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1

張儀者,魏人也。〔1〕

張儀者(장의자) : 장의는

魏人也(위인야) : 위나라 사람이다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2〕學術,〔3〕蘇秦自以不及張儀。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시상여소진구사귀곡선생) : 처음에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섬겨

學術(학술) : 종형술을 배웠다

蘇秦自以不及張儀(소진자이불급장의) : 소진은 스스로 재주가 장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注釋】〔1〕“魏”,國名。戰國七雄之一,初都安邑(今山西夏縣北),魏惠王遷都大梁(今河南開封市),

其疆域包括今山西省西南部及河南省東部,以及陜西、安徽的部分地區。

〔2〕“鬼谷先生”,鬼谷所在,有幾種不同的說法。這是縱橫家夸張蘇秦、張儀的故事,故神其說。

鬼谷先生是假托的人名,鬼谷所在也不必指實。〔3〕“學術”,學習游說之術。

張儀已學而游說諸侯。

張儀已學而游說諸侯(장의이학이유설제후) : 장의는 학업을 마치자 제후들에게 유세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嘗從楚相飲,〔1〕已而楚相亡璧,〔2〕

門下意張儀,〔3〕

曰:“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

嘗從楚相飮(상종초상음) : 어느 때 초나라 재상과 서로 술을 마시는데

已而楚相亡璧(이이초상망벽) : 초나라의 재상의 벽옥이 없어졌다

門下意張儀曰(문하의장의왈) : 재상의 빈객들은 장의를 의심하여 이르기를

儀貧無行(의빈무행) : ‘장의는 가난뱅이로 품행이 좋지 못하다

必此盜相君之璧(필차도상군지벽) : 재상의 구슬을 훔친 것은 반드시 그자의 소행일 것이다.’하고

共執張儀,掠笞數百,〔4〕不服,醳之。〔5〕

共執張儀(공집장의) : 함께 장의를 붙들어서

掠笞數百(약태수백) : 매 몇백 대를 쳤는데

不服(불복) : 자백하지 않으므로

醳之(역지) : 매를 그쳤다

其妻曰:“嘻!〔6〕子毋讀書游說,安得此辱乎?”

其妻曰嘻(기처왈희) : 그의 아내가 이르기를

子毋讀書游說(자무독서유설) : “아, 당신이 독서와 유세를 하지 않았던들

安得此辱乎(안득차욕호) : 어찌 이런 치욕은 당하겠습니까.”하고 탄식하니

張儀謂其妻曰:“視吾舌尚在不?”〔7〕

張儀謂其妻曰(장의위기처왈) : 장의가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視吾舌尙在不(시오설상재불) : “내 혀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없느가?”

其妻笑曰:“舌在也。”

其妻笑曰(기처소왈) : 그의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舌在也(설재야) : “혀는 남아 있습니다.”

儀曰:“足矣。”

儀曰(의왈) : 장의는 말하였다.

足矣(족의) : “그러면 됐다.”

 【注釋】〔1〕“楚相”,指楚國令尹。〔2〕“璧”,古代行禮所用的玉器,平圓形,中間有小孔。

〔3〕“意”,懷疑。〔4〕“掠笞”,拷打。〔5〕“醳”,古“釋”字。〔6〕“嘻”,悲嘆聲。〔7〕“不”,通“否”。

  蘇秦已說趙王 而得相約從親,〔1〕

蘇秦已說趙王(소진이설조왕) : 그때 소진은 조왕을 설득하여

而得相約從親(이득상약종친) : 서로 합종을 맹약하게 하였다

然恐秦之攻諸侯,〔2〕敗約后負,

然恐秦之攻諸侯(연공진지공제후) : 그러나 근심이 되는 것은 진나라가 제후를 공격하면

敗約後負(패약후부) : 그 때문에 제후가 약정을 깨뜨려서 뒤에 배반할까 두려웠다.

念莫可使用于秦者,

念莫可使用於秦者(념막가사용어진자) : 생각해 봐도 진나라에 등용시킬 만한 사람이 없었다.

乃使人微感張儀曰:〔3〕“子始與蘇秦善,今秦已當路,〔4〕

子何不往游,

乃使人微感張儀曰(내사인미감장의왈) :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은근히 장의를 분발하게 할 생각으로 말을 하도록 하기를,

子始與蘇秦善(자시여소진선) : “그대는 처음에 소진과 사이가 좋았소.

今秦已當路(금진이당로) : 이제 소진은 이미 성공하여 요로에 섰는데

子何不往游(자하불왕유) : 그대는 어찌하여 찾아가서 유세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以求通子之愿?”

張儀于是之趙,上謁求見蘇秦。〔5〕

以求通子之願 張儀於是之趙(이구통자지원장의어시지조) : 장의는 아는 자를 통해 조나라로 가서 소진을 만나고자

上謁求見蘇秦(상알구견소진) : 소진을 보기를 청하였다

蘇秦乃誡門下人不為通,〔6〕又使不得去者數日。已而見之,

蘇秦乃誡門下人不爲通(소진내계문하인불위통) : 소진은 문하 사람에게 분부해 며칠 동안을 통하게 하지 않게 하고

又使不得去者數日(우사불득거자수일) :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도록 며칠간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已而見之(이이견지) : 그와 만났는데

坐之堂下,賜仆妾之食。因而數讓之曰:〔7〕

坐之堂下(좌지당하) : 당하에 앉혀 놓고

賜僕妾之食(사복첩지식) : 종들과 같은 음식을 주고

因而數讓之曰(인이수양지왈) : 여러 말로 꾸짖어 말하기를,

“以子之材能,乃自令困辱至此。吾寧不能言而富貴子,子不足收也。”

以子之材能(이자지재능) : “그대같이 재능을 가진 자로서

乃自令困辱至此(내자령곤욕지차) : 이렇도록 궁하다는 것은 보기 딱하다

吾寧不能言而富貴子(오녕불능언이부귀자) : 내가 어찌 그대를 추천해서 부귀하게 할 수 있겠는가

子不足收也(자불족수야) : 그대는 쓰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다.”고 했다

謝去之。張儀之來也,自以為故人,求益,反見辱,怒,念諸侯莫可事,獨秦能苦趙,乃遂入秦。

謝去之(사거지) : 이렇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張儀之來也(장의지래야) : 장의가 찾아온 것은

自以爲故人求益(자이위고인구익) : 옛 친구에게 출세할 길을 부탁하고자 왔던 것인데

反見辱怒(반견욕노) : 도리어 모욕을 받아

念諸侯莫可事(념제후막가사) : 다른 제후들은 섬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獨秦能苦趙(독진능고조) : 다만 진나라를 섬겨 조나라를 괴롭게 하고자 했었다.

乃遂入秦(내수입진) : 이에 진나라로 들어가니

  【注釋】〔1〕“趙王”,據《蘇秦列傳》,指趙肅侯。公元前三四九年至前三二六年在位。

“從親”,指秦以外的六國合縱相親。

〔2〕“秦”,國名。戰國七雄之一,都咸陽(今陜西咸陽東北),其疆域略有今河南省的西端,陜西大部及甘肅東部。

〔3〕“微感”,暗中勸導。〔4〕“當路”,當政,當權。〔5〕“謁”,陳述。〔6〕“誡”,叮嚀。

〔7〕“數讓”,責備。“數”、“讓”兩字是同義詞迭用。

  蘇秦已而告其舍人曰:〔1〕“張儀,天下賢士,吾殆弗如也。〔2〕今吾幸先用,而能用秦柄者,獨張儀可耳。

蘇秦已而告其舍人曰(소진이이고기사인왈) : 소진은 자기 하인에게 말하기를

張儀(장의) : “장의는

天下賢士(천하현사) : 천하의 현사다

吾殆弗如也(오태불여야) : 나같은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今吾幸先用(금오행선용) : 나는 다행히 한 걸음 일찍 등용된 것뿐이다

而能用秦柄者(이능용진병자) : 그런데 진나라의 권력을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는 것은

獨張儀可耳(독장의가이) : 장의만이 가능할 뿐이다

然貧,無因以進。吾恐其樂小利而不遂,故召辱之,以激其意。子為我陰奉之。”

然貧(연빈) : 다만 그는 가난하여

無因以進(무인이진) : 변변히 용돈도 밑천도 갖지 못했다

吾恐其樂小利而不遂(오공기락소리이불수) : 나는 그가 조그마한 성공에 주저앉아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故召辱之(고소욕지) : 그런 까닭으로 가까이 불러서 모욕을 주어

以激其意(이격기의) : 그의 의지를 격려한 것이다

子爲我陰奉之(자위아음봉지) : 너는 내 뜻을 받아 몰래 받들어 주어라.”고 하였다

乃言趙王,發金幣車馬,使人微隨張儀,與同宿舍,

乃言趙王(내언조왕) : 이에 곧 조왕에게 말씀을 올려

發金幣車馬(발금폐차마) : 돈과 비단과 수레와 말을 마련하여

使人(사인) : 하인으로 하여금

微隨張儀(미수장의) : 가만히 장의의 뒤를 쫓게 하여

與同宿舍(여동숙사) : 같은 객점에 들도록 하였다

稍稍近就之,〔3〕奉以車馬金錢,所欲用,為取給,而弗告。

稍稍近就之(초초근취지) : 하인은 간신히 장의를 가까이 가서

奉以車馬金錢(봉이차마금전) : 거마와 금전을 비롯하여

所欲用(소욕용) : 필요한 물건

爲取給(위취급) : 일체를 제공하였는데

而弗告(이불고) : 내용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張儀遂得以見秦惠王。〔4〕惠王以為客卿,〔5〕與謀伐諸侯。

張儀遂得以見秦惠王(장의수득이견진혜왕) : 이렇게 하여 장의는 마침내 진혜왕을 만났는데

惠王以爲客卿(혜왕이위객경) : 혜왕으로부터 객경의 대우를 받고

與謀伐諸侯(여모벌제후) : 제후 토벌에 대한 일을 계획하였다

  【注釋】〔1〕“舍人”,戰國至漢初,王公大臣的侍從賓客、親近左右的通稱。〔2〕“殆”,大約。〔3〕“稍稍”,漸漸。

〔4〕“秦惠王”,名駟,秦孝公子,公元前三三七年至前三一一年在位。

〔5〕“客卿”,官名,專為從別國來到秦國做官的人而設,地位尊崇,僅次于相國。

  蘇秦之舍人乃辭去。張儀曰:“賴子得顯,方且報德,何故去也!”

