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혜화상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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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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藍浦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葆光塔碑銘

남포 성주사 랑혜화상 백월보광탑비명

신라국(新羅國) 고(故) 양조국사(兩朝國師) 고교시대낭혜화상(故敎諡大朗慧和尙) 백월보광탑비명(白月葆光塔碑銘) 및 서문(序文)회남(淮南)에서 본국으로 들어와 (天子의) 국신(國信)과 조서(詔書) 등을 바친 사인(使人)이며 동면도통순관(東面都統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使), 내공봉(內供奉)을 지냈으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들어 지음.

帝唐揃亂以武功。[乾符戊戌。滅黃巢。]당(唐)나라가 무공(武功)으로 (黃巢의) 난을 평정하고

易元以文德之年。暢月。[仲冬曰暢月]

月郵之七日。日蘸咸池時。[咸池星在紫微內垣天潢傍。卽未時。]

연호를 ‘문덕(文德)’으로 고친 해(888년) 11월 17일 해가 질 무렵,

海東兩朝國師禪和尙。盥浴已。趺坐示滅。[新羅眞聖主二年十一月十七日。]

신라(新羅 : 海東)의 두 임금에 걸쳐서 국사(國師)를 지내셨던

선승(禪僧) (朗慧)화상(和尙)께서

목욕을 마치신 후 가부좌를 하신 채 돌아가셨다.

國中人如喪左右目。矧門下諸弟子乎。

나라 안의 사람들이 슬퍼함이 마치 두 눈을 잃을 정도로 심하였는데

하물며 그 문하의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嗚呼。應東身者八十九春。[新羅哀莊王六年十二月二十八日生]

服西戒者 六十五夏。

아아! 이 땅에 태어나신 지 89년이 되었고,

승복을 입으신 지는 65년이 되었다.

去世三日。倚繩座。

儼然面如生。

돌아가신지 3일이 지나도

자리에 단정히 앉은 그대로였고,

얼굴 모습도 살아 계신 것 같았다.

門人詢乂等號奉遺體。

假肂 [音異。殯坎。]禪室中。

문인(門人)인 순예(詢乂) 등이 소리내어 울며

유체(遺體)를 받들어 선실(禪室)에 임시로 모셔 두었다.

上 [眞聖主。文考女。康王妹。]聞之震悼。

使駛 [驛使。]吊以書

賻以穀。所以資淨供 而贍玄福。

임금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크게 슬퍼하시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글월로 조문(弔問)하시고,

곡식으로 부의(賻儀)하여 (葬禮의) 공양(供養)에 보탬으로써

죽은 분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하셨다.

越二年。攻石。封層塚。聲聞玉京。이로부터 2년이 지나서 돌을 다듬어

여러 층 되는 (스님의) 부도(浮圖)를 만들었는데

이 말이 서울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菩薩戒弟子。武州都督蘇判[新羅五品爵中第五秩]鎰,

執事侍郞寬柔,浿江都護咸雄,全州別駕英雄。

보살계(菩薩戒)를 받은, (스님의) 제자이면서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소판(蘇判)인 (金)일(鎰)과

집사시랑(執事侍郞)인 (金)관유(寬柔),

패강진도호(浿江鎭都護)인 (金)함웅(咸雄),

전주별가(全州別駕)인 (金)영웅(英雄) 등은

皆王孫也。維城輔君德。

險道賴師恩。何必出家然後入室。

모두 왕족으로 임금님의 덕을 훌륭히 보필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스님의 은혜를 입어서

어찌 반드시 출가(出家)한 후라야 입실제자라 하겠는가?

遂與門人昭玄大德釋通玄,

四天王寺 [在慶州狼山南麓] 上座釋愼符 議曰。

드디어 (스님의) 문인(門人)인 소현대덕(昭玄大德) 석통현(釋通賢),

사천왕사(四天王寺) 상좌(上座) 석신부(釋愼符) 등과 함께 의논하기를,

師云亡。君爲慟。

柰何吾儕忍灰心木舌。

郵緣飾在三之義乎。[君師父三]

“스님이 돌아가셔서 임금께서도 슬퍼하셨는데

어찌 우리들은 풀이 죽은 채 아무 말 없이

스승에 대한 의리를 빠뜨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乃黑白相應。請贈諡曁銘塔。

敎曰可。

그리하여 승(僧)·속(俗)이 서로 호응하여

(대사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과 탑의 명(銘)을 지어줄 것을 (왕에게) 청하니

교지를 내려 허락한다고 하였다.

旋命王孫夏官二卿[說文。天官今吏部。地官今戶部。春官今禮部。夏官今兵部。秋官今刑部。冬官今工部。]禹珪。

召桂苑 翰林苑 行人[周禮。大小行人。卽今舍人。]侍御史崔致遠。

곧 왕족인 병부시랑(兵部侍郞 : 夏官二卿)인 (金)우규(禹珪)에게 명하여

계림 한림원 사인 시어사(侍御使) 최치원(崔致遠)을 부르셨다.

至蓬萊宮。因得竝 [音傍。倚也。]琪樹。上瑤墀。

跽竢命珠箔外。[女君故也]

(최치원이) 봉래궁에 이르러 인재들과 나란히 섬돌에 올라,

주렴(珠簾) 밖에 꿇어 앉아 명령을 기다렸다.

上曰。故聖住大師。

眞一佛出世。[唐太宗撥亂。行仁德。人謂之一佛出世。]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신 성주대사(聖住大師)는

참으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 것과 같은 분이셨다.

昔文考康王咸師事。福國家爲日久。

예전에 돌아가신 나의 부왕(父王 : 景文王)과 헌강왕(憲(獻)康王) 이

모두 스승으로 섬기셔서,

나라를 복되게 한 것이 오래 되었도다.

余始克纘承。願繼餘先志。

而天不憖遺。益用悼厥心。

내가 처음 왕위를 계승하여

남긴 선왕들의 뜻을 계승하기를 원하였으나,

하늘은 (그런 분을) 남겨주지 아니하니

나의 마음이 더욱 애달프다.

余以有大行者。授大名。

故追諡曰大朗慧。塔曰白月葆光。

나는 큰 덕행이 있는 사람에게는 큰 이름을 주어야 하므로

시호를 추증하여 ‘대낭혜(大朗慧)’라 하고,

탑의 이름을 ‘백월보광(白月葆光)’이라고 하노라.

乃 [汝也] 嘗西宦。絲染錦歸。

그대는 일찍이 중국에 가서 벼슬하고

이제 출세하여 금의환향하였도다.

顧文考 選國子。[先生嘗爲國子監學士] 命學之。

돌이켜보건대 돌아가신 나의 부왕께서

(그대를) 국자(國子)로 선발하여 공부하게 하였고,

康王視國士。禮待之。

헌강왕(憲(獻)康王)께서는 (그대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셨으니,

若[汝也]宜銘 國師以報之。[報先王待汝之德也]

그대는 마땅히 국사(國師)의 명(銘)을 지어서

그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라.” 고 하셨다.

謝曰。主臣。[主擊臣伏。惶恐之意。]

殿下恕粟饒浮秕。[秕。粟不成實者。先生自謙。]

念桂飽餘香。[古詩。桂死有餘香。指大師。]

俾報德以文。固多天幸。

(치원은) 사양하여 말하기를,

“황공하옵게도 전하께서

저의 글이 벼에 알맹이는 없으면서 쭉정이만 많은 걸 용서하시고,

죽은 계수나무[대사]에 남은 향기가 있음을 생각하시어

글을 지어 대사님의 은덕에 보답하라 하시니

진실로 매우 천행이옵니다.

第大師於有爲澆世。演無爲秘宗。

다만 대사(大師)께서는 유위(有爲)의 말세에

무위(無爲)의 신비한 종지를 가르치셨는데,

小臣以有限麽才。紀無限景行。

소신(小臣)의 유한한 하찮은 재주로써

무한한 큰 행실을 기록하는 것은

弱轅載重。短綆汲深。[莊子。褚小者不可懷大。綆短者不可汲深。]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짧은 줄위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긷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其或石有異言。

[春秋。石言于晉師曠。以作事。怨讟動于小民。進諫。我恐此碑或有異言。]

龜無善顧。[說文。孔愉買龜而放。龜乃三顧。今此石龜亦肯顧我乎。言不當作文。]

행여 비석이 이상한 말을 하거나,

거북이 돌아보는 신조(神助)가 없다면

決叵使山輝川媚。[陸賦。石蘊玉而山輝。水懷珠而川媚。]

反贏得林慚澗媿。[北山移文。林慚無盡。澗媿不歇。註云。是乃周彥論之媿也。]

請芼路斯避。

결코 산이 빛나고 냇물이 아름답게 할 수 없어

도리어 숲과 골짜기의 물에 부끄러움만 당하게 될 것이니

부디 글짓는 것을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上曰。好讓也。盖吾國風。善則善已。

그러나 임금께서는,

“사양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매우 좋은 것이다.

然苟不能是。惡用黃金榜爲。

[古制。龍榜飾以金。虎榜飾以銀。先生以文登第。故曰金榜。]

爾勉之。[縱欲辭避。不可得也。]

그러나 정말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면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대는 힘써 행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遽出書一編 大如椽者。

俾中涓[文官名。漢萬石君爲中涓。受書謁。]授受。

乃門人弟子所獻狀也。

문득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니 크기가 나무토막만 하였다.

내시로 하여금 전해주었는데

곧 대사 문하의 제자들이 올린 대사의 행장(行狀)이었다.

復惟之。西學也。彼此俱爲之。[入中國受學。則彼此同。]

而爲師者何人。爲役者何人。다시 생각해 보건대

중국에 유학한 것은 대사와 내가 같이 한 것인데,

스승이 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그를 위하여 일을 해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豈心學者高。口學者勞耶。

故古之君子愼所學。

어찌하여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높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여야 하는가.

그래서 옛날의 군자들이 배우는 것을 삼가하였던 것인가.

抑心學者立德。口學者立言。[任安書。太上立德。其次立功。其次立言。]

그러나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덕을 세우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말을 다듬으니,

則彼德也 或憑言而可稱。

是言也 或倚德而不朽。

그 덕은 말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그 내용을 제대로 전할 수 있고,

이 말은 덕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오래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可稱 則心能遠示乎來者。

不朽 則口亦無慚乎昔人。

(덕의) 내용을 제대로 전하게 되면

마음을 멀리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보일 수 있고,

(말이) 오래 전해지게 되면

문장도 또한 옛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爲可爲於可爲之時。復焉敢膠讓乎篆刻。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감히 실속 없는 글이라고 굳이 사양할 수 있겠는가.

