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中 예수와 마리아

아래의 사실적 시각의  '피에타' 조각작품과 비교해 보면 인체의 美를 남성의 근육에 부여했기 때문에 물 위를 걷던 예수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피에타/예수와 마리아 母子상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7%90%ED%83%80

 

피에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슷한 이름의 피에스타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피에타(이탈리아어: 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ko.wikipedia.org

 

 

 

 

 

https://www.youtube.com/watch?v=hi17OqiPkY8

 

 

 

최후의 심판 [Last Judgement]

https://namu.wiki/w/%EC%B5%9C%ED%9B%84%EC%9D%98%20%EC%8B%AC%ED%8C%90

 

최후의 심판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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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1533년 중순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았다. 클레멘스 7세가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은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한 로마의 점령과 약탈 등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데,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일단 중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의뢰함으로써 1535년 4월 16일 발판의 조립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541년 가을, 면적 167.14m2의 벽면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총 391명의 인물상 드러났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에 의한 《신곡》이라 할 수 있다. 단테가 그 생애 중 만난 사람들을 평가하여 지옥, 연옥, 천국에 그 위치를 매긴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시각적 표현에 의하여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로 차례를 매겨 나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은 크게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의 5개 부분으로 나눈다.

중앙의 그리스도는 이제까지 흔히 그려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수염도 나지 않은 당당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곁에는 성모 마리아가 앉아 아래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 있다. 여기는 천사에 가까운 성자들의 세계이다.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혹은 천상으로 올라가고, 혹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후의 심판 [Last Judgement, 最後─審判] (두산백과)

 

 

https://www.youtube.com/watch?v=KKhvDx8s8Fk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 Sistine Chapel Ceiling ]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https://www.youtube.com/watch?v=igl5x_sOLsY&t=33s

 

 

바티칸 미술관과 시스티나 성당

https://www.youtube.com/watch?v=F4a4dP4bGP4&t=102s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가 탄생하기까지/ 해설 김상근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zUrAudRL0sQ

 

 

[참고] 단테「신곡」 해설

단테「신곡」읽기_#001/ 김상근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3kSTnTPh7cg

 

단테「신곡」읽기_#002

https://www.youtube.com/watch?v=b0Gnav03yTc&t=186s

 

단테「신곡」읽기_#003

https://www.youtube.com/watch?v=fQdwvbKkx8s&t=33s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8071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

1508년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명을 받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창세기 9장면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지창조’로 많이 알려져 있다.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천장화 성서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Sistine Chapel Ceiling] (두산백과)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1564.2.18]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카프레세 출생.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나,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세 때에 기를란다요(Ghirlandajo)에게 입문하였고, 이듬해 조각가 베르톨도(Bertoldo di Giovanni:1420?∼1491)에게로 옮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우면서, 메디치가()의 고대 조각을 연구하였다. 그 때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1449∼1492)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체류하게 되어, 인문 학자들과도 접촉, 고전문학이나 신구약 성서를 탐독함과 동시에, 조각을 위한 인체 해부에도 전념하였다. 블랑카치성당 마사초의 벽화 앞에서 토레지아니와 논쟁하다가 코뼈가 부러진 것도 그 때의 일이며, 이때의 작품으로는 피렌체의 카사 보나로티에 남아 있는 도나텔로풍의 《스칼라의 성모》와 고전적 격조를 보인 《켄타우로스족과 라피타이족의 싸움》의 부조()가 있다. 1492년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죽은 후, 프랑스군이 침입하자 볼로냐로 피난, 거기서 J.d.퀘르치아의 조각도 배웠다. 

   1496년 로마로 나올 기회를 얻어 고전 예술에 접촉, 조상 《바쿠스》(피렌체 바르젤로미술관 소장)를 제작,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Pieta》를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완성한 것은 1499년경이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으로부터 《다비드》의 대리석상을 부탁받아 1504년에 완성하였다. 이 거상은 시청 문 앞에 놓여 피렌체 자치 도시를 지키는 상징으로 간직되었다(현재는 아카데미아미술관 소장). 이 무렵의 작품으로 성모자()를 다룬 2개의 원형 부조(런던 왕립미술아카데미와 바르젤로미술관 소장)와 원형화 《성가족》(우피치미술관)이 있다. 1504년 피렌체 시청에 《카시나의 싸움 Battle of Cascina》의 벽화를 의뢰받아, 건너편 벽면에 《안기리의 기마전》을 그리게 되어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경쟁하였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듬해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 로마로 가서, 그 기념 묘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브라만테가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개축에 착수한 이래, 율리우스 2세가 냉담해지자, 이에 성이 난 그는 피렌체로 돌아와 다시 《카시나의 싸움》 제작에 전념하였다. 

   1506년 레오나르도도 화고(稿)를 완성, 벽화를 착수하였으나, 쌍방 모두 진전이 없던 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지금은 화고도 없어지고, 모사화()가 남아 있을 뿐이다. 1506년 말 미켈란젤로는 다시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가, 볼로냐에서 화해하고, 1508년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를 위촉받았다. 벽화에는 경험이 없다고 사퇴하였으나, 허용되지 않아 적대자 브라만테의 간계를 물리치면서 제작을 시작하였다. 일은 진척되지 않고, 보수도 지불되지 않고, 형제들로부터는 금전을 강요당하고, 교황과도 충돌하는 악조건하에서 1512년에 마침내 완성하였다.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의 3장 9화면을 구약 내용의 순서와는 반대로 그리기 시작, 그 화면 사이에 예언자나 천사(使)나 역사()를 배치하고, 복잡한 모습을 부여하여, 묘사된 대리석상 같은 인간군상을 부각하였다. 천장화 완성의 다음해에 율리우스 2세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현안의 묘비를 실현시키게 되어, 1513∼1518년에 묘비의 중심조상()이 될 《모세 Moses》의 거상()과 부속 인물인 《노예》를 만들었으나,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가 새로이 피렌체의 산 로렌초성당의 파사드의 건축을 강요하였기 때문에, 그 후 율리우스 2세의 묘비는 중단되었다.  

[출처] [미켈란젤로]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배치1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07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zKtawj6QG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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