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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 탈놀이

한국의 탈, 탈놀이   [의식용 탈]   (1) 창귀씨탈   경기도 개성 덕물산의 최영장군사당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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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 탈놀이

 

[의식용 탈]

 

(1) 창귀씨탈

[해당 탈 그림은 위의 원문을 참고 바랍니다.]

경기도 개성 덕물산의 최영장군사당에 모셔져 있는 장군탈과 경북 영천군 신녕면의 무격사당에도

탈을 안치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원래 개성 덕물산의 최영장군사당은 역대로 우리나라 무당의 신앙의 중심지로, 그리고 무조신을

모신 성지로 유명하다.
이 사당에는 장군당.부인당.창부당이 있었다. 이 가운데 창부당에는 1930만
해도 여섯 개의 무신도 사이에 네 개의 나무탈이 걸려 있었다.
이탈들은 광대씨탈, 창귀씨탈, 소미씨탈, 놋도리탈이다.
경북 영천군 신녕면의 무격 사당에는 장군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사당에 신의 탈을 안치했던 예가 [동국세시기] 12월조에 소개되어있다.

"군의 사당에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관에서 제사를 드린다. 비단으로 신의 탈을 만들어

사당 안에 비치해 두면 12월 30일 이후에 그 신이 그 고을 사람에게 내린다.

그 신이 오른 사람은 그 탈을 쓰고 춤추고 그 관아의 안과 고을 동네를 돌아다니며 논다.

그러면 집집에서는 그 신을 맞이해다가 즐기낟. 그렇게 하다가 정월보름 전에 그 신을 사당 안으로 돌려보낸다.

이 풍속이 해마다 있으며 이는 나례신의 종류다."

 

 

 

(2) 처용탈(주요무형문화재 제39호)

 

머리에 꽂고 있는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복숭아 나무가지는 귀신을 쫓는 성격을 갖고 있다.

처용탈

은 원래 잡귀(역신)를 쫓는 부적의 기능을 하는 신앙탈이지만 처용문에 사용되면서 예능적인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처용무는 궁중나례와 연례(연례:ㅏ라에 경사가 생겼을 때에 베푸는 잔치)때 벌어졌다. 신라 49대 헌강왕 대 처용이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설화'에서 비롯되어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 나례의 중심 의식무(의식무)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고관이나 왕도 이 춤을 추었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에서도 연행되었다고 한다.
본래 1인 또는 2인이 추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5인처용무로 확대되었다.

 

<처용설화>
처용이 없는 사이에 처용의 아내를 흠모한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머물렀다.
처용이 집에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동경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 넷일러라,

둘은 내해인데,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처용가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 나왔다.

그때 역신이 본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의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맹세코 이제부터는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후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사을 문에 그려 붙여서 잡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3) 방상씨탈

방상씨

는 본래 주, 한, 등 중국 고대 나례(궁중과 민간에서 잡귀를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의 대표적인 신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5-6세기 시작하여 1930 사용했었다.
4개의 금빛 눈을 가지고 있는데 금빛은 귀신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색이다. 방상씨는 장례행렬의 맨 앞에서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광중(시신을 묻는 곳)에 도착하여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는다. 사용한 탈은 무덤 근처에 묻거나

태워 버려 장례식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무, 종이 짚 등으로 만들었는데, 나무로 된 방상씨는 조정이나 규모가 있는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것은 양반층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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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대탈]

 

(1) 고성오광대(주요무형문화재 제7호)

 

경남 고성 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음이다.

오광대라는 말은 놀이과장 중에 다섯 광대가 등장하는 것

을 말한다.

고성오광대에서, 제2과장 오광대는 양반이 청. 황. 백. 적.흑색의 오방신을 상징하는 복색을 갖추고 등장한다.
연희 시기는 주로 음력 정월 보름날에 놀아졌고, 정월 초순에 일심(一心契)계원들이 풍물패를 편성하여
고성 읍내의 각 가정과 상점을 돌며 걸립을 하여 놀이의 비용을 마련하였다.

탈놀이는 고성 장터의 넓은 마당에서 놀아졌다고 한다.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문둥광대춤

: 양반의 자손으로 조상들의 누적된 죄과(罪過)의 업으로 불치의 문둥병에 걸려 출세하지 못하는 문둥이가

골수에 맺힌 비분과 울분을 표현하고 있다.

 

제2과장 오광대

: 양반들과 말뚝이가 등장하여 춤과 재담으로 양반을 조롱, 모독 한다.

 

제3과장 비비(영노)마당

: 일명 '비비탈놀음'이라고 한다. 오광대과장에서 여러 양반이 놀고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다 잡아먹는 인신수두(人身獸頭 : 사람의 몸에 짐승의 머리)의'비비'라는 동물이 양반을 위협, 조롱한다.

 

제4과장 승무

: 입산 수도하던 중이 기생의 유혹에 빠져 파계하는 것을 풍자한 과장이다.

 

제5과장 제밀주

: 작은어미 놀음으로, 큰어미가 집을 나간 영감을 찾아나선다. 영감을 찾았을 때 작은어미는 해산기가 있어

아이를 낳는다. 큰어미가 아이를 안고 어루자 작은어미가 질투를 하여 아이를 뺏으려다가 떨어뜨려 아이가 죽는다.

