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으로 내려오는 동안,
이명주 시인은 조병옥 시인에게 백석과 기녀 자야(子夜)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며
시 <여우난곬족>에 대한 얘기로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1939년 정현웅이 『문장』지에 쓰고 그린 백석의 프로필(왼쪽)과 영어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1937년 25세 때의 백석(오른쪽).
여우난곬족(族)
- 백석(1912.07. 01 - 1996년 1월 )
- 1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2 -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 누이 사촌 동생들
- 3 -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 4 -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대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참고]
*시련의 구분 표시는 운영자.
[1연] 명절날 큰집에 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
[2연] 큰집에 모이던 여러 명의 친척들에 대한 소개
[3연] 큰집 방 안의 정경과 다양한 음식
[4연] 흥겹게 놀면서 풍요롭게 명절을 쇠던 기억
주제: 가족 공동체 간의 유대감과 명절날의 정취
[작품출처] 백석 <여우난곬족>
http://blog.naver.com/36hjs/150178577010
이동순편,백석시전집,창작사,1987,p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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