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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유식삼십송[편집]
‘오로지 인식’에 대한 노래 서른줄[편집]
- 나와 세상[3] 에 대한 여러 이야기[4] 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와 세상에 대한 우리의[5] 인식이 바뀌어 만들어진 것입니다.[6] 이런 바뀜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7] - 무르익는 인식,[8] 헤아리는 인식, 그리고 감각 영역에 따른 인식[9] 입니다.
이 가운데에서[10] 인식이라는 집(알라야)[11] 은 모든[12] 씨앗을 여물게 합니다. - 인식의 과정에서[13] 거두어 붙잡은 것[14] 이 어디에 어떻게 머무는[15] 지 알 수는 없[16] 지만,[17]
대상에 닿아,[18] 뜻을 일으키고,[19] 거두어,[20] 떠올리고,[21] 헤아리는[22] 것과[23] 늘 함께 합니다.[24] - 느낌[25] 과 무관[26] 하며,[27] 번뇌에 덮여 있지도 않고,[28] 좋거나 나쁘지도 않으며;[29]
‘닿아 일으켜 거둬 떠올려 헤아리는 것’도[30] 이와 같아, 늘 물줄기가 터지 듯[31] 일어나며;[32][33] - 이 흐름[34] 에서 벗어나면[35] 아라한의 자리[36] 이니, 이는 인과율의 안식처[37] 입니다.
알라야식에 기대어, ‘마나’라고 하는[38] 인식이 생기며; 헤아림이 특징[39] 입니다.[40] - 나라는 어리석음과 스스로 보고 스스로 우쭐하고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 네 가지 번뇌와 늘 함께 하고;
‘닿아 일으켜 거둬 떠올려 헤아리는 것’과도 늘 함께 하며; - 덮은 것이 있되, 기록되지 않은 것이고; 묶인 것이 생기는 곳을 따르며;
아라한(의 자리)와 그침의 상태[41] 와 세상 벗어난 길에는 없다. - 인식 변화의 세 번째는, (각각의) 감각 영역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뉘며;
좋거나, 좋지 않거나, 이도 저도 아니기도 하다. - 그 마음 자리는 늘 있는 것, 경우에 따라[42] 있는 것, 좋은 것;
번뇌, 그리고 번뇌를 따르는 것이며, 이 마음 자리들은 (마음이) 거두는 세 가지 결과값[43] 과 모두 서로 어울린다.[44] - 우선 ‘늘 있는 것’은 ‘닿아... 헤아리는 것’이며; 그 다음, ‘경우에 따라 있는 것’은 바래고,
이해하고, 외우고, 다스리고,[45] 슬기로운 것이며, (이들이) 나타나는 조건은 각자 다르다. - ‘좋은 것’은 믿음, 양심, 부끄러움, 탐내지 않음 등의 세 가지 뿌리[46] 와,
부지런함, 편안함, 신중함, 해코지 않음[47] 이다. - ‘번뇌’는 탐내고, 미워하고, 어리석고,[48] 오만하고, 의심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것[49] 이다.