이것을 본 작은어미가 큰어미를 떠밀어 큰어미가 죽어버린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옛날에는 나무탈을 사용

하였는데,

경술국치 당시 나라를 빼앗긴 상실감으로 강(일설에는 바다)에 띄워 버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사용되는 탈로는 1)문둥이, 2)말뚝이, 3)원양반(중앙 황제양반), 4)동방청제양반, 5)서방 백제양반, 6)남방 적제양반,

7)북방 흑제양반, 8)도령, 9)종가도령,10)비비, 11)비비양반 12)중, 13)각시, 14)큰어미, 15)시골영감, 16)작은어미,

17)황봉사, 18)마당쇠, 19)상주이다.

 

(2) 가산오광대(주요무형문화재 제73호)

https://www.jinjutv.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6

 

사천 가산오광대 천룡제 및 기획 공연 연다 - 진주뉴스

사천 가산오광대(보존회장 한우성)는 정월 대보름인 22일(월) 10시부터 천룡제당(축동면 가산리 소재)에서 천룡제 및 기획 공연을 개최한다. 천룡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인 가산오

www.jinjutv.com

작은양반탈  오무당탈  미얄할미탈  도문둥이탈  남방적제장군탈  서방백제장군탈

동방청제장군탈

말뚝이탈

북방흑제장군탈

영노탈

양반탈

중앙황제장군탈


경상남도 사천군 축동면 가산리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로 일명 '조창오광대'라고도 한다.

가산오광대

연희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300년 전으로 고성오광대보다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가산 옆을 흐르고 있는 남강 지류에 궤짝이 떠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이 열어 보니
오광대극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마침 목섬에 귀양온 한양 양반이 있었는데, 그가 극본을 읽고 가르쳐주어 그 후부터

오광대놀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탈놀이의 내용

 

 

제1오방신장무과장

: : 황제장군을 선두로 중앙과, 사방에 위치한다.

 

제2영노과장

: 영노가 등장하여 춤을 추고 있는 청.흑.백.적신장들을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황제 장군도 잡아먹는다.

이때 포수가 영노에게 총을 쏘아 죽인다.

 

제3문둥이과장

: 문둥이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한 과장이다. 문둥이들이 부잣집 잔치에 갔다가 투전 노름판을 벌린다.

이때 어딩이가 개평을 달라고 하는 데, 문둥이들이 주지 않자 순사에게 고발해 버린다.

 

제4양반과장

: 말뚝이가 말채를 들고 등장하여 큰양반.작은양반을 조롱한다.

 

제5중과장

: 소무는 서울애기를 양반 옆에 데려다놓고 퇴장한다. 그러자 상좌와 노장이 등장하여 서울애기를 업고 달아난다.

양반은 서울애기가 없는 것을 보고 말뚝이를 불러서 찾아오라고 한다. 말뚝이에게 붙잡힌 상좌와 노장은 용서를 빌며

신세타령을 한다.

 

제6할미.영감과장

: 영감이 서울애기(첩)를 데려와 할미한테 인사를 시킨다. 그후 영감이 재산을 분배하되 좋은 것은 모두 첩에게

주려 하자 할미는 반발한다. 영감이 홧김에 조상단지를 부수자 부정을 타서 까무라친다.

옹생원을 불러다가 독경을 하여도 효험이 없자 영감은 죽게 된다. 무당이 나와 오구굿을 한다.

사용되는 탈로는 는 1)중앙 황제장군, 2)동방 청제장군, 3)북방 흑제장군, 4)서방 백제장군, 5)남방 적제장군, 6)영노, 7)도문둥이,

8)문둥이(4개), 6)어딩이, 8)큰양반(영감탈 겸용), 9)작은양반(2개), 11)말뚝이, 12)소무, 13)서울애기, 14)노장, 15)상좌, 16)할미,

17)마당쇠, 18)옹생원(봉사와 겸용), 19)봉사, 20)큰무당, 21)무당(4개 : 큰무당과 탈.의상이 비슷하다) 이다.

그리고 포수, 모리꾼, 순검, 의원, 대잡이 등은 탈이 없이 등장한다.

탈놀이에 사용되는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등이고 굿거리장단에 맞춰 덧뵈기 춤을 춘다.

 

(3) 통영오광대(주요무형문화재 제6호)


창원(현 마산시)의 이군찬이라는 사람이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를 보고 와서 이화선 등과 더불어 마산 오광대에서

놀았다고 한다.

그 후 이화선이 통영(현 충무시)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장진국 등에게 놀이를 가르쳐주어 함께 통영 오광대에서 놀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1900년경 이화선이 초계 밤마리에서 대광대패의 놀이를 보고 왔다고 하기도 하고, 통영 사람들이 마산에 직접 가서

오광대놀이를 배워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충무시에 수군통제사영(水軍統制使營)이 설치된 뒤에 해마다 섣달 그믐날 통제사 동헌(東軒)에서 밤 늦게까지

풍물을 치고 탈놀이를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통영오광대

는 처음 '

의흥계'(義興契 : 80여 년 전)에 의하여 유지

되었고, 그 후에는 '난 사계'(蘭社契 : 60여 년 전)의 노인들이 놀았고,

50여 년 전 '춘흥계'(春興契)가 시작되어난사계의 오광대를 계승하여 오늘에 전하고 있다.