蘇秦之舍人乃辭去(소진지사인내사거) : 그 얼마 뒤 소진의 하인이 귀국하려고 하자

張儀曰(장의왈) : 장의는 말하기를

賴子得顯(뢰자득현) : “그대의 힘을 빌려 세상에 드러난 나는

方且報德(방차보덕) : 이제부터 은혜를 갚을 작정을 하였는데

何故去也(하고거야) : 왜 돌아가려 하시오?”라고 하였다

舍人曰:“臣非知君,知君乃蘇君。

舍人曰(사인왈) : 하인이 이르기를

臣非知君(신비지군) : “당신을 아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知君乃蘇君(지군내소군) : 소진이야말로 당신의 지기입니다

蘇君憂秦伐趙敗從約,以為非君莫能得秦柄,故感怒君,使臣陰奉給君資,

蘇君憂秦伐趙敗從約(소군우진벌조패종약) : 소진은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서 합종을 깨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以爲非君莫能得秦柄(이위비군막능득진병) : 당신이 아니라면 진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 하여

故感怒君(고감노군) : 당신을 분발하고 노하게 하는 한편

使臣陰奉給君資(사신음봉급군자) : 저로 하여금 몰래 밑천을 제공하게 했습니다

盡蘇君之計謀。令君已用,請歸報。”

盡蘇君之計謀(진소군지계모) : 모든 것은 소진의 배려로

今君已用(금군이용) : 이제야 당신은 등용이 되었으니

請歸報(청귀보) : 이제 내가 돌아가서 복명을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張儀曰:“嗟乎,此在吾術中而不悟,〔1〕吾不及蘇君明矣!

張儀曰(장의왈) : 장의가 이를기를

嗟乎(차호) : “아,

此在吾術中而不悟(차재오술중이불오) : 이것은 배운 술책 가운데 있었던 것인데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소

吾不及蘇君明矣(오불급소군명의) : 나는 확실히 소진에 미치지 못합니다

吾又新用,安能謀趙乎?為吾謝蘇君,

吾又新用(오우신용) : 이래서는 또 조나라에 등용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安能謀趙乎(안능모조호) : 어떻게 조나라를 모해할 수 있겠소

爲吾謝蘇君(위오사소군) : 나를 위해 소진에게 이런 말을 전해 주십시오

蘇君之時,儀何敢言。且蘇君在,儀寧渠能乎!”〔2〕

蘇君之時(소군지시) : ‘소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儀何敢言(의하감언) : 장의가 무슨 말을 감히 할 것인가

且蘇君在(차소군재) : 또 소진이 있는 한

儀寧渠能乎(의녕거능호) : 나 장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고.”

張儀既相秦,〔3〕為文檄告楚相曰:〔4〕“始吾從若飲,我不盜而璧,〔5〕若笞我。若善守汝國,我顧且盜而城!”〔6〕

張儀旣相秦(장의기상진) : 그 뒤에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爲文檄告楚相曰(위문격고초상왈) : 격문으로 초나라의 재상에게 알리기를

始吾從若飮(시오종약음) : “일찍이 그대를 따라 술을 마셨을 때

我不盜而璧(아불도이벽) : 그대는 내가 구슬을 훔쳤다고 하여

若笞我(약태아) : 나에게 매를 쳤다

若善守汝國(약선수여국) : 그대는 그대의 나라를 잘 지켜라

我顧且盜而城(아고차도이성) : 이번에 나는 정말 그대의 성을 훔치리라.”라고 하였다

【注釋】〔1〕“此在吾術中”,指蘇秦的作法在張儀所學過的方法之中。

〔2〕“寧渠”,豈。“寧”、“渠”是同義詞迭用。

〔3〕“張儀既相秦”,張儀相秦在秦惠王十年(公元前三二八年)。

〔4〕“檄”,古代發表文告的竹簡。〔5〕“而”,你的。〔6〕“顧”,特,但。

  苴蜀相攻擊,〔1〕各來告急于秦。秦惠王欲發兵以伐蜀,以為道險狹難至,

苴蜀相攻擊(저촉상공격) : 저와 촉이 서로 공격하려 하여

各來告急於秦(각래고급어진) : 각각 와서 급히 진나라에 고했다

秦惠王欲發兵以伐蜀(진혜왕욕발병이벌촉) : 진나라 혜왕이 군사를 내어 촉나를 치려하니

以爲道險狹難至(이위도험협난지) : 길이 좁고 험난해서 좀처럼 행군할 수 없었다

而韓又來侵秦,〔2〕秦惠王欲先伐韓,后伐蜀,恐不利,欲先伐蜀,恐韓襲秦之敝,猶豫未能決。

而韓又來侵秦(이한우래침진) : 이 무렵에 한나라가 또 진나를 침범하였다

秦惠王欲先伐韓(진혜왕욕선벌한) : 진나라 헤왕은 먼저 한나라를 치고난

後伐蜀(후벌촉) : 뒤에 촉나라를 치면

恐不利(공불리) : 불리할까 염려되어

欲先伐蜀(욕선벌촉) : 먼저 촉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恐韓襲秦之敝(공한습진지폐) : 진나라의 피폐를 틈타 한나라가 침공할 염려가 있었으므로

猶豫未能決(유예미능결) : 진혜왕은 어느 것도 결정을 짓기 어려웠다

司馬錯與張儀爭論于惠王之前,〔3〕司馬錯欲伐蜀,張儀曰:“不如伐韓。”

司馬錯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사마착여장의쟁논어혜왕지전) : 사마착과 장의가 혜왕의 면전에서 논쟁하였다

司馬錯欲伐蜀(사마착욕벌촉) : 사마착은 먼저 촉을 쳐야 한다고 말하고

張儀曰(장의왈) : 장의는 말하기를

不如伐韓(불여벌한) : “먼저 한나라를 침만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王曰:“請聞其說。”

王曰(왕왈) : 왕이 장의에게 이르기를

請聞其說(청문기설) : “그 까닭을 말하라.”고 하였다

 【注釋】〔1〕“苴蜀相攻擊”,據《華陽國志》所載:“蜀王別封弟葭萌于漢中,號苴侯,命其邑曰葭萌焉,

(葭萌在今四川省廣元老昭化。苴侯的封地則是從廣元直達漢中。)苴侯與巴王為好,巴與蜀仇,故蜀王怒,伐苴侯。

苴侯奔巴,求救于秦。”“苴”,音jū。〔2〕“韓”,國名。戰國七雄之一。初都陽翟(今河南禹縣),后遷都新鄭(今屬河南)。疆域有今山西東南部和河南中部。

〔3〕“司馬錯”,秦國名將,在惠王、武王、昭王朝統兵達四十年。

  儀曰:“親魏善楚,下兵三川,〔1〕塞什谷之口,〔2〕當屯留之道,〔3〕

儀曰(의왈) : 장의가 대답하기를

親魏善楚(친위선초) : “위나라와 초나라는 친선하고

下兵三川(하병삼천) : 군사를 한나라의 삼천으로 남하하게 하고

塞什谷之口(색십곡지구) : 사곡의 입구를 막아서

當屯留之道(당둔류지도) : 둔류의 길에 당하도록 하고

魏絕南陽,〔4〕楚臨南鄭,〔5〕秦攻新城、〔6〕宜陽,〔7〕以臨二周之郊,〔8〕誅周王之罪,〔9〕

魏絶南陽(위절남양) : 위나라는 남양을 차단시켜

楚臨南鄭(초임남정) : 초나를 남정으로 몰아 쫓고

秦攻新城宜陽(진공신성의양) : 진나라는 신성과 의양을 공격하여

以臨二周之郊(이임이주지교) : 이주의 교외에 다달아

誅周王之罪(주주왕지죄) : 주왕의 죄를 치고

侵楚、魏之地。〔10〕周自知不能救,九鼎寶器必出。〔11〕

侵楚魏之地(침초위지지) : 초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침범하면

周自知不能救(주자지불능구) : 주나라는 구원되지 못할 것을 스스로 깨닫고

九鼎寶器必出(구정보기필출) : 반드시 ‘구정보기’를 바쳐 항복할 것입니다

據九鼎,案圖籍,〔12〕挾天子以令于天下,天下莫敢不聽,此王業也。

據九鼎(거구정) : 그리하여 구정의 권위로써

案圖籍(안도적) : 도적을 조사하고

挾天子以令於天下(협천자이령어천하) : 천자를 빌미로 천하를 호령하면

天下莫敢不聽(천하막감불청) : 천하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此王業也(차왕업야) : 이것이 왕업입니다

