合事實,

秦惠王時,秦多次出函谷關,向東方用兵。“函谷”,關名,在今河南靈寶縣東。

〔2〕“合”,一作“吞”。〔3〕“執珪”,楚國的最高爵位。

〔4〕“楚王”,當作“大王”。

  “秦下甲攻衛陽晉,必大關天下之匈。〔1〕大王悉起兵以攻宋,不至數月而宋可舉,

秦下甲攻衛陽晉(진하갑공위양진) : 진나라가 출병하여 위나라의 양진을 치면

必大關天下之匈(필대관천하지흉) : 천하의 심장인 요지를 막는 것이며

大王悉起兵以攻宋(대왕실기병이공송) : 대왕이 모두 병력을 일으켜 송나라를 치면

不至數月而宋可擧(불지수월이송가거) : 몇 개월을 기다리지 않고 송나라를 공략할 수 있을 것입니다

舉宋而東指,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2〕

擧宋而東指(거송이동지) : 송나라를 공략하고 동쪽으로 눈을 돌려서 치면

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칙사상십이제후진왕지유야) : 사토의 12제후는 모두 다 임금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注釋】〔1〕“攻衛陽晉,必大關天下之匈”,這是指攻取陽晉的戰略意義,以常山為天下之脊,

那么陽晉就是天下之胸,這里是秦、晉、齊、楚的交通要道,秦國攻下陽晉,就是扼著天下的胸脯,

其他各國就都不敢動了。“匈”,同“胸”。

〔2〕“泗上十二諸侯”,泗水流域的十二個小國,如鄒、魯、莒等。“泗”,水名,源出今山東泗水縣東蒙山南麓。

  “凡天下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封武安君,〔1〕相燕,〔2〕即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

凡天下(범천하) : 무릇 천하 제후가

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이이신약종친상견자소진) : 약정을 맺고 합종하여 서로 단결을 굳게 한근본은 소진에게 있었습니다

封武安君(봉무안군) : 소진은 무안군이 되고

相燕(상연) : 연나라 재상이 된 지

卽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즉음여연왕모벌파제이분기지) : 얼마 안 되어 연왕과 함께 은근히 제나라를 치고 그 땅의 분할을 꾀했습니다

乃詳有罪出走入齊,〔3〕齊王因受而相之;

乃詳有罪出走入齊(내상유죄출주입제) : 이 때문에 소진은 연나라에서 죄를 입었다고 거짓 꾸며서 제나라로 달아났는데

齊王因受而相之(제왕인수이상지) : 제왕은 그를 받아들여 재상을 삼았습니다

居二年而覺,齊王大怒,東裂蘇秦于市。〔4〕

居二年而覺(거이년이각) : 2년 뒤에 음모가 발각되어

齊王大怒(제왕대노) : 제왕은 크게 노하여

車裂蘇秦於市(차열소진어시) : 소진을 장터에서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夫以一詐偽之蘇秦,而欲經營天下,混一諸侯,〔5〕其不可成亦明矣。

夫以一詐僞之蘇秦(부이일사위지소진) : 따라서 일개 사기꾼인 소진 따위가

而欲經營天下(이욕경영천하) : 천하를 경륜하고

混一諸侯(혼일제후) : 제후를 합종하려 한 것이

其不可成亦明矣(기불가성역명의) : 성공되지 않은 것은 또한 명백한 일입니다

 【注釋】〔1〕“武安君”,封號,武安在今河南武安縣西。

〔2〕“燕”,國名。戰國七雄之一,都薊(今北京市外城的西北部),疆域包括今河北北部、遼寧南部及內蒙的南部。

〔3〕“乃詳有罪出走入齊”,據學者研究,蘇秦在周赧王九年(公元前三○六年)

受燕昭王派遣,侍燕質子于齊,因遂委質為齊臣,并非佯有罪而出亡。“詳”,通“佯”。

〔4〕“車裂”,俗稱五馬分尸。把人的頭和四肢分別拴在五輛車上,用五匹馬駕車分馳,把人撕裂而死。

〔5〕“經營”,籌劃。“混一”,統一。

  “今秦與楚接境壤界,〔1〕固形親之國也。〔2〕

今秦與楚接境壤界(금진여초접경양계) : 진나라와 초나라는 경계를 맞대어 지형을 말하더라도

固形親之國也(고형친지국야) : 본래부터 친하지 않으면 안 될 나라입니다

大王誠能聽臣,臣請使秦太子入質于楚,楚太子入質于秦,請以秦女為大王箕帚之妾,效萬室之都以為湯沐之邑,〔3〕長為昆弟之國,

大王誠能聽臣(대왕성능청신) : 대왕게서 진실로 신의 말씀을 받아 들인다면

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신청사진태자입질어초) : 진나라 태자를 초나라의 볼모로 하고

楚太子入質於秦(초태자입질어진) : 초나라에서도 태자를 진나라의 볼모로 넣고

請以秦女爲大王箕帚之妾(청이진녀위대왕기추지첩) : 진나라 왕녀를 대왕의 청소하는 첩으로

效萬室之都以爲湯沐之邑(효만실지도이위탕목지읍) : 만 호의 도읍을 양목의 읍으로 받아

長爲昆弟之國(장위곤제지국) : 길이 형제의 나라가 되십시오

終身無相攻伐。臣以為計無便于此者。”

終身無相攻伐(종신무상공벌) : 이렇게 하여 두 나라가 일생에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으면

臣以爲計無便於此者(신이위계무변어차자) : 이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注釋】〔1〕“壤界”,疆界相連。〔2〕“形親”,形勢上應當親善。

〔3〕“湯沐之邑”,本是天子賜給諸侯來朝時齋戒沐浴的地方,后一般指收取其地的賦稅作為費用。

  于是楚王已得張儀而重出黔中地與秦,〔1〕欲許之。

於是楚王已得張儀(어시초왕이득장의) : 이에 장의의 말을 들은 초왕은 이미 장의를 손 안에 넣은 만큼

而重出黔中地與秦(이중출검중지여진) : 약속한 금중 땅을 진나라에 주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欲許之(욕허지) : 장의를 용서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屈原曰:“前大王見欺于張儀,〔2〕張儀至,臣以為大王烹之;〔3〕

屈原曰(굴원왈) : 이에 굴원이 말하기를

前大王見欺於張儀(전대왕견기어장의) : “전에 대왕은 장의에게 속았습니다

張儀至(장의지) : 이번에 또 장의가 왔으니

臣以爲大王烹之(신이위대왕팽지) : 신은 대왕께서 그를 부(釜)에 익혀서 죽이는 줄 알았습니다

今縱弗忍殺之,〔4〕又聽其邪說,不可。”

今縱弗忍殺之(금종불인살지) : 이제 설령 그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又聽其邪說(우청기사설) : 그 요사한 말을 듣는 것은

