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나의 중형은 언젠가,“내가 평생에 번천(樊川 당(唐) 나라 두목(杜牧)의 호)을 익히 읽은 탓으로 문장이 높지 못하다.” 고 한탄하였고,
이익지(李益之:이달) 또한,“소동파ㆍ황산곡의 시가 내 폐부에 달라붙은 지가 이미 오래인지라, 시어를 만듦에 성당(盛唐)의 품격이 없다.”하였다.
그러나 시 짓기를, 소동파ㆍ황산곡처럼 하면 그만이지, 하필 새삼스레 도연명(陶淵明)ㆍ사영운(謝靈運) 사이를 꾀할 것인가.
37. 나의 중형의 만년의 글은 유자후(柳子厚) [
9]와 너무도 같아서, 주한정기(晝寒亭記)ㆍ축려문(逐癘文) 등 작품은 가히 대씨당(戴氏堂)ㆍ축필방(逐畢方)등 문과 서로 어슷비슷하다.
최입지(崔岦之)가 화기(畫記)에 대해서 말하기를 철로보지(鐵鑪步志)만 못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비명(碑銘)과 묘지(墓誌)는 무엇보다도 그의 장기인데도 세상 사람은 다 모르고, 보아도 아는 이가 드무니, 후세에 반드시 양웅(揚雄)이 있어 알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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