今夫蜀,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13〕敝兵勞眾不足以成名,得其地不足以為利。

今夫蜀(금부촉) : 그런데 저 촉나라는

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서벽지국이융적지륜야) : 서족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오랑캐인 융적의 한 무리입니다

敝兵勞衆不足以成名(폐병로중불족이성명) : 군사를 피로하게 하고 백성을 수로롭게 하는 것뿐 하등의 명예도 되지 않으며

得其地不足以爲利(득기지불족이위리) : 토지를 얻어도 이익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臣聞爭名者于朝,爭利者于市。今三川、周室,天下之朝市也,而王不爭焉,顧爭于戎翟,〔14〕去王業遠矣。”

臣聞爭名者於朝(신문쟁명자어조) : ‘이름을 다투는 자는 조정에서 하고

爭利者於市(쟁리자어시) : 이익을 다투는 자는 장판에서 한다.’고 말하는데

今三川周室(금삼천주실) : 지금 삼천과 주왕실이야 말로

天下之朝市也(천하지조시야) : 천하의 조정이요 시장판입니다

而王不爭焉(이왕불쟁언) : 임금께서 이것을 상대로 다투지 않고

顧爭於戎翟(고쟁어융적) : 도리어 오랑캐의 땅을 다투니

去王業遠矣(거왕업원의) : 왕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注釋】〔1〕“三川”,郡名,屬韓,后入秦,以境內有河(黃河)、洛、伊三水而得名,

轄境包括今黃河以南,河南靈寶以東,中牟以西地區。

〔2〕“什谷”,韓地,在今河南成皋西。〔3〕“屯留”,地名,在今山西屯留東南十里。屯留之道指太行山羊腸坂道。

〔4〕“南陽”,地區名,在今河南濟源、孟縣、沁陽一帶,地處韓、魏之間,因在太行山南,黃河以北,故稱南陽。

〔5〕“南鄭’,邑名,在今河南新鄭縣,當時是韓的國都。〔6〕“新城”,韓邑,在今河南伊川縣西南。

〔7〕“宜陽”,韓縣,在今河南宜陽縣西北的韓城鎮。

〔8〕“二周”,指東周、西周兩個小諸侯國。西周都河南(今河南洛陽市西),東周都鞏(今河南鞏縣)。

〔9〕“誅”,討伐。〔10〕“侵楚魏之地”,此和上文“親魏善楚”不合,疑有誤。或謂“楚魏”是“三川”之誤。

〔11〕“九鼎寶器必出”,這句是說周不敢愛惜它的寶物。“九鼎”,相傳是夏禹所鑄,是夏、商、周三代的傳國重器。

〔12〕“按”,據有。“圖籍”,地圖和戶籍。〔13〕“戎翟”,古代對西部落后少數民族的泛稱。“倫”,類。

〔14〕“顧”,反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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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7

久之,秦召燕王,燕王欲往,

蘇代約燕王曰:

그 뒤에 오랜만에 진나라가 연왕을 초대하였다.

연왕은 거기에 가려고 하였는데

소대는 연왕을 만류하여 말했다.

「楚得枳[一]而國亡,[二]齊得宋而國亡,[三]

齊﹑楚不得以有枳﹑宋而事秦者,何也?

“초나라는 지현을 얻은 까닭에 나라가 망하고

제나라는 송나라를 얻은 까닭에 망하였습니다.

제나라와 초나라 두 나라가 지와 송을 보유하면서

진나라를 섬기지 못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則有功者,秦之深讎也。

秦取天下,非行義也,暴也。

秦之行暴,正告天下。[四]

공업이 있는 자는

진나라에게는 원한 깊은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취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폭력을 행사할 때는

버젓이 천하에 경고합니다.

注[一]集解徐廣曰:「巴郡有枳縣。」正義枳,支是反,今涪州城。在秦,枳縣

在江南。

注[二]集解徐廣曰:「燕昭王三十三年,秦拔楚鄢、西陵。」正義按:西陵在黃

州。

注[三]正義年表云齊湣王三十八年,滅宋。四十年,五國共擊湣王,王走莒。

注[四]索隱正告謂顯然而告天下也。

「告楚曰:

『蜀地之甲,乘船浮於汶,[一]

乘夏水[二]而下江,五日而至郢。

초나라에 고하기를

‘촉의 땅 갑병이 배를 타고 문수에 떠서

하수를 타고 강수를 내려가면

닷새면 초나라 서울 영에 도착하리라.

漢中之甲,乘船出於巴,[三]

乘夏水而下漢,四日而至五渚。[四]

한중의 갑병이 배를 타고 파수에 나와

하수를 타고 한수를 내려가면

나흘에 오저에 도착하리라.

寡人積甲宛東下隨,[五]智者不及謀,

勇土不及怒,寡人如射隼矣。[六]

王乃欲待天下之攻函谷,不亦遠乎!』

과인이 군사를 완에서 실어 동쪽 수로 내려가면

어떤 슬기 있는 자도 계략을 쓸 겨를이 없고

어떤 용사도 성낼 틈이 없기가

과인이 새매를 쏘는 것과 같은데

왕은 천하의 제후가 함곡관을 치고

진나라를 토벌하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아득한 일이 아닌가.’합니다.

楚王為是故,十七年事秦。

초왕은 이 때문에

17년간 진나라를 섬겼습니다.

注[一]集解眉貧反。索隱音旻。江所出之岷山也。

注[二]索隱夏音暇。謂夏潦之水盛長時也。

注[三]索隱巴,水名,與漢水近。正義巴嶺山在梁州南一百九十里。周地志云:

「南渡老子水,登巴嶺山。南回*(記)*大江。此南是古巴國,因以名山。」

注[四]集解戰國策曰「秦與荊人戰,大破荊,襲郢,取洞庭、五渚」。然則五渚

在洞庭。索隱按:五渚,五處洲渚也,劉氏以為宛鄧之閒,臨漢水,不得在洞

庭。或說五渚五湖,益與劉說不同也。

注[五]索隱宛縣之東而下隨邑。

注[六]索隱按:易曰「射隼于高墉之上,獲之,無不利」。秦王言我今伐楚,必

當捷獲也。正義隼若今之鶻。

「秦正告韓曰:

『我起乎少曲,[一]一日而斷大行。[二]

我起乎宜陽而觸平陽,[三]二日而莫不盡繇。[四]

我離兩周而觸鄭,五日而國舉。』[五]

또 진나라는 바로 한나라에 경고하여 말했다.

‘우리 편이 소곡으로부터 출병하면

하루에 태행의 산길을 차단하리라.

우리 편이 의양으로부터 출병하여 한나라의 평양을 찌르면

이틀에 한나라는 동요하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

우리 편이 양주를 통과하여 정나라를 찌르면

닷새에 한나라는 멸망하리라.’하였습니다.

韓氏以為然,故事秦。

한씨는 이것을 그렇다고 수긍하여

그 때문에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注[一]索隱地名,近宜陽也。正義在懷州河陽縣西北,解在范睢傳。

注[二]正義太行山羊腸阪道,北過韓上黨也。

注[三]正義宜陽、平陽皆韓大都也,隔河也。

注[四]索隱音搖。搖,動也。

注[五]索隱離,如字。謂屯兵以罹二周也,而乃觸擊于鄭,故五日國舉。舉猶

拔也。正義離,歷也。歷二周而東觸新鄭州,韓國都拔矣。

「秦正告魏曰:

『我舉安邑,塞女戟,[一]韓氏太原卷。[二]

또 진나라는 바로 위나라에 경고하여 말했다.

“우리편이 안읍을 함락하고

여극의 길을 막으면

한씨의 태원은 멍석말이가 되리라.

我下軹道,南陽,封冀,[三]包兩周。[四]

乘夏水,浮輕舟,彊弩在前,錟[五]戈在後,

決滎口,魏無大梁;[六]

우리 편이 지도·남양·봉기로 내려가서

양주를 포위하여

여름철 강물에 가벼운 배를 띄워

전방에 강노를 후방에 담극을 갖추어

형택의 들머리를 깨뜨리면

위나라의 국도 대량을 칠 수 있으리라.

決白馬之口,魏無外黃、濟陽;[七]

決宿胥之口,[八]魏無虛、頓丘。[九]

陸攻則擊河內,水攻則滅大梁。』

또 백마진의 들머리를 깨뜨리면

위가 외황과 제양을 없애고

숙서진의 들머리를 치면

위가 허·둔구를 없애리라

육지로 공격하면 하내를 치고

물길로 치면 대량을 쳐 없애리라.’