‘번뇌를 따르는 것’은 화내고, 원망하고, 헐뜯고, 괴로워하고, 샘내고, 좀스럽고, - 속이고,[50] 착한 체 하고,[51] 해롭고, 까불고, 양심 없고, 부끄럼을 모르고,
흥분하고, 흐리멍텅하고, 믿지 않고, 게으르고, - 부주의하고, 잊어버리고, 어수선하고, 바로 알지 못하고,
뉘우치고, 졸립고, 넓게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52] 이며; 마지막 넷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둘씩 (묶여) 이중의 뜻이 있다.[53] - 다섯 인식은 뿌리 인식[54] 에 기대어 머무르며, 조건에 따라;
함께 또 홀로 나타나니; 물결이 물에 기대는 것과 같다. - 뜻 인식[55] 은 늘 나타나지만, 생각을 버린 세상[56] 에 태어나거나;
잠과 기절 같은 마음없음[57] 의 두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 인식이 굴러 변한다고 나누어 가르는 것도 나누고 가르는 것의 대상이며;
이도 저도 모두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 오직 인식일 뿐이다. - 인식이 모든 것의 씨가 되어, 이렇게 저렇게 바뀌며;
서로 영향을 준 결과,[58] 이리 저리 나누어 가르는 것이 생긴다. - 여러 업이 남긴 자국[59] 과, 둘[60] 에 매달렸던[61] 자국 때문에;
앞의 ‘다르게 익는 것’[62] 이 이미 다한 뒤에도, 또 다른 ‘다르게 익는 것’이 거듭 나타난다. - 이리 저리 두루 헤아리기[63] 때문에, 이런 저런 것들이 두루 헤아려지지만;[64]
그 두루 헤아림이 붙잡고 있는 것[65] 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66] -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누어 가르는 것[67] 을 조건으로 하여 생기며;
‘온전히 참을 이루는 것’은 이런 점[68] 에서,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늘 멀리 떨어져 있다. - 따라서 이것[69] 은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과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늘 머물지 않음’[70] 같은 것들처럼, 이것이 보이지 않으면 저것도 (보이지) 않는다.[71] - 이러한 ‘세 가지의 본질적 성질’[72] 에 의지해서, 저러한 ‘세 가지의 본질적 성질이 없음’[73] 을 세웠기 때문에;
부처님은 깊은 뜻[74] 으로 말씀하시길, 그 어떤 경우에도[75] 본질적 성질은 없다고 하셨다. - 첫 번째[76] 는 그 모습에 본질적 성질이 없고,[77] 두 번째[78] 는 (독립적인) 스스로의 본질적 성질이 없으며;[79]
세 번째[80] 는 앞서 이야기한 ‘나와 법에 집착함’이 없는 성질이니; - 이것은 여러 법의 가장 뛰어난 이치이고,[81] 있는 그대로의 참이다;
언제나 그러하기 때문에, ‘오로지 인식’일 뿐이다.[82] - 인식이 ‘오로지 인식’에 머물지 않는 한;
둘에 집착[83] 하는 번뇌는 굴복시켜 없앨 수 없으며; - 눈앞에 작은 물건을 두고, 이를 ‘오로지 인식일 뿐’이라 한다 해도;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오로지 인식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 (인식의) 조건(이 되는 외부)의 대상과 접하고도 얻는 것이 없을 때;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두 겹 붙듦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인식에 머무는 것이다. - 얻는 것도 없고, 생각을 품지도 않아, 세상을 벗어난 지혜이니;
못나고 무거운 두 가지를 버림으로서, 의지하던 것이 바뀜을 곧 깨달아 얻는다. - 이것은 물 샐 틈 없는 세계이고, 좋고도 늘 그러함이 생각의 한계를 넘으며;
즐거운 자유의 몸이고, 가장 어진 이의 이름난 법이다.
