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편품(方便品)

      그 때 비야리 대성(大城)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유마힐(維摩詰)8)이라고 불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선근(善根) 공덕을 깊이 심어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뛰어난 말솜씨는 거침이 없었고, 신통력을 마음껏 부렸으며, 온갖 다라니[總持]9)를 지녔고, 무소외(無所畏)를

 

      8) 유마힐은 산스크리트 Vimalakirti를 음역한 말이다. Vimala는 "더럽혀지지 않다," "깨끗하다"는 뜻이고, Kirti는 '명성,' '평판'이라는 뜻이다. 지겸과 나집은 유마힐을 가리켜 '장자'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현장이나 티베트에서는 '릿자비의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어 유마힐이 릿자비족(族) 출신임을 가리키고 있다. 장자는 산스크리트 ghapati의 번역으로 부호, 또는 연령이나 덕이 높은 사람을 뜻하지만, 어원을 따지면 부족의 지도자 또는 자산가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나라에 나오는 보적(寶積)이 릿자비족의 출신이며 장자의 아들인 것은 이 경의 뜻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9) 기억술(記憶術)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인 dhran(陀羅尼)의 뜻을 옮겨 '총지(總持)' 또는 '능지(能持)'라고 하며, 능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능력이다. 그 방법과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주다라니

(呪陀羅尼)인데, 그 주체가 되는 진언(眞言)은 다라니를 대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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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어 악마의 재앙을 물리쳤고, 심원한 법문(法門)에 들어 훌륭하게 반야바라밀[智度]10)을 닦았고, 방편에 통달해 있었다. 큰 서원(誓願)을 성취하였고, 중생들의 마음이 끌려서 바라는 바를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근기[根]의 예리하고 무딤을 잘 가릴 줄 알았다. 오래도록 불도(佛道)를 닦아서 마음이 이미 맑고 순수하였고[純淑], 대승의 가르침에 마음을 전하고, 해야 할 모든 것을 행하는 데는 잘
      생각하고 헤아렸으며, 부처님과 같은 위의(威儀)에 머물러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었으므로,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였고, 부처님의 10대제자와 제석천·범천과 사천왕들의 존경을 받았고, 방편에 통달해 있었다. 큰 서원(誓願)을 성취하였고, 중생들의 마음이 끌려서 바라는 바를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근기[根]의 예리하고 무딤을 잘 가릴 줄 알았다. 오래도록 불도(佛道)를 닦아서 마음이 이미 맑고 순수하였고[純淑], 대승의 가
      르침에 마음을 전하고, 해야 할 모든 것을 행하는 데는 잘 생각하고 헤아렸으며, 부처님과 같은 위의(威儀)에 머물러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었으므로,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였고, 부처님의 10대제자와 제석천·범천과 사천왕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사람을 제도하고자 원하는 까닭에 훌륭한 방편으로 비야리성에 살고 있었다.
      그는 한량없이 많은 재산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왔고, 계율을 깨끗하게 지킴으로써11)계를 범하는 많은 사람들[毁禁]12)을 구했으며, 마음을 가누어 인내함[忍調行]으로 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가라앉혔고, 정진(精進)함으로 해서 게으른 사람들을 이끌었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禪定)을 닦아서 마음이 혼란한 사람들을 이끌었고, 결정적인 지혜로써 무지한 사람들을 제도하였다.
            10) 지도(智度)는 반야바라밀(praj-pramit)

을 뜻으로 옮긴 말이다. praj(般若)는 경험적 지식을 의미하는 개념인 jana(若那)와 구별되어 종교적 체험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가리킨다. pramit(波羅蜜), prami(彼岸으로 갈 수 있는 것)를 가리키는 명사이며, 여기에 그 성격 또는 상태를 표현하는 t가 붙어 있으므로 '피안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지혜의 피안에 도달한 상태'이다. 따라서 "선어지도(善於智度)"는 그러한 상태에 아주 뛰어남을 말한 것이다.

