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시대의 승려일연(一然)이 고려 충렬왕 7년(1281년)[1]에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2] 원판(原版)은 전하지 않으며 2003년에 조선 초기의 간행본과 중종 임신본이 각각 대한민국의 국보 제306호와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구성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권 내에 다시 9편으로 나뉘어 있다. 권수는 편목의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분량에 따라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제일(第一)이 붙어 있는 것이 왕력과 기이 두 편이라고 한다.
권1 왕력(王曆) 제1 : 간략한 제왕의 연대기로 중국 역대 왕조를 기준으로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를 대상으로 하여 기원전 57년부터 936년 고려 태조에 의한 후삼국 시대의 통일기까지를 시간적 폭으로 한 연대표이다.
권1 기이(紀異) 제1 : 고조선, 위만조선, 삼한, 칠십이국, 낙랑군, 북대방, 남대방, 말갈·발해, 오가야, 부여, 이서국, 고구려, 백제 등 고조선으로부터 남북국 시대 이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총 36조로 이루어져 있다.
권2 기이(紀異) 제2 : 통일신라의 출현과 이후 역대왕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다루고 있으며 총 24조. 고조선에서 고려 건국 이전까지 존재했던 여러 국가와 여러 왕(특히 신라왕)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권3 흥법(興法) 제3 : 삼국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총 8조.
권3 탑상(塔像) 제4 : 불교의 흥성에 따라 삼국(특히 신라)에 주목할만한 사탑이나 불상을 조성했던 사실을 기록했다. 총 29조.
권4 의해(義解) 제5 : 신라의 고승들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행적을 통해 그들의 신앙심을 천명하였다. 총 14조.
권5 신주(神呪) 제6 : 신라 밀교계통 고승들의 기이한 행적을 통해 불교와 무속의 융합 및 호국 불교의 모습 소개. 총 3조.
권5 감통(感通) 제7 : 불심이 남달랐던 일반 신자와 승려들의 기적 체험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력을 천명하였다. 총 10조.
권5 피은(避隱) 제8 : 구도 과정에서 세상을 등지고 홀로 불법을 닦은 승려들의 행적. 총 10조.
권5 효선(孝善) 제9 : 세속적 윤리인 효와 불교적 윤리(윤회, 인과응보)의 결합을 통해 신라인의 효행 사례 기록. 총 5조.
내용
삼국유사에는 삼국과 가락국(駕洛國 : 가야)의 왕대와 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망·신화·전설·신앙 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 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정,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모든 설화는 삼국 시대의 것이지만, 유동하던 이야기가 고려 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흘러 다니던 설화의 내용이 일연이라는 개인에 의해 작품화된 셈이므로 고려의 설화문학으로 취급될 수 있다.[3]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의 주제는 주로 신라와 불교를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다. 고대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이두로 쓰인 향가 14수가 기록되어 있어 국어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특히, 향가는 《균여전》에만 11수(首)가 수록되어 있을 뿐, 다른 전적에는 전혀 전하지 않기 때문에 향가 연구에서 삼국유사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4] 또한 《제왕운기》와 더불어 단군 신화를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고려 후기, 대몽항쟁 과정에서 급부상한 단군 신앙과 동족 의식을 반영한다.[5]
三國遺事
삼국유사
紀異편 序文
[은자주]<삼국유사>는 5권(卷) 9편(編), 138조(條)로 구성되었으나
제1편이 '왕력'이므로 유사의 설화는 8편이고 내용분류는 아래와 같다.
[1.왕력(王曆)]
2.기이紀異(59조), 서문이 붙어 있고, 그 분량도 총138조 가운데 59조
3.흥법興法(6조),
4.탑성塔像(31조),
5.의해義解(4조),
6,신주神呪(3조),
7.감통感通10조),
8.피은避隱(10조),
9.효선孝善(5조).
총138조.
그런데, 2.기이(紀異)편에는 서문이 붙어 있고 그 분량도 138조 가운데 59조에 이른다. 이것은 초현실적 담론에 대한 일연의 신뢰를 반영한다.
