蜀道難(촉도난, 天山길의 험난함)

李白

 

蜀道難<蜀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蜀道: 陜西에서 四川으로 가는 길. 잔도(棧道) 많음. 밑줄친 글자는 운자.

 

噫吁戱 危乎高哉 아, 위험하고도 높음이여,

蜀道之難難於上靑 촉으로 가는 길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蠶叢及魚鳧 촉나라 임금의 선조들이여

⋅蠶叢잠총⋅어부;蜀王 선조의 명칭.

開國何茫 개국은 아득하여

爾來四萬八千歲 그 후 사만팔천년

始與秦塞通人 처음으로 진나라 변방과 통하였네.

西當太白有鳥道 서쪽으로 太白山엔 鳥道가 겨우 있어

可以橫絶峨眉 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地崩山摧壯士死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이고 장사가 죽고서야

然後天梯石棧相鉤 구름 다리 돌다리 비로소 놓였다. ⋅鉤구;갈구리,낫,창

上有六龍回日之高標 위에선 정상에서 六龍이 해를 끌고

下有衝波逆折之回 아래선 回川에서 부딪치는 파도가 물을 돌린다.

黃鶴之飛尙不得 황학이 날아도 정상엔 못 이르고

猿猱欲度愁攀[先韻]원숭이 넘으려 해도 등반을 걱정한다.猿猱원노;원숭이와 큰 원숭이. 攀(반);더위잡다.登攀. 援(원);끌어잡다,당기다.靑泥何盤 청니(靑泥) 영마루 어찌나 꼬불꼬불한 지 ⋅靑泥청니;산고개 이름百步九折縈巖 백 걸음에 아홉 구비 바위산을 감쌌다. ⋅縈영;얽히다,두르다. 巒(만);뫼

捫參歷井仰脅息 삼태성을 만질 듯,정성(井星)을 지날 듯,우러러 숨 죽이고

⋅井;모두 별이름.脅(협);옆구리以手撫膺坐長[寒韻] 손으로 가슴 쓸고 앉아 길이 탄식한다. ⋅膺응;가슴問君西遊何時 묻노니 그대여, 서방여행에서 언제 돌아오려나?畏途巉巖不可 길이 높고 험한 바위여서 오르지 못할까 두렵구나.⋅巉참:가파르다.

但見悲鳥號古木 다만 보이는 건 고목에서 슬피 우는 새들뿐

⋅號호:부르짖다,통곡하다,호령하다

雄飛雌從繞林 수놈 날자 암놈 좇아 숲을 감도누나. ⋅繞(요);두르다,감다.

又聞子規啼夜月 들리나니 달밤에 우는 자규의 울음, ⋅子規;소쩍새

愁空 쓸쓸한 산엔 시름뿐.

蜀道之難難於上靑天 촉으로 가는 길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使人聽此凋朱[刪韻] 사람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면 붉은 얼굴빛이 가신다.⋅凋(조);시들다.連峯去天不盈 연이은 봉우리 하늘과 한 자도 떨어지지 않았는데枯松倒挂倚絶[入聲 陌韻] 마른 소나무 절벽을 의지하여 거꾸로 걸리었네. 飛湍瀑流爭喧 나는 여울물과 사나운 물결 시끄러움을 다투는데⋅湍단;여울,급류.豗회:떠들석할. 喧훤;싸움하다砯厓轉石萬壑 물결치는 낭떠러지 구르는 돌들로 골짜기마다 우뢰 소리.

⋅빙:물소리. 厓(애);언덕,물가,한계

其險也如此 험남함이 이와 같은데

嗟爾遠道之人 아, 먼길 떠난 사람이여!

胡爲乎來 어떻게 오시려나?劍閣嶸而崔검각산(劍閣山) 가파르고 높기도하여 嶸쟁영;가파르다. 崔嵬최외;높다一夫當關萬夫莫[灰韻] 한 사람이 관문 지키면 만 사람도 못 여나니

所守或匪親 관문지기 친한 이 아니면

化爲狼與[佳韻] 이리나 승냥이의 먹이 되리라. ⋅豺시;승냥이朝避猛虎 夕避長 아침에는 맹호를 피하고 저녁에는 긴 뱀을 피할지니磨牙吮血 殺人與 이 갈고 피 빨아 죽은 이가 삼대처럼 많다오. ⋅吮연:빨다.

