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월) 김천 황악산 직지사에 가다.

일행들은 3만보 정도의 트레킹을 즐기는 분들이었는데, 나는 사찰의 단청에 현혹되는 성격이라 언제나 사찰의 경내를 자상히 둘러보는 게 우선이었다. 

뜻밖에도 대웅전에서 황악루에 이르는 길에는 단풍터널까지 조성되어 나의 현명한 선택을 꽤나 잘한 일이라 자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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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직지사 - Google 검색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추어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萬歲樓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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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直指寺)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황악산(黃嶽山)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사명대사의 출가본사, 직지사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에서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 산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고 해서 ‘직지’라는 사명이 붙게 되었다는 설과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능여대사(能如大師)가 절을 중건할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전한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조선 15대 광해군 때인 1610년(광해군 2년)에 재건하였다.

사명대사와 천왕문 앞 돌[편집]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출가본사다. 경남 밀양 태생이었던 사명대사는 13세 때 직지사 앞 유촌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곳에 머물던 황희 정승의 현손 황여헌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이사했지만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잃게 되자 바로 직지사로 출가해서 신묵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18세에 봉은사에서 치러진 승과에서 장원으로 합격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32세에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곧바로 묘향산 보현사로 스승을 따라 갔다가 금강산 유점사에 머물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명대사는 서산의 사발통문을 접하자마자 바로 의승병을 조직해 승병장으로서 명승을 떨치게 된다.

사명대사가 처음 직지사로 들어오던 날의 일화와 관련한 유적이 현재까지도 직지사에 남아 있다. 천왕문 옆 반듯한 바윗돌이 바로 그것인데, 신묵대사가 참선을 하던 도중 잠깐 잠에 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꿈에 천왕문 옆 은행나무에 황룡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잠이 깨어 부리나케 꿈에서 본 천왕문 앞 은행나무로 달려갔다. 은행나무 아래 깎아놓은 것 같은 돌판이 있는데 그 위에 한 소년이 잠에 들어 있었다. 신묵대사는 소년을 거두어 제자로 삼았으니 그 소년이 바로 훗날의 사명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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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백운화상 경한(景閑)이 1372년에 초록한 불교 서적이다. 간단히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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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백운화상 경한(景閑)이 1372년에 초록한 불교 서적이다. 간단히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또는 직지(直指, Jikji)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용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直指心體)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오도(悟道)의 명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 뜻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그 자체가 본시 청정하므로 선지식(善知識)의 도움에 의하여 자기 마음 속에서 그 심성이 자정(自淨)함을 깨닫고 늘 자수(自修)·자행(自行)하면 곧 불성(佛性)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이 바로 법신(法身)이 되며, 자기 마음이 바로 불심이 된다는 요지이다.[2]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이 입적하고 3년 뒤인 1377년(우왕 3)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하였다. 상·하 2권을 간행했으나, 현전하는 것은 하권 1책(첫 장 결락) 뿐이며, 이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본

1378년(우왕 4) 6월에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에서 제자 법린(法麟) 등이 금속활자본을 바탕으로 간행한 것이다. 서문은 금속활자본의 성사달(成士達)이 쓴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앞부분에 이색(李穡)이 쓴 서문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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