始繹 [音亦。究也。]如椽狀。

則見大師西遊東返之歲年。

稟戒悟禪之因緣。

비로소 방망이 같은 행장을 펼쳐보니,

대사께서 중국에 유학하고 신라에 돌아온 연대와,

계(戒)를 받고 선(禪)을 깨치신 인연,

公卿守宰之歸仰。像殿影堂之開創。

故翰林郞金立之所撰聖住寺碑。叙之詳矣。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실,

사찰의 개창 등은

죽은 한림랑(翰林郞) 김입지(金立之)가 지은 성주사비(聖住寺碑)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爲佛爲孫之德化。爲君爲師之聲價。

鎭俗降魔之威力。

부처의 제자로서 불법을 널리 전한 행적과

임금의 스승으로서 행한 업적,

세속을 진정시키고, 악마들을 항복시킨 위력,

鵬顯[莊子。北溟魚。化鳥南徙。言大師入中國。]

鶴歸[華表。丁令威鶴。比大師歸東土。]之動息。

贈太傅獻康大王親製深妙寺[在今尙州]碑。

錄之備矣。

세상에서 활동할 때는 붕(鵬)처럼 지내고,

은거하여서는 학(鶴)처럼 지낸 일 등은

태부(太傅)에 추증되신 헌강왕께서 직접 지으신 심묘사비(深妙寺碑)에

갖추어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顧腐儒之今作也。[叙佛浩漫之閒忙。不忘自家儒字。]

止宜標大師就般涅槃之期。

[般。返也。言返始。涅。離也。槃。結也。言離煩惱結也。]

及與吾君崇窣覩波之號[高顯塔號也]而已。

그러므로 지금 내가 글을 지음에 있어서는

다만 대사께서 열반에 드신 때와

우리 임금께서 탑의 이름을 높이신 것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口將手議。役將自適其適。

這有上足苾蒭。來趣虀臼。[蔡邕題曹娥碑曰。黃絹幼婦。外孫虀臼。乃絶妙好辭。而楊修見知。曹操行三十里方知。]입과 손이 일을 의논하여 나의 생각하는 바대로 일을 진행하려 하는데

그때에 (대사의) 수제자(首弟子) 비구(比丘)가 와서 글을 재촉하였다.

語及斯意則曰。

立之碑 立之久矣。

尙闕數十年遺美。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러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자,

그는 “(金)립지(立之)의 비는 세운지 오래 되어서

그 후 수십 년의 아름다운 행적이 빠져있고,

太傅王神筆所記。盖顯示殊遇云爾。

태부왕께서 신필로 지으신 글은

단지 특별한 대우가 있음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吾子口嚼古賢書。面飮今君命。

耳飫國師行。目醉門生狀。

그대는 옛 선인의 글을 읽고,

직접 임금의 명령을 받았으며,

대사의 행적에 대하여 실컷 듣고,

문하 제자들이 올린 행장을 자세히 보았으니

宜廣記而備言之。殆貽厥可畏。後生俾原始要終。

마땅히 두루 기억하여 빠뜨리지 말고 이야기하여

후대의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이 일의 시초와 끝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脫[音太。若也。]西笑者

[關東俚語。人聞長安樂。則西向而笑。今指中原人曰西笑者也。]

或袖之。脫西人笑則幸甚。

만일 중국인들이

이를 잘 간직해 두었다가

중국인들의 비웃음을 면할 수 있다면 매우 다행이니

吾敢求益。子無憚煩。

狂奴餘態。[漢光武譏嚴子陵曰。狂奴故態竟不回。]

내가 감히 더 덧붙이기를 구하겠습니까.

선생은 번거로움울 꺼리지 말고

엄광(光)과 같이 사실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率爾應曰。

僕編苫者。師買菜乎。

[編苫者。常以編索。比於前欲其短也。買菜者。常求其小益也。]

급히 대답하기를,

“나는 이엉을 엮는 자처럼 간결한 것이 좋은데,

스님은 나에게 채소 파는 사람처럼 많고 적음을 따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遂絆猿心。強搖兔翰。[不得已也]

憶得西漢書留侯傳。尻[尾也]云。드디어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억지로 붓을 움직이려 하니

『한서(漢書)』유후전(留侯傳) 끝 부분에

良所與上從容言 天下事甚衆。

非天下所以存亡。故不著。

“(張)량(良)이 임금과 더불어 조용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 매우 많지만

천하의 존망(存亡)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므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則大師時順間事蹟。[莊子。適來也時。適去也順。]

犖犖者星繁。

非所以警後學。亦不書。

그러므로 대사가 살아 계실 때의 일들이

뛰어난 것이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뒤의 학자들에 가르침이 되는 것이 아니면

또한 적지 않으려고 한다.

自許窺 一班於班史然。[以管窺豹。只見一班。]

於是乎管述曰。스스로 반고(班固)의 『한서』를 조금이라도 보았다고 자부하면서

이에 글을 적으니 다음과 같다.

光盛且實而有暉八紘[四方四維]之質者。莫均乎曉日。

氣和且融 而有孚萬物之功者。莫溥乎春風。

빛이 왕성하고 충실하여 온누리를 비출 자질을 갖춘 것으로는

태양에 비길 것이 없고,

기(氣)가 온화하고 두루 통하여서 만물을 기를 능력을 갖춘 것으로는

봄의 바람만한 것이 없다.

惟俊風與旭日。俱東方自出也。

則天鍾[聚也]斯二餘慶。

岳降于一靈性。[詩云。惟岳降神。]

俾挺生君子國。特立梵王家者。

我大師其人也。

이 큰 바람과 태양은 모두 동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이 두 가지의 자질을 모으고,

산악이 신령한 정기를 내려서

군자의 나라에 태어나 사찰에 우뚝 서게 하였으니

우리 대사가 바로 그 분이다.

法諱無染。於圓覺祖師[唐代宗追諡達麽云圓覺爲十世孫。]

(대사의) 법호(法號)는 무염(無染)으로

달마대사의 10대 법손(法孫)이 된다.

俗姓金氏。以武烈大王爲八代祖。

속성(俗姓)은 김씨(金氏)로

태종무열왕이 8대조이시다.

大父周川。品眞骨。位韓粲。

高曾出入皆將相。戶知之。할아버지는 주천(周川)으로 골품(骨品)은

진골이고 한찬(韓粲)을 지냈으며,

고조부와 증조부는 모두 조정에서는 재상, 나가서는 장수를 지내

집집에 널리 알려졌다.

父範淸族降眞骨一等。曰得難。[원주 新羅爵有五品。一曰聖骨。二曰眞骨。三曰得難。四曰王族。五曰金骨。]

아버지는 범청(範淸)으로 골품이 진골에서

한 등급 떨어져서 득난(得難)이 되었다.

[나라에 5품이 있는데 성이(聖而), 진골(眞骨), 득난(得難) 등이다. (得難은) 귀성(貴姓)을 얻기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문부(文賦)』에서 ‘혹 구하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을 따서, 6두품의 수가 많지만 귀성이 되기는 제일 낮은 관등[一命]에서 가장 높은 관등[九命]에 이르는 것과 같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4, 5품은 말할 필요도 없다].

晩節 追蹤趙文業。[趙文王好劒。故劒士來門者三千人。今範淸晩而喜劒。見憲章公謀反被誅。遂落髮入道。]

만년(晩年)에는 무술을 좋아하였다.

母華氏魂交。[莊子。寤也其神開。寐也其魂交。]

覩脩臂天 垂授 蓮花[花。]因有娠。

어머니 화씨(華氏)가 꿈에 긴 팔을 가진 천인(天人)이

연꽃을 내려주는 것을 보고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幾踰時。三月 申夢胡道人 自稱法藏。[彌陀佛。因地時號也。]

授十護。[十戒。] 充胎敎。[如太妊懷文王時事。]

過期[十三月也] 而誕大師。

얼마 후3월에는 다시 꿈 속에 서역의 도인(道人)이 나타나서

스스로 법장(法藏)이라고 하면서 10계(戒)를 주면서

그것으로 태교(胎敎)를 하게 하였다.

마침내 1년이 지나서 (대사가) 태어났다.

阿孩[方言謂兒與華无異]時。

行坐必合掌趺對。

至與羣兒戲。畫墁聚沙。

必模樣像塔。대사는 아해(阿孩) 적에

[아해는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니 중국말과 다르지 않다]

걷거나 앉을 때 반드시 합장을 하고 가부좌를 하였으며,

여러 아이들과 놀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로 무엇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불상이나 탑을 본떴다.

而不忍一日離膝下。

九歲。始鼓篋。[禮記。入學鼓篋。]

目所覽。口必誦。

人稱曰海東神童。

하루도 부모님의 곁을 떠나지 않다가

아홉 살 때에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눈으로 본 것은 반드시 입으로 암송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해동의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跨一星終。

[左傳。十二年一終。謂一星終也。○太師十二歲出家。卽宣德王五年。]

有隘九流[儒流,道流,陰陽流,法流,名流,墨流,縱橫流,雜流,農流。]意。入道。열두 살을 넘기고 나서(13세)는

여러 학문을 비루하게 여기고

불도(佛道)에 들어가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先白母。母念已前夢。泣曰䚷。[方言許諾][音倚。諾辭。]

먼저 어머니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이전의 꿈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예[우리말로 허락이다]”라고 하였다.

後謁父。父悔已晩悟。

喜曰善。

뒤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자신이 늦게서야 깨달은 것을 후회하였으므로

기뻐하며 “잘하였다”고 하였다.

遂零[髮也] 染[衣也]

雪山 太白山五石寺。[有五色石故名也。卽今順興浮石寺。]

口精嘗藥。[善解經義]

力銳補天。[女媧氏鍊五色石補天。比大師架空說法之意。]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이에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 들어가

입으로는 경전을 부지런히 읽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힘을 다하였다.

有法性禪師 嘗扣騣[音宗] 伽門 [小乘法] 于中夏者。이 절에 법성선사(法性禪師)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일찍이 중국에 가서 능가선(楞伽禪)을 배웠었다.

大師師事數年。撢[探同 ]索無孑遺。

性嘆曰。迅足駸駸。[馬疾行貌] 後發前至。

대사는 이분에게 수년간 배웠는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이었으므로

법성선사가 말하기를

“빠른 발로 달린다면

뒤에 출발하여도 먼저 도착한다는 것을

나는 너에게서 직접 보았다.

