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상주 함창 교촌2리 내가 살던 동네. 사진 왼켠의 가장 키큰 전봇대 뒤
지붕에 흰 띠 두른, 마을의 맨앞집이 형님이 고쳐 지은 나의 집임다. 집옆엔 텃밭이
있었는데 고추와 무, 배추를 재배했지요. 삽으로 밭을 뒤집고 내가 똥퍼 날라 밭을
걸구었음다. 냄새가 등천하는 날이면 밭 곁에 있는 우물에 물길러오는 아지매들은
코를 가리고 인상을 썼습다. 이젠 형님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사시지요.
오른쪽 동산 너머가 기찻길을 넘고 함창 시장터 뒤 오수물[오사리]을 지나 영강의 하류 영순 율곡 건너편 태봉숲까지 뻗어 있는 들판입니다.
거기에도 주막과 나룻배가 있었지요. 문경군 영순면 금포 외가갈 땐 거기서 나룻배를
탔지요. 그땐 빠짐없이 강건너 동무지 이종사촌 홍우준님을 만나곤 했습니다.
이모님은 외할머니를 닮아 언제나 환한, 무척 밝은 얼굴이셨습니다.
마을 앞 시냇가 방뚝에서 찍은 사진임다.
--이유식 사장님이 전봇대가 많아 어느 전봇댄지 모르겠다고 투정하여 설명을 수정했슴다.---위 원경 사진의 앞산 너머에서부터 하천을 따라 철길 건너 태봉숲까지 뻗친 들판입니다.
[주]우리 강호가도의 표본이 되는, 전원문학의 백미 <귀거래사>입니다. 한자에 서툰 학생들을 위해 외기 쉽게 한자 독음을 달았습니다. 한자의 훈을 알고 싶은 분은 커셔를 한자에 두고 자판의“Shift+F9” 키를 치면 됩니다.
귀거래사, -江湖歌道의 문학陶淵明(365~427):이름은 潛(잠)이고 연명은 字(자)이나 흔히 도연명으로 부른다. 號(호) 오류선생은 작품 <五柳先生傳>에서 유래하고 元亮(원량)이라는 자도 사용했다. 尋陽 柴桑(심양 자상;현재의 강서성 구강시 부근 일대) 사람으로 東晉(동진) 후기에서부터 劉宋(류송) 초기까지의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몰락한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五斗米(오두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은둔생활의 高士(고사)로 그의 인생관은 후세 강호가도(江湖歌道)를 구가하는 수많은 추종자들의 전범이 되었다.29세에 출사하여 군사막료, 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41세에 팽택령을 끝으로 전원으로 돌아갔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허위로 가득찬 관리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중년이 되어서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 생활을 선택하였다. 도연명의 작품은 언어가 소박하고 자연스러워 육조시대의 문풍인 화려하고 공허한 유미주의적 형식주의 경향과 현저히 구분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도연명(陶淵明)
序曰 余家貧 又心憚遠 役彭澤縣 去家百里 故便求之.
서왈 여가진 우심탄달 역팽택현 거가백리 고변구지
及少日 眷然 有歸與之情 自免去職 因事順心 命篇曰 歸去來.
급소일 권연 유귀여지정 자면거직 인사순심 명편왈 구거래
序曰
나는 집안이 가난한데다 또한 내심 멀리 떠나기를 싫어했다.팽텩현에 벼슬함은 집에서 백리쯤 떨어졌으므로 문득 그 일을 요구하게 되었다.
며칠 지나자 전원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스스로 벼슬을 그만 둔 것은 해야 할 전원의 일을 인연하고 내 마음에 순응함이라.작품을 명하여<歸去來兮>라 하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돌아감이여,전원이 무성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
이미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하지 않겠는가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
지난 날을 고칠 수 없음을 깨달으니, 앞으로는 잘 할 수 있음을 알겠노라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
실로 길을 잘못 들었지만 그리 멀어진 것은 아니니, 지금이 옳고 어제가 잘못이었음을 깨닫겠노라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주요요이경양 풍표표이취의
배는 살랑살랑 가벼이 날아가는 듯하고, 바람은 산들산들 옷자락을 날리는데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문정부이전로 한신광지희미
나그네에게 앞길을 물으니, 새벽 빛의 희미함이 한스럽구나
乃瞻衡宇 載欣載奔
내첨형우 재흔재분
이윽고 집을 바라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달려가니
僮僕歡迎 稚子候門
동복환영 치자후문
하인들은 반가이 맞고, 아이는 문에 나와 기다리네
三徑就荒 松菊猶存
삼경취황 송국유존
세갈래 오솔길에는 잡초가 우거져도,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그대로이네
携幼入室 有酒盈樽
휴유입실 유주영준
어린 아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은 동이에 가득 차 있네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인호상이자작 면정가이이안
술동이와 잔을 끌어 당겨 스스로 한잔 마시고, 정원의 나무 가지를 힐끗 바라보니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네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의남창이기오 심용슬지이안
남쪽 창에 기대어 이런 저런 생각이 자유로우니, 겨우 무릎을 붙일만한 작은 방이지만 편안하기 그지 없네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원일섭이성취 문수설이상관 정원은 날마다 거닐어도 정취가 배어나고, 문은 비록 달았으나 항상 닫혀 있네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책부노이류게 시교수이유관
늙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고 하고 쉬기도 하다가, 때때로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에서 피어나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올 줄 아는구나
影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영예예이장입 무고송이반환
햇빛이 어슴프레 기울어 가니,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머뭇머뭇 주위를 맴돌아본다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귀거래혜 청식교이절유
돌아옴이여,사귀는 것을 그만하고 어울리는 것을 끊으리라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세여아이상유 복가언혜언구
세상은 나와 서로 어긋나니, 다시 벼슬살이를 하여 수레를 탄들 무엇을 구하리오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열친척지정화 낙금서이소우
친척의 정다운 얘기를 즐거이 듣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 근심을 잊도다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농인고여이춘급 장유사우서주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이제 서쪽 밭에 나가 일을 하도다
或命巾車 或棹孤舟
혹명건차 혹도고주
혹은 휘장 친 수레를 타고 혹은 외딴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기요조이심학 역기구이경구
구불구불 깊은 골짜기를 찾아가고, 험한 산길로 언덕도 올라가 보니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목흔흔이향영 천연연이시류
나무들은 싱싱하게 꽃망울을 부풀리고, 샘물은 졸졸 흘러 흐름을 시작한다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선만물지득시 감오생지행휴
만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고, 나의 삶이 저무는 것이 감회롭도다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이의호 우형우내복기시
이제 끝났구나, 이 세상에 몸뚱이를 붙여두는 것이 언제까지런가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갈불위심임거류 호위호황황욕하지
어찌 떠나고 머무는 것을 마음에 맡기지 않고, 어찌하여 황급히 어디로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부귀비오원 제향불가기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신선이 사는 곳은 바랄 수 없도다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회양진이고왕 혹식장이운자
좋은 시절을 마음에 품고 나홀로 가서, 혹은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다가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등동고이서소 임청류이부시
동쪽 언덕에 올라 나즈막히 노래를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를 지으니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요승화이귀진 낙부천명부해의
애오라지 자연의 조화를 따르다가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천명을 즐기는데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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