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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엄화계수일 잡저(罨畫溪蒐逸雜著), 연암집 제 10 권 별집 [은자주]이 글을 문집에 챙겨 넣은 아들 종채의 주석도 흥미롭겨니와 사마천의 , 유학 경전의 인용까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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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열하일기, 허생전, 양반전

*종전에 사용하던 포털 사이트가 여러 차례 소멸되어 희미한 글씨의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읽기 쉽게 재수록합니다. 박지원/ 原士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http://kydong77.tistory.com/7938 ,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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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호질虎叱/ 열하일기 4.관내정사

虎叱 https://kydong77.tistory.com/18892 은 안 보이고, 대신 <범의 꾸중>이라 번역해 사용합니다. 최상의 권위를 지닌 북곽이 최하위의.." data-og-host="kydong77.tistory.com" data-og-source-url="htt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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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虎叱)

(호랑이의 질책, 범의 꾸중)

-박지원(朴趾源, )

 

虎睿聖文武慈孝智仁雄勇壯猛

(호예성문무자효지인웅용장맹) : 범은 모든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무인다우며, 인자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며, 기운차고 날래며, 용맹스럽고 사나워

天下無敵

(천하무적) :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然狒胃食虎

(연비위식호) : 그러나 비위는 호랑이를 먹고,

竹牛食虎

(죽우식호) : 죽우도 호랑이를 먹고,

駮食虎

(박식호) : 박도 호랑이를 먹고,

五色獅子食虎於巨木之岫

(오색사자식호어거목지수) : 오색사자도 호랑이를 먹고,

玆白食虎

(자백식호) : 자백도 호랑이를 먹고,

䶂犬飛食虎豹

(표견비식호표) : 표견도 날아서 호랑이를 잡아 먹고

黃要取虎豹心而食之

(황요취호표심이식지) : 황요 등은 호랑이의 심장을 취하여 먹는다.

猾無骨爲虎豹所呑

(활무골위호표소탄) : 활이란 동물은 뼈가 없는 관계로 호랑이가 꿀떡 삼켜 버리면

內食虎豹之肝

(내식호표지간) : 뱃속에 들어가서 그 간을 먹으며,

酋耳遇虎

(추이우호) : 추이(酋耳)란 짐승은  호랑이를 만나면

則裂而啖之

(칙렬이담지) :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는 습성이 있다.

虎遇猛㺎

(호우맹용) : 그리고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則閉目而不敢視

(칙폐목이불감시) : 무서워서 눈을 감고 보지도 못한다.

人不畏猛㺎而畏虎

(인불외맹용이외호) : 그러나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무서워한다.

虎之威其嚴乎

(호지위기엄호) : 어쨌든 호랑이의 위세란 대단한 것인저.

虎食狗則醉

(호식구칙취) : 범이 개를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고

食人則神

(식인칙신) : 범이 사람을 한번 잡아먹으면 신들린 듯 하다

虎一食人

(호일식인) : 호랑이가 한번 사람을 먹으면

其倀爲屈閣

(기창위굴각) :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在虎之腋

(재호지액) :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導虎入廚

(도호입주) : 범을 남의 집 부엌에 인도하여서

舐其鼎耳

(지기정이) : 솥전을 핥으면

主人思饑(주인사기) : 그 집 주인이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命妻夜炊

(명처야취) :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하게 된다

虎再食人

(호재식인) : 두번째로 그 사람을 잡아 먹는다.

其倀爲彛兀(기창위이올) : 그러면 창귀는 이올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輔(재호지보) : 호랑이의 볼에 붙어 다니며

升高視虞(승고시우) : 높은 곳에 올라 우를 살핀다.

若谷穽弩(약곡정노) : 만약 산골짜기에 이르러서 함정이 있으면

先行釋機(선행석기) : 먼저 가서 위험이 없도록 차귀를 풀어 놓는다.

虎三食人(호삼식인) : 호랑이가 세번째로 사람을 잡아 먹으면

其倀爲鬻渾(기창위죽혼) : 그 창귀는 육혼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頤(재호지이) : 호랑이 턱에 붙어서

多贊其所識朋友之名(다찬기소식붕우지명) : 그가 평소에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댄다.

虎詔倀曰(호조창왈) : 어느 날 범이 창귀를 불러 놓고 하는 말이,

日之將夕(일지장석) : "오늘도 곧 날이 저무는데

于何取食(우하취식) :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냐." 하니

屈閣曰(굴각왈) : 굴각이 대답하기를,

我昔占之(아석점지) : "제가 전에 점쳐 보았더니

匪角匪羽(비각비우) : 뿔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黔首之物(검수지물) : 검은 머리를 가진 것이

雪中有跡(설중유적) : 눈 위에 발자국이

彳亍踈武(척촉소무) : 비틀비틀 성긴 걸음,

瞻尾在腦(첨미재뇌) :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莫掩其尻(막엄기고) :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하니

彛兀曰(이올왈) : 다음에 이올이 말하기를,

東門有食(동문유식) : "동문에 먹을 것이 하나 있는데,

其名曰醫(기명왈의) : 그 놈의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口含百草(구함백초) : 의원(醫員)은 약초를 다루고 먹으니

肌肉馨香(기육형향) : 그 고기도 별미(別味)인 줄로 아옵니다.

西門有食(서문유식) : 그리고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其名曰巫(기명왈무) : 그것은 무당입니다.

求媚百神(구미백신) : 그 계집은 천지 신명께 온갖 미태(媚態)를 부리고

日沐齊潔(일목제결) :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여

請爲擇肉於此二者(청위택육어차이자) : 깨끗하고 맛있는 계집이오니 이 둘 중에서 골라서 잡수시길 바라옵니다." 하니,

虎奮髯作色曰(호분염작색왈) : 범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醫者疑也(의자의야) : "의(醫)란 의(疑)인데

以其所疑而試諸人(이기소의이시제인) : 저 자신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하여,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죽이는 것이 항상 몇 만이 넘는다.

巫者誣也(무자무야) : '무(巫)란 무(誣)인데

誣神以惑民(무신이혹민) : 결국 무당이란 귀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니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목숨 잃는 것이 수만이나 된다

衆怒入骨(중노입골) :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그들의 뼈 속에까지 스며들어

化爲金蚕(화위금잠) : 금잠이란 벌레가 되어서

毒不可食(독불가식) : 독기가 있어 먹을 수 없다."

鬻渾曰(죽혼왈) : 이에 육혼이 또 말한다.

有肉在林(유육재림) : "어떤 고기가 저 숲속에 있는데

仁肝義膽(인간의담) : 인자한 염통과 의기로운 쓸개며

抱忠懷潔(포충회결) :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戴樂履禮(대악리례) : 악은 머리 위에 이고 예는 신처럼 신고 다닌답니다.

口誦百家之言(구송백가지언) : 뿐만 아니라 그는 입으로 제자(諸子)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心通萬物之理(심통만물지리) :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名曰碩德之儒(명왈석덕지유) :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라 하옵니다.

背盎軆胖(배앙체반) :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五味俱存(오미구존) : 오미(五味)를 갖추고 있답니다." 하였다.

虎軒眉垂涎(호헌미수연) :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내리 흘리며

仰天而笑曰(앙천이소왈) :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면서 말한다.

朕聞如何(짐문여하) : "짐(朕)이 이를 좀더 상세히 듣고자 하니 자세히 말하라." 했다.

倀交薦虎曰(창교천호왈) : 그러자 창귀들이 서로 범에게 추천하기를,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 "일 음· 일 양을 도(道)라 하옵는데,

儒貫之(유관지) : 저 유가 이를 꿰뚫으며

五行相生(오행상생) :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六氣相宣(륙기상선) :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는데,

儒導之(유도지) :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킨다고 합니다.

食之美者無大於此

(식지미자무대어차) : 그러니 먹어서 맛이 있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虎愀然變色易容而不悅曰

(호초연변색역용이불열왈) : 범이 이 말을 듣고 문득 추연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陰陽者

(음양자) : "아니야, 저 음·양이란 것은

一氣之消息也而兩之

(일기지소식야이량지) : 한 기운의 생성과 소멸에 불과하다거늘 그들이 두 가지를 겸했으니

其肉雜也

(기육잡야) :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五行定位

(오행정위) : 오행이 각기 제 자리에 있어서

未始相生

(미시상생) :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乃今强爲子母

(내금강위자모) : 이제 그들이 억지로 자·모로 갈라서

分配醎酸

(분배함산) : 짜고 신맛을 분배시켰으니

其味未純也

(기미미순야) :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것이며,

六氣自行

(륙기자행) : 육기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어서

不待宣導

(불대선도) : 남이 이끌어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乃今妄稱財相

(내금망칭재상) : 이제 그들이 망녕되어 재성·보상이라 일컬어서

私顯己功

(사현기공) : 사사로이 자기 공을 세우려 하니,

其爲食也

(기위식야) : 그것을 먹는다면

無其硬强滯逆而不順化乎

(무기경강체역이불순화호) :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서 순하게 소화가 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鄭之邑

(정지읍) : 정나라 어느 고을에

有不屑宦之士曰

(유불설환지사왈) :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行年四十

(행년사십) : 그는 나이 마흔에

手自校書者萬卷

(수자교서자만권) : 손수 교정(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敷衍九經之義

(부연구경지의) :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更著書一萬五千卷

(경저서일만오천권) :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天子嘉其義

(천자가기의) :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名

(제후모기명) :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邑之東

(읍지동) : 그 고장 동쪽에는

有美而早寡者

(유미이조과자) : 미모의 과부가 있었는데,

曰東里子

(왈동리자) : 동리자(東里子)라는고 불렀다

天子嘉其節(천자가기절) :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賢(제후모기현) :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環其邑數里而封之曰東里寡婦之閭

(환기읍수리이봉지왈동리과부지려) :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東里子善守寡

(동리자선수과) :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然有子五人

(연유자오인) :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各有其姓

(각유기성) :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이르기를,

水北鷄鳴

(수북계명) :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水南明星

(수남명성) :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室中有聲

(실중유성) :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何其甚似北郭先生也

(하기심사북곽선생야) :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하고

兄弟五人

(형제오인) : 다섯 놈이

迭窺戶隙

(질규호극) :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東里子請於北郭先生曰

(동리자청어북곽선생왈) :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이르기를

久慕先生之德

(구모선생지덕) :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今夜願聞先生讀書之聲

(금야원문선생독서지성) :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간청하매,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은

整襟危坐而爲詩曰

(정금위좌이위시왈) :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었다.

