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임신서기석은 최세화 선생님(국어학 ,문법, 음운론) 붓글씨입니다. 

 

https://hamgo.tistory.com/3077

 

임신서기석 /경주국립박물관

[주]임신서기석은 이인병서기라고도 한다. 탁본과 실물 사진이다. 1934년 5월 향가 풍요의 무대인 석장사지 부근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표기는 한자이나 우리말 구조의 어순에 맞는 향찰표기이다. 경주캠퍼스 학생..

hamgo.tistory.com

"임신년(壬申年)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서하여 쓴다. 하늘 앞에 맹서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집지(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서한다.

만약 이 일(맹서)을 잃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서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가히 행할 것을 받아들임을

맹서한다. 또 따로이 먼저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서하였다.

시경(詩經)·상서(尙書;서경書經)·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末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https://www.youtube.com/watch?v=IgnPOH1ZhCU

 

https://kydong77.tistory.com/8134

 

남가태수전 南柯太守傳 -이공좌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뜻을 지닌 말들; 일장춘몽(一場春夢),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지몽(邯鄲之夢), 일취지몽(一 炊之夢), 여옹침(呂翁枕), 황량몽(黃粱夢), <조신설화>, 남가태수전 南柯太守傳 -李公佐 남가태..

kydong77.tistory.com

남가태수전 04  (0) 2012.03.22

남가태수전 03  (0) 2012.03.22

남가태수전 02  (0) 2012.03.22

남가태수전 01  (0) 2012.03.22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8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블로그 포스트가 여러 차례 바뀌는 바람에 글씨가 흐려져 원문과 번역을 재록합니다.

[01]

참고로

<남가태수전>과 <침중기>에서 발생한 고사성어의 유의어를 찾아본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의 유의어 :

一場春夢(일장춘몽), 白日夢(백일몽),

南柯一夢(남가일몽), 南柯之夢(남가지몽),

邯鄲之枕(한단지침), 邯鄲之夢(한단지몽),

呂翁枕(여옹침), 一炊之夢(일취지몽), 槐安夢(괴안몽),

老生之夢(노생지몽)

황량몽(黃粱夢):

한단 지방에서 꾼 꿈으로 인생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말하는 성어이다.

黃粱一炊(황량일취), 黃粱一炊夢(황량일취몽),

 

남가태수전 01

《南柯太守傳》

唐‧ 李公佐(미상, 작품에선 802년 작)

出自《太平廣記》卷四百七十五〈昆蟲三〉

 

東平淳于棼,吳楚遊俠之士,

동평 사람 순우분은 오, 초나라에 이름이 알려진 협객(俠客)으로,

嗜酒使氣,不守細行,

술을 좋아하고 호기를 잘 부렸고

자잘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累巨產,養豪客。

그는 많은 재산을 쌓아두고서 호객들을 길렀다.

曾以武藝補淮南軍裨將,

한때는 무예로 회남군(淮南軍)의 비장[副將]에 보임되었으나

因使酒忤帥,斥逐落魄,

縱誕飲酒為事。

술 때문에 대장의 뜻을 거슬러

자리에서 쫓겨나자 실망하여

방탕하게 술마시기를 일삼았다.

家住廣陵郡東十里,所居宅南有大古槐一株,

枝幹修密,清陰數畝, 淳于生日與群豪大飲其下。

그의 집은 광릉군 동쪽 십여 리 떨어져 있었다.

사는 집 남쪽에는 오래된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길고 빽빽하여

시원한 나무 그늘은 몇 이랑이었다.

순우생[순우분]은 날마다 여러 호객들과 나무 아래서 실컷 퍼마셨다.

唐貞元七年九月,因沈醉致疾,

時二友人於坐,扶生歸家,臥於堂東廡之下。

당나라 정원 7년 9월에

술독에 빠져 병이 났는데

그때 술자리에 있던 두 친구가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와

집 동쪽 처마 아래 눕혔다.

二友謂生曰:

「子其寢矣,余將秣馬濯足,俟子小愈而去。」

두 친구가 순우생에게 말했다.

“자네는 좀 자게. 나는 말에게 꼴을 먹이고, 발을 씻고

자네가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렸다가 떠나겠네.”

生解巾就枕,昏然忽忽,仿佛若夢。

순우생은 두건을 벗고 잠자리에 들어 혼미하고 몽롱해져 마치 꿈속인 듯했다.

見二紫衣使者,跪拜生曰:「

槐安國王遣小臣致命奉邀。」

자주빛 옷을 입은 사자 둘이 나타나 꿇어앉아 순우생에게 말했다.

“괴안국 왕께서 소신들을 파견하여 모셔오시게 하셨습니다.”

生不覺下榻整衣,隨二使至門。

순우생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내려와 옷을 갖춰 입고, 두 사자를 따라 문에 이르렀다.

見青油小車,駕以四牡,

푸른 빛으로 빛나는 작은 수레엔 네 필의 말이 메어져 있었다.

左右從者七八,扶生上車,

出大戶,指古槐穴而去,使者即驅入穴中。

좌우에 시종 칠팔 명이 순우생을 부축해 수레에 태우더니

대문을 나서 고목 회나무 구멍을 향해 떠났다.

사자는 구멍 속으로 말을 몰았다.

生意頗甚異之,不敢致問。

순우생은 마음 속으로 심히 괴이했지만 감히 질문을 하지 못했다.

忽見山川風候,草木道路,與人世甚殊。

홀연히 나타난 산천과 기후, 초목과 도로는 인간 세상의 것과 매우 달랐다.

前行數十里,有郛郭城堞, 車輿人物,不絕於路。

수십리를 전진하여 나아가자 외성과 성곽이 보였는데

수레와 사람들이 도로에 끊이지 않았다.

生左右傳車者傳呼甚嚴,行者亦爭辟於左右。

순우생의 좌우에서 수레길을 터던 자들의 호령소리가 매우 엄중하니

행인들도 다투어 좌우로 길을 피했다.

又入大城,朱門重樓,樓上有金書,題曰「大槐安國」。

다시 큰 성에 들어가니 붉은 문이 중첩한 누각이 있었고

누각 위에는 금빛 글씨로 ‘대괴안국’이라 써 있었다.

執門者趨拜奔走,旋有一騎傳呼曰:

「王以駙馬遠降,令且息東華館。」因前導而去。

문을 지키던 자들이 달려와 절하고 뛰어가니 말을 탄 이가 나타나 소리쳤다.

“대왕께서는 부마가 멀리서 왕림하셨으니 지금 잠시 동화관에서 쉬시라 하셨습니다.”

그는 앞으로 인도하여 갔다.

俄見一門洞開,生降車而入。

잠시후 한 문이 열리고 순우생은 수레에서 내려 들어갔다.

彩檻雕楹,華木珍果,列植於庭下;

채색한 난간에 조각한 기둥에다 화려한 나무에는 진귀한 과일이 열렸고

정원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几案茵褥,簾幃肴膳,陳設於庭上。生心甚自悅。

책상과 안석, 자리와 요, 주렴과 휘장, 훌륭한 요리가 정원에 차려져 있었다.

순우생은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뻤다.

復有呼曰:「右相且至。」 生降階祗奉。

또 외쳤다. “우상께서 오셨습니다.”