不可(불가) : 좋지 않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懷王曰:“許儀而得黔中,美利也。后而倍之,〔5〕不可。”

懷王曰(회왕왈) : 그러자 외왕은 이르기를

許儀而得黔中(허의이득검중) : “자의를 용서하고 금중을 보전하는 것은

美利也(미리야) : 대단한 이익이다

後而倍之(후이배지) : 약속한 이상 뒤에 위약하는 것은

不可(불가) : 안 될 일이다.”라고 하고

故卒許張儀,與秦親。

故卒許張儀(고졸허장의) : 마침내 장의를 용서하고

與秦親(여진친) :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注釋】〔1〕“重出”,難于割棄。“重”,難。

〔2〕“前大王見欺於張儀”,指張儀以商于之地欺騙楚懷王的事。“見”,被。

〔3〕“烹”,古代以鼎鑊煮人的酷刑。〔4〕“縱”,釋放。

〔5〕“倍”,通“背”,背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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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3

三歲而魏復背秦爲從

三歲而魏復背秦爲從(삼세이위복배진위종) : 3년 뒤에 위나라는 또 배반하고 합종에 참가하였다

秦攻魏,取曲沃。明年,魏復事秦。

秦攻魏(진공위) :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取曲沃(취곡옥) : 곡옥을 취하니

明年(명년) : 이듬해에

魏復事秦(위복사진) : 위나라는 또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다

  【注釋】〔1〕“倍”,通“背”,背棄。

  秦欲伐齊,齊、楚從親,于是張儀往相楚。楚懷王聞張儀來,〔1〕

虛上舍而自館之。〔2〕曰:“此僻陋之國,子何以教之?”

秦欲伐齊(진욕벌제) :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고 하자

齊楚從親(제초종친) : 제나라와 초나라는 합종하였으므로

於是張儀往相楚(어시장의왕상초) : 이에 장의는 초나라에 갔다

楚懷王聞張儀來(초회왕문장의래) : 초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것을 듣고

虛上舍而自館之曰(허상사이자관지왈) : 일등 저책을 비워 몸소 안내하고 그곳에 유숙하게 하여 장의에게 말하기를

此僻陋之國(차벽루지국) : “이같은 변방 나라에

子何以敎之(자하이교지) : 그대는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왔습니까?”라고 하였다

儀說楚王曰:“大王誠能聽臣,閉關絕約于齊,〔3〕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4〕

使秦女得為大王箕帚之妾,〔5〕

儀說楚王曰(의설초왕왈) : 장의는 말하기를

大王誠能聽臣(대왕성능청신) :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閉關絶約於齊(폐관절약어제) : 관문을 닫아서 제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끊으신다면

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신청헌상어지지육백리) : 신은 사오의 당 6백 리를 대왕에게 바치고

使秦女得爲大王箕帚之妾(사진여득위대왕기추지첩) : 진나라의 왕녀를 기추의 첩으로 바치게할 계책입니다

秦楚娶婦嫁女,長為兄弟之國。此北弱齊而西益秦也,計無便此者。”

秦楚娶婦嫁女(진초취부가녀) : 진나라와 초나라가 여자를 시집보내는 사이가 되면

長爲兄弟之國(장위형제지국) : 형제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此北弱齊而西益秦也(차북약제이서익진야) : 이것은 북쪽 제나를 위축시키고 서족 진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計無便此者(계무변차자) : 계책으로 이보다 편리한 것은 없습니다”고 했다

楚王大說而許之。〔6〕群臣皆賀,陳軫獨吊之。〔7〕

楚王大說而許之(초왕대설이허지) : 초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를 허낙하고

羣臣皆賀(군신개하) : 여러 신하들도 모두 정하였는데

陳軫獨弔之(진진독조지) : 홀로 진진만은 잘못됨을 말하였다

楚王怒曰:“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群臣皆賀,子獨吊,何也?”

楚王怒曰(초왕노왈) : 초왕은 노하여 말하기를

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과인불흥사발병득육백리지) : “과인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출동도 하지 않고 6백 리 땅을 얻는 것이요

羣臣皆賀(군신개하) : 여러 신하가 다 축하하였소

子獨弔(자독조) : 그대만이 홀로 잘못됨을 말함은

何也(하야) : 무슨 까닭이오.”라고 했다

陳軫對曰:“不然,以臣觀之,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齊秦合則患必至矣。”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不然(불연) : “그렇지 않습니다

以臣觀之(이신관지) : 저로서는 그것을 보니

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상어지지불가득이제진합) : 상오의 땅을 얻기도 전에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할 것입니다

齊秦合則患必至矣(제진합칙환필지의) :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화가 올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고 하였다

楚王曰:“有說乎?”

楚王曰(초왕왈) : 초왕은 이르기를

有說乎(유설호) :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하니

陳軫對曰:“夫秦之所以重楚者,以其有齊也。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夫秦之所以重楚者(부진지소이중초자) : “대체로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것은

以其有齊也(이기유제야) : 초나라가 제나라와 친선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今閉關絕約于齊,則楚孤。秦奚貪夫孤國,〔8〕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

張儀至秦,必負王,〔9〕

今閉關絶約於齊(금폐관절약어제) : 이제 관문을 닫아서 제나라와의 맹약을 깨뜨리면

則楚孤(칙초고) : 초나라는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秦奚貪夫孤國(진해탐부고국) : 진나라는 이러한 고립된 나라를 자기 편으로 하기 위해

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이여지상어지지육백리) : 상오의 땅 6백 리를 주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張儀至秦(장의지진) : 장의가 진나라에 돌아가면

必負王(필부왕) : 반드시 임금과의 약속을 저버릴 것입니다

是北絕齊交,西生患于秦也,而兩國之兵必俱至。善為王計者,不若陰合而陽絕于齊,使人隨張儀。

是北絶齊交(시북절제교) : 이것은 복쪽의 제나라와 친교를 끊고

西生患於秦也(서생환어진야) : 서쪽의 진나라로부터 화를 부르는 것이므로

而兩國之兵必俱至(이양국지병필구지) : 제나라와 진나라 양국의 군사가 반드시 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善爲王計者(선위왕계자) : 최선의 임금님을 위한 정책은

不若陰合而陽絶於齊(불약음합이양절어제) : 음으로 제나라와 결탁하면서 양으로 절교하고

使人隨張儀(사인수장의) : 사람을 보내어 장의를 수행하게 할 일입니다

茍與吾地,絕齊未晚也;不與吾地,陰合謀計也。”

苟與吾地(구여오지) : 만일 우리 토지를 주면

絶齊未晩也(절제미만야) : 제나라와 끊을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不與吾地(불여오지) : 만일 토지를 주지 않는 경우를 생각하여