吾於子驗之矣。吾悏[悏同。心悵也。]矣。

無餘勇可賈於子矣。

나는 아는 것이 적어서

그대에게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

如子者宜西也。大師曰維。[唯同]

너와 같은 사람은 중국에 유학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에 대사는 “알았습니다” 하였다.

夜繩易惑。[惑夜繩而爲實蛇。是偏計之情執。指小乘法執有之言也。]

空縷難分。[古有至愚者。詣織師求細布。以極細縷示之。愚人猶以爲麤。織師知其不分。乃指空曰。此縷何如。愚曰。何以無見。師曰。細故無見。若有見則是麤。此指大乘法之玄空也。]밤중의 새끼줄은 뱀으로 속기 쉽고,

허공의 베올은 분간하기 어렵다.

魚非緣木可求。[孟子曰。以若所爲。求若所欲。猶緣木而求魚也。]

兔非守株可待。[韓子五蠹曰。宋人見兔觸株死。守株以待之。盖喩不可執一而學也。]

물고기는 나무에 올라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토끼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킨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故師所敎。己所悟。互有所長。

그러므로 스승이 가르친 것과 내가 깨달은 것에는

서로 나은 것이 있을 수 있다.

苟珠火斯來。則蚌燧可棄。[得珠棄蚌。得火棄燧。盖取得魚忘筌之義。○論衡曰。五月丙午日。銷鍊南方五色石銅。圓如鏡。中央霔。天晴向日。取火。十一月壬子日。鍊北方五色石銅。狀如盃盂。向月得水。]

진주를 얻고, 불을 피웠으면

조개와 부싯돌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凡志於道者。何常師之有。

도(道)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어찌 꼭 정해진 스승이 있겠는가.

尋移去。問驃訶健拏[華嚴]于浮石山釋澄大德。

日敵三十夫。藍茜沮本色。[淮南子。靑出於藍而靑於藍。絳生於茜而絳於茜。喩弟子過於師也。]

곧 그곳을 떠나

부석산(浮石山)의 석징대덕(釋澄大德)에게 화엄(華嚴)을 배웠는데,

하루에 서른 사람 몫의 공부를 하니

푸른 색과 붉은 색이

남초(藍草)와 천초(茜草)의 원래 색을 무색케 하는 것 같았다.

顧坳盃之譬[莊子。覆盃水於坳堂之上。芥爲之舟。置盃焉膠。水淺而舟大也。謂向中原之計。]曰。

대사는 조그만 구멍에 담긴 물에서는 잔이 뜰 수 없듯이,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자신의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음을 생각하고서

東面而望。不見西牆。[指中原。]

“동쪽을 바라보기만 하다가는

서쪽의 담(중국)은 보지 못할 것이다.

彼岸不遙。何必懷土。

遽出山並[音方。倚也。]海。覗西泛之緣。

깨달음의 세계가 멀지 않을 터인데 어찌 살던 곳만 고집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선뚯 산에서 나와 바다로 나아가 중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엿보았다.

會國使歸瑞節 [皇帝聖節] 象魏。[象。像也。魏。巍也。天子之闕。]

下仛[托同] 足而西。

때마침 나라의 사신이 天子가 하사한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천자에 조회할 일이 있었으므로

그 배에 의지하여 중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及大洋中。風濤欻顚怒。

巨艑壞人。不可復振。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져서

큰 배가 깨어지니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大師與心友道亮。跨集板恣業風。[眞諦傳云。泛舶西歸。業風賦命。]

대사는 벗 도량(道亮)과 함께

한장 널판지에 걸터앉아 바람에 맡긴 채 떠다니게 되었다.

通星 [晝夜通也] 半月餘。

飄至劒山島 [卽黑山島。島形如劒。故名曰劒山。]

밤낮없이 반달 가량을 떠다닌 후에

검산도(劒山島 : 黑山島)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桼+巴]行之碕[音奇。曲岸頭也。]上。

悵然甚久曰。

무릎 걸음으로 물가에 도착하여

한참이나 실의에 잠겨있다가 말하기를,

魚腹中幸得脫身。[涉海免死。]

龍頷下庶幾攙[音斬。扶也。]手。[庶得大寶。]

“물고기 배 속에서도 간신히 몸을 건졌으니

용의 턱밑에도 손을 넣어 (바라는 구슬을) 아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我心非石。其可退轉乎。[詩云。我心非石。不可轉也。]

나의 마음은 구르는 돌이 아니니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洎長慶[穆宗年號]初。朝正使[春秋傳。諸侯朝正於王。]王子昕[金陽。字魏昕。太宗之後。金周元之曾孫。]

艤舟唐恩浦。[南陽郡。]

請寓載。許焉。장경(長慶 : 821~824) 초에

조정사(朝正使)로 가게된 왕자 흔(昕)이

당은포(唐恩浦)에 배를 대었기에

태워줄 것을 부탁하니 허락했다.

旣達之罘 [音浮] 山㯟。[山足。]

顧先難後易。土揖 [周禮秋官司儀。王南面見諸侯。]土揖[庶姓。時揖異姓。天揖同姓。註。土揖。推手少下也。時揖。平揖手也。天揖。推手少擧也。]海若 [海神] 曰。

珍重鯨波。好戰風魔。

마침내 지부산(之罘山) 기슭에 도착해서는

전에는 어려웠던 일이 이제 쉽게 됨을 생각하고서

해약(海若 : 바다의 신)에게 공손히 절하고서

“큰 파도를 자제하고, 바람의 마군과 잘 싸우셨습니다”고 하였다.

行至大興城南山至相寺。

遇說雜花者。猶在浮石。(스승을 찾아) 다니다가

대흥성(大興城) 남산(南山)의 지상사(至相寺)에 이르러서는

화엄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석사에서 배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時有一䃜[音曳。美石。黑色。]顔耆年 言提之曰。

遠欲取諸物。[易曰。近取諸身。遠取諸物。]孰與認而[汝也]佛。

그때 한 얼굴이 검은 노인이 말을 걸고서

“멀리 자신 밖의 사물에서 (道를) 구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

大師舌底大悟。自是置翰墨。

游歷佛光寺。問道如滿。

吾閱人多矣。罕有如是新羅子。

대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닫고서

이때부터 경전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불광사(佛光寺)에서

여만(如滿)에게 도(道)를 물었다.

滿佩西江印。爲香山白尙書樂天

空門友者。而應對有慚色曰。

여만은 강서마조(江西馬祖)에게서 심인(心印)을 얻었고,

향산(香山)의 백상서(白尙書) 악천(樂天)과는

불법을 같이 이야기하는 벗이었지만

(대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吾閱人多矣。罕有如是新羅子。

他日中國失禪。將問之東夷耶。

“내가 여러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이 신라사람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다.

후일에 중국에서 선(禪)이 사라진다면

곧 동이(東夷)에 가서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去謁麻谷寶徹和尙。服勤勞無所擇。

人所難己。必易그곳을 떠나 마곡(麻谷) 보철화상(寶徹和尙)을 찾아가

모시면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남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쉽게 해내었다.

衆目曰。禪門庾[黔婁]異行。[黔婁爲孱陵令。父易在家遘疾。黔婁忽心驚。擧軆流汗。卽日棄官歸家。嘗糞甘苦。焚香祝天。父疾得愈。]

이에 여러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선문(禪門)에 있어서 유검루(庾黔婁)와 같은 남다른 행실을 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徹公賢苦節。嘗一日告之曰。

보철화상은 대사의 노력을 현명히 여기고서 하루는 불러서 말하기를,

昔吾師馬和尙 訣我曰。

“전에 나의 스승인 마화상(馬和尙 : 馬祖道一)께서 나와 헤어질 때에 말씀하시길,

春蘤繁。秋實寡。

攀道樹者所悲吒。[音且。去聲。嘆也。]

‘봄에 꽃이 많으면 가을에 열매가 적은 법이다.

보리수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슬프게 여긴다.

今授若印。異日徒中 有奇功可封者。封之。無使刓。[削也。]

지금 너에게 심인(心印)을 전하니

후일에 제자 가운데 재주가 뛰어나서 북돋아 줄만한 사람이 있으면

북돋아 주어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고 ,

復云。東流之說。

盖出鉤讖。[古兵有鉤有鑲。皆劒屬。引來曰鉤。推去曰鑲。盖引當來說。故曰鉤讖。]

다시 말씀하시기를,

‘불법이 동쪽으로 전해간다는 말은 거의 예언에서 나온 말이니

彼日出處。善男子根殆熟矣。

해뜨는 곳(동쪽)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바탕이 거의 완숙해졌을 것이다.

若若得東人 可目語者。[以心傳心。]

畎道之。 [畎。田中溝。取其流引之意。道導同。]

俾慧水 丕冒於海隅。

爲德非淺。

만일 네가 동쪽 사람으로서 눈으로 말할 만한 사람을 얻어

잘 이끌어 지혜의 물이 바다 바깥(중국 바깥)에 까지 덮도록 한다면,

그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고 하셨다.

師言在耳。吾喜若徠。[來也。]

스승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네가 왔으니 기쁘구나.

今授印焉。俾冠禪侯于東土。

往欽哉。

이제 심인(心印)을 전하여

동방에서 선종의 으뜸가는 사람이 되게 하니

가서 삼가 실행하거라.

則我當年 作江西大兒。

後世爲海東大父。其無媿先師乎。

(그렇게 한다면) 나는 지금은 강서(江西) 마조(馬祖)의 수제자이고,

후세엔 해동(海東) 선문(禪門)의 할아버지가 될 터이니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구나”고 하였다.

居無何。師化去。

墨巾離首。[服喪。] 乃曰。

그곳에 머무른 지 얼마 안되어

보철화상이 세상을 떠나

묵건(墨巾)을 머리에 쓰고 이내 말하기를,

筏旣捨矣。舟何繫焉。

“큰 배가 이미 떠나버렸는데

작은 배가 어디에 묶여 있을 것인가”라 하고

自爾浪遊 飄飄然。

勢不可遏。志不可奪。

이때부터 각지를 유랑하였는데 바람처럼 하여

그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뜻을 빼앗을 수 없었다.

於是渡汾水。登崞 [音郭]山

跡之古必尋。僧之眞必詣。

분수(汾水)를 건너고

곽산(崞山)을 오르기까지

오래된 (불교의) 자취는 반드시 찾아가고,

참된 승려는 반드시 만나 보았다.