순우생은 계단을 내려가 공손히 명을 받들었다.

有一人紫衣象簡前趨,賓主之儀敬盡焉。

붉은 옷을 입고 상아홀을 든 이가 앞으로 달려나와

손님과 주인의 의례를 갖춘 뒤 말했다.

右相曰:

「寡君不以弊國遠僻,奉迎君子,托以姻親。」

우상:“저희 대왕게서는 저희 나라가 멀고 외진 곳에 떨어져 있지만

군자를 모셔와 혼인을 부탁하려 하십니다.”

生曰:

「某以賤劣之軀,豈敢是望。」右相因請生同詣其所。

순우생:“저처럼 미천하고 못난 몸이 어찌 감히 이를 바라겠습니까?”

우상은 순우생에게 함께 왕의 처소에 나아가기를 청했다. 

行可百步,入朱門, 矛戟斧鉞,布列左右,

軍吏數百,辟易道側。

백 보쯤 가서 붉은 문을 들어서자 창과 도끼가 좌우에 늘어서고

군리 소백 명이 길 한 켠으로 피했다.

生有平生酒徒周弁者,亦趨其中,生私心悅之,不敢前問。

순우생은 평생 술마시던 주변도 그들 가운데 걸어갔다.

순우생은 마음속으로 기뻤으나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右相引生升廣殿,御衛嚴肅,若至尊之所。

우상은 순우생을 인도하여 넓은 전각에 오르게 했다.

왕의 호위가 엄숙하여 지존의 처소 같았다.

見一人長大端嚴,居正位,衣素練服,簪朱華冠。

한사람이 기골이 장대하고 엄숙하게 정위에 앉아

흰 비단옷을 입고 붉은 화관을 쓰고 잇는 것을 보고

生戰栗,不敢仰視。

순우생은 전율하고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左右侍者令生拜,王曰:

「前奉賢尊命,不棄小國,許令次女瑤芳奉事君子。」

좌우 시자들이 순우생에게 절하게 하니 왕이 말했다.

“일전에 존명을 받들었는데 소국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차녀 요방으로 군자를 받들게 허락하셨소.”

生但俯伏而已,不敢致詞。

순우생은 다만 엎드렸을 뿐, 감히 말을 올리지 못했다.

王曰:「且就賓宇,續造儀式。」

왕: “빈관으로 가 계시오. 이어서 혼인의식을 치르겠소.”

有旨,右相亦與生偕還館舍。

어지(御旨)가 있자 우상은 순우생과 함께 관사에 돌아왔다.

 

 

이공좌 - 남가태수전 02

生思念之,意以為父在邊將,

因沒(「沒」原作「歿」,據明抄本改。)虜中,不知存亡。

순우생은 곰곰이 생각하기를

‘아버님은 변방장수로 계시다가

포로로 잡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將謂父北蕃交通,(「通」原作「遜」,據明抄本改。)

而致茲事,心甚迷惑,不知其由。

또 생각했다.

‘아버님이 북번과 교통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마음이 심히 미혹되어 그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

是夕,羔雁幣帛,威容儀度,妓樂絲竹,

肴膳燈燭,車騎禮物之用,無不咸備。

그날 저녁 어린양, 기러기, 돈, 비단,

위엄 있는 혼례절차, 기녀와 악대의 악기 연주,

맛있는 요리와 등촉, 수레와 에물 등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有群女,或稱華陽姑,或稱青溪姑,

或稱上仙子,或稱下仙子,

무리의 여자들은 혹은, 화양고, 청계고, 상선자, 하선자라 불리었다.

若是者數輩,皆侍從數千,

冠翠鳳冠,衣金霞帔,采碧金鈿,目不可視。

이같은 무리들은 모두 수천의 시종을 거느리고

취봉관을 쓰고,금하피를 입고,벽금전을 꽂아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었다.

遨遊戲樂,往來其門,爭以淳于郎為戲弄。

이들은 노닐며 즐거워했고

그 문을 오가며

다투어 순우분을 희롱했다.

風態妖麗,言詞巧艷,生莫能對。

그녀들은 요염한 자태에 베어난 말솜씨를 지녀

순우생은 상대할 수 없었다.

復有一女謂生曰:

또 어떤 여자가 순우생에게 말했다.

「昨上巳日,吾從靈芝夫人過禪智寺,

於天竹院觀右(明抄本「右」作「石」。)延舞婆羅門,

지난 상사일에 저는 영지부인을 따라 선지사에 갔다가

천축원에서 석연이 바라문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吾與諸女坐北牖石榻上。

저는 여러 여자들과 북쪽 창가 돌 평상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時君少年,亦解騎來看,

그대 당신은 소년이었는데 역시 말에서 내려와 춤을 구경했습니다.

君獨強來親洽,言調笑謔。

당신은 홀로 마구 와서 접근하더니 말과 웃음으로 희롱했습니다.

吾與窮英妹結絳巾,掛於竹枝上,

나와 궁영매는 진홍빛 수건을 맺어 대나무 가지 위에 걸어 두었습니다.

君獨不憶念之乎?

그대 혼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지요?

又七月十六日,吾於孝感寺侍(「侍」原作「悟」,據明抄本改。)

上真子,聽契玄法師講觀音經。

또 7월 16일 저는 효감사에서 사진자를 모시고 계현법사께서 관음경을 강해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吾於講下捨金鳳釵兩支,上真子捨水犀合子一枚,

저는 강해 뒤에 황금 봉황의 비녀 두 개를 보시했고

상진자는 무소불로 만든 합 하나를 보시했습니다.

時君亦講筵中,於師處請釵合視之,

賞歎再三,嗟異良久。

그대 당신도 강해 자리에서 법사 계신 곳에서 비녀와 합을 보여달라고 청하고는

재삼 상탄하고 한참 동안 기이함에 감탄했습니다.

顧余輩曰:『人之與物,皆非世間所有。』

저희들을 돌아보고 말했습니다.

“인물이나 물건이 인간세상이 잇는 것이 아니구나.”

或問吾民,或訪吾里,吾亦不答。

혹은 어느 나라 백성인지 사는 곳은 어딘지를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情意戀戀,矚盼不舍,君豈不思念之乎?」

애틋한 마음으로 눈길을 거두지 못했는데 당신이 우리들을 그리워하지는 않으셨는지요?

生曰:「中心藏之,何日忘之。」

순우생이 말했다.

“마음 속에 감추고 어느 날인들 잊었겠습니까?

群女曰:「不意今日與君為眷屬。」

그녀들이 말했다.

“뜻밖에 오늘 당신과 권속이 되었군요.”

復有三人,冠帶甚偉,前拜生曰:「奉命為駙馬相者。」

또 세 사람은 관대를 위엄있게 하고 앞으로 나와 순우생에게 절을 올렸다.

“왕명을 받들어 부마의 상자[혼례를 돕는 이]가 되었습니다.

中一人,與生且故,生指曰:「子非馮翊田子華乎?」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순우생과 생과 구면이어 생이 지적하며 말했다.

“그대는 풍익의 전자화가 아닌가?”

田曰:「然。」

전: “그렇다네.”

