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후지(虎叱後識)


-열하일기 관내정사(關內程史)

[은자주]앞에서 <호질>을 소개한 바 있다. 그 후지를 싣는다.후지(後識)는 발문(跋文)과 유사한 뜻으로 글의 취지를 밝힌 글이다. 후지는 주로 자기글에 쓰고, 발문은 남의 글에도 쓴다. 글 앞에 쓴 것을 서문, 뒤의 것을 발문으로 보면 된다.


《虎 叱》 跋文

燕巖氏曰,

연암씨(燕巖氏) 가로되,

篇雖無作者姓名 而蓋近世華人悲憤之作也.

“이 편(篇)이 비록 지은이의 성명은 없으나 대체로 근세 중국 사람이 비분(悲憤)함을 참지 못해서 지은 글일 것이다.

世運久於長夜 而夷狄之禍 甚於猛獸.

요즘 와서 세운(世運)이 긴 밤처럼 어두워짐에 따라 오랑캐의 화(禍)가 사나운 짐승보다도 더 심하며,

士之無恥者 綴拾章句 以狐媚當世

선비들 중에 염치를 모르는 자는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시세에 호미(狐媚)하니,

豈非發塚之儒 而豺狼之所不食者乎?

이는 바로 남의 묘혈(墓穴)을 파는 유학자(儒學者)로서 시랑도 먹지 않는 것이로다.

今讀其文 言多悖理 與胠篋盜跖同旨.

이제 이 글을 읽어 본즉, 말이 많이들 이치에 어긋나서 저 거협(胠篋)ㆍ도척(盜跖)과 뜻이 같다.

然天下有志之士 豈可一日而忘中國哉?

그러나 온 천하의 뜻있는 선비가 어찌 하룬들 중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

今淸之御宇 纔四世 而莫不文武壽考

이제 청(淸)이 천하의 주인이 된 지 겨우 네 대째건마는 그들은 모두 문무가 겸전하고 수고(壽考)를 길이 누렸으며,

昇平百年 四海寧謐 此漢唐之所無也.

승평을 노래한 지 백 년 동안에 온 누리가 고요하니, 이는 한(漢)ㆍ당(唐)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觀其全安扶植之意 殆亦上天所置之命吏也.

이처럼 편안히 터를 닦고 모든 건설하는 뜻을 볼 때에 이 또한 하느님의 배치(配置)한 명리(命吏 제왕을 일컬음)가 아닐 수 없겠다.

昔人嘗疑於詢詢之天 而有質於聖人者.

옛날 어느 학자가 일찍이 하늘이 순순(諄諄)히 명령하신다는 말씀을 의심하여 성인(맹자)에게 질문했더니,

聖人丁寧 體天之意曰

그 성인은 똑똑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天不言 以行事示之.”

‘하느님은 말씀으로 하진 않으시고 모든 실천과 사실로서 표시하는 거야.’
하셨으니,

小子嘗讀之至此 其惑滋甚.

소자(小子) 일찍이 이 글을 읽다가 이곳에 이르러선 퍽 의심스러웠다.

[주C-001]호질후지(虎叱後識) : 다른 ‘본’에는 이 소제가 없었던 것을, 이제 ‘주설루본’을 좇아 추록하였다.
[주D-001]
거협(胠篋)ㆍ도척(盜跖) :
모두 《장자》의 편명. 《남화경(南華經)》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
[주D-002]
옛날……거야 :
《맹자》 만장편에 나오는 구절. 여기서 ‘어느 학자’란 맹자의 제자인 만장(萬章)을 말함.
[주D-003]
소자(小子) :
연암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서 한 말.


敢問

이제 나는 감히 묻노니,

“以行事示之

“하느님께선 모든 실천과 사실로써 그의 의사를 표시하실진대,

則用夷變夏 天下之大辱也.

저 오랑캐의 제도로써 중국의 것을 뜯어 고친다는 것은 천하의 커다란 모욕이다.

百姓之寃酷 如何?

저 인민들의 원통함이 그 어떠하겠는가?

馨香腥膻 各類其德 百神之所饗 何臭?”

注]腥(성):비리다. 膻(단):누리다.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들의 닦은 덕(德)에 따라 다른 것이니, 백신(百神)은 그 어떤 냄새를 응감할 것인가.”

故自人所處而視之 則華夏夷狄 誠有分焉.

요컨대, 사람으로서 보면 중화(中華)와 이적의 구별이 뚜렷하겠지마는

自天所命而視之 則殷冔周冕 各從時制

하늘로서 본다면 은(殷)의 우관(冔冠)이나 주(周)의 면류(冕旒)도 제각기 때를 따라 변하였거니,

何必獨疑於淸人之紅帽哉?

어찌 반드시 청인(淸人)들의 홍모(紅帽)만을 의심하리오.

於是 天定人衆之說 行於其間

이에 천정(天定)ㆍ인중(人衆)의 설(說)이 그 사이에 유행되고는,

人天相與之理 乃反退聽於氣

사람과 하늘의 서로 조화되는 이(理)는 도리어 한 걸음 물러서서 기(氣)에게 명령을 받게 되며,

驗之前聖之言 而不符則輒曰

또 이런 문제로써 옛 성인의 말씀에 체험하여도 맞지 않으면 문득 이르기를,

“天地氣數如此.”

