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chosoonja.org/jsj/jsj_2.htm
가곡(歌曲)이란 시조시(時調詩)를 관현의 기악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곡을 말하는데, 일명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한다. 이 가곡이란 말 자체가 성악곡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의 가곡은 우리나라 성악곡 중에서도 특정한 장르를 지칭하는 곡이다. 여기서 가곡이란 장르를 현재의 한국가곡인 선구자나 일송정을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시조시(時調詩)란 문학에서 「시조(時調)」라고 말하는 것으로 음악에서의 「시조」와는 다른 용어이다. 이 가곡은 우리나라 성악곡 중 가장 빼어난 노래로 예술성뿐만 아니라 음악적 구성 또한 거의 완벽하다 할 정도로 짜여져 있는 ‘노래’였다. 여기서 ‘노래’란 명칭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노래’란 말은 지금의 보편화된 성악곡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성악곡이란 말 자체가 음악 중에서도 입으로 소리 내어 만든 음악임을 뜻하지만 이 성악곡 들 중에도 ‘소리’라고 부르는 성악곡과 ‘노래’라고 부르는 성악곡으로 분류가 되었던 것이다.
소리의 예로 ‘판소리’, ‘서도소리’, ‘경기소리’, ‘남도소리’, ‘일소리’, ‘고사소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소리’들은 다른 무엇의 도움 없이 가창자만으로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나 ‘노래’라 불리우는 가곡(歌曲)은 관현반주와 일정한 악곡형식이 함께 짜여져 다듬어진 음악인 것이다. 가곡(歌曲)은 그냥 부를 수 없고, 선율을 다듬고, 반주를 다듬고, 그 전체적인 음악을 다듬고 다듬어 하나의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피어난 음악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5음 이외의 소리는 잡소리이므로 사용을 금하고, 난초·매화의 암향 같은 그윽하고 청초한 흥취를 간직하여야 하며, 장미나 모란같이 화려한 멋을 부리지 말아야 하고, 격렬한 음의 떨림이나 폭넓은 음의 꺾임을 금하는 등의 법도를 지켜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을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엄격함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차차 무너져 상당한 속화가 이루어지게 되나 아직도 기본적인 본래의 고상함을 간직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으며, 훈련되지 않고는 부르기 힘들었던 전문가의 음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노래는 주로 사대부와 선비 등의 계층에서 풍류와 인격 수양을 위해 불리어졌던 노래로 바로 풍류방의 음악 중 하나였다. 조선조 광해군 2년(1610) 악사 양덕수가 편찬한 『양금신보(洋琴新譜)』에 의하면 가곡(歌曲)은 고려 가요인 진작(眞勺·鄭瓜亭曲)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조 초기에는 현재의 삭대엽(數大葉)외에 중대엽(中大葉)과 만대엽(慢大葉)이 더 있었는데, 이들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의 만·중·삭은 곡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만(慢)은 제일 느린 것, 중(中)은 중간 빠르기, 삭(數)은 가장 빠른 곡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들 중 만대엽과 중대엽은 사라지고 삭대엽만 남게 되는데 17 세기 후반부터 중대엽과 같이 1, 2, 3, 4의 파생곡을 만들어 냈고 18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중대엽을 제치고 크게 성행하였으며, 19 세기에는 전에 없던 농·락·편의 새로운 파생곡의 형태까지 만들어 내어 오늘날의 가곡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가곡(歌曲)은 우리나라의 다른 성악곡과는 달리 남·여의 노래로 구분되어 있다. 이는 가곡이 양성(兩性)에 대한 특색을 요구하는 음악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남창 26 개의 곡과 여창 15 개의 곡이 있다. 노래하는 창자에 따라서 남창과 여창으로, 선율을 구성하는 선법에 따라서 평조(平調)와 계면조(界面調), 평조-전-계면조로 분류되는데 이 여러 곡들은 각기 선율 변화형이 있고 각 변화형에 별도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각 곡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창가곡 평조(平調)에 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貳數大葉)·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삼삭대엽(三數大葉)·소용(搔聳)·우롱(羽弄)·우락(羽樂)·언락(言樂)·우편(羽編)의 11곡이 있으며 계면조(界面調)에 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貳數大葉)·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삼삭대엽(三數大葉)·소용(搔聳)·언롱(言弄)·평롱(平弄)·계락(界樂)·편삭대엽(編數大葉)·언편(言編)·태평가(太平歌)로 13곡이 있고 평조-전-계면조(平調-轉-界面調)에 반엽(半葉)·편락(編樂) 2곡으로 총 26곡이다.
