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ELIOT 의 `황무지` 읽기 02

I.The Burial of the Dead

사자[死者]의 매장[埋葬]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더없이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써 잠든 뿌리를 건드리노라.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겨울은 차라리 따뜻했노라,
망각의 눈은 대지를 뒤덮고,
메마른 구근[球根]들로 가냘픈 목숨 이어주었노라.


[# 이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목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봄날을 잔인하다고, 차가운 겨울은 따뜻했다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위 구절에서 ‘-ing’ 로 반복되는 각운[脚韻, Rhyme]이
매우 아름답게 들리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 그런데 위 구절은 사실은 봄날은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을 키워내는 대자연의
생명력을 예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시인이 보는 방향은 대자연 쪽이 아니라
전쟁 후 인간의 황량한 문명을 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쓰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봄과 겨울 이야기 다음엔 여름이다.]


Summer sur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여름은 소나기를 몰고 ‘슈타른버거’호수를 건너와,
우리를 놀래주었지, 그래서 우리는 회랑[回廊]에 머물렀다가,
다시 햇빛 속을 걸어 공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을 이야기했지.

Bin gar keine Russin, stamm' aus Litauen, echt deutsch. 12
[#12; I am not Russian at all; I come from Lithuania, I am a real German.]
And when we were children, staying at the arch-duke's,
My cousin's, he took me out on a sled,
And I was frightened. He said, Marie,
Marie, hold on tight. And down we went.
In the mountains, there you feel free.
I read, much of the night, and go south in the winter. 18


나는 러시아 사람 아니에요, 리투아니아 출생이지만, 나는 순수 독일인이에요.
우리가 어린 시절, 사촌 태공의 집에 머물 때,
사촌이 썰매를 태워주었는데, 나는 겁이 났어요,
마리, 마리 꼭 잡아’ 라고 말하며 그는 쏜살같이 내려갔어요.
산속에선 자유로워요.
밤이면 책 읽으며 보내고, 겨울이면 남쪽으로 가지요.


[#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왕인 '루트비히 2세'에 대해 알아야한다.

'mad' King Ludwig II of Bavaria: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였으며, 성장하면서부터는 시와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심취하였다.
또한 일찍이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훗날 자신이 직접 성을 설계하게 된
계기가 된다.

루트비히는 아직 왕세자였던 1861년에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바그너의 열성적인
팬이 되었다.



바그너가 그의 대표작 '탄호이저'의 흥행에 실패하여 지독한 곤궁 속에 빠져 있을 때,
루트비히는 바그너가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산으로 바그너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 주고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브라반트의 왕녀 엘자와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슬픈 전설에 푹 빠져
있었던 루트비히는 부왕의 성인 호엔슈반가우성에 있는 많은 벽화들을 보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마음껏 펼쳤으며, 후에 노이슈반슈타인성에 자신만의 꿈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는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좋아하여 성 안의 문고리는 모두 백조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벽화와 커튼의 장식에도 역시 수많은 백조가 그려져 있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성 내부를 바그너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을 그린 벽화로 장식하였다.
거실에는 오페라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의 장면들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거실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동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나머지 방들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니벨룽의 반지'를 비롯한 바그너의 주요 오페라들을
모티프로 한 회화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은 훗날 월트 디즈니가 이 성을
모델로 하여 디즈니의 로고인 '월트 디즈니 성'을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트비히 2세는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 외에도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요소들이
예술적으로 통합되었다고 평가되는 린더호프성과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완전히 프랑스풍으로 지은 헤렌킴제성을 구상했지만, 그의 생전에 완성된 것은
노이슈반슈타인성 하나뿐이다.

*
루드비히 2세는 비록 강제로 폐위되어 1866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이었지만,
자신의 예술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다.
그가 무리하게 감행하여 이룩한 성들은 오늘날 남부 독일의 가장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오늘도 이 성을 보기 위해, 그리고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의 열정을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고 호기심 어린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

[# 이 시 '황무지'에서는 Wagner의 opera 'Tristan und Isolde, 트리스탄과 이솔데'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8 Starnbergersee ; ‘슈타른버거’호수 는 바이에른 의 수도, Munich 남쪽에 있는 호수로서
루드비히 2세가 빠져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호수이다.
Eliot 은 루드비히 2세가 이 호수 물에 빠져죽은 사실을 이 '황무지' 시 안에서 여러 번
인용한다. ]


[# Eliot은 루드비히 2세의 둘째 조카인 여백작 Marie Larisch 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하며 그래서 루드비히 2세에게 호감을 품은 시인은
Marie 이름을 사용하며 과거 회상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한다.]

[# 그리고 여름과 가을의 계절은 옛날 어린 시절의 성장과 모험과정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필한 의사/서울사대부고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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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ELIOT 의 `황무지` 읽기 01

[주]서울사대부고19회사이트에서인용한 중학동기사이트의 것을 다시 퍼왔다,

번거로움을 피해 주석을 피하려 했으나 시구의 깊이를 통찰하도록 그냥 두었다.