凡所止舍。遠人烟大。

要在安其危 甘其苦役。

머무르는 곳은 인가를 멀리하였으니

그것은 위태로운 것을 편안히 여기고 고생을 달게 여기며,

四體爲奴虜。奉一心爲君主。

몸은 종처럼 부리되,

마음은 임금처럼 받들기 위해서였다.

就是中。顓[專同]以視篤癃 恤孤獨 爲己任。

이런 가운데도 오로지 병든 사람을 돌보고,

고아와 자식없는 늙은이들을 도와주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至祁寒酷暑。且煩渴。或皸瘃 [手足凍瘡] 侵。

曾無勌容耳。

지독한 추위나 더위가 닥쳐,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손이 트고 얼음이 박히더라도

전혀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名者不覺遙禮。囂作東方大菩薩。

그 이름을 듣는 사람은 멀리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의를 표하면서

동방(東方)의 대보살(大菩薩)이라고 크게 떠들어댔다.

其三十餘年行事也 其如是。

(중국에서의) 30여 년간의 행적은 이와 같았다.

會昌五年。來歸。帝命也。[武帝乙丑。勑外國僧。各還本蕃。詳見年譜。]

회창(會昌) 5년(845)에 귀국하였는데

이것은 당나라 황제가 (외국 승려들을 귀국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國人相慶曰。

連城璧復還。天實爲之。地有幸也。

나라 사람들이 서로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여러 성(城)과 바꿀 수 있는 귀한 보배가 다시 돌아왔으니

이것은 하늘이 해주신 일로

땅에는 복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自是請益者。所至稻麻矣。

이때부터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마치 벼와 삼같이 빽빽하였다.

入王城[慶州。]省母社。

大歡喜曰。

서울에 들어와 어머니를 찾아뵈니 (어머니는) 크게 즐거워하면서

顧吾疇昔夢。

乃非優曇[般泥涅經云。閻浮提內有尊樹。名優曇鉢羅。若生金花。則有佛出世。]之一顯耶。

“돌이켜 보니 전에 내가 꾼 꿈이

우담화가 한 번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

願度來世。吾不復撓倚門之望也 [王孫賈母言]已矣。

바라건대 내세를 제도하라.

나는 다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廼北行。擬目選終焉之所。이에 곧 북쪽으로 나아가서

종신토록 몸 붙일 곳을 찾아다녔다.

會王子昕 懸車。[漢書。薛廣德乞骸歸沛。懸天子所賜安車以爲榮。傳之子孫。盖言致仕也。]

爲山中宰相。[梁陶弘景隱茅山。武帝每有大政。訪之。人謂山中宰相。]

邂逅適願。[不期而遇。]

그때 마침 왕자 흔(昕)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산중(山中)의 재상(宰相)으로 불렸는데

우연히 바라는 바가 합치되었다.

謂曰。師與吾俱祖龍樹 [新羅太宗名]乙粲 [職名。]

則師內外爲龍樹令孫。[師以法嗣龍樹菩薩。]

眞瞠 若不可及者。

(昕이) 말하기를,

“스님과 나는 함께 용수(龍樹) 을찬(乙粲)을 조상으로 하고 있으니,

스님은 안팎으로 모두 용수(龍樹)의 자손입니다.

참으로 놀라와 감히 미칠 바가 못됩니다.

而滄海外。

躡瀟湘故事。[唐柳惲詩曰。洞庭有歸家。瀟湘逢故人。謂唐恩浦相遇之事。]

則親舊緣 固不淺。

그러나 바다 밖에서 함께 했던 일이 있으니

옛적의 인연이 결코 얕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有一寺在熊川州 [今公州 ]坤隅。[西南間藍浦聖住寺。]

是吾祖臨海公受封之所。[太宗第二子仁文公。字仁壽。以屠穢貊功。封能州。]

지금 웅천주(熊川州) 서남쪽 모퉁이에 절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나의 조상인 임해공(臨海公) [휘(諱)는 인문(仁問)이고, 당나라가 예맥(濊貊 : 실은 高句麗를 말함)을 정벌할 때에 공이 있어서 임해공(臨海公)으로 봉해졌다]께서 봉토로 받은 곳입니다.

間劫 [燼同] 流烖。[天火。]

金田[須達長者以金布地。而買祗陀太子園以施佛故云]。半灰。

匪慈哲。孰能興滅繼絶。

중간에 재해를 입어 절이 반쯤 재가 되었으니,

자비롭고 명철한 분이 아니라면

누가 업어진 것을 일으키고 끊어진 것을 이어지게 하겠습니까.

可強爲朽夫住持乎。

억지로라도 이 늙은이를 위하여 머물러 주주십시오”라고 하였다.

大師畣曰。有緣則住。[원주祖諱仁問唐醻伐濊貊功封爲臨海群公]

대사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있다면 머물게 되겠지요”라고 하였다.

大中初。[唐宣宗年號。]始就居。且肸飭之。[肸音惠。振也。言振整而飾也。]俄而道大行。寺大成。대중(大中 : 847~859) 초에

그곳으로 가서 머물기 시작하면서 말끔히 단장하였던 바,

얼마 되지 않아 도(道)가 크게 행하여지고

절은 크게 번성하였다.

繇是四遠問津輩。

視千里 猶跬步。[一擧足爲跬。再擧足爲步。]

其[ 麗[同] 不億。[不啻億也。]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먼 곳에서부터 도(道)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천리 먼 길을 반걸음처럼 가깝게 여기고 찾아오니

그 수가 이루 셀 수 없었다.

寔繁有徒。大師猶鍾待扣[大扣大鳴。小扣小鳴。]

而鏡忘罷。[音疲。胡來胡見。漢來漢現。如問卽答之意。]

이처럼 무리가 많아졌지만

대사는 종이 늘 쳐주기를 기다리고

거울이 얼굴을 비춤에 피곤해 하지 않듯,

至者靡不以惠炤 導其目。

法喜[禪悅食也] 娛其腹。

온 사람은 모두 지혜의 횃불로 그 눈을 이끌어 주고,

불법의 즐거움으로 배를 채워주어

誘憧憧之躅。變蚩蚩之俗。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이끌어 주고

무지(無知)한 습속을 변화시켰다.

文聖大王 [神武王之太子] 聆其運爲。

莫非裨王化。

甚㤎 [音哥。法也楷也。]之。

飛手敎。優勞且多

문성대왕(文聖大王)께서는 대사가 행하는 일이

왕도(王道)를 행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고

매우 기매우 본받을 만하다고

급히 어찰을 보내어 위로하였으며,

大師畣山相之四言。[有緣則住四字。]

易寺榜 [舊名烏合寺] 爲聖住。

仍編錄大興輪寺。[興輪。國之願堂。奴婢田沓。屬於聖住寺。]

대사가 산중(山中) 재상(宰相)에게 대답한

네 마디 말[有緣則住]을 중하게 여기셔서

사찰의 이름을 바꾸어 성주(聖住)로 하고

대흥륜사(大興輪寺)에 편입시키도록 하셨다.

大師酬使者曰。

寺以聖住爲名。招提固所爲榮。至寵

대사가 왕의 사자(使者)에게 대답하기를

“사찰의 이름을 성주(聖住)로 지어주신 것만 하여도

절로서는 진실로 영광스럽고 지극한 총애가 될 것입니다.

庸僧。濫吹高笛。[莊子。齊宣王好竽。南郭先生不知竽。而以吹竽食祿。]

寔避風斯媲。[音比。配也。莊子。海鳥避風。止於魯郊。魯侯御以觴之于廟。具太牢以爲膳。鳥乃眩視。憂悲不敢食飮。三日而死。是不以鳥養鳥。今王之寵師亦猶是也。]

而隱霧可慙矣。[陶答子不顧名譽而治家產。其妾諫曰。南山有玄豹。霧雨七日。不下食。欲澤其文章。隱而避害。凡豕貪啗無厭。故因以見俎。今子無隱霧之操。有凡豕之欲。妾懼之。]

용렬한 소승이 재능도 없으면서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것은 바다새가 바람을 피해오자 뭍의 새가 봉황으로 오해한 것처럼

안개비가 오는 날에는 숲에 숨어서 자신의 무늬를 윤택하게 하는 표범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時憲安大王 [文聖王之弟。神武王之次子。名宜靖。]與檀越[唐梵雙擧。檀。此云惠施。卽惠施越苦海也。]季[弟也。]舒發韓[翰同。職名。]魏盺。[名也。姓金。]爲南北相。[左右相也。] 그때 (즉위 전의) 헌안대왕(憲安大王)께서는

사찰의 시주(施主)인 동생인 위흔(魏昕)과 더불어 남과 북의 재상(宰相)[각기 자신의 관사에 있어 좌상(左相), 우상(右相)과 비슷하였다]이 되어

遙展攝齋[音咨。裳下縫也。師行。弟子攝師之齊。]禮。

贄以茗馞 [香也。] 使無虛月。

멀리서 제자의 예를 행하며

향과 차를 예물로 보내어

한 달도 그것을 빠뜨리지 않게 했다.

至使名 霑[同。] 東國士流。

不識大師之門。爲一世羞。

이렇게 (大師의) 명성이 온 나라에 가득하여

동국의 사류들은

대사의 선문(禪門)을 모르는 것을

일세의 수치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得禮足者 退必唶[音借。嘆聲。]曰。

그리고 선사를 뵈온 사람들은 물러나와 반드시 감탄하면서,

面謁百倍乎耳聞。口未出而心已入。

“직접 뵈오니 귀로 듣던 것보다 백배나 낫다.

입으로 말씀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抑有猴虎而冠者。亦熄其趮 [音躁。輕急貌也。諽 音革。更也。]

其虣。[音暴。虎也。猛也。周禮大司武徒。以刑敎中。則民不虣。]

而傹[競同]犇馳善道。

또한 원숭이와 호랑이 같은 성질을 가진 관(冠)을 쓴 사람이라도

곧 그 조급함을 멈추고, 사나운 마음을 고쳐서

다투어 착한 길로 달려 나갔다.

曁憲王嗣位。賜書乞言。大師畣曰。

헌안왕께서 즉위하심에 이르러

대사에게 글을 보내어 도움이 될 말을 청하였는데,

대사는 대답하기를,

周禮對魯公之語。有旨哉。著在禮經。請銘座側。

“주풍(周豊)이 노공(魯公)에게 대답한 말이 뜻이 깊습니다.

예경(禮經)에 적혀있으니 자리 옆에 새겨 두십시오”라고 하였다.

