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희화사에서 전무후무한 걸작으로 꼽히는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 자화상. 녹우당 소장.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B%91%90%EC%84%9C
윤선도의 증손이며, 윤이후의 넷째아들이다 숙종 때(26세) 진사에 급제하였다. 당쟁이 심하던 시기였기에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1]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는데, 특히 인물·동식물 등의 그림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단의 선구자로 지목받으며,[1]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겸재 정선(謙齋 鄭歚)과 함께 조선의 ‘3재(三齋)’라 불린다. 작품으로 〈노승도〉, 〈산수도〉, 〈자화상〉 등이 있다. 서화뿐만 아니라 유학, 천문지리, 수학, 병법 등 각 방면에 능통한 실학적인 태도는 가풍으로 전해졌다.[1]
윤선도의 증손으로 정약용(丁若鏞, 1762년 ~ 1836년)은 외증손자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20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5/05/10356/
국립중앙박물관이 현미경과 적외선, X선 촬영 및 형광분석법 등으로 조사해 보니 초상화는 원래 완성작이었으며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퇴화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생략된 것으로 여겨왔던 귀는 희미하지만 붉은 선으로 표현됐고 옷깃과 옷주름도 분명히 존재했다. 정밀하게 채색까지 된 사실도 밝혀졌다. 다만 무슨 이유로 선과 채색이 지워졌는지, 어떻게 얼굴만 보존될 수 있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AdvFF5wRM&t=516s
https://www.youtube.com/watch?v=CwD-jY4fTDw
https://www.youtube.com/watch?v=biR6RONxK_g
https://www.youtube.com/watch?v=UgOwP1PVx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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