生前,執手敘舊久之。生謂曰:「子何以居此?」

순우생은 앞으로 나아가 손을 잡고 지난 일들을 얘기했다.

순우생이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여기 사는가?”

子華曰:「吾放遊,獲受知於右相武成侯段公,因以棲托。」

전자화가 말했다.

“나는 노닐다가 우상 무성후 단공의 눈에 들어 이곳에 기탁하여 사네.”

生復問曰:「周弁在此,知之乎?」

순우생이 또 물었다. “주변이 여기 있다는데 그를 아는가?”

子華曰:

「周生貴人也,職為司隸,

權勢甚盛,吾數蒙庇護。」

전자화가 말했다.

“주생은 귀인이라 직책이 사예일세. 

권세가 심히 대단하여 나는 여러 번 비호를 받앗다네.”

言笑甚歡。俄傳聲曰:「駙馬可進矣。」

매우 기브게 담소하는 중에 잠시 후 전하는 말이 들렸다.

“부마게서 나아오십니다.”

三子取劍佩冕服更衣之。子華曰:

세 사람이 검과 패옥, 면류관을 씌우고 다시 옷을 입히자

전자화가 말했다.

「不意今日獲睹盛禮,無以相忘也。」

“뜻밖에 오늘 성대한 혼례를 보게 되었네. 서로 잊지 마세.”

有仙姬數十,奏諸異樂,

婉轉清亮,曲調淒悲,非人間之所聞聽。

선녀 수십명이 여러 기이한 음악을 연주했는데

청아하고 구성지며 곡조 또한 처량하고 구슬퍼 인간세상에서 듣던 소리가 아니었다.

有執燭引導者亦數十,左右見金翠步障,

彩碧玲瓏,不斷數里。

등촉을 든 사람들 수십 명이 좌우에서 황금과 비취색 보장을 보였는데

채색의 푸르고 영롱함이 몇 리에 이어졌다.

生端坐車中,心意恍惚,甚不自安,田子華數言笑以解之。

순우생은 수레 안에 단정히 앉아마음이 황홀하고 심히 심란하여

전자화가 몇 마디 우스개로 그 마음을 풀어 주엇다.

向者群女姑娣,各乘鳳翼輦,亦往來其間。

지난 번에 여러 여인들은 자매 사이로 각기 봉의 날개를 장식한 수레를 타고

그들 사이를 왕래했다.

至一門,號修儀宮,群仙姑姊,亦紛然在側。

수의궁이라 불리는 한 문에 이르니 여러 선녀 자매들도 어지럽게 순우생의 곁에 섰다.

令生降車輦拜,揖讓升降,一如人間。

순우생을 수레에서 내리게 한 다음 절을 하게 하였는데

앉았다 섰다 읍양하는 것이 인간 세상과 한 가지였다.

撤障去扇,見一女子,雲號金枝公主,年可十四五,儼若神仙。

보장을 거두고 부채를 치우자 한 여자가 금지공주라 불렀는데

나이는 십사오 세로 언연히 신선과 같았다.

交歡之禮,頗亦明顯。

맞절을 하고 합근(合巹)하는 의식도 자못 명료했다.

生自爾情義日洽,榮曜日盛,

순우생은 그때부터 정의(情義)가 날로 흡족하고 영광의 빛남도 날로 풍성했다.

出入車服,遊宴賓御,次於王者。

출입할 때의 수레와 의복, 유람이나 연회 때의 시위들도 왕 다음이었다.

王命生與群寮備武衛,大獵於國西靈龜山。

왕은 순우생에게 여러 관료들과 호위들을 갖추게 하고 

나라 서쪽 영귀산에서 크게 수렵하게 했다.

山阜峻秀,川澤廣遠,林樹豐茂,

飛禽走獸,無不蓄之。

산과 언덕은 험준하고 수려했고 시내와 못은 넓고도 길었으며

숲은 무성하여 날짐슬 길짐승들이 길러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師徒大獲,竟夕而還。

그들은 군사들이 많이 잡은 뒤, 저녁이 끝나고야 돌아왔다.

生因他日啟王曰:

순우생은 어느 날 왕에게 아뢰었다.

「臣頃結好之日,大王云奉臣父之命。

臣父頃佐邊將,用兵失利,陷沒胡中,

爾來絕書信十七八歲矣。

“신이 전에 혼인할 적에 대왕게서는 신의 부친의 명을 받았다 하셨는데

신의 부친은 전에 변방의 장수를 보좌하다가 용병에 실패하여 오랑캐 중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이후로 십칠팔 년이 되었습니다.

王既知所在,臣請一往拜覲。」(「覲」原作「觀」,據明抄本改。)

왕께서 이미 그 소재를 알고 계신다면 신은 한 번 가서 인사를 올리기를 청합니다.”

王遽謂曰:

「親家翁職守北土,信問不絕,

卿但具書狀知聞,未用便去。」

왕이 문득 말했다.

“부친은 북쪽 땅을 지키고 계시며 소식이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경이 편지를 써서 소식을 알리면 될 일이지 갑자기 갈 필요는 없소.”

遂命妻致饋賀之禮,一以遣之。

그리하여 아내에게 축하 예물을 보내드리게 한 후

한 사람 편에 그것을 보냈다.

數夕還答,生驗書本意,皆父平生之跡,

書中憶念教誨,情意委屈,皆如昔年。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순우생이 편지 내용을 확인해 보니 모두 아버지의 평생 자취였고

편지 안의 그리움이나 가르침, 정의 완곡함은 모두 옛날과 같았다.

復問生親戚存亡,閭里興廢。

또 순우생에게 친척의 생사와 고향 마을의 존폐에 대해 물었다.

復言路道乖遠,風煙阻絕,

詞意悲苦,言語哀傷,又不令生來覲。

또 말하기를,

길은 너무나 멀고, 바람과 연기가 가로막고 있다 했는데

말뜻이 구슬프고 말이 애절한데다 또 순우생에게 뵈러오지 못하게 했다.

云歲在丁丑,當與女相見。

정축년이 되면 너와 서로 만나게 되리라고 했다.

生捧書悲咽,情不自堪。

순우생은 편지를 움켜쥐고 슬프게 오열하며 감정을 감당하지 못했다.

他日,妻謂生曰:「子豈不思為政乎?」

어느 때 아내가 순우생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찌 정치할 생각이 없나뇨?”

生曰:「我放蕩,不習政事。」

순우생:“나는 방탕하여 정사를 익히지 못했소.”

妻曰:「卿但為之,余當奉贊。」

아내:“당신만 하시겠다면 나는 당신을 돕겠습니다.”

妻遂白於王。

드디어 아내가 왕에게 아뢰었다.

累日,謂生曰:

「吾南柯政事不理,太守黜廢,

欲藉卿才,可曲屈之,便與小女同行。」

며칠 후 왕이 순우생에게 말했다.

“내가 남가군의 정사가 잘 다스려지지 않아 태수를 폐출했소.

경의 재주를 빌리고자 하니 뜻을 굽혀 지금 내 딸과 함께 가도록 하시오.”

生敦受教命。

순우생은 삼가 교지의 명령을 받았다.

王遂敕有司備太守行李,

왕은 유사에게 태수 이의 행차를 준비토록 칙명했다.