탈놀이의 비용은 정월 2일부터 14일 까지 의흥계의 계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립을 하여 14일 밤 파방굿과 오광대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의흥계의 정기총회는 음력 정월 14일 이외에 3월 보름과 4월 초의 봄놀이, 9월 보름 단풍놀이에서 탈놀이를 겸하였다고 한다.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문둥이탈

: 문둥이는 조상이 죄를 지어서 문둥이가 되었다고 신세타령 을 한다.

 

제2과장 풍자탈

: 말뚝이가 양반을 모욕하고 근본을 폭로한다.

 

제3과장 영노탈

: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위협하면, 양반은 영노에게 달려들어 싸우다가 쫓겨 퇴장한다.

 

제4과장 농창탈

: 할미와 제자각시의 갈등과 비극을 담고 있다.

 

제5과장 포수탈

: 사자가 담비를 잡아먹고, 포수는 사자를 쏘아 죽인다.

탈을 만드는 재료
바가지, 나무, 대나무 등을 사용하고 놀이 후에 불태워 버리지 않고 보관하였다가 다음 놀이에 사용하였다. 탈의 종류는

1)문둥이양반(문둥탈), 2)홍백양반(홍백탈), 3)비틀양반 (비뚜루미탈), 4)곰보양반(손님탈), 5)흑탈(검정양반 :먹탈),

5)조리중, 7)원양반, 8)둘째양반(차양반), 9)말뚝이, 10)팔선녀(8개), 11)영노, 12)영노양반, 13)할미양반(영감), 14)할미(할미광대),

15)제자각시(작은어미), 16)상좌(1, 2), 17))큰상제, 18)몽돌이(끝돌이), 19)포수, 20)담보, 21)사자이다.

그 밖에 소도구로 조반, 술병, 술잔, 그릇, 촛대, 상여, 명정 등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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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류계탈]

 

(1) 수영야류(주요무형문화재 제43호)


수영야류는 부산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이다. 수영이나 동래 지방에서는 탈놀음을 '야류', 또는 '야루'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것은 원래 '들놀음', '놀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야유(野遊)라고 적은 것이 음운변화로
야류, 야루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들놀음이란 들판에서 놀이한다는 뜻인데, 연희장소는 들판이나 시장의 넓은 빈터이다.

탈놀이의 내용

 

제1 전편

:'야류계'가 중심이 되어 경비의 마련과 탈 및 도구제작 그리고 놀이판을 설치한다.
수영야류는 시작은 음력 정월 초 3-4일경부터 13일까지 놀이를 한다.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한후 부정을 타지 않은 일정한 장소에서 탈과 도구를 만든다.

탈이 만들어지면 가면제(假面祭 : 탈제)를 지낸다. 14일 밤에 시박(원로들 앞에서 그동안 연습한 연기를 심사받고,

배역결정)을 한다. 대보름날 오전에는 수영 토지신과 영(營)을 수호하는 제당에 서낭제를 모신 다음 수영 사람들의 식수인

먼물샘에 고사를 지낸 후 최영장군묘제 (崔瑩將軍廟祭)를 지낸다.탈놀이의 시작은 길놀이로 시작된다. 선두에 소등대가

서고 풍악대, 길군악대, 팔선녀, 사자와 가마를 탄 수양반 등의 순서로 가장.가무.연등의 대행렬 을 한다.

 

2. 후편 : 탈놀이

 

제1과장 양반

: 무식한 하인 막둑이(말뚝이)가 신랄하게 풍자한다.

 

제2과장 영노

: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에 내려와서 양반 99명을 잡아먹은 영노가 한 사람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한다고

수양반을 위협한다. 영노가 제일 무서운 것이 '참양반의 호령'이라고 하자 수양반은 신이 나서 자랑하다가 잡아먹힌다.

 

제3과장 할미.영감

: 영감과 본처와 첩인 제대각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가난한 가정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제4과장 사자무

: 사자가 범과 싸우다가 범을 잡아먹는다. 탈놀이를 마치고 나면 가면 소각제(燒却祭 : 불로 태우는 것)를

올린다.

수영야류에 사용되는 탈은 1)수양반, 2)차양반(일명 毛雨班), 3)셋째양반, 4)넷째양반, 5)종가도령, 6)막둑이(말뚝이),

7)영노, 8)영감, 9)할미, 10)제대각시, 11)범, 12)사자이다. 이 밖에 의원, 봉사, 향도꾼은 탈없이 등장한다.

 

(2) 동래야류(주요무형문화재 제18호)

작은양반탈오무당탈미얄할미탈도문둥이탈남방적제장군탈서방백제장군탈

동방청제장군탈말뚝이탈북방흑제장군탈영노탈양반탈중앙황제장군탈

영노 원양반 수양반 모양반
말뚝이 할미 말뚝이 비비양반
   
영감 네째양반    


부산 동래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로서 현재는 "

동래야류

"로 불리어지고 있다.
"야류"라는 명칭은 넓은 들판 또는 마당 같은 넓은 곳에서 놀아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탈놀음의 발상지는 경상남도 초계(草溪) 밤마을(栗地理)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라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80년 전에는 낙동강 연안 물자의 집산지였다. 각 지방의 장사꾼들이 왕래하다 이곳의 탈놀음을 보고 배워 각 고장으로 전승시켰다.

