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은자주]풀은 민초(民草),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은 풀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권력의 상징이다. 창작 당시에는 군사독재권력이라 보면 된다. 풀은 쓰러지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인권, 민주에 대한 풀의 꿈은 역사를 바꾼다. 그것이 핏자국으로 얼룩진 세계사이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미당은 <자화상>에서 청춘의 피튀기는 고뇌, 시쓰기의 고뇌를 이렇게 노래했거니.

 

[수국 - 들꽃수목원] +두운, 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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