‘이건, 천지의 기수(氣數)가 이런 것이야.’ 한다.


[주D-004]천정(天定)……설(說) : 《귀잠지(歸潛志)》에,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하늘도 막아 낼 수 없고,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 하였다.

嗚呼, 是豈眞氣數然耶?

아아, 슬프다. 이것이 어찌 참으로 기수의 소치라 이르고 말 것인가.

噫, 明之王澤 已渴矣.

아아, 슬프다. 명(明)의 왕택(王澤)이 끊인 지 벌써 오래여서

中州之士 自循其髮於百年之久

중원의 선비들이 그 머리를 고친(치발(薙髮)) 지도 백 년의 요원한 세월이 흘렀으되,

而寤寐標擗 輒思明室者 何也?

자나깨나 가슴을 치며 명실(明室)을 생각함은 무슨 까닭인고.

所以不忍忘中國也.

이는 차마 중국을 잊지 못함이다.

淸之自爲謀 亦疎矣.

그러나 청이 저를 위한 계책도 역시 허술하다 하리로다.

懲前代胡主之末 效華而衰者

그는 전대(前代) 오랑캐 출신의 말주(末主)들이 항상 중화의 풍속과 제도를 본받다가 쇠망했음을 징계하여

勒鐵碑 埋之箭亭

철비(鐵碑)를 새겨서 전정(箭亭 파수 보는 곳)에 묻었으나,

其言 “未嘗不自恥其衣帽”

그들 평소에 하고 버리는 말 가운데에는 언제나 스스로 그의 옷과 벙거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而猶復眷眷於强弱之勢 何其愚也?

오히려 다시 강약의 형세에만 마음을 두니 그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文謀武烈 尙不能救末王之陵夷

저 문왕(文王)처럼 깊은 꾀와 무왕(武王) 같은 높은 공렬로도 오히려 말주(은의 주왕(紂王))의 쇠퇴함을 구해 내지 못했거늘,

況區區自强於衣帽之末哉?

하물며 구구(區區)하게 저 의관 제도의 하찮은 것을 고집해선 무엇할 것인가.

衣帽誠便於用武 則北狄西戎 獨非用武之衣帽耶?

그들의 옷과 벙거지가 진정 싸움에 편리하다면 저 북적(北狄)이나 서융(西戎)의 그것인들 유독 전쟁에 쓸 수 없는 전투복과 전투모이겠는가?

力能使西北之他胡 反襲中州舊俗 然後始能獨强於天下也.

그들은 의당 힘껏 저 서북쪽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옛 습속을 따르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천하에 홀로 강한 체할 것이어늘,

囿天下於戮辱之地 而號之曰

이제 온 천하의 인민들을 모두 욕된 구렁에 몰아넣고는 홀로 호령하되,

“姑忍汝羞恥 而從我爲强於天下也.”

‘잠깐 너희들의 수치를 참으면 우리를 따라 강하게 될지어다.’ 하나,

吾未知其强也.

나는 그 ‘강하다’는 것을 알디 못하겠다.

未必新市綠林之間 赤其眉黃其巾以自異也.

굳이 의관 제도만으로 강함이 된다면, 저 신시(新市)ㆍ녹림(綠林) 사이에 그 눈썹을 붉게 물들이거나 또는 그 머리 수건을 노란 빛깔로 고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했던 도적놈이라야 되는 것은 아니리라.

假令愚民一脫其帽 而抵之地

가령 어리석은 인민들로 하여금 한번 일어나서 그들이 씌워 주었던 벙거지를 벗어서 땅에 팽개친다면,

淸皇帝已坐失其天下矣.

청 황제(淸皇帝)는 벌써 천하를 앉은 자리에서 잃어버리게 될지니,

向之所以自恃 以爲强者 乃反救亡之不暇也.

지난날 이를 믿고서 스스로 강하다고 뽐내던 것이 도리어 망하는 것을 구할 겨를조차 없게 된다.

其埋碑垂訓於後 豈非過歟?

이렇게 된다면 그 빗돌을 새겨 묻어서 후세에 경계한 일이야말로 어찌 부질없는 짓이 아니리오.

篇本無題 今取篇中有“虎叱”二字爲目 以竢中州之淸焉.

이 편은 애초엔 제목(題目)이 없으므로 이제 그 글 중에 ‘호질(虎叱)’이란 두 글자를 따서 제목을 삼아 두어 저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주D-005]
신시(新市)ㆍ녹림(綠林) : 이 둘은 모두 당시의 소위 유적(流賊)이 출몰하는 근거지.
[주D-006]
눈썹을……물들이거나 :
적미적(赤眉賊). 서한(西漢) 말년의 유적.
[주D-007]
머리……고쳐서 :
동한(東漢) 말기의 황건적(黃巾賊).
[주D-008]
도적놈 :
옛날 지배 계급의 역사에서는, 정의를 들고 일어서서 항쟁하는 농민들은 모두 도적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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