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28화 - 공당 문답을 하다 (公堂問答)

 

맹사성(孟思誠 : 1360~ 1438)은 호가 고불(古佛)이었다.

그가 재상으로 있을 때,

온양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

갑자기 비를 만나 헤매다가

용인 지역의 한 여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좋은 말에 종들을 거느리고 들어와,

여관 다락마루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에 고불이 초라한 차림으로

다락마루에 올라 한구석에 앉았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은 영남의 부호로

녹사(綠事)1) 자리를 하나 얻어 보려고

상경하는 중이었다.

1)녹사(綠事) : 조선 시대 의정부나 중추원에 소속된 아전.

 

고불은 늘 수수한 평상복 차림이라,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존귀한 인물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한편, 이 사람은 조금씩 무료해지자

구석에 앉은 고불을 불러

함께 장기를 두며 농담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공(公)'자와 '당(堂)'자로 운을 맞춰

문답을 나누기로 했다.

 

(곧 '~인고?' 라고 물을 때

그 마지막 글자 '고'를 '공'으로 대신하고,

'~이다'라고 대답할 때 그 '다'자를 '당'으로 대신하여

'ㅇ'소리로 여운이 남게 하는 것으로,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하기 거북한 사이의 존칭 표현이 생략되어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먼저 고불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일로 서울에 올라가는공?"

"아, 나는 영남에서 녹사 자리 하나 얻고자

상경하는 길이당."

 

이에 고불은 한바탕 크게 웃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되었네.

내가 그대를 위해 녹사 자리를 마련해 주면

어떻겠는공?"

"그렇게 당치 않는 소리는 하지 마라당."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마주보고 크게 웃고는,

성명이며 사는 곳은 서로 묻지 않고 헤어졌다.

 

얼마 뒤 고불이 의정부에 앉아

녹사를 선발하려고

희망자를 차례로 불러 보는데,

앞서 용인 여관에서 만난

그 사람이 들어와 알현했다.

 

그러자 고불이 보고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일로 왔는공?"

이에 그 사람이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는

난처해하면서 물러나,

당 아래로 가서 엎드렸다.

 

이 모습을 본 주위의 재상들이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의아해 했다.

곧 고불은 며칠 전

용인 여관에서 만나

'공당' 문답을 나눈 일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자 재상들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고,

고불은 그를 녹사로 임명해 주었다.

 

이후 그는 고불의 추천으로

지방 관장 자리를 맡아 나갔고,

이어서 여러 고을 관장을 역임하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유능하다는 칭찬을 들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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