      11) 보시를 비롯하여 6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교화하는 것을 뜻한다. 티베트 번역은 유마힐에게 "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다함이 없는 재산이 있다"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은 구제의 목적을 강조하는 것이며, 유마힐의 재산은 지혜이다. 그리고 모든 능력은 중생의 제도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12)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다. 여기서는 파계하는 많은 사람들을 뜻한다. 이하 '에노(恚怒),' '해태(懈怠),' '난의(亂意),' '무지(無智)'는 '훼금(毁禁)'과 마찬가지로 그 본뜻을 지니면서 동시에 '빈민(貧民)'의 뜻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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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재가자[白衣]라 하여도 사문(沙門)의 청정한 율행(律行)을 받들어 행하고 있었고, 비록 세속에 살지만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처자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항상 범행(梵行)을 닦았고, 권속이 있는 것을 보여주더라도 항상 세상을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하였다. 보석 등으로 몸을 치장하고는 있었지만 32상과 80종호[相好]로 몸을 꾸미고 있었고, 또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선(禪)의 기쁨을 맛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만약 노름판
      에 이르면 그 사람들을 제도하였고, 여러 가지 다른 종교[異敎]의 가르침을 듣는다 해도 올바른 믿음을 깨뜨리지 않았으며, 세간의 전적에 밝다고 하지만 항상 불법을 좋아하였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공양(供養)을 받는 사람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정법(正法)을 굳게 지녀 어른은 어른대로 잘 모시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잘 포용해서 모든 생활을 잘하며 화목하였다. 비록 세속의 이득을 얻을지라도 그것을 기뻐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사는 거리거리[四衢]를 돌아다니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고, 정치와 법률에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고 보호하였다. 강론(講論)하는 곳에 가면 대승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이끌었고,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을 이끌어 깨우쳤으며, 유곽에 들어가면 욕망의 허물을

가르쳤고, 술집에 가게 되면 정신을 차려 뜻을 바로 세우게 하였다.

              만약 장자들과 함께 있으면 장자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그들을 위하여 뛰어난 진리를 설하였고, 거사(居士)들과 함께 있으면 거사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그들의 탐욕과 집착을 끊게 하였다. 또 만약 왕족[刹利, katriya]과 함께 있으면 왕족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인욕을 가르쳤으며, 바라문과 함께 있으면 바라문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그들의  아

만(我慢)을 없애게 하였고, 대신(大臣)들과 함께 있으면 대신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정법(正法)으로 가르쳐 주었다.

              만약 왕자들과 함께 있으면 왕자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충효(忠孝)를 가르쳤으며, 내관(內官)들과 함께 있으면 내관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궁녀들을 바르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서민들과 함께 있으면 서민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그들에게 복덕의 힘이 일도록 해 주었고, 만약 범천(梵天)과 함께 있으면 범천들 사이에서 으뜸

이 되어 뛰어난 지혜를 갖도록 일깨워 주었으며, 제석천과 함께 있으면 제석천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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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함을 나타내 주었고, 사천왕[護世]과 함께 있으면 사천왕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어 온갖 중생을 지키게 하였다.
      장자 유마힐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에게 이익되게 하고 있었느니라.
      또 그는 방편으로써 몸에 병이 있음을 나타내었고, 그 병 때문에 국왕·대신·장자·거사·바라문 등과 또 여러 왕자와 함께 그 밖의 관리[官屬] 등 헤아릴 수 없는 수천의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문병하게 되었다.
      유마힐은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몸의 병을 예로 들어가면서 널리 설법을 했다.
      "여러분, 이 몸은 무상한 것이고, 강하지 못한 것이며, 무력하고, 견고하지도 못하며, 재빠르게 썩어 가는 것이므로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괴로움이 되고 근심이 되며, 온갖 병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몸은, 지혜가 밝은 사람은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몸은 물방울[聚沫]과 같아서 잡거나 만질 수도 없고, 이 몸은 물거품[泡]과 같아서 오래도록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몸은 불꽃[炎]과 같아서 갈애(渴愛)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이 몸은 파초(芭蕉)와 같아서 속에 견고한 것이 있지 않습니다. 이 몸은 허깨비[幻]와 같아서 잘못된 생각[顚倒]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이 몸은 꿈과 같아서 허망한 망견(妄見)으로 된 것입니다. 이 몸은 그림자와 같아서 업연(業緣)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이 몸

