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34- 신주함이 닫혔네 (祭祀失禮)

 

한 사람이 매우 우둔하고 어리석어,

제사 절차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아들 삼형제에게

제사 절차를 가르쳐 주면서,

잘 기억하고 있다가

차질 없이 모시도록 하라고

일러 놓았다.

그러나 아들들 역시 명석하지 못하여,

항상 그 절차 중

몇 가지를 빼먹거나 헤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제사 때는 제대로 모시려고,

며칠 전에 부친이 아들 셋을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제사 때마다

제대로 못하고 헤매니,

금년에는 모든 절차를 순서대로 적어놓고,

그 홀기(笏記)

막내가 그대로 따라 부르면서

제사를 모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같이 선언한 뒤,

제사 절차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전부 차례대로 적었다.

그리고는 막내아들에게

그대로 부르라고 하여

차례로 제사를 모시니,

모든 일이 순서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이에 부친은 장남을 보고 말했다.

"어떠냐? 이번 제사는

아무 문제없이

예법에 맞게 잘 모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떤지 말해 보아라."

", 아버님 말씀처럼 이번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예법에 맞게 잘 모신 듯하옵니다."

 

이어서 부친은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자,

그 역시 절차에 맞게

잘 모셨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부친은 매우 좋아하며

막내아들에게 물었다.

"막내야, 네 형들이 이번 제사는

절차대로 잘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네 생각에는 어떤지 말해 보려무나."

", 아버님!

매우 잘 된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한 가지

흠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아니, 얘야! 흠이라니?

대체 무슨 흠이 있었다는 건지

어서 말해 보아라."

", 소자가 홀기를 부르다 보니

너무 절차에만 얽매여,

신주함을 열지 않은 채

제사를 모시게 된 것이 흠인 듯하옵니다."

이에 부친과 두 아들은 깜짝 놀랐더라 한다.

206 견비회삼수지이(遣悲懷三首之二)-원진(元稹779-831)

슬픈 회포를 풀다

 

昔日戱言身后事,(석일희언신후사), 지난 어느 날 죽은 뒤 세상을 농담으로 했더니

今朝都到眼前來.(금조도도안전내). 오늘 아침 모두가 눈앞의 현실이 되었구료

衣裳已施行看盡,(의상이시항간진), 옷들은 이미 남에게 주고 보이는 대로 다 주었으나

針線猶存未忍開.(침선유존미인개). 그대가 바느질한 옷 아직 있느니 차마 열지도 못했소

尙想舊情憐婢仆,(상상구정련비부), 옛 정을 생각하여 그때 종들을 불쌍히 여기고

也曾因夢送錢財.(야증인몽송전재). 또한 그대를 꿈에 본 일로 돈을 불살라 보냅니다

誠知此恨人人有,(성지차한인인유), 진실로 이런 한은 사람마다 다 있는 줄 알지만

貧賤夫妻百事哀.(빈천부처백사애). 가난하고 천한 부부에게는 온갖 일이 다 서러운 일이라오

 

[안병렬 역]

206.원진元稹779-831)

슬픈 회포를 쏟다 其二/三首

 

옛날에 농잠으로

죽은 뒤의 일 얘기했더니

오늘사 모두가

눈앞에 왔구나.

 

옷들은 이미 남에게 주고

또 보이는 대로 주겠지만

그대 손수 바느질한 것은

차마 열지 못하겠네.

 

옛정을 생각하여

그때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고

꿈에 그대를 보고서

돈을 불살라 보내노라.

 

진실로 이런 한이야

사람마다 다 있는 줄 알지만

가난하고 천한 부부는

온갖 일 다 서러워라.

 

고금소총 제433- 짊어지고 못 일어나는 차이 (負豆有異)

 

한 무인이 몸집이 크고 장대했으며,

젊었을 때는 기운이 무척 세니

장사라고 불렸었다.

이 무인이 나이가 좀 들고 나서

한 재상 댁을 방문해 인사를 드리자,

재상은 이렇게 물었다.

"영감의 기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한지요?"

", 소인이 일전에는

팥 두 섬을 짊어지고 시험해 보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전과 다름없이 똑같았고,

어떤 경우는 전에 비해

조금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에 재상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물었다.

"정말 장사로군요.

그런데 그 어떤 경우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한번 설명해 보시지요."

", 첫 번째 경우는

팥 두 섬을 새끼로 똘똘 묶어

돌 위에 올려놓고

앉아서 짊어져 보는 것인데

이 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만,

두 번째 경우는

이 팥 두 섬을

전날에는 짊어지고

거뜬히 일어났는데,

지금은 일어나지 못하는 점이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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