逮贈太師

先大王[景文王也。姓金名膺廉。僖康王孫。阿飡啓明子也。憲安無子。立以爲嗣。]卽位。태사(太師)를 추증받으신 선대왕(先大王 : 景文王)께서 즉위하셔서도

欽重如先朝志。而日加厚焉。

(대사를) 공경하고 존중하심이 선조(先朝 : 憲安王) 때와 같아서

대우해 주는 것이 나날이 두터워졌다.

最所[凡同所]施爲。必馳問然後擧。

일을 시행할 때에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어 물어본 후에 거행하였다.

咸通[懿宗年號] 十二年秋。

飛鵠頭書。[天子詔。以紫泥封之。含於丹鳳頭。以五色絲係而下之。諸侯以黃泥封之。含於黃鵠頭。以綵線引而下也。]

以傳 [去聲。卽驛馬也。]召曰。

함통(咸通) 12년(871) 가을에

(왕께서는) 대사에게 교서(敎書)를 급히 보내고

사람을 시켜 부르면서 말하기를,

山林何親。城市何疎。

“산림(山林)을 어찌 가까이 여기시며

도성(都城)은 어찌 소원하십니까?”라고 하였다.

大師謂生徒曰。遽命伯宗。[左傳。梁山崩。晉侯以傳召伯宗。伯宗避之。]

深慚遠公。[通載云。慧遠公在廬岑。天子至潯陽。三召不出。]

대사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갑자기 진후(晉侯)가 백종(伯宗)을 부르듯하니

(산문에서 밖에 나오지 않았던) 혜원공(慧遠公)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然道之將行也。時乎不可失。

하지만 앞으로 도(道)를 행해지게 하려면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念付囑故。[佛涅槃時。以佛法流通。付囑國王大臣也。]

吾其往矣。

부처께서 (불법이 전해지도록) 부촉(付囑)하신 바를 생각하니

내가 가야 되겠다”라고 말하고

歘爾至轂下。

及見先大王 [景文王] 冕服。拜爲師。

홀연히 서울에 도착하여 뵈오니

선대왕께서는 면복(冕服) 차림으로 절을 하여 스승(王師)으로 삼았고,

君夫人世子 曁太弟相國。

羣公子公孫。環仰如一。

一如古伽藍 繢壁面

寫出西方諸國長 侍勃陁 [佛陀同] 樣式。

왕비와 세자, 그리고 왕의 동생이신 상국(相國) [돌아가신 후에 왕으로 높이고 시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고 하였다]과 여러 왕자, 왕손들이

빙 둘러싸고 한결같이 우러렀는데

마치 옛날 가람의 벽 그림에

서역의 여러 왕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였다.

上曰。弟子不佞。少好屬文。

임금께서 말씀하시길,

“제자가 말 재주는 없습니다만,

글 짓는 것은 조금 좋아합니다.

嘗覽劉勰[音叶。梁武帝時人。推爲昭明太子所重。著文心雕礱五十卷。]

文心。有語云。

전에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滯有守無。徒銳偏解。

欲詣眞源。其般若之絶境。

則境之絶者。或可聞乎。

“유(有)에만 얽매이거나, 무(無)만을 고집하면

편벽된 이해에 나아갈 뿐이다.

참된 근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반야(般若)의 유무가 끊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경지가 끊어진다는 것을

혹 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大師對曰。

境旣絶矣。理亦無矣。

斯印也 默行爾。

대사가 대답하기를,

“경지가 이미 끊어졌다면

진리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으로 전하는 것(心印)이니

말없이 행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上曰。寡人固請少進。

임금께서 “과인은 진실로 조금 더 배우기를 청합니다”고 하자,

爰命徒中錚錚者。[光武謂樊崇。鐵中錚錚。]

更手撞擊。

隨問以答。如鍾撞擊。

舂容盡聲。[舂容。鯨枹舂鍾之聲。言說法之意。]

이에 문도 중 쟁쟁한 자들에게

번갈아 가며 두드리고

질문에 따라 대답하게 하기를[설법을 하게 하여]

종을 두들기듯이 하게 하여

조용히 법문을 다하였다.

剖滯祛煩。若商颷之劃陰靄然。

막힌 것을 뚫고 번거로운 것을 없애는 것이니

마치 가을바람이 어두침침한 구름을 보내듯 하였다.

於是上大喜。懊[恨也] 見大師晩曰。

恭己南面。司南[司。守主也。南。任也。] 南宗。

舜何人哉。余何人也 [用孟子語。]

이에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셔서

대사를 늦게 만나본 것을 안타까와하시며 말씀하시길,

“몸을 공손히 하여 남면한 이[왕]에게 선종(禪宗)을 가르쳐주시니

순(舜)임금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라고 어찌 못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旣出。卿相延迓。

與謀不暇。士庶趨承。

欲去不能。

왕궁에서 나오자 재상들이 다투어 마중하니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일반 백성들이 뒤쫓으며 받드니

떠나고자 하여도 그럴 수 없었다.

自是國人。皆認衣珠。[法華中。有人衣內係珠。喩事不煩引。]

隣叟 罷窺廡玉焉。[尹文子云。魏叟得徑尺玉。隣人曰。此至恠石也。拋置廡下。夜間光照一室。益大駭。棄之野。隣人獻之王。王賜獻玉者千金。長食上大夫祿。]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귀한 보배(佛性)가 있음을 알았고

이웃집의 노인도 남의 집 처마밑의 보석을 탐내지 않게 되었다.

俄若樊笯中。[樊笯。養鳥之具。比王宮。]卽亡去。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새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활을 괴롭게 여겨서

곧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上知不可強。迺降芝檢。

[瑞命記云。王者德仁則芝艸生。故王之手書。謂芝檢。]

以尙州深妙寺 不遠京。

請禪那別舘。

임금께서는 억지로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

곧 교서(敎書)를 내려서

상주(尙州)의 심묘사(深妙寺)가 서울로부터 멀지 않으니

선종의 별관으로 할 것을 청하였다.

辭不獲。往居之。

一日必葺。儼若化城。[別開一城。誘引權少。故云化城。]

대사는 사양했으나 할 수 없어

그곳에 가서 주거했다.

하루를 머물더라도 반드시 수리하였으니

엄연하게 훌률한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乾符 [僖宗年號] 三年春。

先大王不預。命近侍曰。

亟迎我大醫王來。건부(乾符) 3년 (876) 봄에

선대왕(先大王)께서 병환이 나셨는데

근시(近侍)에게 “빨리 우리 대의왕(大醫王)을 모셔오라”고 명하셨다.

使至。大師曰。

山僧足及王門。一之謂甚。

사자가 심묘사에 이르니, 대사께서는

“산승(山僧)의 발이 왕궁에 이르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심하다고 할 것이다.

知我者。謂聖住爲無住。

不知我者。謂無染爲有染乎。

나를 아는 사람은

‘성주(聖住)가 무주(無住)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염(無染)이 물이 들었다[有染]’고 말할 것이다.

然顧與吾君 有香花因緣。[郭子儀與吐蕃結香火之約。言焚香告天而結兄弟。]忉利之行[此云三十三天。帝王之死。云乘天賓天。故取其意也。]有期矣。

盍就一訣。

하지만 우리 임금과 서로 맹세한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임금께서 도리천에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찌 가서 작별인사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復步至王居。

設藥言。施箴戒。

覺中愈。擧國異之。

다시 왕궁으로 가서 약이 되는 말씀을 하여 주고,

잠계(箴戒)를 베푸시니 (왕께서) 깨닫는 가운데

병이 조금 나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旣逾月。獻康大王居翼室。[捨正殿而居翼室。以居憂故也。]

한 달이 지나서 (경문왕이 돌아가시고)

헌강대왕께서 거상(居喪)을 하게 되었다.

泣命王孫勛榮。諭旨曰。

(왕께서는) 울면서 왕손인 훈영(勛榮)을 통하여 뜻을 전하였으니,

孤幼遭悶凶 [父死。]未能知政。

“내가 어려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정사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致君奉佛。誧[普同] 濟海人。

與獨善其身 不同言也。

임금을 인도하고 부처를 받들어

사해(四海)의 사람을 널리 구제하는 것은

자기 한 몸만을 착하게 하는 것과는

같다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幸 大師無遠適。所居惟所擇。

원컨데 대사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시고

거처할 곳을마음대로 선택하십시오.”라고 하였다.

對曰。

古之師則六籍[王守仁曰。六經是聖心之記籍。]存。

今之輔則三卿在。

(대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스승의 가르침은 육경(經)에 기록되어 있고,

지금 보필할 사람은 삼경(卿)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老山僧 何爲者。

坐蝗蠹桂玉哉。

[蝗蠢害穀虫。○戰國策。蘇秦說楚王曰。米貴於玉。薪貴於桂。]

늙은 산승(山僧)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누리[蝗]처럼 앉아서 땔나무와 곡식을 축낼 뿐입니다.

旣有三言。庸可留獻。

曰能官人。[言任賢人。]

단지 세 마디 말로 남겨드릴 만한 말씀이 있으니

‘관리를 잘 등용하라 [能官人]’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翌日。挈山裝鳥逝。

自爾騎置[音智。驛傳也。漢烏孫傳。騎置以聞。師古曰。今之顓馬。]傳訊。

影綴巖溪。다음날 산의 무리를 이끌고 새처럼 떠나고 말았는데,

이때부터 역마(驛馬)들이 왕명을 전하려고

산중에 그림자를 이었다.

遽人[驛卒]知往抵聖住。

卽皆雀躍。叢手易轡。

慮滯王程。猶尺寸地。

역졸(驛卒)들은 가야할 곳이 성주사인 것을 알면

곧 모두 뛸듯이 기뻐하며 손을 모아 말고삐를 고쳐잡고

왕사를 위한 노정이 한걸음이라도 늦을까 걱정하였다.

由是騎常侍。[司馬門校尉。卽今宣傳官。]倫伍 [倫輩。伍卒。]

得急宣。爲輕擧。

이 때문에 왕명을 전하는 기상시(騎常侍)의 무리들은

급한 왕명을 받아

쉽게 거행하였다.

乾符帝 [僖宗] 錫命之歲。[冊封獻康王。]

令國內舌抄有可道者。[以道治國之政事。] 貢興利

除害策。別用蠻牋 [南蠻所出美牋] 書言。

荷天寵有所自因。건부제(乾符帝)가 헌강대왕을 책봉하던 해(878년)에

국내에서 도를 말할 수 있는 자에게 이로움을 늘리고

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계책을 올리게 하였는데

특별히 우리나라의 종이를 사용하여 글을 써 보내니,

“천자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이다.”라 하였다.