魏氏以為然,故事秦。

위씨는 이 말을 수긍하고

그 때문에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注[一]索隱女戟,地名,蓋在太行山之西。

注[二]索隱劉氏卷音軌免反也。按:舉安邑,塞女戟,及至韓氏之韓國宜陽也。

太原者,魏地不至太原,亦無別名太原者,蓋「太」衍字也。原當為「京」。京

及卷皆屬滎陽,是魏境。又下軹道是河內軹縣,言「道」者,亦衍字。徐廣云

「霸陵有軹道亭」,非魏之境,其疏謬如此。正義卷,軌免反。劉伯莊云:「太

原當為太行。卷猶斷絕。」

注[三]集解徐廣曰:「霸陵有軹道亭,河東皮氏有冀亭也。」索隱按:魏之南陽

河內也。封,封陵也。冀,冀邑。

皆在魏境,故徐廣云「河東皮氏縣有冀亭」。

注[四]集解徐廣曰:「張儀曰『下河東,取成皋』也。」正義兩周,王城及鞏。

注[五]集解徐廣曰:「由反。」正義劉伯莊云:「音四廉反,利也。」

注[六]索隱滎澤之口與今汴河口通,其水深,可以灌大梁,故云「無大梁」也。

注[七]索隱白馬河津在東郡,決其流以灌外黃及濟陽。正義故黃城在曹州考城

縣東二十四里。濟陽故城在曹州朐縣西南三十五里。

注[八]集解徐廣曰:「紀年云魏救山塞集胥口。」索隱按:紀年作「胥」,蓋亦

津之名,今其地不知所在也。正義淇水出%州淇縣界之淇口,東至黎陽入河。

魏志云:「武帝於清淇口東因宿胥故瀆開白溝,道清淇二水入焉。」

注[九]集解徐廣曰:「秦始皇五年,取魏酸棗,燕虛、長平。」索隱虛,邑名,

地與酸棗相近。正義虛謂殷墟,今相州所理是。頓丘故城在魏州頓兵縣東北二

十里。括地志云:「二國地時屬魏。」

「秦欲攻安邑,恐齊救之,

則以宋委於齊。曰:

진나라는 위나라의 안읍을 치려고 하는데

제나라가 위나라를 도울 것을 염려하고

제나라에 송나라의 처지를 맡겨서 말했다.

『宋王無道,為木人以(寫)[象]寡人,射其面。

寡人地絕兵遠,不能攻也。

王苟能破宋有之,寡人如自得之。』

‘송왕은 무도한 임금으로서

과인의 용모를 본뜬 허수아비를 만들어

그 얼굴을 쏘아 대며 기뻐한다.

과인이 군사를 출동하려고 해도 거리가 멀어서

공격할 수 없다.

만약 임금께서 송나라를 깨뜨리고 그 땅을 빼앗아 가지면

바로 과인이 빼뺏아 가진 것과 같은 것이 되리라.’

已得安邑,塞女戟,

因以破宋為齊罪。[一]

그런데 이미 안읍을 얻고 여극을 막아서

목적을 달성하자 진나라는 송나라를 깨뜨린 것을

제나라의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注[一]索隱秦令齊滅宋,仍以破宋為齊之罪名。

「秦欲攻韓,恐天下救之,

則以齊委於天下。曰:

진나라가 또 한나라를 채려고 하는데

천하가 제수가 한나라를 도울 것을 염려하여

제후에게 제나라의 처지를 맡겨 말했다.

『齊王四與寡人約,四欺寡人,

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

有齊無秦,有秦無齊,

必伐之,必亡之。』

‘제왕은 과인과 네 번 약정하고

네 번 다 과인을 기만했으며

천하제후를 이끌고 과인을 치기를 세 번이나 하였다

제나라가 있으면 진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있으면 제나라는 망할 것이다.

반드시 제나라를 치고

반드시 제나라를 멸망시키기 바란다.’

已得宜陽、少曲,致藺、*[離]*石,

因以破齊為天下罪。

그런데 한나라의 의양과 소곡을 얻고

이·석을 공격해 목적을 달성하자

진나라는 제나라를 깨뜨린 죄를 천하 제후의 죄로 만들었습니다.

「秦欲攻魏重楚,[一]則以南陽委於楚。曰:[二]

또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초나를 염려하여 한나라의 옛 땅 남양을 초나라에 맡기고 말했다.

『寡人固與韓且絕矣。

殘均陵,塞鄳阨,[三]

苟利於楚,寡人如自有之。』

‘과인은 본디부터 한나라와 교제를 끊으려고 하였다.

만약 초나라가 한나라의 균릉을 장악하고

맹의 요새지를 막아서

그것이 초나라의 이익이 된다면

과인 스스로 가지는 것과 같이 기쁜 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魏弃與國而合於秦,因以塞鄳阨為楚罪。

이 때문에 위나라가 가까운 한나라를 버리고 진나라에 합류하자

진나라는 맹의 요새지 막은 것을 초나라의 잘못으로 돌렸습니다.

注[一]索隱重猶附也,尊也。正義畏楚救魏。

注[二]正義南陽鄧州地,本韓地也。韓先事秦,今楚取南陽,故言「與韓且絕

矣」。

注[三]集解鄳音盲。徐廣曰:「鄳,江夏鄳縣。均,一作『灼』。」索隱均陵在

南陽,蓋今之均州。黽音盲,縣名,在江夏。正義均州故城在隨州西南五十里,

蓋均陵也。又申州羅山縣本漢鄳縣。申州有平清關,蓋古鄳縣之塞。

「兵困於林中,[一]重燕、趙,

以膠東委於燕,以濟西委於趙。

진나라의 군사는 위나라를 쳐 임중에서 고전하였는데

연나라와 조나라가 적에게 붙을까를 염려해

교동을 연나라에 맡기고

제서를 조나라에 맡겼습니다.

已得講於魏,[二]至公子延,[三]

因犀首屬行[四]而攻趙。

그런데 위나랑와 화친을 맺자

위나라 공자 연을 이르게 하고

서수에게 행군을 위촉하여 조나라를 공격케 하였습니다.

注[一]集解徐廣曰:「河南苑陵有林鄉。」

注[二]索隱講,和也,解也。秦與魏和也。

注[三]索隱至當為「質」,謂以公子延為質也。

注[四]索隱犀首、公孫衍本魏將,因之以屬軍行。行音胡郎反,謂連兵相續也。

「兵傷於譙石,而遇敗於陽馬,[一]

而重魏,則以葉、蔡委於魏。

진나라 군사는 조나라의 초석에서 깨어지고

양마에서 패정을 당하였는데

조나라를 염려하여

섭·채를 위나라에 맡겼습니다.

已得講於趙,則劫魏,*[魏]*不為割。

困則使太后弟穰侯為和,

嬴則兼欺舅與母。[二]

그런데 조나라와 화친을 맺자

위나라를 협박하여

위나라는 섭·채를 떼어 주지 않았습니다.

져서 궁하면 태후의 아우 양후를 보내어 화평을 맺고

이기면 구와 어머니를 함께 속였습니다.

注[一]索隱按:譙石、陽馬並趙地名,非縣邑也。

注[二]索隱按:嬴猶勝也。舅,穰侯魏也。母,太后也。

「適燕者[一]曰『以膠東』,

適趙者曰『以濟西』,

適魏者曰『以葉、蔡』,

適楚者曰『以塞鄳阨』,

適齊者曰『以宋』,

연나라를 꾸짖는 데는 이르기를 ‘요동으로써 하고

조나라를 꾸짖는 데는 제서로써 하고

위나라를 꾸짖는 데는 섭·채로써 하고

초나라를 꾸짖는 데는 맹의 요새지 막은 일로써 하고

제나라를 꾸짖는 데는 송나라로써 하였다.

此必令言如循環,用兵如刺蜚,

母不能制,舅不能約。

이는 반드시 진나라가 열국을 꾸짖기를 고리와 같이 하였고

군사를 움직이기를 부초를 베어 자르는 것과 같이 하여

어머니도 이를 제지치 못하고

양후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注[一]索隱適音宅。適者,責也。下同。

「龍賈之戰,[一]岸門之戰,[二]封陵之戰,[三]

高商之戰,[四]趙莊之戰,[五]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위나라 용고의 싸움, 한나라와의 숭문의 싸움,

위나라와의 봉릉의 싸움, 고상의 싸움,

조나라 조장의 싸움에서

진나라가 죽인 3진의 백성은 수백만에 달하고

지금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진나라의 손에 죽음을 당한 자의 고아들입니다.

西河之外,上雒之地,

三川晉國之禍,三晉之半,

秦禍如此其大也。[六]

而燕、趙之秦者,[七]

皆以爭事秦說其主,此臣之所大患也。」

서하 밖, 상락의 땅·

삼천·진국의 전쟁 피해는 3진의 반을 차지합니다.

진나라의 화가 이렇도록 큰데도

진나라로 가는 연나라와 조나라 두 나라의 우세자는

모두 다투어 임금에게 진나라를 섬길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크게 근심하는 바입니다.”

注[一]集解魏襄王五年,秦敗我龍賈軍。

注[二]集解韓宣惠王十九年,秦大破我岸門。

注[三]集解魏哀王十六年,秦敗我封陵。

注[四]集解此戰事不見。

注[五]集解趙肅侯二十二年,趙莊與秦戰敗,秦殺趙莊河西。

注[六]索隱以言西河之外,上雒之地及三川晉國,皆是秦與魏戰之處,秦兵禍

敗我三晉之半,是秦禍如此其大者乎。

注[七]索隱燕、趙之人往秦者,謂游說之士也。

燕昭王不行。蘇代復重於燕。

연소왕은 진나라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고

소대는 다시 연나라에서 중용되었다.

