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
의산 문답(毉山問答)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내집 4권(內集 卷四) 보유(補遺)
[은자주]중국 주나라 역사를 중국역사의 정통으로 취한 것이 공자가 저술한 주나라 역사서인 <춘추>이다. 이에 바탕한 것이 춘추대의론이다. 그러니까 역외춘추론이란 춘추대의론의 상대적인 말로 세계에 안과 밖이 없으니 내가 서 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이고 내 나라 역사가, 종전에 역외라 생각하던 땅이 사실은 나에게 있어 세계의 중심인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북학파가 도달한 지구에 대한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다. 땅이 평면일 때는 중심이 존재했지만 땅이 구체(球體)로 되어 있음을 자각한 이상 이제 세계의 중심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홍대용은 이 <의산 문답(毉山問答)>에서 실옹(實翁)의 답변을 통하여 자기 나라의 역사가 바로 ‘춘추’라는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을 역설했다.
<의산 문답>의 도입부[정황의 파악을 위함]와 결말 부분을 소개한다.
[도입부]
자허자(子虛子)는 숨어 살면서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조화와 성명(性命)의 은미(隱微)함을 궁구하고 오행(五行)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진리를 달통하여 인도(人道)를 경위(經緯)로 하고 물리(物理)를 깨달아 통했다. 심오한 원위(源委)를 환히 안 다음에 세상에 나가 남에게 이야기했더니, 듣는 자마다 웃었다.
[주D-001]오행(五行) :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주D-002]삼교(三敎) : 유교(儒敎)ㆍ도교(道敎)ㆍ불교(佛敎).
허자가 말하기를,
“작은 지혜와 더불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없고 비루한 세속 사람과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하고, 서쪽으로 연도(燕都 북경)에 들어가 선비와 더불어 이것저것 이야기할 때 여관에서 60일 동안이나 있었으나 마침내 알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에 허자가 슬피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쇠했는가? 철인(哲人)이 죽었는가? 우리 도(道)가 글렀는가?”
하고, 행장을 차려 돌아왔다.
이에 의무려산(毉巫閭山)에 올라 남쪽으로 창해(滄海)와 북쪽으로 대막(大漠)을 바라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하기를,
“노담(老聃)은 ‘호(胡)로 들어간다.’고 했고, 중니(仲尼)는 ‘바다에 뜨고 싶다.’고 했으니, 어찌 알건가, 어찌 알건가.”
하고는 드디어 세상을 도피할 뜻을 두었다.
수십 리쯤 가니 앞에 돌문[石門]이 나왔는데 실거지문(實居之門)이라고 씌어 있다. 허자가 말하기를,
“의무려산이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있으니, 동북 사이에 이름난 산이다. 반드시 숨은 선비가 있을 것이니, 내가 반드시 가서 물어 보리라.”
하였다. 드디어 석문으로 들어가니 한 거인(巨人)이 새집처럼 만든 증소(橧巢) 위에 홀로 앉았는데, 모습이 괴이하였으며 나무를 쪼개서 글씨쓰기를 실옹지거(實翁之居)라 하였다.
허자는 혼잣말로,
“내가 허(虛)자로써 호(號)를 한 까닭은 장차 천하의 실(實)을 살펴보고 싶어 한 것이며, 저가 실(實)자로써 호한 것은 장차 천하의 허(虛)를 타파시키고자 함일 것이다. 허는 허대로 실은 실대로 하는 것이 묘도(妙道)의 진리리니, 내 장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하고, 엉금엉금 기어 앞으로 나아가 우러러 절한 다음, 공수(拱手 존경의 표시로 팔짱을 낌)하고 그의 오른쪽에 섰다. 거인(巨人)은 고개를 떨구고 멍하게 있는 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허자가 손을 들고 말하기를,
“군자(君子)로서 사람을 대하는데 진실로 이와 같이 거만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거인이 말하기를,
“네가 이 동해(東海)에 있는 허자인가?”
허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부자(夫子)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술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거인은 무릎에 기대서 눈을 부릅뜨고 말하기를,
“과연 허자로구나. 내가 무슨 술법을 가졌단 말이냐? 너의 옷차림을 보고 너의 음성을 들으니 동해라는 것을 알겠고, 너의 예법을 보니, 겸양을 꾸며서 거짓 공손함을 삼고 오로지 허로써 사람을 대한다. 이로써 네가 허자라는 것을 알았지, 내가 무슨 술법이 있겠느냐?”
[역외 춘추론(域外春秋論)]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짓되 중국은 안으로, 사이(四夷)는 밖으로 하였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와 같이 엄격하거늘 지금 부자는 ‘인사의 감응이요 천시의 필연이다.’고 하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하늘이 내고 땅이 길러주는,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이 사람이며, 여럿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이 임금이며,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章甫)이건 위모(委貌)건 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이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
[주D-039]위모(委貌) : 주 나라의 갓 이름.
[주D-040]문신(文身) : 문신(文身)은 오랑캐의 별칭임.
[주D-041]조제(雕題) : 조제(雕題)는 미개한 민족의 별칭임.
대저 천지의 변함에 따라 인물이 많아지고 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물아(物我 주체와 객체)가 나타나고 물아가 나타남에 따라 안과 밖이 구분된다. 장부[五臟六腑]와 지절(肢節)은 한 몸뚱이의 안과 바깥이요, 사체(四體)와 처자(妻子)는 한 집안의 안과 바깥이며, 형제와 종당(宗黨)은 한 문중의 안과 바깥이요, 이웃 마을과 넷 변두리는 한 나라의 안과 바깥이며, 법이 같은 제후국(諸侯國)과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는 천지의 안과 바깥인 것이다.
대저 자기의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죄가 아닌데 죽이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사이(四夷)로서 중국을 침노하는 것을 구(寇)라 하고, 중국으로서 사이(四夷)를 번거롭게 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그러나 서로 구(寇)하고 서로 적(賊)하는 것은 그 뜻이 한 가지다.
공자는 주 나라 사람이다. 왕실(王室)이 날로 낮아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吳) 나라와 초(楚) 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혀 도둑질하고 해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춘추(春秋)란 주 나라 사기인 바, 안과 바깥에 대해서 엄격히 한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느냐?
그러하나 가령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 나라 도(道)를 역외(域外)에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스스로 딴 역외 춘추(域外春秋)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된 까닭이다.”
[의무려산 & 홍대용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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