陰合謀計也(음합모계야) : 음으로 제나라와 결탁해 두는 계책입니다.”고 하였다

楚王曰:“愿陳子閉口毋復言,以待寡人得地。”

楚王曰(초왕왈) : 초나라 왕이 이르기를

願陳子閉口毋復言(원진자폐구무부언) : “진자여 입을 닫고 다시 말하지 말라

以待寡人得地(이대과인득지) : 그리고 과인이 토지를 손에 넣는 것을 기다려라.”고 하였다

乃以相印授張儀,厚賂之。于是遂閉關絕約于齊,使一將軍隨張儀。

乃以相印授張儀(내이상인수장의) : 장의에게 재상의 인수를 주고

厚賂之(후뢰지) : 후한 뇌물을 주어서

於是遂閉關絶約於齊(어시수폐관절약어제) : 마침내 관문을 닫다 제나라와의 맹약을 끊고

使一將軍隨張儀(사일장군수장의) : 한 장군에게 장의를 수행하게 하였다

  【注釋】〔1〕“楚懷王”,楚威王子,名槐,公元前三二八年至前二九九年在位。

〔2〕“上舍”,上等館舍。“館”,款待。

〔3〕“閉關”,斷絕來往。〔4〕“商於之地”,指廣大的漢中地區。

〔5〕“箕帚之妾”,古專指妻子。“箕”,簸箕。“帚”,掃帚。“箕帚”指作灑掃的事。〔6〕“說”,通“悅”。〔7〕“吊”,哀悼。〔8〕“奚”,為甚么。“夫”,語氣詞。

〔9〕“負”,背棄。

  張儀至秦,詳失綏墮車,〔1〕不朝三月。楚王聞之,曰:“儀以寡人絕齊未甚邪?”

張儀至秦(장의지진) :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자

詳失綏墮車(상실수타차) : 거짓으로 수레를 붙들고 올라가는 줄을 끊어

不朝三月(불조삼월) : 수레에서 떨어져 석 달 동안 조회하지 않았다

楚王聞之曰(초왕문지왈) : 초왕은 이 말을 듣고 이르기를

儀以寡人絶齊未甚邪(의이과인절제미심사) : “장의는 과인의 제라에 대한 절교가 충분한 것이 아닌 줄로 생각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인가?”고 하고

乃使勇士至宋,〔2〕借宋之符,北罵齊王。〔3〕

乃使勇士至宋(내사용사지송) : 날랜 군사를 송나라에 보내어

借宋之符(차송지부) : 송나라의 통행증을 빌려

北罵齊王(북매제왕) : 제나라에 가서 제나라 왕을 꾸짓게 하였다

齊王大怒,折節而下秦。秦齊之交合,

齊王大怒(제왕대노) : 제왕은 크게 화를 내어

折節而下秦(절절이하진) : 맹약의 증표를 꺾어버리고 진나라에 무릎을 끓었으므로

秦齊之交合(진제지교합) : 진나라와 제나라의 국교가 성립되었다

張儀乃朝,謂楚使者曰:“臣有奉邑六里,愿以獻大王左右。”

張儀乃朝(장의내조) : 그러자 장의는 조정에 나와

謂楚使者曰(위초사자왈) : 초나라의 사자에게 말하기를

臣有奉邑六里(신유봉읍육리) : “나에게 봉읍이 6리가 있습니다

願以獻大王左右(원이헌대왕좌우) : 예로 대왕의 좌우에 바쳐 주십시오.”라고 했다

楚使者曰:“臣受令于王,以商於之地六百里,不聞六里。”

楚使者曰(초사자왈) : 초나라 사자는 말하기를

臣受令於王(신수령어왕) : “제가 임금께 받은 명령에는

以商於之地六百里(이상어지지육백리) : 사오의 땅 6백 리라고 하였을 뿐

不聞六里(불문육리) : 6 리란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還報楚王,楚王大怒,發兵而攻秦。

還報楚王(환보초왕) : 돌아와서 이 사실을 초왕에게 보고하니

楚王大怒(초왕대노) : 초왕은 크게 노하여

發兵而攻秦(발병이공진) : 진나라를 공격하고자 출병하려고 하였다

陳軫曰:“軫可發口言乎?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并兵而攻齊,

陳軫曰(진진왈) : 진진이 말하기를

軫可發口言乎(진가발구언호) : “진은 이제야 입을 열어 말씀을 올려도 좋겠습니까?

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공지불여할지반이뢰진) : 진나라를 치기보다는 그 반대로 토지을 쪼개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與之幷兵而攻齊(여지병병이공제) : 진나라와 병력을 합하여 제나라를 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是我出地于秦,取償于齊也,王國尚可存。”

是我出地於秦(시아출지어진) : 이것은 우리 편에서 진나라에 토지를 주고

取償於齊也(취상어제야) : 그 보상을 제니라로부터 취한는 방책입니다

王國尙可存(왕국상가존) : 이렇게 하면 임금의 나라는 오히려 유지가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匃擊秦。

卒發兵而使將軍屈匃擊秦(졸발병이사장군굴개격진) : 마침내 출병하여 장군 굴개로 하여금 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匃,遂取丹陽、漢中之地。〔4〕

楚王不聽(초왕불청) : 진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秦齊共攻楚(진제공공초) : 진나라와 제나라는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斬首八萬(참수팔만) : 머리를 베기만 8만

殺屈匃(살굴개) : 굴개를 죽이고

遂取丹陽漢中之地(수취단양한중지지) : 마침내 단양과 한중의 땅을 빼앗았다

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5〕大戰,楚大敗,于是楚割兩城以與秦平。〔6〕

楚又復益發兵而襲秦(초우복익발병이습진) : 초나라는 더욱 군사를 많이 내어서 진나라를 습격했으나

至藍田(지람전) : 남전에 이르러

大戰(대전) : 크게 싸워

楚大敗(초대패) : 초나라는 대패하고

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어시초할양성이여진평) : 이에 두 성을 쪼개어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注釋】〔1〕“詳”,通“佯”,假裝。“綏”,用手拉住借以上車的繩子。

〔2〕“宋”,國名。戰國時是一個五千乘兵車的中等國家,都商丘(今河南商丘南)。

疆域有今河南東部和山東、江蘇、安徽間地。

〔3〕“借宋之符,北罵齊王”,因為“閉關絕約”,齊、楚的信使不通,所以要借用宋國的符。

“符”,用玉、銅、竹等制成,作為傳達命令或出使時的憑證。

〔4〕“丹陽”,地區名,在今陜西、河南兩省間的丹江以北。

“漢中”,地區名,包括今漢水中游陜西秦嶺以南的盆地。秦取漢中后,公元前三一二年,在此設郡。

〔5〕“藍田”,秦縣,故城在今陜西藍田縣西三十里。

〔6〕“楚割兩城以與秦平”,此所記恐非事實。《屈原列傳》及《戰國策·秦策四》記藍田之戰都不言有楚割城的事。

秦要楚欲得黔中地,欲以武關外易之。〔1〕

秦要楚欲得黔中地(진요초욕득검중지) : 진나라는 초나라의 금중 땅을 얻들 생각으로

欲以武關外易之(욕이무관외역지) : 무관 밖의 땅과 교환하자고 초나라에 청하였다

楚王曰:“不愿易地,愿得張儀而獻黔中地。”