因出金玉錦繡,箱奩僕妾車馬列於廣衢,以餞公主之行。

인하여 금옥과 비단, 상자와 남녀 종과 거마를 넓은 거리에 내어

공주의 행차를 전별하도록 했다.

生少遊俠,曾不敢有望,

至是甚悅。因上表曰:

순우생은 젊은 협사로 일찍이 감히 바란 적은 없었으나

이에 이르러 몹시 기뻐하며 표를 올렸다.

「臣將門餘子,素無藝術。

猥當大任,必敗朝章。

신은 장군 집안의 방계 후손으로 본디 재주는 없었습니다.

외람되이 이런 대임을 맡앗으니 조정의 법도를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自悲負乘,坐致覆餗。(「餗」原作「棘」,據明抄本改。)

스스로 슬퍼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레를 타게 되어

솥 안의 고기가 쏟아질까 걱정입니다.

今欲廣求賢哲,以贊不逮。

지금 현철한 이를 널리 구하여 저의 부족함을 도울까 합니다.

伏見司隸穎川周弁忠亮剛直,

守法不回,有毗佐之器。

엎드려 보건대 사예 영천 사람 주변은 충성스럽고 강직하여

법을 잘 지켜 돌이킴이 없으니 저를 보좌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處士馮翊田子華清慎通變,達政化之源。

처사 풍익 사람 전자화는 청렴하고 신중하며 변화에 통달하여

정치 교황의 근본에도 통달하였습니다.

二人與臣有十年之舊,

備知才用,可托政事。

이 두 사람은 십여 년간 신과 알고 지낸 터라

그들의 재주와 쓰임새를 잘 알고 있으니 정사를 맡길 만합니다.

周請署南柯司憲,田請署司農,

庶使臣政績有聞,憲章不紊也。」

청컨대 주변에게는 남가군의 사헌을 맡기시고 전자화에게는 사농을 맡겨 주시어

신으로 하여금 정치의 치적이 알려지게 해 주시고 법도가 어지럽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王並依表以遣之。

왕은 표문에 의거하여 그들을 파견했다.

  其夕,王與夫人餞於國南。

그날 저녁 왕과 부인은 나라 남쪽에서 전별연을 베풀었다.

王謂生曰:

「南柯國之大郡,土地豐壤,

人物豪盛,非惠政不能以治之,

況有周田二贊,卿其勉之,以副國念。」

왕이 말했다.

“남가는 나라의 큰 군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인물이 호협하고 풍성하여

자비로운 정치가 아니고는 다스릴 수 없다.

하물며 주변과 전자화가 도울 것이니 경은 힘써 나라의 뜻에 부합하도록 하시오.”

夫人戒公主曰:

「淳于郎性剛好酒,加之少年,

為婦之道,貴乎柔順,爾善事之,吾無憂矣。

부인은 공주를 경계했다.

“순우분은 성품이 강직하고 술을 좋아한다.

게다가 년소하니 부녀자의 도리를 하여 유순함을 귀히 여겨

네가 잘 섬긴다면 나는 근심이 없겠다.

南柯雖封境不遙,晨昏有間,

今日暌別,寧不沾巾。」

남가는 경계에서 멀리 있지는 않으나

혼정성신하는 것과는 간격이 있으니

오늘 이별함에 어찌 수건을 적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공좌 - 남가태수전 03

生與妻拜首南去,登車擁騎,言笑甚歡,累夕達郡。

순우생과 아내는 절을 올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수레에 오르자 기마가 그들을 에워싸니 담소하고 매우 기뻐하며

여러 날만에 남가군에 도착했다.

郡有官吏僧道耆老 音樂車輿 武衛鑾鈴,爭來迎奉,

군에서는 관리와 승려, 도사, 장로들이 나와 있었고

음악을 연주하는 수레와 난령을 울리는 호위병들이 다투어 맞이해 받들었다.

人物闐咽,鐘鼓喧嘩,不絕十數里。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종과 북소리 떠들석하여 십수 리에 끊이지 않았다.

見雉堞臺觀,佳氣鬱鬱。

성가퀴와 누대 위로 아름다운 기운이 가득 피어올랐다.

入大城門,門亦有大榜,

題以金字,曰「南柯郡城」,

큰 성문을 들어가니 문에는 큰 방을 걸었는데

금빛 글씨로 ‘남가군성’이라 적혀 있었다.

是朱軒棨戶,森然深邃。

붉은 건물과 의장대가 창을 든 외짝문은 삼엄하고 깊숙했다.

生下車,省風俗,療病苦,

政事委以周田,郡中大理。

순우생은 수레에서 내려 풍속을 살펴보고 질병과 고통을 치료하고

정사를 주변과 전자화에게 맡기니 군내가 잘 다스려졌다.

自守郡二十載,風化廣被,

百姓歌謠,建功德碑,立生祠宇。

군을 지킨 지 20년만에 풍속과 교화가 널리 퍼졌고

백성들은 그 덕을 노래하고 공덕비를 세우고 산 사람의 사당도 세웠다.

王甚重之,賜食邑,

錫爵位,居台輔。

왕은 매우 중히 여겨 식읍을 하사하고 작위도 하사하여 지위는 태보에 올랐다.

周田皆以政治著聞,遞遷大位。

주변과 전자화도 정치로 저명해져 큰 지위에 올랐다.

生有五男二女,男以門蔭授官,女亦娉於王族,

5남2녀를 낳았는데 아들들은 음관으로 관직을 제수 받았고 딸들도 왕족에게 시집갔다.

榮耀顯赫,一時之盛,代莫比之。

혁혁한 영화는 일시에 성대하여 대대로 비할 자가 없었다.

是歲,有檀蘿國者,來伐是郡。

그 해에 단라국에서 괴안국에 쳐들어왔다.

王命生練將訓師以征之,

왕은 순우생에게 장수를 뽑고 군사를 훈련하여 그들을 정벌케 했다.

乃表周弁將兵三萬, 以拒賊之眾於瑤臺城。

이에 표를 올려 주변에게 병사 3만을 주어 요대성에서적의 무리를 물리치게 했다.

弁剛勇輕進(「進」原作「適」,據明抄本改。),師徒敗績,

弁單騎裸身潛遁,夜歸城,賊亦收輜重鎧甲而還。

주변은 용감하나 경솔하게 전진하여 병사들이 전장에서 패하자

주변은 단기에 벗은 몸으로 도망하여 밤에 성으로 돌아오니

적들 또한 치중과 갑옷을 거두어 돌아갔다.

生因囚弁以請罪,王並捨之。

순우생은 주변을 가두고 죄를 청했으나 왕은 둘다 풀어주었다.

是月,司憲周弁疽發背卒。

生妻公主遘疾,旬日又薨。

그 달에 사헌 주변은 등차이 나 죽었고

아내 공주도 병이 나서 열흘만에 또 죽었다.

生因請罷郡,護喪赴國,王許之,

便以司農田子華行南柯太守事。

순우생이 파직을 청하여상을 치르러 괴안국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왕은 허락했다.

문득 사농 전자화에게 남가태수 일을 행하게 했다.

