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仁義)란 무엇인가? 이익의 상대적 개념으로 철학적으로는 존재(存在,sein)에 대한 당위(當爲,sollen)이다
경제의 기치로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지만 부의 축적이 경주 최부자처럼 인의에 바탕할 때 그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수요와 공급의 수레바퀴를 굴려야 하는 경제적 동물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허생처럼 독과점 따위로 부를 축적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고 현행법으로도 경제사범에 해당한다. 무릇 지도자는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자기 이익을 챙길 일이다.
당대 전기소설은 비록 그 표현이 통속적인 구어체가 아닌 문언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민대중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단점도 안고 있지만, 등장인물과 내용 등은 일반 평민의 이야기를 위주로 하고, 현실사회를 반영한 것들로서, 이전의 중국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교적 근대적 의미의 소설에 가까운 형태의 문학작품으로 등장한다.
당 전기는 ≪태평광기(太平廣記)≫에만도 무려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실려있으며, ≪고금설해(古今說海)≫≪당조소설대관(唐朝小說大觀)≫≪당인설회(唐人說회)≫ 등에도 다량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앵앵전(鶯鶯傳)><이와전(李娃傳)><곽소옥전(곽小玉傳)>과 더불어 당 전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인 <남가태수전>은 신괴적·풍자적·종교적 색채를 띠면서 "꿈"을 소재로 한 이공좌(李公佐)의 환몽소설이다.
<남가태수전>은 ≪태평광기≫ 권475에 수록되어 있고, 제목은 <순우분(淳于분)>이라 되어 있다. 그리고 당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에서는 <유전의혈이칭이공좌남가태수(有傳蟻穴而稱李公佐南柯太守)>라 하였고, ≪당어림(唐語林)≫에도 같은 기록이 있으며, ≪당인설회≫에도 <남가기(南柯記)>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남가태수전>의 작자는 이공좌(李公佐)이다. 이공자의 생애는 열전도 없고 문집도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작품과 역사서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들을 참고하면, 그의 자는 전몽(전蒙)이고 농서(농西)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여 원화(元和) 연간에 강회(江淮)의 종사(從事)가 되었다가 뒤에 그만두고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회창(會昌) 초에 또 양부(楊府)의 서기가 되었으나 대중(大中) 2년에 연좌되어 파직당하였다. 이로써 그는 대략 대종(代宗) 때에 출생하여 선종(宣宗) 초까지는 생존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나머지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이공좌의 작품으로는 현재 4편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남가태수전>이 가장 유명하다.
당 전기 중에서 "꿈"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남가태수전> 외에, <침중기(枕中記)><앵도청의(櫻桃靑衣)><삼몽기(三夢記)><이몽록<異夢錄)><진몽기(秦夢記)> 등이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환몽소설이라 할 수 있다.
☞ <남가태수전>의 구성·인물·배경
구성은 플롯(plot)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되 개연성이 있도록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단계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나눈다. 같은 환몽류 소설 속에서도 <삼몽기><이몽록><진몽기> 등은 이러한 구성의 체재를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남가태수전>은 <침중기><앵도청의>와 함께 구성의 근대적 체재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면에서는 이들 중 가장 뛰어나다.
먼저 <남가태수전>의 사건 전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순우분이 무예를 인정받아 회남군부장(淮南軍副將)에 임명되었으나, 술을 마시고 멋대로 놀다가 파면된다.
② 집에 돌아와 하는 일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낸다.
③ 어느날 술에 취하여 두 친구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뒤 꿈을 꾼다.
④ 두 사람의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를 따라 대괴안국(大槐安國)에 들어간다.
⑤ 임금의 명에 의하여 요방공주(瑤芳公主)와 결혼한다.
⑥ 공주의 권유로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된다.