이것이 수영을 거쳐 동래에 이르러 야류가 되었다.
탈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줄다리기를 한 후 놀아졌다. 1930년을 전후로 동래야류 탈놀음은 패문리 광장(중앙시장 터)에서

놀아졌는데, 이때 나무를 사용한 장방형의 가설무대를 설치하였다. 음력 정월 초사흘부터 "지신밟기"와 각 마을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탈놀이의 비용을 마련하였다.

탈놀이의 내용

 

 

제1 문둥이과장

: 문둥이의 원한과 슬픔을 춤으로 표현한다.

 

제2 양반과장

: 원양반, 차양반, 모양반, 넷째양반, 종가도령이 하인 말뚝이를 데리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우쭐거리면서 등장하여

덧뵈기춤을 한바탕 춘다.

 

제3 영노과장

: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영노가 나타나서 양반을 조롱하다가 잡아먹는다.

 

제4 할미, 영감과장

: 할미가 영감을 찾아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다가 첩을 얻어서 살고 있는 영감을 만난다.

할미는 영감과 제대각시가 다정한 것을 보고 홧병을 얻어 죽는다.

그 후 영감은 할미를 위한 굿을 하고, 상도꾼이 상여를 메고 나간다.

동래야류에 사용되는 탈은 1)원양반, 2)차양반, 3)모양반, 4)넷째양반, 4)종가도령, 5)말뚝이(양반집 하인),
6)문둥이(2개), 7)영노(일명 비비새), 8)비비양반(비비 양반탈은 넷째양반탈을 겸용하고, 그 위에 갓을 쓴다),

9)영감(할미의 남편 : 차양반 가면을 대용한다),10)할미(영감의 본처), 11)제대각시(영감의 첩), 12)봉사,

13)의원, 14)무당이 있고, 이 밖에 악사는 탈을 쓰지 않고 나온다. 탈을 만드는 재료는 바가지, 동물의 털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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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놀이탈]

 

(1) 양주별산대놀이(주요무형문화재 제2호)

 

먹중 말뚝이 왜장녀 눈끔적이 연잎 포도부장 옴중 완보
미얄할미 상좌
(도련님)
상좌
(서방님)
샌님 신할아비 원숭이 취발이
(쇠뚝이)
팔목중


경기도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탈놀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 즉 애오개(阿峴), 녹번(碌磻), 사직(社稷)골,

구파발, 퇴계원, 가은돌(玄石), 노돌(老乭), 송파(松坡), 의정부(議政府) 등지에서 연희되는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이다.
양주별산대는 양주골에서 200년-150년 전부터(순종, 현종 연간) 해마다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에 한양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방순회 또는 다른 핑계로 공연약속을 어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에 불편을 느낀 양주골의 신명이 있는 사람(주로 관아의 아전)들이 사직골 딱딱이패를 보고 탈과 의상을 제작하여 공연하였다.

그 뒤부터 이를 발전시켜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놀이이다.
연희시기는 5월 단오, 4월 초파일, 8월 추석의 명절과 기우제 때이다.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상좌춤

: 두 명의 상좌가 등장하여 타령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2과장 옴과 상좌놀이

: 옴중은 상좌를 조롱하다가 마침내 상좌를 쫓아낸다.

 

제3과장 옴중과 목중놀이

: 옴중과 목중이 서로 재담을 하다가 같이 춤을 춘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 연잎은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등장한다. 그러자 상좌1, 2, 먹중, 옴은 연잎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 그 후 연잎과 눈끔적이가 춤을 추다가 연잎은 퇴장하고, 눈끔적이가 혼자서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제5과장 팔목중놀이

: 제 1경은 염불놀이, 2경은 신주부 침놀이이다. 제 3경에서는 왜장녀가 목중들과 흥정하여 돈을 받고

애사당을 데리고 나오면 목중이 애사당을 업고 춤을 춘다.

 

제6과장노장놀이

: 노장이 파계하여 소무 1,2와 춤을 춘다.

 

제7과장 풍자탈

: 하인 말뚝이가 샌님을 조롱한다.

 

제8과장 풍자탈

: 미얄할미가 신할아비와 싸움을 하다가 할미가 죽게 되면, 무당이 진오귀굿을 한다.

탈의 종류
1)상좌 (2개 : 첫째상좌는 도련님역 겸용), 2)옴중, 3)먹중(4개), 4)연잎, 5)눈끔적이, 6)완보, 7) 신주부,
8)왜장녀(해산어멈, 도끼 누이 겸용), 9)노장, 10)소무(2개 : 애사당 또는 당녀 겸용), 11)말뚝이, 12)원숭이, 13)취발이(쇠뚝이 겸용),

14)샌님(언청샌님), 15)포도부장, 16)신할아비, 17)미얄할미이다.
총 인원수는 32명이고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22개 내외가 된다. 탈은 약 70년 전 조선 시대 말부터 사직골 당집에 보관하고

해마다 손질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집이 없어진 뒤에는 연희자의 집에 보관하였다.

