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공자서 2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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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太史公旣掌天官(태사공기장천관),
태사공의 직분은 천문에 관한 일을 관장하고

219.不治民(불치민).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220.有子曰遷(유자왈천).
태사공에게는 이름이 천(遷)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221.遷生龍門(천생용문),
천은 용문(龍門)에서 태어나서

♣용문(龍門)/지금의 섬서성 한성시(韓城市) 부근으로 태원 북쪽에서 발원하여 산서성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분수(汾水)가 하수(河水)와 만나는 곳이다. 그 북쪽에 용문산(龍門山)이 있다.

222.耕牧河山之陽(경목하산지양).
그는 하수의 근처의 태항산(太行山) 남쪽에서 농사와 가축을 기르며 살다가

223.年十歲則通古文(연십세즉통고문).
나이가 10 살이 되자 고문(古文)을 익혀 통달하게 되었으며

♣고문(古文)/진시황이 중국의 문자를 금문(今文)으로 통일하기 전에 사용했던 선진시대의 문자.

224.二十而南游江, 淮,(이십이남유강회)
나이가 20세에 이르자 남쪽의 강회(江淮) 사이를 유람하고,

♣강, 회(江淮)/강수(江水) 즉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를 말한다.

225.上會稽(상회계),
월(越) 땅의 회계산에 올라

♣회계산(會稽山)/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하(夏)왕조를 세운 우(禹) 임금이 그곳에 올라 천하의 제후들을 불러모아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행한 곳이라 하여 이름을 회계라 지은 것이다. 회계(會稽)는 곧 회계(會計)이다. 춘추 말기에 월나라의 구천(句踐)이 오나라의 부차(夫差)에게 쫓겨 회계산으로 달아나 농성하다가 결국은 항복하였으나 후에 권토중래하여 부차를 멸망시키고 당시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226.探禹穴(탐우혈),
우(禹)임금이 묻혔다는 굴을 찾아 보고

♣ 우혈(禹穴)/ 우임금이 회계에 순수(巡狩)차 회계산에 들렸다가 사망하여 이곳에 묻혔다. 그러나 우임금은 죽은 것이 아니라 회계산 산중에 있는 굴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는데 우혈이란 그것을 말한다.

227.窺九疑(규구의),
다시 구의산에 올라 순임금의 행적을 살펴보았으며

♣구의산(九疑山)/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순임금이 순수를 나왔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 영원현은 광동성과 인접해 있는 호남성 남쪽에 있는 산으로 상수(湘水)의 발원지이다.


228.浮于沅, 湘( 부우완,상);
그곳을 흐르던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두 강에서 배를 타고 다녔다.

♣원수(沅水)/귀주성과 호남성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동서로 가로질러 동정호로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다.
♣상수(湘水)/광서성, 광동성, 호남성과의 접경지대의 구억산(九 山)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남북으로 흐르다가 상담시(湘潭市)와 호남성의 성도(省都)인 장사(長沙)를 지나 동정호(洞庭湖)로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다. 장사시에서 50여 키로 남쪽에 있는 상담시(湘潭市)는 모택동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또한 순임금이 구억산으로 순수 나왔다가 그곳에서 죽자 요임금이 딸이었던 순임금의 두 부인이 상심한 나머지 상수에 빠져 죽은 전설이 있다. 상군(湘君)은 상수에 빠져 죽은 순임금의 두 부인을 말한다.

229.北涉汶, 泗,( 북섭문,사)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문수(汶水)/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와 노나라 사이를 가로질러 두 나라의 국경선 역할을 했던 강 이름. 시경의 제풍(齊風)과 노풍(魯風)에 나오는 시가의 무대로 많이 나온다.
♣사수(泗水)/태산(泰山)에서 발원하여 노나라의 도성이었던 곡부를 거쳐 회수와 합쳐지는 회수의 지류.

230.講業齊, 魯之都(강업제, 노지도),
제(齊)와 노(魯) 두 나라의 도성에서 학문을 논했으며

231.觀孔子之遺風(관공자지유풍),
공자가 남긴 유풍을 살펴보고,

232.鄕射鄒,嶧);(향사추,역);
추(鄒)와 역(嶧) 땅의 향사(鄕射)를 참관했다.