生哀慟發引,威儀在途,男女叫號,

순우생은 애통하며 발인하여 위엄있는 의장이 길에 나서자 남녀가 부르짖었고

人吏奠饌,攀轅遮道者,不可勝數,遂達於國。

백성들과 관리들은 제사상을 차리고 영구에 매달려 길을 막는 자들도 다 헤알 수 없었는데 드디어 괴안국에 도착했다.

王與夫人素衣哭於郊,候靈輿之至。

왕과 부인은 소복 차림으로 교외에 나와 울면서 영구가 이르기를 기다렸다.

謚公主曰順儀公主,備儀仗羽葆鼓吹,葬於國東十里盤龍岡。

공주에게 순의공주 시호를 내린 뒤 의장과 우보 고취악대를 갖추어

괴안국 동쪽 십리 밖에 있는 반룡강에 장례했다.

是月,故司憲子榮信亦護喪赴國。

그달에 고인이 된 사헌의 아들 영신도 영구를 모시고 괴안국으로 들어왔다.

生久鎮外藩,結好中國,

貴門豪族,靡不是洽。

순우생은 변두리를 진수하면서도 나라 안과 좋은 관계를 맺어 귀문호족들도 흡족해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自罷郡還國,出入無恒,交遊賓從,威福日盛,王意疑憚之。

그가 군의 일을 그만두고 나라에 돌아온 뒤로 아무 대나 궁궐을 출입하고

빈객들과 교유하며 위엄 잇는 복락이 날로 성대해지자 왕은 마음 속으로 의심하여 그를 꺼려했다.

時有國人上表云:

「玄象謫見,國有大恐,

都邑遷徙,宗廟崩壞。

釁起他族,事在蕭牆。」

그때 어떤 사람이 표를 올렸다.

천문에 우리나라를 견책하려는 모습이 보이니 장차 나라에 커다란 재난이 일어나

도읍을 옮기고 종묘가 붕괴될 것입니다.

일의 발단은 바깥에서 온 종족이 일으키겠지만 그 일은 내부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時議以生侈僭之應也,

遂奪生侍衛,禁生遊從,處之私第。

당시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이는 순우생이 참월한 결과라고 했다.

왕은 드디어 시위병들을 빼았고 순우생과 어울리는 것을 금지하고 자기 집안에만 머물게 했다.

生自恃守郡多年,曾無敗政,

流言怨悖,鬱鬱不樂。

순우생은 군을 다스린 오랜 세월 동안 정치를 그르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떠도는 말이 사람을 원통하게 만들고 일을 어그러뜨렸다고 답답하고 울적해했다.

王亦知之,因命生曰:

「姻親二十餘年,不幸小女夭枉,

不得與君子偕老,良用痛傷。

夫人因留孫自鞠育之。」

왕도 이를 알고 순우생에게 명했다.

“인척을 맺은 지 20여 년에 불행히도 딸아이가 요절하고

그대와 해로할 수 없게 되었으니 진실로 가슴아파한다.

부인이 존자들을 유숙시키며 양육할 것이다.”

又謂生曰:

「卿離家多時,可暫歸本里,一見親族,

諸孫留此,無以為念。後三年,當令迎生。」

또 순우생에게 말했다.

“경은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니 한 번 친족들을 만나 보시오.

손자들은 여기 두고 아무 걱정 마시오. 삼 년 후에 그대를 영접해 오도록 하겠소.”

生曰:「此乃家矣,何更歸焉?」

순우생이 말했다.

“여기가 제 집인데 어디로 또 돌아갑니까?”

王笑曰:「卿本人間,家非在此。」

왕이 웃었다.

“경은 본디 인간세상 사람이니 집은 여기가 아니오.”

生忽若惛睡,瞢然久之,

方乃發悟前事,遂流涕請還。

순우생은 흐릿하게 잠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한참 동안 혼미해지더니 바야흐로 전에 일이 깨닫고는 드디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기를 청했다.

王顧左右以送生,生再拜而去。

왕은 좌우를 돌아보고 순우생을 떠나게 하자 순우생은 재배하고 떠났다.

復見前二紫衣使者從焉,至大戶外,

見所乘車甚劣,左右親使御僕,

遂無一人,心甚歎異。

또 전에는 붉은 옷을 입었던 두 사자가 따랐는데 문 밖에 이르러 보니 타고 왓던 수레는 매우 형편없었고

좌우에 가깝게 부리던 사자와 마부가 드디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마음 속으로 매우 괴이히 여겼다.

生上車行可數里,復出大城,

宛是昔年東來之途,山川源野,依然如舊。

순우생이 수레에 올라 몇 리를 가서 다시 큰 성을 나가니

완연히 예전에 동쪽으로 오던 그 길이었으며 산천과 들판도 옛날과 같았다.

所送二使者,甚無威勢,生逾怏怏。

전송온 두 사자는 위세라고는 도무지 없어 새은 더욱 불만스러웠다.

生問使者曰:「廣陵郡何時可到?」

순우생은 사자에게 물었다.

“광릉군에는 언쩨 도착하느냐?”

二使謳歌自若。

久之(原空一格,據明抄本補「久之」二字。)乃答曰:「少頃即至。」

두 사자는 태연작약하게 노래만 부르다가 한참만에 대답했다.

“조금만 있으면 도착합니다.”

俄出一穴,見本里閭巷,不改往日。

잠깐 후 구멍 하나를 나오니 고향마을이 보였는데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潸然自悲,不覺流涕。

순우생은 슬퍼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二使者引生下車,入其門,升自階,己身臥於堂東廡之下。

두 사자는 순우생을 인도하여 수레에서 내리게 했다.

문에 들어가 계단을 올랐는데 이미 몸은 동쪽 처마 아래 누워 있었다.

生甚驚畏,不敢前近。

순우생은 놀랍고 두려워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二使因大呼生之姓名數聲,生遂發寤如初,

두 사자가 순우생의 성명을 여러 차레 부르자 생은 처음처럼 잠에서 깨어났다.



이공좌 - 남가태수전 04

見家之僮僕,擁篲於庭,二客濯足於榻,

집의 가동들은 들에서 비질을 했고, 두 객은 의자에 앉아 발을 씻고 있었다.

斜日未隱於西垣,餘樽尚湛於東牖。

비낀 해는 서쪽 담 아래 숨지 못했고, 동쪽 창가에는 술독에 남은 술이 아직도 맑았다.

夢中倏忽,若度一世矣, 生感念嗟歎,遂呼二客而語之,

꿈 속에 한 순간이 마치 일생을 보낸 듯하여

그는 생각에 잠겨 탄식하다가 드디어 두 객을 불러 들려 주었다.

驚駭,因與生出外,尋槐下穴。

그들은 깜작 놀라 순우생과 문 밖으로 나가 회나무 아래 구멍을 찾아보았다.

生指曰:「此即夢中所驚入處。」

순우생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곧 꿈 속에서 놀라 들어간 곳일세.”

二客將謂狐狸木媚之所為祟,

遂命僕夫荷斤斧,斷擁腫,

折查蘗,尋穴究源。

두 나그네는 여우나 나무요괴가 저지른 짓이라 여기고

드디어 하인에게 도끼를 가져다 옹종을 자르고

나뭇가지와 순을 자르고 구멍을 찾아 근원을 찾게 했다.