 

(2) 송파산대놀이(주요무형문화재 제49호)

 

상좌(1) 상좌(2) 옴중 먹중 미얄할미
샌님 산할애비 무당 신할미 노장
 
소무 신장수 취발이 포도부장  


서울 특별시 송파구 송파동에 전승되어 오는 탈놀이로, 서울 한강가에 자리잡은 송파동에서 전승 되어 온 것이다.

송파포(松坡浦)는 오강(오강 : 한강, 서빙고, 용산, 마포)의 하나로서 배가 강원도까지 내왕하고, 내륙으로는 마행상인(馬行商人)들이

많아 전국을 돌았다. 또한 송파포는 조선 후기에 전국의 가장 큰 향시 열다섯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상업이 번성하였던 곳으로 다른 지방의 탈꾼을 불러서 놀았는데, 이것을 송파에 사는 놀이꾼들이 배워 놀면서

송파산대놀이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송파의 큰장이 설 무렵인 정월 초순에 놀았고,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팔월 한가위에 놀았다.
그 중에서 7월 백중에 가장 크게 놀았다고 한다. 놀이는 먼저 길굿 및 고사로 시작된다.

탈놀이의 내용

 

 

제1마당 상좌춤

: 첫 상좌가 등장하여 염불장단에 맞춰 사방 재배를 하고, 둘째상좌와 춤을 춘다.

 

제2마당 옴중.먹중

: 옴중이 둘째상좌를 내쫓고, 먹중이 등장하여 서로 얼굴이 못생겼다고 흠을 잡으며 논다.

 

제3마당 연닢.눈끔적이

:양반인 연잎과 눈끔적이가 얼굴에 흠이 있어 과거를 보지 못하고 팔먹중들과 어울려 노는 마당이다.

 

제4마당 애사당의 북놀이

: 먹중들이 북을 가지고 놀다가 왜장녀를 시켜서 애사당을 데려오게 한다.

 

제5마당 팔먹중의 곤장놀이

: 먹중들이 불공은 닦지 않고 술만 먹고 노는 것을 곤장으로 다스린다.

 

제6마당 신주부의 침놀이

: 환자를 놓고 신주부와 먹중들 사이에 재담이 오간다.

 

제7마당 노장

: 팔목중들이 노장을 조롱하고 퇴장하면, 노장은 소무와 춤추고 논다.

 

제8마당 신장수

: 신장수가 원숭이를 업고 등장하여 노장과 소무에게 신을 판다.

 

제9마당 취발이

: 술에 만취한 취발이가 노장을 내쫓고 소무를 데리고 논다.

 

제10마당 샌님.말뚝이

: 말뚝이가 양반을 돼지우리로 몰아넣는다.

 

제11마당 샌님.미얄.포도부장

: 샌님.미얄.포도부장의 삼각관계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제12마당 신할아비.신할미

: 노부부의 갈등으로 신할미가 죽자 자식인 도끼와 도끼누이가 애통해 하며 무당을
불러 넋을 위로하는 넋두리와 진오귀굿을 한다.

탈의 종류
1)상좌(1,2), 2)옴중, 3)먹중(1,2,3,4), 4)완보, 5)신주부, 6)눈끔적이, 7)연잎, 8)노장, 9)소무(1,2), 10)당녀, 11)신장수,

12)원숭이, 13)취발이, 15)취발이아들, 16)미얄할미, 17)서방님, 18)도령님, 19)말뚝이, 20)쇠뚝이, 21)포도대장,

22)해산어멈, 23)왜장녀, 24)신할아비, 25)신할멈, 26)무당이다.

그중에서 애사당과 도끼는 펄먹중이 겸용하고, 도끼누이는 왜장녀와 같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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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놀이탈]

 

(1) 북청사자놀이(주요무형문화재 제15호)

 

길잡이 곱추 사자탈 꺽쇠 양반


사자춤'은 우리나라 곳곳의 탈놀이에서 보이는데 그 가운데서 독립된 '사자놀음'으로는 단연 '북청사자놀음'을 꼽는다.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사자(獅子)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북청군에서도 북청읍 사자계(獅子契), 가회면 학계(學契), 구 양천면의 영락계(英樂契) 등의 사자놀음이 유명하다.

특히, 북청읍 사자는 댓벌〔竹坪里〕사자, 그것도 다시 이촌사자, 중촌사자, 넘은개사자, 동문밖사자, 후평사자, 북리사자,

당포사자 등으로 나뉜다.

동리마다 제각기 사자를 꾸며서 놀았고, 읍내에서 경연 후 우승팀을 선정하곤 했다.
그런데 1930년경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를 제외한 다른 사자놀이팀들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는 관원놀음과 함께 행해지므로 더욱 유명하다.

