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역사
사이판과 이웃하는 괌, 로타, 티니언을 따라서 북쪽으로의 더 작은 크기의 소형의 섬들까지 기원전 20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카누였다.
15세기, 스페인인들이 항해 중에 괌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차모로인과 마주쳤다. 그리고 스페인인들은 사이판을 합병했다.
1815년 경, 사타왈 출신의 많은 캐롤라이니언 족이 차모로족이 괌에 갇힌 시기 동안 사이판에 정착했으며, 차모로 종족의 땅과 권리의 상당한 손실을 초래했다.
1899년부터 베르사유 조약 발효 때까지는 독일이 사이판을 지배했으며,
1922년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신탁통치하는 남양 군도의 일부가 되었다. 일본은 사이판 섬에서 낚시 산업과 설탕 산업을 주로 개발했으며, 1930년대 이후로는 병참기지를 건설하면서 30,000명의 군인을 주둔시켰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1944년 6월 15일, 미국 해병대는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북마리아나 제도 장악의 일환으로 3주일 동안의 전투를 벌여 사이판 섬을 점령하고 비행장을 건설했다. 이 사이판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일본군들은 대부분 반자이 돌격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으며, 일본인들도 "반자이 절벽"이라 불리는 절벽에서 자살했다.
1986년 11월 북마리아나 제도가 미국에 가입하면서 미국령의 일부가 되었다. 북마리아나 제도와 미국은 북마리아나 제도가 확실한 연방법으로부터 면제받기로 동의하면서, 어떤 관련된 산업 관계와 이민을 포함했다. 한 가지 결과는 호텔과 관광의 증가였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옷 공장들 또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