⑦ 20여년 동안 남가군을 잘 다스려 백성들의 인심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⑧ 단라국(檀蘿國)의 침입으로 왕명을 받고 주변(周弁)을 파견하여 대적하게 했으나, 주변이 전쟁에서 그를 옥에 가두고 왕에게 함께 벌을 받을 것을 청한다.
⑨ 왕은 모든 것을 용서했으나 갑자기 주변과 공주가 병으로 죽는다.
⑩ 이들의 죽음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뒤 그의 세력이 너무 강대해지자 왕은 그를 꺼리게 된다.
⑪ 왕은 그의 생활을 구속한 후, 3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⑫ 깨어나서 보니 주위는 처음과 같았고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곳이 개미굴임을 확인한다.
⑬ 이에 남가(南柯)의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주색을 끊고 도문(道門)에 들어가 3년 후에 죽는다.
위에 열거한 사건전개를 바탕으로 이를 근대적 소설의 구성체재에 적용하면, ①~③을 발단, ④~⑦을 전개, ⑧~⑩을 위기, ⑪을 절정, ⑫~⑬을 결말로 볼 수 있으니, <남가태수전>은 그 구성 체재에 있어 근대적 면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남가태수전>은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 <침중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나, 단지 <침중기>는 주인공 노생(盧生)이 모함을 받아 붙잡혀 귀양갔다가 누명을 벗고 다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으로 위기가 전환되도록 사건을 구성해가는데 비해, <남가태수전>은 공주의 죽음 이후 계속적으로 몰락해가는 위기의 절정으로 사건을 구성해가고 있는 것이 다르다 하겠다.
<남가태수전>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주인공 순우분과 두 친구, 자줏빛 옷을 입은 두 사자, 우승상, 주변, 왕과 왕비, 요방공주(금지공주), 화양고(華陽姑), 청계고(靑溪姑), 상선자(上仙子), 하선자(下仙子), 영지부인(靈芝夫人), 전자화(田子華), 순우분의 아들과 딸 등 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순우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비교적 비중이 적은 인물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주변과 전자화는 현세에서 주인공의 친구인데, 꿈속에서도 등장하여 친구의 역할을 그대로 한다는 점이다. 또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주변은 이미 죽고 전자화는 병들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꿈속의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한층 자아내게 한 작자의 뛰어난 인물 설정이다.
<남가태수전>은 유(儒) 불(佛) 도(道)의 사상적 배경 아래 "현실 - 꿈 - 현실"로 이어지는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꿈속에서의 상황은 작자가 살던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허구와 진실성
중국문학에 있어 소설이란 명칭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을 동시에 함축하는 용어이다. 첫째, 소설은 반고의 ≪한서·예문지≫ "소설가"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경향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청대 말기까지 중국의 목록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온 비교적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둘째, 1900년대 이래로 사용되어 온 소설이라는 용어는 보다 구체화된 의미로서 산문과 허구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형식을 지칭한다. 물론 이 두 가지 개념을 서로 분리시켜 논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소설창작에 있어 예술적 허구가 필수적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허구의 개념이 아직 설정되지도 않고 소설의 개념이 명백하지 못했던 당대(唐代)에 어떻게 예술적 허구가 설정되어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서의 기본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가?