♣추(鄒)/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에 있었던 고을 이름으로 맹자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역()/추현 동남쪽에 있었던 산 이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 이 산에 올라 자기의 공적비를 세웠다.

233.厄困鄱, 薛, 彭城, (액곤파, 설, 팽성)
파(鄱)와, 설(薛), 팽성(彭城)에서 곤경에 처했다가

♣파()/지금의 산동성 등현( 縣)을 말하고
♣설(薛)은 등현 경내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때 중소제후국이었다가 제나라에 편입되었다. 후에 맹상군(孟嘗君)의 아버지인 전영(田 )이 이곳에 봉해져 설공(薛公)이라 했고 다시 맹상군이 그 작위를 물려받았다.
♣팽성(彭城)/지금의 강소성 서주시(徐州市)를 말한다. 진시황이 죽고 한초(漢楚)가 천하를 놓고 다툴 때 초의 항우(項羽)가 도성으로 삼은 곳이다.

234.過梁, 楚以歸(과량, 초이귀).
양(梁)과 초(楚)를 지나 도성으로 들어갔다.

♣양(梁)/전국시대 때 위(魏)나라의 처음 수도는 지금의 산서성 남쪽의 하현(夏縣)에 있었던 안읍(安邑)이었으나 후에 진나라의 세력에 밀려 그 도읍을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開封市)로 옮기고 그 이름을 대량(大梁)이라 불렀다. 이어서 위나라는 나라이름을 양(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맹자의 양혜왕(梁惠王)이란 위혜왕을 가리킨다.

♣초(楚)/춘추전국시대 때 호북과 호남성 일대에 걸쳐 있었던 나라이름. 처음에는 지금의 호북성 형주시(荊州市)를 도읍으로 했으나 진나라의 세력에 밀려 지금의 하남성 진현(陳縣)으로 쫓겨 갔다. 다시 안휘성 거양(巨陽)을 거쳐 다시 지금의 수현(壽縣)인 수춘성(壽春城)으로 옮겼다가 그곳에서 진나라에게 멸망당했다.

그림 7-1> 기원전 110년 경 사마천의 중국 주유도


235.于是遷仕爲郎中(우시천사위낭중),
그리고 천(遷)은 조정에 나가 낭중이 되어

♣낭중(郎中)/진한시대 때 황제의 시위(侍衛)를 담당했던 관직명. 진나라 때 시위의 직분을 셋으로 나누었다. 황제의 여인들이 묶고 있는 곳을 드나들며 시위하도록 했던 직위를 중랑(中朗), 궁중에 거하며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낭중(郎中), 궁중 밖에서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외랑(外朗)이라 했다.

236.奉使西征巴,蜀以南(봉사서정파,촉이남),
황제의 명을 받들어 서쪽으로는 파(巴)와 촉(蜀) 이남 지방을 정벌한 다음,

♣ 파촉(巴蜀)/(巴)파는 지금의 중경시(重慶市)를 말하고 촉은 성도(成都)를 가리킨다.

237.南略邛,窄,昆明 (남략공,착,곤명),
다시 남쪽으로는 공(工+部우변), 착, 곤명을 공략하고,

♣공()/사천성 서창(西昌) 지구 일대에 살던 이민족 이름. 한무제(漢武帝) 때 이곳에 월수군(越 郡)을 두었다.
♣착()/사천성 한원(漢源) 일대에 살던 이민족 이름. 한무제 때인 기원전 110년에 이곳에 심려군(沈黎郡)을 설치했다.
♣곤명(昆明)/지금의 운남성(雲南省) 대리주(大理州) 일대에 살았던 이민족 이름이다. 운남성의 주도(州都)인 곤명(昆明)은 이 민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38.還報命.
돌아와 복명하였다.

239.是歲天子始建漢家之封(시세천자시건한가지봉),
이해에 천자는 처음으로 한나라 황실의 봉선(封禪) 의식을 행하기 시작했다.