錦城雖云樂 금관성(錦官城) 여행 비록 즐겁다지만

⋅금성;여기서는 두루 사천성(四川省)을 가리킴

不如早還 일찍 귀가함만 같지 못하다.

蜀道之難難於上靑天 촉으로 가는 길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側身西望長咨[麻韻] 몸 돌려 서천(西天) 향해 길게 한숨 진다.⋅자;묻다,탄식하다. 차;탄식하다,슬프다

⃟先・寒・刪韻은 古詩에서 通押. 灰・佳韻은 古詩에서 通押.

 

[섬서성 화산] 1st.화산의 잔도











 

 

[사진]1988년 내가 처음 출간했던 책의 표지입니다. 1993년 작품 및 관련 자료를 얹어 증보판을 출간하였습니다.

[주]중학동기 한 분이 동기들 홈피에 <호질>을 소개한 글이 있어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원섭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섭님의 탐구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열하일기> 25권은 조선후기에 쓴 책 중 베스트셀러에 속합니다.

내용면에서도 박제가의 <북학의>와 함께 당대 양반관료지식인 그룹이 몰두하던 성리학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로 개설과 수레의 제작, 해외무역 등을 통한 물류의 유통, 수로(水路)와 수차(水車)의 개발 등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한 북학파의 주장을 대변합니다. 조선 후기 지성의 압권이라 할 만합니다.

북한의 <조선문학사>에도 이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호질’이란 제목은 없고, <범의 꾸중>이라고 제목을 번역하여 실었습니다.

아래에 <호질>의 이해를 위한 자료 주소창을 소개하고 ‘연구요약’을 옮겨 봅니다.

‘연구요약’의 주소창을 클릭한 내용입니다.

 

원문 & 번역 대역

http://blog.naver.com/osj1952/100024984969

 

호질(虎叱)-박지원(朴趾源)

호질(虎叱)-박지원(朴趾源) 호랑이의 질책-박지원(朴趾源) 虎睿聖文武慈孝智仁雄勇壯猛(호예성문무자효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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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주석과 함께 읽을 것]

http://cafe.naver.com/komup/29

 

호질(虎叱)

범은 착하며 성스럽고, 문채로우면서 싸움 잘 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영웅스러우며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 없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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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

http://cafe.naver.com/muzasicsangpalza/61

 

호질-박지원

호 질 박지원 <호질의 작가> 박지원은 <호질>은 원작자가 중국인이고, 자신은 수정 가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연암의 이 진술을 믿어야 좋을 듯하다. 실제로 <광문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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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질(虎叱)의 구성

<호질문>은 <열하일기> 「관내정사」 7월 28일자에 실려있는데, 이 <호질문>은 단일 액자 서사 문학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작품 출처에 대한 진술로 도입 부분이고

둘째, 작품 <호질> 부분이고

셋째, 후지 부분이다.

이처럼 <호질문>은 액자 소설의 성격이 있다. 액자 소설의 형태는 자기 의식 고백의 주관적 자아와 허구적인 서사적 자아 사이에서 망설이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형태로서, 작가가 씩씩하게 현실의 한복판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호질문>을 읽을 때, 소설에서 중시하는 등장 인물의 형상화나 배경에 대한 세부 묘사, 교묘한 사건 구성 등은 대화 내용을 부각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배려에 그칠 따름으로, 작자의 분신인 작중화자가 개진하는 도도한 변론과 그 논리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호질>에서 우연의 묘미는 역설적인 논리와 온갖 고사를 동원하여 북곽선생을 질타하는 범의 도도한 웅변 그 자체에 있다. 범이 인의 도덕을 표방하면서도 불의를 자행하는 유자를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2. 호질을 얻은 경위

호질을 얻은 경위는 (1)과 (2)에 나타나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호질>은 박지원이 산해관에서 연경으로 가는 도중 옥전현이란 곳에서 묵게 되었을 때 심유붕이라는 소주인의 점포 벽상의 절세기문의 격자를 발견하고 동행한 정진사란 인물과 함게 베겨온 글이다.그 베낀 동기는 국내에 돌아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읽혀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글을 베낄 때 정진사는 중간부터,자신은 처음부터 베꼈는데 숙소에 돌아와 살펴보았더니 정진사가 베낀 부분에 잘못 쓴 글자와 빠뜨린 자구가 무수히 많아 도무지 문맥이 통하지 않아 대략 자신의 뜻으로 얽어서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었다.그리고 <호질>은 원래 작자 성명과 제목이 없었는데,아마 근세 화인이 비분하여 지은 것일 것이며, 글 중의 <호질> 두 글자를 뽑아 제목을 삼았다.