燕使約諸侯從親如蘇秦時,或從或不,

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

代、厲皆以壽死,名顯諸侯。

연나라는 제후에게 소진의 때와 같이

합종의 약정을 맺도록 권하였다.

제후 중의 어떤 자는 따르고 어떤 자는 따르지 않았으나

천하는 이로 해서 소씨의 합종의 약정을 중시하였다

소대와 소려는 다 타고난 수명을 제대로 살다가 죽었고

그 이름은 제후에 드러났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蘇秦兄弟三人,[一]皆游說諸侯以顯名,

其術長於權變。而蘇秦被反閒以死,

天下共笑之,諱學其術。

소진의 형제 셋은 모두 제후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냈다.

그 술책은 권모와 변화에 능했는데

소진은 반간의 명분으로 죽음을 당하였고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이를 비웃었으며

그 술책을 배우기를 꺼려하였다.

然世言蘇秦多異,

異時事有類之者 皆附之蘇秦。

夫蘇秦起閭閻,連六國從親,

此其智有過人者。

그러나 항간에는 소진의 이설이 많다.

아마 다른 시대의 그 비슷한 사건들을

다 소진에게 끌어다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소진이 민간에서 몸을 일으켜

6국을 합종하게 한 것은

이는 그 지혜가 범상한 사람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吾故列其行事,次其時序,

毋令獨蒙惡聲焉。

그러므로 나는 그가 한 일을 기록하여

때의 전후를 간추려

오직 그만 악평을 입게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注[一]索隱按:譙允南以為蘇氏兄弟五人,更有蘇辟、蘇鵠,典略亦同其說。

按:蘇氏譜云然。

【索隱述贊】季子周人,師事鬼谷。揣摩既就,陰符伏讀。合從離衡,佩印者

六。天王除道,家人扶服。賢哉代、厲,繼榮黨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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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6

蘇秦既死,其事大泄。

齊後聞之,乃恨怒燕。燕甚恐。

소진이 죽은 뒤

그런 일이 크게 세상에 드러났다.

제나라는 뒤에 이것을 알고

연나라를 원망하였으며 또한 노하였다.

연나라는 매우 두려워하였다.

蘇秦之弟曰代,代弟蘇厲,

見兄遂,亦皆學。

소진의 아우는 <대>라고 하며

대의 아우는 <려>라고 하였다.

형의 성공을 보고

모두가 또 유세술을 배웠다.

及蘇秦死,代乃求見燕王,欲襲故事。曰:

소진이 죽으니 대는 연왕을 뵙고

형의 유업을 잇고자 하여 말했다.

「臣,東周之鄙人也。

竊聞大王義甚高,鄙人不敏,

釋鉏耨而干大王。

“저는 동주에서 난 천한 자이오나

대왕의 덕행이 매우 높은 것을 듣고

아무 재주도 없으면서

괭이를 버리고 관직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至於邯鄲,所見者絀於所聞於東周,

臣竊負其志。

及至燕廷,觀王之羣臣下吏,

王,天下之明王也。」

처음에 조나라의 서울 한단에 갔으나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은 동주에서 들은 것보다 못하여

마음속에 품은 뜻과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연나라 조정에 와서

임금의 여러 신하와 하급 관리들을 보니

임금께서 천하의 현명하신 왕이십니다.”

燕王曰:

「子所謂明王者何如也?」

연왕이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현명한 왕이란 어떤 것이오?”

對曰:

「臣聞明王務聞其過,不欲聞其善,

臣請謁王之過。

夫齊﹑趙者,燕之仇讎也;

楚﹑魏者,燕之援國也。

소대가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현명한 왕은 허물을 듣기를 힘쓰고

선하다는 말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청하오니 저에게 임금의 허물을 말씀하게 하여 주십시오.

대체로 제나라와 조나라는 연나라의 적국이며,

초나라와 위나라는 연나라의 친한 나라입니다.

今王奉仇讎以伐援國,非所以利燕也。

王自慮之,此則計過,

無以聞者,非忠臣也。」

이제 임금께서 적국을 만들어 친한 나라를 치는 것은

연나라를 이롭게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임금님 이점을 스스로 잘 고려하십시오.

이는 임금님의 계략으로는 그릇된 것이므로

이를 임금님께 말씀 올리는 자가 없는 것은

충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王曰:

「夫齊者固寡人之讎,所欲伐也,

直患國敝力不足也。

子能以燕伐齊,則寡人舉國委子。」

임금이 말했다.

“제나라는 본래 과인의 원수로서

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다만 국력이 피폐하고 부족한 것이 걱정입니다.

만일 그대가 연나라 병역으로 제나라를 칠 수 있다고 하면

과인은 나라를 들어서 그대에게 위임하겠다.”

對曰:

「凡天下戰國七,燕處弱焉。

獨戰則不能,有所附則無不重。

소대가 대답했다.

“무릇 천하에는 무장한 나라가 7개국이 있는데

그 중에 연나라는 약소국에 처하니

단독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 붙으면 그 비중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南附楚,楚重;西附秦,秦重;

中附韓﹑魏,韓﹑魏重。

且苟所附之國重,此必使王重矣。[一]

남쪽의 초나라에 붙으면 초나라가 무거워지고

서쪽의 진나라에 붙으면 진나라가 무거워지고

중앙의 한나라와 위나라에 붙으면

한나라와 위 두 나라가 무거워질 것입니다.

붙는 쪽의 나라가 무거워지면

거기에 따라 임금님의 지위도 반드시 높아집니다.

今夫齊,長主[二]而自用也。

南攻楚五年,畜聚竭;

西困秦三年,士卒罷敝;

北與燕人戰,覆三軍,得二將。[三]

이즈음에 제나라는

연장한 군주가 있어서 스스로 계교를 썼는데

남쪽 초나라를 치기를 5년,

이 때문에 저축한 것이 없어지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에 시달리기를 3년,

이 때문에 군사들은 피곤했는데

그래도 북쪽 연나라 사람과 싸워서

연나라의 3군을 뒤집어 엎고

장군 두 사람을 사로 잡았습니다

然而以其餘兵 南面舉五千乘之大宋,[四]

而包十二諸侯。

此其君欲得,其民力竭,惡足取乎!

그러고도 남은 병력을 가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5천 승의 병거를 가진 대국 송나라를 깨뜨리고

12제후를 병합하였습니다.

이로서 그 임금의 욕망은 얻었으나

그 백성의 힘이 다했습니다.

어찌 취하기에 족한 방법이겠습니까?

且臣聞之,數戰則民勞,

久師則兵敝矣。」

또 신이 듣건데

‘자주 싸우면 백성이 피곤하고

오래 싸우면 군사가 피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燕王曰:

「吾聞齊有清濟﹑濁河[五]可以為固,

長城﹑鉅防[六]足以為塞,誠有之乎?」

연왕이 물었다.

“내가 듣건대,

‘제나라는 맑은 제수와 탁한 하수가 있어

나라의 방패로 이용할 수 있고,

장성과 거방(鉅防)이 있어 요새지로 믿기에 족하다.’고 하니

진실로 그런 일이 있습니까?”

對曰:

「天時不與,

雖有清濟﹑濁河,惡足以為固!

소대가 대답했다.

“천시가 제나라에 응하지 않으면

비록 맑은 제수와 탁한 하수가 있다 하여도

어찌 나라를 견고히 할 수 있겠습니까?

民力罷敝,

雖有長城﹑鉅防,惡足以為塞!

백성의 힘이 피폐하면

비록 장성과 거방이 있다하여도

어찌 요새지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且異日濟西不師,[七]所以備趙也;

河北不師,[八]所以備燕也。

그 위에 일찍이 제나라가 제의 서쪽에서 군사를 모집하지 않은 것은

조나라에 대한 대비였으며

하북에서 군사를 모집하지 않은 것은

연나라에 대한 대비였습니다.

今濟西河北盡已役矣,封內敝矣。

夫驕君必好利,而亡國之臣必貪於財。

그런데 이제 제의 서쪽과 하북은 다 군역을 모조리 징발하여

영토 안은 피폐합니다.

대체로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익을 좋아하고

망국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합니다.

王誠能無羞從子母弟[九]以為質,[一0]

寶珠玉帛以事左右,

彼將有德燕而輕亡宋,則齊可亡已。」

임금님께서 진실로 아들과 조카를 인질로 하여 제나라에 보내서

보석와 비단을 선물로 하여 제왕의 측근을 섬기게 하는 것이

저들 제나라는 연나라를 덕으로 삼아

가벼이 송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치기만 하면 제나라를 곧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燕王曰:「吾終以子受命於天矣。」

연왕은 말했다.

“나는 마침내 그대의 힘으로 패왕이 될 천명을 받았습니다.”

燕乃使一子質於齊。

而蘇厲因燕質子而求見齊王。

齊王怨蘇秦,欲囚蘇厲。

燕質子為謝,已遂委質為齊臣。[一一]

그리하여 한 아들을 제나라에 볼모로 들어 보냈다.