楚王曰(초왕왈) : 그러자 초왕이 말하기를

不願易地(불원역지) : “영지의 교환은 바라지 않으나

願得張儀而獻黔中地(원득장의이헌검중지) : 장의를 내어 준다면 그 대신 금중의 땅을 바치겠소.”라고 하였다

秦王欲遣之,口弗忍言。張儀乃請行。

秦王欲遣之(진왕욕견지) : 진왕은 장의를 보내고 싶었으나

口弗忍言(구불인언) : 차마 입 밖에 말을 낼 수 없었다

張儀乃請行(장의내청행) : 그러자 장의가 스스로 가겠다고 청하므로

惠王曰:“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是且甘心于子。”

惠王曰(혜왕왈) : 혜왕이 말하기를

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피초왕노자지부이상어지지) : “저 초왕은 그대가 상오의 땅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노하고 있소

是且甘心於子(시차감심어자) : 이 때문에 그대를 욕심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張儀曰:“秦強楚弱,臣善靳尚,〔2〕尚得事楚夫人鄭袖,袖所言皆從。

張儀曰(장의왈) : 장의가 말하기를

秦彊楚弱(진강초약) : “진나라는 강국이요 초나라는 약국입니다

臣善靳尙(신선근상) : 그런데 신은 근상과 사이가 좋고

尙得事楚夫人鄭袖(상득사초부인정수) : 근상은 초왕의 부인 정수의 마음을 사고 있습니다

袖所言皆從(수소언개종) : 수의 말이라면 초앙은 무엇이라도 받아들입니다

且臣奉王之節使楚,楚何敢加誅。假令誅臣而為秦得黔中之地,臣之上愿。”

且臣奉王之節使楚(차신봉왕지절사초) : 그리고 나는 임금의 부절을 받아 가지고 초나라에 심부름을 가는 것이니

楚何敢加誅(초하감가주) : 초나라가 어찌 감히 신을 죽이겠습니까

假令誅臣而爲秦得黔中之地(가령주신이위진득검중지지) : 가령 신을 죽이더라도 신이 죽어 진나라가 금주의 땅을 얻는다면

臣之上願(신지상원) : 신의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遂使楚。楚懷王至則囚張儀,將殺之。

遂使楚(수사초) : 마침내 사신으로 초나라에 갔다

楚懷王至則囚張儀(초회왕지칙수장의) : 초회왕은 장의가 오자 곧 잡아 가두고

將殺之(장살지) : 장차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靳尚謂鄭袖曰:“子亦知子之賤于王乎?”

靳尙謂鄭袖曰(근상위정수왈) : 근상은 장의를 위해서 한 꾀를 생각하고 정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子亦知子之賤於王乎(자역지자지천어왕호) : 또한 당신이 왕에게 천하게 대우 받을 것을 알고 있을 것이지요

鄭袖曰:“何也?”

鄭袖曰(정수왈) : 정수가 이르기를

何也(하야) : “어째서요?”하니

靳尚曰:“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3〕

靳尙曰(근상왈) : 근상이 이르기를

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진왕심애장의이불욕출지) : “진왕은 매우 장의를 총애하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구원해 내려고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今將以上庸之地六縣賂楚,〔4〕以美人聘楚,〔5〕以宮中善歌謳者為媵。〔6〕

今將以上庸之地六縣賂楚(금장이상용지지육현뢰초) : 그 때문에 이제 상용 땅 6현을 초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以美人聘楚(이미인빙초) : 미인을 초왕에게 시집가네 하고

以宮中善歌謳者爲媵(이궁중선가구자위잉) : 궁중의 가희를 군녀로 보내려고 합니다

楚王重地尊秦,〔7〕秦女必貴而夫人斥矣。〔8〕不若為言而出之。”

楚王重地尊秦(초왕중지존진) : 초왕은 토지를 욕심내어 진나라를 받들 것이며

秦女必貴而夫人斥矣(진녀필귀이부인척의) : 반드시 진나라의 여자를 총애하고 부인을 배척할 것입니다

不若爲言而出之(불약위언이출지) : 이런 일을 생각해 왕에게 말씀해서 장의를 석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于是鄭袖日夜言懷王曰:“人臣各為其主用。今地未入秦,秦使張儀來,至重王。

於是鄭袖日夜言懷王曰(어시정수일야언회왕왈) : 이에 정수는 밤낮없이 회왕에게 말하기를

人臣各爲其主用(인신각위기주용) : “신하는 누구라도 임금을 위해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今地未入秦(금지미입진) : 약속한 토지를 아직 진나라에 떼어 주지도 않았는데

秦使張儀來(진사장의래) : 진나라가 장의를 보낸 것은

至重王(지중왕) : 지극히 임금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王未有禮而殺張儀,秦必大怒攻楚。妾請子母俱遷江南,毋為秦所魚肉也。”〔9〕

王未有禮而殺張儀(왕미유례이살장의) : 임금께서 진나라에 답레하기 전에 장의를 죽이면

秦必大怒攻楚(진필대노공초) : 진나는 반드시 격노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妾請子母俱遷江南(첩청자모구천강남) : 아무조록 우리 모자가 강남으로 옮겨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毋爲秦所魚肉也(무위진소어육야) : 우리들은 진나의 고기밥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고 했다

懷王后悔,赦張儀,厚禮之如故。

懷王後悔(회왕후회) : 회왕은 뉘우치고

赦張儀(사장의) : 장의를 용서하여

厚禮之如故(후례지여고) : 본디와 같이 후대하였다

  【注釋】〔1〕據《楚世家》載,丹陽戰后,次年,秦打算分漢中之半與楚媾和,

《屈原傳》所記同,不是以武關外易黔中地。“黔中”,戰國楚郡,后入秦。秦代治所在今湖南沅陵縣西。

轄境相當今湖南沅水、澧水流域、湖北清江流域、四川黔江流域和貴州東北部分。“武關”,關名,在今陜西丹鳳縣東南。

〔2〕“靳尚”,楚懷王寵臣。

〔3〕“而不欲出之”,“不”字當作“必”,時張儀被楚囚禁,秦王要救他出來。《戰國策·楚策二》作“秦王欲出之”。

〔4〕“上庸”,縣名,今湖北竹山縣西南。“上庸之地六縣”,包括今湖北竹山、西山、保康、竹溪等縣。

〔5〕“聘楚”,此指嫁到楚國。〔6〕“謳”,歌。“媵”,陪嫁的女子。

〔7〕“楚王重地尊秦”,這是靳尚對鄭袖說話,“楚王”應作“大王”。

〔8〕“斥”,受排斥。〔9〕“魚肉”,像魚肉一樣被殘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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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2