 

3. 우언(寓言)과 패로디

<호질>은 소설의 성격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이 많이 나타나는데,이는 우언과 패로디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온당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언(寓言)은 상대방을 더욱 잘 설득하기 위해 자기 견해를 직접 주장하는 대신 허구적인 이야기를 빌어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글을 가리킨다. 이 우의는 비판이 금지된 대상을 비판할 때 큰 구실을 한다.

패로디는 유명한 작품, 문장, 고사, 사건, 인물 등을 넌지시 빌어와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패로디는 과거의 전통을 가치의 한 근원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의미의 이중화를 통한 새로움 가치의 추구에서 둘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호질>에선 『시경』 『주역』 『예기』 『맹자』 『대학』 같은 유가(儒家) 경전 중의 유명한 명구를 대거 패로디하여 다름아닌 유자(儒者)를 풍자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1> 원전의 알레고리

박지원은 심유붕의 점포에 걸린 격자문을 두고 근세 중국인(華人)이 비분함을 참지 못해서 지었으리라고 하였으니,<호질>의 원문의 내용이 우언의 형식을 빌어 청조 중국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호질>의 어느 내용이 반청적인 불온한 것일까.

작중 배경은 춘추 시대에 풍속이 음란했던 것으로 소문난 정(鄭)나라로 설정되어 있고,등장 인물들의 성도 북곽이니 동리니 하는 고대 중국의 복성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漢人들의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청조의 가차없는 탄압을 의식해서 이러한 작중 배경과 인물을 설정한 것이지,실제로 청조 치하의 중국 현실을 풍자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의 초두에서 범을 소개하며 "예성문무 자효지인 웅용장맹(睿聖文武 慈孝智仁 雄勇壯猛)"이라 예찬한 문구는 황제에게 바치는 존호를 익살맞게모방한 패러디로 범이 포악한 만주 황제를 상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이 점에 관해 성현경은 '虎者 胡也'로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이 밖에 창귀 육혼의 제안에 대해 범이 "짐이 이를 좀더 소상히 듣고자 한다."라 말한 대목도 범이 황제를 상징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한편 천하무적이라는 범에게도 그를 잡아먹는 비위,죽우 등 갖가지 맹수들이 있다고 한 것은 천하 막강의 대청 황제도 강성한 주변 민족들의 발호를 두려워하여 몽고의 추장들이나 티베트의 판첸 라마를 극진히 대우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을 암암리에 풍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곽선생은 '손수 교열한 책만도 만 권이요,九經을 해설한 저서는 만오천 권'이나 된다는 위선적인 학자로,이는 '고증학풍에 매몰되어 만족 통치의 현실에 안주하는 한족 선비'를 형상화한 것이다. 만주족 지배하에 곡학아세로 자신을 적응시켜가는 중국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이니,말하자면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 자신의 고발이요 성토인 것이다.

아울러 소문난 절부임에도 실은 姓이 다른 자식을 다섯이나 둔 동리자는 천저가 가짜 절부인 음녀 동리자에게 정문까지 세워주며 표창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청조의 위선적인 예치주의를 풍자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중원은 장악한 청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前明의 충신들을 표창하고 효자와 노인에게 특전을 베푸는 등 유교식의 예치를 강화해 왔다.

박지원은 <호질>의 후지에서 당시의 중국사를 '기나긴 밤'의 시대요 '夷狄의 禍가 맹수보다 더 심한'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그리고 그는 이러한 시대에도 문장으로 출세를 꾀하는 선비들에 대해 '맹수조차도 잡아먹고 싶어하지 않을' 추악한 존재로 매도하는 한편,청조는 漢族에게 胡俗을 강요하는 무리한 강권통치로 인해 언젠가는 타도되고 말 것임을 예언하면서 '중국이 맑아질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 후지를 통해서 원전 <호질>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개작(박지원)의 알레고리

지금 전하고 있는 박지원 개작 <호질>은 <호질> 원작의 패로디의 성격이 있다. 연암이 <호질> 원작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반청적인 내용 때문이겠지만, 이와 함께 일찍부터 조선 선비 사회의 풍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품고 있던 연암으로서는 <호질> 원작 중의 통렬한 유자(儒者) 비판에 대해서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비록 조선 현실을 맞대놓고 풍자한 작품이 아니지만,원전의 우의로서 읽을 때 어떤 점이 당시 조선의 시대적 상황에 일치하는가. 기존의 <호질>원전을 개작하여 새로운 주제가 덧붙여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 다시 말해 <호질> 원전의 우언(寓言)이 거듭 우언화되어 '우언의 우언'으로 되고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호질>에서 읽을 수 있는 조선적 성격은 무엇일까.이는 박지원이 원작을 부연 개작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대목에 잘 드러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입김을 강하게 받은 대목을 찾아보자.

