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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격포 수성당 (水聖堂)벽화와 적벽강 풍경

수성당 벽화 벽화/ 어업활동을 돕는 신들 관우와 용왕님 *한국에는 동묘등 관우신앙이 있다. 외우내환을 막아준다는 민간신앙 때문인 듯.바다의 수호신 개양할미와 8딸들 단군과 개양할미의 8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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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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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딸을 낳아 칠산바다를 관리했다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수성당(水聖堂)의 개양할미에 관한 설화.

부안군 죽막동에서 백제의 유물뿐만 아니라 가야계, 왜계, 중국계 유물이 출토되어 원삼국시대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항구였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같은 공간에 있는 수성당 거인여신에 관한 <개양할미설화>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道光 三拾年 庚戊 四月二十八日 午時 二次上樑’이라는 수성당의 상량문으로 보아 적어도 1804년 이전부터 현재의 당집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줄거리

칠산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부안군 죽막동에 개양할미가 살았다. 개양할미는 수성당 옆 여울골에서 나와서 서해를 열고 딸 여덟을 낳았다. 딸 여덟 중 일곱을 칠산바다에 보내서 일곱 섬을 관리하게 하고 자신은 막내딸과 함께 죽막동 여울골을 지켰다. 일곱 딸과 함께 수심을 재거나 풍랑을 다스렸는데 이곳을 지나가는 선박의 안전을 도모하고 어부들이 항상 풍어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거인신이기 때문에 나막신으로 칠산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이 젖지 않았다. 이러한 수호적 성격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개양할미를 수성(水聖)이라 불러왔으며, 여울골 절벽 위에 수성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개양할미와 딸 여덟을 모신 곳이라 하여 수성당을 구랑사(九娘祠)라고도 부른다.

변이

구전에 따라서는 개양할미가 딸 여덟을 팔도로 시집 보냈다고도 하고 여울골로 일곱 딸을 데리고 들어 왔다고도 한다. 이외에도 철마 관련 설화가 전해오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죽막동 대막골에 마음씨 착한 형제가 맹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이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아우가 형을 찾겠다고 나갔으나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 형제를 찾아 나선 맹인 어머니는 여울골(당굴)의 메아리를 형제의 소리로 착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나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형제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웬 도인이 나타나 황금부채를 주면서 “어머니는 좋은 곳에 계시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이 고장과 나라를 구하라.”라고 당부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형제는 도인이 아마도 어머니의 현신일 것으로 생각하고 이때부터 황금부채를 가지고 서해를 관장하였다. 때마침 여울골에서는 형제들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철마가 나왔다. 형제는 이 철마를 타고 황금부채를 부치며 칠산바다와 서해를 날아다녔다. 왜구가 침입하면 황금부채를 부쳐 풍랑이 일게 하여 물리치기도 하고, 바람을 조절하여 어부들이 만선하도록 하였다. 이후 형제는 이 도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성당을 지어 제사지냈는데 이것이 수성당이 생긴 유래이다.

분석

수성당의 <개양할미설화>는 거인여신설화에 속한다. 개양할미라는 이름은 바다를 연다[開洋]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개양할미가 ‘여울골’에서 나와 서해를 열었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칠산바다를 발도 적시지 않고 걸어 다니는 거인여신이라는 점이나 칠산바다와 서해의 파도와 풍어를 관장한다는 전지전능의 측면이 마고신격과 유사하다. 거인여신인 마고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 지리산에서는 마고, 삼척에서는 서구할미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설문 혹은 선문대할망이라고 한다. 장한철의 『표해록』을 보면, 사람들이 한라산을 보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선마고(詵麻姑)로 표현한다. 죽막동 인근에 있는 고창의 고인돌은 거북바위, 칠성바위, 마고할미바위라고 불린다. 미륵신앙을 표상한다고 알려진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도 도선국사 외에 마고할미가 세웠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마고할미신화>는 성경의 창세기처럼 천지창조신화와 민족기원신화를 포함하고 있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설화>나 지리산, 강원도의 마고 관련 설화들도 천지창조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개양할미도 당굴에서 스스로 나와 여덟 딸을 두었고, 서해를 열어 물길과 바람을 관장했다는 점에서 천지창조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서해를 관장하는 개양할미가 좌정한 변산반도가 삼신산의 하나라는 맥락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삼신산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서복[徐市] 일행을 동해로 보낸 데서 비롯되었다. 애초 불로초가 있다고 믿었던 삼신산은 중국의 동해 어딘가에 떠 있는 섬으로 나오지만, 지명전설로 보면 한반도 내 곳곳에서 거론되고 있다. 부안반도 사람들은 변산을 영주산으로, 금강산을 봉래산으로, 지리산을 방장산으로 여긴다. 또는 변산을 봉래산으로, 고부의 두승산을 영주산으로, 고창의 방장산을 방장산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지역이 봉래구곡, 선녀탕, 신선대, 선계사, 선계안골, 쌍선봉, 선유도 등 관련 지명이 많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변이 설화인 철마 이야기는 거인여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심청설화에 가깝다. 부안 사람들이 죽막동과 위도 사이에 있는 임수도 앞바다를 인당수라고 여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라남도 곡성군, 인천광역시 옹진군을 비롯해 충청남도 예산군, 경기도 화성시까지 인당수에 대한 이견과 주장들이 있지만, 죽막동이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나루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있어 보인다. 심청과 맹인 아버지의 관계가 형제와 맹인 어머니로 치환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청전>은 딸의 희생을 통하여 맹인 아버지가 눈을 뜨는 서사구조이지만, <수성당설화>에서는 모친이 직접 눈을 뜨지 않고 도인의 출현으로 대체된다. 심청은 용궁에서 나와 황후가 되어 나라의 맹인들까지 다 눈 뜨게 하는 이적을 행하지만, 죽막동 수성당의 형제는 철마를 타고 서해를 날아다니며 왜구를 무찌르는 이적을 행한다. 여울굴에서 나온 철마는 두 형제만 탈 수 있는 신성한 말이라는 것과 형이 타고 나가 금부채로 풍랑을 일으켜 왜구를 물리치기도 하고 동생이 타고 나가 금부채로 부쳐 풍랑을 만난 어부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적을 행한다는 점에서 심청과 닮았다. 부안 사람들은 애초 형제들이 없어진 것이 서해 어딘가 있다는 봉래도의 선인들에게서 도술을 배우기 위해서였으며, 황금부채를 준 도인이 바로 봉래산의 도인이었다고 말한다.

특징

<수성당신화>는 거인여신인 개양할미와 심청설화의 모티프로서의 이적을 행하는 형제 이야기로 구성된다. 특히 수성당이 있는 곳에서 고대 동양 삼국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항구 기능을 했던 곳이라고 밝혀져 역사와 설화가 상호 보완적인 맥락에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의

거인설화나 심청설화의 이본을 뛰어넘어 실제 역사 공간에서 국제항구 기능과 연관되어 전승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l21mNa30M 

 

 

 

https://www.youtube.com/watch?v=5tpMecJkjws&list=RDszgRgJ07QfQ&inde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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