䲶鴦在屛

(䲶앙재병)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

경경류형) : 반딧불 흘러 잠 못 이룬다

維鬵維錡

(유심유기) :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誰之型

(운수지형)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한다.

興也(흥야) : 흥야랴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禮不入寡婦之門

(례불입과부지문) : "예의 상으로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 없다

北郭先生賢者也

(북곽선생현자야) : 북곽 선생은 현자이니까

吾聞鄭之城門壞而狐穴焉

(오문정지성문괴이호혈언) :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吾聞狐老千年

(오문호로천년) :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能幻而像人

(능환이상인) :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단다.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是其像北郭先生乎

(시기상북곽선생호) : 저건 바로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하고

相與謀曰

(상여모왈) : 함께 의논했다.

吾聞得狐之冠者

(오문득호지관자) :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家致千金之富

(가치천금지부) :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得狐之履者

(득호지리자) :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能匿影於白日

(능닉영어백일) :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得狐之尾者

(득호지미자) :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善媚而人悅之

(선미이인열지) :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더라.

何不殺是狐而分之

(하불살시호이분지) : 어찌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갖지 않으랴."

於是五子共圍而擊之

(어시오자공위이격지) :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北郭先生大驚遁逃

(북곽선생대경둔도) :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恐人之識己也

(공인지식기야) :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以股加頸

(이고가경) : 두 다리 사이에 목을 들이박고

鬼舞鬼笑

(귀무귀소) :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出門而跑

출문이포) :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乃陷野窖

(내함야교) :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穢滿其中

(예만기중) :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攀援出首而望

(반원출수이망) :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有虎當徑

(유호당경) :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었다.

虎顰蹙嘔哇

(호빈축구왜) :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掩鼻左首而噫曰

(엄비좌수이희왈) : 코를 싸쥐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이르기를,

儒句臭矣

(유구취의) : "유자여! 더럽다."

北郭先生頓首匍匐而前

(북곽선생돈수포복이전) :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三拜以跪

(삼배이궤) :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仰首而言曰

(앙수이언왈) : 머리를 쳐들고 우러러 아뢴다.

虎之德其至矣乎

(호지덕기지의호) :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大人效其變

(대인효기변) :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帝王學其步

(제왕학기보) :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人子法其孝

(인자법기효) :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將帥取其威

(장수취기위) :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名並神龍

(명병신룡) :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一風一雲

(일풍일운) :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虎叱曰

(호질왈) :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毋近前

(무근전) :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曩也吾聞之

(낭야오문지) : 접때 내가 들으니

儒者諛也

(유자유야) :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果然

(과연) : 과연 그렇구나.

汝平居集天下之惡名

(여평거집천하지악명) :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妄加諸我

(망가제아) : 망령되이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今也急而面諛

(금야급이면유) :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將誰信之耶

(장수신지야) : 장차 누가 이를 믿겠느냐?

夫天下之理一也

(부천하지리일야) :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虎誠惡也

(호성악야) :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人性亦惡也

(인성역악야) :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人性善則虎之性亦善也

(인성선칙호지성역선야) :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汝千語萬言

(여천어만언) :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不離五常

(불리오상) : 오륜(五倫)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戒之勸之

(계지권지) :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恒在四綱

(항재사강) : 항상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然都邑之間

(연도읍지간) : 그런데 도회지에

無鼻無趾

(무비무지) :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文面而行者

(문면이행자) :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皆不遜五品之人也

(개불손오품지인야) :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然而徽墨斧鉅

(연이휘묵부거) :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日不暇給

(일불가급) :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莫能止其惡焉

(막능지기악언) :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而虎之家自無是刑

(이호지가자무시형) :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由是觀之

(유시관지) : 이로 보면

虎之性不亦賢於人乎

(호지성불역현어인호) :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虎不食草木(호불식초목) :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不食虫魚(불식충어) :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不嗜麴蘖悖亂之物

(불기국얼패란지물) :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不忍字伏細瑣之物

(불인자복세쇄지물) :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入山獵麕鹿

(입산렵균록) :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在野畋馬牛

(재야전마우) :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未甞爲口腹之累飮食之訟

(미상위구복지루음식지송) :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虎之道

(호지도) : 범의 도리가

豈不光明正大矣乎

(기불광명정대의호) :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虎之食麕鹿

(호지식균록) :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而汝不疾虎

(이여불질호) :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虎之食馬牛

(호지식마우) :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而人謂之讐焉

(이인위지수언) :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豈非麕鹿之無恩於人

(기비균록지무은어인) : 어찌 노루나 사슴은 사람들에게 은공이 없고

而馬牛之有功於汝乎

(이마우지유공어여호) :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然而不有其乘服之勞戀效之誠

(연이불유기승복지로련효지성) :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갖지 않고

日充庖廚

(일충포주) :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角鬣不遺

(각렵불유) :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而乃復侵我之麕鹿

(이내부침아지균록) :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使我乏食於山

(사아핍식어산) :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缺餉於野

(결향어야) :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使天而平其政

(사천이평기정) :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汝在所食乎所捨乎

(여재소식호소사호) : 너희가 나의 먹을 것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夫非其有而取之

(부비기유이취지) :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謂之盜

(위지도) : 도(盜)라 하고,

殘生而害物者

(잔생이해물자) :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謂之賊

(위지적) : 적(賊)이라 하나니,

汝之所以日夜遑遑

(여지소이일야황황) :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揚臂努目

(양비노목) :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挐攫而不恥

(나확이불치) :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呼錢爲兄

(호전위형) :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求將殺妻

(구장살처) :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다면

則不可復論於倫常之道矣

(칙불가부론어륜상지도의) :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乃復攘食於蝗

(내부양식어황) :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奪衣於蚕

(탈의어천) :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禦蜂而剽甘

(어봉이표감) : 벌을 막고 꿀을 따며,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醢蟻之子

(해의지자) :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以羞其祖考

(이수기조고) : 조상에게 바치니

其殘忍薄行

(기잔인박행) : 잔인하고 박행함이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汝談理論性

(여담리론성) :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動輒稱天

(동첩칭천) :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自天所命而視之

(자천소명이시지) :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則虎與人

(칙호여인) : 범이나 사람이나

乃物之一也

(내물지일야) :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自天地生物之仁而論之

(자천지생물지인이론지) :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則虎與蝗蚕蜂蟻與人並畜

(즉호여황천봉의여인병축) :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而不可相悖也

(이불가상패야) :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自其善惡而辨之

(자기선악이변지) :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

(칙공행표겁어蠭의지실자) :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獨不爲天地之巨盜乎

(독불위천지지거도호) :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

(사연양절어황천지자자) :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獨不爲仁義之大賊乎

(독불위인의지대적호) :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虎未甞食豹者

(호미상식표자) :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誠爲不忍於其類也

(성위불인어기류야) :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然而計虎之食麕鹿

(연이계호지식균록) :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

(불약인지식균록지다야) :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計虎之食馬牛

(계호지식마우) : 범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

(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計虎之食人

(계호지식인) :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相食之多也

(불약인지상식지다야) : 사람이 서로를 잡아 먹는 것만큼 많지 않다.

去年關中大旱

(거년관중대한) :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往歲山東大水

(왕세산동대수) :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雖然

(수연) : 비록 그러하나

其相食之多

(기상식지다) :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又何如春秋之世也

(우하여춘추지세야) :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春秋之世

(춘추지세) : 춘추 시대에

樹德之兵十七

(수덕지병십칠) :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報仇之兵十三

(보구지병십삼) :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流血千里

(류혈천리) :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伏屍百萬

(복시백만) : 거꾸러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而虎之家水旱不識

(이호지가수한불식) :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故無怨乎天

(고무원호천) :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讐德兩忘

(수덕량망) :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故無忤於物

(고무오어물) :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知命而處順

(지명이처순) :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故不惑於巫醫之姦

(고불혹어무의지간) :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踐形而盡性

(천형이진성) :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故不疚乎世俗之利

(고불구호세속지리) :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此虎之所以睿聖也

(차호지소이예성야) :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窺其一班

(규기일반) :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足以示文於天下也

(족이시문어천하야) :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不藉尺寸之兵

(불자척촌지병) :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而獨任爪牙之利

(이독임조아지리) :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所以耀武於天下也

(소이요무어천하야) :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彛卣蜼尊

(이유유존) : 종이(宗彛)와 유준(蜼尊)은 

所以廣孝於天下也

(소이광효어천하야) :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一日一擧而烏鳶螻螘

(일일일거이오연루의) :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共分其餕

(공분기준) : 대궁을 함께 나누어 주니

仁不可勝用也

(인불가승용야) :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讒人不食

(참인불식) :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廢疾者不食

(폐질자불식) :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衰服者不食

(쇠복자불식) :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義不可勝用也

(의불가승용야) :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不仁哉

(불인재) :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汝之爲食也

(여지위식야) :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機穽之不足

(기정지불족) :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而爲罿也罞也罛也罾也罦也罭也

(이위동야모야고야증야부야역야) : 새 그물․ 노루 망(網)․ 큰 그물․ 고기 그물․ 수레 그물․ 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 냈으니,

始結網罟者

(시결망고자) :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裒然首禍於天下矣

(부연수화어천하의) :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有鈹者戣者殳者斨者叴者矟者鍜者鈼者者

(유피자규자수자장자구자삭자하자작자자) :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有礮發焉

(유포발언) :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聲隤華嶽

(성퇴화악) :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火洩陰陽

(화설음양) : 천지에 불꽃을 쏟아

暴於震霆

(폭어진정) :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是猶不足以逞其虐焉

(시유불족이령기학언) :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則乃吮柔毫

(칙내연유호) :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合膠爲鋒

(합교위봉) : 아교에 붙여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體如棗心

(체여조심) : 그 몸은 대추씨 같고

長不盈寸

(장불영촌) : 그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淬以烏賊之沫

(쉬이오적지말) :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縱橫擊刺

(종횡격자) :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曲者如矛

(곡자여모) :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銛者如刀

(섬자여도) :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銳者如釖

(예자여도) : 예리한 것은 낫같고,

歧者如戟

(기자여극) :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直者如矢

(직자여시) : 곧은 것은 화살 같고,

彀者如弓

(구자여궁) :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此兵一動

(차병일동) :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百鬼夜哭

(백귀야곡) :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其相食之酷

(기상식지혹) :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北郭先生離席俯伏

(북곽선생리석부복) :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逡巡再拜

(준순재배) :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頓首頓首曰

(돈수돈수왈) :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아리었다.