垂益國之問。大師引出

何尙之 獻替宋文帝[劉宋]心聲 [孟子曰。言者。心之聲也。]爲對。

나라에 이익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사는 하상지(何尙之)가 송(宋) 문제(文帝)에게 바친 말*로써 대답하였다.

[*좋은 일을 하도록 권장하고 나븐 일을 하지 않도록 간(諫)함]

太傅王覽 謂介弟介。[大也。]宫相 [有南北相] 曰。

三畏[孟子曰。君子有三畏。畏天命。畏大人。畏聖人。]比三歸。

五常均五戒。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동생인 예부령(禮部令 : 南宮相)에게 말씀하시길,

“삼외(三畏)는 불교의 삼귀의(三歸依)에 비교될 수 있고,

오상(五常)은 불교의 오계(五戒)와 비슷하다.

能踐王道。是符佛心。

大師之言 至矣哉。

吾與汝 宜惓惓。

왕도(王道)를 잘 실천하는 것이

부처의 마음에 부합되는 것이다.

대사의 말이 지극하시니

나와 너는 마땅히 삼가 노력하도록 하자”라고 하셨다.

中和西狩之年秋。[僖宗辛丑。避黃巢亂。入蜀。]

上謂侍人曰。

國有大寶珠。畢世櫝 [櫝同] 而藏之。其可乎。

曰。不可。不若時一出。俾醒萬戶眼。醉四隣心。

건부제(乾符帝)가 (黃巢의 亂을 피하여) 서쪽으로 피난한

중화(中和) 원년 (881쪽) 가을에 임금께서 시인(侍人)에게,

“나라에 커다란 보배 구슬이 있는데

평생토록 궤에 감추어 두는 것이 잘한 일인가 ?”하고 묻자

“아닙니다. 때때로 꺼내어서 많은 백성들의 눈을 뜨게하고

사방 이웃 나라의 마음을 감화시킴민 같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曰。我有摩尼 [如意珠] 上珍。

匿曜在崇巖山。脫闢秘藏。

宜照透三千界。何十二乘 足之道哉。

이에 임금께서,

“나에게 마니(摩尼)의 귀한 구슬이 있는데

빛을 감추고 숭엄산(崇嚴山)에 있다.

만약 그 감춘 것을 열기만 한다면

삼천세계를 환히 비추어 꿰뚫울 수 있으니

어찌 수레 열둘을 비추었다는 구슬이야 비교가 되겠는가.

我文考懇迎。嘗再縣矣。

나의 부왕께서 간절히 맞이하셨을 때,

두 번이나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昔酇侯 譏漢王拜大將

如召少兒。不能致商山四老人。以此。

옛날에 소하(蕭何)는 한 고조가 한신(韓信)을 대장(大將)으로 임명하면서

아이 부르듯 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 하면서

상산(商山)의 네 노인을 부를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今聞天子蒙塵。[黃巢亂。]

趣令奔問官守。[天子之官守。]

勤王加厚。歸佛居先。

지금 천자께서 피난하셨다는 말을 들었으니

달려가서 위문해야 하나

천자를 섬김에는 부처에게 귀의함이 가장 먼저일 것이다.

將邀大師。必叶外議。

이제 대사를 맞아들임에 있어서는

반드시 세상의 공론에 부합케 하고자 한다.

吾豈敢倚其一

慢其二哉。[用孟子爵齒德語。]

乃重其使。卑其辭徵之。

내가 어찌 감히 권력 하나만을 의지하여

나이 많고 덕망이 높으신 둘째 분에게 무례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며

이에 사자(使者)를 정중하게 하고 말을 겸손하게 하여 부르셨다.

大師云。孤雲出岫。寧有心哉。

有緣乎大王之風。

無固乃上士之道。遂來見。

이에 대사는

“외로운 구름이 산에서 나오는 것이 어찌 다른 마음이 있어서이겠는가.

대왕의 德風에 인연이 있으니

고집함이 없는 것이 뛰어난 선비[上士]의 도리일 것이다”

라고 말하고 드디어 와서 왕을 뵈었다.

見如先朝禮。禮之加焯然。

可屈指者。面供饌。一也。

임금께서 대사를 인견함은 선조(先朝 : 景文王) 때의 의례와 같았는데

예는 더욱 빛났다.

손꼽을 만한 것으로는, 임금께서 직접 음식을 공양한 것이 첫째이고,

手傳香 [表信。]二也。

三禮者三。三也。

손으로 향을 전하신 것이 둘째이며,

몸·입·뜻의 삼업(三業)으로 세 번이나 경의를 표하신 것이 셋째이며,

秉鵲尾爐 [香爐有長柄者。]締生生世世緣。四也。

작미향로(鵲尾香爐)를 잡고 영생의 인연을 맺은 것이 넷째이며,

加法稱曰廣宗。五也。

법명(法名)에 ‘광종(廣宗)’을 더하여 준 것이 다섯째이며,

翌日。命振鷺。[少昊鳥官之時。以鵷鷺爲三公。]

趨鳳樹。[鳳非梧桐不棲。鳳樹。指大師留宿之所。]

雁列賀。六也。

다음날 어진 이들에게 대사가 머무는 절에 나아가

기러기처럼 열을 지어 인사드리도록 한 것이 여섯째이며,

敎國中磋磨 [如磋如磨] 六義[風雅頌比賦興]者。

賦送歸之什。在家弟子王孫 蘇判嶷榮。首唱。

斂成軸。侍讀翰林才子朴邕。

爲引而 [引始於班固典引。引與序一也。]

贈行。七也。

나라 안의 시(詩)를 짓는 사람들에게

대사를 송별하는 시(詩)들을 짓게 하여서

재가제자(在家弟子)인 왕손 소판(蘇判) 억영(嶷榮)이 가장 먼저 시(詩)를 지으니

그것을 거두어서 두루마리로 만들고,

시독(侍讀)이며 한림관(翰林官)인 박옹(朴邕)이

거기에 인(引)을 덧붙여서 떠날 때에 준 것이 일곱째이며,

申命掌次[禮記。掌次。卽修正處所次知官。]

張淨室。要叙別。八也。

행차를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정결한 방을 준비하도록 거듭 명하여

그곳에서 작별하신 것이 여덟째이다.

臨告別。求妙訣。

乃眴[音旬。以目指揮。]從者。擧眞要。고별에 임하여 임금께서 신묘한 비결(秘訣)을 구하시니,

이에 제자들에게 눈짓하여 진요(眞要)를 들려주라고 하였다.

有若詢乂,圓藏,靈源,玄影 四禪中 得淸淨者。

순예(詢乂), 원장(圓藏), 허원(虛源), 현영(玄影)과 같은 이는

사선(四禪)을 행하여 청정(淸淨)을 얻은 사람들로서,

緖柚[杼。持緯者。柚。受經者。]其慧表纖旨。

注意無怠。沃心有餘。[太甲曰。啓乃心。沃朕心。]上甚悅。擡拜曰。[擡。擧也。擧手而拜。]

지혜의 실을 뽑아 깊은 뜻을 짜냈는데,

뜻을 기울여 소홀함이 없었고, 임금의 마음을 계발(啓發)함에 여유가 있었다.

上甚悅。擡拜曰。[擡。擧也。擧手而拜。]

昔文考爲捨瑟之賢。

今寡人忝避席之子。[捨瑟。曾點言志事。曾子避席。見孝經。]

임금께서 매우 즐거워하여 두 손을 마주잡고 경의를 표하며 말씀하기를

“전에 저의 부왕(父王)께서는 비파을 버린 증점(曾點)과 같은 현인이셨는데,

지금 저는 증삼(曾參)과 같은 아들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繼體 [紹父之體] 得崆峒之請。[廣成子在崆峒上。黃帝問長久之道。]

服膺[中庸。眷眷服膺而不失。]開混沌之源。[混沌。元氣未分之前。卽生無極。]

그러나 임금의 자리를 이어서 덕이 있는 사람에게 지극한 도리를 얻고,

그것을 받들어 간직함으로써 혼돈의 근원을 열게 되었습니다.

則彼渭濱老翁。[姜太公] 眞釣名者。

圯上孺子。[張子房] 盖履跡焉。 [履。古人言跡。]

그러니 저 위수(渭水)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姜太公)은

사실은 명예를 낚으려는 자였으며,

흙다리 위의 장량(張良)도 그런 전철을 밟았다고 할 것입니다.

雖爲王者師。徒弄三寸舌也。

曷若吾師語密。傳一片心乎。

비록 왕자(王者)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여도

단지 세 치의 혀를 놀린 것에 불과하니

어찌 나의 스승께서 은밀한 말로써

마음을 전한 것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奉以周旋。不敢失墜。

받들어 실천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太傅王 雅善華言。金玉之音。

不患衆咻聒而能出口。

成儷語。[偶配之語。]如宿構云。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중국어를 잘하셔서

그 소리가 금옥 같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드는 것도 관계없이 입을 여시면

짝이 맞는 병려체(騈儷體)의 문장이 되어

마치 오래 전에 문장을 지어놓은 듯하였다.

大師旣退且往。應王孫蘇判鎰。

대사께서 왕궁을 물러나온 후에

다시 왕손인 소판(蘇判) 일(鎰)의 청함을 받아들였다.

共言數返。卽嘆曰。

昔人主有

有遠體[體度] 而無遠神[神知]者。

而吾君備。

같이 여러 차례 이야기를 주고 받고선 (대사께서) 감탄하여 말씀하시길

“옛날의 임금들은 장수하는 분은 있어도 생각이 깊지 못하였는데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그 둘을 겸비하셨고,

人臣有有公才而無公望者。而吾全。

國其庶乎。[孟子云。齊其庶幾乎。]

신하들은 재상이 될만한 재주는 있어도

그러한 덕망이 없었는데 우리 당신은 두루 갖추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宜好德自愛。及歸謝絶。

마땅히 덕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십시오.”라고 하고는

하직하고 산으로 돌아가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於是。遣輶軒[輕車。] 標放生場[立禁標。使獵士不入。故謂放生。顏眞卿作放生碑。]界。

則鳥獸悅。紐[結也] 銀鉤。

扎[寫也]聖住寺題。則龍蛇活。

이에 임금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방생장(放生場)의 경계를 표시하니

새와 짐승이 기뻐하였고,

은구(銀鉤:공교한 은빛글씨)를 얽어 ‘성주사(聖住寺)’의 제액(題額)을 썼는데

마치 용과 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盛事畢矣。昌期忽兮。[獻康昇遐]훌륭한 일을 마치고 한창 때도 문둑 끝나는 법이다.

