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 허목의 전서체 글씨 - 靑巖水石(청암수석)은 정자 받침돌인 거북바위가 연못에 잠긴 걸 지칭한 듯함.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1478 ~ 1548년)의 유적지이다. 이 곳은 유곡으로 ‘닭실’인데 흔히 ‘달실’로 부른다. 그는 안동출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서 활동하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중종 28년(1548)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돌아갔다. 이곳에는 그가 지은 청암정과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석천정은 다음 글에 올린다. 1급목재인 춘양목의 산지여서 봉화 인근에는 정자가 많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mERhULOuM&t=9s
청암정/ 봉화 닭실마을
20191016 104831 http://www.dapsa.kr/blog/?p=45658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907142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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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1iO38UYRgk
봉화 닭실마을 4
20191016 10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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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巖水石 : 미수 허목의 전서체
호패는 고려 · 조선시대의 신분증.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D%8C%A8
호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시대 호패, 윤선응(尹善應). 호패(戶牌, 號牌)는 전통 봉건시대에 신분증 구실을 하는 작은 패(牌)로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녔다. 고려와 조선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신분 계층별로 재질과 기재 내용에 차등을 두었다. 사망 시에는 국가에 호패를 반납하였다. 현재의 신분증명서와 같은 것으로 그 기원은 원나라에서 시작되어 한국은 1354년(고려 공민왕 3)에 이 제도를 모방, 수·육군정(水陸軍丁)에 한하여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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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패(戶牌, 號牌)는 전통 봉건시대에 신분증 구실을 하는 작은 패(牌)로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녔다. 고려와 조선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신분 계층별로 재질과 기재 내용에 차등을 두었다. 사망 시에는 국가에 호패를 반납하였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8186
권벌 종가 유묵(權橃宗家遺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유묵들은 명현의 필적으로서 서예적 가치뿐만 아니라, 권벌 및 그의 자제들의 교유관계와 당시 사대부들의 시문 활동상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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