♣봉선(封禪)/태산(泰山)에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봉(封), 낮은 구릉인 양보산(梁父山)에 단을 만들어 땅에 지내는 의식을 선(禪)이라 하여 합하여 봉선(封禪)이라 한다. 봉선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은 천자만이 행할 수 있다.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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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너무 장황하여 사마담-사마천의 기사를 중심으로 발췌하여 싣는다. 자서 원문에는 사기 130편에 대한 기술 취지를 모두 요약해 두었으나 분량이 너무 많아 상고시대의 ‘五帝本紀 第一’의 내용 이하는 끊었다. 본 블로그에서는 <태사공 자서> 발췌본을 5회에 나누어 수록한다.

내가 특히 감동받은 부분은 사마담이 태산 봉선제에 부름을 받지 못하자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자탄한다. 아버지는 이 말을 두 번 반복했다.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가? 사마천도 이릉의 화를 입어 궁형을 당하자 “이것은 나의 죄로다.”라고 실패는 자기 탓임을 자인했다. 남을 원망한다고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남의 인생에 도저히 간여할 수 없다. 사실과 진정성이란 것도 보는 이의 이해관계나 시각에 따라 편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수성의 업 부분인데 아버지 담이 아들 손을 잡고 사기 기술을 부탁하자 아들은 눈물을 떨구며 굳게 다짐했고, 그는 끝내 이 거대한 역사서를 완성했다. 그 작업을 가능케 한 것이 곧 발분(發憤)의 글쓰기 정신이며, 후세인들에게 글쓰기의 전범이 되었다.

인생에 대한 도가의 해석도 간단명료하여 따질 것이 없다. 나는 아래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205.凡人所生者神也(범인소생자신야),
무릇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정신[의식]이며

206.所托者形也(소탁자형야).
정신이 의탁하는 것은 그 육신이다.


207.神大用則竭(신대용즉갈),
정신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쇠갈(衰竭) 하고

208.形大勞則幣(형대노즉폐),
육체를 지나치게 혹사하면 피로해진다.

209.形神離則死(형신리즉사).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면 즉 죽음에 이르게 된다.


210.死者不可復生(사자불가복생),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211.離者不可復反(이자불가복반),
육체를 떠난 정신은 다시 돌아와 결합할 수 없다.

212.故聖人重之(고성인중지).
고로 성인은 정신과 육체를 다 같이 중히 여긴다.

213.由是觀之(유시관지),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214.神者生之本也(신자생지본야),
정신이란 살아 있는 사람의 근본이며

215.形者生之具也(형자생지구야).
육체는 그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천재는 요절하는 것인가?

원문 번호는 구절 순서 표시임. 빠진 번호는 발췌에서 누락된 구절로 보면 된다.


12.司馬氏世典周史(사마씨세전주사)
후에 사마씨는 주나라의 사관이 되어 대대로 그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중략]

52.喜生談,
사마희는 담을 낳고

53.談爲太史公.
사마담은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공(太史公)이 되었다.


54.太史公學天官于唐都(태사공학천관우당도)
태사공은 당도(唐都)로부터 천문학을 배우고

55.受<易>于楊何(수<역>우양하)
양하로부터 <주역>을 전수받았으며

56.習道論于黃子(습도론우황자)
황자(黃子)에게서 도학을 익혔다


57.太史公仕于建元元封之間(태사공사우건원원봉지간)
태사공은 건원(建元)과 원봉(元封) 년간에 벼슬을 하면서

▶건원(建元)/ 기원전 140-136년의 한무제 때의 연호.
▶원봉(元封)/ 기원전 110-108년 “

58.愍學者之不達其意而師悖(민학자지부달기의이사패)
학자들이 그 뜻에 통달하지 못하여 스승들의 본 뜻에 위배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59.乃論六家之要指曰(내론육가지요지왈 ;
육가들이 세운 학설의 중요한 요지를 논했다.


60.<易.大典>(<역대전>):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 따르면


61.“天下一致而百慮(천하일치이백려),
천하 사람들은 그 도달하려고 하는 이치는 하나인데 그 생각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며

62.同歸而殊?.(동귀이수도)”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은데 가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63.夫陰陽, 儒, 墨, 名, 法, 道德(부음양, 유, 묵, 명, 법, 도덕),
무릇 음양가(陰陽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들은

64.此務爲治者也(차무위치자야),
세상을 잘 다스리기 위한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지만

65.直所從言之異路(직소송언지이로),
다만 말하는 바를 따르는 것은 서로 다르니

66.有聲不聲耳
어떤 것은 살피고 또 어떤 것은 살피지 않는 것이 있다.