旁可袤丈,有大穴,根洞然明朗,可容一榻,

곁으로 길이 한 길쯤 되는 곳에 큰 구멍이 있었는데

뿌리 아래가 훤히 뚫려 있어 의자 하나를 용납할 만했다.

上有積土壤,以為城郭臺殿之狀,

그 위에는 흙이 쌓여 있었는데 성곽이나 대를 갖춘 전각의 모습이었다.

有蟻數斛,隱聚其中。

中有小臺,其色若丹,

개미 몇 곡(斛)이 그 가운데 숨어서 모여 있었고

가운데 작은 대에는 그 색이 단사빛이었다.

二大蟻處之,素翼朱首,長可三寸,

左右大蟻數十輔之,諸蟻不敢近,

두 마리의 큰 개미가 거기에 거처했는데

흰 날개에 붉은 머리를 가진 길이는 3촌쯤 되었고

좌우에 큰 개미 수십 마리가 두 마리를 보좌하여

여러 개미들은 감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此其王矣,即槐安國都也。

이 두 마리가 왕이었고 곧 괴안국의 도성이었다.

又窮一穴,直上南枝可四丈,

宛轉方中,亦有土城小樓,

群蟻亦處其中,即生所領南柯郡也。

또 다른 구멍 하나를 파들어가니 곧장 남쪽으로 난 가지 위 네 길쯤 되는 곳에는

네모나게 파인 개미굴에도 토성과 작은 누각이 있어

개미떼들도 그 안에 거처하니 곧 순우생이 다스리던 남가군이었다.

又一穴,西去二丈,磅礡空朽,嵌窞異狀,

또 한 구멍에는 서쪽으로 두 길쯤 되는 곳에는

널찍하게 속이 텅 비었는데 골짜기 작은 구덩이는 이상한 모습이었고

中有一腐龜殼,大如斗,

積雨浸潤,小草叢生,

繁茂翳薈,掩映振殼,

即生所獵靈龜山也。

가운데 썩은 거북 껍질 하나는 크기가 한 됫박은 되었는데

빗물이 촉촉이 베어들어 작은 풀들이 무리지어 자라나

무성하고 백빽한 그늘을 드리웠고

해를 가린 채 거북껍질을 진동하였다.

곧 순우생이 수렵하던 영귀산이었다.

又窮一穴,東去丈餘,

古根盤屈,若龍虺之狀,

또 동굴 끝까지 따라가 보니 동쪽으로 한 길 남짓 떨어진 곳에

고목의 나무뿌리가 친친 감겨 있어 그 모습니 마치 뱀 같았다.

中有小土壤,高尺餘,

即生所葬妻盤龍岡之墓也。

가운데는 작은 흙무덤이 높이가 한 자 남짓이었는데

곧 순우생이 아내를 장례지낸 반룡강의 무덤이었다.

追想前事,感歎於懷,

披閱窮跡,皆符所夢。

그는 전의 일을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감탄했는데

흔적들을 샅샅이 따라가며 추적해 보니 모두 꿈에 부합했다.

不欲二客壞之,遽令掩塞如舊。

그는 두 객에게 그것들을 무너뜨리게 하고 싶지 않아

급히 에전처럼 덮어서 막아놓게 했다

是夕,風雨暴發。

旦視其穴,遂失群蟻,莫知所去。

그날 저녁 비바람이 갑자기 일어났는데 아침에 그 구멍을 보니

드디어 개미떼는 보이지 않고 간 곳을 알지 못했다.

故先言國有大恐,都邑遷徙,此其驗矣。

전에 나라에 큰 공포가 생겨 도읍을 옮길 것이라는 예언이 이로써 증험되었다.

復念檀蘿征伐之事,又請二客訪跡於外。

순우생은 단라국을 정벌했던 일을 생각하고

또 두 객에게 밖으로 나가 그 흔적을 찾아보기를 청했다.

宅東一里,有古涸澗,側有大檀樹一株,

藤蘿擁織,上不見日,

집에서 동쪽으로 1리쯤 되는 곳에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된 계곡이 있었는데

그 곁에는 큰 박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등나무 넝쿨이 그 나무를 친친 감고 있어 위로 해가 보이지 않았다.

旁有小穴,亦有群蟻隱聚其間,

곁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또한 개미떼가 그 사이에 숨어 모여 있었다.

檀蘿之國,豈非此耶!

단라국이란 어찌 이것이 아니겠는가?

嗟乎!蟻之靈異,猶不可窮,

況山藏木伏之大者所變化乎?

아, 개미의 영이함도 이처럼 끝이 없으니

하물며 산속에 숨은 것들[짐승]과 나무에 엎드린 것들[새들]의 변화하는 것들이랴!

時生酒徒周弁、田子華,

並居六合縣,不與生過從旬日矣,

그때 술친구였던 주변과 전자화는 모두 육합현에 살았는데

순우생과 만나지 않은 지 열흘이나 되었다.

生遽遣家僮疾往候之。

周生暴疾已逝,田子華亦寢疾於床。

순우생이 가동을 보내 발리 가서 안부를 물어보게 하였는데

주생은 갑자기 병이 나서 이미 죽었고 전자화도 침상에 몸져 누워 있었다.

生感南柯之浮虛,悟人世之倏忽,

遂棲心道門,絕棄酒色。

순우생은 남가의 허탄함을 느끼고 인생을 쏜살 같음을 깨닫고

드디어 마음을 도문(道門)에 귀의하여 술과 여색를 끊었다.

後三年,歲在丁丑,亦終於家,

時年四十七,將符宿契之限矣。

그후 3년 뒤 정축년에 또한 집에서 죽으니 그 때 나이 47세였다.

오래전에 기약한 시한에 부합했다.

公佐貞元十八年秋八月,

自吳之洛,暫泊淮浦,

偶覿淳于生棼,詢訪遺跡。

이공좌는 정원18년(802년) 팔월에 오 땅에서 낙양으로 가다가 잠시 회포에 정박하였었는데

우연히 순우분을 만나 개미들의 유적을 찾아갔다.

翻復再三,事皆摭實,

輒編錄成傳,以資好事。

두어 차례 반복해서 확인해 본 결과 그 일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하고

문득 기록을 얶어 전을 지어 호사가들에게 이야기거리를 제공한다.

雖稽神語怪,事涉非經,

而竊位著生,冀將為戒。

황당무계하고 말이 괴이하여 일이 이치에 어긋나는 것도 많지만

관직을 훔쳐 벼슬에 빌붙어 사는 자들이 경계로 삼기를 기대한다.

後之君子,幸以南柯為偶然,

無以名位驕於天壤間云。

훗날 군자들이 다행히 남가를 우연이라 생각하고

명예와 지위로 세상에 교만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前華州參軍李肇贊曰:

전 화주참군 이조가 찬을 지었다.

「貴極祿位,權傾國都。

達人視此,蟻聚何殊。」(出《異聞錄》)

부귀와 관직이 지극하고 권세가 도성을 기울여도

달관한 이들이 보면 개미떼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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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설

중국 소설의 기원 니하오 차이나 | 다크블루 http://blog.naver.com/bonny21/80014783119일반적으로 서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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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제와 오늘 발췌>

중국 고대소설 - 남가태수전

당대 전기소설은 비록 그 표현이 통속적인 구어체가 아닌 문언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민대중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단점도 안고 있지만, 등장인물과 내용 등은 일반 평민의 이야기를 위주로 하고, 현실사회를 반영한 것들로서, 이전의 중국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교적 근대적 의미의 소설에 가까운 형태의 문학작품으로 등장한다.

