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잘 알려진 일본 작가 쿠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과 고 장영희 교수의 칼럼을 발췌해 싣는다. 사실 여부 논란도 있었지만 작품의 반전으로 보면 픽션이 명료하다. 장 교수는 사실 차원에서 칼럼을 썼다.

[고 장영희 교수 칼럼]

분명 경성고등학교 앞 골목 안에 있었는데 골목 상인들의 업종이 많이 바뀌
기는 했지만, 명훈이네는 가게 자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작은 구멍가게 한쪽을 빌려 떡볶이와 오뎅을 팔던 명훈이 엄마는 그나나 경쟁
이 심해지고 장사가 잘 안돼 어디론가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가끔 퇴근길에
들르면 오뎅 국물에 우동을 말아 주던 명훈이 엄마. 몇 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
로 죽고 열 살짜리 명훈이와 여섯 살짜리 명식이를 혼자 키우며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늘 비좁
은 엄마 가게 한 귀퉁이 쪽마루에서 앉은뱅이 상을 놓고 숙제를 하던 명훈이
모습도 떠오른다.

우동 한 그릇

섣달 그믐말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 전문점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아주
남루한 차림새의 세 모자母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안주인이 인사를 하자 여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그녀의 등 뒤로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 소년과 동생인 듯한 소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안주인이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우동 1인분이요!”하고 소리치자 부
엌에서 세 모자를 본 주인은 재빨리 끓는 물에 우동 1.5인분을 넣었다.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 먹은 세 모자는 150엔을 지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
고 나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인 부부가 뒤에 대고 소리쳤다.

다시 한 해가 흘러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문을 닫을 때쯤 한 여자가 두 소년
과 함께 들어왔다. ‘북해정’의 안주인은 곧 그녀의 체크무늬 재킷을 알아보
았다.

“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안주인은 다시 2번 테이블로 그들을 안내하고
곧 부엌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말했다.

“3인분을 넣읍시다.”
“아니야. 그럼 알아차리고 민망해 할 거야.”

남편이 다시 우동 1.5인분을 끓는 물에 넣으며 말했다.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형처럼 보이는 소년이 말했다.

“엄마,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을 수 있어 참 좋지요?” “그래, 내년에
도 올 수 있다면 좋겠는데...” 소년들의 엄마가 답했다.

다시 한 해가 흘렀고, 밤 10시경, 주인 부부는 메뉴판을 고쳐놓기에 바빴다.
올해 그들은 우동 한 그릇 값을 200엔으로 올렸으나 다시 150엔으로 바꾸어 놓
는 것이었다. 주인장은 아홉 시 반부터 ‘예약석’이라는 종이 푯말을 2번 테
이블에 올려놓았고, 안주인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10시 30분경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세 모자가 들어왔다. 두 아이는 몰라보게
커서 큰 소년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
퍼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같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우동을 2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자 이리 오세요.”

부인은 ‘예약석’이라는 종이 푯말을 치우고 2번 탁자로 안내했다.

“우동 2인분이요!” 부인이 부엌 쪽에 대고 외치자 주인은 재빨리 3인분을 집
어넣었다. 그리고 부부는 부엌에서 올해의 마지막 손님인 이 세 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아, 그리고 준아.”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에게 고맙구나. 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졌던 빚을 이제 다
갚았단다. 현이 네가 신문 배달을 해서 도와주었고, 준이가 살림을 도맡아 해
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지.”

“엄마 너무 다행이에요. 그리고 저도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요. 지난 주 준이
가 쓴 글이 상을 받았어요. 제목은 ‘우동 한 그릇’이에요. 준이는 우리 가족
에 대해 썼어요. 12월 31일에 우리 식구가 모두 함께 먹는 우동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고, 그리고 주인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새해 복 많이 받으
세요.’하는 소리는 꼭 ‘힘내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들렸다구요.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손님에게 힘을 주는 음식점 주인이 되고 싶다구요.”

부엌에서 주인 부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음 해에도 북해정 2번 탁자 위에는 ‘예약석’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세 모자는 오지 않았고,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
다. 그동안 북해정은 나날이 번창해서 내부 수리를 하면서 테이블도 모두 바꾸
었으나 주인은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두었다. 새 테이블들 사이에 있는 낡은
테이블은 곧 고객들의 눈길을 끌었고, 주인은 그 탁자의 역사를 설명하며 언젠
가 그 세 모자가 다시 오면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곧 2번 탁자는 ‘행운의 탁자’로 불리웠고, 젊은 연인들은 일부러 멀리
서 찾아와서 그 탁자에서 식사했다.

십수 년이 흐르고 다시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그날 인근 주변 상가의 상인들
이 북해정에서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2번 탁자는 그대로 빈 채였다. 10시 30
분 경,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주인장이 “죄송합니다만...”이라고 말하려는데 젊은이들 뒤에서 나이든 아주
머니가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우동 3인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순간 숨을 멈추었다. 오래 전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의 얼굴이 그들
위로 겹쳤다.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14년 전 저희는 우동 1인분을 시켜 먹기 위해 여기 왔었지요. 1년의 마지막
날 먹는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이후 외갓짓 동네로 이사를 가서 한동안 못 왔습니다. 지난해 저는 의사 시험
에 합격했고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지요. 올해 저희 세 식구는 저희 일생
에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 말
입니다.”

주인장과 안주인이 눈물을 닦자, 주변의 사람들이 말했다.

“뭘 하고 있나? 저 테이블은 이 분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는 거잖아.”

안주인이 “이리 오세요. 우동 3인분이요!”

하고 소리치자 주인장은, '

“우동 3인분이요!”

하고 답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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