129.夫儒者以<六藝>爲法(부유자이<육예>위법).
대저 유가들은 육예(六藝)로서 그 법도로 삼는다.

♣ 육예(六藝)/육경(六經)을 말한다. 즉 예(禮), 악(樂), 서(書), 시(詩), 역(易),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이중 예경은 일실되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또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말하기도 한다.

120. <六藝>經傳以千萬數(<육예>경전이천만수),
<육예>에 관한 경(經)과 전(傳)의 종류는 천만 가지가 넘어

♣경(經)/육경(六經)을 말한다.
♣전(傳)/경의 해설서를 말한다. 즉 시경의 경우 모전(毛傳), 춘추의 경우,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등과 같은 해설서를 가르킨다.

121.累世不能通其學(누세불능통기학),
누대에 걸쳐 배워도 그 학문에 통달할 수 없으며

122.當年不能究其禮(당년불능구기례),
평생을 바쳐 예경 한 가지에만 매달린다 할지라도 다 구명할 수 없다.

123.故曰“ 博而寡要, 勞而少功.(고왈, 박이과요, 노이소공)”
그런 이유로 해서" 유학이란 범위가 넓으면서도 요체가 적고 노력은 많이 들지만 그 이루는 바는 적다" 한 것이다.

124.若夫列君臣父子之禮(약부열군신부자지례),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예를 바르게 세우고

125.序夫婦長幼之別(서부부장유지별),
남편과 아내를 구별하고 , 어른과 아이의 순서를 정해 놓은 것은

126.雖百家弗能易也(수백가불능영야).
비록 백가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고칠 수 없는 것이다.


171.道家無爲(도가무위),
도가의 설은 무위이면서

♣무위(無爲)/도가 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의 하나. 도가사상에서는 일체의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시키면서 그 자신을 생멸(生滅)을 넘어선 초감각적 실재 내지 천지자연의 이치로서의 도의 본질을 체득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데, 그 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무위(無爲)라는 개념이다. 무위란 인위의 부정을 뜻하며,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영위을 위(僞)로서 부정하고 천지자연의 이치에 그대로 따른 참된 위를 실현하는 일이며, 정확히는 무위의 위이다. 노자는 인간이 지(知) 또는 욕(欲)에 의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세상에 대위대란(大爲大亂)을 초래하는 계기가 됨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무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두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하였다. 그의 무정부적 사상은 이 사항에 기초를 둔 것이다. 장자에 와서는 개인적인 면이 뚜렷이 나타나 사회적으로 무위한 것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톨로 보았다. (출전/동서문화백과대사전)

172.又曰無不爲(우왈무불위),
또한 무불위라고도 말하고

♣ 무불위(無不爲)/만물을 생육한다는 뜻이다. 도가의 무위사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자연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정정함을 지켜 나간다면, 만물은 장차 자화하여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173.其實易行(기실이행),
그 실제는 행하기는 쉬우나

174.其辭難知(기사난지).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175.其術以虛無爲本(기술이허무위본),
도가의 이론을 시행하는 방법은 허무를 근본으로 삼고

176.以因徇爲用.
인순(因循)을 수단으로 삼는다.

♣인순(因循)/ 자연에 순응한다는 뜻

177.無成勢(무성세),
고정된 세도 없고

178.無常形(무상형),
일정한 형상도 없다.

179.故能究萬物之情(고능구만물지정).
고로 만물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

180.不爲物先(불위물선),
사물에 앞서지도 않고

181.不爲物后(불위물후),
사물에 뒤지지도 않는다.

182.故能爲萬物主(고능위만물주).
고로 능히 만물을 주제 할 수 있다.

183.有法無法(유법무법),
법칙이 있으나 없다고도 할 수 있으며

184.因時爲業(인시위업);
시대에 응하여 사업을 이루기도 한다.

185.有度無度(유도무도),
사물을 재는 척도가 있으나 일정한 것이 없어

186.因物與合(인물여합).
사물에 따라 더불어 합친다.

187.故曰 “ 聖人不朽(고왈, 성인불후),
그런 연유로 “ 성인의 사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며,

188.時變是守(시변시수).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켜진다.