굳이 기이편에만 서문을 붙인 것은 중국의 역사 기록에 빗대어 초현실적 담론도 사실에 바탕한 역사 기록 못지 않게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이편 서문을 읽어 보고, 참고로 <삼국유사>의 전체 내용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한국의 신화는 다양하며, 다층적이다. 신화의 편수도 많지만 이 신화들의 체계 또한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신(神)에 대한 이야기 내지 신성한 존재나 사태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신화의 본질은 '신' 내지 '신성함'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이 생각한 신성함을 갖춘 존재는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 신에서부터 국가를 세운 영웅, 마을의 수호신, 풍작이나 풍어를 관장하는 신, 아이를 점지해 주는 신 등,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또한 한국의 신화는 어떤 방식으로 전승해 왔는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것과 구술(口述)로 전승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구술로 전승할 경우에도 특별한 제전(祭典)이나 종교적 의식을 통해 구연되는 것도 있고 그러한 전승 맥락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신화는 문헌에 정착한 건국신화(建國神話)와 민간의 무속 문화 속에서 구술 전승되는 무속신화(巫俗神話)가 가장 대표적이다. 건국신화는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제사에서 재연되었으며, 무속신화는 민간에서 연행되는 각종 굿에서 재연되었다. 건국신화가 고대 국가의 첫머리 역사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다면, 무속신화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무속 문화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신화의 내용을 보면, 세상을 열고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과 그 행적을 다룬 신화, 신성한 존재가 출현하여 새롭게 나라를 세운 신화, 마을의 수호신이나 조상신의 행적을 다룬 신화, 무속의 신들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를 다룬 신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 한국 신화의 역사와 전개
(1) 건국신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을 이야기한 '단군신화'이다. 한반도의 북쪽 지역은 한반도보다 먼저 금속 문화를 받아들이고 고대 국가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단군신화'는 4,000여 년 전 한반도 북쪽에 세워진, 한국 민족이 최초의 국가로 여기는 고조선의 건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건국신화는 한반도 주변에서 세워진 한국 민족의 고대 국가 설립 과정과 그 주인공을 다루기 때문에 시간적 배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고조선 이후 설립된 고대 국가로 한반도 북쪽 지역에는 부여가 가장 유명하다. 부여는 기원전 4세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부여와 관련된 신화로는 '해모수신화', '해부루신화', '금와신화'가 있다.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의 등장과 즉위 내용을 다룬 것이 '해모수신화'이며, 해모수를 이어 왕이 된 인물을 다룬 것이 '해부루신화'이다. 해부루 다음 대의 신이한 왕을 다룬 것이 '금와신화'이다.
기원 전 한 세기를 기점으로 한반도에는 신라(BC.57), 고구려(BC.37), 백제(BC.18)가 건국하여 이른바 삼국시대를 이루게 된다. 세 나라의 건국과 관련해서 비교적 상세한 신화가 전한다. 삼국이 한반도의 북쪽 지역과 한반도를 완전히 3분하여 통치하기 이전에는 수많은 소규모 국가가 있었고 관련 신화도 있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가야와 탐라를 들 수 있다.
기원전 57년 신라의 초대 왕 혁거세가 즉위하는데, 혁거세의 탄생과 즉위를 다룬 신화가 '혁거세신화'이다. 신라는 혁거세의 박(朴)씨 왕조 외에 석(昔)씨와 김(金)씨에서도 왕이 배출되었다. 석씨 왕조의 시조를 다룬 '탈해신화'가 있고, 김씨 왕조의 초대 조상을 다룬 '알지신화'가 있다.
기원전 37년,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이 이야기가 '주몽신화'로 전한다.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하(南下)하여 백제를 세우는 이야기도 전한다.
1세기 초에 가야 엽합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금관가야의 초대왕 수로가 즉위하는데, 이때의 이야기가 '수로신화'로 전한다. 과거에는 제주도를 탐라라고 불렀는데 탐라국은 고(高)씨, 양(良)씨, 부(夫)씨 세 왕조가 분할 통치하였다. 이 세 시조의 출현을 다룬 것이 '삼성(三姓)신화'이다.
삼국시대를 거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이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다. 고려가 918년에 세워졌는데 이 시기에는 앞선 고대 국가의 건국신화처럼 시조왕의 건국을 신이(神異)한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초대왕의 정통성과 건국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성한 장치를 활용하여 건국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고려의 시조인 왕건의 신성한 조상들의 계보를 다룬 '고려세계(高麗世系)'가 있는데 이는 고려의 건국신화라고 칭할 수 있다.