 司馬錯曰:“不然。臣聞之,欲富國者務廣其地,欲強兵者務富其民,欲王者務博其德,〔1〕

司馬錯曰(사마착왈) : 사마척이 말하기를

不然(불연) : “그렇지 않습니다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欲富國者務廣其地(욕부국자무광기지) : ‘나라를 부하게 하려는 자는 땅을 넓히는 일을 힘쓰고

欲彊兵者務富其民(욕강병자무부기민) : 군사를 강하게 하열는 자는 백성이 부하기를 힘쓰고

欲王者務博其德(욕왕자무박기덕) : 임금의 길을 행하려는 자는 덕을 넓히기를 힘쓴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三資者備而王隨之矣。〔2〕今王地小民貧,故臣愿先從事于易。

三資者備而王隨之矣(삼자자비이왕수지의) : 이 세 가지의 자격이 갖추어지면 왕업은 그것에 따라서 자연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今王地小民貧(금왕지소민빈) : 지금 임금의 땅은 작고 임금의 백성은 가난합니다

故臣願先從事於易(고신원선종사어이) : 그런 까닭에 나는 먼저 쉬운 것부터 착수하시기를 원합니다

夫蜀,西僻之國也,而戎翟之長也,有桀紂之亂。〔3〕

夫蜀(부촉) : 촉나라는

西僻之國也(서벽지국야) :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而戎翟之長也(이융적지장야) : 오랑캐 주의 으뜸입니다

有桀紂之亂(유걸주지란) : 그 임금에는 걸왕과 주왕에 비길 만한 난행이 있습니다

以秦攻之,譬如使豺狼逐群羊。得其地足以廣國,取其財足以富民繕兵,〔4〕不傷眾而彼已服焉。

以秦攻之(이진공지) : 진나라의 힘으로써 이를 공격하는 것은

譬如使豺狼逐羣羊(비여사시랑축군양) : 마치 호랑이로 하여금 양때를 쫓게 하는 것과 같으니

得其地足以廣國(득기지족이광국) : 토지를 얻으면 나라를 넓힐 수도 있고

取其財足以富民繕兵(취기재족이부민선병) : 재물을 취하면 백성을 부하게 할 수 있으며

不傷衆而彼已服焉(불상중이피이복언) : 군사는 무기를 수선하고 백성을 상하지 않도록 하면 저쪽 나라는 쉽게 복종할 것입니다

拔一國而天下不以為暴,利盡西海而天下不以為貪,〔5〕

拔一國而天下不以爲暴(발일국이천하불이위폭) : 그 위에 한 나라를 항복받았다고 해서 천하는 이것을 난폭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리진서해이천하불이위탐) : 서해의 이익을 몽땅 취했다고 해서 천하는 이것을 탐욕하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是我一舉而名實附也,〔6〕而又有禁暴止亂之名。

是我一擧而名實附也(시아일거이명실부야) :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거에 명예와 실리를 얻는 바가 될 것이고

而又有禁暴止亂之名(이우유금폭지란지명) : 게다가 난폭을 금하고 혼란을 그치게한 명분까지 있게 될 것입니다

今攻韓,劫天子,〔7〕惡名也,而未必利也,

今攻韓(금공한) : 그런데 지금 한나라를 쳐서

劫天子(겁천자) : 천자를 위협하는 것은

惡名也(악명야) : 악명을 쓰는 것이며

而未必利也(이미필리야) : 반드시 이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又有不義之名,〔8〕而攻天下所不欲,危矣。

又有不義之名(우유불의지명) : 또 불의의 이름을 얻어서

而攻天下所不欲(이공천하소불욕) : 천하의 누구도 공격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주나라를 치고자 함은

危矣(위의) : 위험합니다

臣請謁其故:〔9〕周,天下之宗室也;〔10〕齊,韓之與國也。〔11〕

臣請謁其故(신청알기고) : 그 까닭을 말씀드리게 하여 주기를 신은 청합니다

周天下之宗室也(주천하지종실야) :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입니다

齊韓之與國也(제한지여국야) : 제나라와 한나라는 주나라의 친한 나라입니다

周自知失九鼎,韓自知亡三川,將二國并力合謀,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12〕

周自知失九鼎(주자지실구정) : 주나라가 9정을 잃고

韓自知亡三川(한자지망삼천) : 한나라가 삼천을 잃은 것을 알면

將二國幷力合謀(장이국병력합모) : 두 나라는 힘을 합하고 꾀를 합하여

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이인호제조이구해호초위) : 제나라와 조나라에 달라 붙고 초나라와 위나라에 구원을 청할 것입니다

以鼎與楚,以地與魏,王弗能止也。

以鼎與楚(이정여초) : 만약 주나라가 구정을 초나라에 주고

以地與魏(이지여위) : 땅을 위나라에 줄지라도

王弗能止也(왕불능지야) : 임금은 이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此臣之所謂危也。不如伐蜀完。”〔13〕

此臣之所謂危也(차신지소위위야) : 이것이 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른바 위험입니다

不如伐蜀完(불여벌촉완) : 촉나라를 치는 방책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고 하였다

【注釋】〔1〕“王”,指統治天下的王業。音w4ng。〔2〕“資”,條件,憑借。

〔3〕“桀紂”,夏、商兩代的末代國君,以昏庸、殘暴著稱。〔4〕“繕兵”,治兵器。

〔5〕“西海”,指今川西一帶古蜀國之地。〔6〕“名實”,“名”,指不貪暴。“實”,指土地財寶。

〔7〕“劫”,脅迫。“天子”,指當時的周慎靚王(公元前三二○年至前三一五年在位)。

〔8〕“不義”,指韓無罪而秦國去攻打它,是不義的行為。〔9〕“謁”,陳述。

〔10〕“宗室”,周室為天下所宗仰,故稱宗室。

〔11〕“齊,韓之與國也”,“齊”下疑脫一“趙”字,下文說:“以因乎齊趙。”“與國”,同盟國。

〔12〕“因”,依靠。“求解”,求其和解。〔13〕“完”,安全。

  惠王曰:“善,寡人請聽子。”卒起兵伐蜀,十月,〔1〕取之,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구나

寡人請聽子(과인청청자) : 과인은 그대를 따르리라.”고 하고

卒起兵伐蜀(졸기병벌촉) :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촉나라를 쳐서

十月(십월) : 10월에

取之(취지) : 그것을 취하였다.