주석을 통하여 T.S.ELIOT 의 고전과 문학의 저변문화에 대한 애정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5부로 나누어져 있고 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I. The Burial of the Dead, 死者의 埋葬

II. A Game of Chess 장기 한 판

III. The Fire Sermon 불의 說敎

IV. Death By Water 水葬

V. What the Thunder Said 우레가 말한 것

The Wasteland

위  서문, 혹은 헌정사는 라틴어, 그리스 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Eliot이 이 시 안에서  사용할 언어들을 섞어 썼으며, Petronius (Gaius Petronius ?∼66)의 작품 사티리콘 (Satyricon)에서인용한 글귀로서 영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I have seen with my own eyes the Sibyl hanging in a jar at Cumae, and when the boys asked her 'What do you want?' She answered,'I want to die.'나는 ‘쿠마에’라는 곳에서 내 눈으로 무녀[巫女, Sibyl]를 보았소, 그녀는 독안에 매달려있었는데, 소년들이, “당신은 무얼 원하느냐?”라고 물으니 “나는 죽고 싶어.”라고 대답하더이다.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   The better craftsman.더욱 우수한 예술가, Ezra Pound 에게  [#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무녀 Sivil은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다. 특히 로마의 식민 도시였던 이탈리아의 쿠마의 무녀는 유명했다. 그녀는 아폴로 신에게서 손안에 든 먼지만큼 (황무지 30행 참조) 많은 햇수의 장수를 허용 받았으나 그만큼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죽음보다도 못한 죽은 상태의 황무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페트로니우스(Gaius Petronius Arbiter.20∼66) 고대 로마의 문인(文人). 본명 Titus Petronius Niger. 특이한 소설 <사티리콘(Satyricon)>의 작가로서 알려졌다. 그는 귀족 가문에 속해 있었고, 로마의 기준으로 볼 때 대단한 공적을 세운 인물이었다고 여겨질 만하다. 그러나 타키투스의 서술은 그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세네카의 비난을 받은 쾌락추구자들, 즉 '밤을 낮으로 삼아' 노는 데에만 열중한 계층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남들은 애써 노력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페트로니우스는 빈둥거리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어쩌다 공직에 임명되면 그 직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하고 정력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시아의 비티니아 속주 총독을 역임했고 말년인 62, 63년에는 로마의 고위 공직인 집정관이나 수석 행정관을 지냈다. 집정관 임기를 마친 뒤 페트로니우스는 '아르비테르 엘레간티아이'(우아함을 관리하는 장관)가 되어 네로 황제의 측근이 되었다. 모든 취향 문제에 대한 그의 말은 곧 법률이었다.    그의 이름에 붙은 '아르비테르'라는 수식어는 바로 이 직함에서 온 것이다. 페트로니우스가 네로와 관계를 맺은 것은 황제가 실제로 저지른 범죄보다도 여론에 더 심한 충격을 준 무모한 방탕생활을 시작한 말년이었다. 페트로니우스가 후원자인 황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그가 <사티리콘>에서 부유한 속물 트리말키오를 다룬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리말키오는 복합적인 인물이지만 그와 네로 사이에 존재하는 세부적인 유사점은 당시 이 작품이 갖고 있던 성격을 고려하면 결코 우연일 수 없고, 페트로니우스가 황제를 비웃고 있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페트로니우스의 장편소설 <사티리콘(Satyricon)>은 16세기 이후 유행한 풍자적 피카레스크의 선구적 존재이다. 학교를 뛰쳐나온 엔코로피우스와 아스키르투스라는 악동, 그리고 그의 몸종 기톤의 모험담이다. 현존하는 단편의 주요 부분은 시리아 태생의 해방노예로서 벼락부자가 되었으나 저속한 취미를 지닌 트리마루키오 연회에서의 에피소드 <트리마루키오의 향연>이다. 작품 전체는 네로 황제 치하의 이탈리아 생활의 드라마틱한 묘사로써 하층계급의 생생한 회화가 재현되어 속어 및 일상어가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다. 외설적인 문장도 있으나 전체의 정신은 기지가 넘치는 소탈한 풍자 정신으로 일관되고 있다.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트로니우스는 네로와의 우정 때문에 결국 네로의 근위대 사령관인 티겔리누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66년에 티겔리누스는 페트로니우스가 65년의 네로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고발했다. 페트로니우스는 결백했지만,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쿠마이에서 체포되었다. 사형선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운명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했다. 그는 동맥을 자른 다음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상처에 붕대를 감은 채, 친구들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경쾌한 음악과 시를 듣고 노예들에게 상이나 벌을 주고 잔치를 벌이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 뒤, 마지막으로 '비록 강요된 죽음이지만, 죽음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잠이 든 상태로 운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때의 모습은 H. 솅키에비치가 지은 《쿠오 바디스》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   The better craftsman.더욱 우수한 예술가, Ezra Pound 에게 '보다 나은 예술가 (il maglor fabbro)'는 단테가 신곡 <연옥편> 26장에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Arnaut Daniel을 찬양한 문구이다. 엘리어트 자신의 말을 빌리면 혼란한 상태에 있던 <황무지>의 초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절반의 길이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115   «O frate», disse, «questi ch'io ti cerno  116   col dito», e additò un spirto innanzi,  117   «fu miglior fabbro del parlar materno.  'O brother,' said he, 'he whom I point out,'        “오 형제여, 저기 계신 분은,” 그가   And here he pointed at a spirit in front,      손가락으로 한 영혼을 가리키며 말했다,  'Was of the mother tongue a better smith.    “모국어를 나보다 훌륭하게 단련시켰던  분이시오.  I.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Memory and desire, stirring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더없이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써 잠든 뿌리를 건드리노라. Winter kept us warm, covering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겨울은 차라리 따뜻했노라,망각의 눈은 대지를 뒤덮고, 메마른 구근[球根]들로 가냘픈 목숨 이어주었노라. 이필한 의사[서울사대부고19회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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