(2) 무속신화 한국에는 문자로 기록되어 전하는 신화보다 구술 전승되는 신화가 훨씬 더 많다. 이 경우 무속제의(굿)에서 무당이 구연하는 신화도 있고, 특별한 연행 맥락 없이 혹은 그러한 것들을 상실한 채 이야기로만 전하는 신화도 있다. 건국신화가 공식적인 국가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와 구별되는 구전(口傳) 신화는 민간의 종교와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무속신화로 통칭할 수 있다.
문헌신화인 건국신화 달리 구술신화인 무속신화는 만들어진 시기나 순서를 정확하게 매길 수 없다. 하지만 신화의 내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시간대나 선후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인간사회가 질서 잡힌 공동체를 형성하기 이전 단계에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이 인간의 주된 관심사였다. 어떻게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고 별이 생겨났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인간이 처음 만들어졌는지와 같은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이 신화로 형성된다. 이른바 창세신화(創世神話)는 세상과 인간의 출처를 다룬 것이다. 거인에 의해 섬이나 산, 강, 호수와 같은 지형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다룬 '설문대할망', 태초에 신이 등장하여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를 다룬 '창세가', 천상세계ㆍ인간세계ㆍ사후세계의 구획과 그 통치자들의 등장을 다룬 '천지왕본풀이' 등이 있다. 또한 홍수로 인해 기존의 인간세계가 멸망하고 이후 새로운 인류의 시조를 다룬 홍수신화도 있다.
인간이 등장하고 인간사회가 꾸려짐에 따라 질서를 수립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인간 공동체에 전해주고 정착시킨 영웅이 필요하다. 무속신화에는 수많은 영웅 신화들이 있다. 생산신과 사람의 탄생을 주관하는 삼신을 다룬 '제석본풀이', 병을 치유하고 망자를 천도하는 역할을 최초로 맡은 인물의 이야기인 '바리공주'가 있다. 이 두 신화는 한국의 전 지역에서 전승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신화이다.
이밖에 집과 터의 신들을 다룬 '성주풀이', 집안의 각종 공간을 차지한 신들의 내력을 담은 '문전본풀이'가 있다. 천상에 올라가 곡식의 씨앗을 얻어 인간에게 전해준 농경신 이야기인 '세경본풀이'가 있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들에 관한 '칠성본풀이'가 있다. 망자를 명부로 인도하는 저승사자의 이야기 '차사본풀이'가 있다. 이 외에도 한국에는 인간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며 신화를 남기고 있다.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신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지방의 신화를 묘사하는 그림들. 11시 방향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리스 신화의제우스와테티스, 중국 신화의여와, 북유럽 신화의로키, 크툴후 신화의네크로노미콘, 인도 신화의크리슈나, 일본 신화의아마테라스, 이집트 신화의호루스, 히타이트 신화의테슙, 켈트 신화의마하.
아찬(신라 골품 제도에서의 여섯째 등급)양패(良貝)는 진성여왕의 막내아들이었다.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쏘는 사람50명을 선발하여 따르게 했다.배가 곡도(지금의 백령도)에 이르자 풍랑이 크게 일어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양패공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했다.
이에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치솟았다.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공에게 말하기를"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오."했다.양패공이 잠을 깨어 그 일을 좌우에게 묻기를"누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겠소"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나무 조각50개에 저희들의 이름을 각각 써서 물에 가라앉게 해서 제비를 뽑으시면 될 것입니다."했다.공은 이 말을 따랐다.
군사 거타지의 이름을 쓴 나무 조각이 물에 잠기었으므로 그 사람을 남겨 두자 갑자기 순풍이 불어 배는 지체없이 나아갔다.거타지가 수심에 쌓여 섬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오더니 말하기를, "나는 서해약(西海若)(서쪽 바다의 신)이오.중 하나가 해가 뜰 때면 매양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라니(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하지 않고 소리 그대로 외는 것으로,그 자체에 무한한 뜻이 있어서 이것을 외는 사람은 한없는 기억력을 얻고,모든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함.)의 주문을 외면서 이 못을 세 번 돈다오.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그 때 중은 우리들의 간을 빼먹는다오.결국 자손들이 거의 다 죽어 버리고,이젠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게 되었소.내일 아침에도 또 반드시 올 것이니,그 때 그대가 그 중을 활로 쏘아 죽여 주시오"했다.