傳有之

(전유지) :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雖有惡人

(수유악인) :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齋戒沐浴

(재계목욕) : 목욕 재계(齋戒)하면

則可以事上帝

(즉가이사상제) :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의 천한 신하는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래 처지에 서옵니다.”

屛息潛聽

(병식잠청) :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久無所命

(구무소명) : 오랫동안 아무 명령이 없기에

誠惶誠恐

(성황성공) : 참으로 황공해서

拜手稽首

(배수계수) : 절하고 조아리다가

仰而視之

(앙이시지) :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東方明矣

(동방명의) :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虎則已去

(호칙이거) : 범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農夫有朝菑者

(농부유조치자) :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問先生何早敬於野

(문선생하조경어야) :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北郭先生曰

(북곽선생왈) :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吾聞之

(오문지) : “내가 들으니

謂天蓋高

(위천개고) : ‘하늘이 높다 해도

不敢不局

(불감불국) :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謂地蓋厚

(위지개후) : 땅이 두텁다 해도

不敢不蹐

(불감불척) :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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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허생전/ 열하일기 10.옥갑야화

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D%95%98%EC%9D%BC%EA%B8%B0 열하일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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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 -초기구전

양반전兩班傳 ◇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양반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 맞바뀜. 2)수사법: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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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양반신분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 맞바뀜.

2)수사법: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멀어진 양반론), 열거법(두 문권)

3)허상과 실상의 대비: 제일문권에서는 양반 행동양식의 허위의식을, 제이문권에서는 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를 고발함.

 

[은자주]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첨가하였다. 주석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번거로움을 피해왔는데, 민추의 해박한 주석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어구가 맞지 않더라도 바로 위의 주석임을 감안하고 보면 된다.

 

1]권위의 상징인 양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다

兩班者 士族之尊稱也.

양반자 사족지존칭야.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

정선지군 유일양반 현이호독서.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매군수신지 필친조기려이례지.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었다.

然家貧 歲食郡糶 積歲至千石.

연가빈 세식군조 적세지천석.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빌어먹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보니, 환곡(還穀)은 천 석이나 되었다.

觀察使巡行郡邑 閱糶糴 大怒曰,

관찰사순행군읍 열조적 대로왈,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환곡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何物兩班 乃乏軍興?”

하물양반 내핍군흥?”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命囚其兩班

명수기양반

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郡守意哀 其兩班貧 無以爲償.

군수의애 기양반빈 무이위상.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없으니

不忍囚之 亦無可奈何.

불인인지 역무가내하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양반일야읍 계불지소출.

그 양반은 밤낮으로 울음을 삼켰지만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其妻罵曰,

기처매왈

그의 아내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生平 子好讀書 無益縣官糴. 咄 兩班. 兩班不直一錢.”

생평 자호독서 무익현관적. 돌 양반. 양반불직일전.”

"한평생 당신은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은한 푼짜리도 못 되는 구려.” 001)

[주D-001]한 푼짜리도 ……구려 :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2]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사서 양반이 되다.

其里之富人 私相議曰,

기리지부인 사상의왈,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兩班雖貧 常尊榮 我雖富 常卑賤 不敢騎馬.

양반수빈 상존영 아수부 상비천 불감기마.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여 감히 말을 탈수도 없다.

見兩班 則跼蹜屛營 匍匐拜庭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한다.

曳鼻膝行 我常如此 其僇辱也.

예비슬행 아상여차 기륙욕야.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한다.

今兩班貧 不能償糴 方大窘.

금양반빈 불능상적 방대군.

지금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其勢誠不能保其兩班 我且買而有之.”

기세성불능보기양반 아차매이유지.”

참으로 그의 가세가 양반 신븐을 보전할 수 없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가지려 한다."

遂踵門 而請償其糴.

수종문 이청상기적.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兩班大喜許諾.

양반대희허락.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於是 富人立輸其糴於官.

어시 부인립수기적어관.

그래서 부자가 곧 그 환곡을 관가로 수송했다.

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糴狀.

군수대경이지 자왕로기양반 차문상적장.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양반전립의단의 복도알칭소인 불감앙시.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郡守大驚 下扶曰,

군수대경 하부왈,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足下 何自貶辱若是?”

족하 하자폄욕약시?”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

양반익공구 돈수부복왈,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鬻其兩班 以償糴 里之富人 乃兩班也.

황송 소인비감자욕 이자죽기양반 이상적 리지부인 내양반야.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小人安敢冒其舊號 而自尊乎?”

소인안감모기구호 이자존호?”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郡守歎曰,

군수탄왈,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

군자재 부인야 양반재 부인야.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富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

부이불인 의야 급인지난 인야 오비이모존 지야 차진양반.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음은 의(義)요, 남의 어려움을 돌봐 줌은 인(仁)이요,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함은 지(智)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雖然私自交易 而不立券 訟之端也.

수연사자교역 이불립권 송지단야.

비록 그러하더라도 사사로이 신분을 바꾸고 문권(文券)을 작성하지 않으면 소송의 단서가 된다.

我與汝約 郡人而證之 立券而信之 郡守當自署之.”

아여여약 군인이증지 립권이신지 군수당자서지.”

내가 그대와 약조하노니,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문권을 작성하여 증거하리라.

군수인 내가 마땅히 서명해야 하네."

 

於是 郡守歸俯 悉召郡中之士族 及農工商賈 悉至于庭.

어시 군수귀부 실소군중지사족 급농공상가 실지우정.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 兩班立於公兄之下.

부인좌향소지우 양반립어공형지하.

부자는 향소(鄕所)003)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 004)의 아래에 세웠다.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주D-004]공형(公兄) :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3]문권 작성

1)제1문권 -양반의 행동규범[허위의식]

乃爲立券曰,

내위립권왈

바로 증서를 작성하였다.

“乾隆十年九月日 右明文段

건륭십년구월일 우명문단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국(厂下屮2)賣兩班 爲償官穀 其直千斛.   *厂下屮2(국):持也

국              매양반 위상관곡 기직천곡.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維厥兩班 名謂多端

유궐양반 명위다단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謂君子

독서왈사 종정위대부 유덕위군자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武階列西 文秩敍東 是謂兩班.  

무계렬서 문질서동 시위양반.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양반'006)이라고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

임이소종 절기비사 희고상지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五更常起 點硫燃脂

오갱상기 점류연지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目視鼻端 會踵支尻

목시비단 회종지고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007)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東萊博議 訟如氷瓢.

동래박의 송여빙표.

"동래박의"008)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叩齒彈腦 細嗽嚥津  *嗽(수):기침.

고치탄뇌 세수연진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009)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袖刷毳冠 拂塵生派.

수쇄취관 불진생파.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盥無擦拳 潄口無過. *潄(수):양치질하다.

관무찰권 수구무과.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010)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長聲喚婢 緩步曳履

장성환비 완보예리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古文眞寶 唐詩品彙 鈔寫如荏 一行百字.

고문진보 당시품휘 초사여임 일행백자.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011)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手毋執錢 不問米價

수무집전 불문미가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暑毋跣襪 飯毋徒髻

서무선말 반무도계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食毋先羹 歠毋流聲*歠  *歠(철):마시다.

식무선갱 철무류성철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下箸毋舂 毋餌生葱

하저무용 무이생총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飮醪毋嘬鬚 吸煙毋輔窳.*嘬(최):물다. *窳(유):비뚤다.

음료무최수 흡연무보유.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忿毋搏妻 怒毋踢器

분무박처 로무척기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毋拳毆兒女 毋罵死奴僕. *毆(구):때리다.

무권구아녀 무매사노복.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죽일놈의 종놈이라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 012)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叱牛馬 毋辱鬻主.

질우마 무욕죽주.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病毋招巫 祭不齋僧

병무초무 제불재승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에 중을 불러다 재(齋)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爐不煮手 語不齒唾

로불자수 어불치타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毋屠牛 毋賭錢.

무도우 무도전.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한다.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

범차백행 유위양반 지차문기 변정우관.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양반의 규범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城主 旌善郡守 押. 座首別監 證署.”

성주 정선군수 압. 좌수별감 증서.”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於是 通引搨印 *搨(탑):박다, 베끼다.

어시 통인탑인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錯落聲中嚴鼓 斗縱參橫.

착락성중엄고 두종참횡.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013)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戶長讀旣畢.

호장독기필.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兩班只此而已耶?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 太乾沒. 願改爲可利.”

양반지차이이야? 오문양반여신선 심여시 태건몰. 원개위가리.”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가?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산을 몰수합입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 014)

[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제2문권-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

於是 乃更作券曰,

어시 내갱작권왈,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維天生民 其民維四

유천생민 기민유사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焉.

사민지중 최귀자사 칭이양반 리막대언.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불경불상 조섭문사 대결문과 소성진사.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文科紅牌 不過二尺 百物備具 維錢之橐. *橐(탁):전대

문과홍패 불과이척 백물비구 유전지탁.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進士三十 乃筮初任 猶爲名蔭

진사삼십 내서초임 유위명음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은자주] 연암도 쉰 살에 음관으로 처음 출사하였다.

善事雄南 耳白傘風 腹皤鈴諾

선사웅남 이백산풍 복파령락

지체 높은 음관을 잘 섬기면 015),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희어지고,016)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됩니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주D-016]일산 …… 처지며  :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室珥治妓 庭穀鳴鶴.

실이치기 정곡명학.