박지원이 어느 부분을 개작하였는지 명백하게 가리기는 어렵지만,가필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범도 상주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조선 속담을 차용한 구절이라든가, '의(醫)'란 곧 의심스러울 '의(疑)'요,'무(巫)'는 속일 '무(誣)'이며,'유(儒)'란 아첨할 '유(諛)'라는 조선식 한자음에 따른 것도 연암의 가필일 가능성이 많다. (유(儒)와 유(諛)는 중국어로는 각각 '르우'와 '위'로 발음되므로, 醫와 疑, 巫와 誣 같은 정확한 동음이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범이 '오행정립(五行定立) 미시상생(未始相生)'하면서 전래의 오행상생설을 비판하거나 인성과 물성의 동일을 주장하는 대목은 분명히 박지원의 손길이 미친 곳이니,이 의견들은 박지원의 평소 신론이기 때문이다.

 

[은자주]이 부분은 일기 내용을 사실로 인정한 경우이고 골동품 가게에는 이 천하의 기이한 문장은 아예 없었거나 간략했을 것이라는 것이 김택영의 주장인데 나는 이 견해를 지지한다. 김택영은 중국에서 연암 선생 사후 105년 만인 1910년에 <연암집>을 간행하며 발문에서 이 점을 밝혔다.그의 손자 박규수는 문집을 출간했지만 연암선생은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은, 양반관료지배계층을 공격하는 반체제적가치관 때문에 문집이 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흰것을 가지고 검다고 말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나의 성벽도 상당 부분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탐닉하여 발분(發憤)의 문학정신을 정립한 연암선생에게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연암 선생의 글은 1900년에 김만식이라는 분이 간행한 것이 있으나 필자는 진본을 본 적이 없고, 지금 도서관 등에 전하는 것은1932년 박영철이 납활자로 찍은 <연암집>이다. 연암문집은 조선시대에는 필사로 전해오던 금서였다.

 

4. <호질>의 기본구조

<호질>의 기본 구조는 사람을 잡아먹는 범이 위선적인 대학자 북곽선생을 논변으로 압도시키는 것이다. <호질>의 중심은 의인화된 범과 가공적인 인물 북곽선생 사이의 대화에 있다. 작가는 표면에 나서지 않고 범을 풍자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은 시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서술자가 사건에 참여하지 않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삼인칭 서술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양반의 허위의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서술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작품에서 서술자와 가장 가까운 견해를 가진 인물은 범이라고 하겠다. 범을 연암 자신이라 할 때 서두 부분에 표현된 범을 잡아 먹을 수 있는 많은 상상적인 동물들은 연암 자신에 내재해 있는 모순이나 도덕적 결함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연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은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당시 사회에서 권력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권력자들과 같은 부류인 위선적인 도학자들에게는 과감하게 질책을 가할 수 잇는 연암 자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호질>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범의 앞장을 서서 먹이감을 찾아준다는 악귀들이 범과 문답을 나누는 대목, 동리자와 밀회 중이던 북곽 선생이 그녀의 자식들에게 들켜 도망치다가 두엄 웅덩이에 빠지는 대목, 그리고 범의 꾸짖음이 나타난 대목이다.

이 중 범의 꾸짖음이 소설 전체 분량 가운데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 소설의 중심 사상은 범의 꾸짖음에 드러나 있다고 할 것이다. 범이 북곽선생을 앞에 두고 꾸짖는 요지는 대충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선비라는 것이 아부, 아첨을 잘 한다.

2) 천하에 이치는 하나다.

3) 인륜 도덕을 세워서 권장하지마는, 인간의 나븐 짓은 막을 길이 없다.

4) 理를 논하고 性을 이야기하지만, 벌꿀·젖·누에·옷을 빼앗고는 마침내 저희들끼리 잡아먹고

5) 전쟁을 일으켜서 서로 잡아 먹고, 전쟁 기구를 자꾸만 만들어 낸다.