遂定蜀,貶蜀王更號為侯,而使陳莊相蜀。〔2〕

遂定蜀(수정촉) : 촉나라를 진정시키고

貶蜀王更號爲侯(폄촉왕갱호위후) : 촉왕의 지위를 내리고 칭호를 고쳐서 촉후로 하고

而使陳莊相蜀(이사진장상촉) : 진장을 촉나라의 재상으로 하였다

蜀既屬秦,〔3〕秦以益強,富厚,輕諸侯。

蜀旣屬秦(촉기속진) : 촉나라가 진나라에 예속되자

秦以益彊(진이익강) : 진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富厚(부후) : 부강해져

輕諸侯(경제후) : 제후를 가벼이 보았다

  【注釋】〔1〕“十月”,指秦惠王后元九年(公元前三一六年)十月。

〔2〕“陳莊”,秦臣。〔3〕“屬”,歸附。

  秦惠王十年,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1〕降之。儀因言秦復與魏,而使公子繇質于魏。〔2〕

秦惠王十年(진혜왕십년) : 진혜왕 10년에

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사공자화여장의위포양) : 공자 화와 장의에 명하여 위나라 포양을 포위하게 하여

降之(강지) : 항복받았는데

儀因言秦復與魏(의인언진복여위) : 장의는 진왕에게 건의하여 포양을 위나라에 돌려주고

而使公子繇質於魏(이사공자요질어위) : 진공자 요를 위나라에 볼모로 보냈다

儀因說魏王曰:“秦王之遇魏甚厚,魏不可以無禮。”魏因入上郡、少梁,〔3〕謝秦惠王。

儀因說魏王曰(의인설위왕왈) : 이렇게 하고 장의는 위왕에게 말하기를

秦王之遇魏甚厚(진왕지우위심후) : “진왕이 위나를 대우하는 것이 이렇게도 후하다

魏不可以無禮(위불가이무례) : 위나라로서 여기에 답례하는 것이 없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魏因入上郡少梁(위인입상군소량) : 위나라는 상군과 소량을 진나라에 바쳐

謝秦惠王(사진혜왕) : 혜왕에게 감사하였다

惠王乃以張儀為相,更名少梁曰夏陽。〔4〕

惠王乃以張儀爲相(혜왕내이장의위상) : 그리하여 혜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하고

更名少梁曰夏陽(경명소량왈하양) : 소량의 지명을 하양이라고 고쳤다

【注釋】〔1〕“公子華”,秦公子,世系不詳。“蒲陽”,魏邑,在今山西隰縣西北。

〔2〕“公子繇”,秦惠王子。“質”,作人質。

〔3〕“因入上郡、少梁”,據《秦本紀》、《六國年表》及《魏世家》,秦惠王十年,魏納上郡于秦,并無少梁。

少梁已于秦孝公八年(公元前三五四年)入秦。“上郡”,魏文侯所置郡,轄境包括今陜西榆林、延安一帶。

〔4〕“更少梁曰夏陽”,據《秦本紀》,更名在秦惠王十一年(公元前三二七年),《傳》文誤前一年。

  儀相秦四歲,立惠王為王。〔1〕居一歲,為秦將,取陜。〔2〕筑上郡塞。

儀相秦四歲(의상진사세) : 장의는 진나라 대상이 된 지 4년만에

立惠王爲王(입혜왕위왕) : 공이라고 일컫던 혜왕을 이때부터 왕이라고 하였다

居一歲(거일세) : 1년 뒤에

爲秦將(위진장) : 진나라의 장군이 되어

取陜(취섬) : 위나라의 섬을 취하고

築上郡塞(축상군새) : 상군의 성채를 쌓았다

  【注釋】〔1〕“立惠王為王”,秦惠王稱王在其十三年(公元前三二五年),即周顯王四十四年。惠王因此改次年為后元元年。

〔2〕“陜”,魏邑,今河南陜縣。

  其后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1〕東還而免相,相魏以為秦,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魏王不肯聽儀。

其後二年(기후이년) : 그 뒤 2년에

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사여제초지상회설상동) : 사자로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과 설상의 동쪽에서 회합하고

還而免相(환이면상) : 돌아와서는 진나라 재상을 그만두고

相魏以爲秦(상위이위진) : 위나라 재상이 되어서

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욕령위선사진이제후효지) : 진나라를 도울 계교를 세웠다 먼저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에 신하의 예를 바치게 하고 제후들을 이에 따르게 만들려 하였는데

魏王不肯聽儀(위왕불긍청의) : 위왕은 장의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秦王怒,伐取魏之曲沃、平周,〔2〕復陰厚張儀益甚。張儀慚,無以歸報。留魏四歲而魏襄王卒,哀王立。〔3〕

秦王怒(진왕노) : 진왕은 노하여

伐取魏之曲沃平周(벌취위지곡옥평주) : 위나라의 곡옥과 평주를 공략하고

復陰厚張儀益甚(복음후장의익심) : 또 장의를 더욱더 두텁게 대우하였으므로

張儀慙無以歸報(장의참무이귀보) : 장의는 진나라에 돌아가서 보고할 만한 공적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留魏四歲而魏襄王卒(류위사세이위양왕졸) : 위나라에 체류한지 4년에 위양왕이 죽고

哀王立(애왕입) : 애왕이 섰다

張儀復說哀王,哀王不聽。于是張儀陰令秦伐魏。魏與秦戰,敗。

張儀復說哀王(장의복설애왕) : 장의는 또 애왕을 설득하였는데

哀王不聽(애왕불청) : 애왕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於是張儀陰令秦伐魏(어시장의음령진벌위) : 그래서 장의는 가만히 진나라에 통보하여 위나라를 치게 하니

魏與秦戰敗(위여진전패) : 위나라는 진나라와 싸워서 패하였다

  【注釋】〔1〕“其后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據《秦本紀》、《六國年表》及《魏世家》、

