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제문 [弔義帝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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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纂奪)을 비난한 글.

김종직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端宗)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다.

정축년(丁丑年)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역(踏溪驛)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 의제) 손심인데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彬江)에 버려졌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회왕은 중국 초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이 사람으로 거리가 만리(萬里)나 떨어져 있는데

꿈에 나타난 징조는 무엇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시신을 강물에 버렸다는 기록이 없으니

아마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회왕을 죽이고 시체를 강물에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야 글을 지어 의제를 조문한다. - (연산군 일기 4년 7월 17일)

이 글을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적어

넣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편찬책임자는 이극돈(李克墩)으로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 중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이 기록되어 있어 김일손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던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 중에서 발견한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기화(奇貨)로 하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할 목적으로,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不忠)의 무리로 몰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움직여,

큰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戊午史禍)인데,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김일손·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허반(許盤) 등이 참수(斬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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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弔義帝文)

의제를 조문하는 글

-김종직(金宗直)

丁丑十月日 : 정축 10월 어떤 날

정축십월일

余自密城道京山 : 나는 밀성으로부터 경산으로 향하여

여자밀성도경산

宿踏溪驛 : 답계역에서 숙박하는데

숙답계역

夢有神披七章之服 : 꿈에 신(神)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몽유신피칠장지복

頎然而來 :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기연이래

自言 : 스스로 말하기를

자언

楚懷王孫心爲 : “나는 초나라 회왕인 손심(孫心)인데

초회왕손심위

西楚霸王所弑 : 서초패왕에게 살해 되어

서초패왕소시

沈之郴江 : 빈강(郴江)에 잠겼다.”

침지침강

因忽不見 : 그래서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인홀불견

余覺之 : 나는 꿈을 깨어

여각지

愕然曰 : 놀라며 이르기를

악연왈

懷王南楚之人也 :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회왕남초지인야

余則東夷之人也 : 나는 동이 사람으로

여칙동이지인야

地之相距 : 지역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지지상거

不啻萬有餘里 :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불시만유여리

而世之先後 : 세대의 선후도

이세지선후

亦千有餘載 : 또한 천 년이 넘는데

역천유여재

來感于夢寐 :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래감우몽매

玆何祥也 :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자하상야

且考之史 :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차고지사

無沈江之語 :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무침강지어

豈羽使人密擊 :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기우사인밀격

而投其屍于水歟 :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투기시우수여

是未可知也 : 이것을 알 수 없으니

시미가지야

遂爲文以弔之 : 마침내 문을 지어 조문한다.

수위문이조지

惟天賦物則以予人兮 :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유천부물칙이여인혜

孰不知尊四大與五常 :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숙불지존사대여오상

匪華豐而夷嗇( : 중화라서 풍부하고 오랑캐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비화풍이이색

曷古有而今亡 :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갈고유이금망

故吾夷人 : 그러기에 나는 오랑캐요

고오이인

又後千載兮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우후천재혜

恭弔楚之懷王 :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공조초지회왕

昔祖龍之弄牙角兮 : 옛날 조룡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석조룡지롱아각혜

四海之波 : 사해(四海)의 물결이

사해지파

殷爲衁 : 붉어 피가 되었어라

은위황

雖鱣鮪鰍鯢 : 비록 전유와 추애일지라도

수전유추예

曷自保兮 : 어찌 보전하겠는가

갈자보혜

思網漏而營營 :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사망루이영영

時六國之遺祚兮 :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시륙국지유조혜

沈淪播越 : 숨고 도망가서

침륜파월

僅媲夫編氓 : 겨우 편맹과 짝이 되었다오.

근비부편맹

梁也南國之將種兮 : 항량(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량야남국지장종혜

踵魚狐而起事 : 어호(魚狐)를좇아 일을 일으켰네.

종어호이기사

求得王而從民望兮 :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구득왕이종민망혜

存熊繹於不祀 :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존웅역어불사

握乾符而面陽兮 : 건부(乾符)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악건부이면양혜

天下固無大於芉氏 :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천하고무대어간씨

遣長者而入關兮 :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견장자이입관혜

亦有足覩其仁義 : 역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았도다.

역유족도기인의

羊狠狼貪 : 양흔낭탐이

양한랑탐

擅夷冠軍兮 :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천이관군혜

胡不收而膏齊斧 :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호불수이고제부

嗚呼 : 아아,

오호

勢有大不然者兮 :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세유대불연자혜

吾於王而益懼 : 나는 왕에게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오어왕이익구

爲醢腊於反噬兮 :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위해석어반서혜

果天運之蹠盭 :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과천운지척려

郴之山磝以觸天兮 : 빈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침지산오이촉천혜

景晻愛以向晏 :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경엄애이향안

郴之水流以日夜兮 :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침지수류이일야혜

波淫泆而不返 :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른다.

파음일이불반

天長地久 : 천지가 장구한들

천장지구

恨其可旣兮 : 한이 어찌 다할까

한기가기혜

魂至今猶飄蕩 :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혼지금유표탕

余之心貫于金石兮 :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여지심관우금석혜

王忽臨乎夢想 :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왕홀림호몽상

循紫陽之老筆兮 :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순자양지로필혜

思螴蜳以欽欽 :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사진윤이흠흠

擧雲罍以酹地兮 :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여

거운뢰이뢰지혜

冀英靈之來歆 : 바라기는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기영령지래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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