 

5. <호질>의 해학성 -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의거한 풍자적 수법

범은 유가적·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이외의 사물을 보는 더욱 높은 차원의 관점에 서서 유자의 위선을 풍자하고 있다.

전형적인 유가적 발상으로는 인간의 특권적인 우위를 전제하고 인간 이외의 모든 사물을 이와 대립시키는데, 연암은 만물을 차별성보다는 동일성의 차원에서 인식하려는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릇 천하의 理는 하나이니 虎가 실로 악하다면 인성도 악할 것이요,인성이 선하다면 호성도 선하다"든가 "天이 명한 바로 보자면 虎와 人은 똑깥은 一物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물성 동일론은 인간과 금수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는 만인평등론으로 발전할 수 잇는 단초이다. 따라서 범의 질책은 조선 양반사회의 불평등 관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은자주]조선후기사회의 사상사적 쟁점은 인물성상동론(人物性上同論)과 인물성상이론(人物性上異論)의 대립이었다. 이는 호락(湖洛)논쟁으로 지역적 특성을 지니는데, 범의 주장을 연암 박지원의 생각으로 본다면 인간과 범의 성품이 같다는 낙론(洛論)의 인물성상동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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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원사(原士)/ 열하일기, 호질(虎叱), 허생전, 양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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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호질虎叱/ 열하일기 4.관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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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를 만난 건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이었다. 소제 끝에 소동파는 상념에 잠겨 웃고 서 있었다. 그는 이곳 지사가 되어 인공호수를 완성했지만,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적벽에 귀양가 읊은, 천 년전의 작품인<적벽부>를 다시 음미해 본다. 인생이란 부침(浮沈)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일이 잘 풀린다고 까불댈 일도 아니고,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자학할 일도 아니다. 사마천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명저들은 거의 대부분 암흑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추스려 그것들과 싸워낸 궤적이고 말하자면 인간승리의 기록이다.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에는 인생에 대한 명구 ‘일엽편주’, ‘하루살이 인생’, ‘창해일속’ 등이

쏟아져 나오고, 인생의 유한함을 장강의 무궁함과 대비시켜 가을 달밤의

비장함을 극대화시킨다. 인용문에는 없지만 "羽化而登仙"도 천하 명구지요.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也.

而又何羨乎,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거나 불어남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에서는 물과 달을 끌어다가 물은 흘러가지만 가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흐르고 있고, 달도 차고 기울지만 줄지도 불어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연으로 태어난 우리네 인생은 워째서 한 번 가면 못 오는고?

이런 의문이 분위기를 지배한다.

나의 중학동기들이 만들어가는 문중사이트에도 자주 삼강 주막 사진도

올라오고 하지만 담론의 핵심은 강물에 있다.

공자님도 논어에서,

 

子ㅣ 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子罕16]  *舍(사):집, 머무는 곳.

[譯]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은 이와 같도다. 주야에 쉬지 않는구나.”

[註]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천지의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계속되어

한 순간도 멈춤이 없으니 곧 도의 본체의 근본이 그러하다.)

라 하셨다.

헤르만 햇세가 소설<싣달타>에서 보여준 깨달음과 동질의 것일 것이다.

곧, 인생의 진리를 향한 참다운 삶은 “日日新又日新”에 있는데,

강물이 그 표본이 된다. 한 지점의 단면을 상상해 보라. 강물은 제3한강교

밑이 아니라도 흘러간다. 그런데 그 지점을 응시해 보면 물은 부단히 흐른다.

그것이 강물의 영원성이고 자연의 영원성이다. 무덤의 풀은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지만 무덤의 주인공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거지요.

유덕화를 찍은 영화인가요? <天長地久> 다시 자구를 풀어서 조합하면 ‘天地長久’.

곧 자연의 영원성을 말하는 거라예.

 

그리하여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불변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과 나는 영원하다.

그럴까요? 많이도 취했나 보군요. 취했는데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필름이 끊어졌는데요.

취한 사람의 답변은 하나입니다.

“나 안 취했어, 이거 놔!”

꼴깝떠는 인간들은 욕설을 퍼붓고 화까지 냅니다.

인생의 위대성은 주량으로 가늠하는 것처럼.

 

결론은 인생은 유한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입니다.

그런데 술김에 자연과 하나되었으니 자연과 더불어 영원할 수밖에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

取之無禁, 用之不,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에서는 사물과 내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바람은 소리가 되고, 달은 빛이 되어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다는 명구를 남기게 된다.