방안의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017), 뜰 앞에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窮士居鄕 猶能武斷.

궁사거향 유능무단.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무력을 마음대로 단행할 수 있다.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선경린우 차운리맹 숙감만아?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暈(훈):무리. *咨(자):묻다.

회관여비 운계태빈 무감원자.”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4]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포기하다

富人中其券 而吐舌曰,

부인중기권 이토설왈,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

이지이지 맹랑재. 장사아위도야?”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나를 도둑놈이 되게 하시렵니까?"

掉頭而去

도두이거

농부는 머리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

종신불복언양반지사.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D%95%98%EC%9D%BC%EA%B8%B0

 

열하일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의 북경(당시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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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의 북경(당시의 연경)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 박지원은 자신의 삼종형(8촌 형)이자 사절단의 수장인 금성위 박명원의 자제 군관 자격으로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고 러허강(열하강)까지 다녀온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기록물이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및 서화가들이 남긴 서적, 서화, 골동품 등 문화재급 유품 3만여 점과 함께 연민 이가원이 소장하여 오다가 1986년 12월 22일 기증하였고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 친필본이 소장되어 있다.[1][2]

구성

열하는(熱河) 중국어로 러허(중국어 정체자: 熱河, 병음: Rèhé)라고 하는 청나라의 지역 이름으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청더(承德, 승덕)이며, 최종 목적지는 열하행궁 또는 피서산장으로 불리는 건륭제의 여름 별궁이었는데 박지원(朴趾源)이 조선 정조 때에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1]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이 처음 간행하였는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친필본이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서 발견되었다.[2]

도강록[편집]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편집]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편집]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해관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편집]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편집]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

태학유관록[편집]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편집]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

환연도중록[편집]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

금료소초[편집]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

옥갑야화[편집]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고전소설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편집]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편집]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이다.

앙엽기[편집]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편집]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편집]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편집]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편집]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편집]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편집]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편집]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편집]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편집]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다.

산장잡기[편집]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편집]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그렇고 그렇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할수 없지 않고 그렇다.

 

https://kydong77.tistory.com/8093

 

연암 박지원 년보

[이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주수 작품] [주]특기사항을 표시하여 다시 읽어본다. 연암 박지원 년보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7%80%EC%9B%90_%EC%97%B0%EB%B3%B4 박지원 연보 - 위키백과, 우..

kydong77.tistory.com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B6%81%ED%95%99(%EC%82%AC%EC%83%81) 

 

북학(사상) - sillokwiki

청나라가 중화의 문물을 간직하고 있으니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원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의미로, 주로 18세기 후반에 유행한 사조. 개설 조선후기 지성사는 병자호란

dh.aks.ac.kr

명을 여전히 조선의 군부(君父)로 여기고 명의 문물을 주(周)·한(漢)·당(唐)·송(宋)의 적통을 잇는 중화로 굳게 믿은 조선의 양반 지식인들은 청이 중원의 새 패자(覇者)로 군림한 후에도 여전히 한족(漢族)의 중화 문물을 흠모하며 청을 오랑캐로 멸시했다. 이는 조선후기를 지배한 존주의리(尊周義理)나 대명의리(對明義理), 그리고 조선중화(朝鮮中華) 등의 이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청의 국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명이 망한 지도 100년이 지나면서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청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했다. 이런 주장은 대개 연행사의 일원으로 청의 북경을 방문해 조선을 훨씬 능가하는 선진 문물을 직접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일부 지식인이 귀국 후에 제기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에 호응하는 지식인들이 서서히 증가했다.

이들이 오랑캐의 나라로 여기던 청으로부터 배우자는 주장을 펼 수 있었던 명분은 청은 비록 이적의 국가이지만 그들이 보유한 문물은 이전의 명이 간직했던 중화의 문물이므로 조선이 그것을 수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또 청은 학문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조선 사회보다 훨씬 진보한 고도의 선진 문물을 갖추고 있으니, 조선의 국력을 신장하고 민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 문물을 배워서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아울러 제시했다. 특히 이전의 실학 움직임이 대개 토지 분배와 같은 전통적인 개혁에 중점을 둔 데 비해, 북학을 주장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술 향상을 통한 생산력의 증대와 상공업 장려를 통한 국부의 창출 등과 같이 새로운 프레임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들의 성향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대개 한양과 경기 지역에 거주하던 낙론(洛論)계 노론(老論) 출신이 많았고, 철학적으로 보면 대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고 주기론(主氣論)에 경도된 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존주의리론(尊周義理論)을 여전이 강조하고 서학(西學)을 배척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런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청의 문물을 새롭게 중화 문물로 인식하는가 하면 서양의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하자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성향을 보인 인물군을 후대의 역사가들이 대개 북학파(北學派)라는 이름으로 묶었는데, 학자에 따라 차이가 나며, 후대로 올수록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북학파라는 학파가 당시에 실존했다기보다는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분류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현재 거론되는 북학파 인물로는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서명응(徐命膺)·홍양호(洪良浩)·성해응(成海應)·김정희(金正喜)·정약용(丁若鏞) 등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기한 북학의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학자는 홍대용·박지원·박제가 등 세 명이다.

이들 세 학자는 모두 존주의리 의식이 너무 지나쳐 경제와 민생을 도외시한 기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라의 부강과 민생에 정치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대용은 의리(義理)를 고양하고 문장을 공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생각할 때 경제(經濟)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은 의리와 윤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당시의 명분주의 사조를 비판하고 국가에 실제로 필요한 이용후생(利用厚生)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제가도 현실정치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고상한 담론보다는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통상의 확대를 통해 국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임을 설파했다.

또한 그 방법으로 세 학자 모두 북학을 강조했다. 이들은 청의 문물을 이적시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청에 대해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다.

홍대용은 북경 방문을 통해 청나라 학자뿐만 아니라 청에 거주하는 서양인 학자들과 만나며 다양한 학문을 접했는데, 특히 서양의 과학기술과 천문학을 수용해 귀국 후에는 지전설(地轉說)을 거론하고 중화를 상대화함으로써 조선인의 세계관과 중화관이 바뀔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의산문답』은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다.

박지원『과농소초』를 지어 농업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열하일기』를 통해 자신의 북학 인식을 잘 드러냈다.

박제가는 국왕 정조에게 바친 『북학의』를 통해 농법 개발을 통한 농업 생산력의 증대, 해외 통상의 장려를 통한 국부의 증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의 도입 등을 강조함으로써 조선후기 북학 사조의 절정을 이루었다.

* 북학파 인물들은 원각사 탑이 현존하는 탑골공원 부근에 살았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현재 탑골공원은 종묘 정문 정비사업 이후 거처를 잃은 무의탁 어른들의 놀이공간으로 변모했다.

 

https://kydong77.tistory.com/18218

 

박지원, 홍덕보 묘지명(洪德保墓誌銘)

박지원, 홍덕보 묘지명(洪德保墓誌銘) 한문 원문은 아래책 참조. 박지원 연암집 권2 연상각선본, 묘지명, 경인문화사,1974, p.51. 박지원 연암집 1/3책, 권2 연상각선본 묘지명, 계명문화사, 1986, p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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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eeza.tistory.com/5814

 

박지원 - 홍덕보묘지명(洪德保墓誌銘)

뛰어난 능력에도 조선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에서 인정받던 내 친구 홍대용 홍덕보묘지명(洪德保墓誌銘) 박지원(朴趾源) 대용의 친구 용주에게 부고를 전하려 중국 가는 사람에게 전하다 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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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다음과 같다.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1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2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3를 미워해서지.

 

이 명銘은 짧지만 대단히 문제적이다. 연암의 문집 전체가 간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와서 였다. 당시 박영철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고 출판을 주관하였다. 이 본本을 보통 박영철본 『연암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영철본 『연암집』에는 이 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과정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명을 특별히 소개해 놓고 있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를 미워해서지.

 

한편,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열하일기』에도 이 명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魂去不冥招 相逢西子湖 넋이 떠난다고 초혼할 것 없네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口裏不含珠 怊悵詠麥儒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에 분개해서지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D%95%99%EC%9D%98

 

북학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북학의》(北學議)는 조선 정조 때 북학파인 박제가가 쓴 책이다. 정조 2년(1778년) 이덕무 등과 함께 사은사 채제공을 따라 청의 수도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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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는 서명응과 박지원(朴趾源), 그리고 저자인 박제가 자신이 쓴 서문과 함께 내(內)ㆍ외(外) 2편으로 나뉜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o300200&code=kc_age_30 

 

우리역사넷

북학파(北學派)는 조선 후기 청(淸)의 학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의 학자들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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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가 농업 생산력의 증진만큼이나 중요시한 것은 상업과 유통 및 외국과의 통상이었다. 그는 당시 많은 학자들에 의해 말단의 일이라고 천시되어 왔던 상업에 주목하여, 상업을 발전시키고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수레・선박・도로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유용한 물건을 유통시키고 거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쓸모 있는 물건이라도 대부분 한 곳에 묶여 있거나 홀로 떠돌다가 쉽게 고갈될 것이며, 상인들이 교역을 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한다면 이는 사람이 할 일을 잃게 될 것이었다. 박제가가 상행위를 통한 물자의 유통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업이 발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과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유통과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기반시설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교량이나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은 개인의 힘으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국가가 주도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인데, 자원의 소유 및 이동의 권한이 국가에 귀속되어 있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박제가는 상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통 수단을 정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 중국은 수레나 선박과 같은 유통 수단이 잘 운용되고 있었으므로, 이를 모범으로 삼아 조선에도 도입하고자 하였다. 수레와 선박의 운용을 위해서는 도로와 교량을 늘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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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년보

[이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주수 작품] [주]특기사항을 표시하여 다시 읽어본다. 연암 박지원 년보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7%80%EC%9B%90_%EC%97%B0%EB%B3%B4 박지원 연보 - 위키백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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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D%95%98%EC%9D%BC%EA%B8%B0

 

열하일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4년)에 삼종형(8촌 형)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사절로 북경(당시의 연경)에 갈 때 따라가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 연민 이가원이 소장하여 오다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및 서화가들이 남긴 서적 서화골동품등 문화재급 유품 3만여점을 1986년 12월 22일 기증한 자료 중에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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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C%83%9D%EC%A0%84

 

허생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허생전(許生傳)은 박지원이 지은 한문 소설, 고전 소설, 풍자 소설이다. 풍자·비판·현실개혁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 소설은, 집필 당시보다 약 1세기 앞선, 17세기 조선 효종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박지원은 허생과 실존 인물인 이완과의 대화를 통해 허례허식에 물들어 있고 보수적인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실용적인 사고를 촉구했다.[1]《허생전》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하) 교과서에 이우성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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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허생전

허생전 -박지원 (0)] https://kydong77.tistory.com/8089?category=487437 허생전 -박지원 [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한 백수였지만 44세에 잡은 단 한 번의 연행 경험은 조선후기 저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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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한 백수였지만 44세에 잡은 단 한 번의 연행 경험은 조선후기 저술중 제1반열을 차지하는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 를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 연행록은 낙점에서 이별잔치, 출발 등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연행록은 대뜸 '도강록'에서 시작된다. 인상 깊은 것을 적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탄탄한 기본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가 읽은 명문들은 다 그랬기 때문이다. 출사에 대한 보장은 없었지만 국가경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20년에 걸친 북학공부를 단 한 권의 책에 녹여냈다. 국가경영에 대한 그의 경륜을 압축한 것이 <허생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작품의 구성도 그의 지론인 이용, 후생, 정덕, 현실비판으로 맞아떨어진다.