번역 기초 저작물[편집]
산스크리트어 원문[편집]
유식삼십송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안혜(安慧, Sthiramati)의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 산스크리트어 원문에 함께 포함된 게송 부분이다. Sylvain Lévi가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한 ‘Vijnaptimatratasiddhi: Deux traite de Vasubandu, Vimsatika et Trimsika’에 공개한 것을 따랐다.[84]
त्रिंशिकाविज्ञप्तिकारिकाः
आत्मधर्मोपचारो हि विविधो यः प्रवर्तते ।
विज्ञानपरिणामो ऽसौ परिणामः स च त्रिधा ॥ १ ॥
विपाको मननाख्यश्च विज्ञप्तिर्विषयस्य च ।
तत्रालयाख्यं विज्ञानं विपाकः सर्वबीजकम् ॥ २ ॥
असंविदितकोपादिस्थानविज्ञप्तिकं च तत् ।
सदा स्पर्शमनस्कारवित्संज्ञाचेतनान्वितम् ॥ ३ ॥
उपेक्षा वेदना तत्रानिवृत्ताव्याकृतं च तत् ।
तथा स्पर्शादयस्तच्च वर्तते स्रोतसौघवत् ॥ ४ ॥
तस्य व्यावृत्तिरर्हत्वे तदाश्रित्य प्रवर्तते ।
तदालम्बं मनोनाम विज्ञानं मननात्मकम् ॥ ५ ॥
क्लेशैश्चतुर्भिः सहितं निवृताव्याकृतैः सदा ।
आत्मदृष्ट्यात्ममोहात्ममानात्मस्नेहसंज्ञितैः॥ ६ ॥
यत्रजस्तन्मयैरन्यैः स्पर्शाद्यैश्चार्हतो न तत् ।
न निरोधसमापत्तौ मार्गे लोकोत्तरे न च ॥ ७ ॥
द्वितीयः परिणामो ऽयं तृतीयः षङ्विधस्य या ।
विषयस्योपलब्धिः सा कुशलाकुशलाद्वया ॥ ८ ॥
सर्वत्रगैर्विनियतैः कुशलैश्चैतसैरसौ ।
संप्रयुक्ता तथा क्लेशैरुपक्लेशैस्त्रिवेदना ॥ ९ ॥
आद्याः स्पर्शादयश्छन्दाधिमोक्षस्मृतयः सह ।
समाधिधीभ्यां नियताः श्रद्धाथ ह्रीरपत्रपा ॥ १० ॥
अलोभादि त्रयं वीर्यं प्रश्रब्धिः साप्रमादिका ।
अहिंसा कुशलाः क्लेशा रागप्रतिघमूढयः॥ ११ ॥
मानदृग्विचिकित्साश्च क्रोधोपनहने पुनः ।
म्रक्षः प्रदाश इर्ष्याथ मात्सर्यं सह मायया ॥ १२ ॥
शाठ्यं मदो ऽविहिंसा ह्रीरत्रपा स्त्यानमुद्धवः ।
आश्रद्ध्यमथ कौशीद्यं प्रमादो मुषिता स्मृतिः ॥ १३ ॥
विक्षेपो ऽसंप्रजन्यं च कौकृत्यं मिद्धमेव च ।
वितर्कश्च विचारश्चेत्युपक्लेशा द्वये द्विधा ॥ १४ ॥
पञ्चानां मूलविज्ञाने यथाप्रत्ययमुद्भवः ।
विज्ञानानां सह न वा तरङ्गाणां यथा जले ॥ १५ ॥
मनोविज्ञानसंभूतिः सर्वदासंज्ञिकादृते ।
समापत्तिद्वयान्मिद्धान्मूर्छनादप्यचित्तकात् ॥ १६ ॥
विज्ञानपरिणामो ऽयं विकल्पो यद्विकल्प्यते ।
तेन तन्नास्ति तेनेदं सर्वं विज्ञप्तिमात्रकम् ॥ १७ ॥
सर्वबीजं हि विज्ञानं परिणामस्तथा तथा ।
यात्यन्योन्यवशाद् येन विकल्पः स स जायते ॥ १८ ॥
कर्मणो वासना ग्राहद्वयवासनया सह ।
क्षीणे पूर्वविपाके ऽन्यद्विपाकं जनयन्ति तत् ॥ १९ ॥
येन येन विकल्पेन यद्यद् वस्तु विकल्प्यते ।
परिकल्पित एवासौ स्वभावो न स विद्यते ॥ २० ॥