定康大王 [獻康之弟] 莅阼。

兩朝寵遇。師而行之。

정강대왕(定康大王)께서 즉위하셔서는

양조(兩朝:景文王과 憲(獻)康王)에서 은혜를 입은 것을

본받아 행하였다.

使緇素重使迎之。辭以老且病。

승려와 신도들에게 거듭 사신을 보내어 맞아 오게 하였으나

(대사는) 늙고 병들었다고 사양하였다.

太尉大王[卽位之初。帝命錫太尉。]

流恩表海。仰德高山。

태위대왕(太尉大王 : 眞聖王)께서는 은혜를 내림이 바다와 같았고

덕있는 사람을 존경하기를 높은 산을 바라보듯 하였다.

嗣位九旬。馳訊十返。

즉위하신 지 90일만에

안부를 묻는 사자가 열 번이나 다녀갔다.

俄聞曁 [音期痛也] 腰之苦。遽命國醫往爲之 [治也。]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의(國醫)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至則請苦狀。大師微破顏曰。

老病耳 無煩治。

(國醫가) 도착하여 아픈 정도를 물으니

대사는 살짝 웃으며

“노병(老病)일 뿐이니 번거롭게 치료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糜飧二時。必聞鍾後進。

(國醫가) 미음을 하루에 두 번 들이되

반드시 (朝夕공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후에 올리도록 하였다.

其徒憂食力虧。陰戒掌枹者。

陽密擊。

그러나 제자들은 대사께서 식력(食力)을 잃게 될까 걱정하여

몰래 종 치는 사람에게 거짓으로 시간 전에 치게 하였다.

乃目牖而命撤。

하지만 대사께서는 직접 창밖을 내다보시고 그만두게 하셨다.

將化往。命傍侍。

警遺訓于介衆[左傳。問于介衆。介。大也。]曰。

열반에 드실 즈음에 옆의 시중드는 사람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유훈(遺訓)을 남기셨다.

已過中壽。[上壽百。中壽八十。下壽六十。]難逃大期。

我儂遠遊。[楚人謂我爲儂] 爾曹好住。

“내 나이 이미 80[中壽]을 넘었으니,

죽음[大期]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멀리 떠날 것이니

너희들은 잘 지내도록 하라.

講若畫一。守而勿失。

古之吏 尙如是。

今之禪 宜勉旃。

공부하기를 한결같이 하며,

(수행의 태도를) 지키고 잃지 말라.

옛 관리들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지금 선(禪)들도 마땅히 힘써 노력하여야 한다.”

吿訣哉[欃同]罷。

慹然[慹。音執。不動貌。]而化。

마지막 말씀을 마치고

꼼짝 않고 입적하셨다.

大師性恭謹。語不傷和氣。대사는 성품이 공손하고 삼가,

말이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았다.

禮所云 中退然 言吶吶然[禮記註。中。身也。退。謙也。吶。同訥。]者乎。

『예기(禮記)』에 “사람과 상대할 때는 몸을 겸손하게 하고,

말은 삼갔다.”고 이른 사람이라 하겠다.

黌侶 [學侶也] 必目以禪師。

接賓客。未嘗殊敬乎尊卑。

학승(學僧)들을 반드시 ‘선사(禪師)’라고 불렀으며,

손님을 접대할 때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다르다고 해서 대우를 다르게 하지 않았다.

故滿室慈悲。烝徒悅隨。

그러므로 방에는 자비가 가득찼고

제자들이 즐거워하며 따랐다.

五日爲期。俾來求者質疑。

5일을 기한으로 하여

진리를 구하려 온 사람들에게 의심나는 것을 묻게 하였다.

諭生徒則曰。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心雖身主。身要作心師。

“마음이 비록 몸의 주인이지만,

몸은 마땅히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患不爾思道。豈遠而。[汝也。]

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도(道)가 너희를 멀리하겠는가?

設是田舍兒 [農夫]

能擺脫塵羈。

비록 (배우지 못한) 농부라고 할지라도

속세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我馳則心馳矣。導師敎父。寧有種乎。

내가 달리면 마음도 따라오니,

부처와 스승이라고 해서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는가?”

又曰。

彼所啜。不濟我渴。

彼所噉。不救我餒。

盍努力自飮自食。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저 사람이 마신 것이 나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저 사람이 먹은 것이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니,

어찌 노력하여 스스로 마시고 먹지 아니하는가.

或謂敎 [儒也] 禪 [佛也] 爲無同。

吾未見其宗。[不同之宗]

어떤 이들은 교(敎)와 선(禪)이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러한 종지(宗旨)를 보지 못하였다.

語本夥頤。[陳涉世家云。楚人謂多爲夥。服虔曰。頤者。助聲之謂也。]

非吾所知。

말은 본디 많은 것이라,

내가 알 바 아니다.

大較 [音角。大略。]同弗與。[許也]

異弗。[禮記儒行篇註。與其所可與。不必同乎己也。非其所可非。不必異乎己也。同於己者或鄕愿。公而不與。異於己者或行怪。惡而不非。]

대개 같다고 해도 허여할 만한 것은 아니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른 것은 아니다.

非晏坐息機。斯近縷褐被者歟。

고요히 앉아 참선하여 마음의 근본을 쉬는 것,

이것이 수도하는 사람의 행동에 가까울 것이다. 라고 하였다.

其言顯而順。其旨奧而信。

故能使尋相爲無相。

그 말씀은 분명하고 순하며,

그 뜻은 심묘하고 믿음직하여

상(相)을 찾는 이로 하여금 상(相)이 없음을 알게 하며

道者勤而行之。[道經云。上士聞道。勤而行之也。]

不見有歧中之歧。[楊子。有亡羊。歧中多歧。故不知所之。喩大道本一。而人各異說。]

길을 가는 사람이 부지런히 나아가

갈래길 속에 갈래길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始壯及衰。自貶爲基。

食不異糧。衣必均服。

(대사는) 젊어서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낮추어서

먹는 것을 남과 다르게 하지 않았고,

입는 것은 늘 같은 옷이었다.

凡所營葺。役先衆人。每言

祖師嘗踏泥。[佛造祗垣精舍。所舍利弗爲匹。迦葉踏泥。]

吾豈暫安栖。

건물을 짓고 수리할 때에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일하고 늘 말하기를,

“가섭조사(迦葉祖師)께서도 진흙을 이기신 적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잠깐이라도 편히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至摙水[摙。音連。]負[擔也。]薪。

或窮親。且曰。

山爲我爲塵。[言名山由我居而汚也。]

我安得安身。

때로는 물을 길어 나르고, 땔나무를 나르는 일까지도 직접 하시면서,

“산이 나 때문에 더럽혀졌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하였다.

其克己勵物。皆是類。

자기의 몸을 다스리고 일에 힘쓰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大師少讀儒家書。餘味在唇吻。

故酬對多韻語。

대사께서는 어려서 유가(儒家)의 경전을 읽었고,

그 공부한 것이 여전히 입에 남아 있었으므로

응대할 때에는 운어가 많았다.

門弟子名可名者。厪二千人。

索居而稱坐道場者。

曰僧亮。曰普愼。曰詢乂。曰心光。문하(門下)의 제자로서 이름을 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2천여 명이 되고,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사찰을 주재하는 이는

승량(僧亮), 보신(普愼), 순예(詢乂), 심광(心光) 등이다.

諸孫詵詵。[音侁。衆也。]厥衆濟實。[盛貌]

可謂馬祖毓龍子。東海掩西河焉。

[子貢弟子田子方。敎授於西河。學者數千人。]

그리고 문하의 손자에 해당하는 자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무리가 번성하니

실로 마조도일이 용의 새끼를 길렀고,

동해(東海 : 新羅)가 서하(西河 : 중국)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論曰。논(論)하여 말한다.

麟史不云乎。

公侯之子孫 必復 [入聲] 其始

『춘추(春秋)』에 말하지 않았던가.

훌륭한 집안[公侯]의 자손은 반드시 그 조상을 본받는다고.

則昔武烈大王 [太宗金春秋也] 爲乙粲時。

옛날 무열대왕께서 을찬(乙粲)이었을 때에

爲屠穢貊乞師。

計將 眞德女君。

命陛覲 昭陵皇帝。[唐太宗。]

예맥[실은 백제와 고구려]을 무찌를 군사를 빌기 위하여

진덕여왕(眞德女王)의 명을 받들고

소릉황제(昭陵皇帝)를 알현했을 때,

面陳願奉正朔。易服章。

직접 황제에게 중국의 역법(曆法)을 시행하고

의복제도를 중국식으로 바꾸기를 청하였었다.

天子嘉許庭。賜華裝[玩好寶物。]

授位特進[品秩。]

이에 황제가 허락하고

중국 의복을 하사하고,

특진(特進)의 관작(官爵)을 내려주셨다.

一日。召諸蕃王子宴。

大置酒。堆寶貨。

俾恣滿所欲。

하루는 (황제께서) 여러 나라의 왕자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는데,

술을 크게 베풀고 온갖 보화를 쌓아놓고

마음대로 가지라고 하셨다.

王乃杯觴則禮以防亂。

繒綵則智以獲多。

대왕께서는 술 드시는 것은 예의를 지켜 어지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화려한 비단은 지혜를 써서 많이 얻으셨다.

臮[洎同]辭出。

文皇[唐宗]目送而嘆曰。國器。

하직인사를 드릴 때, 황제께서는 멀리 갈 때까지 바라보며

“나라의 인재로다”라고 감탄하셨고,

及其行也。以御製幷書溫陽 晉祠二碑

曁御撰晉書一部 [太宗卽位之初。魏王泰請撰晉書。]

중국을 떠나올 때에

황제께서 직접 짓고 쓴 온탕(溫湯)과 진사(晉祠)의 두 비문(碑文)과

직접 편찬하신 『진서(晉書)』 한 질을 내려 주셨다.

賚 [音賴。賜也。]之時。蓬閣[校書官名]寫是書。裁竟二本上。

一賜儲君。一爲我賜。

당시 비서감(秘書監 : 蓬閣)에서 이 책을 베껴 두 질을 올렸는데

한 질은 황태자에게 주시고,

다른 한 질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다.