작품 속의 무인도 개척은 흔히 <홍길동전>의 율도국애 비견된다.

http://blog.naver.com/osj1952/100025294045

 

허생전(許生傳)

ㅡ박지원(朴趾源)

 

[1]이용(利用)

1)선비 허생의 가난한 삶

許生居墨積洞

(허생거묵적동) :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直抵南山下

(직저남산하) :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井上有古杏樹

(정상유고행수) :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柴扉向樹而開

(시비향수이개) :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草屋數間

(초옥수간) : 두어 칸 초가는

不蔽風雨

(불폐풍우) :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然許生好讀書

(연허생호독서) :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妻爲人縫刺以糊口

(처위인봉자이호구)

: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一日妻甚饑

(일일처심기) :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泣曰

(읍왈) :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子平生不赴擧

(자평생불부거) :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讀書何爲

(독서하위) :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

許生笑曰

(허생소왈) :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吾讀書未熟

(오독서미숙) :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妻曰

(처왈) : 처가 말하기를

不有工乎

(불유공호) :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生曰

(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工未素學奈何

(공미소학내하)

: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妻曰

(처왈) : 처가 이르기를

不有商乎

(불유상호) :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生曰

(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商無本錢奈何

(상무본전내하) :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其妻恚且罵曰

(기처에차매왈) : 처는 왈칵 성을 내며 꾸짓지를

晝夜讀書

(주야독서) :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只學奈何

(지학내하) :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不工不商

(불공불상) :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何不盜賊

(하불도적) : 도둑질은 어찌 못하시나요?"

 

2)열받은 허생, 이용(利用)에 나서다

(1)허생, 변부자에게 만냥을 빌리다

許生掩卷起曰

(허생엄권기왈) :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며 이르기를

惜乎

(석호) : "아깝다.

吾讀書本期十年

(오독서본기십년) :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今七年矣

(금칠년의) : 인제 칠 년이로다."하고

出門而去

(출문이거) :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無相識者

(무상식자) :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直之雲從街

(직지운종가) :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問市中人曰

(문시중인왈) :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묻기를

漢陽中誰最富

(한양중수최부) :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有道卞氏者

(유도변씨자) :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遂訪其家

(수방기가) : 마침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許生長揖曰

(허생장읍왈) :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吾家貧

(오가빈) : "내가 집이 가난해서

欲有所小試

(욕유소소시) :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願從君借萬金

(원종군차만금) : 만 냥(兩)을 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卞氏曰諾

(변씨왈낙) : 변씨는 말하기를 "그러시오." 하고

立與萬金

(립여만금) :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客竟不謝而去

(객경불사이거) :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子弟賓客

(자제빈객) :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視許生丐者也

(시허생개자야) :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絲絛穗拔

(사조수발) :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革屨跟顚

(혁구근전) :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笠挫袍煤

(립좌포매) :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鼻流淸涕

(비류청체) :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客旣去

(객기거) : 허생이 나가자,

皆大驚曰

(개대경왈) : 모두들 크게 놀라서 묻기를

大人知客乎

(대인지객호) : "대인은 저이를 아시나요?"

曰不知也

(왈불지야) : 이르기를 "모르지"

今一朝

(금일조) :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人

(랑공척만금어생평소불지하인)

: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而不問其姓名何也

(이불문기성명하야)

: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卞氏曰

(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此非爾所知

(차비이소지) :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凡有求於人者

(범유구어인자) :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必廣張志意

(필광장지의) : 반드시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先耀信義

(선요신의) :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然顔色媿屈

(연안색괴굴) :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言辭重複

(언사중복) :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彼客衣屨雖弊

(피객의구수폐) :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辭簡而視傲

(사간이시오) :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容無怍色

(용무작색) :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不待物而自足者也

(불대물이자족자야)

: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彼其所試術不小

(피기소시술불소)

: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吾亦有所試於客

(오역유소시어객) :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不與則已

(불여칙이) : 안 주면 그만둘지 언정

旣與之萬金

(기여지만금) :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問姓名何爲

(문성명하위) :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2)허생, 안성에서 제수 과일을 독과점하다

於是許生旣得萬金

(어시허생기득만금) : 허생은 만 냥을 얻자,

不復還家

(불부환가) :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以爲安城畿湖之交

(이위안성기호지교) : 언뜻 생각하기를,

‘저 안성(安城)은 기(畿)ㆍ호(湖)의 접경이요,

三南之綰口

(삼남지관구) : 삼남(三南)의 어귀이다.’하고는,

遂止居焉

(수지거언) :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棗栗柹梨柑榴橘柚之屬

(조률시리감류귤유지속)

: 그리하여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을

皆以倍直居之

(개이배직거지) :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許生榷菓

(허생각과) :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而國中無以讌祀

(이국중무이연사) :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居頃之

(거경지) : 얼마 안 가서,

諸賈之獲倍直於許生者

(제가지획배직어허생자)

: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사람들이

反輸十倍

(반수십배) :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許生喟然嘆曰

(허생위연탄왈) :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며 이르기를.

以萬金傾之

(이만금경지) :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知國淺深矣

(지국천심의) :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3)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을 독과점하다

 

以刀鏄布帛綿入濟州

(이도단포백면입제주) :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悉收馬鬉鬣曰

(실수마종렵왈) :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이르기를

居數年

(거수년) : "몇 해 지나면

國人不裹頭矣

(국인불과두의) :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居頃之

(거경지) : 얼마 안 가서

網巾價至十倍

(망건가지십배) :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2]후생(厚生)

1)허생, 사공에게 길을 묻다

許生問老篙師曰

(허생문로고사왈) :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묻기를

海外豈有空島可以居者乎

(해외기유공도가이거자호)

: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篙師曰

(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有之

(유지) : "있습지요.

常漂風直西行三日夜

(상표풍직서행삼일야)

: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泊一空島

(박일공도) :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計在沙門長崎之間

(계재사문장기지간)

: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花木自開

(화목자개) :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菓蓏自熟

(과라자숙) :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麋鹿成群

(미록성군) :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游魚不驚

(유어불경) :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許生大喜曰

(허생대희왈) :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르기를

爾能導我

(이능도아) :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富貴共之

(부귀공지) :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라고 말하니,

篙師從之

(고사종지) :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遂御風東南

(수어풍동남) :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入其島

(입기도) : 그 섬에 들어갔다.

許生登高而望

(허생등고이망) :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悵然曰

(창연왈) : 실망하여 말하기를

地不滿千里

(지불만천리) :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惡能有爲

(악능유위) : 무엇을 해 보겠는가?

土肥泉甘

(토비천감) :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只可作富家翁

(지가작부가옹) :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篙師曰

(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島空無人

(도공무인) :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尙誰與居

(상수여거) :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德者人所歸也

(덕자인소귀야) :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尙恐不德

(상공불덕) : 덕이 없을까 두렵지,

何患無人

(하환무인) :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2)변산 도적떼를 빈 섬으로 데려가다

 

是時邊山群盜數千

(시시변산군도수천)

: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州郡發卒逐捕

(주군발졸축포) :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不能得

(불능득) :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然群盜亦不敢出剽掠

(연군도역불감출표략) :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方饑困

(방기곤) : 바야흐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許生入賊中說其魁帥曰

(허생입적중설기괴수왈)

: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어 이르기를

千人掠千金

(천인략천금) :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所分幾何

(소분기하) :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曰人一兩耳

(왈인일량이) : 이르기를 "일 인당 한 냥이지요."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有妻乎

(이유처호) : "모두 아내가 있소?"

群盜曰無

(군도왈무) : 군도들이 이르기를 "없소."

曰爾有田乎

(왈이유전호) : 이르기를 "논밭이 있소?"

群盜笑曰

(군도소왈) :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有田有妻

(유전유처) :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何苦爲盜

(하고위도) :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審若是也

(심약시야) : "정말 그렇다면,

何不娶妻樹屋

(하불취처수옥) :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買牛耕田

(매우경전) :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生無盜賊之名

(생무도적지명) :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而居有妻室之樂

(이거유처실지악) :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行無逐捕之患

(행무축포지환) :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而長享衣食之饒乎

(이장향의식지요호) :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群盜曰

(군도왈) : 군도가 이르기를

豈不願如此

(기불원여차) : "아니, 왜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소?

