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행상품에는 체첸이사로 소개했으나 치첸이트사 Chichn-Itzá 가 맞는 표기다.아래는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이트사족의 샘물 입구’라는 뜻의 치첸이트사에 마야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5세기경이며, 7세기 말경 그야말로 홀연히(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이유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이 떠나고, 300년 뒤 톨테크인들이 정착하여 마야인들이 남긴 유적 위에 자신들의 건축물을 세웠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두 문명이 융합된 흔적을 볼 수 있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텍-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의 신전(殿)’,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치첸이트사의 건물들은 수학과 천문학 지식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마야인들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것들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깃털 달린 뱀’을 뜻하는 쿠쿨칸의 피라미드다. 유적지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다 위풍당당한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마야인들의 수학과 천문학 지식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9세기 초에 건설된 피라미드 네 면의 계단 숫자를 모두 합치면 364개, 맨 위의 제단까지 합치면 태양력의 1년인 365가 된다. 네 면의 52개의 판벽은 마야-톨테크 역법에서 세상의 1주기를 나타내는 숫자다.

치첸이트사의 先 스페인 도시/Pre-Hispanic City of Chich n-Itzá로 소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스페인 지배 이전의 문명이며 현재 남미 대부분의 국가처럼 멕시코의 언어는 스페인어다. 단 브라질은 포르투갈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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