189.虛者道之常也(허자도지상야),
허무는 도의 변하지 않는 모습이고

190.因者君之綱”也(인자군지강야).
자연에 순응하는 것은 임금이 지켜야 할 강령이다."라고도 말해진다.

191.君臣幷至(군신병지),
임금이 신하와 같이 이르게 되면

192.使各自明也(사각자명야).
임금은 신하들 각자가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하도록 한다.

193.其實中其聲者謂之端(기실중기성자위지단),
이때 신하들의 실제가 그 명성에 부합하는 것을 단(端)이라 하고

194.實不中其聲者謂之 (실부중기성자위지관).
그 실제가 부합하지 않는 것을 관( )이라 한다.

195. 言不聽(관언불청),
신하들의 헛소리를 듣지 않음으로

196.奸乃不生(간내불생),
간사스러운 신하가 생기지 않으며

197.賢不肖自分(현불초자분),
어진 자와 불초한 자는 스스로 분별되어

198.白黑乃形(백흑내형).
흑백과 같이 형체를 확연히 드러낼 것이다.

199.在所欲用耳(재소욕용이),
단언(端言)과 관언( 言)을 적재적소에 따라 쓰기만 한다면

200.何事不成(하사불성).
무슨 일인들 이루어 내지 못하겠으며

201.乃合大道(내합대도),
이것은 곧 대도에 부합되는 일이 될 것이며

202.混混冥冥(혼돈명명).
어지러우며 칠흑같이 어둠 속에서도

203.光耀天下(광요천하),
천하를 빛낼 수 있어

204.復反無名(반복무명).
반복해서 무명(無名)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명(無名)/ 노자의 도가 사상에서 나온 말로 천지의 모든 만물은 물체가 형성되고 나서 인간에 의해 규정지어 진 것임으로 그 이전의 상태를 무명이라 한 것이다. 그럼으로 도란 것도 무명인 것이다. 인위적인 예악, 인의 등을 반대하는 노자의 무명론은 유가의 정명론(正名論)과 대립된다.


205.凡人所生者神也(범인소생자신야),
무릇 사람이 살아 있음은 정신이 있음을 말하며

206.所托者形也(소탁자형야).
정신이 의탁하는 것은 그 육신이다.


207.神大用則竭(신대용즉갈),
정신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쇠갈(衰竭) 하고

208.形大勞則幣(형대노즉폐),
육체를 지나치게 혹사하면 피로해 진다.

209.形神離則死(형신리즉사).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면 즉 죽음에 이르게 된다.


210.死者不可復生(사자불가복생),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211.離者不可復反(이자불가복반),
육체를 떠난 정신은 다시 돌아와 결합할 수 없다.

212.故聖人重之(고성인중지).
고로 성인은 정신과 육체를 다 같이 중히 여긴 것이다.

213.由是觀之(유시관지),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214.神者生之本也(신자생지본야),
정신이란 살아 있는 사람의 근본이며

215.形者生之具也(형자생지구야).
육체는 그 정신을 담는 도구이다.


216.不先定其神形(불선정기신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육체를 먼저 안정시키지 않고서

217.而曰 “ 我有以治天下”何由哉?”(이왈, 아유이치천하, 하유재)
오히려 “ 내게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을 것인가?








오리 다리가 비록 짧아도 이어주면 근심하고

학이 다리가 비록 길어도 자르면 슬퍼한다


[주]장자의 이상향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響)’이다. 주지하듯이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고 자연과 천성을 유지하는 것이 도가의 주장이다. 중국인들의 느긋함, 그 만만디 정신은 상당부분 도가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자에는 유가(儒家)를 공격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있는데, 이것은 장자 사후에 끼어넣은 위작(僞作)이라는 설이 있는데, 아마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자의 시대인 전국시대는 도가의 전성기였고, 서력기원전 200년경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천하를 통일하고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기까지 유자(儒者)들의 활동은 미미했다. 후한에 이르기까지 한나라 400년은 음양가(陰陽家)들의 전성시대였던 만큼, 민간에서는 도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더군다나 한나라 이전이라면 도가에서 유가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유(儒)’字에는 ‘난장이’라는 뜻도 있는 걸 보면 당시에는 유자들을 좀 잣달고 좀스럽게 본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유의 숲인 <장자>에 잠시 발을 담가 본다.