거타가 말하기를"활 쏘는 것은 나의 장기이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했다.노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 속으로 사라지고 거타지는 숨어서 기다렸다.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와서 전처럼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중은 바로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쓰러져 죽었다.이에 노인이 나와서 치사하기를"공의 은덕으로 내 생명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아내로 삼기 바라오."하니,거타가 말하기를"따님을 나에게 주시고 저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원하던 바입니다."했다.
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의 품 속에 넣어 주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를 모시고 사신의 배를 따라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당나라 사람은 신라의 배를 용 두 마리가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황제에게 말했다.이에 황제가 말하기를"신라의 사신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일 것이다."했다.이에 잔치를 베풀어 신라 사신을 당나라 여러 신하들의 윗자리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본국으로 돌아오자 거타는 꽃가지를 꺼내어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
후백제의 시조 견훤의 탄생을 다룬 설화. 광주 북촌에 살던 한 여인에게 한 남자가 밤마다 나타나 자고 갔다. 여인은 사내의 옷자락에 실이 달린 바늘을 꽂아 두었고, 다음 날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지렁이가 바늘에 꽂혀 있었다. 이후 여인은 잉태를 하였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견훤이다. 이 설화는 ≪삼국유사≫에 실려 전해진다.
사슴의 보은으로 맺게 된 한 나무꾼과 선녀와의 이야기를 다룬 설화. 신이담(神異譚)의 범주에 속하며 ‘금강산선녀설화’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백조처녀설화(白鳥處女說話)’라 하여 범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전개는 동물의 보은, 금기(禁忌)의 파괴, 남편의 추적, 상봉, 남편의 지상으로의 귀환, 다시 금기의 파괴, 남편의 천상으로의 귀환 불능으로 이어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 주었더니 사슴은 은혜의 보답으로 선녀들이 목욕하고 있는 곳을 일러 주며 선녀의 깃옷을 감추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슴이 일러 준 대로 선녀의 깃옷을 감추었더니 목욕이 끝난 다른 선녀들은 모두 하늘로 날아 돌아갔으나 깃옷을 잃은 한 선녀만은 가지 못하게 되어 나무꾼은 그 선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는다.
아이를 둘까지 낳고 살던 어느 날 나무꾼이 선녀에게 깃옷을 보이자 선녀는 입어 보는 체하다가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승천한다. 어느 날 사슴이 다시 나타나 나무꾼에게 하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릴 터이니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처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일러 준다.
사슴이 일러준 대로 하늘에 올라간 나무꾼은 한동안 처자와 행복하게 살았으나 지상의 어머니가 그리워져서 아내의 주선으로 용마를 타고 내려오는데, 이 때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로 용마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상의 어머니가 아들이 좋아하는 호박죽(또는 팥죽)을 쑤어 먹이다가 뜨거운 죽을 말 등에 흘리는 바람에 용마는 놀라서 나무꾼을 땅에 떨어뜨린 채 그대로 승천한다. 지상에 떨어져 홀로 남은 나무꾼은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슬퍼하다가 죽었다. 그리고는 수탉이 되어 지금도 지붕 위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울음을 운다는 것이다.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는 『삼국사기』제14권 ‘고구려 본기’에 수록되어 있는 호동설화(好童說話)의 각 편으로,고구려의 호동 왕자(好童王子)가 낙랑국(樂浪國)의 낙랑공주(樂浪公主)를 꾀어 자국의 자명고(自鳴鼓)를 찢게 함으로써 낙랑국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이완근, 이학준이라는 분이 만든 문학 연구학습 사이트로, 주로 한국 문학을 다루고 있다. 이미구글검색을 통해서는 ~(문학 작품 명) 희망의 문학 이 연관 검색어로 뜰만큼 인지도가 있다. 주 이용 층은 학생이 이용하는 편이다. 실제 카페 lotus가 닫히기 전에는 학생들의 글이 많았다. 현재 메인에도 관리자의 이메일을 찾아내어 보낸 이용자가 있을 정도로 고정 이용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0년 1월 4일부로 도메인 및 호스팅 만료로 문을 닫는다는 공지가 올라왔으나... 본 사이트를 블로그화 하여 계승하겠다는 이용자가 나타났다(!) 문학/비문학 분석 자료들이 날아가지 않고 계속 보존되게 되었다.이 블로그를 통해 학생들이 고전청산 별곡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듯 하다. 현재 고전문학부터 자료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자료가 만든지 오래된 것 같다. --사이트도 오래된듯... 카페 제로보드에 가면2001년부터 작성한 글도 있고,htm형식으로 작성된 글들이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