परतन्त्रस्वभावस्तु विकल्पः प्रत्ययोद्भवः ।
निष्पन्नस्तस्य पूर्वेण सदा रहितता तु या ॥ २१ ॥
अत एव स नैवान्यो नानन्यः परतन्त्रतः ।
अनित्यतादिवद् वाच्यो नादृष्टे ऽस्मिन् स दृश्यते ॥ २२ ॥
त्रिविधस्य स्वभावस्य त्रिविधां निःस्वभावताम् ।
संधाय सर्वधर्माणां देशिता निःस्वभावता ॥ २३ ॥
प्रथमो लक्षणेनैव निःस्वभावो ऽपरः पुनः ।
न स्वयं भाव एतस्येत्यपरा निः स्वभावता ॥ २४ ॥
धर्माणां परमार्थश्च स यतस्तथतापि सः ।
सर्वकालं तथाभावात् सैव विज्ञप्तिमात्रता ॥ २५॥
यावद्विज्ञप्तिमात्रत्वे विज्ञानं नावतिष्ठते ।
ग्राहद्वयस्यानुशयस्तावन्न विनिवर्तते ॥ २६ ॥
विज्ञप्तिमात्रमेवेदमित्यपि ह्युपलम्भतः ।
स्थापयन्नग्रतः किंचित् तन्मात्रे नावतिष्ठते ॥ २७ ॥
यदालम्बनं विज्ञानं नैवोपलभते तदा ।
स्थितं विज्ञानमात्रत्वे ग्राह्याभावे तदग्रहात् ॥ २८ ॥
अचित्तो ऽनुपलम्भो ऽसौ ज्ञानं लोकोत्तरं च तत् ।
आश्रयस्य परावृत्तिर्द्विधा दौष्ठुल्यहानितः ॥ २९ ॥
स एवानास्रवो धातुरचिन्त्यः कुशलो ध्रुवः ।
सुखो विमुक्तिकायो ऽसौ धर्माख्यो ऽयं महामुनेः॥ ३० ॥
त्रिंशिकाविज्ञप्तिकारिकाः समाप्ताः
कृतिरियमाचार्यवसुबन्धोः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라틴어 음차[편집]
- 출처: Sastra section, text no. 18; Digital Sanskrit Buddhist Canon Project of Nagarjuna Institute[85]
Atha Triṃśikāvijñaptikārikāḥ
ātmadharmopacāro hi vividho yaḥ pravartate |
vijñānapariṇāme 'sau pariṇāmaḥ sa ca tridhā || 1 ||
vipāko mananākhyaśca vijñaptirviṣayasya ca |
tatrālayākhyaṃ vijñānaṃ vipākaḥ sarvabījakam || 2 ||
asaṃviditakopādisthānavijñaptikaṃ ca tat |
sadā sparśamanaskāravitsañjñācetanānvitam || 3 ||
upekṣā vedanā tatrānivṛtāvyākṛtaṃ ca tat |
tathā sparśādayastacca vartate srotasaughavat || 4 ||
tasya vyāvṛtirarhatve tadāśritya pravartate |
tadālambaṃ manonāma vijñānaṃ mananātmakam || 5 ||
kleśaiścaturbhiḥ sahitaṃ nivṛtāvyākṛtaiḥ sadā |
ātmaduṣṭyātmamohātmamānātmasnehasañjñitaiḥ || 6 ||
yatrajastanmayairanyaiḥ sparśādyaiścārhato na tat |
na nirodhasamāpattau mārge lokottare na ca || 7 ||
dvitīyaḥ pariṇāmo 'yaṃ tṛtīyaḥ ṣaḍvidhasya yā |
viṣayasyopalabdhiḥ sā kuśalākuśalādvayā || 8 ||
sarvatragairviniyataiḥ kuśalaiścaitasairasau |
samprayuktā tathā kleśairūpakleśaistrivedanā || 9 ||
ādyāḥ sparśādayaśchandādhimokṣasmṛtayaḥ saha |
samādhidhībhyāṃ niyatāḥ śraddhātha hrirapatrapā || 10 ||