기능성 때문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성형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할 때 내가 자주 원용하는 경구이다.


장자 외편

騈拇변무

인의덕성의 존중과 논리는 쓸데없다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1]-

騈拇枝指,

병무지지,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버린 변무나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는

出乎性哉!

출호성재! 자연에서 나온 것이지만

而侈於德.

이치어덕. 정상적인 인간의 본성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附贅縣疣,

부췌현우, 사마귀나 늘어진 혹은

出乎形哉!

출호형재! 몸에서 나왔지만

而侈於性.

이치어성. 인간의 본성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多方乎仁義而用之者,

다방호인의이용지자, 인의를 너무 중시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列於五藏哉!

열어오장재! 그것이 오장에 딸려 있는 것이라 해도

而非道德之正也.

이비도덕지정야. 도덕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是故騈於足者,

시고병어족자, 발가락이 달라붙는 것은

連無用之肉也.

연무용지육야. 쓸데없는 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枝於手者,

지어수자, 손에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것은

樹無用之指也.

수무용지지야. 쓸데없는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이다.

騈枝於五藏之情者,

병지어오장지정자, 오장의 진실한 기능에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서 존중하는 사람들은

淫僻於仁義之行,

음벽어인의지행, 인의의 행위에 지나치게 치우치려고,

而多方於聰明之用也.

이다방어총명지용야. 밝은 귀와 밝은 눈의 사용을 너무 존중하는 것이다.

列於五藏哉!

열어오장재! 그것이 오장에 딸려 있는 것이라 해도

而非道德之正也.

이비도덕지정야. 도덕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是故騈於足者,

시고병어족자, 발가락이 달라붙는 것은

連無用之肉也.

연무용지육야. 쓸데없는 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枝於手者,

지어수자, 손에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것은

樹無用之指也.

수무용지지야. 쓸데없는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이다.

騈枝於五藏之情者,

병지어오장지정자, 오장의 진실한 기능에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서 존중하는 사람들은

淫僻於仁義之行,

음벽어인의지행, 인의의 행위에 지나치게 치우치려고,

而多方於聰明之用也.

이다방어총명지용야. 밝은 귀와 밝은 눈의 사용을 너무 존중하는 것이다.

是故騈於明者,

시고병어명자, 그러므로 눈밝음이 너무 지나친 사람은

亂五色,

란오색, 오색에 혼란을 일으키고

淫文章,

음문장, 아름다운 무늬에 빠져

靑黃黼黻之煌煌非乎?

청황보불지황황비호? 파란색, 노란색과 무늬의 화려함을 만드는 것이다.

而離朱是已.

이리주시이. 이주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多於聰者,

다어총자, 귀밝음이 지나친 사람은

亂五聲,

란오성, 오성(五聲)에 혼란을 일으키고

淫六律,

음육률, 육률(六律)에 빠져,

金石絲竹黃鐘大呂之聲非乎?

금석사죽황종대려지성비호? 쇠나 돌과 실과 대로 만든 악기와 황종과 대여와 같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而師曠是已.

이사광시이. 사광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枝於仁者,

지어인자, 인(仁)을 쓸데없이 중시하는 사람은

擢德塞性以收名聲,

탁덕색성이수명성, 덕을 빼내고 본성을 막아서 명예를 거두어

使天下簧鼓以奉不及之法非乎?

사천하황고이봉불급지법비호? 세상 사람들[생황과 북]에게 따를 수 없는 법도를 받들게 하니 仁에 지나친 것이 아닌가?

而曾史是已.

이증사시이. 증삼(曾參)과 사추(史鰌)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騈於辯者,

병어변자, 변설을 중시하는 사람은

累瓦結繩竄句,

루와결승찬구, 깨어진 기와조곡을 쌓아놓고 새끼줄로 묶으려는 것처럼 문구나 천착하여

遊心於堅白同異之閒,

유심어견백동이지한, 견백동이의 궤변[공손룡:단단한 돌과 흰 돌은 동일한 물건이 아니다)에 마음을 쓰면서

而敝跬譽無用之言非乎?