소려는 그 연나라 볼모를 인도해

제왕에게 뵙기를 청했다.

제왕은 소진을 원망하여

소려를 가두려고 생각하였는데

연나라에서 볼모로 온 아들이 려를 위해 빌고

려 자신도 또한 예물을 바쳐서 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注[一]正義言附諸國,諸國重燕而燕尊重。

注[二]索隱按:謂齊王年長也。或作「齊彊,故言長主」。

注[三]集解徐廣曰:「齊覆三而燕失二將。」索隱按:徐廣云「齊覆三軍而燕失

二將」。又戰國策云「獲二將」,亦謂燕之二將,是燕之失也。

注[四]正義齊表云「齊湣王三十八年滅宋」,乃當赧王二十九年。此說乃燕噲之

時,當周慎王之時,齊[滅]宋在前三

十餘年,恐文誤矣。

注[五]正義濟﹑漯二水上承黃河,並淄﹑青之北流入海。黃河又一源從洛﹑魏

二州界北流入海,亦齊西北界。

注[六]集解徐廣曰:「濟北盧縣有防門,又有長城東至海。正義長城西頭在濟州

平陰縣界。竹書紀年云:「梁惠王二十年,齊閔王築防以為長城。」太山記云:

「太山西有長城,緣河經太山,餘一千里,至琅邪臺入海。」

注[七]正義濟州已西也。

注[八]正義謂滄﹑博等州,在漯河之北。

注[九]索隱戰國策「從」作「寵」。

注[一0]正義音致。

注[一一]正義質,真栗反。

燕相子之與蘇代婚,而欲得燕權,

乃使蘇代侍質子於齊。齊使代報燕,

연나라 재상 자지(子之)는 소대와 통혼하고

연나라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소대를 제나라에 볼모로 간 왕자의 시종으로 보냈던 바

제나라는 다시 대를 보내어 연나라에 복명케 하였다

燕王噲問曰:「齊王其霸乎?」

연왕 쾌가 소대에게 물었다.

“제왕은 대관절 패왕이 될 수 있겠소?”

曰:「不能。」

“될 수 없습니다.”

曰:「何也?」

“어째서인가?”

曰:「不信其臣。」

“신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於是燕王專任子之,已而讓位,燕大亂。

이에 연왕은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자지에게 맡기고

얼마 후에 왕위까지 사양하였으므로

연나라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齊伐燕,殺王噲﹑子之。[一]燕立昭王,

而蘇代﹑蘇厲遂不敢入燕,

皆終歸齊,齊善待之。

제나라는 연나라를 치고

쾌와 자지를 죽였다.

연나라에서는 소왕을 세워 국왕을 삼았다.

소대와 소려는 감히 연나라에 입국할 수 없어

마침내 제나라에 귀속하였다.

제나라는 그들을 후대하였다.

注[一]集解徐廣曰:「是周赧王之元年時也。」

蘇代過魏,魏為燕執代。

齊使人謂魏王曰:

「齊請以宋地封涇陽君,[一]秦必不受。

소대가 위나라를 지날 때

위나라는 연나라를 위해서 소대를 붙들었다.

그 때문에 송나라 사람을 보내어 위왕에게 말하게 하였다.

“제나라가 송나라 땅을 경양군의 영지로 제공하겠다고 나오더라도

진나라는 반드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秦非不利有齊而得宋地也,[二]

不信齊王與蘇子也。

진나라는 제나라와 친교를 계속하고

송나라의 땅을 손에 넣은 것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왕과 소대를 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今齊魏不和如此其甚,則齊不欺秦。

秦信齊,齊秦合,

涇陽君有宋地,非魏之利也。

이제 제나라와 위나라의 불화가 이처럼 심하면

제나라가 진나라를 속이지 않아

진나라는 제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류하여

경양왕이 송나라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위나라의 이익됨이 아닐 것입니다.

故王不如東蘇子,

秦必疑齊而不信蘇子矣。

齊秦不合,天下無變,伐齊之形成矣。」

그런 까닭으로 임금님은 소대를 석방하여

동쪽으로 보내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제나라를 의심하고 소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류하지 않으면

천하에는 진나라의 침략이 없이

위나라가 제나라를 칠 수 있는 태세도 갖추어 질 것입니다.”

於是出蘇代。

代之宋,宋善待之。

이에 소대를 석방하자

소대가 송나라로 가니

송나라에서는 그를 후대했다.

注[一]正義涇陽君,秦王弟,名悝也。涇陽,雍州縣也。齊蘇子告秦共伐宋以

封涇陽君,然齊假設此策以救蘇代。

注[二]正義齊言秦相親共伐宋,秦得宋地,又得齊事秦,不信齊及蘇代,恐為

不成也。

齊伐宋,宋急,

그 뒤 제나라가 송나라를 쳐서

송나라는 위급에 처했다.

蘇代乃遺燕昭王書曰:[一]

소대는 연초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注[一]正義此書為宋說燕,令莫助齊﹑梁。

夫列在萬乘而寄質於齊,[一]名卑而權輕;

奉萬乘助齊伐宋,民勞而實費;

대체로 다 같이 버젓한 대국의 위치에서 볼모를 제나라에 보낸 것은

바깥 소문이 좋지 않고 위엄도 손상 됩니다.

만승의 제나라를 도와 송나라를 치면

백성은 피로하고 재물은 낭비됩니다.

夫破宋,殘楚淮北,,

肥大齊 讎彊而國害:

此三者皆國之大敗也。

송나라를 깨뜨리고

초나라의 회북을 침범하여

제나라를 살찌우면

적은 굳세어져서 나라가 해를 입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것이나 국책으로서는 크게 실패입니다.

然且王行之者,將以取信於齊也。

齊加不信於王,而忌燕愈甚,

是王之計過矣。

그런데도 임금이 이 일을 수행하고자 함은

이로써 제나라의 신용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나라는 점점 임금을 믿지 않고

연나라를 싫어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임금의 계교가 그릇되었기 때문입니다.

夫以宋加之淮北,強萬乘之國也,

而齊并之,是益一齊也。[二]

대체로 송나라 회북의 땅을 더하면

굳세기가 만승의 나라에 따라갈 수 있으나

만약에 이것을 제나라에 합병하게 하면

이는 하나의 제나라를 더 보태는 것과 같아집니다.

北夷方七百里,[三]加之以魯﹑衛,

彊萬乘之國也,而齊并之,

是益二齊也。

북방 오랑캐 땅은 사방 7백 리,

여기에 노나라와 위나라를 더하면

그 굳세기는 강한 만승의 나라에 따라가고

만약 이것을 제나라에 합병할 때는

두 개의 제나라를 더 보태는 것과 같아집니다.

夫一齊之彊,燕猶狼顧而不能支,

今以三齊臨燕,其禍必大矣。

하나의 제나라의 강함에 대해서도

연나라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지탱하기 어려운데

이제 세 개의 제나라로써 연나라에 임할 때는

그 우환이야말로 반드시 대단할 것입니다.

注[一]正義燕前有一子質於齊。

注[二]正義更以淮北之地加於齊都,是強萬乘之國而齊總并之,是益一齊。

注[三]索隱謂山戎﹑北狄附齊者。正義齊桓公伐山戎﹑令支,斬孤竹而南歸海

濱,諸侯莫不來服。

雖然,智者舉事,

因禍為福,轉敗為功。

비록 그러할지라도 지혜로운 자의 말을 들으면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굴리어 성공되도록 합니다.

齊紫,敗素也,[一]而賈十倍;[二]

제나라의 자주색 비단은 패소가 재료인데

그것을 자주색으로 물만 들이면 값이 열 배로 팔립니다.

越王句踐棲於會稽,復殘彊吳而霸天下:

此皆因禍為福,轉敗為功者也。

월왕 구천은 회계산에 살았는데

다시 강국 오나라를 멸망하게 하여 천하에 승리를 불렀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굴리어 성공으로 되게 한 것입니다.

注[一]集解徐廣曰:「取敗素染以為紫。」正義齊君好紫,故齊俗尚之。取惡素

帛染為紫,其價十倍貴於餘。喻齊雖有大名,而國中以困弊也。韓子云:「齊桓

公好服紫,一國盡服紫,當時十素不得一紫,公患之。管仲曰:『君欲止之,何

不試勿衣也?』公謂左右曰:『惡紫。』公語三日,境內莫有衣紫者。」

注[二]索隱按:謂紫色價貴於帛十倍,而本是敗素。以喻齊雖有大名,而其國

中困斃也。

今王若欲因禍為福,轉敗為功,

則莫若挑霸齊而尊之,[一]

使使盟於周室,焚秦符,曰[二]

「其大上計,破秦;其次,必長賓之」。[三]

임금님께서 이제라도 만일 화를 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돌리시려면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제나라를 패자로 존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신을 보내어 제나라를 맹주로 하는 뜻을 주나라에 맹세하게 하고

진나라의 서약서를 불태우고 주나라에 이르기를,

‘최상의 묘안으로는 진나라를 깨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반드시 영구히 진나라를 배척하는 일이다.’

秦挾賓以待破,秦王必患之。

秦五世伐諸侯,今為齊下,

秦王之志苟得窮齊,不憚以國為功。

배척함으로써 진나라의 파멸을 기다리면

진왕은 반드시 근심할 것입니다.