이 놀음은 삼국시대의 기악(伎樂), 무악(舞樂) 이래 민속놀이로 정착된 가면놀이로, 주로 대륙계, 북방계인 사자무가 민속화된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북청 일대에서는 음력 정월 14일에 여러 마을에서 장정들의 편싸움이 벌어졌으며, 달이 뜬 뒤부터 시작된 사자놀음은 15일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16일 이후는 유지의 집을 돌며 놀았다.

먼저 마당으로 들어가 난무를 하면 사자가 뜰로 뛰어들어 안방문을 열고 큰 입을 벌리고 무엇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다음에는

부엌에 들어가서 같은 행동을 한 뒤에 다시 내정 한복판에 나와서 활발하고 기교적인 춤을 춘 뒤에 가장 먼저 물러난다.

이때 주인의 청에 따라 부엌의 조왕신에게 절을 한다. 또 아이를 사자에게 태워주거나 사자 털을 몰래 베어두면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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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신제탈]

 

(1) 하회별신굿탈놀이(주요무형문화재 제69호)

 

부네탈 백정탈 양반탈 각시탈 중탈
이매탈 할미탈 선비탈 초랭이탈 주지탈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병산리 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 탈놀이를 놀았는데 하회리 별신굿은 1928년이래 중단되고

다만 하회탈과 병산탈 등이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남아오고 있다.

이 놀이가 이루어졌던 곳은 하회리 풍산 류씨 '동성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구전에 의하면 대체로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

그 후에는 안씨, 나중에 류씨가 조선 초기부터 집단적으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것 같으며, 또한 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전설로 미루어 이 하회탈이 고려 중엽의 것이라는 추정도 내릴 수 있겠다.

이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은 여신인 '무진생(戊辰生) 서낭님'으로 17세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15세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 신이라고도 전한다.

이 서낭신에게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과 4월 초파일에 올리는 평상제는 동제(洞祭) 또는 당제 (堂祭)라고 부르고, 이와는 달리

임시 대제로 지내는 별신굿은 대체로 10년에 한번씩 거행된 것이다.

이 별신굿은 그 기능으로 보아 이른바 마을굿으로서 서낭신에 대한 큰 제사이며 탈놀 이는 오신(娛神)행사로서 별신굿의 부분에

속한다.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

은 각시의 '무동(舞童)마당'이다.
각시탈을 쓴 각시 광대가 무동을 타고 꽹과리를 들고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이렇게 모은 돈이나 곡식은 모두 별신굿 행사에 쓰이며 남으면 다음 행사를 위해 모아둔다.

둘째마당

은 '주지놀이'인데 주지는 사자를 뜻하며,이 놀이는 탈판을 정화하는 액풀이 마당이다.
누런 상포같은 것을 머리로부터 뒤집어 쓰고 두 손으로 꿩털이 꽂힌 주지탈을 쓴 암수 한쌍의 주지가 나와 춤을 춘다.

셋째마당

은 '백정마당'이다.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망태를 메고나와 소를 잡고 우랑을 끊어들고 구경꾼들에게 사라고 한다.

넷째마당

은 '할미마당'으로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수건을 머리에 쓰고 허리를 드러낸 할미 광대가 나와
베를 짜며 한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실어 부른다.

다섯째 마당

은 '파계승마당'으로 부네가 나와 오금춤을 추다가 오줌을 눈다.
이때 중이 등장하여 이 광경을 엿보다가오줌 눈 자리의 흙을 긁어모아 냄새를 맡고 흥분하여 날렵하게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여섯째 마당

은 '양반 선비마당'으로 양반이 하인인 초랭이를 데리고 선비는 부네가 뒤따르며 등장한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문자를 써가며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다가 결국 양반이 선비에게 욕을 먹고 지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 화해를 하고 부네와 초랭이까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논다. 이때 별채 역인 이매가 나와'환재 바치시오'라고

외치면 모두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을 간다.

이 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현존하는 것으로 양반, 선비, 각시, 부네, 중, 백정, 할미, 이매, 초랭이 탈로 1964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주지탈 2개는 1980년에 추가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탈은 오리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채색기법은 칠기와 마찬가지로 옻과 안료를 두세 겹 칠하여 색의 강도를 높였다.
하회 별신굿탈놀이는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능보유자인 이상호(1945년생, 백정)가 전승활동을

이끌고 있다.

 

(2) 강릉관노가면극

 

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농경의식(農耕儀式)과 관련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918∼1392)에 고려 태조 왕건(918∼943)때 강릉 사람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의 남효온(1454∼1493)의 추강집(秋江集)에는 영동지역의 사람들은 음력 4월∼5월에 택일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사흘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고 했으며,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문집에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에는

계묘년(癸卯年·1603년) 5월에 잡희(雜戱)를 베풀어 신(神)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강릉의 향토지(鄕土誌)인 임영지(臨瀛誌)에

무당의 굿과 창우(倡優)들에 의하여 놀이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노가면극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근래에 김동하(金東夏), 차형원(車亨元)등의 고증으로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 차형원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릉여고, 강릉교육대학, 관동대학교에서 이어오다가 1985년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전승하게 되었고,

1993년 8월 2일 권영하(權寧夏)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7월 22일 김종군(金鍾群)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강릉단오제에는 제례에 조규돈(曺圭燉), 무격(巫覡)의 빈순애(賓順愛)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

(장자마리 개시)
탈놀이 시작과 함께 제일 먼저 포대자루와 같은 포가면을 전신에 쓴 2명의 장자마리가 연희개시를 한다.