문학은 좁은 의미에서 상상력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상상력의 문학이 곧 허구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예창작물은 그 제재가 작자의 상상에 의하여 설정되어 본래부터 거짓일지라도 오히려 실질적인 정감이 있으면 독자에게 믿을 만한 진실을 느끼도록 한다. 따라서 허구의 또다른 개념은 당위적 진실의 추구에 있게되며, 이렇게 볼 때 소설의 허구란 곧 진실성을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 이전의 지괴소설에서는 그러한 허구의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 당대에 이르러서는 획기적인 변혁의 하나로 허구의 진실성이 엿보이는 듯 하다. 그 구체적인 예로 <남가태수전>에 있어서 인물과 배경은 모두 작자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적인 것이다. 특히 꿈속에서 설정된 대괴안국의 상황은 그러한 작자의 상상력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주인공 순우분이 대괴안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로 육조의 신선괴담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남가태수전>이 육조의 지괴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인공의 "꿈"으로써 독자와의 거리감을 해소시키면서 당위적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 이전 - 꿈 - 꿈 이후"의 구조는 대부분의 환몽소설에서 공통되는 요소이다. 즉, 꿈 이전과 꿈 이후는 현실세계이고, 꿈은 비현실의 세계이다. 바꿔 말하면, 꿈 이전과 꿈 이후인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이 꿈인 비현실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가태수전>은 회(槐, 아카시아)나무 밑의 굴을 통하여 별세계로 들어가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나아가서는 남가태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고, 또 이런 것들을 개미의 의인화를 통하여 인간과의 직접적인 연관관계 속에 사회를 반영하였는데, 이러한 사건전개는 바로 "꿈"이라는 매개공간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의 "꿈"은 환상적 체험을 꿀어들이는 장치로서 환상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방안이고 주제와도 연결될 새롭게 각성된 의식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허구를 통한 당위적 진실을 추구한 근대적 개념에 비교적 가까운 구조 속에서 소설의 기본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점에 있어서 <남가태수전>은 지괴소설의 구성과는 매우 다른 발전된 형태이며, 그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침중기>와는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 현실사회의 반영
<남가태수전>은 환몽구조를 통하여 당시의 현실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작품 속에 나타난 당시의 사회문제와 그것을 어떻게 소설적으로 해결해 나갔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주인공 순우분은 무관으로 복역한 적은 있었으나 방탕한 행동으로 파직당하여 아무 하는 일 없이 술만 마시며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당시에 관직에서 쫓겨났거나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이러한 그가 꿈속의 대괴안국에서 부마가 되고 남가태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은 곧 당시의 문인들이 자신들의 신분 내에서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절실한 출세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해 준다. 이러한 것은 <침중기>의 내용이나, 당시의 안록산(安祿山)·곽자의(郭子儀) 등 "출장입상"의 꿈을 실제로 누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둘째, 당시의 문인들이 혼인을 출세의 한 수단으로 여겼던 또다른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즉, 순우분이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첫 과정은 대괴안국의 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됨으로써 이루어져 권문세가와의 결합을 통해 영달을 꿈구는 출세주의적인 당시의 사풍(士風)을 묘사하고 있다. <침중기>에서도 주인공 노생이 당시 5대성의 하나였던 최씨(崔氏)의 딸과 혼인하여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작자가 소설의 끝 부분에서 "그러나 벼슬자리를 도둑질하여 탐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경계가 되기를 바란다.(而竊位著生, 冀將爲戒.)"고 하여, 허황된 꿈을 불합리하게 성취하려는 사회풍조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에서 당시의 사회가 어떠했는가를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설문학은 단순히 현실사회의 반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소설적 해결을 담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남가태수전>은 순우분이 꿈속에서 깨어난 후, 남가(南柯)의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깨닫는 것으로 사회문제의 소설적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 사상