진나라는 5대에 걸쳐 제후를 쳤으나

지금에는 제나라의 아래 위치에 있습니다.

진왕의 뜻은 어떻게든지 제나라를 괴롭힐 수 있다면

국력으로써 공을 이루기를 꺼리지 않을 것입니다.

然則王何不使辯士 以此言說秦王曰:

그러한데도 임금은 어찌하여 유세객을 보내어

이러한 논법으로 진왕을 설득하지 않으십니까?

「燕﹑趙破宋肥齊,

尊之為之下者,燕﹑趙非利之也。

燕﹑趙不利而勢為之者,以不信秦王也。

“연나라와 조나라가 송나라를 깨뜨리고 제나라를 살찌우며

제나라를 존경하여 그 아래 위치에 서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가 이것을 유리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연나라와 조나라가 유리하게 여기지 않는데도 이러한 형세에 이른 것은

진왕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然則王何不使可信者接收燕﹑趙,

令涇陽君﹑高陵君[四]先於燕﹑趙?

秦有變,因以為質,則燕﹑趙信秦。

사정이 이러한데 임금은 어째서 심복을 보내어

연나라와 조나라를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가?

먼저 경양군과 고릉군을 연나라와 조나라에 보내어

진나라에 사변이 있으면

이들을 볼모로 삼으라 하시오.

그리하면 연나라와 조나라는 진나라를 신용할 것입니다.

秦為西帝,燕為北帝,

趙為中帝,立三帝以令於天下。

진왕을 서제로 삼고

연왕을 북제로 삼고

조왕을 중제로 삼아

세 제왕을 나란히 세워서 천하를 호령하시오.

韓﹑魏不聽則秦伐之,

齊不聽則燕﹑趙伐之,天下孰敢不聽?

만약 하나라와 위나라가 따르지 않을 때는 진나라가 치고

제나라가 따르지 않을 때는 연나라와 조나라가 치기로 하면

천하에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天下服聽,因驅韓﹑魏以伐齊,曰

『必反宋地,歸楚淮北』。

천하가 다 복종하면

한나라와 위나라를 뒤에서 몰아 제나라를 쳐서 이르기를

‘반드시 송나라의 땅을 돌리고

초나라의 회북을 돌려보내라고 말합니다.

反宋地,歸楚淮北,燕﹑趙之所利也;

並立三帝,燕﹑趙之所願也。

송나라의 땅을 돌리고

초나라의 회북을 돌려보내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의 이익입니다

세 제왕을 나란히 세우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가 원하는 바입니다

夫實得所利,尊得所願,

燕﹑趙弃齊 如脫躧矣。

今不收燕﹑趙,齊霸必成。

실리로서는 토지를 얻고

존엄함은 원하는 호징을 얻어

연나라와 조나라가 제나라를 버리기를

마치 헌 신짝 벗는 것 같이 할 것입니다.

이제 진나라가 일찍 연나라와 조나라를 수습하지 않으면

제나라의 패업은 성공될 것입니다.

諸侯贊齊而王不從,是國伐也;

諸侯贊齊而王從之,是名卑也。

제후는 제나라를 돕고 임금님께서만 이에 따라 가지 않으면

진나라는 제후에게 정벌당할 것입니다.

제후가 제나라를 돕고 왕이 이에 따라 가지 않으면

명예스럽다고 할 수 없습니다.

今收燕﹑趙,國安而名尊;

不收燕﹑趙,國危而名卑。

夫去尊安 而取危卑,智者不為也。」

이제 연나라와 조나라를 수습하면

나라는 편안하고 이름은 높아지며

연나라와 조나라를 수습하지 않으면

나라는 위험하고 이름은 낮아집니다.

높아지고 편안한 것을 버리고

위험하고 낮은 것을 취하는 것은

지혜 있는 자가 해서는 안 됩니다.”

秦王聞若說,必若刺心然。

則王何不使辯士 以此若言說秦?

秦必取,齊必伐矣。

진왕이 이 유세를 들으면

반드시 마음에 찔리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째서 유세하는 사람에게

이런 논법으로 진왕을 설득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유세를 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이를 취할 것이며

제나라는 반드시 정벌을 당할 것입니다.

注[一]正義挑,田鳥反,執持也。

注[二]正義符,徵兆也。

注[三]索隱長音如字。賓為「擯」。正義大好上計策,破秦;次計,長擯關西。

注[四]集解徐廣曰馮翊高陵縣。索隱二人,秦王母弟也。高陵君名顯。涇陽君

名悝。

夫取秦,厚交也;伐齊,正利也。

尊厚交,務正利,聖王之事也。

진나라를 끌어 들이는 것은 두터운 친교이며

제나라를 치는 것은 정당한 이득이니

두터운 친교를 존중하고

정당한 이득을 힘쓰는 것은

성왕의 사업입니다.

燕昭王善其書,曰:

「先人嘗有德蘇氏,子之之亂而蘇氏去燕。

燕欲報仇於齊,非蘇氏莫可。」

연소왕은 그 편지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했다.

“선왕은 일찍이 소진의 합종을 원조하였는데

자지의 내란이 있어서 소씨는 연나라로 가 버렸다.

연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에 복수하고자 하는 데는

소씨 이외에 가능하지 않다.”

乃召蘇代,復善待之,與謀伐齊。

竟破齊,湣王出走。

그리하여 소대를 가까이 불러

다시 그를 후대하고

함께 제나라의 토벌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나라를 깨뜨리어

제혼왕은 도피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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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5

其後秦使犀首欺齊﹑魏,

與共伐趙,欲敗從約。

그 뒤에 진나라는 서수에게 명하여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함께 조나라를 쳐서

합종의 약정을 깨뜨리려고 하였다.

齊﹑魏伐趙,趙王讓蘇秦。

蘇秦恐,請使燕,必報齊。

蘇秦去趙[一]而從約皆解。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자

조왕은 소진을 꾸짖었으므로

소진은 겁을 내어 연나라에 가서

반드시 제나라에 보복할 것을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니

합종의 약정은 자연 모두 해소되었다.

注[一]集解徐廣曰:「自初說燕至此三年。」

秦惠王以其女為燕太子婦。

是歲,文侯卒,太子立,

是為燕易王。

진나라 혜왕은 딸을 연나라 태자의 아내로 하였다.

그해 연문후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였다.

이 사람이 연나라 역왕이다.

易王初立,

齊宣王因燕喪伐燕,取十城。

역왕이 즉위한 처음에

제선왕은 상중인 틈을 타서 연나라를 치고

10개 성을 빼앗았다

易王謂蘇秦曰:

「往日先生至燕,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國從。

역왕이 소진에게 말했다.

“전날 선생이 연나라에 왔을 때

선왕 문후는 선생에게 여비를 주어서 조왕을 만나게 하고

그 결과 마침내 여섯 나라 합종의 약정을 하였소.

今齊先伐趙,次至燕,

以先生之故 為天下笑,

先生能為燕得侵地乎?」

그러나 이제 제나라는 먼저 조나라를 치고

다음으로 연나라를 쳤으니

선생 때문에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선생은 과연 연나라를 위해 잃은 땅을 찾을 수 있겠소?”

蘇秦大慙曰:「請為王取之。」

소진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임금을 위해 되찾아 오겠습니다.”

蘇秦見齊王,再拜,

俯而慶,仰而弔。[一]

소진은 제왕을 만나 두 번 절하고

엎드려 경하의 말씀을 올림과 동시에

우러러 뉘우침의 말씀을 드렸다.

齊王曰:「是何慶弔相隨之速也?」

제왕이 말했다.

“무엇을 또 그렇게 성급하게도 경하와 뉘우침을 연이어 말하시오?”

蘇秦曰:

「臣聞飢人所以飢 而不食烏喙者,[二]

為其愈充腹 而與餓死同患也。[三]

소진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도 오탁이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것은

설령 배가 부르더라도

굶어 죽는 것과 같은 환란이기 때문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今燕雖弱小,即秦王之少壻也。

大王利其十城 而長與彊秦為仇。

지금 연나라는 약소국이라고는 하지만

진나라로 봐서는 사위의 나라입니다

대왕은 연나라에서 10개 성을 빼앗으나

그 대신 장차 오랫동안 진나라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今使弱燕為鴈行 而彊秦敝其後,

以招天下之精兵,是食烏喙之類也。」

이제 약한 연나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여

강한 진나라가 그 뒤를 사서

천하의 정병을 부르는 결과가 되면

이것은 굶주린 사람이 오훼를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齊王愀然變色[四]曰:

「然則柰何?」

제왕은 슬픈 빛으로 근심을 띠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蘇秦曰:

「臣聞古之善制事者,

轉禍為福,因敗為功。

大王誠能聽臣計,即歸燕之十城。

소진이 말했다.

“신이 듣기네 ‘예부터 일을 잘 마름질하는 자는

화를 돌려 복이 되게 하고

실패로 말미암아 성공을 가져온다.’고 들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진실로 나의 계교를 들어 주신다면

곧 연나라의 10개 성을 돌려주십시오.

燕無故而得十城,必喜;

별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고 돌려주신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秦王知以己之故 而歸燕之十城,亦必喜。

此所謂弃仇讎而得石交者也。

진왕도 내 덕택으로

10개 성이 돌려진 것을 알면

반드시 기뻐할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버리고

굳은 친교를 얻는 것입니다.