 

둘째마당

(양반광대·소매각시 사랑)
양반광대와 소매각시는 장자마리가 마당을 정리한 후 양쪽에서 등장한다.

 

셋째마당

(시시딱딱이 훼방)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호방한 칼춤을 추며 뛰어 나온다.

 

넷째 마당

(소매각시 자살소동)
이를 본 양반광대는 크게 노하여 애태우나 어쩔 수 없이 분통해 하다가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 소매각시를 끌고 온다.

 

다섯째 마당

(양반광대·소매각시 화해)
수염을 목에 감고 자살을 기도하며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소매각시의 의도는 양반광대의 관용과 해학으로 이끌어져 서로

오해가 풀리고 결백함이 증명되므로 놀이는 화해와 공동체의 흥겨운 마당으로 끝을 맺는다.

 

 

(3) 영해별신굿(지방문화재 제3호)

 

의원 할미 서울아기 삭불이 양반


동해안 일대의 풍어제로서 일종의 마을굿이다. 별신굿 자체는 각지에 전승되어 왔으나 오늘날 풍어제의 성격을 갖는 별신굿은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이들은 매년, 혹은 3년, 4년, 5년, 7년, 10년마다 한 번씩 행해지고 있으며, 마을의 평안과

자손의 번영 그리고 풍어를 기원한다.

풍어제의 내용
내용은 부정을 없애는 부정굿으로 시작하여 일월맞이굿, 골매기 청좌굿, 당맞이굿, 마당밟기, 화해굿, 세존굿,
조상굿, 천왕굿, 놋동이굿, 손님굿, 계면굿, 용왕굿, 거리굿, 탈굿 등으로 구성된다.


탈굿의 내용
탈굿은 양반이 주색을 좋아하여 가산을 탕진한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 뒤 서울아기와 어울려 춤을 춘다.
할미는 영감을 찾으려고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풍물소리가 나는 곳에서 양반을 만난다.
양반은 서울아기를 소개하고, 할미와 서울아기와의 싸움을 말리다가 기절한다.
먼저 의원을 불러도 효험이 없고, 봉사를 불러 독경을 해도 효험이 없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니 양반이 살아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에서 탈굿을 하는 이유는 마을에 험한 사람(곰보, 째보)이 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을 위해 탈을 태워준다.
등장하는 인물은 양반, 할미, 싹불이, 서울아기, 의원이다.
탈의 재료는 종이이고, 옛날에는 한지를 여러 겹 발라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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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지방탈]

 

(1) 봉산탈춤(주요무형문화재 제17호)

 

맏양반 말뚝이 신장수 취발이 목중
   
노장 영감 원숭이    


황해도 해서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탈춤의 하나이다. 봉산탈춤은 봉산군.읍 경수대에서 놀아지다가 1915년경 군청 및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지고, 경의선이 개통된후에는 사리원 경암산 아래서 놀아졌었다.

또 황해도 지역의 5일장이 개설되던 장터에서는 상인들이 탈꾼들을 불러 1년에 한 번씩 놀았다고 한다.
해서탈춤의 분포 지역 중에서 특히 '팔역지 八域誌'의 남북직로로 중요한 읍및 장터인 황주;봉산;서흥;평산 등지에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황해도의 주요 읍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였으며, 소도시로서 탈춤 공연을 뒷바라지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갖춘 곳이었다. 연희 시기는 조선시대부터 5월 단오날 크게 놀았다고 한다.

탈놀이의 내용

 

제1 마당 사상좌춤

: 상좌 넷이 나와 춤을 추어 연희자와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빌며 사방신에게 절을 올린다.

 

제2 마당 팔목중춤

: 팔목중은 음주가무를 즐기며, 풍유 소리에 맞추어 한 사람씩 춤기량을 겨룬다.

 

제3 마당 사당춤

: 사당과 거사가 나와 서도소리를 부른다.

 

제4 마당 노장춤

: 소무가 불도를 닦고 있던 노장스님을 꾀어 파계시킨다.

 

제5 마당

: 부처님이 팔목중과 노장의 파계를 벌하려고 사자를 보낸다. 이에 목중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 사자는 이를 용서하고 춤을 춘다.


봉산탈은 입체적이며, 의상이 화려하고, 춤사위가 활기차고 씩씩하여 대륙적인 맛이있다.
춤사위는 팔목춤의 외사위, 곱(겹)사위, 양사위, 민사위, 취발이의 깨끼춤(깨끼리춤), 말뚝이의 두어춤(양반들을 돼지우리 속에

몰아 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미얄궁둥이춤, 까치걸음, 팔목중의 못동춤 등이 있다.

봉산탈은 주로 종이와 바가지를 사용하고, 헝겊, 털, 가죽, 흙, 대나무 등의 재료도 함께 사용된다.