조물주의 무진장한 자연을 그대와 내가 함께 실컷 누리자는

돈 안 드는 작자의 인심에 아무도 손을 내젓지 못하는 경지로 인도한다.

아래 창에서 원용해 보았다.

http://blog.paran.com/kydong/24677137

 













[사진] 우도 가는 길에 바다에서 찍은 성산 일출봉, 달무리 같은 둘레의 화산석이 톱니처럼 살아 있네요. 아래는 하늘에서 찍은 일출봉[펌]

[주]조선시대 선비들이 줄줄 외던 저 유명한 <적벽부>입니다.

가을 달밤에 뱃놀이하며 질펀하게 술에 취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친화를 통해 영원성을

갈구하는 작자의 외침이 독자의 동의를 받아내기에 충분합니다.

1句구성에 4言과 6言을 많이 썼군요. 의미의 구속력이 강한 소단위를 4言+4言, 4言+6言,

6言+6言 등으로 구성하여 자유분방합니다. 이를 4,6변려문이라 하는데 漢,唐 사이의 육조시대에

발달한 글쓰기 형식입니다. 육조시대에는 문장의 형식주의, 유미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이때, 불경의 번역과정에서 한자의 聲韻도 발달하여 당나라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형시인 절구,

율시를 완성시켰답니다. 唐詩는 한시의 전성기였죠.

詩仙 이백(701-762)과 詩聖 두보(712-770)도 이때, 동시대 분들인데 조우까지 했답니다.

괴테와 바그너의 조우만큼이나 역사적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백이 11살 위인데다 벼슬길에 오른

대선배인지라 두보가 이백의 눈에 띠진 않았지만서도요.

한자에 서툰 학생들을 위해 외기 쉽게 한자 독음을 달았습니다. 한자의 훈을 알고 싶은 분은

복사하여 커셔를 한자에 두고 자판의 “Shift+F9” 키를 치면 됩니다.

한자는 획순이 복잡하여 복사해서 보시면 편하시겠습니다. 감상문의 원문 인용믄 마자막

글자들이 왜 비스듬히 폼을 잡았냐구요? 원문 소개자가 친절하게 운(韻)자를 나타낸 겁니다.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에는 인생에 대한 명구 ‘일엽편주’, ‘하루살이 인생’, ‘창해일속’ 등이

쏟아져 나오고, 인생의 유한함을 장강의 무궁함과 대비시켜 가을 달밤의

비장함을 극대화시킨다. 안용문에는 없지만 "羽化而登仙"도 천하 명구지요.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也,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거나 불어남이 없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也.

而又何羨乎,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에서는 물과 달을 끌어다가 물은 흘러가지만 가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흐르고 있고, 달도 차고 기울지만 줄지도 불어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연으로 태어난 우리네 인생은 워째서 한 번 가면 못 오는고?

이런 의문이 분위기를 지배한다.

나의 중학동기들이 만들어가는 문중사이트에도 자주 삼강 주막 사진도

올라오고 하지만 담론의 핵심은 강물에 있다.

공자님도 논어에서,


子ㅣ 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子罕16]

[譯]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은 이와 같도다. 주야에 쉬지 않는구나.”

[註]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천지의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계속되어

한 순간도 멈춤이 없으니 곧 도의 본체의 근본이 그러하다.)

*舍(사):집, 머무는 곳.


라 하셨다.

헤르만 햇세가 소설<싣달타>에서 보여준 깨달음과 동질의 것일 것이다.

곧, 인생의 진리를 향한 참다운 삶은 “日日新又日新”에 있는데,

강물이 그 표본이 된다. 한 지점의 단면을 상상해 보라. 강물은 제3한강교

밑이 아니라도 흘러간다. 그런데 그 지점을 응시해 보면 물은 부단히 흐른다.

그것이 강물의 영원성이고 자연의 영원성이다. 무덤의 풀은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지만 무덤의 주인공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거지요.

유덕화를 찍은 영화인가요?

<天長地久> 다시 자구를 풀어서 조합하면 ‘天地長久’.

곧 자연의 영원성을 말하는 거라예.


그리하여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불변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과 나는 영원하다.

그럴까요?

많이도 취했나 보군요. 취했는데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필름이 끊어졌는데요.

취한 사람의 답변은 하나입니다.