당대는 유·불·도의 사상이 융합된 시기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3가의 사상을 동시에 이어받고 있는데 소설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첫째, <남가태수전>에는 유가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있지 않을 뿐, 그 사상적 배경이 내면에 깔려 있다. 즉, 소설의 끝 부분에서 작자가 "비록 신괴한 일을 담론한다는 것은 성인의 경전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벼슬자리를 도둑질하여 탐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경계가 되기를 바란다. 후세의 군자들은 이 남가의 꿈을 우연한 일이라고 무시하고 명성이나 지위가 있다고 해서 이 천지간에서 교만하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雖稽神語怪, 事涉非經, 而竊位著生, 冀將爲戒, 後之君子, 幸以南柯爲偶然, 無以名位驕于天壤間云.)"라고 말한 부분에서 공자의 "괴상하고 힘쓰는 일과 어지럽히고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不語怪力亂神.)"는 사상을 의식한 것과,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려서는 안된다.(≪論語≫「里仁」: 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는 유가의 전통적인 교훈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도가사상에 신선사상과 민속신앙이 혼합되어 종교로서의 조직과 체계를 갖춘 도교사상을 볼 수 있다. 즉, 주인공 순우분은 부귀영화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고 주색을 끊고 도문(道門)에 귀의하게 되는데, 이것은 도교의 초월적 비세속적인 은일사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사상은 바로 불교사상이다. 예를 들면, 순우분은 북방을 지키고 있던 관리인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내어 서로 연락을 취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답장에서, "……정축년에는 너와 만나보게 될 것이다.(歲在丁丑, 當與女相見.)"라고 한 것과, 순우분이 대괴안국을 떠나올 때 왕이 "3년 뒤에는 마땅이 그대를 맞아오도록 하겠노라.(後三年, 當令迎生.)"라고 한 것은 뒤에 순우분이 꿈에서 깨어나 도문에 귀의한 후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작자가 "그 후 3년이 지난 다음 정축년에 그도 자기집에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마니 ……(後三年, 歲在丁丑, 亦終于家……)"라고 한 구절과 완전히 부합된다. 여기에서 불교의 내세사상과 인연설이나 윤회사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善)을 쌓으면 반드시 진실한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불교사상의 배경하에서 순우분이 선을 쌓는 방안으로 도문을 택한 것은 당시 사회에 불교와 도교의 영향관계가 매우 밀접하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 맺음말
당대의 유불도의 융합된 사상적 배경과 "꿈 이전 - 꿈 - 꿈 이후"의 공간적 구조를 통하여 당시의 불합리했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남가태수전>은 인물·배경·구성의 묘사와 현대소설이 갖는 허구성을 갖추고 사회적 모순을 소설로써 해결한 비교적 근대적 의미의 소설 개념에 가까운 형태로 접근한 작품이다. 특히 소설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시기에 이전의 지괴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주인공의 평민계층화, 발전된 인물묘사, 인간사회의 모습을 소설에 반영한 점 등은 <남가태수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당 전기에 나타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 전기를 근대적 의미의 소설의 출발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가태수전>을 비롯한 당 전기가 완전한 소설로 평가되기에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문언체로 쓰여져 일반 서민대중을 독자로 하지 못했다.
둘째, 유가의 사상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흔적으로 소설의 처음 인물묘사와 끝 부분에서 사전체(史傳體)적인 기술을 하였다.
셋째, 이야기의 전개가 지극히 단조롭다.
[번역]
당(唐)나리 덕종(德宗:779-805) 때 강남(江襤) 양주(揚州) 교외에 순우분(淳于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 이름이 알려진 협객(俠客)으로, 원래 술을 좋아하여 한때는 그 수완이 팔려서 회남군(淮南軍)의 부장을 지낸 일도 있었지만 그것도 술로 실패한 이후로 친구들을 모아서 술을 마시는 것을 생활로 하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는 홰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나무는 그늘이 수십 평을 덮을 정도로 컸고, 밑동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원(貞元) 7년(791)의 가을철 어느날, 술을 좋아한는 순우분이 몹시 취하여 친구들이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순우분이 마루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이상한 기척이 들려 눈을 뜨니 뜰에 마차와 함께 낯선 두 관리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괴안(槐安) 국왕의 왕명을 받들어 모시러 왔습니다." 순우분은 일어나 그들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를 태운 마차가 홰나무 구멍으로 달려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간 마차는 낯선 풍경 속을 수십 리나 달린 끝에 한 번화한 도시에 도착했다. 괴안국의 도성이었다. 왕궁의 성문에는 금글자로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고 씌어 있었다. 괴안국 왕은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친절하였다. 순우분은 그 곳에서 공주에게 장가들어 부마가 되었다.