但無錢耳

(단무전이) :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許生笑曰

(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爾爲盜何患無錢

(이위도하환무전) :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吾能爲汝辦之

(오능위여판지) :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明日

(명일) : 내일

視海上風旗紅者

(시해상풍기홍자) : 바다에 나와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보이면

皆錢船也

(개전선야) :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恣汝取去

(자여취거) :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許生約群盜

(허생약군도) :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旣去

(기거) : 내려가자,

群盜皆笑其狂

(군도개소기광) :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及明日

(급명일) : 이튼날이 되어,

至海上

(지해상) :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許生載錢三十萬

(허생재전삼십만) :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皆大驚羅拜曰

(개대경라배왈) :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唯將軍令

(유장군령) :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惟力負去

(유력부거) : "힘을 생각하여 지고 가거라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於是群盜

(어시군도) : 너희들, 이에 군도들이

爭負錢

(쟁부전) : 다투어 돈을 질머졌으나

人不過百金

(인불과백금) : 사람마다 백 금을 넘지 못했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等力不足以擧百金

(이등력불족이거백금)

: 이제 너희들이 힘이 부족하여 백 금도 들 수 없으니

何能爲盜

(하능위도) :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今爾等雖欲爲平民

(금이등수욕위평민)

: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名在賊簿

(명재적부) :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無可往矣

(무가왕의) : 갈 곳이 없다.

 

吾在此俟汝各持百金而去

(오재차사여각지백금이거)

: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人一婦一牛來

(인일부일우래)

: 사람마다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群盜曰諾

(군도왈낙) : 군도들은 ‘좋다’고 하고

皆散去

(개산거) : 모두 흩어져 갔다.

許生自具二千人一歲之食以待之

(허생자구이천인일세지식이대지)

: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及群盜至

(급군도지) :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無後者

(무후자) : 뒤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遂俱載入其空島

(수구재입기공도) :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許生榷盜而國中無警矣

(허생각도이국중무경의) :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3)농산물을 장기도에 가서 무역하다-해외무역

 

於是伐樹爲屋

(어시벌수위옥) :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編竹爲籬

(편죽위리) :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地氣旣全

(지기기전) :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百種碩茂

(백종석무) : 백곡이 잘 자라서,

不菑不畬

(불치불여) :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一莖九穗

(일경구수) :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留三年之儲

(류삼년지저) :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餘悉舟載往糶長崎島

(여실주재왕조장기도) :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長崎者

(장기자) : 장기라는 곳은

日本屬州

(일본속주) :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니

戶三十一萬

(호삼십일만) : 삼십만여 호가 된다

方大饑

(방대기) :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遂賑之

(수진지) : 구휼하고

獲銀百萬

(획은백만) :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4)이상적인 섬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許生歎曰

(허생탄왈) : 허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今吾已小試矣

(금오이소시의) :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하고,

於是悉召男女二千人

(어시실소남녀이천인) :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令之曰

(령지왈) :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吾始與汝等入此島

(오시여여등입차도) :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先富之

(선부지) :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然後別造文字

(연후별조문자) : 따로 문자를 만들고

刱製衣冠

(창제의관) :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다.

地小德薄

(지소덕박) :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吾今去矣

(오금거의) :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兒生執匙敎以右手

(아생집시교이우수)

: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게 가르치라

一日之長

(일일지장) :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讓之先食

(양지선식) :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悉焚他船曰

(실분타선왈) :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이르기를

莫往則莫來

(막왕칙막래) :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하고

投銀五十萬於海中曰

(투은오십만어해중왈)

: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이르기를

海枯有得者

(해고유득자) :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百萬無所容於國中

(백만무소용어국중)

: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况小島乎

(황소도호) :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했다.

有知書者載與俱出曰

(유지서자재여구출왈)

: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며 이르기를

爲絶禍於此島

(위절화어차도) :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3]정덕(正德)

1)변씨에게서 빌린 돈을 십만냥으로 청산하다

 

於是遍行國中

(어시편행국중) : 이리하여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賑施與貧無告者

(진시여빈무고자) :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銀尙餘十萬曰

(은상여십만왈) : 그러고도 여전히 은이 십만 냥이 남아 이르기를

此可以報卞氏

(차가이보변씨) :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往見卞氏曰

(왕견변씨왈) :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이르기를

君記我乎

(군기아호) : "나를 알아보시겠소?"

卞氏驚曰

(변씨경왈) : 변씨는 놀라 말하기를

子之容色

(자지용색) : "그대의 안색이

不少瘳

(불소추) :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得無敗萬金乎

(득무패만금호) :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許生笑曰

(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以財粹面

(이재수면) :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君輩事耳

(군배사이) : 당신들 일일 뿐이오.

萬金何肥於道哉

(만금하비어도재) :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

(어시이은십만부변씨왈)

: 이리하여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고 이르기를

吾不耐一朝之饑

(오불내일조지기) :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未竟讀書

(미경독서) :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慙君萬金

(참군만금) :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卞氏大驚

(변씨대경) : 변씨는 크게 놀라

起拜辭謝

(기배사사) :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願受什一之利

(원수십일지리) :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許生大怒曰

(허생대노왈) :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이르기를,

君何以賈竪視我

(군하이가수시아) :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拂衣而去

(불의이거) :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2)변씨, 허생에게 돈을 되돌려 주었으나 받지 않다

 

卞氏潛踵之

(변씨잠종지) :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가며

望見客向南山下入小屋

(망견객향남산하입소옥)

: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有老嫗

(유로구) : 한 늙은 할미가 있어

井上澣

(정상한) :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卞氏問曰

(변씨문왈) : 변씨가 물어 이르기를

彼小屋誰家

(피소옥수가) :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嫗曰

(구왈) : 늙은 할미가 이르기를

許生員宅

(허생원댁) : "허 생원 댁입지요.

貧而好讀書

(빈이호독서) :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一朝出門不返者已五年

(일조출문불반자이오년)

: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獨有妻在

(독유처재) : 부인이 혼자 사는데,

祭其去日

(제기거일) :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卞氏始知客乃姓許

(변씨시지객내성허) :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歎息而歸

(탄식이귀) : 탄식하며 돌아갔다.

 

明日悉持其銀往遺之

(명일실지기은왕유지)

: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許生辭曰

(허생사왈) :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고 이르기를

我欲富也

(아욕부야) :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棄百萬而取十萬乎

(기백만이취십만호) :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吾從今得君而活矣

(오종금득군이활의) :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君數視我計口送糧

(군수시아계구송량) :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度身授布

(도신수포) :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一生如此足矣

(일생여차족의) :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孰肯以財勞神

(숙긍이재로신) : 그 누가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卞氏說許生百端

(변씨설허생백단) :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竟不可奈何

(경불가내하) :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卞氏自是度許生匱乏

(변씨자시도허생궤핍) :

변씨는 그 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輒身自往遺之

(첩신자왕유지) : 바로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許生欣然受之

(허생흔연수지) :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或有加則不悅曰

(혹유가칙불열왈) :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이르기를

君奈何遺我災也

(군내하유아재야) :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하였고,

以酒往則益大喜

(이주왕칙익대희) :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相與酌至醉

(상여작지취) :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旣數歲

(기수세) :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情好日篤

(정호일독) :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3)변씨, 허생에게 돈번 내력을 듣다

嘗從容言五歲中

(상종용언오세중) :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何以致百萬

(하이치백만)

: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대답하기를,

此易知耳

(차역지이) :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朝鮮舟不通外國

(조선주불통외국) :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車不行域中

(차불행역중) :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故百物生于其中

(고백물생우기중) :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消于其中

(소우기중) :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夫千金小財也

(부천금소재야) :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未足以盡物

(미족이진물) :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然析而十之百金

(연석이십지백금) :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十亦足以致十物

(십역족이치십물) :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物輕則易轉

(물경칙역전) :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故一貨雖絀

(고일화수출) :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九貨伸之

(구화신지) :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此常利之道

(차상리지도) :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小人之賈也

(소인지가야) :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夫萬金足以盡物

(부만금족이진물)

: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故在車專車

(고재거전거) : 수레면 수레 전부,

在船專船

(재선전선) : 배면 배를 전부,

在邑專邑

(재읍전읍) :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如綱之有罟

(여강지유고) : 마치 총총한 그물로

括物而數之

(괄물이수지) :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陸之產萬

(륙지산만) :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

(잠정기일) :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水之族萬

(수지족만) :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

(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醫之材萬

(의지재만) :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潛停其一

(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一貨潛藏

(일화잠장) :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百賈涸

(백가학) : 모든 장사치들에게는 고갈될 것이매,

此賊民之道也

(차적민지도야) :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後世有司者

(후세유사자) : 후세에 당국자들이

如有用我道

(여유용아도) :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必病其國

(필병기국) :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卞氏曰

(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初子何以知吾出萬金而來吾求也

(초자하이지오출만금이래오구야)

: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不必君與我也

(불필군여아야) :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能有萬金者

(능유만금자) :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莫不與也

(막불여야) :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

(오자료오재족이치백만)

: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然命則在天

(연명칙재천) :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吾何能知之

(오하능지지) :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故能用我者

(고능용아자) :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有福者也

(유복자야) : 복 있는 사람이라,

必富益富

(필부익부) :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天所命也

(천소명야) :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安得不與

(안득불여) : 어찌 주지 않았겠소?

旣得萬金

(기득만금) :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憑其福而行

(빙기복이행) :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故動輒有成

(고동첩유성) :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若吾私自與

(약오사자여) :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則成敗亦未可知也

(칙성패역미가지야) :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4]현실비판

 

1) 허생, 재야의 인재들을 아까워하다

 

卞氏曰

(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方今士大夫欲雪南漢之恥

(방금사대부욕설남한지치) :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此志士扼腕奮智之秋

也(차지사액완분지지추야)

: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以子之才

(이자지재) : 선생의 그 재주로

何自苦沉冥以沒世耶

(하자고침명이몰세야)

: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古來沉冥者何限

(고래침명자하한)

: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趙聖期拙修齋可使敵國

(조성기졸수재가사적국)

: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而老死布褐

(이로사포갈) :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柳馨遠磻溪居士

(류형원반계거사) :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足繼軍食

(족계군식) :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而逍遙海曲

(이소요해곡) :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今之謀國政者

(금지모국정자) : 지금의 집정자들은

可知已(가지이) :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吾善賈者也

(오선가자야) :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其銀足以市九王之頭

(기은족이시구왕지두)

: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然投之海中而來者

(연투지해중이래자) :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無所可用故耳

(무소가용고이) :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卞氏喟然太息而去

(변씨위연태식이거) :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2)변씨, 이완대장에게 허생 만나기를 주선하다

卞氏本與李政丞浣善

(변씨본여리정승완선)

: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李公時爲御營大將

(리공시위어영대장) :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嘗與言委巷閭閻之中

(상여언위항려염지중) :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

(역유기재가여공대사자호) :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卞氏爲言許生

(변씨위언허생) :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李公大驚曰

(리공대경왈) :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奇哉

(기재) : "기이하다.