《田齊世家》,齧桑之會在張儀取陜的次年,并非“其后二年”。又,參與齧桑之會的還有魏國。

“齧桑”,魏地,在今江蘇沛縣西南。

〔2〕“曲沃”,魏邑,在今河南靈寶東北。“平周”,魏邑,在今山西介休西。

〔3〕“魏襄王卒,哀王立”,據《竹書紀年》,魏并無哀王一代,此處當作“魏惠王卒,襄王立”,以下“哀王”亦當作“襄王”。

  明年,齊又來敗魏于觀津。〔1〕秦復欲攻魏,先敗韓申差軍,斬首八萬,諸侯震恐。

明年(명년) : 이듬해에

齊又來敗魏於觀津(제우래패위어관진) : 제나라도 공격해 와서 위나라를 관진에서 깨뜨렸다

秦復欲攻魏(진복욕공위) : 진나라는 다시 위나라를 치려고

先敗韓申差軍(선패한신차군) : 먼저 한나라의 장수 신차의 군사를 부수고

斬首八萬(참수팔만) : 목을 베기를 8만에 달하니

諸侯震恐(제후진공) : 제후들은 떨며 겁을 내었다

而張儀復說魏王曰:“魏地方不至千里,卒不過三十萬。

而張儀復說魏王曰(이장의복설위왕왈) : 장의는 또 위왕에게 말하기를

魏地方不至千里(위지방불지천리) : “위나라 영토는 사방 천리 미만으로

卒不過三十萬(졸불과삼십만) : 군사는 30만에 불과합니다

地四平,諸侯四通輻湊,〔2〕無名山大川之限。〔3〕從鄭至梁二百余里,〔4〕車馳人走,不待力而至。

地四平(지사평) : 토지는 사방이 평탄해서

諸侯四通輻湊(제후사통폭주) : 제후의 나라와의 도로는 4통으로 열려 있고

無名山大川之限(무명산대천지한) : 명산대천으로 경계를 이룬 곳도 없고

從鄭至梁二百餘里(종정지량이백여리) : 한나라의 정에서 위나라의 대량가지 2백여 리 사이에

車馳人走(차치인주) : 수레는 달리고 사람은 뛰어

不待力而至(불대력이지) : 힘에 수고로움이 없이 수월하게 대량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梁南與楚境,西與韓境,北與趙境,東與齊境,卒戍四方,守亭鄣者不下十萬。〔5〕

梁南與楚境(량남여초경) : 남쪽은 초나라와 접경하고

西與韓境(서여한경) : 서쪽은 한나라에 접경하고

北與趙境(북여조경) : 북쪽은 조나라와 접경하고

東與齊境(동여제경) : 동쪽은 제나라와 접경하고 있으므로

卒戍四方(졸수사방) : 군사는 사방을 지키고

守亭鄣者不下十萬(수정장자불하십만) : 정장을 지키는 군사는 10만이 넘어야 됩니다

梁之地勢,固戰場也。

梁之地勢(량지지세) : 양의 지세는

固戰場也(고전장야) : 참으로 싸음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梁南與楚而不與齊,則齊攻其東;東與齊而不與趙,則趙攻其北;

梁南與楚而不與齊(량남여초이불여제) : 위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와 결탁하여 제나라와 손잡지 않으면

則齊攻其東(칙제공기동) : 제나라는 위나라의 동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東與齊而不與趙(동여제이불여조) : 만약 동족의 제나라와 맺고 조나라와 맺지 않는다면

則趙攻其北(칙조공기북) : 조나라는 위나라의 북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不合於韓,則韓攻其西;不親于楚,則楚攻其南: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不合於韓(불합어한) :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則韓攻其西(칙한공기서) : 한나라는 위나라의 서쪽을 공격할 것이며

不親於楚(불친어초) : 초나라와 친선하지 않으면

則楚攻其南(칙초공기남) : 초나라는 위나라의 남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차소위사분오열지도야) : 이것은 이른자 사분오렬의 형세라는 것입니다

  【注釋】〔1〕“齊”,國名。戰國七雄之一,都臨淄(今山東淄博市東北),

疆域有今山東半島的大部分及河北省的一部。“觀津”,當作”觀澤”,魏邑,在今河南清豐南。

〔2〕“輻湊”,好像車輻湊集到轂上,比喻這里是交通中心。〔3〕“限”,阻隔。

〔4〕“從鄭至梁二百余里”,此處所記的里數有誤。《戰國策·魏策一載》,“從鄭至梁,不過百里;從陳至梁,

二百余里。”“鄭”,指韓國國都,今河南新鄭縣。“梁”,指魏國首都大梁,今河南開封市。

〔5〕“亭鄣”,邊境上的軍事據點,有吏士防守。

  “且夫諸侯之為從者,將以安社稷尊主強兵顯名也。〔1〕

且夫諸侯之爲從者(차부제후지위종자) : 제후가 합동하려는 근본은

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장이안사직존주강병현명야) : 그것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여 군주를 높이고 군사를 든든히 하고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今從者一天下,〔2〕約為昆弟,〔3〕刑白馬以盟洹水之上,〔4〕以相堅也。

今從者一天下(금종자일천하) : 지금 합종론자는 천하의 제후를 하나로 하여

約爲昆弟(약위곤제) : 형제의 의를 맺어

刑白馬以盟洹水之上(형백마이맹원수지상) : 백마를 베어서 피를 빨고 환수의 근방에서 맹세하여

以相堅也(이상견야) : 서로의 결함을 굳게 하려 합니다

而親昆弟同父母,尚有爭錢財,而欲恃詐偽反覆蘇秦之余謀,其不可成亦明矣。

而親昆弟同父母(이친곤제동부모) : 그러나 육친의 형제로서 부모를 같이한 사이에도

尙有爭錢財(상유쟁전재) : 재산을 다투는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而欲恃詐僞反覆蘇秦之餘謀(이욕시사위반복소진지여모) : 사기와 배반한 소진의 남은 꾀는 아무리 자신을 하여도

其不可成亦明矣(기불가성역명의) : 성공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注釋】〔1〕“社稷”,社是土地神,稷是谷神。古代國君都要祭社稷,所以社稷就成為國家的代稱。

〔2〕“從者”,主張合縱的人。〔3〕“昆弟”,兄弟。

〔4〕“洹水”,水名,源出今河南林縣隆慮山,逕安陽至內黃入衛水。

  “大王不事秦,秦下兵攻河外,〔1〕據卷、衍、燕、酸棗,〔2〕劫衛取陽晉,〔3〕則趙不南,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께서 맹약에 따라 진나라를 섬기지 않고

秦下兵攻河外(진하병공하외) : 진나라가 출병하여 하외를 공격하고

據卷衍酸棗(거권연산조) : 진·연·산조를 근거지로 하여

劫衛取陽晉(겁위취양진) : 위나라를 위협하고 양진을 취한다면

則趙不南(칙조불남) : 조나라는 남쪽의 위나라와 통할 수 없고 조나라는 북쪽의 위나라와 통할 수 없습니다

趙不南而梁不北,梁不北則從道絕,從道絕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

趙不南而梁不北(조불남이량불북) : 조나라가 남에게 통하지 못하고 위나라 양이 북에 통하지 못합니다

梁不北則從道絶(량불북칙종도절) : 위나라 양이 북에 통하지 못하면 합종의 길은 끊어지고

從道絶(종도절) :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칙대왕지국욕무위불가득야) : 대왕의 나라는 아무리 안전을 원해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秦折韓而攻梁,〔4〕韓怯于秦,秦、韓為一,梁之亡可立而須也。〔5〕此臣之所為大王患也。