여창가곡은 평조(平調)에 이삭대엽(貳數大葉)·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우락(羽樂) 5곡이 있고, 계면조(界面調)에 이삭대엽(貳數大葉)·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평롱(平弄)·계락(界樂)·편삭대엽(編數大葉)·태평가(太平歌)로 8곡과 평조-전-계면조(平調-轉-界面調)에 반엽(半葉)·환계락(還界樂) 2곡으로 총 15곡이다.
평조-전-계면조(平調-轉-界面調)란 명칭은 반우반계(半羽半界)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되는데 새로운 조의 명칭이 아니라 곡의 반은 평조로 되어 있고, 반은 계면조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평조(平調)를 우조(羽調)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 이곳에서 우조 대신에 평조라고 쓰는 것은 양금신보에 있었던 우조평조와 우조계면조, 평조평조와 평조계면조 중 낮은조인 평조평조와 평조계면조는 사라지고 우조평조와 우조계면조만 남게 되었기에 앞의 조명인 우조(높은조)라는 이름을 생략하고 뒤의 선법명인 평조와 계면조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집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도 평조 대신 우조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지금 현 시점에선 우조와 평조의 용어를 같은 용어의 의미로 통용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두고자 한다. 조성에 대한 명확한 의미가 밝혀져야 함도 앞으로의 큰 과제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가곡(歌曲)은 각 곡을 따로 연주하기도 하고 몇 곡을 골라서 연주하기도 하지만 평조 초삭대엽부터 계면조 태평가까지 계속 접속하여 연주하는 것이 원래의 연주 방법이었다. 이 때, 평조의 곡을 노래하다가 선율의 성격이 다른 계면조의 곡을 노래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연결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사이에 평조-전-계면조(平調-轉-界面調)로 된 곡을 노래하게 된 것이다.
초삭대엽, 이삭대엽, 삼삭대엽, 편삭대엽의 삭(數)은 본래 '빠르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삭'으로 읽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따라서 초수대엽이 아니라 초삭대엽으로 읽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전문가들 사이에선 초수대엽과 초삭대엽을 통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가곡(歌曲)은 대부분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 그 명칭이 결정되었는데, 예를 들면 초삭대엽은 첫 번에 시작하는 곡, 이삭대엽은 두 번째로 연주하는 곡, 중거는 가운데 부분을 높이 질러서 노래하는 곡, 두거는 처음부터 지르고, 평거는 처음부터 평평히 나오는 선율의 특징을 명칭에 반영하였으며, 우락은 우조의 락, 계락은 계면조의 락으로 이 또한 선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가곡(歌曲)의 마지막 곡인 태평가는 불려지는 가사가 '이려도 태평성대 저려도 태평성대'로 시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태평가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선율의 특징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다르다.
또한 태평가만이 유일하게 남녀가 같이 부르는 2중창의 곡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기도 하다. 선조 5년(1572) 『금합자보』를 엮어 낸 안상을 비롯하여, 광해군 2년(1610) 『양금신보』의 편자인 양덕수, 광해군 12년(1620) 『현금동문유기』의 편자인 이득윤, 숙종 6년(1680) 『현금신증가령』의 편자인 신성 등은 모두 거문고의 명인이었고,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 등의 음악에도 능통한 악사였다. 이들은 모두 가곡 반주에 출중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상종하던 가객(歌客)은 따로 있었다.
『해동가요』의 고금창가제씨조(古今唱歌諸氏條)에 의하면, 허정, 장현, 탁주환, 박상건, 박대길, 고선흥, 김유기, 박후웅, 김천택, 김수장, 이세춘 등 56명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숙종 이후 영조 사이의 뛰어난 명 가객들이었다.
그 뒤에도 많은 명인들이 배출되었으며, 조선후기의 가단(歌壇)은 장우벽을 정점으로 오동래를 거쳐 박효관, 최수보, 정중보, 안민영으로 장식되었고, 하중곤, 홍진원을 거쳐 명완벽, 하순일, 하규일 등의 대가들의 지침을 받아 이병성, 이주환 등으로 계통이 이어지고 있다. 50년대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가곡은 지정되어 이주환 선생님을 제1대로 하여 지금은 남창에 김경배, 여창엔 조순자와 김영기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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