夫燕﹑秦俱事齊,則大王號令天下,

莫敢不聽。是王以虛辭附秦,

以十城取天下。此霸王之業也。」

연나라와 진나라가 함께 제나라를 섬기면

대왕의 호령에 따르지 않을 자는 하늘 아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공허한 외교 변설로 진나라를 따르게 하고

10개 성의 보상으로 천하를 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패업이고 왕업입니다.”

王曰:「善。」

於是乃歸燕之十城。

왕이 이르기를 “좋다.”고 하고

연나라의 10개 성을 반환하였다.

注[一]索隱劉氏云:「當時慶弔應有其詞,但史家不錄耳。」

注[二]集解本草經曰:「烏頭,一名烏喙。」索隱烏啄,音卓,又音許穢反。今

之毒藥烏頭是。正義廣雅云:「奚,毒附子也。一歲為烏啄,三歲為附子,四

歲為烏頭,五歲為天雄。」

注[三]索隱劉氏以愈猶暫,非也。謂食烏頭為其暫愈飢而充腹,少時毒發而死,

亦與飢死同患也。

注[四]索隱愀音自酋反,又七小反。

人有毀蘇秦者曰:

「左右賣國反覆之臣也,將作亂。」

소진을 비방하는 자들이 말했다.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고 마음에 표리가 있는 사람이다.

얼마 안 있어 난을 일으킬 것이다.”

蘇秦恐得罪歸,而燕王不復官也。

蘇秦見燕王曰:

소진은 죄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돌아왔는데

연왕은 그를 지난 날의 벼슬로 복직시키지 않았다.

소진은 연왕을 만나 말했다.

「臣,東周之鄙人也,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拜之於廟 而禮之於廷。

“신은 동주의 천한 출신입니다

일찍이 조그마한 공로도 없었는데

임금은 친히 종묘에 절하고

신을 관직에 올려 조정에서 대우하였습니다.

今臣為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宜以益親。

今來而王不官臣者,人必有以不信 傷臣於王者。

그리고 이제는 임금을 위해 제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10개 성을 회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더욱 친애하여야 마땅하거늘

이제 귀국하니 임금은 신을 본 직책에 돌아가도록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반드시 임금에게 불신으로써

신을 모함한 자가 있는 증거입니다.

臣之不信,王之福也。

臣聞忠信者,所以自為也;

進取者,所以為人也。

且臣之說齊王,曾非欺之也。

그러나 신의 이른바 불신이라는 것은

실은 임금에게 행복입니다.

신이 듣건대,

‘충신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소행이며

진취는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제왕을 설복한 것은

제왕을 속인 것은 아닙니다.

臣弃老母於東周,

固去自為 而行進取也。

신이 노모를 고향인 동주에 버려둔 것은

자기 근본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무시하고

남을 위해 진취를 행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今有孝如曾參,廉如伯夷,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何若?」

이제 설령 효도하기를 증삼 같이 하고

청렴하기를 백이 같이 하고

성실하기를 미생 같이 하는 자가 있다고 하여

이 세 사람이 대왕의 밑에서 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王曰:「足矣。」

임금이 대답했다.

“만족하겠소.”

蘇秦曰:

「孝如曾參,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而事弱燕之危王哉?

소진이 말했다.

“효행하기를 증참 같이 하는 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버이를 떠나서

비록 하룻밤일이라도 외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은 하여 그를 천 리 밖의 먼 곳으로 보내어

약소국인 연나라의 불안정한 임금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廉如伯夷,義不為孤竹君之嗣,

不肯為武王臣,不受封侯

而餓死首陽山下。

청렴한 백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죽군의 후사가 되지 않고

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되지 않고

수양산 밑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而行進取於齊哉?

이같이 청렴한 자가 있다면

임금은 어떻게 하여 그를 천 리 밖 먼 곳으로 보내어

제나라에 대하여 진취를 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信如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

성실한 미생은

여자와 다리 아래의 밀회를 약속하고서

여자가 오지 않아 여자를 기다린 채

밀물이 들어 물이 불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卻齊之彊兵哉?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

그같이 성실한 자가 있다면

임금은 어떻게 하여 그를 천리 밖 먼 곳으로 보내어

제나라 강병을 물리 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신은 충신인 까닭에 임금에게 죄를 입었습니다.”

燕王曰:

「若不忠信耳,

豈有以忠信 而得罪者乎?」

임금이 말했다.

“그대가 충신이 아니기 때문이오.

어찌 세상에 충신으로서 죄를 얻는 자가 있겠소?”

蘇秦曰:「不然。

臣聞客有遠為吏 而其妻私於人者,

其夫將來,其私者憂之,

소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은 이야기에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곳에 있을 때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뒤에 남편이 돌아온다는 것을 듣고

친한 남자가 걱정을 하니,

妻曰『勿憂,吾已作藥酒待之矣』。

아내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나는 벌서 독약 넣은 술을 준비하고 기다리니까.’

居三日,其夫果至,

妻使妾舉藥酒進之。

妾欲言酒之有藥,則恐其逐主母也,

欲勿言乎,則恐其殺主父也。

그런 지 사흘 뒤에 그 남편이 과연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첩에게 술잔을 돌려 남편에게 권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첩은 술에 독이 든 것을 알리면

주모에게 쫓겨날 것이며

알려 말하지 않으면

주인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於是乎詳僵而弃酒。[一]

主父大怒,笞之五十。

그리하여 일부러 거짓으로 넘어져서 술잔을 쏟아 버렸는데

주인은 크게 노하여

첩에게 매 50대를 때렸습니다.

故妾一僵而覆酒,

上存主父,下存主母,

한 번 거짓으로 넘어져서 술을 쏟은 첩의 계교가

위로는 주인을 보호하고

아래로는 주모도 보호한 것입니다.

然而不免於笞,

惡在乎 忠信之無罪也?

夫臣之過,不幸而類是乎!」

그러면서도 매 맞는 일은 면하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충신이며 죄를 얻을 리가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대체로 신의 허물이라는 것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燕王曰:「先生復就故官。」

益厚遇之。

연왕이 말했다.

“선생은 또 전과 같이 관직에 취임하시오.”

더욱 더 그를 우대하였다.

注[一]索隱詳音羊。詳,詐也。僵,仆也,音薑。

易王母,文侯夫人也,與蘇秦私通。

역왕의 어머니는 문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통하였다.

燕王知之,而事之加厚。

蘇秦恐誅,乃說燕王曰:

연왕은 이것을 알면서도

더욱 두텁게 그를 대우하였으나

소진은 죽음을 당할 것을 겁내어

연왕에게 말했다.

「臣居燕不能使燕重,

而在齊則燕必重。」

“신이 연나라에 있어서는

연나라를 천하에 무게 있는 나라로 할 수 없으니

제나라에 가면 연나라는 반드시 무게를 더할 것입니다.”

燕王曰:「唯先生之所為。」

於是蘇秦詳為得罪於燕 而亡走齊,齊宣王以為客卿。[一]

연왕이 말했다.

“다만 선생 마음대로 하시오.”

이에 소진은 연나라에서 죄를 범했다고 거짓말하여

제나라에 망명하였다.

제선왕은 그를 객경(客卿)으로 대우하였다.

注[一]集解徐廣曰:「燕易王之十年時。」

齊宣王卒,湣王即位,

說湣王厚葬以明孝,

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

欲破敝齊而為燕。

제선왕이 죽고 혼왕이 즉위하니

소진은 혼왕에게 말하여 장례를 정중히 하고 효도를 분명히 하고

객사를 높이 하고 정원을 넓게 하여 왕자의 풍도를 나타내게 하였다.

이것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재정적으로 피폐케 하려는 생각이었다.

燕易王卒,[一]燕噲立為王。

其後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不死,殊而走。[二]

연나라 역왕이 죽으니 쾌가 임금이 되었다.

그 뒤에 제나라의 태부 중에는

소진과 임금의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서

자객으로 하여금 소진을 찌르게 하였는데

죽지 않고 자객은 도망가 버렸다.

齊王使人求賊,不得。蘇秦且死,乃謂齊王曰:

제왕은 자객을 찾으라고 분부하였으나 잡히지 않았다

소진은 거의 죽게 되어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臣即死,車裂臣 以徇於市,曰

『蘇秦為燕作亂於齊』,

如此則臣之賊必得矣。」

“만일 신이 죽거든

신을 거열형에 처하시고

장터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키시되 이르기를,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모반하였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신을 찌른 도둑은 반드시 잡힐 것입니다.”

於是如其言,而殺蘇秦者果自出,

齊王因而誅之。

이에 과연 그의 말대로

소진을 죽인 자가 자수해 왔으므로

제왕은 그자를 죽였다.

燕聞之曰:

「甚矣,齊之為蘇生[三]報仇也!」

연나라에서는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심하구나. ‘제나라가 소진을 위해 원수를 갚아 줌이.’

注[一]集解徐廣曰:「易王十二年卒。」

注[二]集解風俗通義稱漢令「蠻夷戎狄有罪當殊」。殊者,死也,與誅同指。而

此云「不死,殊而走」者,蘇秦時雖不即死,然是死創,故云「殊」。

注[三]集解徐廣曰:「一作『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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