이폐규예무용지언비호? 애써 쓸데없는 말을 자랑하니 변론에 지나친 자가 아닌가?

而楊墨是已.

이양묵시이. 양자나 묵자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故此皆多騈旁枝之道,

고차개다병방지지도, 그러므로 이런 것은 모두가 쓸데없는 것을 존중하고 소용없이 덧붙은 것을 존중하는 도이며,

非天下至至正也.

비천하지지정야. 천하의 지극한 올바른 도는 아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2]-

彼至正者,

피지정자, 올바른 경지에 이른 사람은

不失其性命之情.

불실기성명지정.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을 잃지 않는다.

故合者不爲騈,

고합자불위병, 그러므로 합쳐져 있다 해도 쓸데없이 들러붙지 않고,

而枝者不爲岐.

이지자불위기. 갈라져 있다 해도 소용없이 덧붙어 있지 않고,

長者不爲有餘,

장자불위유여, 길다 해도 남는 것이 없고,

短者不爲不足.

단자불위부족. 짧다 해도 부족하지 않다.

是故鳧脛雖短,

시고부경수단, 물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續之則憂.

속지칙우. 길게 늘여주면 걱정하게 될 것이며,

鶴脛雖長,

학경수장,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斷之則悲.

단지칙비. 짧게 잘라주면 슬퍼하게 될 것이다.

故性長非所斷,

고성장비소단, 본성이 길면 잘라주지 않아도 되고,

性短非所續,

성단비소속, 본성이 짧으면 이어주지 않아도 된다.

無所去憂也.

무소거우야.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意仁義其非人情乎!

의인의기비인정호! 인의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彼仁人何其多憂也?

피인인하기다우야? 어진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걱정을 지니고 있는가?

且夫騈於拇者,

차부병어무자, 또한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 있는 사람은

決之則泣.

결지칙읍. 그것을 갈라주면 아파 울 것이다.

枝於手者,

지어수자,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육손이는

齕之則啼.

흘지칙제. 덧달린 손가락을 잘라주면 또한 아파 울 것이다.

二者或有餘於數,

이자혹유여어수,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숫자상 남음이 있고,

或不足於數,

혹부족어수, 한 쪽은 부족함이 있다.

其於憂一也.

기어우일야. 그러나 그 사람들의 걱정은 한가지이다.

今世之仁人,

금세지인인, 지금 세상의 어진 사람들은

蒿目而憂世之患.

호목이우세지환. 눈을 멀쩡히 뜨고서 세상의 환란을 걱정한다.

不仁之人,

불인지인, 어질지 않은 사람들은

決性命之情而饕貴富.

결성명지정이도귀부. 타고난 본성의 진실한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내고 있다.

故曰仁義其非人情乎!

고왈인의기비인정호! 그러니 인의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맹자의 與民同樂 사상 2


梁惠王章句 下

梁惠王4장


[4-1]齊宣王見孟子於雪宮.

제(齊) 선왕(宣王)이 맹자(孟子)를 설궁(雪宮)에서 접견하였다.

王曰 : [賢者亦有此樂乎?]

왕이 “현량(賢良)한 사람 역시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하고 말하자,

孟子對曰 :

맹자(孟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有. 人不得, 則非其上矣.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웃사람을 비난합니다.

[註]樂, 音洛, 下同. ○ 雪宮, 離宮名. 言人君能與民同樂, 則人皆有此樂; 不然, 則下之不得此樂者, 必有非其君上之心. 明人君當與民同樂, 不可使人有不得者, 非但當與賢者共之而已也.


[4-2]不得而非其上者, 非也;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웃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 亦非也.

그렇다고 백성들의 웃사람이 되어서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하지 않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註]下不安分, 上不恤民, 皆非理也.


[4-3]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긴다면 백성들 역시 그 즐거움을 즐기고,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하면 백성들 역시 그 근심을 근심합니다.

樂以天下, 憂以天下,

천하(天下)의 일을 가지고 즐기고, 천하(天下)의 일을 가지고 근심하고서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

왕 노릇하지 못한 사람은 [여태까지 있어 본 일이] 없습니다.」

[註]樂民之樂 而民樂其樂, 則樂以天下矣; 憂民之憂 而民憂其憂, 則憂以天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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