당 전기는 ≪태평광기(太平廣記)≫에만도 무려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실려있으며, ≪고금설해(古今說海)≫≪당조소설대관(唐朝小說大觀)≫≪당인설회(唐人說회)≫ 등에도 다량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앵앵전(鶯鶯傳)><이와전(李娃傳)><곽소옥전(곽小玉傳)>과 더불어 당 전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인 <남가태수전>은 신괴적·풍자적·종교적 색채를 띠면서 "꿈"을 소재로 한 이공좌(李公佐)의 환몽소설이다.

<남가태수전>은 ≪태평광기≫ 권475에 수록되어 있고, 제목은 <순우분(淳于분)>이라 되어 있다. 그리고 당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에서는 <유전의혈이칭이공좌남가태수(有傳蟻穴而稱李公佐南柯太守)>라 하였고, ≪당어림(唐語林)≫에도 같은 기록이 있으며, ≪당인설회≫에도 <남가기(南柯記)>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남가태수전>의 작자는 이공좌(李公佐)이다. 이공자의 생애는 열전도 없고 문집도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작품과 역사서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들을 참고하면, 그의 자는 전몽(전蒙)이고 농서(농西)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여 원화(元和) 연간에 강회(江淮)의 종사(從事)가 되었다가 뒤에 그만두고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회창(會昌) 초에 또 양부(楊府)의 서기가 되었으나 대중(大中) 2년에 연좌되어 파직당하였다. 이로써 그는 대략 대종(代宗) 때에 출생하여 선종(宣宗) 초까지는 생존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나머지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이공좌의 작품으로는 현재 4편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남가태수전>이 가장 유명하다.

당 전기 중에서 "꿈"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남가태수전> 외에, <침중기(枕中記)><앵도청의(櫻桃靑衣)><삼몽기(三夢記)><이몽록<異夢錄)><진몽기(秦夢記)> 등이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환몽소설이라 할 수 있다.

 

☞ <남가태수전>의 구성·인물·배경

구성은 플롯(plot)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되 개연성이 있도록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단계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나눈다. 같은 환몽류 소설 속에서도 <삼몽기><이몽록><진몽기> 등은 이러한 구성의 체재를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남가태수전>은 <침중기><앵도청의>와 함께 구성의 근대적 체재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면에서는 이들 중 가장 뛰어나다.

먼저 <남가태수전>의 사건 전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순우분이 무예를 인정받아 회남군부장(淮南軍副將)에 임명되었으나, 술을 마시고 멋대로 놀다가 파면된다.

② 집에 돌아와 하는 일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낸다.

③ 어느날 술에 취하여 두 친구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뒤 꿈을 꾼다.

④ 두 사람의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를 따라 대괴안국(大槐安國)에 들어간다.

⑤ 임금의 명에 의하여 요방공주(瑤芳公主)와 결혼한다.

⑥ 공주의 권유로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된다.

⑦ 20여년 동안 남가군을 잘 다스려 백성들의 인심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⑧ 단라국(檀蘿國)의 침입으로 왕명을 받고 주변(周弁)을 파견하여 대적하게 했으나, 주변이 전쟁에서 그를 옥에 가두고 왕에게 함께 벌을 받을 것을 청한다.

⑨ 왕은 모든 것을 용서했으나 갑자기 주변과 공주가 병으로 죽는다.

⑩ 이들의 죽음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뒤 그의 세력이 너무 강대해지자 왕은 그를 꺼리게 된다.

⑪ 왕은 그의 생활을 구속한 후, 3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⑫ 깨어나서 보니 주위는 처음과 같았고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곳이 개미굴임을 확인한다.

⑬ 이에 남가(南柯)의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주색을 끊고 도문(道門)에 들어가 3년 후에 죽는다.

 

위에 열거한 사건전개를 바탕으로 이를 근대적 소설의 구성체재에 적용하면, ①~③을 발단, ④~⑦을 전개, ⑧~⑩을 위기, ⑪을 절정, ⑫~⑬을 결말로 볼 수 있으니, <남가태수전>은 그 구성 체재에 있어 근대적 면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남가태수전>은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 <침중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나, 단지 <침중기>는 주인공 노생(盧生)이 모함을 받아 붙잡혀 귀양갔다가 누명을 벗고 다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으로 위기가 전환되도록 사건을 구성해가는데 비해, <남가태수전>은 공주의 죽음 이후 계속적으로 몰락해가는 위기의 절정으로 사건을 구성해가고 있는 것이 다르다 하겠다.

<남가태수전>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주인공 순우분과 두 친구, 자줏빛 옷을 입은 두 사자, 우승상, 주변, 왕과 왕비, 요방공주(금지공주), 화양고(華陽姑), 청계고(靑溪姑), 상선자(上仙子), 하선자(下仙子), 영지부인(靈芝夫人), 전자화(田子華), 순우분의 아들과 딸 등 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순우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비교적 비중이 적은 인물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주변과 전자화는 현세에서 주인공의 친구인데, 꿈속에서도 등장하여 친구의 역할을 그대로 한다는 점이다. 또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주변은 이미 죽고 전자화는 병들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꿈속의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한층 자아내게 한 작자의 뛰어난 인물 설정이다.

<남가태수전>은 유(儒) 불(佛) 도(道)의 사상적 배경 아래 "현실 - 꿈 - 현실"로 이어지는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꿈속에서의 상황은 작자가 살던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허구와 진실성

중국문학에 있어 소설이란 명칭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을 동시에 함축하는 용어이다. 첫째, 소설은 반고의 ≪한서·예문지≫ "소설가"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경향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청대 말기까지 중국의 목록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온 비교적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둘째, 1900년대 이래로 사용되어 온 소설이라는 용어는 보다 구체화된 의미로서 산문과 허구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형식을 지칭한다. 물론 이 두 가지 개념을 서로 분리시켜 논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소설창작에 있어 예술적 허구가 필수적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허구의 개념이 아직 설정되지도 않고 소설의 개념이 명백하지 못했던 당대(唐代)에 어떻게 예술적 허구가 설정되어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서의 기본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가?