alobhādi trayaṃ vīryaṃ praśrabdhiḥ sāpramādikā |
ahiṃsā kuśalāḥ kleśā rāgapratighamūḍhayaḥ || 11 ||
mānadṛgvicikitsāśca krodhopanahane punaḥ |
mrakṣaḥ pradāśa īrṣyārtha mātsaryaṃ saha māyayā || 12 ||
śāṭhyaṃ mado 'vihiṃsāhrīratrapā styānamuddhavaḥ |
āśraddhamatha kausīdyaṃ pramādo muṣitā smṛtiḥ || 13 ||
vikṣepo 'samprajanyaṃ ca kaukṛtyaṃ middhameva ca |
vitarkaśca vicāraścetyupakleśā dvaye dvidhā || 14 ||
pañcānāṃ mūlavijñāne yathāpratyayamudbhavaḥ |
vijñānānāṃ saha na vā taraṅgāṇāṃ yathā jale || 15 ||
manovijñānasambhūtiḥ sarvadāsañjñikādṛte |
samāpattidvayānmiddhānmūrchanādapyacittakāt || 16 ||
vijñānapariṇāmo 'yaṃ vikalpo yadvikalpyate |
tena tannāsti tenedaṃ sarvaṃ vijñaptimātrakam || 17 ||
sarvabījaṃ hi vijñānaṃ pariṇāmastathā tathā |
yātyanyonyavaśād yena vikalpaḥ sa sa jāyate || 18 ||
karmaṇo vāsanā grāhadvayavāsanayā saha |
kṣīṇe pūrvavipāke 'nyadvipākaṃ janayanti tat || 19 ||
yena yena vikalpena yadyad vastu vikalpyate |
parikalpita evāsau svabhāvo na sa vidyate || 20 ||
paratantrasvabhāvastu vikalpaḥ pratyayodbhavaḥ |
niṣpannastasya pūrveṇa sadā rahitatā tu yā || 21 ||
ata eva sa naivānyo nānanyaḥ paratantrataḥ |
anityatādivad vācyo nādṛṣṭe 'smin sa dṛśyate || 22 ||
trividhasya svabhāvasya trividhāṃ niḥsvabhāvatām |
sandhāya sarvadharmāṇāṃ deśitā niḥsvabhāvatā || 23 ||
prathamo lakṣaṇenaiva niḥsvabhāvo 'paraḥ punaḥ |
na svayambhāva etasyetyaparā niḥsvabhāvatā || 24 ||
dharmāṇāṃ paramārthaśca sa yatastathatāpi saḥ |
sarvakālaṃ tathābhāvāt saiva vijñaptimātratā || 25 ||
yāvadvijñaptimātratve vijñānaṃ nāvatiṣṭhati |
grāhadvayasyānuśayastāvanna vinivartate || 26 ||
vijñaptimātramevedamityapi hayupalambhataḥ |
sthāpayannagrataḥ kiñcit tanmātre nāvatiṣṭhate || 27 ||
yadālambanaṃ vijñānaṃ naivopalabhate tadā |
sthitaṃ vijñānamātratve grāhyābhāve tadagrahāt || 28 ||
acitto 'nupalambho 'sau jñānaṃ lokottaraṃ ca tat |
āśrayasya parāvṛttirdvidhā dauṣṭhulyahānitaḥ || 29 ||
sa evānasravo dhāturacintyaḥ kuśalo dhruvaḥ |
sukho vimuktikāyo 'sau dharmākhyo 'yaṃ mahāmuneḥ || 30 ||
triṃśikāvijñaptikārikāḥ samāptāḥ
kṛtiriyamācāryavasubandhoḥ
한역[편집]
한역 본문은 현장(玄奘)의 한역이며, 반야문해(般若文海)의 唯識三十頌講記 를 따랐다.