그는 왕궁안에 거처했는데, 항상 세 명의 심부름꾼이 따라다니며 그를 도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은순우분이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전자화(田子華)여서 아주 반가웠다. 또 왕을 알현할 때 늘어서 있는 수 많은 신하들 속에는 술친구 주변(周弁)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주변에게다가가 물었더니 그는 괴안국에서 출세하여 대신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후 순우분은 남가군의태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주변과 전자화 두 사람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해 줄 것을 왕에게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두 사람의 도움으로 순우분은 남가군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 또한 슬하에는 5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자라서 벼슬길에 오르고 딸은 왕족에게 시집을 갔다. 그리하여 그 가문은 누구에게도 비길 수가 없을 만큼 번성했다. 그러나 행복 끝에는 불행이 있게마련이었다.
이웃 단라국(檀羅國)의 왕이 군대를 이끌고 남가군에 쳐들어온 것이다. 주변이 삼만의 군대를 이끌고 이를 막으려 했으나 참패하고 말았다. 겨우 목숨만을 건져 도망쳐 온 주변은 그 후 등창이 나서 죽고 말았다. 얼마 후엔 순우분의 아내가병을 앓다가 죽었다. 마침내 그는 태수직을 물러나 도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귀족과 고관이 많았다. 그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왕은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국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고 상소한 자가 있었다. 또 순우분을 싫어하는 신하들로부터는 그를 규탄하는 의견이 들끓었다. 왕은 결국 순우분에게 칩거생활(蟄居生活)을 명했다. 순우분은 20여년에 걸쳐 나라에 공헌을 하고도 근신을 당하게 되자 낙담하고 말았다.
그것을 안 국왕 부처가 그를 불러 말했다. "고향을 떠난 지도 오래 되었으니 이 기회에 한번 돌아가 보는 것이 어떤가? 애들은 우리가 맡아 줄 것이며 3년이 지나면 다시 맞이하러 사람을 보내리라." "폐하, 제집은 여기입니다. 어디로 돌아가라고 하십니까?" 왕은 크게 웃었다. 그제야 문득 순우분은 예전 생각이 났다. 그는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루에서 자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져 발을 멈추었다. 그 때 따라온 관리가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일어나 보니 자기를 수행해 온 관리들은 간 곳이 없었다. 하인은 뜰을 치우고 있고, 그가 잠들기 전에 함께술을 마시던 두 친구는 발을 씻고 있는 중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괴안국에서의 긴 세월이 꿈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친구들과 같이 홰나무 밑동의 구멍 속을 파헤쳐 보았다. 그 곳에는 성처럼 생긴 개미집이 있었다. 두 마리의 붉고 큰 개미를 몇십마리의 큰 개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음, 이것이 괴안국의 대궐이고 저 붉은 개미가 왕과 왕비로구나!' 순우분은 다시 구멍을 따라 남쪽 가지로 올라가 보았다. 거기에도 성처럼 생긴 개미집이 있었다.
그곳이 괴안국을 쳐들어온 남가군이 분명했다. 꿈에서 고락을 같이 한 주변과 전자화 생각이 나서사람을 보냈다. 그랬더니 주변은 원인 모를 병으로 죽고, 전자화도 병으로 누워 있는 중이었다. 순우분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술과 색을 끊고 도교를 받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3년 후 마흔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괴안국의 왕이 다시 부르겠다는 3년 뒤의 일이었다.
노생(盧生)이 한단의 장터에서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는 동안 일생의 경력을 모두 꿈꾼 고사에서 나온 말로, 인간 일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심기제(沈旣濟)는 중국 중당(中唐)의 전기작가(傳奇作家)로, 당대(唐代)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를 저술하여, 명나라 탕현조(湯顯祖)의 희곡 《한단기(邯鄲記)》의 바탕이 되었다.
다음은 《침중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 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
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메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이 이야기에서 '한단지몽'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인간의 부귀영화나 인생의 영고성쇠가 다 꿈같이 부질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