眞有是否

(진유시부) : 그게 정말인가?

其名云何

(기명운하) :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하고 묻는 것이었다.

卞氏曰

(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小人與居三年

(소인여거삼년) :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竟不識其名

(경불식기명) :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李公曰

(이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此異人

(차이인) : "그인 이인(異人)이야.

與君俱往

(여군구왕) : 자네와 같이 가 보세."

夜公屛騶徒

(야공병추도) :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獨與卞氏俱步至許生

(독여변씨구보지허생) :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卞氏止公立門外

(변씨지공립문외) :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獨先入(

독선입) : 혼자 먼저 들어가서,

見許生具道李公所以來者

(견허생구도리공소이래자)

: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許生若不聞者曰

(허생약불문자왈) :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이르기를

輒解君所佩壺

(첩해군소패호) :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했다.

相與歡飮

(상여환음) :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3)허생은 이완 만나 시사삼책(時事三策)을 말하다

 

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

(변씨민공구로립수언지)

: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許生不應

(허생불응) :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旣夜深

(기야심) : 야심해지자

許生曰可召客

(허생왈가소객) : 허생이 이르기를 “손님을 불러도 좋습니다” 하니

李公入

(리공입) :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왔다.

許生安坐不起

(허생안좌불기) :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李公無所措躬

(리공무소조궁) :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

(내서술국가소이구현지의) :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許生揮手曰

(허생휘수왈) : 허생은 손을 휘저으며 이르기를,

夜短語長

(야단어장) :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聽之太遲

(청지태지) : 듣기에 지루하다.

汝今何官

(여금하관) :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曰大將

(왈대장) : 이르기를 "대장이오."

 

(1)재야 인사로 새 피를 수혈하라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然則汝乃國之信臣

(연칙여내국지신신) :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我當薦臥龍先生

(아당천와룡선생) :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

(여능청우조삼고초려호) :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

(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고 이르기를

難矣

(난의) : "어렵습니다.

 

(2)명나라 유민에게 종실의 딸을 시집보내라

 

願得其次(

원득기차) :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했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我未學第二義

(아미학제이의)

: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하고 허생은 외면했으나

固問之

(고문지) : 이 대장이 굳이 물으니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明將士以朝鮮有舊恩

(명장사이조선유구은)

: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其子孫多脫身東來

(기자손다탈신동래) :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流離惸鰥

(류리경환) :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汝能請于朝

(여능청우조) : 너는 조정에 청하여

出宗室女遍嫁之

(출종실녀편가지)

: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奪勳戚權貴家

(탈훈척권귀가) :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以處之乎

(이처지호) :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

(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르기를

難矣

(난의) : "어렵습니다."고 했다.

 

(3)국중 자제를 선발하여 변발에 호복 입혀 청나라 호걸들과 친교를 맺고 서민들에겐 해외무역을 권장하라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此亦難彼亦難

(차역난피역난) :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何事可能

(하사가능) :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有最易者

(유최이자) :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汝能之乎

(여능지호) :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李公曰

(리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願聞之

(원문지) :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許生曰

(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夫欲聲大義於天下

(부욕성대의어천하) :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이불선교결천하지호걸자)

: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未之有也

(미지유야) : 그러한 일이 된 일이 없고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

(욕벌인지국이불선용첩)

: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未有能成者也

(미유능성자야) : 성공한 일이 없는 것이다.

今滿洲遽而主天下

(금만주거이주천하) :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自以不親於中國

(자이불친어중국) :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而朝鮮率先他國而服

(이조선솔선타국이복) :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彼所信也

(피소신야) :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如唐元故事

(성능청견자제입학유환여당원고사)

: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商賈出入不禁

(상가출입불금) :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彼必喜其見親而許之

(피필희기견친이허지) :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妙選國中之子弟

(묘선국중지자제) :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薙髮胡服

(치발호복) :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其君子往赴賓擧

(기군자왕부빈거) :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其小人遠商江南

(기소인원상강남)

: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覘其虛實

(첨기허실) :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結其豪傑

(결기호걸) :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天下可圖而國恥可雪

(천하가도이국치가설) :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若求朱氏而不得率天下諸侯

(약구주씨이불득솔천하제후)

: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薦人於天

(천인어천) :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進可爲大國師

(진가위대국사) :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退不失伯舅之國矣

(퇴불실백구지국의)

: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李公憮然曰

(리공무연왈) : 이공이 무안하여 이르기를

士大夫皆謹守禮法誰肯薙髮胡服乎

(사대부개근수례법수긍치발호복호)

: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4)이완 대장이 시사삼책 불가함을 말하자 허생이 칼로 찌르려하다

 

許生大叱曰

(허생대질왈) : 허생은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所謂士大夫

(소위사대부) :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是何等也

(시하등야) : 무엇이란 말이냐?

產於彛貊之地

(산어이맥지지) :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自稱曰士大夫

(자칭왈사대부) :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豈非騃乎

(기비애호) :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衣袴純素

(의고순소) :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是有喪之服

(시유상지복) : 그것이야말로 당을 당한 사람의 옷이요

會撮如錐

(회촬여추) :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是南蠻之椎結也

(시남만지추결야) :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何謂禮法

(하위례법) :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樊於期

(번오기) : 번오기(樊於期)는

欲報私怨而不惜其頭

(욕보사원이불석기두)

: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武靈王

(무령왕) : 무령왕(武靈王)은

欲强其國而不恥胡服

(욕강기국이불치호복)

: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乃今欲爲大明復讎

(내금욕위대명부수) :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而猶惜其一髮

(이유석기일발) :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내금장치마격도자쟁궁비석)

: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而不變其廣袖

(이불변기광수) :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自以爲禮法乎

(자이위례법호) :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吾始三言

(오시삼언) :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汝無一可得而能者

(여무일가득이능자) :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自謂信臣

(자위신신) : 그래도 스스로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信臣固如是乎

(신신고여시호) :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是可斬也

(시가참야) :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하고

左右顧索釖欲刺之

(좌우고색도욕자지) :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公大驚而起

(공대경이기) : 이 대장은 놀라서 일어나

躍出後牖疾走歸

(약출후유질주귀) :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明日復往

(명일부왕) :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已空室而去矣

(이공실이거의) :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89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9X-vMf6UnNk

 

https://www.youtube.com/watch?v=ew0G09K1Ix4

 

[은자주] 돌아가신 맏누님에 대한 조사(弔辭)도 형식을 벗어나 망인에 대한 애틋한 정이 우러난다. 오죽했으면 문장의 틀을 부정하는 이 글을 처남 이재성의 아들이 상자 속에 넣어 두고 남에게는 보이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까지 적었을까? 당시로서는 정조가 말하던 고문의 틀에서 벗어난 대단한 파격(破格)임을 감지할 수 있다. <가락국기> 명에서 보듯이 조상과 출생, 전생애를 4언으로 노래하는 것이 보통인데, 연암은 달랑 7언절구 한편 써 놓고 명이라 이름하였다. 그는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사실에 의거하여 진정성을 담는 데 노력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장은 뜻을 표현하면 그만이었다. 진실에 바탕한 達意위주의 문장이어야 한다.

부부를 불러 놓고 내용도 없는 출연자들의 수다로 채우는 TV프로그램이 나오면 화딱지가 난다. 방송이란 게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방송의 공익성은 어디다 내팽개쳤는가?

맏누님 증(贈) 정부인(貞夫人) 박씨 묘지명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암집제2권

연암집,게명문화사,1986,pp.198-199.[한문원본]

[주C-001]맏누님 …… 묘지명 : 《연상각집》의 ‘유인(孺人)’이나 《종북소선(鍾北小選)》의 ‘망자 유인 박씨 묘지명〔亡姊孺人朴氏墓誌銘〕’, 《병세집》의 ‘맏누님 유인 박씨 묘지명〔伯姊孺人朴氏墓誌銘〕’ 등과 동일한 작품이지만, 구체적인 표현에서 크게 차이 난다. 초기작인 《종북소선》이나 《병세집》의 글을 개작한 것이라 판단된다. 연암은 이 묘지명의 글씨를 중국인에게 받아 오도록 사행(使行) 편에 부탁했던 듯하다. 그리하여 중국인 호부 주사(戶部主事) 서대용(徐大榕)이 그의 외종제(外從弟) 양정계(楊廷桂)의 글씨를 받아 연암에게 부쳐 왔다고 한다. 《熱河日記 避暑錄》

유인(孺人)의 휘(諱)는 아무요 반남 박씨이다. 그 아우 지원(趾源) 중미(仲美 연암의 자)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유인은 16세에 덕수(德水) 이택모 백규(李宅模伯揆)에게 출가하여 1녀 2남을 두었으며 신묘년(1771, 영조 47) 9월 초하룻날에 돌아갔다. 향년은 43세이다. 남편의 선산이 아곡(鵶谷)에 있었으므로 장차 그곳 경좌(庚坐)의 묘역에 장사하게 되었다.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고 난 뒤 가난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되자, 그 어린것들과 계집 하나와 크고 작은 솥과 상자 등속을 끌고 배를 타고 협곡으로 들어갈 양으로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중미는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안에서 송별하고, 통곡한 뒤 돌아왔다.