唯識三十頌
世親菩薩造
大唐三藏法師玄奘奉詔譯
- 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 彼依識所變 此能變唯三
- 謂異熟思量 及了別境識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 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依彼轉緣彼 思量為性相
- 四煩惱常俱 謂我癡我見 並我慢我愛 及餘觸等俱
-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了境為性相 善不善俱非
- 此心所遍行 別境善煩惱 隨煩惱不定 皆三受相應
- 初遍行觸等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
- 善謂信慚愧 無貪等三根 勤安不放逸 行捨及不害
- 煩惱謂貪瞋 癡慢疑惡見 隨煩惱謂忿 恨覆惱嫉慳
- 誑諂與害憍 無慚及無愧 掉舉與昏沈 不信並懈怠
- 放逸及失念 散亂不正知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或俱或不俱 如波濤依水
-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絕
- 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前異熟既盡 復生餘異熟
-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圓成實於彼 常遠離前性
-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 即依此三性 立彼三無性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 初即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 此諸法勝義 亦即是真如 常如其性故 即唯識實性
-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 此即無漏界 不思議善常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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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唐三藏法師玄奘奉 詔譯
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 彼依識所變 此能變唯三
謂異熟思量 及了別境識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依彼轉緣彼 思量為性相
四煩惱常俱 謂我癡我見 並我慢我愛 及餘觸等俱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了境為性相 善不善俱非
此心所遍行 別境善煩惱 隨煩惱不定 皆三受相應
初遍行觸等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
善謂信慚愧 無貪等三根 勤安不放逸 行捨及不害
煩惱謂貪瞋 癡慢疑惡見 隨煩惱謂忿 恨覆惱嫉慳
誑諂與害憍 無慚及無愧 掉舉與昏沈 不信並懈怠
放逸及失念 散亂不正知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或俱或不俱 如波濤依水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絕
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前異熟既盡 復生餘異熟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圓成實於彼 常遠離前性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即依此三性 立彼三無性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初即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此諸法勝義 亦即是真如 常如其性故 即唯識實性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此即無漏界 不思議善常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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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삼십송 (Triṃśikā-vijñaptimātratā, 唯識三十頌)
저자: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 4세기)
역자: 이성재
한글 번역은 현장(玄奘, 602-664년)의 한역본(659년)을 중심으로,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라틴 음차본과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기초로 한 영역본을 모두 번역의 기초 저작물로 삼아, 2011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약 2개월간 이루어졌다. 각 게송의 끊는 점은 현장의 한역본을 위주로 했다.
한글 유식 삽십송 ‘오로지 인식(唯識)’에 대한 노래 30줄
- 나와 법이라고 임시로 이야기한 것이, 여러 (말의) 씨가 되어, 인식의 바뀜에 따라 서로 영향을 준다.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것에는 오직 세 가지가 있는데; - ‘다르게 익는 인식’, ‘헤아리는 인식’, 그리고 ‘느끼는 곳에 따른 인식’이다.
첫째 아뢰야식은 모든 것의 씨앗이지만, 다르게 익고; - 거두어 붙잡는 것과, 머무는 곳과, 품고 있는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닿아,
뜻을 일으키고, 거두어, 떠올리고, 헤아리기까지 늘 함께 하며; 오직 거둠을 내려놓는 것과 서로 어울리니; - 덮인 것이 없되, 기록되지 않은 것이고; ‘닿아 일으켜 거둬 떠올려 헤아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며;
늘 사나운 물줄기처럼 구르지만; 아라한의 자리에서는 내려놓는다. - 다음으로, 두 번째는 말나라고 하는 인식으로;
아뢰야식을 씨로 삼아 생겼으되, 아뢰야식의 조건이 되기도 하며; 헤아림을 그 특징으로 한다. - (말나는) 나라는 어리석음과 스스로 보고 스스로 우쭐하고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 네 가지 번뇌와 늘 함께 하고; ‘닿아 일으켜 거둬 떠올려 헤아리는 것’과도 늘 함께 하며;
- 덮은 것이 있되, 기록되지 않은 것이고; 묶인 것이 생기는 곳을 따르며;
아라한(의 자리)와 그침(의 상태)와 세상 벗어난 길에는 없다. - 인식 변화의 세 번째는, (각각의) 감각 영역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뉘며;
좋거나, 좋지 않거나, 이도 저도 아니기도 하다. - 그 마음 자리는 늘 있는 것, 경우에 따라 있는 것, 좋은 것;
번뇌, 그리고 번뇌를 따르는 것이며, 이 마음 자리들은 (마음이) 거두는 세 가지 결과값과 모두 서로 어울린다. - 우선 ‘늘 있는 것’은 ‘닿아... 헤아리는 것’이며; 그 다음, ‘경우에 따라 있는 것’은 바래고,
이해하고, 외우고, 다스리고, 슬기로운 것이며, (이들이) 나타나는 조건은 각자 다르다. - ‘좋은 것’은 믿음, 양심, 부끄러움, 탐내지 않음 등의 세 가지 뿌리와,
부지런함, 편안함, 신중함, 해코지 않음이다. - ‘번뇌’는 탐내고, 미워하고, 어리석고, 오만하고, 의심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것이다.