탈의 종류
1)상좌 4개, 2)목중 8개, 3)거사 6개(목중탈을 겸용), 3)노장, 4)소무, 5)신장수, 6)원숭이, 7)취발이, 8)맏양반(샌님),

9)둘째양반(서방님), 10)셋째양반(종가집도련님), 11)말뚝이, 12)영감, 13)미얄, 14)덜머리집, 15)남강노인,

16)무당(소무탈 겸용), 17)사자 등 겸용하는 탈이 있어 보통 26개를 사용한다.

 

(2) 강령탈춤(주요무형문화재 제3호)

 

원숭이 용산삼개집 남강노인 말뚝이 마부
노승 미얄영감 미얄할미 소무 맡양반
 
도령 둘째양반 목중 사자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강령리에 전승되어 오는 탈춤이다.
강령탈춤

봉산에 비하여 부드럽고, 섬세한 면이 있다.

탈놀이에서는 2명의 말뚝이가 나와 서로 춤을 춘다.
경술국치와 함께 해주 감영이 폐쇄되자 그곳에 있던 강령 출신의 관기 김금옥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무에 능하였으므로 탈춤을 중흥시키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강령탈춤은 조선후기 이전에는 매년 단오에 주민들(특히 상업자)의 자발적인 지원과 호응을 받았으며,
5-6일에는 저녁부터 새벽 무렵까지 탈춤을 놀았다.

탈놀이의 내용
놀이는 먼저 길놀이와 서막고사로 시작된다.

제1과장 사자춤

: 사자와 마부 2명이 등장하여 타령.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활달한 춤을 춘다.
원숭이는 마당을 정리하며 익살스러운 행동을 한다.

제2과장 상좌춤

: 흰고깔, 흰장삼, 홍가사를 두른 2명의 상좌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제3과장 말뚝이춤

: 말뚝이가 서로 다른 양쪽에서 등장하여 상대방의 흉칙한 얼굴에 놀라 달아난다.
두세 번 이런 행동을 반복한 다음 상대방을 확인한 후 같이 춤을 춘다.

제4과장 양반춤

: 양반이 스스로 무식과 무능을 폭로하는 과장으로, 이때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한다.

제5과장 목중춤

: 첫째 목중은 수도공덕하겠노라 하면서 잠시 염불을 하다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6과장 노승춤

: 중목춤(제1경), 노승춤(제2경), 취발이춤(제3경)으로 진행된다.

제7과장 영감과 할미

: 영감과 할미, 용산삼개 덜머리집의 삼각 갈등을 담고 있다.

탈의 종류
1)사자(2개), 2)원숭이, 3)마부(2개), 4)말뚝이(2개), 5)목중(2개), 6)상좌(2개), 7)맏양반, 8)둘째양반,
9)재물대감, 10)도령, 11)노승, 12)취발이, 13)취발이새끼, 14)소무, 15)미얄영감, 16)미얄할미, 17)용산삼개집,

18)남강노인, 19)무당이다.

(3) 은율탈춤(주요무형문화재 제3호)

 

노승 미얄영감 할미 최괄이 둘째양반
말뚝이 목중 병신양반 상좌 새색시
       
첫째양반        


황해도의 탈춤은 북으로 대동강을 넘지 못한 반면, 남으로는 중부 산대놀이 지역과 남북직로로 하여 연결되어 있다.

그 중 은율은 황해도의 서쪽에 위치한 평야지대의 중심지이다.
황해도의 은율탈

귀면(鬼面 : 귀신얼굴)과 사실면(寫實面 :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양)의 혼합형이 많고,
특히 얼굴의 혹은 오방색을 사용하고 있다.


연희의 시기는 주로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추석, 섣달 그믐, 설날 등이고, 보통 저녁때 시작하여 자정까지 놀았다.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사자춤

: 길놀이가 시작되면 악사의 뒤를 따라 마부와 백사자가 탈판 주위를돈다.
그 후 사자와 마부가 춤을 추며 놀이판을 정화한다.

 

제2과장 상좌춤

: 상좌가 염불곡을 맞추어서 춤을 춘다.

 

제3과장 팔목중춤

: 팔목중이 세속의 유혹에 이끌려 내려와 군무를 한다.

 

제4과장 양반춤

: 말뚝이가 양반을 모욕하는 장면에 이어서 새맥시와 원숭이는 음란한 춤을 추고, 새맥시는 아이를 낳는다.

이때 최괄이가 등장하여 자기 아이라고 어르면서 꼬둑이 타령을 부른다.

 

제5과장 노승춤

: 파계승에 대한 내용으로, 노승과 새맥시가 어울리는 것을 보고, 최괄이 가 등장하여 새맥시를 차지한다.

 

제6과장 미얄할미,영감춤

: 영감과 할미, 뚱딴지집의 삼각관계를 풍자한 과장이다.

탈의 종류
1)상좌, 2)목중(팔목중), 3)말뚝이(마부겸용), 4)맏양반, 5)둘째양반, 6)셋째양반(병신양반), 7)새맥시(뚱딴지집 겸용),

8)원숭이, 9)노승, 10)최괄이,11)영감, 12)할미, 13)무당, 14)사자, 15)최괄이 아들(꼬뚝이)이다.
은율탈은 귀면(鬼面 : 귀신얼굴)과 사실면(寫實面 :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양)의 혼합형이 많고,
특히 얼굴의 혹은 오방색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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