“나 안 취했어, 이거 놔!”

꼴깝떠는 인간들은 욕설을퍼붓고 화까지 냅니다.

인생의 위대성은 주량으로 가늠하는 것처럼.

결론은 인생은 유한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입니다.

그런데 술김에 자연과 하나되었으니 더불어 영원할 수밖에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取之無禁, 用之不,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에서는 사물과 내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바람은 소리가 되고, 달은 빛이 되어

“가져도 금지할 사람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다는 명구를 남기게 된다.

조물주의 무진장한 자연을 그대와 내가 함께 실컷 누리자는

돈 안 드는 작자의 인심에 아무도 손을 내젓지 못하는 경지로 인도한다.


赤 壁 賦 -蘇 軾-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蘇東波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前赤壁賦≫, 10월에 지은 것을 ≪後赤壁賦≫라 한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임술지추, 칠월기망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소자여객범주, 유어적벽지하

淸風徐來, 水波不興.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壬戌) 가을 7월 열엿세 날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 때,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擧酒屬客,1)

거주촉객,

誦明月之詩,2) 歌窈窕之章.3)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斗牛之間

배회어두우지간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횡강, 수광접천

1)屬客(촉객)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

2)明月之詩(명월지시):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篇).

3)窈窕之章(요조지장):시경(時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있는 관저편(關雎篇).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縱一葦之所如,4) 凌萬頃之茫然.

종일위지소여, 릉만경지망연

浩浩乎,

호호호,

如憑虛御風,5) 而不知其所止.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飄飄乎,

표표호,

如遺世獨立,6) 羽化而登仙.7)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4)一葦(일위):한 잎의 갈대. 작은 배를 가리킨다. 所如(소여) 여(如)는 왕(往), 거(去)의 뜻. 가는 대로.

5)憑虛御風(빙허어풍):憑은 의지한다. 虛는 허공을 가리키며, 御는 乘과 같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은 마음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들어감.

6)遺世獨立(유세독립):遺世(유세)는 속세를 떠나다. 속세를 떠나 그 어떠한 사물에도 속박되지 아니한 대자연의 경지를 말함.

7)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몸에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ㅡ적벽의 야경과 흥취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歌曰,

가왈,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8)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강

8)泝(소):거슬러 올라가다.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其聲嗚嗚然,

기성명명연,

如怨如慕, 如泣如訴,

여원여모, 여읍여소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餘音嫋嫋, 不絶如縷.

여음요요, 부절여루

舞幽壑之潛蚊,9) 泣孤舟之釐婦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9)潛蚊(잠문) 숨어 있는 교룡(蛟龍)) 교룡-뿔 없는 용.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ㅡ주흥이 일어남


蘇者 愀然正襟, 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소자 추연정금, 위좌이문객왈, 하우기연야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10)

객왈, 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

차비조맹덕지시호

10)조조(曹操)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詩)의 일절.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 東望武昌,

서망하구, 동망무창

山川上繆, 鬱乎蒼蒼.11)

산천상무, 울호창창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12)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11)繆무:얽다. 12)맹덕은 조조의 자(字). 주랑은 주유(周喩). 적벽대전에 조조가 주유에게 크게 패한 것을 말함.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舳艫千里,13) 旌旗蔽空.

축로천리, 정기폐공

釃酒臨江,14) 橫槊賦詩.

시주임강, 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13)舳艫(축로):배의 고물과 이물 14)釃(시):거르다.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

황오여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어초어강저지상, 려어하이우미록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촉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협비선이오유, 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15)

지불가호취득, 탁유향어비풍

15)悲風(비풍):가을 바람(秋風).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고,

여운(餘韻)을 가을 바람에 부치노라.”

-손의 말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16) 而未嘗往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즉천야증불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자기불변자지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

이우하선호

16)逝者如斯(서자여사):일찍이 공자가 한 말로써,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蘇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구비오지소유, 수일정이막취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 用之不竭,

취지무금, 용지불알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락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ㅡ蘇子의 말 - 손의 말에 대한 반론


客喜而笑, 洗盞更酌.

객희이소, 세잔갱작

肴核旣盡, 杯盤狼藉17)

효핵기진, 배반낭자

相與枕籍乎舟中,18) 不知東方之旣白.

상여침자호주중, 부지동반지기백

17)杯盤(배반):잔과 접시. 18)枕籍(침적):베개 삼아 베고 눈고, 깔고 앉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ㅡ두 사람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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