‘번뇌를 따르는 것’은 화내고, 원망하고, 헐뜯고, 괴로워하고, 샘내고, 좀스럽고, - 속이고, 착한 체 하고, 해롭고, 까불고, 양심 없고, 부끄럼을 모르고,
흥분하고, 흐리멍텅하고, 믿지 않고, 게으르고, - 부주의하고, 잊어버리고, 어수선하고, 바로 알지 못하고,
뉘우치고, 졸립고, 넓게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며; 마지막 넷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둘씩 (묶여) 이중의 뜻이 있다. - 다섯 인식은 뿌리 인식에 기대어 머무르며, 조건에 따라;
함께 또 홀로 나타나니; 물결이 물에 기대는 것과 같다. - 뜻 인식은 늘 나타나지만, 생각을 버린 세상에 태어나거나;
잠과 기절 같은 마음없음의 두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 인식이 굴러 변한다고 나누어 가르는 것도 나누고 가르는 것의 대상이며;
이도 저도 모두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 오직 인식일 뿐이다. - 인식이 모든 것의 씨가 되어, 이리 저리 바뀌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서, 이리 저리 나누어 가르는 것이 생긴다. - ‘두 겹의 붙들음’ 자국과 함께, 여러 업이 (무의식에) 남긴 자국 때문에;
앞선 ‘다르게 익는 마음’이 이미 다한 뒤에도, 또 다른 ‘다르게 익는 마음’이 거듭 나타난다. - 이리 저리 두루 헤아림으로부터, 이런 저런 것들이 두루 헤아려지지만;
그 두루 헤아림이 붙잡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누어 가르는 것을 조건으로 나타나기에;
‘온전히 참을 이루는 것’은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늘 멀리 떨어져 있다. - 따라서 ‘온전히 참을 이루는 것’은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과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머물지 않음(무상)’ 같은 것들처럼, 이것이 보이지 않으면 저것도 (보이지) 않는다. - 이 세 속성에 의지해서, 저 세 ‘스스로의 속성’이 없음을 세웠기 때문에;
부처님은 깊은 뜻으로, 모든 경우에 ‘스스로의 속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 먼저, 모습에 스스로의 속성이 없고, 다음으로, (독립적인) 자기라는 속성이 없으며;
앞서 얘기했던 ‘나와 법에 붙잡힌 것’의 속성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 이 여러 법들은 훌륭하고 바르며, 있는 그대로의 참이다;
언제나 그러하기 때문에, ‘오로지 인식’의 참된 속성인 것이다. - ‘오로지 인식’임을 인식하지 않는 한; ‘
두 겹 붙듦’의 번뇌는 굴복시켜 없앨 수 없으며; - 눈앞에 작은 물건을 두고, 이를 ‘오로지 인식일 뿐’이라 한다 해도;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오로지 인식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 (인식의) 조건(이 되는 외부)의 대상과 접하고도 얻는 것이 없을 때;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두 겹 붙듦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인식에 머무는 것이다. - 얻는 것도 없고, 생각을 품지도 않아, 세상을 벗어난 지혜이니;
못나고 무거운 두 가지를 버림으로서, 의지하던 것이 바뀜을 곧 깨달아 얻는다. - 이것은 물 샐 틈 없는 세계이고, 좋고도 늘 그러함이 생각의 한계를 넘으며;
즐거운 자유의 몸이고, 가장 어진 이의 이름난 법이다.
출처: https://jaengi.tistory.com/109 [쟁이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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