[주D-001]유인(孺人) : 벼슬하지 못한 선비의 아내를 사후에 일컫는 존칭이다. 덕수 이씨(德水李氏) 족보에 의하면, 박씨의 남편인 이현모(李顯模)는 나중에 종 2 품 벼슬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선친 이유(李游)에게도 참판이 증직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인 박씨에게도 추후에 정부인(貞夫人)의 봉작(封爵)이 내렸던 듯하다.
[주D-002]이택모 백규(李宅模伯揆) :
택모(宅模)는 이현모(李顯模 : 1729 ~ 1812)의 처음 이름이다. 백규(伯揆)는 그의 처음 자이고, 나중에 이름을 고치면서 자도 회이(誨而)로 고쳤다. 이현모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후손이다.
[주D-003]아곡(鵶谷) :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楊平郡)에 통합된 지평현(砥平縣)에 있었다.
[주D-004]두포(斗浦) :
지금의 팔당댐 부근에 있던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수상 교통의 요지로 두미(斗尾 : 또는 斗迷), 두릉(斗陵) 등으로도 불렸다. 그곳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곧 양평군을 지나게 된다. 《병세집》에는 ‘豆浦’로 되어 있으나, 《종북소선》에는 대본과 마찬가지로 ‘斗浦’로 되어 있다.


아, 슬프다!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응석스럽게 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은근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을 내어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댔다. 누님은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랬었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구나!

[주D-005]말처럼 뒹굴면서 : 원문은 ‘馬전[馬+展]’인데 말이 토욕(土浴)하는 것, 즉 땅에 뒹굴며 몸을 비벼 대는 것을 말한다.
[주D-006]옥압(玉鴨)과 금봉(金蜂) :
옥압은 오리 모양으로 새긴 옥비녀를 가리킨다. 비슷한 것으로 옥봉(玉鳳), 옥연(玉燕) 등이 있다. 또 금으로 나비나 잠자리 모양 등을 만들어 비녀 위에 장식하는 것을 금충(金蟲)이라 한다. 금봉(金蜂)은 금으로 벌 모양을 만든 그와 같은 수식(首飾)을 가리킨다.


강가에 말을 멈추어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 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는데,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니, 유독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 뿐더러 또한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노상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으니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촉박했던고!

去者丁寧留後期   떠나는 자 정녕히 다시 온다 다짐해도
猶令送者淚沾衣   보내는 자 눈물로 여전히 옷을 적실 텐데
扁舟從此何時返   조각배 이제 가면
어느제 돌아오나

送者徒然岸上歸   보내는 자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주D-007]조각배 이제 가면 : 원문은 ‘扁舟從此’인데, 《종북소선》과 《병세집》에는 ‘此時此去’로 되어 있고, 《과정록(過庭錄)》 권1에는 ‘扁舟一去’로 되어 있다.
[주D-008]떠나는 …… 돌아가네 :
명(銘)을 대신하여 7언 절구를 실었다. 《과정록(過庭錄)》 권1에서 이덕무(李德懋)는 ‘배에서 누님의 상여 행차를 송별하며〔舟送姊氏喪行〕’란 제목으로 이 시를 소개한 뒤 이를 읽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인정(人情)을 따른 것이 지극한 예(禮)가 되었고, 눈앞의 광경을 묘사한 것이 참문장이 되었다. 문장에 어찌 일정한 법이 있었던가? 이 글을 옛사람의 문장을 기준 삼아 읽는다면 당연히 이의[異辭]가 없겠지만, 지금 사람의 문장을 기준 삼아 읽기 때문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자 속에 감추어 두기 바란다.

- 중존(仲存 : 이재성의 자) -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7981?category=563867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위의 아래 주에 대한 확인]

[주D-008]떠나는 …… 돌아가네 : 명(銘)을 대신하여 7언 절구를 실었다. 《과정록(過庭錄)》 권1에서 이덕무(李德懋)는 ‘배에서 누님의 상여 행차를 송별하며〔舟送姊氏喪行〕’란 제목으로 이 시를 소개한 뒤 이를 읽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박종채, 과정록 권1

번역서, 권1, 추가부여번호 47.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역,돌베게,1998,pp.61-62.

이덕무는 연암의 애도시 두 편을 소개하였다. 형과 누이의 죽음을 애도한 시다. 작품 번역만 소개한다.

[형 애도시] 연암골에서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굴 닮았나?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봤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그 누굴 보나?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네.

 

[형수 애도시]

떠나는 자 정녕 기약 남기고 가도

보내는 자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늘

저 외배 한번 가면 언제 돌아올까?

보내는 자 강가에서 홀로 돌아오네.

라는 시를 접했을 때다. 나는 이 시를 읽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림을 금할 수 없었다.

*박지원: 1737(영조 13) - 1805(순조 5)  

 이덕무 : 1741년(영조 17) - 1793년(정조 17)  

 

참고로 그의  효심에 관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권1,번역서 no.18

정해년(1767) 연암 31세

당시 아버지는 화로에 약을 달이고 계셨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지만 아버지는 돌아앉아 숫돌에 칼을 갈았다. 큰아버지께서, "칼을 갈아 무엇하려느냐?" 하고 꾸짖자

아버지는, "생강을 썰려고요." 하고 대답하셨다.

아버지는약을 짤 때에 칼로 왼쪽 중지를 베어 피를 뚝뚝 떨어뜨려 약에 타서 올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금 있다 소생하셨다.

*위 용례는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옛날에는 부모나 가족간에 일체감 속에서 행복했었다는 얘기다. 자기중심주의의 현대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실상 선대와의 유대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복원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아래는 한문본 원문 사진]

 

 

 

*이송,담헌홍덕보묘표, 국역 담헌서4, 민족문화추진회, pp.372-378.

이 묘표는 정인보 선생의 이송의 고문에 대한 찬양을 하느라 그의 글을 인용한 글을 덧붙여 길어졌다. 그는 이송의 고문 예찬하고, 칭찬일색인 연암에 대해서도 "탕일하고 기이한 데가" 보인다고 고문복고운동을 펼친 정조처럼 말했다. 운영자는 한문을 잘 모르지만 근세 한문학의 일인자라면 무애 양주동 선생조차 위당 선생을 제일로 치니 뭐라고 토를 달순 없는 노릇이다. 용서가 허락된다면, 이미 그 시대에 사실주의의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북학파들의 연행문이 나오면서 고문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점이다. 위당 선생이 이송의 고문을 예찬한 것은 어쩌면 운을 맞춰가며 간결과 생략을 요체로 하는 고문시대를 자신으로 마감해야 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칭 - 무백(茂伯), 고청(孤靑), 노초(老樵), 서림(西林)

아래 논문 참조

백진우 -老樵 李淞의 『老樵集』과 「湛軒洪德保墓表」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44768

이송이 남긴 자필 문집 『老樵集』(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내용을 개괄하고, 이 저술로부터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송의 생애를 재구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가 홍대용을 위해 지어준 墓表 「湛軒洪德保墓表」가 기존에 정인보와 같은 걸출한 평론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실에서 착안하여 조선후기 한문학사에서 『노초집』이 갖는 의미, 그리고 그의 비지문의 산문사적 의의를 점검해보고자 하였다.

이송,담헌홍덕보묘표/ 발췌

이송,담헌홍덕보묘표, 국역 담헌서4, 민족문화추진회, pp.372-378.

이송의 묘표는 3쪽 정도이고, 나머지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논평과 명문 발췌이다.

[묘표 중에서]

아! 슬프다. 덕보가 일찌기 나와 담론한 것과 그가 간직했던 마음, 그리고 그 소행 등을 다 진술할 수는 없으나 그 학문이 오로지 平實을 숭상하고 과월하고 교격한 것이 없으며, 세속 선비들이 이론만 숭상하고 實行實用을 전연 방치함에 대해 일찍부터 민탄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그리고 고금 인물들의 正邪 是非를 논함에 그 抑揚取捨한 것은 전배들의 定案밖에 뛰어난 것들이 많았다. 그가 지니 大心이야말로 공평하게 보고 이것 저것 다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으니, 大道에 돌아가 뾰족하고 작고 좁고 사사로운 것을 버리는 것은 진실로 지금 세상에 있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이며, 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이 이런 道가 보급되었으면 한다.

[정인보 선생의 西林 이송의 고문 인용과 논평]

이하는 담헌집을 해설하고 이 글을 부록란에 덧붙인 위당 정인보 선생의 논평이다.

인보가 난곡 李丈 댁에 가서 이월암참봉집을 보니, 구나말에 서림 이송이 월암을 곡한 제문이 붙어 있다. 그 제문의 문사가 심히 고상하였고 그 아래에는 대연(이면백의 호)의 기록한다는 말이 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참봉군이 본래는 西林을 알지 못했는데 羅烈이 정릉의 令이 되어 참봉군을 초청함에 참봉군이 그 直所에 이르렀는데, 이때 西林도 마침 와서 같이 잤던 것이다.

그런데, 그후 다시 소식이 서로 끊겼고 참봉군은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람들 또한 서림이 참봉군을 곡한 제문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승지인 강인(표암의 아들)이 일찌기 서림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참봉군에 대한 말이 나오니, 서림은 이 제문의 초를 내어 보였다. 강인이 빌어서 자기집에 가져가려고 청하자, 서림이 좋아하지 아니하므로 그는 마침내 암송하여 돌아가서 기록하여 두었노라."

하였다.

(... 중략 ... )

서림의 글이 과연 이렇게도 귀한 것인가! 1개월 후에 영선이 이 묘표의 글을 가지고 왔기에 인보는 읽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아! 이 글이야말로 바로 소위 고문의 전아한 것을 훌륭히다한 글이다."고 하였다.

연암이 지은 묘지명과 비교하면 연암은 蕩逸(탕일)하며 奇異한 데가 보이지마는 醇實(순실)하고 깊고 아름다우며 그 꽃다운 향내가 멀리 풍긴다. 내가 감히 누가 낫고 누가 못하다는 것을 속단하여 평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글을 볼 때 담헌을 아는 면 같은 것이 서림이 더 깊은 것 같다. 그리고 또 서림의 글은 곡절이 있을 뿐더러 그 홀로 아는 데 이르러서는 염암과 어찌 그 우열을 비교할 뿐이겠는가!

(... 중략 ... )

지금 인보가 종합해 본 西林의 詩文은 비록 이것밖에 안 되지만 세상에 글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응당 農巖 이후 4-5명의 문장가에 서림이 그 사이에 들어감을 알 것이다.

[참고]

농암 이현보 신도비 [聾巖李賢輔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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