秦折韓而攻梁(진절한이공량) : 진나라가 한나라를 제압하여 위나라 양을 공격하고

韓怯於秦(한겁어진) : 한나라가 진나라를 겁내어서

秦韓爲一(진한위일) : 진나라와 한나라가 연합하면

梁之亡可立而須也(량지망가입이수야) : 위나라 양의 멸망은 곧 실현될 것입니다

此臣之所爲大王患也(차신지소위대왕환야) : 이것이 대왕을 위해 신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注釋】〔1〕“河外”,地區名。戰國時稱潼關以東、黃河以北為河內,黃河以南為河外。

此處指的即下文卷、衍、燕、酸棗等地。

〔2〕“卷”,魏邑,在今河南原陽縣舊原武西北。“衍”,魏邑,在今河南鄭州市北。

“燕”,魏邑,即南燕,故城在今河南延津東北。“酸棗”,魏邑,在今河南延津西南。

〔3〕“衛”,戰國時小國,為泗上十二諸侯之一。都帝丘(今河南濮陽)。“陽晉”,衛邑,在今山東鄆城西。

〔4〕“折”,制,控制。〔5〕“立而須”,指為時極短。“須”,等待。

  “為大王計,莫如事秦。事秦則楚、韓必不敢動;無楚、韓之患,〔1〕則大王高枕而臥,〔2〕國必無憂矣。

爲大王計(위대왕계) : 대왕의 이해를 생각하여보건대

莫如事秦(막여사진) : 진나를 섬기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습니다

事秦則楚韓必不敢動(사진칙초한필불감동) : 진나라를 섬기면 초나라와 한나라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無楚韓之患(무초한지환) : 위나라에 초나라 한나라의 걱정이 없으면

則大王高枕而臥(칙대왕고침이와) : 대왕은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잘 수 있고

國必無憂矣(국필무우의) : 나라에 반드시 우환이 없을 것입니다

  【注釋】〔1〕“患”,禍。〔2〕“高枕而臥”,無憂無慮。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而能弱楚者莫如梁。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其卒雖多,然而輕走易北,〔1〕不能堅戰。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차부진지소욕약자막여초) : 또 장차 진나라가 누르고 싶어하는 것은 초나라가 으뜸이며

而能弱楚者莫如梁(이능약초자막여량) : 초나라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위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초수유부대지명이실공허) : 초나라는 부강한 나라로 알려졌지만 실질은 공허하며

其卒雖多(기졸수다) : 군사는 많으나

然而輕走易北(연이경주이패) : 움직임이 가볍고 도망하기를 빨리해서

不能堅戰(불능견전) : 굳건히 지속해서 싸울 수 없습니다

悉梁之兵南面而伐楚,勝之必矣。割楚而益梁,虧楚而適秦,〔2〕嫁禍安國,〔3〕此善事也。

悉梁之兵南面而伐楚(실량지병남면이벌초) : 위나라 군사를 몽땅 일으켜서 남쪽으로 향하여 초나를 친다면

勝之必矣(승지필의) : 이기는 것은 필연입니다

割楚而益梁(할초이익량) : 초나라 땅을 쪼개어 위나라에 더하고

虧楚而適秦(휴초이적진) : 초나라 땅을 부수어 진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嫁禍安國(가화안국) : 재앙을 초나라에 전가하여 자기 나라를 편안히 함이니

此善事也(차선사야) : 진실로 좋은 방책이라 하겠습니다

大王不聽臣,秦下甲士而東伐,雖欲事秦,不可得矣。

大王不聽臣(대왕불청신) : 대왕께서 만약에 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秦下甲士而東伐(진하갑사이동벌) : 진나라는 군사를 동원하려 동쪽으로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雖欲事秦(수욕사진) : 이렇게 되면 진나라를 섬기려고 해도

不可得矣(불가득의) :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注釋】〔1〕“輕走易北”,容易被打敗而逃走。“走”,逃。“北”,敗退。

〔2〕“適秦”,取悅于秦。“適”,悅。〔3〕“嫁禍安國”,嫁禍指“虧楚”,安國指“適秦”。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1〕說一諸侯而成封侯,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2〕以說人主。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차부종인다분사이소가신) : 합종론자는 어떤 사람이나 큰 소리를 치는 자가 많아서 믿을 만한 자가 적습니다

說一諸侯而成封侯(설일제후이성봉후) : 제후 한 사람을 설득하면 봉후가 되므로

是故天下之游談士(시고천하지유담사) : 그래서 천하의 유세자는

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막불일야액완진목절치이언종지변) : 밤낮으로 팔을 걷고 눈을 부릅떠면서 이를 깨물고 합종의 이로움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以說人主(이설인주) : 이로써 군주를 설득합니다

人主賢其辯而牽其說,豈得無眩哉。〔3〕

人主賢其辯而牽其說(인주현기변이견기설) : 군주가 그 변설을 현명한 것이라고 하여 그 말에 끌리면

豈得無眩哉(개득무현재) : 어찌 현혹됨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注釋】〔1〕“奮辭”,夸張的話。

〔2〕“搤腕”,用左手抓住右手的手腕。“搤”,同“扼”。“瞋目”,張大眼睛。“切齒”,牙齒互相磨擦。

以上都是合縱之士游說諸侯時激昂慷慨的表情。

〔3〕“眩”,眼花,引申為迷惑。

  “臣聞之,積羽沉舟,群輕折軸,〔1〕眾口鑠金,〔2〕積毀銷骨,故愿大王審定計議,且賜骸骨辟魏。”〔3〕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積羽沈舟(적우심주) : ‘쌓아서 겹치면 가벼운 깃털도 배를 가라앉힐 수 있고

羣輕折軸(군경절축) : 너무 많이 실으면 가벼운 물건도 수레의 심대를 부러뜨리고

衆口鑠金(중구삭금) : 여러 사람이 함께 말하면 굳은 쇠도 녹이고

積毁銷骨(적훼소골) : 사람들의 악담이 많으면 단단한 뼈도 녹는다.’고 하였습니다.

故願大王審定計議(고원대왕심정계의) : 대왕께서는 계략을 신중히 정하시기를 원하며

且賜骸骨辟魏(차사해골벽위) : 장의는 휴가를 얻어서 얼마 동안 위나라를 떠나고자 합니다.“고 했다 .

【注釋】〔1〕“折軸”,折斷車軸。〔2〕“眾口鑠金”,眾口所毀,雖金石也可銷熔。

〔3〕“賜骸骨”,許其引退。“骸骨”,是對自己身體的謙稱。

  哀王于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于秦。〔1〕張儀歸,復相秦。三歲而魏復背秦為從。

哀王於是乃倍從約(애왕어시내배종약) : 그리하여 애왕은 합종의 맹약을 배반하고

而因儀請成於秦(이인의청성어진) : 장의를 중간에 세워 지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張儀歸(장의귀) :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서

復相秦(복상진) :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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