문학은 좁은 의미에서 상상력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상상력의 문학이 곧 허구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예창작물은 그 제재가 작자의 상상에 의하여 설정되어 본래부터 거짓일지라도 오히려 실질적인 정감이 있으면 독자에게 믿을 만한 진실을 느끼도록 한다. 따라서 허구의 또다른 개념은 당위적 진실의 추구에 있게되며, 이렇게 볼 때 소설의 허구란 곧 진실성을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 이전의 지괴소설에서는 그러한 허구의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 당대에 이르러서는 획기적인 변혁의 하나로 허구의 진실성이 엿보이는 듯 하다. 그 구체적인 예로 <남가태수전>에 있어서 인물과 배경은 모두 작자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적인 것이다. 특히 꿈속에서 설정된 대괴안국의 상황은 그러한 작자의 상상력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주인공 순우분이 대괴안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로 육조의 신선괴담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남가태수전>이 육조의 지괴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인공의 "꿈"으로써 독자와의 거리감을 해소시키면서 당위적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 이전 - 꿈 - 꿈 이후"의 구조는 대부분의 환몽소설에서 공통되는 요소이다. 즉, 꿈 이전과 꿈 이후는 현실세계이고, 꿈은 비현실의 세계이다. 바꿔 말하면, 꿈 이전과 꿈 이후인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이 꿈인 비현실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가태수전>은 회(槐, 아카시아)나무 밑의 굴을 통하여 별세계로 들어가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나아가서는 남가태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고, 또 이런 것들을 개미의 의인화를 통하여 인간과의 직접적인 연관관계 속에 사회를 반영하였는데, 이러한 사건전개는 바로 "꿈"이라는 매개공간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의 "꿈"은 환상적 체험을 꿀어들이는 장치로서 환상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방안이고 주제와도 연결될 새롭게 각성된 의식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허구를 통한 당위적 진실을 추구한 근대적 개념에 비교적 가까운 구조 속에서 소설의 기본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점에 있어서 <남가태수전>은 지괴소설의 구성과는 매우 다른 발전된 형태이며, 그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침중기>와는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 현실사회의 반영

<남가태수전>은 환몽구조를 통하여 당시의 현실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작품 속에 나타난 당시의 사회문제와 그것을 어떻게 소설적으로 해결해 나갔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주인공 순우분은 무관으로 복역한 적은 있었으나 방탕한 행동으로 파직당하여 아무 하는 일 없이 술만 마시며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당시에 관직에서 쫓겨났거나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이러한 그가 꿈속의 대괴안국에서 부마가 되고 남가태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은 곧 당시의 문인들이 자신들의 신분 내에서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절실한 출세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해 준다. 이러한 것은 <침중기>의 내용이나, 당시의 안록산(安祿山)·곽자의(郭子儀) 등 "출장입상"의 꿈을 실제로 누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둘째, 당시의 문인들이 혼인을 출세의 한 수단으로 여겼던 또다른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즉, 순우분이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첫 과정은 대괴안국의 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됨으로써 이루어져 권문세가와의 결합을 통해 영달을 꿈구는 출세주의적인 당시의 사풍(士風)을 묘사하고 있다. <침중기>에서도 주인공 노생이 당시 5대성의 하나였던 최씨(崔氏)의 딸과 혼인하여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작자가 소설의 끝 부분에서 "그러나 벼슬자리를 도둑질하여 탐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경계가 되기를 바란다.(而竊位著生, 冀將爲戒.)"고 하여, 허황된 꿈을 불합리하게 성취하려는 사회풍조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에서 당시의 사회가 어떠했는가를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설문학은 단순히 현실사회의 반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소설적 해결을 담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남가태수전>은 순우분이 꿈속에서 깨어난 후, 남가(南柯)의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깨닫는 것으로 사회문제의 소설적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 사상

당대는 유·불·도의 사상이 융합된 시기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3가의 사상을 동시에 이어받고 있는데 소설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첫째, <남가태수전>에는 유가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있지 않을 뿐, 그 사상적 배경이 내면에 깔려 있다. 즉, 소설의 끝 부분에서 작자가 "비록 신괴한 일을 담론한다는 것은 성인의 경전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벼슬자리를 도둑질하여 탐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경계가 되기를 바란다. 후세의 군자들은 이 남가의 꿈을 우연한 일이라고 무시하고 명성이나 지위가 있다고 해서 이 천지간에서 교만하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雖稽神語怪, 事涉非經, 而竊位著生, 冀將爲戒, 後之君子, 幸以南柯爲偶然, 無以名位驕于天壤間云.)"라고 말한 부분에서 공자의 "괴상하고 힘쓰는 일과 어지럽히고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不語怪力亂神.)"는 사상을 의식한 것과,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려서는 안된다.(≪論語≫「里仁」: 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는 유가의 전통적인 교훈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도가사상에 신선사상과 민속신앙이 혼합되어 종교로서의 조직과 체계를 갖춘 도교사상을 볼 수 있다. 즉, 주인공 순우분은 부귀영화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고 주색을 끊고 도문(道門)에 귀의하게 되는데, 이것은 도교의 초월적 비세속적인 은일사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사상은 바로 불교사상이다. 예를 들면, 순우분은 북방을 지키고 있던 관리인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내어 서로 연락을 취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답장에서, "……정축년에는 너와 만나보게 될 것이다.(歲在丁丑, 當與女相見.)"라고 한 것과, 순우분이 대괴안국을 떠나올 때 왕이 "3년 뒤에는 마땅이 그대를 맞아오도록 하겠노라.(後三年, 當令迎生.)"라고 한 것은 뒤에 순우분이 꿈에서 깨어나 도문에 귀의한 후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작자가 "그 후 3년이 지난 다음 정축년에 그도 자기집에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마니 ……(後三年, 歲在丁丑, 亦終于家……)"라고 한 구절과 완전히 부합된다. 여기에서 불교의 내세사상과 인연설이나 윤회사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善)을 쌓으면 반드시 진실한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불교사상의 배경하에서 순우분이 선을 쌓는 방안으로 도문을 택한 것은 당시 사회에 불교와 도교의 영향관계가 매우 밀접하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 맺음말

당대의 유불도의 융합된 사상적 배경과 "꿈 이전 - 꿈 - 꿈 이후"의 공간적 구조를 통하여 당시의 불합리했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남가태수전>은 인물·배경·구성의 묘사와 현대소설이 갖는 허구성을 갖추고 사회적 모순을 소설로써 해결한 비교적 근대적 의미의 소설 개념에 가까운 형태로 접근한 작품이다. 특히 소설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시기에 이전의 지괴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주인공의 평민계층화, 발전된 인물묘사, 인간사회의 모습을 소설에 반영한 점 등은 <남가태수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당 전기에 나타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 전기를 근대적 의미의 소설의 출발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가태수전>을 비롯한 당 전기가 완전한 소설로 평가되기에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문언체로 쓰여져 일반 서민대중을 독자로 하지 못했다.

둘째, 유가의 사상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흔적으로 소설의 처음 인물묘사와 끝 부분에서 사전체(史傳體)적인 기술을 하였다.

셋째, 이야기의 전개가 지극히 단조롭다.

 

한단지몽 [邯鄲之夢]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노생(盧生)이 한단의 장터에서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는 동안 일생의 경력을 모두 꿈꾼 고사에서 나온 말로, 인간 일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심기제(沈旣濟)는 중국 중당(中唐)의 전기작가(傳奇作家)로, 당대(唐代)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를 저술하여, 명나라 탕현조(湯顯祖)의 희곡 《한단기(邯鄲記)》의 바탕이 되었다.

다음은 《침중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 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

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메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이 이야기에서 '한단지몽'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인간의 부귀영화나 인생의 영고성쇠가 다 꿈같이 부질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단몽(邯鄲夢)·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황량지몽(黃粱之夢)·

일취지몽(一炊之夢)이라고도 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701806

 

 

최초의 인간 인류의 탄생 

https://www.youtube.com/watch?v=zgTaLUk4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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