은 메아리와 같아서 온갖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이 몸은 뜬 구름과 같아서 잠깐 사이에 변하고 사라지며, 이 몸은 번개와 같아서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몸은 주인이 없으니 땅[地]과 같으며, 이 몸은 아(我)가 없으니 불[火]과 같습니다. 이 몸은 영원한 수명[壽]이 없으니 바람[風]과 같으며, 이 몸은 물과 같아서 실체로서의 개아[人]13)가 없습니다. 이 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13) 주(主)·아(我)·수(壽)·인(人)은 실체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大)를 배당한 것이다. 고대 인도의 사상계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서 네 가지를 생각하고, 이것을 4대(大)라고 하였다. 따라서 '지(地)'는 견고함을, '수(水)'는 습기를, '화(火)'는 열기를, '풍(風)'은 움직임을 각각 그 성질로 하고, 거기에는 저마다의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체로서의 '주(主),' 여기에서는 실체로서의 주체[主]를 위시하여 자아[我], 생명으로서의 개체[壽], 실체로서의 개아(個我 : 人)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이라든가 인격의 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실체시(實體視)하는 사고방식이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현장의 번역에서는 지(地)·수(水)·화(火)·풍(風)에 공(空 : 虛空)을 더하여 5대(大)라 하고 첨가한 하나는 '살아 있는 것[有情]'이다. 그리고 배당하는 방법도 나집과는 다르다. 티베트 번역은 4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실체시된 것으로 취급된 것은 다섯 가지다. 나집의 번역에 없는 그 하나는 행위의 주체인 '작자(作者)'이다. 따라서 배당을 받지 못한 것이 하나 나오는데, "이 몸은 여러 가지 기연으로 해서 생긴 것이어서 주인공이 없다"고 하는 전문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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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가 아니라 지·수·화·풍의 4대(大)를 집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몸은 공(空)한 것이니, 자아[我]14)와 자아에 소속되는 것[我所]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은 무지(無知)한 것이니, 풀과 나무와 기왓장과 조약돌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몸은 지음이 없으니[無作] 바람의 힘[風力]으로 (인연을) 따라 굴러갑니다. 이 몸은 깨끗하지 않으니,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몸은 거짓인 것이니, 설사 몸을 씻고 옷을 입으며 밥을 먹는다 해도 반드시 닳아서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몸은 재앙이니, 백한 가지 병으로15)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몸은 언덕의 메마른 우물[丘井]과 같아서 늙음에 쫓기고 있습니다.이 몸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이 몸은 독사와 같고, 원망스러운 도둑과 같고,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空聚]과 같아서 5음(陰)과 18계(界)와 모든 입처[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 M NUM='16)입니다.

      여러분, 이 몸은 근심스러워하고 꺼려야 할 것이요, 마땅히 부처님의 몸[佛身]을 즐겨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한 모습 그 자체[法身]이기 때문입니다.

 

              14) '아(我)'는

tman으로 자주 독립된 존재이고, 소위 '아소(我所)'는 tmya로 '나에 속한다'를 의미하며, 소위 속성(屬性)을 뜻한다. 형이상학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당연히 이 실체와 속성은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아연기(無我緣起)의 입장에 있어서는 이 구별은 무시된다. 여기서는 특별히 우리의 육체가 그러한 것을 말한 것이다.

      15) 신체의 네 가지 요소인 4대(大)에 각각 백 가지 병이 있고, 거기에 원소 자체를 포함해서 '백일병(百一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흔히 사백네 가지 병이 있다고도 한다.
      16) 음(陰), 계(界), 제입(諸入)은 모두가 인식이 성립하는 근거 또는 존재의 범주로서, 즉 5음(陰 : 薀), 12처(處 : 入), 18계(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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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과 지혜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으로부터 생기고, 자(慈)·비(悲)·희(喜)·사(捨)로부터 생기며, 보시(布施)하고 계를 잘 지키며[持戒], 잘 참고[忍辱], 마음을 온화하게 갖고[柔和], 힘써 수행해 정진하고[勤行精進], 선정(禪定)으로 해탈(解脫)하여 삼매(三昧)에 들고, 많은 가르침을 듣고[多聞], 지혜(智慧)를 닦는 등 온갖 바라밀(婆羅蜜)로부터 생깁니다
              . 또 그것은 뛰어난 방편을 따라서 생기고, 여섯 가지 신통력[六通]으로부터 생기며, 세 가지 초인적인 능력[三明]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37도품(道品)으로부터 생기며, 지관(止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고,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으로부터 생깁니다. 선(善)하지 않은 모든 것을 끊고 선한 모든 것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생기고, 진실로부터 생기며, 방종하지 않는 것[不放逸]으로부터 생깁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청정한 법으로부터 여래(如來)의 몸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처님의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의 병을 끊고자 원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와 같이 장자 유마힐은 문병 온 모든 이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알맞은 설법을 하여 헤아릴 수 없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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