復命華資官 [疑是護賓官也]

祖道靑門外。[高辛氏之子累祖。遠遊死於道。後人發行祭之。則他鬼不侵云。]

또한 높고 귀한 관리들에게 장안성(長安城) 동문(東門) 밖에 나아가 전송하라고 명하셨으니,

則寵之優 禮之厚。

設矓盲乎智者。亦足駭耳目。

이러한 각별한 은총과 두터운 예우에는

지혜에는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보고 들어서

놀라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自玆吾土一變至於魯。

八世之後。大師西學而東。化加一變至於道。則莫之與京 [大也。]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미개에서 문명국으로 되었는데,

그로부터 8세손(世孫)인 대사께서는 중국에 유학하여 배운 것으로

우리나라를 교화시켜서 이상적인 나라로 변화시키셨으니

(그 공은) 비할 데 없이 크다.

捨我誰謂偉矣哉。

이런 분이 아니라면 누구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先祖 [武烈大王] 平二敵國。[高麗百濟。]

俾人變外飾。[易服章。]

선조(先祖)는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주셨고,

大師降六魔賊。俾人修內德。

(後孫인) 대사께서는 불법을 방해하는 악한 것을 물리쳐서

마음의 덕을 닦게 해주셨다.

故得千乘主。兩朝拜起。

四方民萬里奔趨。動必頤使之。[賈誼曰。頤指如意。言易使也。]

靜無腹非者。

그러므로 두 임금께서는 스승으로 모셨고,

사방의 백성은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모여들었는데,

(대사가) 원하는 대로 따르면서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庸詎非應半千 而顯大千者歟。

그러니 5백년 마다 현인(賢人)이 나타난다는 말대로

성인이 이 세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復其始之說。亦何慊乎哉。

‘(훌륭한 집의 자손은 반드시) 조상을 본받는다’는 말에

어찌 부족함이 있는가.

彼文成侯爲師漢祖。大誇封萬戶位列侯。

爲韓相子孫之極。則㑋矣。전에 장량(張良)은 한(漢) 고조(高祖)의 스승이 되었으면서,

만호(萬戶)에 봉(封)해지고 제후가 된 것을 크게 자랑하여

한(韓)나라 정승의 자손으로서 지극히 명예로운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비루한 일이다.

假學仙有終始。果能白日上升去。

비록 신선술(神仙術)을 공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태양 위로 날아 갈 수 있겠는가.

於中止。得爲鶴背上

一幻軀爾。[言子房托仙之非。]

중간에 그쳐서 학(鶴) 위에 한 몸을 얹고 다니는 데에

한낱 덧없는 몸일 뿐이다.

又焉珿[音畜。齊也。]我大師拔俗於始。

濟衆於中。潔己於終矣乎。

그러니 어찌 우리 대사가 세속을 벗어나고,

중간에는 여러 중생을 구제하고,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깨끗이 하는 것에 견줄 수 있겠는가.

美盛德之形容。古尙乎頌。頌偈類也。

뛰어난 덕의 모습을 칭송하는 데에는

옛날부터 송(頌)을 사용하였으니,

(불교의) 게송(偈頌)도 비슷한 것이다.

扣寂爲銘。[扣寂。遠公註。扣虛課寂。]

침묵을 깨고서 명(銘)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其詞曰。

可道爲常道。[道經註。無用之體。卽非常道。]

如穿艸上露。

도(道)라고 말할 수 있어도 상도가 되기는

풀 위의 이슬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고,

卽佛爲眞佛。[馬祖說法。卽心卽佛爲眞佛。]

如攬水中月。

불법에 나아가 참된 부처가 되는 것은

물 속의 달을 잡는 것과 같다.

道常得佛眞。海東金上人。

그런데 도를 늘 몸에 지니고 참된 부처가 된 사람은

해동(海東)의 김상인(金上人)이다.

本枝根聖骨。瑞蓮資報身。[脩臂授蓮。]

본래 성골(聖骨)의 자손이고,

상서로운 연꽃을 인연으로 하여 태어났네.

五百年擇地。十三歲離塵 [出家。]

오백년만에 땅을 골라 태어나서,

열세 살에 속세를 벗어났네.

雜花引鵬路。[授花嚴于浮石。]

窽木浮鯨津。[隻板至劒山島事。]

화엄이 불법에의 길을 열어주었고,

배를 타고 求法에 나섰네. (하나)

觀光堯日下 [中原。] 巨筏悉能捨。 [指徹公化去後浪遊。]

중원에서 두루 공부하고서,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음을 깨쳤네.

先達皆嘆云。苦行無及者。[如滿言 ]

선진(先進)들이 모두 감탄하네,

수행에 따를 자 없다고.

沙之復汰之。

東流是天假。[會昌年間。仍戒賢僧沙汰佛法之事。]

중국에서 불교가 도태되어

귀국한 것은 하늘이 기회를 주신 것이네.

心珠瑩麻谷。

目鏡燭桃野。[商受本記。東海桃索山。有大桃樹。根盤五千里。東西南北枝長各三千里。是以東土謂之桃也。]

깨우침의 구슬이 마곡(麻谷)에서 빛나고,

거울 같은 눈이 우리나라를 비추었네. (둘)

旣得鳳來儀。衆翼爭追隨。

이미 봉황의 훌륭한 모습,

뭇 새가 다투어 따르네.

試觀龍變化。凡情那測知。

한번 용의 변화하는 재주를 보라.

보통 생각으론 헤아리지 못하리.

仁方示方便。聖住強住持。

온나라에 능력을 보이고서

성주사(聖住寺)에 힘써 머무르셨네.

松門遍掛錫。巖徑難容錐。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님에

바위 사이 길 다니지 않음이 없었네. (셋)

我非待三顧。

我非迎七步。[北齊文宣王謁僧稠。稠趺坐不迎。其徒有勸迎者。稠曰。昔賓頭廬尊者迎阿育王。起行七步。致王失國七年。貧道雖寡德。冀王獲福。]임금의 총애를 바라지 않았고,

임금의 뜻에 영합하지도 않았네.

時行則且行。爲緣付囑故。

때가 이르면 나아갔으니

그것은 옛 인연과 불법을 전하라는 부처의 부촉을 위해.

二王拜下風。一國滋甘露。

두 왕이 존경하니

온 나라가 부처의 가르침에 젖었네.

鶴出洞天秋 [出山。] 雲歸海山暮[入山。]

학이 나오면 골짜기가 가을빛,

구름이 돌아가면 바다와 산이 저녁. (넷)

來貴乎業龍。[西遊記。涇河龍王。夢見唐太宗曰。陛下是眞龍。小臣是業龍。以罪業故。爲龍行雨。]

去高乎冥鴻。[冥。空也。色斯之鴻。]

세상에 나오면 섭룡(葉龍)보다 귀하였고,

세상을 벗어나면 기러기보다 더 높이 날았네.

渡水陿巢父。[堯讓天下。許由洗耳。巢父飮犢上流。比師入京則反陿也。]

入谷超朗公。[釋僧朗。常在京洛。乞飯饍。未嘗入山。今師則還山。故超也。]

물을 건너 나옴은 소부(蘇父)를 비루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산에서 수도할 땐 승량(僧朗)보다 열심이었네.

一從歸島外。[自中原返東國。]

三返遊壺中。[費長房爲汝南市椽。見賣藥翁。市罷。入壺中。長房隨入。則別有天地。]

한 번 귀국한 뒤로

세 번 궁중에 갔네.

群迷謾臧否。至極何異同。

어리석은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하지만,

지극한 이치엔 다름이 없네. (다섯)

是道澹無味。然須強飮食 [聲。]이 도(道)는 담백하여 맛이 없지만,

힘써서 마시고 먹어야 하네.

他酌不吾醉。他飧不吾飽。

남이 마신 술 내가 취하지 않고,

남이 먹은 밥 내가 부르지 않네.

誡衆點心何。糠名復粃利。

대중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지라 했나,

명예는 겨처럼 부귀는 쭉정이처럼.

勸俗飾身何。甲仁復胄義。

세속의 몸가짐은 무엇을 권했나,

인(仁)을 갑옷으로 의(義)를 투구로. (여섯)

汲引無棄遺。其實天人師。이끌어 지도함에 빠뜨림 없어,

실로 인류의 스승이시다.

昔在世間時。擧國成琉璃。

전에 살아계심엔

온나라가 유리(琉璃)같더니,

自寂滅歸後。

觸地生蒺莉。[西域記。莊法師到摩竭陀國菩薩金剛座上。荊棘匝地云。]

돌아가심에

온통 가시밭이네.

泥洹一何早。[通載。老子至流沙。嘆曰。吾生一何晩。泥洹一何早。不見釋迦文。中心空懊惱。又黃庭經註。丹中眞火。自尾閭上升。過夾脊,玉京,髓海。入浘洹宮中。則昇天。如佛之涅槃也。]

今古所共悲。

열반은 왜 이리 빠른지,

전과 지금 다같이 슬프네. (일곱)

甃石復刊石。藏形且顯跡。탑(塔)을 만들고 비(碑)를 새겨서

형체는 감추고 자취는 드러낸다.

鵠塔點靑山。龜碑撑翠壁。

사리탑은 푸른 산에 자리하고,

거북이 업은 비석은 푸른 절벽에 버티고 섰네.

是豈向來心。徒勞文字覛。[音麥。相視貌。]

이것이 어찌 여태까지의 마음이 되리오마는,

다만 문자로라도 살펴서 뒤에 오는 사람이 오늘을 알게 함이니,

欲使後知今。猶如今視昔。

지금에 옛일이

드러남과 같은 것. (여덟)

君恩千載深。師化萬人欽。

임금의 은혜, 천년을 흐르고,

대사의 교화는 만대(萬代)에 존경되리라.

誰持有柯斧。[元曉詩。誰許沒柯斧。以作撑天柱。誰倚無絃琴。 喩大師無生說法也。]

誰依無弦琴

누가 자루 없는 도끼로 인재를 키우고,

누가 줄 없는 거문고로 가르침을 이을까.

禪境雖沒守。客塵寧許侵。

선경(禪境)을 비록 지키지 못한다 해도

번뇌야 어찌 들어오리오.

鷄峯待彌勒。[付法持應與迦梨入鷄足山。三峯合爲一峰。乃至彌勒出世。]

長在東鷄林。[始林有鷄異。故改名鷄林。詳見東史。]

계족산(鷄足山) 아래서 미륵을 기다림이니,

어서 동쪽 계림(鷄林)에 나타나소서.

종제(從弟)인 조청대부(朝請大夫), 전(前) 수집사시랑(守執事侍郞)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인연(崔仁滾)이 왕명을 받들어 씀.

[출전:『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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